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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의 옥련동의 변화

해방 이후 송도유원지는 문을 닫게 되었고, 유원지에는 미군이 주둔하면서 송도임해주택단지와 관련된 사업도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1950년 송도유원지를 재개장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무산되었고, 전후(戰後) 영국의 휴양시설로 징발되면서 송도유원지는 제한된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1958년 영국군이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징발이 해제되었다. 그리고 1961년 군사정변 이후 송도유원지의 재 개장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63년 7월 24일 송도유원지는 다시 문을 열었다.

1) 송도유원지 부근의 개발과 변화

① 관광도시 이전의 모습

송도유원지가 재개장하기 전의 모습은 전형적인 촌락의 모습이었다.

그때 당시에 천이지, 내, 냇가. 물 흐르는, 산에서 흐르는 물이 … 그때 당시엔 물이 많았어요. 그래서 도시화가 되 면서 물이 없어졌어. … 지금 이제 팔레스 모텔 바로 앞에요, 여기서 요렇게 경복궁 쪽으로 요렇게 굽이를 돌면서 여기에 복개천이에요, 저게. 천이였는데. 빨래하기도 좋았고, 너무너무 바위들이 아름다웠어요. … 그리고 요기

바로 여기에 바로 그 길이 복개천으로 되어서 물이 나가는 곳이 두 군데가 있었어요.

이 건물 뒤에도 다 복개천이었어요. 청량산에서 맑은 물이 내려와서 금붕어, 뱀장어, 미꾸라지 같은 것들을 잡고 는 했어요. 그리고 빨래터도 너무 좋아요. 여기가 해안가였기 때문에 해안가 특유의 구조물, 물에 쓸린 바위 등 자 연적으로 형성된 자연의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최도상)

위와 같이 청량산을 따라 흘러오는 냇가가 있었는데, 그 냇가가 복개된 곳이 현재 대암로라고 구술하고 있 다. 대암로를 따라 흐르던 냇가는 생선을 잡거나 빨래를 하는 등 소규모 하천으로서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 인다. 이 냇가는 후에 송도유원지 부근이 관광도시로 개발되면서 복개되었다.

이 냇가를 기준으로 왼편에 온실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규모가 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온실도 대형온실이 4~5개 아주 즐비했었죠. 그 온실이 우리가 도시에서 흔히 보는 비닐로 만든 것이 아니었고, 유 리창으로 만들어서 겨울이면 방한이 되었던 곳인데, 거기에 대략 5~6분이 근무를 하셨어요. 거기서 제가 아는 동 네 형님들도 일하셨는데요. 굉장히 규모가 컸어요.

도랑을 따라서 왼쪽은 화원이고, 오른쪽에, 저쪽 건물 문을 좇아서 그 길로 쭈욱 올라가면, 올랐는데. 저기는 길이 비포장도로에 그 왼쪽으로 틀면 화원이고, 화원 관리하는 관리 큰 동이 하나 있었어요. 거기에 전기가 이제 발전 기가, 변압기 같은 것을 설치해놨던 것 같아. 이 송도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1965년), 전기가 들어왔어요. 그 러니까 인천 지역에서 원거리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빨리 들어왔는데, 그때 당시 설에 의하면, 온실하시는 분이 중 앙에 막강한 힘이 있었던 분이었던 같아요. 그러면서 수혜를 보게 되었어요.

