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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민주화운동 주요 사건

전라북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주요 사건 및 내용은 한국민주주의연구소의 주관으 로 발간된 전북민주화운동사 를 바탕으로 정리함 『 』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남원 출신의 김주열 열사 , 3·15 부정선거 규탄 최초 시위 실시 유신 치하 첫 번째 성직자 구속 피해 계엄 이후 최초 희생자인 이세종 열사 , , 등 반독재민주화투쟁의 역사에서 전라북도는 핵심적인 지역이었음

1960 년대 이후 전개된 전라북도 민주화운동의 주요 사건을 살펴보면 민주화운동 의 상징적 인물과 사건에 전라북도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학생과 시민의 ,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대규모 시위가 활발히 전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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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전라북도 민주화운동의 주요 사건

4) 구체적인 전라북도 민주화운동사 연표 는 부록을 참조하면 됨( )

일시 주요내용 1960.03.15 마산시위 남원 출신 김주열 열사 행방불명( ) 1960.04.04 전국 대학교 최초 시위

시위는 개강일에 맞추어 계획 시도한 부정선거 규탄 시위임

'4·4 ' ·

1960.04.20

전주지역 최초의 대규모 시위

전북대 학생들과 각 고등학교 학생 시위에 합세한 시민까지 합쳐 , 6~7,000명 이 결집함

1960.05.05

전주시중등교원조합 결성

교원 정치적 중립 학원의 완전한 민주화 교육행정의 부패일소 교육악법 일, , , 소 등 결의함

1961.05.16 5·16 군사쿠데타 1963.03.22

민정당 전북도당 중심의 전주 완주지구투쟁위원회 결성 · 월 일 전매청 앞 시위를 결의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3 25 최초로 준비된 전

북지역의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시도는 미수로 그침 1963.12.17 제 대 대통령 박정희 취임5

1964.03.25

한일회담 반대투쟁 실시

전북대 법정대 학생 80여명이 대일굴욕외교를 반대한다 는 현수막을 들고 본" ."

교 현관에 집결하여 시위를 시작함 한일회담 반대시위는 . 27일까지 지속됨 1965.04.20 전북대 학생 중심의 한일협정 비준 반대시위 발발

1965.08.23 전북대 학생 1,000여명이 한일협정 비준 무효화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교 내에서 삭발과 단식투쟁을 전개함

1967.05.03 제 대 대통령 선거 실시6

1967.06.08 총선실시 공화당 ( 130 , 석 신민당 44 , 석 대중당 석 확보1 )

1967.06.11 군산시민 3,000여 명이 6·8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실시함 이후 월 . 6 13일에도 군산시민 5,000여 명이 6·8부정선거 규탄시위를 실시함

1972.10.22

유신계엄하의 최초이자 유일한 시위

전주고 년생이던 소병훈과 최규엽 등이 비상계엄 반대데모를 추진함3 . 유신 반대시위를 실시하려 했으나 시위준비물을 반입하다 발각되어 선언문은 낭독하 지 못함 이에 운동장에서 시위를 실시하려 했으나 교사들의 강력한 만류에 의. 해 시위가 실패함

1972.12.13

유신 치하 첫 번째 성직자 구속 피해자

포고령 위반혐의로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던 전주 남문교회 은 명기 목사를 연행 및 구속함

1975.10.21

전주에서 10여 명의 신 구교 성직자가 경찰에 한꺼번에 연행· .

일 밤 개최된 월요기도회에서 행해진 신앙 간증 대화 내용 당일 회람된 경

20 ,

과보고 유인물이 법규에 저촉 되는 바가 있다는 것이었음. 23일에는 전주 성 광교회 주일학교 교사 임영환이 추가로 연행됨

1976.03.04

년 전북지역의 학생운동은 고등학생의 유인물 배포 사건만이 기록상으로 1976

유일하게 확인됨

전주농고 고영조는 당시 대학생 김금룡과 이해학 전도사로부터 명동 <3·1민주 구국선언 을 받고> , 3월 일 임실오류교회에서 선언문을 찍음6 . 5,000장을 전 주 익산 군산 등의 교회와 성당에 배포, , , 6일부터 19일까지 익산 군산에 ,

[ 2-15] 전라북도 민주화운동 관련 주요 사건 및 내용

1978.08.16

기청 전주대회 사건 전국에서 전개된 대규모 학생시위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 의의. 1970년대 후반 전북 최대 가두시위 주일 가두 농성투쟁(1 )

전주 시내 한복판에서 시간 넘게 벌어진 가두시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1 이었으며 이날 시위로 총 , 98명이 연행되어 영장 없이 일 동안 경찰서 유치7 장에 구금됨 농성은 경찰의 봉쇄 속에서 월 . 8 22일까지 주일 동안 계속되었1 고 전국적인 관심과 함께 외신을 통해 전파됨 청년들의 농성이 계속되는 동, . 안 전주에서는 천주교 신부들이 서울에서는 , EYC 회원 80여 명이 고난에 동 참하는 단식기도회를 가지며 지원함. 21일 전국에서 모인 개신교 목회자들과 청년들까지 모두 1,000여 명이 구속자를 위한 기도회를 가짐

1979.12.05

전북 내 학원자율화 투쟁

전북대 학생 1,500여 명이 교내 집회를 열고, <민주학생선언 을 배포하며 시>

위를 벌임 주된 구호는 학생회 부활 구속학생 석방과 복교 어용교수 퇴진. , , , 학원 언론의 자유 보장 등임·

1980.03.28

전북대 학자추 발족

전북대를 시작으로 원광대 전주대 군산대 등 전북지역 내 모든 대학들이 학, , 자추를 결성하여 월과 월초까지 총학생회를 부활시키고 학원민주화투쟁을 4 5 ,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함

