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에 달한 대만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를 통해 정부주도 산업 화의 대표 모델인 한국은 국가가 개입했기 때문에 민간 및 정부 투자가 부족했고 경제성장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할 수 없는 사례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루어낼 수 있었다. 이하에서는 하나의 정책조합으로서 소비, 자본, 투자 정책이 어떻게 국가의 자원을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으며 안으로는 효율 적인 자원배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는지를 살펴본다.
1) 소비의 통제
1960년대 경공업의 수출산업화, 그리고 1970년대 수출중심의 중화학 공업 건설을 통해 압축, 비약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계획을 고안하면서 후진국이 겪는 고질적인 내자부족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산업고도화를 위한 생산시설 및 사회간접자본 확충, 기술 도입 등에는 어김없이 투자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 대에는 저축률이 국내총투자율을 밑돌았으며 중화학공업화가 본격화 되 고 심화되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는 국내총투자와 저축의 차이가 더 크게 벌어졌다.
물적 기반이 취약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산업화는 요소투입과 투자 팽창을 통한 경제발전 전략을 우선시하고 소비의 미덕을 희생시키는 형 태를 보였다. 투자->생산->소비->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기 위해서는 국가의 모든 자원은 제조업 확장을 위한 투자재원으로 집결 되어야 했다. 이종현(2012)은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의 동원과 통제 속에 서 소비의 측면이 억압되었고 1970년대 중화학 공업화 심화단계에서는 소비재 제조업은 수출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주장하며 1970년대를 ‘소비 억압의 시대’로 부른다.
[그림 3-3] 소득대별 중남미 국가들의 평균소비성향
자료: 이종현(2012)에서 인용.
평균소비성향은 1인당 국민총생산(GDP) 중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 중을 의미한다. [그림 3-3]은 1970년대 한국은 해당 기간을 기준으로 소 득 수준이 비슷했던 칠레, 멕시코, 우루과이, 콜롬비아 등의 남미 국가들 과 비교했을 때 민간의 전체적인 소비(평균소비성향)수준이 뚜렷이 낮았 음을 보여준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평균소비성향의 차이는 우루과이를 제하고 콜롬비아와 멕시코의 경우 점차 커지는데 동일 소득수준의 남미 국가보다 한국이 소비를 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4]은 시기별 한 국의 평균소비성향의 추이를 나타내는데 1960년 초반까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던 소비가 1979년에는 80% 수준에서 65% 미만으로 15%p 이상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3-4] 시기별 한국의 평균소비성향
자료: 이종현(2012)에서 인용.
정부는 당시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인 제조업 발전에 모든 자원을 쏟 아 붓고자 했다. 미국으로부터의 원조 규모 축소와 화폐 개혁 실패 등 자금동원에 어려움을 겪자 국민의 소비를 억압하고 저축을 늘리는 방안 이 제시된다. 1961년 5월 10일에 제정된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은 1982 년에 폐지되기까지 과자, 음료수, 사무용품, 축음기, 귀금속, 화장품, 금속 류 등 국민들의 소비생활 전반을 통제한 대표적인 금지법이다. 특정외래 품판매금지법 제 1조에는 국내 산업을 저해하거나 사치성이 있는 특정외 래품의 판매를 금지함으로써 국내산업의 보호와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 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사치성 소비를 막고 외화를 절약하려는 목표를 보여주고 있다.
가정의례의 의식절차를 간소화해 낭비적 소비를 줄이고 합리적 소비 를 진작하려는 목적에서 공포된 1963년 3월 ‘가정의례준칙’은 처벌수위를 점차 강화해 가며 개정되었고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돌리지 말 것과 술이 나 음식물을 대접하지 말아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음식점에서는 보리쌀을 10% 이상 섞은 밥을 제공해야 하며 반찬의 가지 수를 제한할
것을 명시한 ‘표준식단제’가 시행된 바 있다. 1961년 상품권법이 제정된 이래 상품권 활용을 통한 중산층의 사치성 소비가 증가하였고 1973년 10 월 제 4차 중동전쟁으로 인해 유가가 폭등하자 1975년에는 ‘백화점 상품 권 전면 금지제’ 등이 시행된다.
1976년 10월 4일 동아일보 석간 3면에는 조세제도와 관련한 고려대학 교 김완순 교수와 서강대학교 김종인 교수의 논평이 실렸다. 김완순 교 수는 1977년의 2조 6750억 원의 예산안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소득계층 별로 세율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김종인 교수는 국방비 조달과 사회개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조세수입이 늘어나는 것이 옳은 방향이 라고 설명한다. 이런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교수의 공통된 의견은 1976년까지 3차에 걸쳐 진행된 경제개발계획과 앞으로 있을 경제개발계 획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는 투자자원을 조달하는 것이 필요하며 소비 억제를 통한 저축률 증대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 설비투 자의 외화자금 차입 비율이 40%가 넘고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400%에 육박하는 상황 속에서 투자재원 조달은 국내소비 억제를 통해 가능하다 고 판단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1976년 종합소득세와 1977년 부가가치세 및 특별소비 세를 도입해 소득세 세수가 2천억 원에서 60% 이상 증가한 3천 3백억 원으로 늘어났으며 소비세도 7천 7백억에서 1조원으로 증가한다. 1971년 에 시작된 국민 개조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새마을운동의 구호는 ‘근 면, 자조, 협동’이다. 근검절약 정신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 도시, 학 교, 공장 등으로 퍼져 나갔고 새마을금고나 신용협동조합 설립이라는 결 실을 맺게 된다.
