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ychoanalysis and Psychoanalyst
Young Sik Yoo
Hanbit Neuro-Psychiatric Clinic, Bucheon, Korea
정신분석과 분석가
유 영 식
한빛신경정신과
Received: June 26, 2015 Revised: June 30, 2015 Accepted: July 1, 2015
Address for correspondence: Young Sik Yoo, MD, PhD
Hanbit Neuro-Psychiatric Clinic, 228 Sinheung-ro, Wonmi-gu, Bucheon 420- 849,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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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언
정신분석공부를 시작하고 25년만에 국제분석가가 되고 나 니 감개가 무량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그 동안의 과정 에 대해 정리해 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분 석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내가 어떻게 분석공부를 시작 했는지? 내가 분석과정에서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경험했 는지?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나에게 환자, 분석가, 감독자의 존재는 무엇이었는지? 이러한 것들을 정리해보는 것이 분석가로서 나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지속적으로 나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
돌이켜보면 나는 학생시절부터 카우치(couch)를 사용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정신분석의사(분석가)를 동경하였다. 그 이유는 분석가가 환자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복잡한 갈등 과 상처를 깊이 이해해주고, 치료해주며 또한 성격문제들을 변화시키고 교정시킬 수 있는 훌륭한 능력을 가진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대학시절 내내 계
속되었고, 졸업 후 나는 주저없이 정신과 전공의 과정을 선택 하였다.
전공의 생활 중 나의 관심분야는 주로 역동정신치료였다. 당 시 내가 볼 수 있는 환자들은 주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입원 환자였지만 정신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되면 역동적 정신치 료를 시도하였다.
그 시절 첫째로 기억나는 환자 중에 도박중독에 빠져서 많 은 금전을 탕진하고 도박단절을 위해 가족의 권유로 입원했 던 환자가 있었는데, 내가 역동적 접근을 통해 알게 된 사실 은 그가 수동 의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도박을 통해 반복적으로 독립적이고 강한 자신의 이미지(image)를 가족 들에게 보이고 싶어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고자 우월성을 얻는 베 팅(betting)을 추구하였다. 둘째로 기억나는 환자 중에 배우자 와 헤어지고 우울증에 시달려서 입원하게 된 환자가 있었는 데, 내가 적극적으로 그 환자의 역동적인 이해에 바탕을 두 어, 면담을 해나가면서 환자가 호전되고 외출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외출해서 돌아올 때마다 나에게 한 가지씩 선물을 사 가지고 와서 감사의 표시를 하였는데, 나는 다소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의 행동이 긍정적 전이현상이지만 그것이 치료자로부터 거부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방어수단 이었던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취약한 내면세계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나에게 정신과 치료에 있어서 역 동적 접근은 충분히 흥미로운 분야였다.
정신분석의 시작
1988년 대학에서 임상강사를 하면서 정신치료모임에 나가 게 되었고, 나는 역동 및 분석적 정신치료에 더 큰 관심을 갖 게 되었다. 그 이듬해인 1989년 봄에 선배의 추천과 조두영
교수님의 권유로 한국정신분석학회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나의 정신분석공부가 시작되었다. 처음에 프로이 트와 정신분석의 역사, 정신분석이론, 꿈 분석,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사례공부, 그리고 대상관계이론, 인격의 발달과정, 방어기제, 정신분석의 기법 등을 공부하였다. 특히 1990년 4월 과 1992년 8월에 한국정신분석학회 초청으로 Joseph Sandler 선생님이 한국을 방문하여 정신분석이론강의와 정신분석사 례지도를 우리에게 해주셨는데 이것이 나에게 큰 감명을 주 었고, 1992년 3월에 경계선인격장애 연구의 대가이신 Otto Kernberg 선생님이 방한하여 정신분석에 대한 심도있는 강 연을 해주신 것이 정신분석에 대한 나의 시야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에서의 정신분석공부
1992년 Otto Kernberg 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후에 그 분이 근무하는 뉴욕 코넬대학에 방문연수 할 것을 계획하게 되었 다. 결국 1994년 8월 말에 코넬대학 정신과에 방문학자로 가 게 되었고, 경계선인격장애 및 식이장애의 치료에 관한 프로 그램에 참가하면서 정신분석공부를 병행하게 되었다. 정신 분석공부를 위해서는 우선 개인분석이 필요했고, 분석연구소 에 후보생(candidate)으로 들어가야 했다. Kernberg 선생님 의 추천으로 개인분석해주실 분을 만났고, 콜럼비아 분석연 구소의 입학사정관도 만났다. 개인분석은 1995년 1월부터 2년 간 받게 되었고, 분석교육과정은 1995년 9월부터 2년간이었다.
