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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사와 운영체계

북한에서는 국가나 정부기관, 청년동맹 같은 근로단체 등 비경제단 체든 혹은 기업과 같은 경제단체든 외화벌이 회사를 직접 설치·운영할 수 없다. 대신 이들 양 조직은 산하에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형태로서 만 외화벌이 회사를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민무력부의 공식 하위 기관인 후방총국은 직접적으로 무역회사를 운영 할 수 없다. 군부대의 경우도 그 부대의 후방부를 직접 무역회사의 기능을 하도록 할 수 없 다. 두 경우 모두 별도로 상인들로 구성된 회사를 곁가지 산하 조직으 로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외화벌이 무역회사는 경제단체로써의 독 립성을 띠지 못하고 반드시 어떤 기관이나 기업에 소속되어야만 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왜 경제외적 방식인 외화벌이는 사회주의 경제라는 제도형식을 필요로 하는가”인 것이다. 그것은 ‘외화벌이=교 화벌이’라는 북한식 공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편 외화벌이를 산하 에 두고 있는 비경제적 및 경제적 단체는 본래적으로 상업 행위를 본 업으로 하는 경제단체가 아니다. 다른 한편 기업은 무개혁한 상황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계획경제적 규제를 벗을 수 없다. 따라서 오직 완성 된 개체로써가 아니라 공식 단체의 하위 부분이라는 의미에서 ‘조절토 막적 외화벌이 회사’만이 성립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 외화벌 이 회사는 법적으로만 따지면 존재할 수 없다. 법적 안정성이 결여된 북한 외화벌이 회사는 항상 배후권력 의존형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외화벌이 회사는 ‘적극적 정경유착형’이라고 할 수 있는 ‘정경 협업을 토대’로 설립한다. 이는 경제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지 않 았던 전근대적 사회에서의 회사 성격과 다를 바가 없다. 경제에 자율

102 북한에서 국가재정의 분열과 조세 및 재정체계

성이 결여된 것, 즉, 북한식 표현을 빌면 외화벌이 사업가는 (법기관 에) ‘잡아 먹히울 명절돼지’로서의 역할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외화벌이 회사 혹은 단위는 그 상급 단체가 제의서-방침체계에 따 라 와크를 받아 산하 소속으로써 조직된다. 조직 목적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자체 충당분인 해당 단체 예산수입이고, 다른 하나는 방침(후기에는 명령)으로 된 혁명자금 예산수입에 기여하는 것 이다. 우선순위는 당연히 후자에게 있다. 이러한 회사 창설 환경에서 회사원 모집대상 집단은 전국적으로 수 천명 규모로 이른바 ‘외화벌이 (상인 또는 장사꾼) 피라미드’를 이룬다. 이 피라미드의 정점 부분으로 갈수록 개인보유 자금규모가 커지고 개체 수도 줄어들며, 또 평양시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외화벌이 무역회사는 그 초기부터 계획경제 단위, 공장 혹은 기업소 등과 완전히 다른 노동질서(인사질서)를 가지고 있었다. 즉, 계획경제 노동질서는 집단주의적 원칙으로 당의 요구와 국가계획에 의한 ‘파견’

혹은 ‘배치’가 기본이었다면, 외화벌이 혹은 회사에서 노동질서는 개인 능력주의, 특히 개인 외화보유액에 의한 자발성이 기본이었다. 회사 인 사의 특징은 비단 집단주의를 배제하고 개인 능력주의를 선택한 것뿐 이 아니다. 회사 내 당권이나 행정권 및 재정권은 반드시 권력자이거 나 그 친인척(세도가 출신)이 된다는 특징이 존재한다. 비록 이윤을 추 구하는 조직의 회사의 내부이지만 사회주의 성분 형식에 따라 상인이 나 기업가는 어디까지나 상인이고 기업가였다. 상업은 법적으로 따지 면 불법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한 상업적 죄목은 상인이나 기업가가 부담해야 할 몫이지 회사 내에서 기생하던 권력자나 그 친인척이 부담 해야 할 사항은 원천적으로 아니었다.

1970년대 중후반에 시작된 외화벌이는 20년 이상의 역사를 지나면

서, 그 주역을 이루던 외화벌이 회사원에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졌다. 초기에는 재일북송자 등 외화 근방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던 외래 이주 민 출신들이 주력이었지만, 이들은 대부분 1990년대 후반 정치적으로 거세되었다. 이들을 대신하여 북한 권력자의 자제들이나 장마당 성공 토착민들이 외화벌이 피라미드 구조에 편입되었다. 이 세대교체의 결 과, 회사 내 인사 질서 및 회사의 사회적 환경으로서의 사회주의 형식 은 상당한 자기 개혁 내압을 받고 있다.

