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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 精 神 分 析 :第 13 卷 第 1 號 2 0 0 2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Vol. 13, No. 1, page 80~91, 2 0 0 2
大衆文化와 性
*
李 炳 郁**
Mass Culture and Sexuality
*Byung-Wook Lee, M.D.
**머 리 말
오늘날 우리사회는 대중문화의 무정부상태에 놓여 있다. 피 상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상당히 서구화되고 세계화를 지향하 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창 의적인 노력과 투자보다는 단순한 모방에 급급한 양상이 두 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소위 대중문화라고 하면 그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같은 것이다. 물론 거대 사회일수록 대중문화의 양상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를 주도하는 대중문화의 특성은 사회구성원들의 심리적 욕구와 충족이 어떠한 방식으로 표출되는지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건전한 사회와 건전 한 심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오늘날에 이르러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대중문화의 특성을 통하여 우 리는 그러한 가치관의 전도에 따른 사회적 위기를 읽을 수 있 으며 그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도 단순히 변화의 과정에서 거 쳐가기 마련인 일과성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극단적 인 대립과 타협부재의 아집만으로 치닫는 감이 든다. 특히 성 적인 측면에서의 가치 전도와 혼란은 첨예하게 대립된 양상 으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마주한 상태에서 세대간의 갈등만 증폭시키는 현실에 처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대중문화의 실 상과 그 위치를 탐색하고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밑거름이 되고자 하는 바램에서 본고를 쓰게 되었다.
우리사회의 문화혁명
90년대 들어 우리사회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는 단연 성적
인 담론들이라고 하겠다. 전통적으로 유교적 가치관과 남성 본위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길들여진 기성세대들은 특히 십대 청소년들의 반항과 여성들의 당찬 도전에 당혹감을 감 출 수가 없었다. 십대들은 기득권을 독점한 성인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관의 메시지를 랩 뮤직의 가사에 담아 전 파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성적인 몸짓과 옷차림, 전도된 메시지가 십대들에게 폭발적인 흡인력을 지니고 퍼져나갔 으며 상반된 가치관은 젊은이의 특권처럼 내세워지기도 하 였다. 그러한 혁신적인 메시지에 길들여진 청소년층은 이미 부모와 교사들의 통제권에서 벗어난지 오래되었으며 그러한 십대들의 반항과 도전에 고무된 일부 여성들도 성적인 담론 과 파격적인 행동을 통하여 남성들의 고정관념에 새로운 충 격을 던지기에 족했다. 한마디로 90년대 우리사회는 십대들 과 여성들의 거센 도전 앞에 그동안 유교적 가치관에 안주 해왔던 남성 기성세력들이 엄청난 홍역을 치른 시대였으며, 그러한 변혁의 와중에서 상업적 이윤을 얻기 위한 기업자본 들과 대중매체들의 부추김 등이 이에 가세함으로써 모든 새 로움과 젊음이 옳다는 식의 오도된 메시지 형태로 그들의 정당성을 확고하게 해주었다.
대중들은 거대한 매스미디어 앞에 무력하기 짝이 없다.
Key(1989)는 말하기를,‘대중은 무대 뒤를 엿보는 것이 하 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를 통하여 그들의 환영 이 손쉽게 무너지기 때문이고,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환 영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우리 가 처한 현실에서 고찰해 보건대,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4대 기둥이 있다면 공권력, 일반대중, 대중매체, 기업체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 대중문화의 실질적인 주도세력은 십 대들과 소위 아줌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십대들은 저항문 화를 주도하고 아줌마들은 소비문화를 주도한다. 따라서 막 대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속성상, 대중매체와 기업체 들이 십대와 주부들을 그대로 놓칠 리 없다. 십대와 주부들 이야말로 그들의 주된 표적의 대상이 되어 집중적인 공략을
*本稿는 2001년 10월 25일 大韓神經精神醫學會 秋季學術大會에서 特講으로 口演됨.
This paper was presented at the Autumn Scientific Meeting of Korean Neuro-Psychiatric Association in 25th Oct, 2001.
**翰林大學校 醫科大學 精神科學敎室
Department of Psychiatry, College of Medicine, Hallym Univ- ersity,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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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기 마련이다.대중과 성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오늘날 우리사 회에 만연한 성의 대중적 일탈과 범람은 그동안의 오랜 성 적 억압에 대한 반동의 결과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 는 오히려‘성으로의 도피’라고 보는 게 적합할 것 같다. 즉 좌절과 답답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로서 성은 가장 적절한 해결책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문가 집단은‘성으 로부터의 도피’ 현상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성 으로 넘쳐나는데 오히려 정신과의사들은 성에 무관심하며 그에 관한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다. 마치 환자에게는 성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신분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Green(1995)은 오히려 탈 성화된 현대 정신분석에 경고를 발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 니라 오늘날의 임상에서 흔히 목격되는 현실은 환자의 주관 적 세계를 외면하고 오로지 객관적인 자료만을 다루는 소위 주관성에서 객관성으로의 도피 현상도 두드러진다. 전문가 집단의 이러한 도피는 당연히 비사회화, 내지는 탈사회화되 어 비판적 기능의 상실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오직 개인에 대한 관심뿐, 그들이 속한 사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됨 에 따라 사회적 현실에서 소외되고 따라서 사회적 부조리 나 모순에 대하여 비판적 안목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 사회에 있어서 비판적 기능 또는 전문 집단의 침묵은 결 국 정치적 독재, 기업 독재, 대중매체의 독재, 문화 독재 등, 다양한 형태의 독재를 양산한다.
양극성 대중문화
우리사회 대중문화의 특징을 든다면 양극화, 획일화, 배타 성 등을 열거할 수 있다. 도발적 십대문화는 가부장적 권위 주의에 오염된 고루한 수구문화에 대한 가치 전복을 주된 모토로 내세운다. 기성세대의 숨막히는 획일성에 대한 반동 은 그러나 창의적인 다양성으로 확대, 발전하는 것이 아니 라 또 다른 획일화의 악순환에 빠져 버리고 만다. 수구집단 이든 변혁집단이든 한결같이 획일화에 빠져버리는 특성을 보인다. 우리사회는 기형적 모래시계형 사회의 구조를 띄고 있다. 즉 건실한 도덕적 기반의 중산층 문화의 부재가 사회 의 중심축을 흔들게되고 게다가 다원적 민주시민사회의 훈 련 부족이라는 고질병이 자라나는 청소년층을 더욱 혼란에 빠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자아는 없고 이드와 초자 아의 극한 대립만이 존재하는 아주 이상한 모습의 기형적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즉 고집불통의 노인과 버르장머리 없는 손자만 존재하고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아버지가 사라 지고 없는 집안과 비슷하다. 이러한 양극성 문화는 한반도
의 민족문화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오늘날 북한의 화두가 쌀과 무기라면 남한의 화두는 돈과 섹스라고 할 수 있다. 북 한은 과도한 초자아가 문제고 남한은 넘치는 이드가 문제인 것이다. 넘치는 건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 말도 있지만 남이 나 북이나 조절과 중재를 맡을 건강한 자아의 기능이 약화 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한 국인의 관계 미숙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인간관계에 서 우리에게 가장 결정적인 취약점은 Brenner(1983)가 그 토록 강조했던 타협형성의 미비라 하겠다. 욕망의 제어에 실패할 때 갈등이 생기고, 그러한 갈등에서 타협형성에 실 패하게 되면 신경증적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볼 때, 우리 사회 구성원 각자의 인격발달 과정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이 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러한 구멍으로 인한 심리적 기초공사 의 부실이 바로 Balint(1989)가 말한 basic fault라고 하겠 다. 이러한 기본적 결함은 결국 성장과정에서 인격발달의 미숙함과 관계형성 능력의 미비로 그 치부가 드러나게 된다.
