폴란드는 기존 공산당국 및 비밀경찰과의 협력을 했는지 혹은 하지 않았는 지에 대한 식별을 함으로써 만일 전자의 경우 공직 수행을 할 수 없도록 금 지하는 이른바 “적격 검사법”을 1997년까지는 제정하지 않았다. 1997년 4월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향후 2년동안 법안은 시행되지도 않았었 다. 이후 시행된 법안을 살펴보면 체코의 적격 검사법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에서 법안이 집행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체코의 경우는 선출직을 제외한 모든 공직에서 과거 공산당국 및 비밀경찰과 협력한 사람들을 공직 에서 금지하는 적격 검사법안을 제정했던 반면, 폴란드는 제한적으로나마 높 은 공직에만 해당되었다. 예컨대 대통령 직, 상원의원, 행정부 관료, 판사, 검
사 그리고 국영 미디어의 공직이 그러하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공직에 출마하고자 하는 인물이 만일 본인 스스 로 과거 공산당국 혹은 비밀경찰과 협력했다는 사실을 선서하여 진술할 경 우에는 (affidavit) 해당 본인은 공직에 출마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반대의 경 우 즉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 거짓 진술을 하고나서 추후에 발견될 경우에는 향후 공직 진출을 10년 동안 금하게 되는 조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조치는 분명 공무 수행을 할 인물이 과거사에 비추어 청렴하고 깨끗한 사람 이어야 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에 취해진 결과이지만 본인 스스로 과거를 시인할 경우 시민의 반대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므로 엄격한 의미에서는 완화된 형태의 자격 검사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정치인 본인 스스로 과거 잘못을 인정한 사례는 극히 드물며 실 제로 법안이 시행된 이후에 25,000개의 공직을 두고서 법원에서 선서 진술서 를 해야 했던 사람은 85명뿐 이었다.
현재까지 폴란드 정치인 중에서 과거 비밀경찰과 협력을 해왔다는 혐의로 공직 수행의 자격 박탈을 당했던 인물은 두 명의 전 폴란드 수상이었던 얀 올세위스키(Jan Olszewski) 그리고 요제프 올레크스키(Jozsef Oleksky) 이었다.
전 폴란드 대통령이었던 레흐 바웬사(Lech Walesa)와 알렉산더 크네이스키 (Aleksander Kwasniewski) 또한 비밀경찰과 협력했다는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 렸으나 법원의 평결에 따라 무혐의로 판정되었다.
요컨대 폴란드의 과거 청산 결과는 헝가리와 유사하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상징적인 차원에서 시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헝가리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그리고 좀 더 넓은 범위에서 과거와의 직면을 시도했던 반면 폴란드의 경우는 더 늦게 이루어졌으며 과거 관련 청산법 시행 또한 더 제 한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졌다. 두 국가의 공통점은 과거 공산당 당국 엘리트 에 대하여 반하는 과감하고 폭넓은 보복 조치의 시행을 자제하였다는 점인 데 이는 앞서 제기한 체제 전환의 형태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두 국가는 원탁 협상에서 집권 공산당과 야당 세력간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고 그러한 협상 혁명의 취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평화적으로 정 권을 이양해준 공산당에 대한 보복 조치는 이른바 그들 간의 “신사 협
정”(gentlemen agreement)을 위반한 사항으로 간주했을지 모른다. 이는 곧 체 제전환 형태가 엘리트 간의 협상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요구로 인한 갑작스 러운 붕괴 혹은 공산당 체제의 특징이 상대적으로 독단적이고 더 흉포했을 경우 과거 청산에 대한 욕구가 더 강했을지도 모른다는 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아래에서 곧 논의할 듯이 체코슬로바키아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3. 체 코
동독의 경우가 나치 및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전쟁 범죄와의 과거 청산 을 가장 분명하게 그리고 확고하게 수행했던 사례라면 아마도 체코의 경우 가 중·동부 유럽 국가 중 상대적으로 과거 청산 시도를 좀 더 강력하게 수행 했던 국가이었을 것이다.
체코는 과거 청산을 위한 과제로 폴란드와 헝가리처럼 보상법 그리고 적격 심사법을 수용하였으며 후자의 경우 체코 시민은 비밀경찰에 협력을 해왔던 사람들에 대한 목록을 원칙적으로는 열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독의 경우 와는 달리 대중에게 그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대신 고용주 및 과거 진 상규명 위원회 홈 페이지를 통하여서만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1) 보상법
1991년 2월 22일 의회에서 통과된 본래의 체코의 보상법(The Large Federal Restitution Act)에 따르면 1948년 2월 이후 과거 공산당 당국의 몰수 조치로 인하여 자산의 상실을 입은 사람이 피해 보상을 신청할 수 있는 적격자는 현재 체코 땅에 살고 있는 체코 시민권자만 해당되었다. 그러나 체코 상·하 원 의회에서 긴 논쟁 끝에 그 범위를 확장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결과 1938 년 이후 나치에 의해서 피해를 입은 유태인의 자산 복구 자격도 포함되었다.
유태인 출신의 체코인 상속자의 수는 적었지만 유태인 배상을 포함할 것인 지에 대하여 의회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이유는 배상의 대상 범주의 확대는 곧 독일인도 배상을 청구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즉 2차
고 있었던 수덴텐 지역(Sudeten area)의 자산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 자산에 편입시켰고 그 결과 본래의 독일인 소유자 혹은 상속자가 체코 정부를 상대 로 보상법에 근거하여 자신의 자산 회복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염려에서 보 상의 범위 확장을 꺼려하였다. 실제로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체코인들은 독일 인의 부동산 취득 및 자산 상속에 대한 행위에 대하여 반대하였으며 이는 체코와 독일 정부의 관계도 악화시키는 구실을 하였다. 현재는 체코 우림과
평원의 6%을 차지하는 과거 카톨릭 교회에 속했던 자산에 대하여 배상을 해
주어야 한다는 법안이 올 2월 하원에서 통과되었고 시행을 앞두고 시민들에 반대로 논란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