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가는 대로』와 『자디그 혹은 운명』등에서 나타나듯이, 볼테르 는 신이 있음을 분명히 인정하지만, 신이 인간의 모든 일에 개입하고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는 ‘섭리주의’에 반대한다. 따라서 그는 신이 인간에게 벌어지는 악과 불행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거나 관여함으로써 그 문제 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이와 같이, 그가 품고 있는 신은 세 상의 일이나 인간사와 상관없이 인간과는 멀리 떨어진 신이므로, 그의 입장에 서는 신이 인간의 매사에 관여함으로써 모든 일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한다. 이 때문에, 그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처럼 작용하는 신의 섭리에 의해 세상의 일이나 인간사가 결 정되거나 이루어지지 않음을 강조한다. 즉, 우연이란 있을 수 없고, 세상의 모 든 일은 신이 정한 질서에 따라 움직이고 진행되지만, 신은 세상의 일이나 인 간사에 개입하여 영향을 미치지도 않고 그 흐름을 변경시키지도 않는다. 물론, 세상에서 모든 일은 이미 정해진 질서에 따라 빈틈없이 진행되지만, 신이 모든 세상사를 주관하고 방향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인간에게 신의 존재는 불행을 없애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부적 같은 존재일 수도 있지만, 볼테르는 이런 나약한 인간 심성에 부합하는 신의 존재를 단호히 거부한다.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시련이거나 징벌 이거나 보상이거나 예견이다.”167)라는 말처럼, 그에게 신의 역할은 세상과 우 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적 존재로서 남아 있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신은 ‘영원한 기하학자’처럼 조금의 빈틈이 나 허점 없이 우주를 설계하고 창조하여 자신의 영원한 의지를 실행하려고 우주의 운행을 멈추지 않는 존재이다. 이와 같이, 볼테르는 우주를 창조하 고 우주의 질서를 유지할 따름인 우주의 창조자이자 운행자로서 절대적이고
167) Zadig ou la destinée in Romans et Contes, tomeⅠ, Gallimard, 1979, p. 114, “il n'y a point de hasard : tout est épreuve, ou punition, ou récompense, ou prévoyance.”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우주가 존재하는 이상 우주의 창조주가 존 재해야 하므로, 조물주인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믿는 게 옳고,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도덕의 토대가 필요한데, 신은 토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볼테르가 우주의 창조자와 근원으로서의 신이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주가 존재하는 이상 우주의 창조주가 존재해야 한다는 그의 확신에서 비롯 된다. 다시 말해, 우주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조물주인 신이 존재해야만 한 다고 믿는 게 옳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볼테르가 우주의 창조자와 근원으로서, ‘영원한 기하학자’로서,
‘절대자’로서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가 품고 있는 신은 기독교 의 신과 큰 차이를 드러내는데, 그가 품고 있는 ‘절대자’로서의 신은 예수와 같이 한 인간 속에 구현된 신성한 존재일 리 없다. 이 때문에, 그는 ‘절대자’로 서의 신을, ‘강생降生’에 의해 인간의 역경을 경험하며 시간과 공간 속에 제한 되어 있는 존재로서 한정하는 견해에 끊임없이 맞선다. 이와 같이, 볼테르에 게 신은 시간과 공간 속에 제한되지 않은 초월적인 존재이면서도, 인간으 로부터 멀리 떨어져 초연한 상태에 있는 존재이다. 신에 대한 볼테르의 이 런 입장에서 출발하여, 볼테르가 추구하는 ‘절대자’로서의 신을 파악하는 데 중 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신의 존재와 특성에 대해, 신의 존재와 본성, 우주 의 창조자와 근원으로서의 신의 존재 및 ‘영원한 기하학자’로서의 신의 존재, 세상에서의 악惡의 문제 등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절대자’로서 의 신의 개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볼테르는 인간의 선행과 미덕을 보상하고 인간의 죄와 악을 징벌하는 신 의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이러한 신에 기반을 둔 종교를 인간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사회의 신성한 연결고리인 신에 대한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야 말로, 사회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하면서, 신비와 맹신을 벗어나서 유익을 주는 자신의 이신론적 종교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그 런데, 그에게 있어 신은 우주적이지만 인간 존재와 신 사이에 매개가 없으며, 신은 인간사는 물론 인간의 예배와 종교의식에 참견하지 않는 가치중립적이며 무심한 존재이므로, 그의 이신론적 태도는 멀리 떨어진 신이라는 개념을 통해 드러난다. 결국, 볼테르가 지향하는 종교는 인간 본연의 지혜나 자연적 이성
이나 통찰에 바탕을 둔 ‘자연 종교’의 일종으로서, 기성 종교의 구속된 신앙 을 배제하고 ‘순수 종교’를 찾으려는 데서 일어난 합리주의적 성격을 띤 종 교이다. 특히, 그에게 ‘자연 종교’의 본질을 형성하는 것은 ‘자연법’이며, 그 가 지향하는 ‘자연 종교’에 영향을 주고 그 배경이 된 것은, 영국에서 시작 하여 프랑스로 이입된 18세기 초의 프랑스 이신론이다.
