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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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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지금까지 1940년대 전반기 소설을 문학제도(문학장), 에크리튀르(문 학형식), 윤리성(문학내용)의 층위로 분석하여 신체제 성립 이후 조선 문단내 소설의 존재양상을 총체적으로 조망해 보았다. 1920년대 초에 형성된 ‘조선 문 단’이라는 문학장은 내부의 다양한 문학적 집단과 성향의 헤게모니 투쟁 아래

‘조선어 글쓰기’라는 상징자본을 축적하며 ‘순종조선어 에크리튀르’를 형성, 유 지해 왔다. 그러나 일제말기『人文評論』,『文章』과 같은 자신의 아비투스 (habitus)를 드러내는 문예 전문지가 사라진 후 자율적 문학장은 붕괴되어 갔 다.

2장에서는 먼저 자율적 문학장의 붕괴 과정 속에서 조선 문단의 작가가 처 한 상황과 ‘작가-됨’의 문제, 그리고 동아시아(대만, 만주)에서 급부상한 일본어 의 언어적 헤게모니 양상을 고찰해 보았다. 1940년대 전반기 문학장은 조선 문 단의 ‘작가-됨’의 근본문제를 제기한다. 조선 문단의 작가가 일본어로 창작한다 는 것은 단순히 언어적 장벽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문학적 인정의 구조, 동료작 가, 일반 ‘독자’에 이르는 총체적인 차원에서 ‘작가-됨’의 변경을 요구한다. 신 체제 성립 후의 문단이란 단순히 조선 문단이 일본문단의 지방문단이 된다는 문제가 아니라 조선 작가의 기대지평에 육박하는 독자의 축소와 상실을 의미하 기에 신체제로 인한 문단의 환경 변화는 작가의 창작에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 한다. 이태준의 「장마」, 최태응의 「작가」, 유진오의 「신경」등에 잘 드러 나듯 작가의 무의식 속에 기입된 독자란 작가와 공통된 문화감각과 전통, 일상 속에 놓여 있을 거라 예상되는 잠재태로서의 독자이다.

조선 문단의 위기의식은 조선, 동아일보의 폐간으로 이미 본격화되었다. 많 은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신문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많은 작가들은 생계를 위협받게 되었다. ‘신문사의 경영악화’,

‘신문사 폐지’,‘주인공의 실직’, ‘생계의 위협’ 등을 소재로 한 박영희의「明暗」

과 한설야의「世路」와 같은 작품들이 이 시기 집중적으로 발표된다. 두 번째 조선 문단의 커다란 변화는 문단이 서서히 위축되는 1939년의 시점에서 조선작 가가 일본 문단 진입이라는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장혁주의「餓 鬼道」를 통해 조선작가의 일본 문단 활동 가능성은 타진되었으나, 실질적인 의

미에서 일본어창작의 본격화는 김사량의「光の中に」이후에야 이루어진다. 1939 년부터의 '조선문학 붐'은 일본 문단의 발빠른 정치적 횡보를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출판신체제의 성립에 힘입은 바가 크다. 내지에서 시행된 출판신체제는 사 상통제를 위한 일련의 국가적 조치였으나 이를 통해 내지출판과 조선의 출판이 통합되는 형식이 취해져서 조선 문단의 내지문단 진출이 용이해진 환상을 안겨 주었다.