일과 사랑의 측면에서 볼 때, 자본주의 사회이든 공산주 의 사회이든 이 두 가지 화두는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라 할 수 있다. 사회체제의 차이를 떠나 돈, 섹스, 권력, 놀이, 사랑과 일의 문제는 인간 보편의 심리적 의미가 상당히 큰 주제들이 아닐 수 없다.
김혜남과 백기청(2001)은 오늘날의 우리사회를 나르시 시즘 사회로 규정짓고 이러한 사회의 특징은 파편화된 사랑 이 주를 이루는 게 문제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총체성과 통합성의 상실과 그에 따른 결과로 사람들은 서로 각자의 전체적 자기가 아닌 부분적 자기로 관계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불안정성을 지켜주는 가족의 기능이 약화되고 그 대 신 사회가 그러한 기능을 상당 부분 떠맡게 되면서 사람들 은 각자 내면적 공허감과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한 몸부림을 하게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고전적인 Lasch(1978) 의 나르시시즘 문화론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그러나 저자 의 견해로는 나르시시즘 뿐만 아니라 신세대로 갈수록 경계 성 장애의 특성들이 두드러짐을 실감하게 되는데 이는 우 리사회뿐만 아니라 선진서구사회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 는 것 같다.
우리시대의 신흥종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광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의 본질은 소비가 미덕임을 부추긴 다. 끊임없는 소비 지향은 항상 새로운 것에 주목하도록 대 중들의 시선을 붙잡아둔다.‘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예수님 의 말씀은 영적인 차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세 대들은‘새 것은 좋고 옛 것은 나쁘다’의 차원을 넘어 이제 는‘새 것은 옳고 옛 것은 틀리다’라는 차원으로까지 나아 갔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속도 감각 및 개념의 변화도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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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만하다. 독일의 아우토 반, 미국의 하이웨이 또는 프리웨 이에 비해서 우리나라에서는 고속도로라 지칭한다. 따라서 장거리버스 역시 고속버스라고 부른다. 근대화, 산업화의 물 결에 힘입어 우리 자신들은 고속문화에 자신도 모르게 흡 수되고 말았다. 더욱이 전자매체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새로운 젊은 세대들은 시청각 문화와 자극에 일찍부터 노 출됨으로써 이제는 순간적인 클릭으로 자극의 변화와 전환 이 가능해지면서 기다림의 미덕을 잊은지 오래되었으며 더 나아가 초고속문화의 발달로‘빠른 것은 좋고, 느린 것은 나쁘다’가 아니라‘빠른 것은 옳고, 느린 것은 틀리다’의 차원으로까지 진전하게 되었다. 기다림은 이제 미덕이 아니 라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들의 자기변명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한국인들의 조급증은 외국인들 사이에 서 더욱 유명하다. 식사를 주문할 경우에도 참고 기다릴줄 모르는 빨리빨리병이 발동한다. 관광선을 타기 위해 위험한 방파제 위를 남녀노소 불문하고 수백명이 질주하는 진풍경 은 우리에겐 결코 낯 선 모습들이 아니다. 즉각적인 욕구충 족에 대한 열망은 유아들의 전유물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 큰 성인들이 그렇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전사회적 퇴행 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율배 반적이긴 하지만 조급증과는 상반된 듯이 보이는 괜찮아병 역시 자아의 무책임성, 회피반응을 반영한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무제한으로 밀려드는 서구화의 물 결에 속수무책이다. 달리 말하자면 자체적인 검증이나 여과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손을 쓸 수 없는 부분은 성에 관한 담론들이다. 물론 어차피 사회 는 개방되기 마련이고 환기가 잘되는 사회라야 탄력성을 유 지할 수 있기 마련이지만, 환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우리 고유의 의식을 포기하고 서구 일변도로 의식 전환이 이루어 지기 때문에 공정치 못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답답하고 숨막히는 기성세대들의 전횡에 대항하여 반항 심에 사로잡힌 십대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 고 적절한 욕구 발산 통로가 차단된 현실에서 나름대로의 탈출구를 모색하기 마련인데 섹스는 폭력과 맞물려 가장 매 력적인 출구 역할을 맡는다. 성적 카리스마와 섹스 어필에 집착하는 청소년문화는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더욱 극단으 로 치닫는다. 전통적인 맵시는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며 섹 시한 몸매, 제스쳐, 걸음걸이, 자태가 더욱 중요해졌다. 바디 로션 및 피부관리에 대한 집착도 이러한 풍조와 무관치 않 다. 말씨도 섹시한 음성과 억양이 주목을 끈다. 가수 김건 모의 강한 비음을 동반한 발성법이나 왁스가 부르는“오 빠! 날 가져봐!” 등에서 보이는 섹시한 절규형의 발성들이 인기를 끌기 마련이다. 전통적인 솜씨의 강조는 오늘날에
이르러 성적 기교에 관한 담론으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우 리사회는 기성세대들의 기만적인 금욕적 태도와 청소년층의 도발적인 성적 해방구 추구라는 양극적 상황이 타협을 거부 한 채 서로를 불신하고 팽팽한 대립만을 보이고 있는 기형 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윤가현(2001)도 지적하였듯이 이러 한 성 혁명이 진행된다고 해서 모든 욕망을 추구하기 위한 어떠한 행동도 용납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결론 내리기 를, 인간이 언제나 무한정으로 욕망을 발산했다면 인류의 문명사회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느 시대, 어느 사 회를 막론하고 그러한 욕망을 적절히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고 하였 는데 옳은 말이다.
