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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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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제의식

2.2.1. 억압

억압(oppression) 개념은 시대적•정치적 상황에 따라 의미의 변화를 겪어 왔다. 영에 따르면,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억압 개념은 공적 영역에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정부의 부당한 권력 사용을 지칭하는 것으로, 주로 자유주의 국가의 “타자”(특히 공산권 국가)를 겨냥하여 사용되던 개념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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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172 그러나 신좌파 운동(New Left Movement) 이래 억압 개념의 활용폭 은 더 넓어지고 있다. 가령 앤 커드(Ann Cudd)의 설명처럼 이 개념은 단 지 정부의 권력에 의한 탄압만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 부와 권력의 격차에 의해 체계적으로 야기되는 억압까지 그 의미가 확장되어 사용된다.173 이처 럼 억압 개념의 의미가 넓어지면서, 철학적 정의이론에서 이 개념을 사용 하려고 할 경우 정확히 어떤 상태를 억압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 논의하 는 과제가 생겨난다.

영이 어떤 해악을 억압이라고 규정하는 근거는 역량 개념에 맞닿아 있다.

이 개념은 행위자들이 무엇을 추구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 답이다.174 다시 말해 영이 제시하는 역량 개념은 행위자들이 사회 구성원 으로서 자신의 목표를 수행하는 등 기본적인 일들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들에 관련된다.175 구조적 제약으로 말미암아 행위자들의 중요 역량이 자유

172 JPD, 40-41/106-107.

173 Cudd, (2006) Analyzing Oppression, 3.

174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서 영은 ‘능력(capacity)’이라는 용어를 ‘역량

(capability)’이라는 용어와 혼용한다. 『 차이의 정치와 정의 』 에서 영은

‘capacity’라는 용어만을 사용하며 ‘capability’라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다

가, 이후 『포용과 민주주의』에서는 두 용어를 거의 유사한 의미로 함께 쓰고 있다.

175 영은 이 지점에서 역량에 대한 자신의 논의가 센(Sen), 누스바움(Nussbaum) 등의 역량이론적 관점에 근접해 있음을 설명한다 (ID, 31/47). 역량이론은 “특 정한 인간 능력들이 계발되어야 한다는 도덕적 요청을 행사한다”는 직관을 이 론적 출발점으로 삼는다. 즉 사회 구성원들이 종교, 계급, 신분, 인종, 성별에 상관없이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 역량적 접근의 핵심 발상이며, 이 를 위해 행위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역량을 성취할 수 있게끔 제도적으로 보 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량과 정의 사이의 연관에 대해서는 Nussbaum, (2002) "Capabilities and Social Justice," International Studies Review, 4(2), 124; Sen, (1979) "Equality of What," The Tanner lecture on human values,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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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게 선택되고 성취되지 못할 경우, 그리하여 역량이 충분히 계발되지 못 하는 상황에 대해, 영은 ‘억압’이라는 규정을 사용한다.176 이 논의에서 영 은 역량이론적 접근 자체를 정당화하거나 자원 분배론적 관점 및 복지적 관점과 같은 윤리적 접근에 비해 갖는 장점이 무엇인지를 깊이 논증하려 시도하지는 않는다.177 그가 의도하는 바는 억압에 대한 본질적인 규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의 다양한 층위를 포착하는 데 있다. 영은 억 압의 다양한 층위를 “추상적이고 일반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에 대한 “단일한 기준의 집합을 규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 기 때문이다.178 사회 집단마다 경험하는 억압의 층위가 다양하게 나타나기 에, 이를 본질적으로 포착하는 기준을 세우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억 압의 근본적인 기제를 밝히려는 기존의 많은 시도들이 궁극적인 억압의 근 원을 밝혀내려는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논쟁으로 흘러간 점을 고려한다면, 영의 이러한 걱정이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구조적 부정의와 관련한 논의에서 그 토대로서 역량이론 자체를 정당화하려는 작업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나는 일차적으로 앞서

2.1.2.에서 규정된 사회 집단의 논의를 인용하여, 구조적 부정의를 집단적

176 JPD, 38/99; RJ, 52/109.

177 이러한 논의방식으로 인해, 영의 구조적 부정의 논의에서 역량이론과의 세부적 인 연관지점이 밝혀지지 않은 채 ‘역량’이라는 개념이 매우 느슨하게 사용된다 는 지적도 제기된다(Neuhäuser, (2014) "Structural Injustice and the Distribution of Forward‐Looking Responsibility," 238). 한편 역량이론의 정당 화 근거에 대해 집중하는 논의로는 Chen, (2017) "The Core of Oppression:

Why is it Wrong?", Social Theory and Practice, 43(2), 421-41. 자원적 접근 및 복지적 접근에 비해 역량이론이 갖는 장점을 주장하는 논의로는 Sen, (2009) The Idea of Justice, 12장; Nussbaum, (2002) "Capabilities and Social Justice,";

Berges, (2007) "Why the Capability Approach is Justified," Journal of Applied Philosophy, 24(1), 16-25 참고.

178 JPD, 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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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위에서 논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고, 뒤이어 부정의의 한 종류로서 억압이 영에게서 규정되는 방식을 살펴보려 한다.