조선 문단을 둘러싼 환경변화의 마지막 문제로 일본어의 동아시아(대만, 만 주)적 위상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일본은 대체적으로 조선, 대만에서는 제국주 의(동화정책)으로, 그 외의 지역에서는 제국(협동정책)으로 언어정책을 시행했지 만 조선과 대만의 경우 황민화 문학의 경로가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룽 잉쭝(龍瑛宗)과 김사량의 경우처럼 문학적 교류를 보여주기도 해서 제국주의 하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공통된 감성을 이해하는 데 참조점이 된다. 신체제성립 이 후에야 조선과 대만은 언어의 일체화를 통한 동화정책 노선을 밀고 나가고, 이 를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어창작이 절실히 요구되었으나, 당시 문인들이 학 교교육 혹은 일본 유학을 통한 일어습득, 혹은 일본문학을 통해 근대문학을 체 험하지 않았다면 쉽사리 이루어 질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러므로 대만 문인들 의 일어창작이나 조선에서『國民文學』의 성립과 본격적인 일어창작은 식민지 기간 심화된 ‘권력어’, ‘문화어’로서의 일본어의 공고화에 의한 결과이지 일시적 정책에 의해 가능할 수 있는 ‘문학적 실천’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 다. 그러나 만주의 경우는 ‘만주가나’라는 일종 새로운 표기법으로 중국어의 문 자인 한자의 어음을 적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점차적으로 한자 자체 를 대체할 새로운 문자로 고착시키고자 했으나 공식적인 문서에서나 통용되는 언어체계였고, 일반인의 언어생활이나 문학에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3장에서는 문학어의 문제를 상세하게 고찰해 보았다. 조선어/일본어의 이중 어 창작이 의미하는 실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텍스트 분석을 통해 살펴 보았다. 신체제성립에 이르기까지 조선 문단에서 순종조선어 글쓰기라는 것이 민족, 민족어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강력한 지지대를 갖고 있었고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둔 문학장은 조선의 대표적인 상징자본으로 기능하고 있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언어문제를 살펴보자면 일본어 는 식민지 조선에서 특권어의 위치를 점하면서 권력어로 기능하였고, 조선어는 주변어 내지는 소수어로 하층 언어의 위치에 있었다. 다시 말해 제국의 언어는

권력어, 사상어, 문화어로서의 언어적 헤게모니를 이미 획득하고 있었기에 조선 의 언어현실이란 명백히 위계화된 이중 언어의 공간이었다. 1940년대 전반기 문학장은 조선어창작/일본어 창작의 양 갈래의 선택만이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어창작에 있어서도 이미 현실에 기입된 일본어를 어떠한 소설어의 에크리 튀르로 재현해 낼 것인가가 조선인 작가가 창작의 국면에서 맞닥뜨리는 커다란 문제였다. 이는 일본어 발화의 ‘리얼리티’의 획득이라는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 고, 순종조선어 글쓰기라는 자의식을 내던졌을 때 현실적으로 가능한 소설의 모 습이기도 하다. 실제로 『文章』지와 같이 조선어에 대한 자의식이 강한 문예지 의 작품들에도 일본어의 개입은 음역, 문자의 차원에서 빈번히 이루어졌고, 신 체제 성립 이후 작품들에서는 보다 전면화된 양상을 띠었다.

조선인 작가가 쓴 일본어 소설어의 에크리튀르는 반대로 조선/조선어를 일 본어로 제현해야 한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조선 문단의 일본어 소설은 대 부분 조선사람, 조선의 생황을 재현해 내는 서사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혁 주 이후 조선작가들의 일본어 작품들에는 1910-20년대의 일본어 소설과 다른 양상으로 조선어휘의 빈번한 노출과 대화에서 조선어를 가타가나로 음역하는 방식이 보편화된다. 조선작가들은 일본어로 창작을 하면서도 조선 혹은 조선어 의 번역의 문제에 고민해야 했고, 間주체적 존재로서 작가와 독자의 관계 설정 에 있어서도 혼란을 겪어야 했다. 또한 일본어 창작은 일본어가 능숙하다고 해 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조선적인 것, 조선인들의 삶, 조선의 언어 를 일본어로 재현해야 한다는 데서 문화번역이라는 언어적 이행문제가 존재해 있다. 예컨대 작가가 '아이고'라는 조선어를 일본어로 표현하고자 할 때 이에 상 응하는 일본어의 의성어를 찾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アイゴ'와 같은 형태로 조 선어를 노출해야 할지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작가가 일본어 의성어가 아 닌 'アイゴ'를 선택했을 때, 그 단어가 유발하는 문학 내적인 의미들이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본 장에서는 장혁주를 출발로 한 이러한 문화번역으로서의 일본어 소설에 나타난 조선어의 개입의 구체적인 양상들을 텍스트 분석을 통해 고찰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1940년대 전반기 소설의 윤리성에 대해 문학가치론 적인 평가를 시도해 보았다. 1940년대 전반기 문학장은 친일논리에 함몰되어 오히려 문학윤리적인 가치가 자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탐색할 가치가 없는 공간 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본고는 이러한 자명한 도덕의 문제가 아