회사원(주로 무역지도원)은 그 직위에 걸맞게 개인별로 회사에 수익 을 납부하는 법적 의무(입금계획)를 지는 댓가로 소정의 무역권인 와 크를 배정받아 집행한다. 따라서 외화벌이꾼, 즉 무역상은 북한의 당 조직, 보위부, 보안서, 검찰소 및 재판소의 5중 사법망에 집중적으로 상시 노출되어 있다. 그런 속에서 무역상은 기본적으로는 회사 시스템 보다는 개인의 단독 비밀 활동으로써 광고, 계약, 기술합의, 원천 구매, 집하, 보관, 국내운송 및 상선, 보험가입, 국내외 결제, 수출입 등 모든 과정의 경제 활동과 안전관리, 부기회계, 대관업무 등을 실행하고 있 다. 그리하여 상위자일수록 와크 장사와 같은 단순하고 이윤이 안전한 사업에 치중하게 되고 하위자일수록 제 발로 뛰는 일이 부여되는 구조 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사회주의 형식 유지’, 즉 무개혁이라는 제한성 때문에 불가 피했던 외화벌이와 같은 경제외적 방식은 핵·미사일 시험과 같은 대규 모 긴급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데는 성공 을 거두었다. 그 결과 외화벌이는 실리주의라는 중간다리를 타고 넘어 선군경제라는 새로운 경제외적 방식, 보다 시스템화된 방식으로 이행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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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천 동원체계

외화벌이의 경제적 기본기능이 무역이기는 하지만 자체의 생산체계 를 갖추고 있다. 이 특성은 계획경제의 부실화 수준이 증대하고 외화 벌이가 선군경제에서 극적으로 확산되어 감에 따라 보다 체계적인 일 관성을 갖추게 되었다.

1970년대의 외화벌이 기본형태였던 버섯이나 어패류, 사금 등의 채 집과 수집 같은 단계에서도 그 생산성은 비록 미약하였지만 외화벌이의 규모면에서는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다. 즉, 5호관리소는 전국 300여 개의 시·군 구역을 망라하는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시즌이 되면 골짜기다가 해변마다 이동수매점을 가설하여 운영하였다. 이러한 5호 관리소망을 통하여 충성의 외화벌이, 군중 외화벌이라는 경제외적 대 중운동이 꾸준히 확대 전개되었다. 또, 수도, 도 소재지 및 직할시에 전 개된 외화상점들은 월 실사일은 제외하면 거의 만가동으로 운영되었 을뿐 아니라 외화상점 이동판매차를 각 시, 군 소재지들에 순회하면서 봉사하였다. 예를 들면, 당시 회사 기능을 수행하던 대성총국의 무역을 본다면, 전매 수집된 송이버섯을 일본으로 수출하여 그 대금에 해당한 상품을 수입하고 도시의 외화상점과 각 5호관리소에 공급했다. 외화상 점에서는 현금수입이, 5호관리소에서는 송이버섯 같은 현물수입이 있 었다.

외화상점의 경우는 이미 주민과 기관의 보유 외화(미 달러나 일본 엔)를 ‘외화와 바꾼돈 표’라는 내화(內貨)형태로 환전 회수하여 환율에 의한 독점적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외화상품 수요 증대와 바꾼 돈 유 통속도로써 외화상점을 통해 독점적인 외화벌이가 진행되었다. 5호관 리소의 경우는 그 고객이 훨씬 많고 농어촌의 직접생산성과 관련하여 이윤차는 훨씬 더 컸다. 가령 1등급 송이버섯(직경 4센치 이상, 길이

12센치 이하의 동송이)의 경우 킬로(평균 1등급 동송이 20여 개)당 수 매원가가 백설탕 9킬로(백설탕 킬로당 바꾼돈 2원, 약 입쌀 2킬로)였 다. 일본 수출가격이 킬로당 평균 10만 엔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4배 의 가격차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풍년인 경우 송이버섯이 한 개

군에서 150톤 이상을 과제(흉년의 경의 수 십톤 수준)로 하는데 이러

한 송이버섯 산출군이 함남 홍원군으로부터 연사군에 이르기까지 분 포되어 있었다. 이 지대 농민은 약 2개월 수확기 동안 평균 하루 3킬로 정도를 수확했다. 그들의 이 기간 수입이 1년 중 농업노동을 통한 분배 를 능가했다. 5호관리소는 송이버섯을 비롯한 버섯류, 산채, 약초, 동물 성 약재, 산열매, 목재 등 임산자원뿐 아니라, 콩, 각종 씨(살구씨 등), 모피류, 누에고치, 볏짚 등 농·축산물, 조개, 게, 성게, 물고기 등 어패 류, 금과 은 등 광물류 등을 수거하였다.

그 외화벌이 총동원에는 당원은 물론 소년단원, 청년동맹원, 직맹원, 농근맹원, 여맹원의 개인별 과제가 조직별로 내려왔다. 기관, 기업 등 단위별 당위원회는 단위별 과제를 할당했다. 특히, 사금, 고사리, 명란, 조개, 담배, 양파 등 집단적 동원이 아니고서는 접근 불가능한 지표에 대해서는 단위별 과제가 할당되었다. 노력, 설비, 에너지, 각종 기자재 등은 계획외로 자력갱생으로 해결할 것을 지시했지만 결국 계획경제 분을 수탈하는 방법으로 제공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 와서 특권기관들에 각종 회사들이 광범히 조직되 면서 전군중적 운동과는 다른 생산 형태가 더 나왔다. 공장이나 직장 을 회사가 직접 운영하거나 위탁가공을 하는 형태가 그 한가지였다. 즉, 외화벌이가 직접적 생산 형태를 취하면서 계획경제 침식의 일보를 내디딘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중요대상 건설을 비경제단위 가령 무력 부, 안전부(현 보안부), 청년동맹 등이 담당하거나 주택건설을 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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