그때 당시 기억을 따져보면,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왼쪽이 장고개인데. 거기로 올라가고. 오른쪽은 산이었어 요. 산 중턱에 조그만 오솔길이 있으면서 우리 집이 있었어요. 집이 거기 몇 채 있었는데 길을 놓다보니까 길이 그 렇게 나지가 않았어요. 장고개에서 밑으로 이렇게 해가지고 연결이 되가지고 돌리게 되어 있었는데. 이게 화원으 로 들어가니까. 그 화원 사장이 왜 우리 땅을 치느냐, 이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길이 굳이 그렇게 된 거 에요. 중간에 있는 우리 집은 턱하고 집이 몇 채가 나갔냐. 그때 당시에 저 위에까지 여덟 채, 열 채 가까이 철거가 되었죠. 그때는 국유지였어요, 이게. 국유지인데 이게 구청 것인지, 나라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나서 이제 짓기 시작한 거죠.(최도상)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온실은 규모가 컸으며, 관리를 위해 전기가 필요했으므로, 인천 도심에서 상당히 거 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화원을 크게 운영하였기 때문 인지 근방의 유력자로 통했던 모습도 볼 수 있다. 화원은 송도유원지 부근에 해양관광단지 조성이 논의되던 1980년대에 개발의 여파로 사라지게 되었다.

② 송도유원지 재개장과 관광도시화

송도유원지가 재개장하기 전 송도해원관광회사와 송도임해토지주식회사의 대립이 있었다. 해원관광회사 는 한국전쟁 직전에 인천시로부터 송도유원지의 재개장 운영권을 취득한 회사였고, 송도임해토지주식회사는 앞서 1930년대 후반 송도유원지 인근의 택지 분양 및 주택 건설을 담당한 회사였다. 해방 이후에는 흥한재단 의 박흥식 회장이 1대 주주로 있었던 곳이다. 박흥식 회장은 송도임해토지주식회사를 통해 송도유원지 인근 의 부동산 개발 및 사업을 시행하고자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이후 설립되는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에도

송도 이야기 : 사람, 섬을 채우다

없었던 섬, 송도 그곳을 살아간 사람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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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에 첨부된 인천시 소유의 땅을 현재의 지도에 그린 것이다.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63년 흥한재단을 위시한 서울의 자본과 인천의 자본, 그리고 인천시의 현물투자2)로 합작한 인천도시 관광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이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의 정관의 내용 중에 제1장 총칙의 제2조를 살펴보면 다음 과 같은 내용이 언급된다.

제2조 본 회사는 좌(아래)의 사업을 경영함을 목적으 로 함

1. 관광 및 유원지 조성에 관한 사업 2. 일단의 주택지 조성에 관한 사업 3. 주택 건설에 관한 사업

4. 토지 및 주택의 수탁·관리·대여에 관한 사업 5. 지역개발에 관한 사업

6. 공익시설에 관한 사업 7. 보건후생에 관한 사업

8. 앞의 각 호에 부대(附帶)되는 사업 일체

제2조의 내용은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의 설립목적에 관한 내용이다. 그 내용을 보면 첫 번째는 ‘관광 및 유원지 조성에 관한 사업’으로 송도유원지 운영에서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2, 3, 4 번의 항목은 송도유원지 운영이라는 부분에 있어 꼭 필요한 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번 항목인 ‘일단의 주택지 조성에 관한 사업’은 토지 분양에 대한 목적을 담고 있으며, 3번 항목인 ‘주택 건설에 관한 사업’은 말 그대로 건축에 대한 목적을 담고 있다. 그리고 4번째 항목인 ‘토지 및 주택의 수탁·관리·대여에 관한 사업’은 부동산 임대에 관한 목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송도임해토지주식회사의 주주였 던 박흥식 사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박흥식 사장이 송도임해토지주식회사의 주주로 있었던 이유가 송도유원지 부근에 대한 부동산 개발에 대한 의지였던 것으로 추측해 본다면, 이러한 의지를 인천도시관광주 식회사의 정관에 담은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듯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의 정관을 살펴보면 앞서 송도임해주택단지와 같이 관광지의 개발과 그 주 변의 택지분양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제2조의 해당 항목에 맞는 사업이 이루어 졌는지는 불분명하다.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의 택지 분양과 관련된 기록이 없어 실제로 택지 분양과 주택건 설이 이루어졌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때문에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의 성격이 단순히 송도유원지의 운영을 위한 회사였는지, 혹은 송도유원지와 그 근방에 대한 부동산 개발을 추진했던 회사였는지는 명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는 본래 박흥식 사장은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를 통해 송도유원지와 근방에 대 한 부동산 투자를 계획하였으나, 1964년 흥한화섬의 부진 등으로 인해 흥한재단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계획

이 무산된 것으로 추측된다.