구조적 설명을 활용한 사회 집단 개념이 억압에 대한 고찰에서 활용될 때 이는 일견 영이 전제하는 역량이론의 관점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역량은 “우선적으로 개인에게 속하며, 오직 파생적으로만 집단에게 속하”

기 때문이다.179 가령 외국어를 읽고 말하거나 논문을 쓰는 등의 특정한 기 능을 선택하고 달성할 역량은 개인 행위자에게 생겨나는 것이며, ‘대학원생 의 역량’ 또는 ‘한국인의 역량’과 같은 집단적 층위에서 추상적으로 발생하 지는 않는다. 역량이론의 일차적인 목표는 모든 개인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핵심 역량들을 계발할 수 있도록 충분히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량 개념을 사회 집단의 층위에서 밝히는 시도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역량의 계발 실패가 사회적 부정의로서 다루어져 야 하는지 여부는 개인에만 초점을 맞춰 설명되기 어렵다. 역량의 제약이 부정의로서 경험될 때 이는 단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집단의 구성원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구조적 제약은 모든 행위자들에게 동등하게 혹은 임의 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경력단절 문제로 고통받는 여성들이 겪는 제약은, 이들이 개별적으로 지닌 성격이나 재능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 니라 특정 사회의 여성으로서 겪는 제약이다. 영은 사회 집단마다 특징적 인 방식으로 구조적 제약을 경험하기에, 사회 부정의를 고찰하면서 집단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억압의 경험을 불분명하게 만든 다고 본다.180 왜냐하면 집단성이 설명에서 빠질 경우, 불이익을 받는 개인 들은 자신의 상태를 오직 자기 자신의 개별 능력 및 성과의 결과로 받아들 이게 되며, 그들이 받는 체계적인 억압의 배경을 시야에서 놓치게 되기 때 문이다.

179 Nussbaum, (2011) Creating Capabilities, 35.

180 Young, (1994) "Gender as Seriality,"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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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설명이 부정의를 충분히 드러내기 어렵다는 논의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행위자 A와 B가 서로 다른 경제적 상태에 놓 여 있어서, A는 굶주리고 있는 반면 B는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 불평등한 상황에서, 굶주리고 있는 A에게 B가 일정한 몫을 나눠줄 의무가 있을까? 이에 대해 해리 프랑크푸르트(Harry Frankfurt)의 대답처럼, 정의 로운 상황이란 그저 단순히 평등하게 나누어갖는 것 자체가 아니라 행위자 개개인이 누려야 할 최소 수준을 만족시키는 것, 이를테면 A가 굶주림을 피하는 정도의 평등이 중요하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181 만약 이러한 대답 이 충분하다면, 우리는 부정의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개인들의 역량 계발 만 비교하는 것이 요구될 뿐 그 너머의 집단적 분석은 불필요하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는 것을 기준으로 개인들이 비교된다면, 그 너머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설명될 수 없다. 가령 최소 평등 수준의 자원을 지닌 A와 그 10000배의 자원을 지닌 B 사이의 불평등은 정의로운 것일까?

이러한 개인 간 불평등의 사실 자체만 놓고 이것이 부정의한지 여부를 논 의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특정한 시점에서 개인간의 불평등이 곧바로 정 의의 관점에서 문제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182 나는 이를 보여주는 사례 로서 다음의 비교를 제시하려 한다.

사례 1) A는 일확천금을 누리고 비트코인과 같은 투기성 재화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다음날 그는 이 재화가 자신의 구매가보다 1/1000으로 폭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는 당장 다음달 주거하는 집의 월세도 내기 힘들만큼 심 각한 빈곤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투기성 재화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던 B는 이런 손해를 입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A와 B의 자산 차이는 수 천 배에 이르

181 Frankfurt, (1987) "Equality as a Moral Ideal," Ethics, 98(1), 21-43.

182 Young, (2001) "Equality of Whom? Social Groups and Judgments of Injustice,"

Journal of Political Philosophy, 9(1), 8.

99 게 되었다.

사례 2) A는 여성 노동자이다. A가 살며 근무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성별 간 임금격차가 가장 높은 나라여서, A는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남성 노동자 B에 비해 70% 남짓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A와 B는 모두 성실하게 직장에서 일했고 별다른 과소비 없이 자신의 임금을 저축했지만, 몇 년 후 A 는 B의 저축액이 자신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례 1에서 A는 자신의 투기 행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알 면서도 높은 수익률의 가능성을 보고 여기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그의 선 택 결과에서 빈곤이 초래되었다면, A의 빈곤은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 이 루어진 것이며 자신의 책임이다. 이 경우 A와 B 사이에서는 어떤 집단적 인 제약도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 사례 2에서는 A의 빈곤은 자신의 선택 보다 그가 놓인 환경의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우리는 단지

A와 B만의 관계만이 아니라, 노동자 사이에서 성별 간 경제적 격차를 살

펴보게 된다. 이는 빈곤이라는 문제상황에 놓이는 과정에 있어 그저 개인 의 선택만이 아니라 이들이 처한 사회적 제도, 규칙, 문화적 규범 등의 작 동방식을 함께 고려한다. 그리고 이들이 A와 B 사이의 (여성 노동자 집단 과 남성 노동자 집단 사이의) 격차를 형성하는데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문 제시한다. 따라서 사례 1에서 생겨난 A와 B 사이의 재화 불균형을 우리는 딱히 문제삼지 않을 것인 반면, 사례 2의 A와 B 사이 재화 불균형은 (사 례 1만큼 격차가 크지 않은데도) 부정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개인들 간의 역량 격차가 부정의의 문제인지 여부는 그 자체만으로는 판단될 수 없으며, 행위자들이 집단 속에서 처한 맥락을 살펴보아야 한다.

억압에 대한 논의는 특정 사회적 제약이 어떤 역량을, 그리고 어느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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