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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록과 크래스너가 함께 활동했던 20세기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미술사가와 비평가들은 두 화가를 함께 연구한 경우만큼은 화가의 자전적 정보를 선별적으로 차용하거나 혹은 학문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 지 않으면서 화가의 주체성을 무시해온 경향이 있다. 특히 포스트모던 (Postmodern) 시대의 현대적 담론들은 미술의 역사를 다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지만, 역사적 문맥을 소홀히 다루어 다양 한 가능성들과 한 시대를 지배했던 인식의 틀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기 도 한다. 본 논문은 미국 냉전 시기의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뉴욕 미술계에서 특수한 문화적 논리가 조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검토하였고, 그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 화가가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대처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었 다. 이에 따라 폴록과 크래스너가 1945년 결혼 이후 파트너십의 공동 주체 로서 미술계에서 실천한 다양한 활동과 그 양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본 논문에서 가장 강조되어야 할 점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할당된 역할을 수용, 혹은 부정하면서 정체성을 완성시켜 갈 때 그 결정은 스스로 정의해간다는 점이다.213) 즉, 결과론적 평가를 넘어 화가 개인의 주체적 의지 와 화가가 처한 사회적 상황을 이해할 때, 보다 객관적인 시각과 다양한 가 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폴록과 크래스너가 함께 생활하고 작업하기 시작한 1945년 전후의 미 국 사회는 국가적인 경제난과 전쟁의 경험으로 기존의 사회적 관념이 붕괴하 는 새로운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특히 국가 지도층에 의해 주도된 냉전 시기의 이데올로기는 대공황과 2차 세계 대전으로 본격화된 여성성의 신장을 억제하고 전통적인 성 역할을 유지시키는 데 주안점이 있었다. 그러나 젊은 세대를 위주로 한 생물학적 성, 사회적 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그로 인한 새로운 가족, 결혼 제도의 정립은 사회 구성원의 젠더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반영한 결과였다. 이념과 현실이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미술계의 경우, 국가

213) Whitney Chadwick and Isabelle De Courtivron, 앞의 책, p. 10.

적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보수적인 문화적 강령이 그린버그, 알프레드 바 주니 어, 스위니, 로젠버그 등 뉴욕 미술계의 핵심 인물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특 히 이 시기 국가 체제의 이념과 사회적 관념은 예술을 직업으로 삼았던 남성 을 동성애자, 여성적인 존재로 범주화하면서 미술계의 남성들을 위협했다. 또 한 미술계의 대부분의 남성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점도, 전쟁이라는 역 사적 사건과 젠더 의식을 연계하고자 했던 국가적 요구와 상치되면서 미술계 남성들에게 위기의식을 갖도록 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에 힘입어 미술계에 서는 주요 비평가들에 의해 남성적인 면모에서 벗어나는 것은 작품의 가치와 화가의 권위를 하락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교조적인 논리 하에 여 성 화가들의 입장은 더욱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화가로서의 성공과 사회적 위신이 보수적인 비평가, 딜러들의 관계와 밀접하게 연계되면서, 미술 계가 요구하는 경향에서 일탈하는 것은 화가로서의 삶을 위협하였다. 따라서 미술계에 조성된 지배적인 논리에 부응하는 일은 화가들이 미술계에서 안정적 인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폴록과 크래스너는 1945년 결혼한 뒤 화가 부부로서 더욱 미술계의 젠 더 의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전후로 급격하게 변화한 새로운 화가 로서의 정체성은 폴록과 크래스너가 미술계에서 파트너십을 향유하면서 동반 된 새로운 대응으로 볼 수 있다. 폴록과 크래스너는 뉴욕 미술계의 주요 비 평가, 딜러들의 취향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무리 없이 수용 가능한 전통적 인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 부부의 스테레오타입을 실천하였다. 폴록은 여성 파트너에게 보조와 존경을 받는 권위적인 남성 화가로서의 역할을 실천하였 고, 비평가들의 이해관계에 적합했던 그의 급진적인 추상 미술은 미술사에서 폴록의 위치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크래스너는 남성 화가의 파트너, 아내로 서의 역할을 유지하면서 스스로를 “미세스 폴록”으로 내면화하였다. 개인의 기질과 개성을 은폐하며 구축된 부부 이미지는 두 화가의 안정적인 커리어를 보장한 측면이 컸다. 이러한 공적 영역에서의 수행적 정체성과 파트너십은 당 대 문화적 헤게모니의 최적의 수용 조건이 되어 폴록의 당대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크래스너 또한 폴록의 영역을 침범하