분석가와의 예비면담
개인분석을 위해 3분의 분석가를 소개받았다. 그분들 중 한 분을 선택해야 했다. 그분들과 면담을 하기 위해서 나의 일대 기(autobiography)와 약력(curriculum vitae)을 보냈고, 약속 시간을 잡았다.
첫 번째 만난 분은 50대 중후반의 남자분석가로 Dr. M이 며, 연구세미나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 분이었다. 키가 크고 미남에 위엄을 갖춘 분으로 나에게 여기에 온 이유를 물었고, 또한 나의 개인 안건(personal issue)이나 증상(symptom)이 있는지, 그리고 나의 가족에 관해서 물으셨다. 거기에 대해 서 나는 모두 답변을 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분은 나에게 연 구세미나에서 우리가 같이 있었을 때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느꼈느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좋았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 다. 그리고 Dr. M은 “내가 너에게 좋은 분석가가 될 것 같으 냐?”라고 물어서 “네”라고 답변을 했다. 그러면서 그분이
“내가 지금 너의 분석가가 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어서 나는
“당장은 말할 수 없습니다. 다른 두 분을 만나본 후에 결정하
겠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
두 번째 만난 분은 50대 초반의 여자분석가로 Dr. R이며, 수려한 인상에 친절한 분이었다. 내가 먼저 여기에 온 이유를 말했고, 그분이 나의 개인안건(personal issue)과 가족에 대해 서 물었다. 그분은 나와의 개인분석은 “분석취소 환자가 없 으면 일정상 이듬해 5월이 되어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고 하셨다. 그리고 12월 APA에 참가하라고 하셨고, 매주 화 요일 지역 분석세미나에 참석해도 좋다고 하셨다. 어쨌든 나 에 대해서 친절히 잘 안내해주셨다.
세 번째 만난 분은 Dr. Paulina Kernberg이며, Otto Kern- berg 선생님의 부인이시고, 60대 중반으로 조용하고 점잖은 분이었다. 나는 그분이 왠지 어머니 같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먼저 여기에 온 이유에 대해서 물었고, 나는 내가 개 인분석 받으러 온 이유와 Dr. Otto Kernberg가 세 명의 분석 가를 소개해 주어 다른 두 명은 만났고, 세 번째로 여기에 왔 다고 말했다. Dr. P는 Dr. Kernberg가 정해준 순서대로 분석 가를 만난 것을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남성분석가와 여성분 석가 중에 누구를 원하느냐고 말씀하셨고, 나는 남성분석가 는 권위가 많아 보여 부정적 전이가 생길 것이 두려워서 여성 분석가가 낫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Dr. R은 어떠냐”
고 물어보셔서, “그분은 현재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현재는 제가 분석을 못 받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나는 “선생님에게 분석받고 싶습니다. 이것이 나의 결정입니 다”라고 말씀드렸더니, Dr. P는 그렇다면 “Dr. M에게는 뭐라 고 말할거냐”라고 물어보셔서 “여성분석가가 편할 것 같아 서 Dr. P에게 분석받기로 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겠다고 했 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면서, 나에게
“얼마나 분석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서 “2년간 가능합니다”
라고 말했다. 분석비를 정하고 나서 Dr. P는 “내년 분석시작 전 너의 마음이 변할 수도 있으니까 2회의 예비면담을 더하 자”고 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개인분석과정
예비면담이 끝나고 1995년 1월부터 Dr. Paulina Kernberg 와 나의 개인분석이 시작되었다. 우연인지 첫 분석 전에 세 개 의 꿈을 꾸었다. 첫 분석 시간에 꿈 세 개를 다 말씀드리기에 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두 개의 꿈만 말씀드렸다.
