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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질문하기

3. 금기의 위반과 경계 흐리기

3.2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질문하기

김향숙은 80년대에는 주로 갓 성인이 된 대학생을 형상화하기에 기울 였다면 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십대’ 후반의 고등학생을 적극적으 로 다루었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이라는 주체에 대한 인식이 각성된 1990년대에서 선두에 섰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청소년소설’이 한국문학(장)에서 하위장르로 등장하였고 문학 계뿐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공유하면서 논란을 일으키며 많은 시선을 집중시켰다.160) 그리고 교육개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 아졌으며 ‘교육개혁을 반성한다’(『문학과 사회』, 1998년 겨울호), ‘교육개 혁은 이제부터다’(『창작과비평』,1998년 겨울호)161), ‘왜 지금 문학 교육인 가’(『문예중앙』, 1998년 겨울호) 등 문학계에서의 논의도 활발히 이루어 졌다. 이어 주요 출판사에서는 어린이/청소년 부문을 따로 설정하여 독 서 수요에 만족시키고자 호응하기에 나섰다. 1999년 어린이 도서 시리즈

‘문지아이들’의 발간과 2003년 ‘창비 어린이’ 계간지의 창간이 가장 대표 적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새롭게 ‘촛불 세대’가 등장하여 정치적 주체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욕망을 반영하였다. 기실 그 전부터 청소년 들의 정치 참여적 움직임은 연속적으로 표출되었으나 세간에서 사실과 다르게 왜곡되어 전파되거나 아예 묻혀져 버리기도 하였다.162) 청소년의

160) 1998년 YMCA 주최로 제1회 청소년영화제가 개최되었고 ‘십대 영화’가 많이 등장하였다. 1998년 제1회 청소년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영차여 중 방송반의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는 담배를 피고 욕설을 하는 등 여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 폭력을 꾸밈없이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로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1997년 십대 남녀들이 스스로 만든 <빨간 마후라> 역시 사회적 물의를 일 으켰다.

161) ‘국민의 정부의 대학입시제도와 고등교육개혁’을 주제로 잡고 교육문제의 핵심 을 대학입시와 고등교육으로 판단하였다. 오성숙은 학벌 중심으로 고착된 불평 등한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것을 근본적인 문제로 짚어냈고 이종각은 입시제도 의 다양화를 필요한 조치라고 밝혔다.

162) 십대의 정치참여에 주목한 논의에 따르면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 불 집회 당시 청소년이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섰다. 그 후 ‘촛불 소녀’는 촛불 집

인권을 존중해주고 주체성을 인정해주려는 노력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면 서 청소년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경청하고 비청소년 시각으로 이루어진 사회 제도들을 개선하여 사각지대를 없애기에 합의를 이루었 다. 다른 맥락이지만 첨예한 현안 중 하나인 ‘학교 폭력’163) 논란 또한 청소년 인권문제가 시급한 사회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2005년 5월 청 소년들은 광화문에서 시험부담과 학교폭력 등으로 자살한 학생들의 추모 제를 표방한 집회가 있었다. 참여한 학생들 대부분은 인터넷과 핸드폰 문자로 정보를 공유하여 자발적으로 모여든 것이었으며 이 사건은 언론 에서 ‘내신 등급제 반대집회’로 협소화되었다.164) 이는 입시교육문제와 학교폭력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청소년 문제이며 청소년들은 주 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발하고 있음을 보아낼 수 있다.

김향숙은 청소년 문제에 가장 먼저 민감한 촉수를 뻗었을 뿐 아니라 청 소년의 삶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한 새 지평을 열어주었다.

김향숙의 후반 작품에서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청소년 소설이 아닌 성장소설로 분류165)되기도 하였다. 이는 교육적 관점에서 성장소설을 청소년들을 위한 장르로 인식하며 나아가 청소년소설 일반을 성장소설로 취급하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청소년소설은 독자 적인 장르적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는데 2000년대 이후 비교적 체계화되 었다.166) 성장소설과 청소년소설은 십대의 주인공이 자아정체성을 형성

회를 상징하는 마스코트 중 하나로 되었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과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에도 청소년들의 참여율이 높았다. ‘촛불 소녀’ 이미지는 여성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보여주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른들의 보 호 본능을 자극하고 사기를 북돋는 ‘평등한 주체’가 아닌 보조적인 위치에 머무르 게 하는 문제점도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예란·김효실·정민우, 「광 장에 균열내기 – 촛불 십 대의 정치 참여에 대한 문화적 해석」, 『한국언롬정 보학보』, 2010년 겨울, 통권 52호. 2010.)

163) 단편소설 「미나」에서 상급생들에게 학교 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164) 박희정,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입시경쟁으로 내몰린 학생들을 위한 ‘촛 불추모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2005.5.10

165)「신진·중견작가 성장소설 중편 6편 묶어 ‘성장’ 출판」, ≪한겨레≫, 1991.4.16.;

「새로 나온 책: 해바라기 눈망울」, ≪한겨레≫, 1992.4.24.;

염무웅, 「자기인식의 치열성과 소설적 형상화」, 『한국문학』, 1994. 1·2 합본.

166) 최배은에 따르면 “청소년소설은 2000년대 이후 중등교육과정에서 독서교육의 비중이 커지고 청소년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요구가 높아지자, 출판사들은

하는 ‘성장’ 과정을 그려내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청소년소설은 ‘회고형식 이 아닌 현재 시점으로’ 서술되기에 더 넒은 스펙트럼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변별된다.167) 즉 성장소설은 성인이 되어 유년시절을 회고하는 주체라면 청소년소설은 경험하는 ‘과정 중의 주체’인 셈이다. 이러한 기 준에 따르면 김향숙의 작품은 ‘성장소설’이라고 보기 어렵고 더 정확히는

‘청소년소설’인 것이다.