미국의 저명한 분석가 Blos(1962)는 청소년 심리의 대 가로서 그는 폭풍과도 같은 방황과 혼란 속에 고민하는 청 소년들의 심리에 매우 동정적이고도 따뜻한 시선을 보내면 서 청소년기는 소위 변증법적인 위기의 시기로서 아이도 아 니고 어른도 아니면서 겪어나가야 할 정체성의 혼란과 동 시에 부모로부터의 독립과 의존 사이에서 겪게 되는 갈등 문제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를 유아기에 경험했던 이별과 애착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는 제 2의 분리-개별화 과정으로 보았다. 이러한 혼란기에 부 모나 가정이 적절한 개입과 보호에 실패하게 될 경우, 청소 년들은 정신적으로 붕괴되거나 일탈된 행동 등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들 것이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관심이 요구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대중가요와 성
오늘날의 우리 가요계는 텔레비전이나 음반 점유율에서 보더라도 십대들의 음악이 주도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인 다. 마치 어른들은 일만 하고 음악은 십대들의 전유물인 것 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다. 성 인들이 십대들의 음악에 무관심한 사이에 그들만의 세계는 어느 틈에 외국의 저급한 대중음악을 모방한 반사회적 메 시지에 오염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성은 가장 십대들에 어 필할 수 있는 강력한 자극원이 되기 때문에 모든 가수들이 앞을 다투어 성적인 매력이나 자극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기 에 이르렀다. 서태지에서 발단된 십대 음악은 초기에는 기 성세대들의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 였다는 자못 거창한 평가들이 있으나 결국은 돈을 벌겠다 는 상업적 이윤 추구에 대한 욕심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위 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랩 문화를 탄생시킨 배경은 미국 대도시의 뒷골목이나 빈민가를 배회하던 소외당한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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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래퍼들이 자신들의 현실적인 절망감과 좌절 그리고 욕구불만을 온갖 욕설과 증오심으로 중얼대던 노래에서 비롯 된 것인데, 사회적 배경이 전혀 다른 우리 문화에 그대로 도 입하여 랩 문화를 그대로 모방한 반사회적 메시지를 여과 없이 이식 전파하는 데는 그 해독이 더 크다고 하겠다. 실 제로 미국의 래퍼들 중에는 갱조직의 일원이면서 가수활동 을 겸하는 인물들도 많다고 한다. 오늘날의 우리사회 청소 년문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실세들은 부모도 선생도 아닌 가수들이다. 서태지, 박진영, 김건모, 유승준, H.O.T, GOD, 조PD, 싸이(Psy), 엄정화, 김현정, S.E.S, 지누션, 왁 스, 뉴리안, YG Family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온갖 솔로 및 그룹들이 마치 자신들이야말 로 새로운 변혁의 전도사라도 된다는 식의 그야말로 전도된 의식하에서 청소년들을 부추기고 선동하며 음성적으로는 엄 청난 상업적 이윤을 추구한다. 또한 날이 갈수록 그들의 노 랫말과 몸짓은 더욱 노골적인 성 묘사로 일관하며 청소년 을 유혹하고 자극한다. 인기와 수입을 의식한 나머지 자신 들의 초조감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더욱 화끈한 충 격요법을 동원해서 사람들의 주의를 이끌어내야 되기 때문 이다. 싸이의 노래를 들어보자.
“항상 착한 남자 찾는 척 내숭은 극에 달아 항상 착한 사람 나타나면 병신인 줄 알아
뻥 차버리기 마련 싸가지 없는 놈한테 호감 갖기 마련 얘야 정신 똑바로 차려 그렇게 미련한 만남 끝에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울고 불고 남자는 다 똑같다고 좆같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자존심 차린다고 화장만 고치고 그러지 말아다오”
싸이는 계속 이렇게 노래한다.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승리 나에겐 승리란 말뿐이니 사람들은 나를 껄떡이 찝쩍이 바람둥이라 부르지 아가씨만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니 길거리라도 절대 상관없지 이 아가씨 저 아가씨 아무 거리낌없이 누구에게든지 baby honey 자기 우리둘이 아기자기하게 뻘짓거리 껄쭉하니 나의 모든 자매들은 나의 자기”
싸이의 음반을 사가는 대부분은 십대 청소년들이다. 나이 가 들어 인기관리에 초조해진 박진영의‘게임’은 노골적인 성묘사로 종교계와 치열한 논쟁까지 불러 일으켰다.‘방문 에서 침대까지’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방문에서 침대까지 안아주고 싶어. 침대에서 바닥까지 떨어지고
싶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입맞추고 싶어. 저녁부터 아침까지 반복하고 싶어.”
성에 대해서 알만큼 다 아는 어른들이 이런 음반을 돈주 고 사갈 리가 없다. 박진영의‘해달별’은 의도적인 성적 자 극으로 일관한다. 본인은 물론 부인하겠지만 성적 호기심에 들떠 있는 십대들을 겨냥한 전략임에 틀림없다.
“달콤한 와인과 너의 입술과 딸기와 크림과 너의 손길과 어두운 불빛과 조용한 음악과 숨소리 숨소리 방안에 가득차 나를 미치게 해 넌 나를 미치게 해”
이처럼 십대를 겨냥한 음악은 성인들이 간섭할 수 없는 독립된 십대공화국을 유지시켜주는 엔진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특징은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져 있다는 점 이다. 삶에서 마주치는 힘든 장애물을 극복해가는 과정보 다는 모든 장벽을 일시에 허물어버리는 것이 마치 자유와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널리 전파하고 있는 것 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너무도 삶을 손쉽고 간편하게 만 보는 단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권리와 자유가 소중하다면 타인의 자유와 권리도 소중한 법이거늘 마치 경 계성 환자들이 자신과 마주치는 모든 경계를 파괴시키려고 하듯이 이들은 무의미하고 공허한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 하고 오로지 일탈된 감각적 향연을 통해서 도피하려고만 드 는 것 같다.
대중음악에는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지만 우리사회는 이 상하리만치 그러한 다양성이나 독자성이 맥을 못추는 획일 적인 양상을 보인다. 반면에 미국의 대중음악은 그 시장 규 모가 엄청나다. 뿐만 아니라 획일적인 우리 대중문화와는 달리 각양각색이고 다양하다는 면에서 실로 차이가 많이 난 다. 그들의 대중음악도 애호가들의 취향에 따라 제각각이다.
