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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해상 신도시의 개발 과정

1984년에 공포된 인천 도시기본계획에서 송도 해상신도시는 2001년을 목표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송도 해상신도시의 개발이 바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 었다. 당시 인천은 수도권정비계획에 따라 ‘제한정 비구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수도권을 5개의 권역으로 분류가 되었어요. 그 권 역 중에 인천은 과밀억제권역2)이에요. 과밀억제 권역은 개발을 하면 개발의 피해가 서울로 오니까 개발을 억제하라는 권역이었어요.(김용하) 1982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에 따르면 제한 정비권역은 이전촉진구역의 주변지역으로서 인구 및 산업의 유입이 급격히 증가하거나 증가할 우려 가 있어 그 조정이 필요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에서 는 산업시설의 제한적인 증설만을 허용하였고, 인구

집중유발시설의 신규입지는 규제되었다. 또한 공업지역의 규모는 하향 정비하고 도로와 공원, 녹지 등 도시의 녹지공간을 확대하도록 도시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림 3. 수도권정비의 5개권역

2) 당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르면 제한정비권역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구술자의 표현을 그대로 따르기 위해 과밀억제권역으로 하였다.

이후 1994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제한정비권역은 과밀억제권역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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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1984년 송도 해상 신도시는 인천 도시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실행으로 옮기기는 어 려운 상황이었다. 중앙 정부에서는 인천시가 제한정비권역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시행한다는 것에 부 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던 1988년 노태우 정권이 주택공급 200만 호 계획을 세우면서, 그 영향을 받아 송도 해상 신도시는 주 거지역으로 반영이 되었다. 그리고 1989년 인천시는 도시기본계획에 따른 공영개발사업 선정, 타당성 평가 및 자금조달을 시에서 직접 시행하기 위해서 ‘인천직할시 공영개발사업단’을 만들었다.3)

내가 저기 88년도 도시정비과 계장 때, 이 경제청의 전신인 공용개발사업단을 만들었어요. 공용개발사업단을 만 들면서, 매립사업은 송도신도시 매립사업. 그리고 토지구획정리 사업하고 택지개발 사업하고 도시 관광 쪽 하고, 영종도. 그리고 석산 개발 사업. 이런 몇 개 사업으로 해서 인원을 62명 해가지고…(윤석윤)

공영개발사업단은 송도 앞바다 해상도시 건설을 위한 해면 매립을 포함한 매립사업, 택지개발, 영종·용유 도 관광개발사업, 공단개발 등의 사업을 맡아 추진하게 되었다.4) 이는 송도 앞바다의 매립과 해상 신도시의 건설을 인천시에서 직접 추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송도 앞바다 매립하여 택지로 공급하고자 하였다. 이는 앞서 언급하였던 주택공급 200만 호 계획 에 편승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1989년에는 택지를 공급하면서 외지인과 공장의 입주는 허용하지 않는다 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5)

이후 공영개발사업단에서 송도 매립 공사를 추진한 이후 해마다 송도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6) 기사가 지속 적으로 실리면서 사람들의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개발계획은 계속 여러 문제로 지연되었고 착공날짜도 점점 뒤로 밀리게 되었다. 그러던 1994년 9월 10일 송도 해상 신도시의 기공식이 열렸다.

그렇게 멈춰있던 게, 93년도에 이제 문민정부 들어와 가지고 최기선 시장 이 3월 초에 왔지. … 본격적으로 해보 자 그러더니, 그 때 이제 정식으로 송 도사업을 한거야, 그러니까 당장 군부 대에서도 반대하는게, 바로 그 저기 동 춘동 뒷산에 미사일 방공포대가 있어.

거기서 미사일을 발진하게 되면 낙진 체가 송도신도시 반경에서 직경 4km 안에 다 떨어지니까, 그러니까 군부대

의 동의가 안 돼. … 그래서 군 문제를 해결해야 될 것 아니야. 그럼 문자 그대로 옮기자. 그 돈을 인천시가 부담을 한거야, 그래서 어디로 갈까 하니, 영종도로 간 거야. 그래서 그것 때문에 국방부하고 또 얼마나 협의를 하고, 그런 데서 이제 다 해결 하고 그랬어. … 어쨌든, 그래서 다시 열린 거에요. 그 다음부터는 막히는 것이 없었는데. 송도 3) 「매일경제」, 1988년 11월 10일 14면.

4) 「한겨레」, 1989년 4월 1일 9면.

5) 「매일경제」, 1989년 10월 23일 14면.

6) 「매일경제」, 1990년 4월 12일 14면. 1990년 11월 14일 19면.