첫 번째 꿈은 꿈에 Dr. C가 보였고 그분이 다른 유명한 분 석가와 얘기하고 있었다. 그분이 말하기를 “나도 외국에서 전공의 생활을 했었는데, 공부는 외국에서 배워와야 한다.
외국에 있을 때 분석공부를 하면 한국에 돌아와서 치료비도 더 받을 수 있고 좋은 일이다”라고 하였다. 연상에서 나는 작 년 겨울 Dr. C를 만났던 것을 기억했고, 그분이 내가 분석공
부를 잘 해낼 것이라고 격려해주었던 것을 기억했다. 분석가 의 꿈에 대한 해석은 “네가 여기서 공부하고 쓴 돈을 나중에 보상받을 수 있다는 소망과 관련된 꿈인 것 같다”고 말씀하 셨다.
두 번째 꿈은 꿈에 내가 의과대학 강의실에 있었다. 10명의 학생이 있었고 그 중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이 카드놀이를 하 고 있었다. 얼마 후 선배 W가 들어와서 우리들의 태도가 나 쁘다고 10명 전부 한 대씩 때렸다. 한 친구가 말하기를 우리 가 선배에게 맞은 것은 이전 수업시간에 친구 A가 여선생님 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연상에 서 나는 선배 W와의 관계는 좋았는데 그가 나를 때린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고, 쓸데없는 질문(unnecessary qu- estion)과 관련 지어서, 내가 최근 학술모임(conference)에서 강사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것이 ‘쓸데없는 질문’이었나 하고 걱정했었던 것을 말씀드렸다.
분석가의 해석은 내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은 분석을 받고 있는 것이며, 내가 분석을 받는 것은 선배들을 배신(선배교수 들은 내가 개인분석을 2년 받을 것을 몰랐음)한 것이고, 원래 계획했던 것과 다소 다른 길(some different way)이 되기 때 문에 내가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즉 내가 선배교수들의 처벌 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분석가는 “쓸데없는 질문”에 대해서는 내가 분석을 시 작하는 데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세 번째 꿈(분석시간에 말은 안 하였음)도 굉장히 의미있 는 것 같아 나의 회고록에 기술하고자 한다. 꿈에 친구와 같 이 길을 가는데 고(故) 이승만 대통령 집의 지붕을 업자들이 보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업자들이 지붕 뒤쪽에 있는 양호한 기와를 빼서 앞 쪽의 망가진 기와를 메우고 있었다. 소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내가 친구에게 “저래서 되겠나? 새 기와를 사와서 지붕을 보수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나도 저런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 꿈은 나의 완전주의적인 성향과 연관되는 것 같 았는데, 분석이 나를 새로 완전히 바꾸어 주어야 하는데 ‘그 렇게 안되면 어떡하나, 즉, 겉만 바뀌어 보이고 내면의 나는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나의 염려와 연관된 꿈으 로 보였다.
나의 개인분석을 돌이켜보면 분석에 대한 불안으로 시작 했었던 것 같다. 왜냐면 두 번째 분석에서 나는 분석 끝 무렵 에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참을 수 없어서 분석가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 갔다 오게 되었다. 분석을 계속하고 그 시간 을 마쳤지만 다소 창피함을 느꼈고 내가 정말 긴장하고 있다 는 것을 느꼈다. 세 번째 분석에서 나는 불안에 대해서 말했 고, 내 사무실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고 했다. 분석가가 분
석실에 대해서 물어봐서 여기서는 긴장이 된다고 말했다. 그 리고나서 나는 전공의 시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는 데, 그 시절에 나는 정신병동에서 환자와 같이 생활하는 것이 적응이 잘되고 즐거워서 전공의 생활을 잘 수행했으나, 나의 동료는 전공의를 그만두어서 안타까웠었다고 말했다. 분석 가는 내가 소위 중간에 분석을 그만두는 것(drop out)을 걱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이시기를 내가 전공의 시 절 그만두지 않았듯이 분석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내 스 스로 안심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분석 중에 내가 두 번 웃었 는데 분석가가 왜 웃냐고 하길래 나는 선생님의 해석이 정확 히 내 마음을 찔러서 웃었다고 말했다.