재즈, 소울 뮤직, 로큰롤, 팝 송, 포크 음악, 칸츄리 뮤직, 랩 뮤직, 라틴 뮤직, 블루스, 스윙 댄스, 언더 그라운드 음악, 사탄 록, 하드 록, 펑크 뮤직, 등등 실로 다양하다. 문제는 위장된 형태로 활동하며 청소년들의 건전한 심성의 발달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비윤리적 메시지의 은밀한 전파에 종 사하는 그룹들도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룹 WASP는 마치 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약자처럼 보이도 록 위장되었지만 실제로는 We Are Sexually Perverted의 줄인 말이다. AC/DC는 얼핏 보면 전기의 직류, 교류를 의 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성애와 이성애를 가리지 않고 전 천후 섹스가 가능한 관계를 뜻한다. Sex Pistols이나 Guns N’ Roses 등의 그룹은 노골적으로 남근의 상징을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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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자극한다. 그룹 KISS는 입맞춤의 뜻이 아니라 Knights In Service Satan의 줄인 말로 악마에 봉사하는 기사단을 의미한다. 10 CC는 정액의 사출량이 10cc나 될 정도의 강 력한 섹스 파워를 과시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그룹 명칭이 다. Y.M.C.A도 기독청년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동성애 자들의 모임이다.
Rock and Roll은 본래 흑인들의 은어로 성행위를 의미한 다. 흔들고 구른다는 뜻에서 사용한 듯하다. 엘비스 프레슬 리는 노래 부를 때, 숨찰 정도로 빠르고 자극적인 하체 율동 과 몸짓을 최초로 보여준 가수인데 그후로 미국의 대중가요 무대에서는 노골적인 성의 묘사나 자극이 더욱 박차를 가하 게 되었다. 기독교사회에서 가장 성스러운 이름으로 불리 는 성모의 이름을 과감하게 빌린 마돈나는‘처녀처럼(Like a Virgin)’을 부를 때, 그녀의 무대 위에 침대를 설치하고 속옷 바람으로 그 위를 뒹굴며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두 사 람의 남자 보조들과 애무를 나누는 장면을 거침없이 보여주 기도 한다. 노래 내용 자체도 어떤 누구와도 성관계를 자유 로이 갖더라도 마음만은 처녀와 같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다. 아니타 워드(Anita Ward)의‘나의 벨을 울리세 요(Ring My Bell)’에서 벨은 현관문의 벨이 아니라 여성 의 클리토리스를 의미한다.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 의‘산채로 나를 먹어라(Eat Me Alive)’ 또는 시나 이스턴 (Sheena Easton)이 부른‘달콤한 벽(Sugar Walls)’ 역시 노골적인 성적 묘사로 일관한다. 신디 로퍼(Cyndi Lauper) 가 부른‘She Bop’은 자위행위를 하는 여성을 노래하고 있 는데 여기서 Bop은 성기를 때리거나 두들기는 의미로 쓰 이는 미국의 속어다. 우리나라의 왁스는 이 노래를 다시 리 메이크, [오빠]라는 곡으로 발표하여 큰 인기를 끌기도 했 다. 유명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그것을 때려 라(Beat It)’는 동성애자들의 자위행위를 묘사하면서 실제 로 노래를 부를 때의 제스쳐도 성기 부위를 특별히 강조하 고 있다. 프린스(Prince)는 한술 더 떠‘누이야, 누이야(Sister, Sister)’에서 근친상간을 노래한다. 와스프(W.A.S.P)의
‘Fuck Like A Beast’, 딥 퍼플(Deep Purple)의 “Kno- ckin’ At Your Back Door’ 등은 성행위시 체위를 나타내 며, 행크 톰슨(Hank Thompson)의‘사랑의 문을 흔들어요 (Swing Wide Your Gates of Love)’ 또는 화이트 스네이 크(White Snake)의‘넣어줘요(Slide It In)’ 등의 노래 역 시 노골적인 성행위를 드러낸다. 건즈 앤 로즈(Guns N’
Roses)는 그룹 이름부터‘총과 장미’로 남녀의 성기를 상징 하는데 그들이 부른‘정글로 와요(Welcome to the Jungle)’
를 살펴보자.
넌 모든 이의 섹시 걸이야. 만족시키기 어렵지. 밝은 빛을 맛볼 수 있겠지만.
정글에서 공짜로 그렇게는 안될거야. 정글로 와요. 나의 뱀을 만져요.
난 네 외치는 소리를 듣고 싶어.
이렇게 인간의 성을 자극, 도발함으로써 인기를 끌고 상 업적 이윤을 얻고자 하는 풍토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직수 입되어 십대 청소년들을 공략한다. 예를 들어 디바(DIVA) 의 업 앤 다운(Up and Down)을 보면 그 메시지가 무엇인 지 눈치챌 수 있다.
up & down 들어봐봐 흔들어 봐봐 우릴 봐봐 자 이제 우리가 간다 모든 것을 잊어버려 up & down 이젠 우리가 바꿔 바로 up & down 때로는 loose하게 때로는 tight하게
때로는 speedy하게 때로는 shocking하게 때로는 groove하게 때로는 speedy하게 down & slow, slow down & flow, down & low 다시 big up big up & down
내 사랑은 그대여 갈때까지 가봐 내맘이 흔들려 up된 마음 이밤에 그대와 사랑을
up된 마음 이밤을 이쯤에서 down
올리고 내리고 흔들고 조였다 풀고 빠르게 자극적으로 내 리고 천천히 내리고 낮게 그리고 다시 크게 세우고 작아지 고 등등 이어지는 표현들은 누가 들어도 성행위를 나타낸 다는 점을 눈치챌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노래가 성인들은 오히려 모르기 일수이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나 듣고 열광하는 세대들이 모두 십대들이란 점이다. 그것도 어른들 이 쉽게 알면 안되기 때문에 영어단어들을 삽입시켜 의도적 인 위장을 하는 수가 많다. 특히 욕설이나 애무행위, 성적인 내용 등은 대개의 경우 영어로 발음한다. 싸이의 노래‘I Love Sex’를 보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fucking, 그렇게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유지. 에라 모르겠다.
찍싸다 나 몰라라 … 누가 뭐래도 I love sex. 놀아보자, 다리꼬고 앉은 넌 sexy
그런 넌 drive me crazy … 얼큰하게 한잔 걸쳐 1212 같이 춤춰 …
이성 따위는 버려, 버려, 버려 …”
우리사회의 문제는 욕망분출의 표현과 억압 사이에 적절 한 타협과 공존이 존재함이 없이 극한적인 대립과 불신, 냉 소만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적절한 여과 장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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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사회에는 불만이 없을 수없다. 더욱이 폭발하는 정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청소년기의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도 문제다. 오로지 입시문 제로만 몰아가는 교육 풍토도 온갖 불만을 누적시킨다. 경 쟁에서 일찌감치 탈락한 십대들은 그들만의 좌절과 모멸감 을 달랠 방도가 따로 없다. 부모와 교사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오로지 그들 심정을 알아주고 위로 해주는 서클 모임이나 반항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힙합 그룹 에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심리적 배경을 이해해야만 할 것이 다. 그것은 또다른 불신과 소외의 악순환을 밟게 마련이기 때문에 사랑과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 설득은 효과가 없 을 수 밖에 없다. 보수적인 미국의 기득권사회에서 길거리 로 내던져진 채 버림받은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호응을 얻는 일부 반사회적 하드 록 그룹들이 전하는 파괴적 메시 지가 한창 자라나는 우리사회의 십대들에게 마치 앞서가는 선진국의 문화를 대변하는 듯이 잘못 오인되어 무조건적인 모방으로 이끌게 방치하는 것은 성인들의 직무 유기나 다름 없는 무책임한 행동이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사회 부 모들의 책임이 너무도 크다. 어른들은 그의 존재를 잘 모르 지만 웬만한 십대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조pd가 자신의 노 래 [Break Free]에서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지 다소 좀 길 지만 그의 노랫말로 된 랩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자(강인중 1999).