기공식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 날 또 비가 왔어요. …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이 비가 오려고 하니까 별안간 연 락이 와서, 대통령을 우중행사로 모시려고 하니까 어렵다고 그래서 최기선 시장이 ‘다시 공지 안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해서 (행사가 진행이 되었지요.)(윤석윤)

매립은 1994년도에 2,4공구에 매립을 시작해요. 그렇게 개발을 못하다가 1994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당시 인천시장이었던 최기선 시장이 김영삼 대통령의 비서였어요.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처음으로 여름에 비가 오는 때에 착공식을 하게 됐지요.(김용하)

인천 송도에 해상 신도시 착공

인천 앞바다 송도 해상 새도시 건설공사가 10일 오전 김영삼 대통령과 최기선 인천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 식을 갖고 본격적인 해면매립 공사에 들어갔다.

송도 새도시는 인천시가 21세기 서해안 시대의 중심 국제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남구 동춘동 송도 앞바다 17.7

㎢(5백35만평·서울 여의도의 6배)를 매립해 영종국제공항과 항만을 이용한 입체 교통요충지로서 산업·정보·통 신 등 연계기능이 복합된 도시로 조성된다.

사업비 1조7천4백24억원(매립공사비 7천3백96억원, 시가지 조성비 1조28억원)을 들여 2001년까지 매립을 마 치고 2006년까지 시가지 조성이 완료된다.

시는 새도시 건설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공영개발 수익금과 토지를 먼저 분양해 이뤄지는 대금 및 민자 유치를 통 해 조달할 계획이다.

조성되는 땅은 △ 주택용지 1백59만5천평 △ 상업용지(국제교역·금융·정보기능) 33만6천평 △ 공공시설용지(공 공청사·교육시설·도로·운동장·하수처리장) 3백33만평 △ 근린생활용지 7천평 △ 문화·복지시설용지 8만2천평 등으로 이용되며, 전체면적의 32.2%인 1백67만5천여평이 공원 녹지로 조성된다.

이 사업은 애초 90년 11월 건설부의 매립승인을 받아 91년 착공할 예정이었으나 중앙부처 간의 이견으로 4년간 지체돼 왔다.7)

7) 「한겨레」, 1994년 9월 11일 2면.

그림 5. 매일경제 1989. 11. 14 19면 그림 6. 매일경제 1989. 10. 23 14면

송도 해상 신도시의 기공식은 가을비가 내리던 1994년 9월 10일 오전에 치러졌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송도 매립 공사가 시작되었다. 매립공사의 관건은 바다를 매울 흙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었다.

그림 4. 송도 해상 신도시 기공식(동아일보 1994. 9. 1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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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하려면 첫 번째 둑을 막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 데) 돌이 없잖아. 지금은 경인교육대 들어가 있는 안양석 산, 거기서 돌을 가져오자니 운반거리가 멀고. 어디 인천 에서 조금 조금해가지고는 돌을 조달도 안 되고, … 도시 정비과장한테 회의 들어가서 저기 문학경기장, 거기 돌이 있는 걸 알기 때문에, 운동장 자리를 거기다 하는 게 좋겠 다고 하는데. 하여간 돌산인데, 어떻게 하냐고 그래서, 일 석이조로, 거기 까서 평지로 만들어서 (문학경기장) 만들 고, 그 돌로 송도 매립해야 될 것 아니냐. 내가 그렇게 성사 시켜서,…(윤석윤)

1981년도에 계획할 때 인천시의 범위가 넓어졌잖아요. 새 로 신도시로 종합운동장을 만수동에다가 지정해놨어요.

그런데 송도에다가 (매립을) 하니까 당시에 송도는 갯벌이

고, … 그러니까 흙을 가져와도 제일 가까운 문학산이 괜찮은 것이에요. 그래서 문학산에다가 지금도 문학산하고 계양산은 인천의 진산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반대를 함에도 불구하고 시사업이니까 종합운동장을 문학산으 로 옮기면서 문학경기장이 산자락에 위치하게 된거에요. 그것을 다 깨가지고 송도로 가지고 온 것이지요. 그러면 서 기저가 된 것은 갯벌이에요. 갯벌이 오랜 역사 동안에 있었으니까 먼저 갯벌을 개발했는데, 갯벌로는 약하니까 산을 깨서 가져온 것이지요. 무대(無代)로 보상 안주고요. 인천시가 운동장을 지을 때 그 남는 것을 돌을 치워야 하 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치워주면 고맙지요. 그 돌을 송도에다가 갖다 붓고, 그리고 또 하나가 1991년도에 인천 시가 기본계획에 의해서 도시철도 1호선을 착공을 해요. 그리고 1999년도에 준공을 하는데 지하철을 하면서 흙 이 나오잖아요. 그게 다 송도로 들어온 것이에요. (김용하)

송도 매립 초기의 흙은 문학경기장 건설과 인천 도시철도 1호선 관련 공사 현장에서 나온 흙을 이용하였 다. 이 흙은 인천시의 사업으로 시행한 공사의 폐기물로 나온 것이었기에 따로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1996년 인천 도시철도 1호선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는 하루에 2백대의 분량이 송도신도시 매립현 장으로 운반되었다고 한다.8)

바다가 매립되고 새로운 땅이 만들어지면서 이 공간에 대한 계획의 필요성이 대두하였다. 매립된 땅은 말 그대로 백지상태였기 때문에 계획에 따라 도시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인천시는 국제공모 를 통해 도시계획에 대한 도판을 얻고자 하였다.