소비 통제의 또 다른 주요 수단은 수입을 제한하는 것이다. 수입제안 은 주로 관세를 높이는 방법이 있는데 1970년대에 들어 관세는 지속적으 로 인하하는 반면 수입승인제도, 수입예시제도 등을 통해 국내시장을 보
호했다. 이 당시에는 수입하고자 하는 물품에 대해 수입신고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수입할 수 있었지만 1976년에 들어서는 사전 승인을 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는 예외적인 품목을 정하는 방식(positive listing)에서 허가를 받아야만 수입할 수 있는 일부품목을 예시해두는 방식(negative listing)으로 점차 규제를 완화해 간다. 1967년 에 58.8%였던 수입승인 면제비율은 1979년에는 69.1%로 상승한다. 한편 수입자유화의 품목 수는 늘어났을지라도 오히려 해당 수입규모는 줄어드 는 점 역시 목격되는데 이를 통해 수입품목 자체를 제한하는 제도의 도 입은 외환부족문제를 타개하고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효율적인 조치 였다고 평가 가능하다.
2) 자본 통제
1950년대까지 필리핀은 우수한 노동력, 높은 교육 수준, 뛰어난 기업 운용능력, 풍부한 자원 등 한국과 비교할 때 경제 발전에 필요한 부존요 소들이 월등히 앞선 나라였다. 그러나 필리핀의 경제적 성과는 ‘부분요소 들의 단순 합(sum)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Hutchcroft(1998)는 필리핀의 경제발전이 뒤쳐진 이유를 낙후된 정치발전에 찾는다. 즉, 몇몇 소수의 과두적 기업집단(oligarchic entrepreneurs)의 약탈적인 행위를 정 치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것이다.
필리핀 은행 시스템의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은 첫째, 중앙은행이 거대기업들이 소유한 상업은행들에 대해 각종 특혜를 베풀었다는 점이 다. 요컨대, 은행의 설립, 정부예금, 긴급 구조(emergency bailouts), 대출 등의 자원을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평가한 신뢰할 만한 상업은행에 준 것이 아니라 가산제(patrimonial)적 국가시스템 속에 강력한 사회세력을 형성한 소수의 기업집단들에게 배분한 것이다. 둘째, 중앙은행의 규율 능
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의 규제나 규율을 어긴 하위 은 행들에게 통제를 가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이 부족했고 중앙은행의 권한을 뒷받침 할 국가의 통제능력 역시 부족했다. 오히려 중앙은행이 상업은행 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사법권력 역시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었는데 기업집단에 매수된 사법부는 은행들의 불법행위를 단죄할 수 없었다.
허치크로프트가 필리핀의 은행 시스템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는 중 앙은행의 규율 및 규제 능력이 결국 한 나라 경제정책의 수행능력을 보 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Hutchcroft 1998: 6). 한국과 필리핀이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은행에 대한 통제능력의 획득 여부에 달려있다. 발전국가론이 강조하는 국가의 규율능력(disciplinary capacity)은 필리핀과 한국의 사례를 비교해보았을 때 극명한 차이를 가 져오는 요소이다. 집권 직후 박정희는 국가 통치력에 강력한 반대세력으 로 규합할 수 있는 사회세력인 기업인들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하고자 부 정축재자처리와 은행국유화 조치를 취한다. 범법자에 대한 사법적 단죄 와 자금줄의 차단을 통해 기업집단이 일탈 할 수 있는 행동범위를 대단 히 좁힐 수 있었다.
안태환(2016)은 2015년 3분기 기준 베네수엘라의 외환보유고가 매우 낮으며 식품, 의약품 등의 기본 생필품 공급이 부족한 이유를 볼리바르 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된 공식 환율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의약품 수입에서 2013년과 2014년 의약품의 수입물량이 2003년에 비해 87%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약품 수입금액(FOB 기준)은 10배나 높아졌다.
즉, 2003년에 1kg에 2달러였던 것이 2014년에 86달러로 급등하면서 수입 대금의 명목으로 대규모의 외환이 유출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Denis(2015)의 “2014년 이후 독점적인 다국적 기업에 금융부문, 부패한 관료의 협력 하에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가로챘다”는 지적을 인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