니네는 잔짜 웃겨 가만히 듣고 하다 보면 진짜로 웃겨 너는 내가 본 새끼들 중에 제일 웃겨
왜 니가 뭣 땜에 된다 안된다 참견이 많은지 몰라
누가 그걸 몰라 청소년들이 욕을 왜 몰라
니네가 좆같은지 왜 몰라 니네가 그렇게 입을 막고 또 손을 묶고 해도 뭘 잘 몰라
누가 좆같다 안가르쳐도 다 좆같은게 좆같은 거지
그걸 어떻게 몰라 다큐멘타리에선 맨날 SEX가 어쩌고 저쩌고 드라마에선 맨날 까고 부수고 그래도 이새끼 저새끼까진 가는데 영화에선 막 십새끼 좆까 막 그러던데
노래에선 좆됐다 하는 것도 안된다
청소년들의 눈엔 쇼프로밖에 안보여? 그런식으론 안된다 그렇게 관심없이 멋대로 굴다간 좆돼지 솔직히 까고 말해 니네 비행 청소년들의 미래 관심 있기나 해 까놓고 상관이나 해 그렇게 사회라는 조직위에 편히 숨어서 남에게 해 끼치기만 해 돈벌려면 벌어 근데 딴거 해서 벌어 벌어 …
돈벌려면 벌어 근데 딴거 해서 벌어
딴거 해서 안되면 입다물고 쉬어 너 내 노래 갖고 까불면
그땐 진짜 죽어 무슨 말인지 알어 조중훈 노래에다 줄그으면 너는 그때 죽어 무슨 말인줄 알어 만약 내가 쓸데없이 랩에 욕만 쓴다면 그건 쓸데없이 벗는 외설 영화 한 장면이나 다 름없지만
필요할 때 쓰는 표현이라면 것 땜에
판이 안나가도 시도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 아니면 차라리 CD앞에 써버리지 뭐 이렇게 욕 들어있음 사는 건 소비자가 알아서 해야 할 판단이라는 말씀 그리고 청소년 문제 해결하고 싶으면 다른 데 같이 교육문제나 아니면 학교 폭력문제나 봐라 나는 참견 말고 대중가요 탓 말고 huh- 결국엔 모두가 니네 문제 니네가 만일 일제시대 직전처럼 꽉 막히게 굴면
앞에 남은 건 경제 식민지 이런 게 진짜 큰 문제 스스로 하고 말고 판단하는 게 우리의 가장 큰 숙제 진짜 니가 할 일이나 열심히 하는 게 너에게 유일한 과제 그러면 다가오는 21세기는 우리들만의 축제
얼핏 보면 상당히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이러한 노랫말 작업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점은 자 신들의 나르시시즘적 욕구의 좌절과 사춘기적 반항심리를 여과없이 토해냄으로써 자신들과 비슷한 갈등 및 좌절의 늪 에 빠져 있는 청소년들의 심성을 자극하고 세대간의 단절을 더욱 조장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본다. 이는 결국 상호 이해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적인 기성세대들 이 다 죽고 없어지는 날, 바로 그날이야 말로 진정한 해방의 날이며 그때 가면 하고싶은 짓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무 책임한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건전하 고 신랄한 비판과 무책임한 반사회적 일탈행위에 대한 분 별이 명확치 않은 청소년들이 이같은 메시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주어질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지 않 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사회에서는 소외된 극히 일부 계층에서나 환영받는 갱스터 음악 등이 그대로 여과없이 우리나라에 직수입되어 버젓이 주류로 자리잡게 되면서 아무런 배경이나 토대가 없 는 청소년들에게 십대 가수들은 마치 종교적 구원을 제시하 는 사랑의 전도사이기라도 한 것처럼 비쳐지게 되었다. 미 국의 어떤 그룹은 심지어 진정한 성혁명을 완성시키기 위 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아들에게 직접 성경험 을 가르치고 솔선수범하여 근친상간을 실천해야 한다고 외 치기도 한다. 일종의 서로의 필요에 따른 공생관계처럼 십 대 가수들과 청소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묵계가 이루어지 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검증안된 외국가수들의 대중 음악에 대한 무분별한 모방은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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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청소년들은 불쌍하기 그지 없다. 저급하고 추악함을 추 한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러움과 아름다운 대 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소위 공해산업이라는 것이 있 다.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국내에서 환경오염이나 건강을 해 칠 수 있는 산업체의 시설들을 자신들의 국내에 건설하지 않고 저개발국가에 공장을 세움으로써 일거양득의 전략을 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강대국과 저개발국가간에 이해관계 가 맞아 떨어지게 되면 국민들의 건강문제나 환경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대중문화도 마찬가지 논리로 설명될 수 있다. 저명한 사회학자이며 록 비평가인 Frith (1983)는 오늘날 상업적 착취와 조작에 의해 음악의 순수 성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음을 상기시키면서 록 음악은 그것이 대중문화가 아닐 때, 즉 뮤지션이 자기 자신 을 위해 스스로 좋아서 음악을 만들 때만 좋은 음악일 수 있다고 하였다.
대중매체와 성
오늘날의 대중매체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막강한 영 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무리 최고의 권력자라 해도 대중 매체 앞에서는 맥을 못추기 마련이다. 맥루한의 이론은 이 미 고전이 된지 오래지만 그에 따르면 대중 매체는 뜨거운 매체(hot media)와 차가운 매체(cool media)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는 분류의 기준을 정밀성(definition)과 참여성 (participation)으로 설정했다. 예를 들면 뜨거운 매체는 고 정밀성과 저참여성이 특징이고 차가운 매체는 저정밀성과 고참여성이 특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영화는 뜨거운 매체인 반면에 텔레비전은 차가운 매체이다. 마찬 가지로 라디오는 뜨거운 매체이고 전화는 차가운 매체이다.