지 않으면서 독자적인 여성 화가로서의 조형 양식을 구축했으며, 이러한 결과 로 평단의 기대에 무리 없이 부합하면서 1940년대에 대형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질 수 있었던 측면이 있다. 여성에게 배타적이었던 미술계에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페르소나는 크래스너의 대안적인 선택으로 보여진다. 그 러나 사회적 요청과 평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과도한 부담이 폴록의 작품 에서 저항의 징후로 나타나기도 하며, 크래스너의 경우 파트너십의 실천이 수 용의 관점으로만 평가되어 오면서 단순히 오랜 기간 폴록의 그림자에서 벗어 나지 못한 것으로 저평가될 수밖에 없었던 대가를 치르도록 했다. 한편 크래 스너가 수행한 정체성은 그녀가 이민자의 딸로 홀로 뉴욕에 와서 가난, 차별 과 투쟁해야 했던 개인적 상황으로 인한 전략이기도 했다. 특히 그녀가 유대 인이었다는 점은 교조적인 미술계의 이데올로기에 더욱 동조할 수밖에 없도 록 만든 점도 있을 것이다.214)

본 논문에서 제안한 폴록과 크래스너의 공조적인 수행은 결혼으로 맺 어진 두 화가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는 주체적 의지 이후에 동반된 것이다.

즉, 당대 지배적인 문화적 논리와 협상하고 대안 방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폴록과 크래스너가 화가 부부로서 미술계에서 함께 안정적인 위치를 점유하 고자 한 동반자적 믿음이 그 시발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폴록이 1956년 갑작스런 사고사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에 10여년 남짓 한 짧은 기간 외에는 두 화가의 연계된 활동을 다양한 시각으로 확인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러 나 폴록 사후 크래스너가 거대한 추상 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양식을 통해 폭넓은 전시 활동을 개시한 것은, 그녀가 수행했던 정체성이 폴

214) 1970년대 중반 이후 막스 코즐로프(Max Kozloff)를 비롯한 수정주의 비평가들에 의해 당대 교조적인 미술계의 이데올로기가 그린버그, 로젠버그,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 등 유대인 남성 비평가들이 조성한 경향인 것으로 제시되었다. 파시즘의 국가주 의와 인종 계보학에 대한 공포, 자기 부정, 나아가 이러한 특수성을 제거하는 보편주의에 대한 꿈의 일환으로 시대에 대처하는 특정한 비평의 기준을 만들고, 정치적 신념, 인종, 민 족, 그리고 젠더에 대한 기존의 역사적 담론을 재구성하여 소외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견 해도 있다. 따라서 추상미술의 미적 가치도 이러한 기준 하에 강조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Lisa Bloom, “Gender, Race, and Nation: Histories and Discourses”, 앞의 책 참 조; 크래스너 스스로도 본명인 “레노어 크래스너(Lenore Krassner)”를 더욱 미국적인 성 으로 바꾸기 위해 R 하나를 뺀 “크래스너(Krasner)”를 화가명으로 사용했고, 자신의 유 대인 배경을 거부하기도 했다. Robert Hobbs, 앞의 책, p. 72.

록과 함께 화가 부부로서의 삶을 향유하던 방식이었음을 재차 확인하도록 한다.

1980년대 이후 예술적 파트너십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으며 이와 관 련한 전시 기획이 다수 이루어졌다. 폴록과 크래스너를 단독으로 전시했던 경 우는 1981년 뉴욕 대학(New York University)의 그레이 갤러리(Grey Gal lery)에서 열린 《크래스너/폴록: 작업하는 관계 (Krasner/Pollock: Workin g Relationship)》 전시와 1989-1990년 스위스의 베른 미술관(Bern Kunst museum)에서 열린 《리 크래스너와 잭슨 폴록: 예술가의 대화와 공명(Lee Krasner and Jackson Pollock Artists' Dialogues and Resonances)》

전시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전시는 대체로 화가 부부가 각자의 파트너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 주요 제언이었다. 특히 베른에서의 전시에 대해 미술사 학자 스티븐 폴캐리(Stephen Polcari)는 실제 폴록과 크래스너의 개인적 관 계가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고 평가하였 다.215) 동시대 함께 화가로 활동했던 부부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단편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술사에서 예술가들의 파트너십을 재조명하는 연구가 2000년대에 본격 적으로 진행되면서, 이들의 사회적 정체성 및 예술적 결과물을 새롭게 평가하 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서론에서 소개한대로 미술사학자 바바라 로즈, 휘트니 채드윅(Whitney Chadwick), 브렌난 등의 연구자들은 ‘두 사 람(couple)’이란 개념을 연구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젠더, 인종, 계층과 관련한 복합성에 주목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연구의 의의는 예술 가들의 파트너십이 가족, 부부, 애정 관계 등을 설정하는 사회 구조의 지배 속에서 탈피하거나, 혹은 탈피하지 못한 채 대안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왔다고 보고 앞으로의 예술적 파트너십에 대한 연구 또한 두 사람의 관계를 보다 넓 은 맥락에서 재고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이다.216)

본 논문은 그간의 연구사가 폴록과 크래스너를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215) Stephen Polcari, “In the Shadow of an Innovator,” Art International, Vol.

120 (1990), p. 103.

216) Whitney Chadwick and Isabelle De Courtivron, 앞의 책, p. 7.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7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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