니라 주체의 자율적인 윤리의 문제로 이 시기 작품들의 가치들을 탐색해 보고 자 한다. 물론 이때의 윤리성이란 대일협력의 유무라는 단일한 윤리적 잣대가 아니다. 작품에 내재된 긴장으로서의 윤리성, 데리다가 말한 '어떠한 법칙도 없 는 곳에서만 존재하는 윤리학'으로서의 윤리성이다. 이 시기 문학은 진정한 의 미의 문학적 윤리성의 탐구가 봉쇄되었기에 작가의 윤리적 모색과 그 긴장감이 어느 시기보다 텍스트의 저층에 강렬하게 응축되어 있었다.

본고는 4장에서 먼저 이데올로기가 직접적으로 개입된 일제말기 중, 장편 들을 고찰해 보았다. 문학과 이데올로기의 만남에서 훼손되는 것은 문학이 아니 라 이데올로기다. 문학의 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데올로기는, 자기 완결성을 위해 억압해야 했던 힘들이 봉합선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것을 목격해야 한다 는 것이다. 문학은 역설의 공간을 내부에 품고 있음으로써 그 자체가 사회적 신 체의 증상일 수 있다. 본고가 김성민의『綠旗聯盟』과 같은 작품에 주목한 이유 가 바로 이 작품이 보여주는 담론과 작품의 낙차 때문이다. 이 작품은 ‘綠旗聯 盟’이라는 제목을 위시하여 ‘내선결혼’의 모티프를 주된 서사로 하여 국책문학의 주제의식을 명확히 함에도 불구하고 작품 곳곳에서 그러한 주제의식과 어긋나 는 텍스트의 균열을 드러내고, 결국 작품의 골격이 되는 서사도 ‘내선일체, 내선 결혼의 불가능’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중편소설 金士永의 「兄 弟」 이무영의 장편 『靑瓦の家』과 같은 작품들도 『國民文學』의 단편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서사의 단순성을 넘어, 여러 층위로 직조된 소설의 육체성 을 확보한 작품들이어서 본장의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다음으론 『春秋』소재 작품들은 고찰해 보았다. 1940년대 전반기의 문학사 는『國民文學』(1941.11)의 무대로 조명되고, 따라서『國民文學』에 게재된 대부 분의 일본어 국책소설로 채워진다. 당시 조선 문단의 잡지들을 살펴보면 1941년 3월 『人文評論』, 1941년 4월 『文章』의 폐간으로 사실상 조선어 문학을 담당 할 순문예지는 사라졌으나 1941년 2월에 창간한 종합지 『春秋』가 일정부분 그 역할을 계승하고 있었다. 『春秋』에는 극소수의 국책소설을 제외하고는 임 서하의「성서」나 최인욱의「멧돼지와 목탄」와 같이 작품의 표층서사는 국책 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심층서사를 분석해 보면 오히려 표면적 서사를 배반하 는 목소리로 채워진 작품들이 적지 않다. 이근영의 「소년」과 황순원의 「그 늘」분석을 통해 밝혔듯이 암시적이나 비유적인 형태이기에 표층서사에 쉽게 노출되지는 않지만 시대와의 대결 혹은 긴장감이 내재되어 있는 작품들도 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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