사진은 뜨거운 매체이고 만화는 차가운 매체이다. 맥루한에 의하면 텔레비전은 차가운 매체이기 때문에 뜨거운 선동에 는 전혀 적합치 않다고 하면서, 만약 히틀러 치하에서 텔레 비전이 널리 이용되었다면 히틀러는 곧 사라지고 말았을 것 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라디오는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 지에서 선동의 매체로서 이용된 주된 방법이었지만 텔레비 전은 미국이나 쿠바에서는 그 나라를 차분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강준만 1996). 그러나 맥루한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라디오가 대중을 뜨겁게 선동했다는 증거도 없을뿐더러 텔 레비전의 출현이 우리사회를 더욱 차분하게 만들었다는 증 거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사회는 매체의 뜨겁고 차 갑고의 차이보다는 매체 이용자들의 뜨겁고 차가운 심리적 상태가 더욱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우리사회의 TV 토크쇼, 드라마, 영화, 코메디, 대중가요, 상품광고 등 모든 매체 영역을 지탱해주는 양대 수레바퀴는 바로 성과 폭력이다. 특히 십대들의 가요 및 영화는 성과 폭 력이 빠지면 흥행도 안되고 수입도 줄기 때문에 날이 갈수 록 자극적인 방향으로 팬들을 유혹한다.
우리 영화계를 예로 들자면, 90년대 말과 21세기 초에 걸 쳐 우리사회 영화계를 강타한 성과 폭력의 주제는 바로 우 리 자신들의 자화상이다. 비틀려진 십대 청춘들의 성적 욕 구와 공격성은 적절한 배출구를 찾지 못한 채 거리를 누비 며 온갖 객기와 투정을 부리고 세상을 골탕 먹이다 결국에 는 그에 대한 인과응보로 피투성이 범벅이 되어 비참한 결 말로 가고 만다는 상투적인 각본이 항상 기본으로 깔려있다.
무릎과 무릎 사이, 너에게 나를 보낸다, 노랑머리, 빨간 마 후라, 거짓말, 나쁜 영화, 뼈와 살이 타는 밤, 애마부인, 뽕, 젖소부인, 매춘 등의 말초적인 자극을 건드리는 에로물, 장 군의 아들, 인정 사정 볼 것 없다, 신라의 달밤, 친구, 주유 소 습격사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파이란, 조폭 마누라, 킬러들의 수다, 피도 눈물도 없이, 네발가락 등으로 이어지 는 심한 욕설과 잔혹한 폭력으로 얼룩진 조폭 시리즈 등은 모두 인간의 잠재적인 성과 폭력의 대리 충족을 대가로 하 여 수입을 올린 전형적인 예들이다. 물론 성과 폭력은 우리 뿐만 아니라 헐리우드 오락영화를 이끄는 두 개의 수레바퀴 같은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성과 폭력이 기묘하게 어 우러져 특이한 새도매저키즘적 양상을 보이는 것이 마치 정 석처럼 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Chancer(1992)가 고찰 한 자본주의사회와 새도매저키즘간의 역학관계는 주목할만 하다. 그녀는 새도매저키즘을 지배-종속 관계뿐 아니라 상 호 공생적 관계에 주목하고 결국 새도매저키즘은 타자로부 터 인정을 얻으려는 줄기찬 욕망으로 동기화되어 있다는 것 이다. 결국 일찍부터 독립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사회는 많은 남성들로 하여금 새디스트가 될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고 반면에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매저키스트인 어머니가 자신의 딸에게도 매저키스트적인 역할을 물려주기 쉽다는 게 그녀 의 설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에 와서 특히 성 폭력과 가정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 등이 왜 그토록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사회에 만연한 성과 폭력의 결합에 관한 의문들이 다소 풀릴지도 모르겠다.
Freud(1920)는 인간의 기본적인 동력으로 사랑의 에로 스와 파괴적인 타나토스를 말하였다. 그리고 새도매저키즘 환자의 임상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쾌락원리가 잘못되었음 을 솔직히 시인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환자에 따라서는 고 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고통을 찾고 즐기고자 하는 역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영화에서 유독 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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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저키즘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은 아직도 우리가 그만큼 성적인 욕망의 처리에 미숙한 점이 많다는 증거가 되 는 것이며 오랜 유교적 관습에 의해 아직까지도 심층 내부 의 깊고 어두운 욕망의 실체를 인정하지 못하고 또한 적절 히 승화시키는 능력마저도 여의치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는 것이다. 예술적 표현 방식에 있어서 여과되지 못한 직설 적 표현 방법의 역효과는 오히려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현 실감이 떨어지는 과장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절 제된 표현을 통하여 오히려 인간 내면의 복잡 미묘한 감정 적 변화 과정을 드러낼 수 있는 고도의 테크닉이 부족한 것 이다. 그런 점에서 코메디에서 보이는 성은 십대가요나 영 화보다는 그래도 훨씬 우회적인 편이다. 예를 들어 뽀빠이 이상용의 다음과 같은 성인용 음담패설은 성적인 갈등과 불 륜에 관한 내용이지만 코믹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 으면서도 동시에 그속에는 오이디푸스 갈등의 측면까지 다 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가요나 영화보다 한 수 위의 테크 닉을 구사한다 .
아들이 아빠에게 물었다.“아빠는 왜 내 것보다 물건이 더 커?”
아빠가 말했다.“자동차도 크기가 다 다르듯이 물건도 다르단다.
그러니까 아빠는 뉴그랜저고 너는 티코인 셈이지.”
아들이 엄마한테 가서 말했다.“엄마! 아빠가 그러는데 나는 티코 구 아빠는 뉴그랜저래”
엄마가 말했다.“흥, 무슨 뉴그랜저가 턴넬만 들어가면 시동이 꺼 진대냐?”
아들이 아빠한테 가서 말했다.“아빠! 엄마가 그러는데 무슨 뉴그 랜저가 턴넬만 들어가면 시동이 꺼지냐고 그러는데”
아빠가 말했다.“1호 턴넬만 그렇지, 2호 턴넬은 시동 안꺼지구 잘 간단다”
아들이 엄마한테 가서 말했다.“엄마! 아빠가 그러는데 1호 턴넬만 그렇구 2호 턴넬은 잘 간대”
엄마가 말했다.“응, 엄만 그럴줄 알구 이미 차를 뉴그랜저에서 소 나타로 바꿨단다”
대중적 인기와 성은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다. 자니 윤, 박 세민, 김형곤, 마광수, 김용옥, 구성애, 오현경, 서갑숙, 백지 영, 박진영, 싸이, 유승준, 하리수, 앙드레 김, 홍석천, 등등 숱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화제의 중심이 되었던 연 예인 또는 스타급의 저명인사들이 일으킨 돌풍의 내막을 알 고 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의 공통점은 성을 자신 들의 인기에 접합시켜 적절히 이용할줄 알았다는 점이다.