1980.05.02

대학 간 연합시위를 통한 전북 내 계엄철폐투쟁 전개

전북대 학생 6,000여 명이 처음으로 가두로 진출하여 전북도청 앞까지 시위를 벌임 당시 전북대 총 학생수가 만 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학생이 . 1 , 사위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음 이후 총 학생회 명은 부상학생을 위문하러 . 7 병원에 갔다가 광무 상무대 계엄사에 구속 수감되어· , 5·18 민중항쟁이 발생하 기 전에 체포된 최초의 대학생들로 기록됨. 5월 일 시위를 시작으로 전북대 2 학생들은 철야농성과 가두시위를 지속하였으며, 250여 명의 학생들이 학생회 관과 의대 합동강의실에서 철야농성에 들어감으로써 전북대 학생회관 농성은 이날부터 본격화됨

1980.05.15

전북지역 대학생 총결집투쟁과 시민 결합, 2만 여명 참여 대규모 시위

전북대 원광대 군산대 전주대 등 전북지역 각 대학의 학생들 총 , , , 5,600여 명이 총 집결하여 시위를 전개함 교수 . 20명이 함께 나와 시위대를 보호하였 고 시민들도 시위에 가세하면서 시위대는 만 여명이 되었으며 전주역 앞에2 , 서 대규모 시위를 벌임

1980.05.18

계엄 선포 이후 최초 희생자 이세종열사:

신군부 월 5 17일 24시를 기해 계엄포고령 10호 발표함

월 일 밤과 월 일 새벽에 전북대에서 공수부대원에 의해 체포된 학생

5 17 5 18

은 34명이었으며 전주대에선 , 10 , 명 군산대 명 전주공업전문대 명 등이 연5 , 1 행됨. 5월 17일을 전 후하여 전북지역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였고 전· 북대 이세종 열사가 사망함

1980.05.21 임균수열사 원광대 학년 광주에서 사망( 2 ) 임균수와 오세현이 피격 사망함·

1980.06.25

공수부대원 추정 의 박창신 신부와 신도 임을영 테러( )

테러는 박창신 주임 신부의 광주학상 진상 규명 활동에서 비롯됨. 6월 25일 밤에 공수부대원으로 보이는 괴한 명이 여산천주교회 익산 사제관에 침입해 4 ( ) 박창신 주임 신부와 신도 임을영에게 중상을 입히고 사라짐

1982.11.06

전북대 학생의 날 기념 시위 나무 위 시위:

시위 주동자인 전희남이 과도를 들고 경찰과 대치하는 사이 나무에 올라간 허 정이 구호를 외치며 시간 동안 학생들의 주목을 끌었음 이 시위모델은 2 .

년 월 시위에서도 재연됨 1983 4

1982.11.25

오송회 간첩단 사건

전라북도경찰국은 군산제일고 현직교사 명과 전직교사 명 등이 오송회라는 8 1 용공이적단체를 구성하였다며 모두 법정 구속함 이들은 , . 2002년 월 1 18일에 서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해 민주화운동 관련' ' 자로 인정받음

1983. 학원자율화조치 발표

1984. 02. 학원에 상주하던 사복경찰 병력 철수 1984.04.30 전북대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됨 1984.05.24

년 이후 년 만에 전북에서 처음으로 교문 밖 진출 가두시위

1980 4

여 명의 학생들이 마당극 장산곶매를 관람한 뒤 교내시위를 시작으로 교

400 ' ' ,

문 밖으로 진출함 팔달로에서 약 시간 . 1 30분가량 경찰병력과의 대치가 발생 함

1984.08.18

전국 최초로 지역 연합운동체인 전북민주화운동협의회 창립

전북민협 결성으로 개신교계 천주교계 노동운동계 농민회가 하나로 뭉쳤으, , , 며 전북지역의 민주화운동이 부문운동으로 확산됨,

1985.09.13

전북지역 개 대학 연합 민중민주화운동 탄압 성토대회3

전북대 민주광장에서 전북지역 개 대학 전북대 원광대 군산대 우석대 의 4 ( , , , ) 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민중민주화운동 탄압 성토대회가 개최됨

1,200 ' '

1986.05.31

민주헌법 쟁취 민중대회

년대 당시 전주에서 개최된 집회 중 가장 많은 인파 운집한 대회로 이날 1980

참석한 시민은 만 명 경찰추산 만 명 을 넘어섰으며 참석자 모두가 독재타5 ( 3 ) , "

도", "미제축출 등을 외치며 가두행진에 참석함 본 대회는 대중들이 개헌을 " .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걸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음

1987.06.10

박종철 열사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도민대회

박종철 열사의 고문살인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도민대회를 덕진성당에서 개최 하고자 하였으나 경찰이 덕진성당을 원천봉쇄함에 따라 종교계인사 , 300명은 전북일보사 앞에 집결하여 연좌농성을 벌이기 시작함 전북대 학생 . 300여 명 도 교내에서 6·10국민대회에 참여하기 위한 출정식을 마치고 학교 정문에서 공설운동장까지 진출하며 경찰과 투석전을 벌임. 6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 열은 백제로사거리에서 덕진성당에서 치르지 못한 도민대회를 개최함

1987.06.23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시위 중 최대 규모

월 일 선포한 민주화실천기간 이틀째 시민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코아백화 6 22

점 앞에 만여 명이 집결함 민주시민 시국토론회와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평1 . 화위원회 주최로 나라의 민주화운동 기도회가 개최됨' '

1987.12.10

노태우 후보의 유세가 저지되는 전국의 유일의 사례

전주역 광장에서 노태우 후보가 유세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각 대학의 유세저, 지 투쟁위원회 소속 학생들과 EYC 전주지구협의회 회원들이 곳곳에서 노태우 "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유세를 저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