볼테르의 이러한 이신론적 종교관은 ‘비열한 것’에 대한 투쟁을 통해 확 고하게 형성되지만, 그보다 먼저 성장기에서부터 자기 가족의 얀센주의에 맞서 형성된다. 특히, 이슬람에 심취해 있던 그에게 이슬람은 코란을 매개 로 하여 그의 이신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독단적 인 종교로 간주하는 기독교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자신의 이신론적 사상을 열정적으로 드러내며 이신론의 기초를 다지고 이신론을 정당화한다. 볼 테르의 이신론은 자신이 내세우는 ‘절대자’로서의 신에 대한 숭배가 그 중 심이 되는 ‘자연 종교’의 일종으로서 ‘절대자의 종교’의 원리와 토대를 형 성하는데, 볼테르의 이러한 이신론에 대해, 신의 섭리의 질서, 이신론의 형성 배경, 이신론의 특징과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 볼 것이다.
Ⅱ.1. 신의 존재와 본성
Ⅱ.1.1.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신
볼테르는 신이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뿐 아니라, 도덕의 토대 로서, ‘자연법의 입법자’로서, 우주의 창조자와 운행자로서 신의 존재를 분 명히 인정하고 확신한다. 이런 확신으로부터, 그는 우주를 주재하는 존재에 대한 개념에 도달하는 두 가지 논증방식을 제시한다. 그가 가장 자연스럽고 완 벽한 방식으로 여기는 첫째 논증방식은 우주 속에 있는 질서를 고려할 뿐 아 니라 각 사물이 관계된 듯이 보이는 궁극목적을 고려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늘이 시간을 표시하는 손목시계를 볼 때, 바늘이 시간을 표시하도록 현명한 존재가 이 기계의 태엽들을 배열했다고 결론짓는다. 또한 인간 육체의 본능적 인 힘을 볼 때, 자궁 속에서 아홉 달 동안 받아들여지고 영양섭취가 되도록 현 명한 존재가 이 신체기관을 배열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단지 이 논증만으 로는, 현명하고 우월한 존재가 능숙하게 물질을 준비하고 만들 가능성이 있다 는 것 외에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가 무無를 가 지고 물질을 만들었다고 결론지을 수도 없으며, 그 존재가 모든 면에서 무한하 다고 결론지을 수도 없다. 둘째 논증방식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즉, 내가 존재 하므로 어떤 것이 존재한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따라서 어떤 것은 영원히 존재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거나 혹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 이거나 혹은 다른 존재로부터 자체의 존재를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 이 스스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존재하고 언제나 반드시 존재했는데, 그 것은 신이다. 그것이 자체의 존재를 다른 존재로부터 받아들였고 두 번째 존재 는 자체의 존재를 세 번째 존재로부터 받아들었다면, 세 번째 존재가 자체의 존재를 받아들였던 존재는 반드시 신이어야 한다. 따라서 볼테르는 영원히 스 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단정한다.168)
프티Roger Petit에 따르면, 볼테르는 인간 존재가 당연히 누릴 쾌락을 금지하는 끔찍한 신과 잔인한 사제들을 끊임없이 규탄하고, 교회나 종교의
168) Traité de métaphysique in Mélanges,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Gallimard, 1961, pp. 162-163.
식을 비판하면서도, 신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는 독단적이고 변 함없는 교리나 진리만을 확립할 따름인 교회 제도나 종교의식을 따르지 않 고도, 이성을 통해 신을 인식할 수 있으며 미덕을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 한다. 즉, 그는 신의 필요성을 일관되게 역설하면서도, 신의 존재가 백성들 이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보장책이자 일종의 장 벽임을 내세움으로써, 그는 체제를 옹호하는 자로 비난을 사기도 한다. 하 지만, 그에게 있어 이러한 신은 개인적인 도덕이나 혹은 사회적인 도덕의 토대가 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169)
그렇지만, 자신이 타도하려고 마음먹은 적으로서 전통적인 가톨릭교에 대항할 뿐 아니라, 우연을 통해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물질주 의적 무신론 및 자연에 무한한 힘을 부여하는 신新범신론주의자에 맞서던 볼테르가 품고 있는 신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스탕제르 Gerhardt Stenger는 『철학 사전』의 내용을 예로 들며, 볼테르가 실제로 신의 존재를 믿었다고 너무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볼테르에게 있어 신의 존재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하고 진 실 같은 가설이나 가정이라고 주장한다.
볼테르의 신이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매우 그럴싸한 가설이다. 그런 곡절로
『철학 사전』의 이 문장을 이해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하고 영원하며 현명한 지고의 존재가 있다는 것은 나에게 분명하다. 그것은 신앙에 속하는 것이 아니 라 이성에 속한다.” 실제로, 소위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들’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전제에 근거를 둔다. 첫 번째 전제는 현명하고 자유로운 어떤 존재에 의해 구상되고 만들어진 기계와 우주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나중에 볼테르는 ‘영원한 질서’를 언급하게 되고, ‘자연 전체를 이끌며 모든 것을 산출하는 보편적인 수학 적 존재’를 언급하게 된다. 두 번째 전제에 따르면, 이 기계의 요소들은 정확한 목표를 따른다. 즉, “언제나 같은 결과를 가지고 단지 이 결과만을 가진 어떤 사 물을 볼 때, 거리낌 없이 궁극원인을 부정할 수 없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170) 169) Roger Petit, Œuvres philosophiques, Librairie Larousse, 1972, p. 14.
170) Gerhardt Stenger, “Le Dieu de Voltaire”, Oxford, Voltaire Foundation, 2011, tome 72, p. 25. “Le Dieu de Voltaire n'est pas un objet de foi mais une conjecture hautement vraisemblable. C'est ainsi qu'il faut comprendre cette phrase du Dictionnaire philosophique : ‘il m'est évident qu'il y a un Etre nécessaire, éter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