자니 윤은 심야 토크쇼를 마무리 하면서 주부 시청자들에게 말하기를“이제 작업복으로 갈아입을 시간이 되었네요.” 라 고 함으로써 텔레비전 화면에서 성적인 농담의 금기를 처음
으로 깨트렸다. 즉 성적 담론이 사회의 중요한 의사소통 수 단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인데, 성적 자극이나 매력도 더 욱 노골적이면서 대담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 는 섹시하다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일상용어로 사용되기 시 작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섹시라는 말을 아무데나 붙여서 사용하는 바람에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경우도 있는데 화장 품 이름에 붙인 상표이름 섹시 마일드가 그런 사례에 속한 다. 특히 젊은이들은 감각적 훈련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신체노출, 염색, 걸음걸이, 시선, 삭발 등의 시각적 측면에서 성적 욕망을 발산시키고자 하며, 비트 사운드, 드럼, 비음, 신음 등을 통한 청각적 측면에서도 성적 욕망을 충족시킨 다. 향수, 체취, 땀내음, 분비물, 입김 등의 후각적인 자극 또한 마찬가지 효과를 보인다. 피부감촉, 어루만짐, 포옹 등 의 촉각적인 만족과 구강활동을 통한 미각적인 측면도 성 적인 만족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서 기존의 가치관이나 상 식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엽기적인 성의 돌풍은 다소 일 탈된 성적 카타르시스, 새도매저키즘적 카타르시스, 악마적 카타르시스 등을 통하여 억압된 내면적 공격성과 성적 욕 구를 부분적으로 해소하는 게 아닌가 한다.
성과 공격성은 대중문화의 양대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 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원초적 욕동의 승화가 아니라 즉각적이고도 직접적인 분출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참고 기다릴 줄 모른다. 마치 젖 달라며 울고 보채는 아기들 처럼 즉각적인 욕구 충족만이 그들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 기로 하듯이 대중 매체들은 기다림의 미덕과 투쟁하며 싸운 다. 성과 공격성은 서로 적대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한다. 또한 원초적 욕구에 대한 대리만족의 기능이 잘 이루어지면 욕구좌절의 적절한 극복도 더욱 용이해 지리라 본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그러한 사회적 장치 마련에 무심 한 결과 오늘날에 와서 그 대가를 톡톡이 치르고 있는 중이 다. 사회적 권위가 무너지고 부모와 교사들의 권위가 흔들 리면서 십대들은 자신들만의 우상과 영웅을 필요로 한다.
Chasseguet-Smirgel(1975)은 크고 작은 집단들은 금지 적 초자아를 대표하는 부모상이 아니라 환상을 심어주는 거 짓 부모상을 나타내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 적하였는데 이들 지도자들의 특성은 원초적 자아 이상, 거 의 만능에 가까운 힘을 지니고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전 오이디푸스적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 개인과 집단을 결 합시키는 나르시시즘적 열망을 확인시켜주는 이데올로기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들은 부모에 대한 실망과 반항심을 달래줄 새로운 이상형을 찾아 나서지만 그러한 배경에는 원초적 단계의 나르시시즘으로 회귀하고 픈 퇴행적 욕구도 한 몫을 이룬다고 보겠다. 그러나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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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영웅이 사라진 대신 그 자리를 온갖 우상들이 차지하게 된 점이라고 본다. 영웅은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 그대신 온갖 문화적 환영들, 혁명적인 감언이 설들과 선정적인 몸짓들 그리고 파괴적 악동들이 이 사회 의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시점에 와 있다. 이러한 주장 은 물론 일부에 국한된 전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오늘 날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메마르고 무질서한 심성들의 현장 을 결코 회피해선 안될 것이며 용기있게 문제점을 인정하 고 개선해 나가는 전향적인 태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 이기도 하다.
인터넷과 성
컴퓨터의 보급은 대중문화의 특성뿐 아니라 자라나는 청 소년의 인성 발달에도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게임 의 폭발적인 인기도 그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시각 적 자극과 더불어 가상과 현실의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환 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비일비재로 나타나 기 시작했다. 즉각적인 욕구의 충족으로 인하여 단 몇 초도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성이 더욱 조장되었다. 욕구 충족의 기회를 조금만이라도 지연시킬 수 있는 자제력에 결함이 드 러나기 시작했다. 단 한번의 손놀림으로 어두운 현실의 장 막을 걷고 환상적인 가상의 세계가 눈앞에 전개되는 꿈같 은 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즉 간단한 클릭 한번으로 즉각적 인 현실 도피 수단이 마련됨으로써 청소년들은 골치 아픈 고민 따위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동시에 무제한의 영역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검열의 마수를 벗어나 자유롭게 청소년들의 두뇌를 장악함으로써 그러한 헛점을 이용한 포르노 사이트의 침투는 유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성 인들의 고루한 섹스관에 치명타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퇴행과 환상, 가상과 현실의 불분명한 선상에서 청소년들은 소위 코쿤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심리적 고립상태 또는 새 로운 소외 형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즉 인간적 교류 및 유 대관계를 맺기보다는 가상적 공간의 비현실적 관계에 안전 하게 안주하는 퇴행적 방식을 더욱 선호하게 된 것이다. 간 단한 클릭만으로 가상의 현실로 즉각적인 도피가 가능해진 세상에서 인내심을 지니고 힘든 현실적 고통과 부담을 견 디어보라고 격려하는 것이 그들에겐 얼마나 어리석은 짓으 로 비쳐질 것인가. 컴퓨터 세대에 알맞는 신종 유머로 인기 있는 광수생각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빠, 난 어디서 왔어?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왔지
현실과 가상적 세계와의 혼란은 마치 환각제를 통한 환각 상태에서 경험하는 혼란을 연상시킨다. 예수는“진리가 너 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과 연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전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었 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곳 에 진실은 따로 존재하는가? 동굴속에 갇혀 지내는 혈거인 들은 어둠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동굴 밖에 나가 태 양을 보고 경험한 사람이 돌아와서 아무리 빛에 대해서 설 명해도 이해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프로이트 역시 인간의 무의식이 존재함을 역설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오 늘날에 와서 인터넷의 가상세계에 빠진 사람들도 그와 비 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라도삼(2001)은 영화 [매트릭스]
의 예를 들면서 예수의 선언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는데 가 상과 현실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매트릭스의 세계야 말로“도대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어디인가? 아날로그 세상인가 아니면 디지털 세계인가? 현실인가 가상인가?”에 관한 의문을 증폭시킴으로써 우리 모두를 혼란에 빠트린다 고 하였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매트릭스가 알려주는 사 실은 우리 모두는 알고 보면 노예라는 사실이다.
