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이산가족문제
‘6·15남북공동선언’의 이행과정에서 추진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2000년 8월부터 2001년 2월에 걸쳐 세 차례의 남북이산가족 상봉과 한 차례의 생사·주소확인 및 서신교환으로 가시적 성과를 나타냈다.
통일부 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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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에 따르면 ‘6·15남북공동선언’이후 세 차례의 이산가 족 방문단 교환을 통해 603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총 3천600여명의 가 족‧친척을 상봉했으며 남북한 각각 300명씩의 서신을 교환했고 총 1 만여 명의 생사가 확인되었다.8)특히 올해는 연초 김정일 위원장의 ‘신사고’ 발언과 함께 북한이
‘6·15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의지를 거듭 밝힘에 따라 이산가족문제 해결 에 괄목할 만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올 한 해 동
8) 통일부 인도지원국, 「남북이산가족 교류협력 실무안내」 (서울: 통일 부, 2001. 6), p. 32.
안의 성과는 제3차 상봉이 성사된 것과 생사·주소확인 및 서신교환이 시범사업으로 행해진 것 외에는 없다. 현재 제4차 상봉이 합의만 이룬 채 실시가 무기한 유보되어 있는 상태이다.
제3차 남북적십자회담(2001. 1. 29~31)에서 합의된 일정대로 지난 2 월 26일부터 28일까지 실시된 제3차 상봉 때에도 1·2차 때와 마찬가지 로 남북한 각각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서울~평양간 항공로를 이용 하여 서울과 평양에서 단체 및 개별 가족 상봉을 하였다. 특히 3차 상 봉에서도 제2차 상봉 때에 성사된 납북 동진27호 갑판장 강희근씨의 모자 상봉과 국군포로 이정석씨의 가족상봉에 이어 납북 대한항공기 여승무원 성경희씨의 모녀 상봉과 두 명의 국군포로 출신의 가족 상 봉이 이루어짐으로써 그 동안 미해결의 난제로 남아있던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 해결에 있어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남북이산가족의 서신교환은 2001년 3월 15일에 시범사업으로 행해 졌으며 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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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가 확인된 남북이산가족 각각 300명씩의 편지가 남 북적십자사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일괄 교환되었다. 일반적으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단계적·점진적 해결에 있어서는 상봉 이전에 생 사·주소 확인 및 서신교환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는 우리 당국의 일관 된 방침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범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일단 생 사·주소 확인에 따른 서신교환 사업이 성사되었음은 올해 남북이산가 족 문제 해결에 있어 주요 성과의 하나라고 하겠다.제5차 장관급회담(9. 15~18)에서 합의되어 지난 10월 16일부터 18 일까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예정되었던 제4차 이산가족 상봉은 현 재 성사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이다. 제4차 이산가족 상봉은 상봉사업이 합의되기까지에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이후 납득할 만한 해명 없이 남북대화에 소극적으로 응하던 북한은 지난 3월13일 부터 16일까지로 예정되었던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을 개최 당일에 일
방적으로 무기한 연기하는가 하면, 4월 3일부터 5일까지로 예정되었던 제4차 남북적십자회담도 북측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제4차 이산가족 방 문단 교환,9) 태권도시범단 교환 등 5개항의 합의사항을 담은 공동보 도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4차 상봉을 불과 나흘 앞두고 돌연 남측의 ‘비상경계조치’를 문제삼아 이산가족 방문단과 태권도시범단 교환을 유보할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열릴 예정이던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도 회담장소를 ‘금강산’으로 고집 함에 따라 예정된 회담일정이 취소되는 사태를 빚었다.
제6차 남북장관급회담은 남측이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고, 남북 화해협력의 기조를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금강산 회담을 수용하여 지 난 11월 9일부터 14일까지 금강산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제6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도 북한은 제5차 남북장관급회담 합의사항 이행의 전 제조건으로 남측의 ‘비상경계조치’를 조속한 시일 내에 해제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예정일을 이틀이나 연장하면서까지 진행된 회담은 결국 아무런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결렬되었고, 이산가족 상봉은 또 다시 무기한 유보되고 말았다.
9)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은 별도의 남북 적십자회담 개최 없이 전례에 따라 서울과 평양을 동시 교환방문하는 것으로 합의함.
연도별
구분 ’85 ’90 ’91 ’92 ’93 ’94 ’95 ’96 ’97 ’98.
2.
소계 (평균)
’98.
3-12 ’99 ’00 ’01.
