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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북·미관계

2001년 북·미관계는 2000년의 대화분위기에서 크게 후퇴하여 냉각 되었다. 미국과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의 말기인 2000년 하반기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방문과 올브라이트 장관의 평양방문 등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문제에 대하여 의견접근을 보이면서 북미관계개선의 계기를 마 련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금년 2월 부시행정부의 출범이후 북미관 계는 2000년 이전의 상태로 회귀하였다.

부시행정부의 대북인식 및 정책은 3월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변화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대통령 은 한국의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원칙적 동의에도 불구하고 기존 대북 정책과 차별화되는 발언을 하였다. 우선 부시 대통령은 적어도 지금 당장은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을 이어받을 의도가 없으며, 미국이 빠른 시일 안에 북한과의 미사일회담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개인적인 의구심을 갖고 있고 북한에 대 해 환상을 갖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북한의 각종 무기 수출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며, 이의 중지를 강조하였다. 북한체제의

폐쇄성으로 인하여 북한과의 합의내용에 대한 투명성 확보가 어렵다 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과의 협상에서는 합의에 대한 완전한 검증절차 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6. 6 마침내 대북정책 재검토의 종식과 대북 대화의 재개를 선언하였으나, 대화의제로서 핵, 미사일, 및 재래식 무기를 제 시한 이후, “북한과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 채 실 질적으로 북미대화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의구심을 표 명한 것 등과 관련, 미국을 맹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정상회담 직후 평 양방송은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수수방관할 수 없 는 위험한 군사적 결탁책동”이라고 비난하였다(평양방송, 3. 14). 북한 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발언을 남북한이 화합하여 통일하려는 것 을 달가워하지 않는 미국의 ‘반통일정책’으로 규정하고, 남북, 해외 전 체동포가 이를 저지하여야 한다고 촉구하였다(평양방송, 4. 3, 4. 19).

나아가 북한은 미국의 재래식무기감축관련 발언에 대하여 민감하게 비난하면서, 주한미군철수 주장으로 대응하였다. 북한은 `미군철수부터 논해야 한다'는 제목의

「노동신문」논평(4. 16)을 통해 한반도 군축의

선결조건은 주한미군 철수며,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연방제통일과정에 서 남북군축문제는 남북간에 다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평양방송, 4. 17, 조선중앙TV, 3. 27).

북한은 미국을 맹비난하면서도 북·미간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신문」논평(3. 19)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조미사이의

대결이 해소되고 관계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이로부터 우리는 클린턴 집권 시기 미국과 여러 갈래의 대화를 진행했으며 공동 코뮤 니케도 발표했다”고 상기시켰다. 또한 미국의 제네바합의 파기 가능성 을 비난하고, 이의 준수를 강조하였다.

미국의 부시행정부 출범이후 북한은 3월 5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연 기한 이후 남북관계를 동결시키고, 북·중관계, 북·러관계의 개선을 통 해 미국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향후 북·미대화에서 자신의 협상력을 강화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는 9.11테러사태로 수포로 돌아갔다. 테러지원국과 미사일 개발 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 강경화로 대북 입장도 강경화되고, 향후 대외관계에서 테러사태에 대 한 각국의 입장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또한 대테러전쟁을 계기로 중국, 러시아의 대미협력이 강화되고, 5차 장관급회담에서 한국은 북 한과 반테러선언을 요구하는 등 한·미 공조체제 역시 강화되었다. 북 한은 우리측의 최근 외교활동이 민족자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하 는 등 남한의 대북인식에 대하여도 불만을 표출하며,

「6· 15남북공동

선언」의 이행을 강조하면서 자주적 입장을 지킬 것을 주장하기도 하 였다. “어느 일방이 외세에 의존하고 외세의 간섭을 허용한다면 그것 은 대결하는 자세이지 통일하려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평양방송, 10.

28) 면서, APEC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의 개혁개방유도’ 발언을 비난하는 등, 개인적 신뢰저하를 암시하였다.

2002년도 북·미 관계는 교착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제시한 대북 대화의 3대의제에 관련하여 북한과 미국간에 타협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며, 미국이 이러한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2002년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 용의가 있 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을 모색할 것이 다. 그러나, 대테러전쟁의 여파로 미국의 북한과의 관계 개선 관심은 감소했으며, 9. 11 테러사건 이후, 북미간에 긴장이 고조되어 왔다.