이미 인터넷은 무한대의 심리적 퇴행을 위한 공간이 마 련되어져 있으며 그러한 가상적 세계의 흥분과 환상 경험은 비록 가역적인 일시적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건전한 심성 발달을 보이는 사람들에 해당되는 말이며 문제는 현 재 심성 발달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이거나 심리적 취약성을 지닌 성인들의 경우는 오히려 부정적인 피해를 입게될 가능 성이 높다고 하겠다. Kernberg(1998)에 의하면, 모든 대 중문화의 핵심은 오락 및 여흥거리의 제공인데, 이는 개인 들의 심리적 욕구를 가장 잘 반영한다고 하였다. 특히 대중 매체의 특성상 직접적인 신체 접촉 없이도 실제로 모두가 함께 집단 속에 참여한다는 착각을 부여하기 때문에 사람들 은 각자의 집안에서 안전하게 고립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환 상들을 투사시킴으로써 욕구 충족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 이다. 신문을 읽거나 TV를 보는 행위도 군중속의 한 일원 이 된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인터넷을 통한 가상 게임 이나 포르노에 몰두하는 것 역시 보이지 않는 안전 장치의 보호막 속에서 안심하고 퇴행하여 자신들의 개인적 환상과 욕망들을 해소시켜 주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 고 그러한 쾌감을 맛보게 되면 그러한 유혹을 손쉽게 물리 치기 어렵게 된다. 그러한 안전 장치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 의 나르시시즘, 도착적인 욕망, 잔혹성, 편집증적 경향, 복수 심, 반항심, 공격성 등에 관련된 환상들을 충족시키기 마련 이라는 것이 컨버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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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와 성
학문의 타락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광고심 리학을 들 수 있겠다. 상품은 자본주의사회의 꽃이다. 대량 생산된 상품들을 팔기 위해 등장한 광고의 마력과 위력은 거대 기업의 물량공세에 힘입어 대중들에게 엄청난 영향력 을 지니고 상품 선택권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 면 상품의 선택권은 당연히 소비자가 지니는 것이지만 광고 심리의 발달로 얼마든지 대중들의 심리조작이 가능해지면 서 상품의 선택권은 소비자로부터 광고를 무기로 삼는 대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광고의 이면 에는 대중들의 심리적 취약지구를 찾아 집중적으로 공략하 는 심리적 전략이 연구되는 동시에 교묘히 은폐된 성적 자 극 및 호기심 유발을 통하여 상업적인 미끼가 이용되기 시 작한 것이다(김덕자 1989). 가장 고전적인 성공 사례로 꼽 히면서 수많은 광고디자이너들 사이에 전설적인 신화처럼 운위되고 있는 코카콜라 병을 예로 들어보자. 세계대전 중 에 미군병사들에 인기를 끌 수 있는 콜라병 디자인 공모에 서 당선된 그 유명한 디자인의 내막을 알고 보면 병의 디자 인이 여체를 모델로 고안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즉 남자들은 여자의 허리 부분을 한손에 쥔 채 시원하고 톡 쏘 는 콜라액을 마시는 것이다. 동시에 콜라병은 남근의 상징 도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Dicks(1972)의 팝콘 실험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유명한데, 그는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 게 영화 스크린의 중간 중간에‘Eat Popcorn’이라는 메시 지를 몰래 삽입시켜서 실험을 해봤더니 그렇지 않은 군보다 몇 배의 팝콘 매상을 올렸다는 보고를 한 것이다. 물론 그런 자막은 스크린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얼마든지 광고의 조작에 따라 사람 들이 움직일 수가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으로 상당히 충격 적인 실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콜라나 팝콘같은 음 식상품의 광고에 성을 이용하는 것이 매상을 올리는데 과연 실제로 효과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특히 술, 담 배, 청량음료, 아이스크림, 햄버거, 우유, 과자, 초콜렛, 소시 지 등의 선전에 교묘한 방법으로 드러나지않게 성적인 자 극을 유발하는 도안이나 문안을 삽입시킨 경우가 많다(李 炳郁 2001).
김동중 등(2000)은 현대사회의 광고는 대중들에게 자신 의 의지와 무관하게 육체를 감시하고 학대하거나 바꾸기를 강요한다면서 오늘날 대다수의 여성들은 자본주의 매체가 만들어낸 규격화된 육체의 이미지와 기호속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매체와 광고는 전략적으로
절대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을 만들고 그들의 전략에 따르기 위해 대중은 스스로가 훌륭한 전술가가 된다고 하였다. 따 라서 훌륭한 전술을 수행한 대중들은 그 대가로 육체의 나 르시시즘을 경험하게 되고 그것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무한 대의 자유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상도덕 내지는 광 고윤리를 무시하고서라도 대중을 사로잡으려는 시도는 결 국 심리학을 통한 대중조작이라는 사회윤리의 붕괴, 학문의 탈선이라는 문제를 야기시킨다. 광고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 아동들이나 청소년들에게는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직접적인 경로를 거쳐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맺 는 말
우리사회는 깊이 병들어 있다. 특히 우리 삶의 중요한 부 분을 이루는 대중문화의 병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병들어 있다. 대중매체를 통한 가치 전도의 확산은 그에 대한 적절 한 대안도 없이 마치 복음처럼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오늘날의 대중매체는 십대들의 귀와 눈을 이미 장악하였으 며 끊임없이 그들의 뇌를 조건화시키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는 중이다.
청소년의 좌절과 반항, 대중매체의 무분별한 선동, 그에 따른 세대간의 단절, 애정과 존경의 실종, 교육의 실종, 권 위의 상실, 가족 및 도덕성의 붕괴, 기존의 고루한 가치관 을 대체할 새롭고 건전한 가치관의 부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오늘날의 우리사회 대중문화의 문제점은 이 사회의 총 체적인 한국병을 상징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자라나는 어 린이들은 물론이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의 입장에서도 어 떻게 하면 병든 대중문화의 오염으로부터 아이들을 떼어놓 을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큰 골치거리가 되고 말았 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허와 실을 따지는 문제는 그리 간단 치가 않다. 왜냐하면 대중문화는 이미 우리 삶의 소중한 일 부가 되어 버렸고 문화를 무시한 삶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 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물론 TV 안보기 등의 운동 처럼 극단적인 조치를 과감하게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도 일부 존재하긴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전자 파의 위해를 고려하여 모든 전기제품 사용을 중단하자는 것 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나 계층들의 심성에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Romanowski(1996)는 현대사회의 대중문화의 특징은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경계가 무너진 점에 있다고 하면서 상업화가 그런 경향을 가속화시켰음을 상기시키고 문제는 그러한 저급문화의 요인들이 사회에 전혀 무해한 오락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