1-11 소계
(평균) 총계
민 간 차 원
생사
확인 3 127 132 221 135 104 96 164 24 1,038
(120) 353 481 447 191 1,472 (401) 2,510 서신
교환 4 193 462 948 584 571 473 772 85 4,132
(477) 384 637 984 524 2,529 (690) 6,661 제3국
상봉 11 19 12 11 17 18 61 8 163
(19) 100 195 148 150 593 (162) 756 방북
상봉 - 1 5 4 5 15 15
당 국 차 원
생사
확인 6 65 792 744 1,536 1,601
서신
교환 39 623 662 662
방남
상봉 3 30 201 100 301 331
방북
상봉 3 35 205 100 305 340
통일부, 「남북이산가족 교류협력 실무안내」 (서울: 통일부, 2001)
< 표 3-3 연도별 남북이산가족교류 현황 >
지난 12월 11일 대한적십자사는 제4차 남북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의 연내 재개를 북한에 제의했으며, 상봉장소에 대해서는 조건을 가리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상봉 실현의 의지를 적극 피력하였다. 대한적십자 사는 지난 8월 10일에도 적십자회담 조속 개최와 90세 이상 1천8백여 명 상봉 또는 생사확인 우선 실시 등을 북한에 제의한 바 있다.
2002년에는 유보되었던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2002년 4월부터 2달에 걸쳐 개최되는 ‘아리랑 축전’을 성대하게 치르기 위하여 남한 주민들의 참가를 희망할 것이 고, 이를 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각급 남북회담을 재개할 가능성 이 있다. 따라서 상반기에 이산가족 상봉이 한차례 정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나, 이후에는 남북관계, 그리고 북미관계의 진전에 따라 이
산가족 문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나. 납북자와 미송환 국군포로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전쟁 기간 중 북한에 억류된 미송환 국 군포로는 1만 9천 여명으로 추산된다. 그 동안 남한은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였으나 북한측은 이를 거부하였다. 미송환 국군포로들은 실태는 탈북·귀환한 국군포로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바, 그들은 감 시대상으로 분류되어 각종 차별대우를 받고 있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1년 말까지 귀환 한 국군포로는 모두 17명이며 2000년 말까지는 모두 23명이다. 그러나 1999년 3월 귀환한 손재술 씨는 1년 뒤 지병으로 사망하여 현재는 22 명이 남한에 거주하고 있다.
2000년 말 현재 정부가 신원을 확인하여 명단을 확보하고 있는 미 송환 생존 국군포로의 수는 모두 385명이다. 이러한 숫자는 국내입국 북한이탈주민과 귀한 국군포로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집계된 것이 다. 정부는 국군포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총리실, 통일부, 외교통상 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국가보훈처 등 관계부처 국장급 11명이 위원 으로 참여하는 ‘국군포로대책위원회’를 설치해 놓고 있다.
납북자 문제와 관련, 휴전 이후 북한으로 납치된 사람은 총 3,790명 이고, 이 중 현재까지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사람은 총 487명 이다. 납북된 사람의 대부분은 어부들로 1955년 5월
「대성호」와 어부
10명을 강제 납치한 후 총 3,692명이 어부들을 납치하였다가 3,256명 을 돌려보내고 현재까지 436명의 어부를 억류하고 있다. 또한 1970년 6월 5일 납치한 해군 Ⅰ-20정 승무원 20명 전원과 선박을 억류하고 있으며, 1969년 12월 11월 대한항공 여객기와 함께 납치한 승무원과승객 중 12명을 억류하고 있다. 또한 해외근무 또는 유학중 납치된 사 람이 12명이고, 여름방학중 해안가에서 납치된 고등학생이 5명이다.
그리고 북한은 1979년 4월 노르웨이에서 고상문 남한 교사와 1995년 7월 안승운 순복음교회 목사 등을 납치·억류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납북억류자가 북한에 더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납북억류자들 중 일부는 대남선전과 간첩교육에 이용되고 있다고 북한이탈주민들은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용가치가 없는 일부 납북 억류자들은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994년 7 월 30일 AI가 밝힌 49명의 정치범 명단에 고상문과 유성근 등 납북자 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1999년 1월 국가정보원은 이재환 등 납북·월 북자 22명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99. 1. 24)과 3.1절 기념사를 통해서 인도주의 입장에서 국군포로·납북자와 출소공산주의자의 맞송 환을 위한 남북 당국간의 대화를 촉구하였다. 남한은 남북 적십자회담 을 통해서 납북자와 국군포로문제를 제기해 왔으나 북한은
「북한에는
국군포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의 입북자는 있어도 납북자는 한 명도 없다」고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그러나 남북 당국이 지난해 제2차 남북 이산가족 평양상봉에서 납 북선원과 남쪽의 어머니의 상봉을 허용하였으며, 지난 2월의 체3차 이 산가족 방문단 교환과정에서 KAL기 납치사건에서 송환되지 않았던 승무원 성경희씨와 국군포로 출신 김재덕, 손원호씨 가족이 상봉하였 다. 정부는 이와 같이 납북자나 국군포로를 특수 이산가족으로 간주하 고 광의의 이산가족의 범주에 넣어 점진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 고 있다. 북한도 1월 평양방송을 통하여 동진호 가족의 상봉을 거론하 면서 새로운 사고를 강조하는 등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차원에서 이 들의 문제를 다룰 의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무산된 제4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