김향숙의 작품 세계에서 후반에 집중되어 발표된 ‘청소년소설’에도 여 성 문제를 동시에 껴안고 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그동안 ‘자녀양육 을 어머니에게 분담하는 성별분업 가족관’168)이 지속해왔던 상황을 고려 해보면 청소년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여성 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대체로 주인공 청소년의 시선으로 포착되는 기성세대의 성별 고정관념에 대하여 거부감을 표출하는 방식을 취하며 특히 엄마가 딸에게 요구하는 모범적 ‘아내상’이 여성 문제로 이어지게 만드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요구 앞에서 청소녀들은 완전히 내면화하여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아이(「사랑의 프리즘」(1992)의 영주),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표면적으로 영합하는 아이(『스무』(1993)의 예령), 명확한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내 노래가 별이면」의 자은)로 나뉜다.

김향숙은 「내 노래가 별이면」(1992)에서 기성세대의 뿌리 깊은 성별

연속기획물 형태로 청소년소설을 출간하고 청소년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청소년 소설의 보급과 창작에 앞장섰다. 청소년의 성장을 제재로 한 1990년대 이후의 작 품을 중심으로 논했으며 면밀한 검토 없이 ‘청소년’, ‘청소년소설’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맥락만을 중시하여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박상률 의 『봄바람』을 청소년소설의 기원으로 여기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청소년 소설의 개념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청소년 독자에 적합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일치를 이룬 상황이다. 성장소설, 아동소설, 소년소설 등과 구별되는 독자 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최배은, 『한국 근대 청소년 소설의 정치적 무의 식』, 박문사, 2016. 15면~19면.)

167) ‘성장소설’과 ‘청소년소설’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오세란의 『한국 청소년소설 연구』, 청동거울, 2013, 93면. 참고.

168) 『또 하나의 문화』의 창간호에서는 자녀양육을 주된 주제로 다루었다. 조혜정 은 이 주제에 대하여 ‘다음 세대의 형성’이라는 장기적 측면과 지금 현재 자녀양 육을 담당하고 있는 ‘부부관계의 변화’라는 두 가지 문제를 포괄하면서 ‘더욱 인 간적인 사회로의 변화’를 지향하는 ‘또 하나의 문화’의 목적과 부합된다고 하였다.

동시에 직업을 가진 여성이 전통적인 생활규범에 문제를 느끼는 당면의 문제이 기도 하다고 말했다.

고정관념에 대한 투철한 저항의식을 지닌 청소녀 화자 자은이를 주인공 으로 내세워 ‘여성다운’ 기질을 딸에게 요구하는 어머니의 인식 변화를

‘여성해방’의 중요한 문제로 삼는다. 전편에 걸쳐 서술되는 심리묘사를 통하여 주인공 자은이가 ‘여성다움’에 대하여 얼마나 저항하는지를 파악 할 수 있다. 자은이의 어머니는 ‘르느와르의 그림에서 나오는 소녀’169)같 은 딸을 원했지만 자은이의 이미지는 그와 정반대라는 사실은 모녀갈등 을 유발한다. 자은이는 짐짓 착한 딸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내면에서는 여성 해방적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모습이며 광태의 성차별적 고정 관념을 비판하는 발언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170) 어머니에게도 조금씩 ‘세뇌’ 작전을 해보다가 새해 편지에 명확한 자신의 태도를 표현 하여 결국 ‘적어도 여자답다는 말을 꺼내지’ 않기로 협상에 달성한다. 이 와 더불어 한 달에 한 번씩 모녀간에 편지를 주고받기로 하는데, 이는 자은이의 딸에게까지 읽혀질 것이라는 연상171)을 통하여 ‘외할머니-어머 니-딸’이라는 모녀 서사를 만들어낸다.172)

「사랑의 프리즘」173)(1992)에서는 어머니가 딸의 인생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고 있으며 내면화를 통하여 복기하듯이 어머니의 뜻에 잘 따르는 아이는 결국은 무기력한 존재로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대 학교 2학년생 규현이가 약혼 과정을 통하여 사랑의 감정을 더듬는 일을 기본 축으로 이루어진 단편소설이다. 할머니가 주선한 약혼 후보자 영주 는 구비된 조건으로 훌륭한 예비신부의 자격에 손색이 없었지만, 규현에

169) ‘엄마가 바라는 내 모습이란 우아하고, 아름답고, 순종적이고, 공부도 잘하고, 꿈꾸는 듯한 눈을 가졌고, 피아노도 잘 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모든 일을 엄마 의 뜻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컨대 엄마를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아 어쩌면 그처럼 멋진 따님을 두셨는지요 하는 감탄을 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내 노래가 별이면」, 52면.) 170) 「내 노래가 별이면」, 18면, 47면.

171) “외할머니가 쓴 편지를 녹음 짙은 나무 그늘 아래서 읽고 있는 꼬마소녀”

172) 김향숙의 소설에서 어머니의 노트를 발견하고 그 내용을 차용하는 장면은 반복 적으로 나타난다. 『스무』에서 열 여덟살의 ‘나’(딸)가 열 여덟살 때의 어머니가 쓴 푸른 노트의 내용을 읽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일기 내용까지 길게 삽입되어 있다. (132-148면) 푸른 노트의 ‘쓰기’, ‘읽기’를 통하여 ‘외할머니-어머니-딸’의 모 녀 서사가 만들어진다. (194면) 『서서 잠드는 아이』에서 어머니의 숨겨진 노트 를 발견한다. (162면)

173) 김향숙, 『해바라기 눈망울』, 삼진기획,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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