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장에서는 권미원의 ‘잘못된 장소’ 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도린 매시의 ‘관계적 장소론’으로 보완함으로써 동시대 장소 특정적 미술 의 한 가지 이론적 기반으로 ‘관계적 장소 특정성’ 개념의 성립 가능성을 제안할 것이다. 1절에서는 권미원의 ‘잘못된 장소’ 개념을 중심으로 ‘일시 적 귀속’과 ‘관계적 특정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권미원의 논의만으로는 동시대 장소 특정적 미술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코자 했던 권미원의 목표가 성취될 수 없음을 주장할 것이다. 무엇보다, ‘잘못된 장 소’ 개념만으로는 ‘관계적 특정성’을 지향하는 이론적 구도가 성립하지 않는다. ‘잘못된 장소’ 개념이 대변하는 ‘일시적 귀속’ 개념이 장소의 ‘특 정성’의 측면을 규명하는 이론적 연결고리를 누락하기 때문이다. 다음으 로, ‘관계적 특정성’ 개념은 그에 대한 언급 자체가 적어 실체를 파악하 기 어려울 뿐 아니라, 특정성의 측면을 규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동성 과 특정성을 ‘지속적인’ 관계로 이해하자고 주장함으로써 추상적인 선언 에 그치고 있다. 또한, ‘관계적 특정성’ 개념을 보충하고자 도입한 논의들 역시 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온 폐쇄적인 방식과 달리 유동성이 유지되는 가운데 장소의 특정성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규명하는 것에 있다. 이에 2절에서는 매시의 ‘관계적 장소론’을 살펴봄으로써 장소의 특정성을 규명하는 방법 이 이론적으로 보안될 수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3절에서는 매시의 논의를 경유하여 보완된 권미원의 개념들이 동시대 장 소 특정적 미술의 이론적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궁 극적으로 본고는 그 한 가지 제안으로 권미원의 ‘관계적 특정성’ 개념을 매시의 논의로 보완한 ‘관계적 장소 특정성’을 동시대 장소 특정적 미술 의 지향점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본고는 본고가 제안한 ‘관계 적 장소 특정성’ 개념을 동시대 미술 실천에 적용한 비평 모델을 제시함 으로써 본고의 논의를 구체화해볼 것이다.
1. 권미원의 ‘잘못된 장소’ 개념의 한계: 장소의 ‘특정 성’ 규명의 문제
앞서 살펴본 바, 권미원에 따르면 동시대 장소 특정적 미술의 과제는 장소의 유동성과 특정성 사이에서 ‘관계적 특정성’을 구분하고 지향하는 것이었다.(OPAA, 166) 또한 권미원은 이 유동성과 특정성의 사이를 사 유케 하는 개념으로 ‘일시적 귀속’을 예시하는 ‘잘못된 장소’를 제시했다.
이 절에서 본고는 ‘잘못된 장소’의 논의만으로는 장소를 탐구하는 동시대 미술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했던 권미원의 목표가 성취될 수 없음 을 주장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본고는 ‘잘못된 장소’ 개념을 중심으로 ‘일 시적 귀속’과 ‘관계적 특정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권미원이 제시한 논의의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본고는 권미원이 전개하 는 논의와 참고하는 논의들을 함께 고찰하면서 권미원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 볼 것이다.
권미원이 ‘잘못된 장소’와 ‘관계적 특정성’에 대한 논의를 제안한 의도 는 무엇보다 동시대 미술에서 장소 특정성이나 지역 정체성을 탐구하는 실천들에 가해지는 회의적인 시선과 비판으로부터 이들을 이론적으로 구 명하는 데 있었다. 이는 권미원이 『한 장소 다음 또 한 장소』(2002)의 결론에서, 정착주의의 배타성과 폐쇄성에서 벗어나는 유동성 속에서 장 소만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특정성’과 ‘장소의 불균등한 조건’에 주목 하는 ‘관계적 특정성’을 구분해내는 것이 여전히 중요함을 역설한 데에서 도 잘 드러난다.(OPAA, 166) 한편으로, 본고는 이러한 권미원의 의도를 지지하며 그 이론적 구명의 필요성을 수용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본고는 ‘잘못된 장소’ 개념은 그 도입 의도의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그것 이 지향하고자 했던 ‘관계적 특정성’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 하는 수단으 로 충분히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권미원이 제시 하는 ‘잘못된 장소’의 논의만으로는 유동성과 특정성을 지속적인 관계로 유지하는 ‘관계적 특정성’이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규명 할 수가 없다.