송도신도시나 멋있는 그림이나 좀 볼 거 있으면 한 번 그려보라고 그랬더니, 이 사람들(대우)이 옳다구나 하고 서는 미국에서 대우하고 늘 거래하는 구르웨이라는 아무르 출신 디자이너한테 부탁을 해가지고, 도판을 세 개를 가져왔는데, 전혀 상상도 못했던 그림을 가져오더라고. 아 이게 바로 도시계획이구나 (했지) … 대우의 그런 그 림들을 보니까, 뭔가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다른 국제적인 공모를 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일단 50억 정도를 가 지고, 우리 국내 용역회사에 발주를 했어요. 근데 과업지시가 워낙 까다롭고 그렇다보니까 다른 데는 안 된다는

8) 「동아일보」, 1996년 12월 23일 35면.

그림 7. 매일경제 1994. 9. 11 19면

그림 8. 인천 송도신시가지 조성 조감도(인천시립박물관 제공)

데, … 일단은 입찰을 해가지고, 몇 군 데 해가지고 들어왔어요. 근데 대부분 의 용역발주 내용이 페이퍼컴퍼니마 냥 껍데기고, 거기서 다시 외주로 주 는 형태로 일을 하려다 보니까, 국제 공모를 세 군데를 하자. 그러니 세 군 데를 리스트 한번 해보자 하니, 하나 는 미국의 처음, 우리 대우 통해서 그 림을 준 구르웨이라는 회사, 그다음에 하나는 니켄세케이, 또 하나는 네덜란 드 OMA라고 해서 다들 생소한데, 세 군데를 기간을 줘가지고 디자인을 해 가지고 왔어.(윤석윤)

공모 결과 총 3군데의 디자인 회사에서 도판을 제출했다. 미국의 구르웨이와 일본의 니켄세케이, 그리고 네덜란드의 OMA가 그 회사였다. 이들 회사 중에 구르웨이는 처음 송도의 도시계획에 대한 도판을 제출했던 회사였기 때문에 익숙한 도판이었다. 니켄세케이는 일본의 건축회사였기 때문에 바로 받아들이기 쉬웠다고 한다. 반면, 네덜란드의 OMA의 도판은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네덜란드 OMA 게 뭔가 좀 획기적인 거고, 좀 새로운 신도시 같으니 괜찮다. … 그랬더니 대 우에서 나보고 OMA 거를 직접 소화할 수 있겠 느냐 해서, 지키고 해보겠다 하니까 그래서 네 덜란드 OMA로 했어요. 근데 네덜란드 OMA는 렘 콜하스라고 건축 쪽에 세계적인 사람인데, 그 사람이 … 네덜란드 OMA안을 가지고 밑그 림을 그린거에요. 그런데 교통역량평가같은 것

도 하다보니까, 국내에서 우리 대부분 사람들이 직각보행 하는 것을 싫어하잖아요, 전부다 대각선으로 족족 치잖 아요. 그래서 OMA 안은 그런 반응으로 굉장히, 자연발생적으로 생길 수 있는 그 형태를 쫓아서, … A자로 모양 으로, 지게 모양으로, 그런 모양이어서, 바로 그런 논리로 평면으로 놓게 되면, 그래서 송도신도시 패턴이, 지하철 노선이, 대각선으로 배치돼있어요. 그럼 두 군데가 뉴욕 맨해튼 해가지고 5번 거리라고, 나머지는 그 가로로, 종 으로 도로가 쭉 되어 있잖아요. 근데 거기 보면 대각선 하나 쳐놨거든요. 바르셀로나도 보게 되면 Diagonal(다이 아곤날)이라 해서 대각선 도로가 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그 지역의 상징도로처럼. 그런 개념이라든지, 이건 또 그 결절점이 만나는 Nod(노드)라든지, Petio(페티오)라든지, 설명하는데, 생소하긴 하지만은, 아, 뭔가 저게 당기 는 그런 게 있어요.(윤석윤)

OMA의 도판은 전체적으로 바둑판 형식의 계획에서 대각선의 도로를 만들어 도시를 관통하는 중심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땅이 만들어지면서 당초 계획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처음 송도 해상 신도시

그림 9. 동아일보 1996. 11. 18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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