2001년 12월 미국은 중국, 러시아에 이어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세계 3위 안보 위협 국가로 거론하고, 북한을 생물무기개발국으로 지 명하는 등, 북한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였다.

나. 북·중관계

2001년 중국과 북한은 김정일의 방중과 장쩌민의 방북과 중국 개 혁노선에 대한 북한의 인정,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 등을 통해 외형적 으로 한

중 수교 이전의 관계를 회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중국 의 입장에서 볼 때, 한

중 관계의 중요성 증대와 WTO 가입에 따른 서방국과의 협력 필요성 증대 등의 요인으로 인해 북한과의 ‘혈맹’관 계의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2001년 북

‧중관계의 중요 진전은 1월에 있었던 김정일의 방중(1.

15~20)과 9월 장쩌민의 평양방문(9. 3~9. 5)을 통해 이루어졌다. 김 정일은 방중시 상하이의 증권시장과 푸동 지역을 방문, 중국의 개혁성 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장쩌민의 방북시에는 중국의 ‘3개 대표론’

을 인정함으로써 중국의 개혁노선을 둘러싸고 북한과 중국사이에 존 재하던 ‘이견’을 해소하였다.2) 장쩌민은 북한 방문 시 식량 20만 톤과 디젤유 3만 톤을 무상으로 제공함으로써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호의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장쩌민의 방북을 통해 북·중 우호친선 관계 확인 등 외형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러시아의 대 북접근에 대한 견제 등 실질적 방북 목적 달성에는 미흡한 성과를 거 둔 것으로 평가된다. 장쩌민이 2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대 화의 필요성을 강조함으로써 김정일의 남한 답방을 우회적으로 권유 하고 대화를 통한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 필요성을 제기함으로써 한 반도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중·미 협상 카드화하려 한 것으로 판단된다.

2) ‘3개 대표론’이란 중국공산당은 선진생산력, 선진문화, 광대한 인민의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공산당 내에 자본가를 포함할 수 있다는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1992년 한

중 수교이후 ① 한중관계의 진전에 대한 북한측의 불만,

② 중국의 개혁노선에 대한 북한의 부정적 인식, ③ 장쩌민과 김정일 의 상호방문을 둘러싼 신경전, ④ 북

미관계의 불투명성 등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야기하였는바, 중국은 장쩌민의 방북을 통해 이와 같은 북·중간 문제 해결을 시도하였다. 2000. 8 김정일은 방러를 통해 미국 MD계획, 유엔문제, TSR 연계문제, 세계정세 등에 대한 러시아 의 입장을 지지하고, 대가로 주한미군과 북한의 미사일개발 및 통일방 안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와 북·러 경제협력에 대한 합의를 도출함으로 써 러시아와의 급격한 관계진전을 이룩하였다. 따라서 중국은 장쩌민 의 방북을 통해 중국의 새로운 이념 노선에 대한 북한의 이해와 남북 한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협상입 지 제고 등을 추구하였으나, 결과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3)

2001년도 북

중관계는 외견상 김정일의 중국 방문과 장쩌민의 방 북으로 인해 1990년대의 한

중수교와 중국의 개혁노선을 둘러싼 갈등 구조를 해소한 것으로 보이나, 북한의 대러시아 접근 정책 및 EU국들 과의 관계개선, 북한경제의 일부 개선 징후 등으로 인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장쩌민 방북시(2001.

9) 북한의 미사일 실험발사유보 조치 지속에 대한 언급을 유도하였으 며, 김정일의 남한 답방 및 북·미관계 개선에 대해 권유함으로써 한국 과 미국의 입장에 성의를 보였다. 이는 한

중관계 및 미‧중관계에 진 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으며, 러시아의 대북한 영향력 확대에 대해 중국이 견제할 의향이 있음을 밝힘으로써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 가능 3) 북·중 정상회담 이후 공동선언 또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지 않았으며, 장쩌민 귀국이후의 기자회견과 평양의 방송 등에서도 구체적인 합의 사항이나 성과가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북한과 중국간 상당한 견해 차이가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