첫 번째로, 문제는 ‘잘못된 장소’ 개념이 대변하는 ‘일시적 귀속’에서 발견된다.90) ‘일시적 귀속’은 ‘관계적 특정성’을 사유하기 위한 가교가 되 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권미원이 제시하는 ‘일시적 귀속’의 논의에서 장
90) 본고는 앞의 각주에서 설명한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 개념과 권미원의 ‘잘못 된 장소’ 개념이 갖는 유사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권미원이 ‘잘못된 장소’ 개 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오제의 논의를 직접 인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장소’ 개념이 등장하는 One Place after another의 결론 「6. 결론 을 대신하여: 한 장소 다음에 또 한 장소(By way of a conclusion: One place after another)」(2002) 의 다른 부분에서 권미원이 오제의 글을 언급 하고 있다는 점(OPAA, pp. 158-159), 그리고 오제의 비장소 논의가 발표된 시기(1995)와 그의 논의가 갖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권미원이 ‘잘못된 장 소’ 개념을 이론화 하는 과정에서 비장소 개념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비장소의 특징으로 제시되는 ‘일시적 계약’은 ‘잘못된 장소’의
‘일시적 귀속’과 유사해 보인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오제가 말하는 비장소 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비장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적 장소에서는 인간의 실천적 행위와 경험에 의한 매개가 중심이 되는 반면, 비장소에서는 언어, 텍스트, 이미지에 의한 매개가 중심이 된다. 가령, 해당 지역의 경관과 사람들을 마주함으로써 특정한 장소감으로 경험하게 되는 국도와 달리, 고속도로에서는 오로지 교통 표지판의 텍스트와 추상적인 그 림 기호를 통해 해당 장소를 경험하게 된다. 이에 따라 비장소의 이용자들 은 해당 장소와 일정한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그곳을 일시적으 로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인식하게 된다. 둘째, 비장소는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정체성을 부여하며 그들과 일시적인 계약 관계를 맺 는다. 비장소는 이용자들에게 ‘승객’, ‘고객’, ‘운전자’와 같이 다수에 의해 공 유되며 익명성을 갖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용자들은 비장소에 존재하는 특유의 규칙을 준수하여 비장소와 일시적인 계약을 맺음으로써 이러한 익 명성을 획득한다. 가령, 공항 이용자는 신분증을 제시하는 행위를 통해 해 당 비장소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계약인 ‘신원 확인’을 이행함으로써 승객으 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셋째, 비장소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의미인 ‘현 실성’(actuality)의 지배를 받는다. 이는 끊임없이 그날 예정된 항공편의 출 발과 도착 시간을 알리는 공항 전광판의 이미지로 대변된다. 비장소에서는 무엇보다 시간 단위가 중심이 되며 마치 과거와 미래는 없는 것처럼 날씨, 기온, 교통상황 등 모든 정보의 교환이 현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러 한 현실성은 장소 이용자들 사이에서 보편성을 갖는 하나의 세계관과 인식 체계를 만들어 낸다. 또한 특정한 장소성과 분리된 비장소의 이용자들은 역 설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기존 정체성의 탈피로 인한 익명성의 즐거 움을 느끼게 된다. Marc Augé (1995), pp. 77-107. 오제의 비장소와 일시적 계약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는 것은 권미원의 ‘잘못된 장소’ 논의에서 유동 성의 측면의 의의와 효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 역시 장소 의 특정성의 측면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소의 유동성의 측면에 대한 분석과 정당화는 이루어지지만, 특정성의 측 면에 대해서는 그것이 전혀 논의되지 않는다. 이는 ‘잘못된 장소’에서의
‘일시적 귀속’의 사례로 제시되는 <발파라이소>에 대한 권미원의 해설에 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매저스키가 일시적으로 귀속된 곳은 항공 운항 시스템이라는 이동의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일시적 귀속’은 매저스키로 하여금 계속해서 떠돌아다니고 길을 잃게 만들었으며, 결국 칠레의 발파 라이소라는 ‘잘못된 장소’에 이르게 했다. 권미원에 따르면,
“매저스키가 칠레에 다다른 것은 그가 방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귀속의 논리(logic of belonging)를 받아들였 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특정한 위치에 묶여 있는 귀속감이 아니라 이동 의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는 귀속감이다. 매저스키는 사람들이 상업적인 항공 운송 시스템의 규정된 운항 궤도를 따라 하늘을 통해 이동하는 방 식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는 그 방식의 위협적인 논리를 신뢰하고, 그 절 차에 대해 믿음을 가지며, 그것의 시간표를 존중한다. 그는 그 시스템에 거의 신비로운 권력을 부여한다. 그가 잘못된 도시에 다다르긴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는 계속해서 올바른 장소에 있었다. 그렇게 그가 산티 아고에 도달하여 그의 실수를 완전히 깨달았을 때, 그가 원래의 위치에 서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지는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 그는 되돌 아가는 대신, 칠레의 발파라이소를 향해 끝까지 치달아보는 것으로 그의 실수를 완성(complete)시켜야 한다고 확신한다. “아름다움과 균형을 위 한. 형식적 결심” (정말로, 마이클 매저스키가 미술가이고 그의 여행이 미술 프로젝트였었다면, 나는 그것이 장소 특정성에 대한 뛰어난 비평이 라고 생각하며 감명 받았을 것이다.)”(OPAA, 163)
앞서 살펴보았듯, ‘일시적 귀속’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비록 일시적일지 라도 귀속의 모델이며 장소의 유동성과 특정성을 지속적인 관계로 인식 하게 하면서 장소가 갖는 특정성의 측면을 도외시하지 않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그러나 권미원이 제시한 사례에서 ‘일시적 귀속’의 효과와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