(1970년대에는) 유흥시설이라는 게, 뭐 지금 이렇게처럼 활성화되지는 않았어요. 그냥 식당, 여관, 뭐 이렇게 있 고, 크게 뭐 지금처럼 싸롱이나 이런 거는 없었어요. 그냥 구멍가게에 음식점 몇 개만 있지, 그냥 오시는 손님들을 지원하기에는 인프라는 크게 구축된 것은 없었어요. 왜냐면 이 유원지 개념이 거의 싸갖고 와서 많이 여기 해먹고, 식사하고 막, 텐트에서 자고 그랬잖아. 그런 것이기 때문에.(최도상)

위와 같은 구술로 보아 당시의 송도유원지 부근은 개발이 진행되었던 모습은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하였 듯이 ‘인프라’가 구축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관광지의 모습은 갖추고 있었으나, 아직 관광도시의 모습으 로 개발된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후 1978년 2월 22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 제2조의 일부 항목 삽입이 이루어지고, 이는 7월 21일부터 시행된다. 추가된 내용을 포함하여 변경된 정관 제2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2조 본 회사는 좌(아래)의 사업을 경영함을 목적으로 함 1. 관광 및 유원지 조성에 관한 사업

2. 일단의 주택지 조성에 관한 사업 3. 주택 건설에 관한 사업

4. 부동산 매매 및 알선업에 관한 사업

5. 토지 및 주택의 수탁·관리·대여에 관한 사업 6. 지역개발에 관한 사업

7. 공익시설에 관한 사업 8. 보건후생에 관한 사업

9. 앞의 각 호에 부대(附帶)되는 사업 일체

1978년에 추가된 항목은 4항으로 ‘부동산 매매 및 알선업에 관한 사업’이다. 이 항목이 추가된 배경은 당 시 정기주주총회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1976년부터 시작된 송도유원지 근방의 부동 산 열기로 추측된다.

1976년 4월 29일 건설부는 인천시에 송도 제1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을 명령하였는데, 이는 옥련동과 동 춘동 일대의 20만 1천평에 해당하는 토지였다.3) 이어 같은 해 12월 8일 경제장관회의에서는 대윤실업이 신 청한 옥련동 부근 84,972평의 공유수면 매립을 허가하였다.4) 이 사업은 옥련동 부근을 매립하여 관광호텔, 전망대, 방갈로, 숙박업소, 토산물판매소, 풀장, 수족관, 야외운동장 등 관광휴양단지로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 었다. 기사에서는 ‘관광지 개발에 따라 옥련동을 중심한 이 일대의 지역개발이 한층 촉진케 되었으며 아울러 이 일대의 부동산 경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게다가 1977년 교통부는 관광단지개발사업을 촉진하기 위해 관광단지 내의 숙박시설과 오락시설 건설에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지자체가 아닌 국제관광공사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법률안을 개정하였다.5) 이 는 땅값시비 등으로 개발이 늦어지는 것을 우려하여 국제관광공사에 토지수용권을 부여한 것이었다. 이렇듯 국제관광공사에서 토지수용권을 갖는 지역은 전국에 33곳으로 지정되었는데, 그 중 하나로 송도유원지가 지 정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송도유원지 부근에 관광단지 개발의 기대를 안게 되었고, 부동산 시장 또

2) 인천도시관광주식회사의 총무부장을 지낸 최우철 씨에 따르면 이 토지는 1961년 군사정변 이후 농지개혁법으로 수용한 땅이었다고 구술 한 바 있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