나의 개인분석은 불안심리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2년간 큰 문제 없이 잘 진행되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분석이 마치 시 험보는 과정같이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인생을 돌 아보는 과정이며,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었고, 내가 가지고 있 었던 갈등들을 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분석가는 내 어머니처럼 느껴졌고, 나는 분석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언젠 가 분석에서 분석가가 “너는 내가 음식을 먹여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신 것이 기억나는데, 내가 분석가에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분석이 종결될 무렵 분석가는 나의 경제적, 시간적 여건으로 2년 이상 할 수 없게 된 것을 아쉬워 하셨고, 나 또한 공감하였다.
정신분석 교육과정(Didactic course of Columbia Psychoanalytic Center)
내가 콜롬비아센터에서 분석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 신 분들은 Dr. Otto Kernberg, Dr. Viedermann(advisor), Dr.
Robert Glick, Ms. Joan Jackson 등이다. 나는 뉴욕 맨하탄 60번가에 있는 분석연구소에 2년간 주 2회 출석해서 The Writings of Sigmund Freud-A Conceptual and Critical Re- view, Concepts of Ego Psychology and Object Relation Theory, Child and Adolescent development, Part I and Part II, Psychopathology I, II, The basics of the Psychoanalytic Process(Clinical theory and Techniques), Psychoanalytic Process I, II 등을 공부했다. 그당시 코넬 정신과 웨체스터 분원에 같이 있었던 미국 동료 세 명과 연구소에 같이 다녔 던 것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분석적 정신치료사례 및 이론슈퍼비전
미국 유학 중 미국에서 분석환자를 볼 수 있는 여건이 되 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내가 분석적 정신치료를 했었던 2명의 사례에 대해서 주 1회 슈퍼비전을 Dr. Kernberg로부 터 받았다. 그분은 사례지도뿐 아니라 분석이론도 곁들여서
나에게 지도해 주셨다. 내가 치료과정에서 보지 못했던 부분 들, 전이와 역전이 문제들, 저항 및 방어기제, 치료기법, 꿈의 해석 등 모든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주셨고, 관련된 논문, 학 술지, 책자 등을 소개해주셨다.
정신분석사례에 대한 개인슈퍼비전경험
나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3명의 분석사례에 대하여 미국의 유명교육분석가로부터 개인슈퍼비전을 받았 다. 나의 슈퍼바이저들은 Dr. Melvin Lansky(New center for Psychoanalysis, Los Angeles), Dr. Nadine Levinson(San Diego Psychoanalytic Institute), Dr. Alvin Robbins(San Di- ego Psychoanalytic Institute) 등 세 분으로 모두 교육분석가 시며, 북미에서 잘 알려진 분석가들이셨다. 이분들은 내가 피분석자들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정신역동체계화에 도움을 주셨고, 전이 및 역전이, 투사동일시 사용되는 방어기제, 저 항문제 등을 지적해주셨고, 꿈에 대한 해석에도 도움을 주셨 다. 또한 분석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물의 처리와 위기대응 의 기법들을 설명해주셨다. 지도감독자들은 분석이 순탄하 게 진행되었을 때는 격려를 해주셨고, 분석진행이 어려울 때 에는 공감을 해주셨다. 나는 이분들을 처음에는 분석 감독관 으로 느꼈지만 분석이 진행되면서 거의 대부분 나의 분석의 안내자, 충고자, 교육자로 느꼈었다.
한국 정신분석 스터디그룹 (Korean Psychoanalytic Study Group) 에 입학
2007년도가 되면서 한국에서 모두 5명(정도언, 홍택유, 유 재학, 이무석, 김미경)의 국제공인 분석가를 배출하게 되었 고, 이전까지 Korean Guest Study Group으로 불렸던 우리 학회는 2009년도에 국제정신분석학회산하 한국 정신분석 스터디그룹(Korean Psychoanalytic Study Group)과 연합센 터(Allied Center)로 발전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2년 이상 두 명의 사례에 대한 지도감독을 받지 못했으므로 국제분석 가가 될 조건을 갖추지 못했고, 따라서 한국 정신분석 스터 디그룹에 들어가야 했다. 나는 국제정신분석학회(Interna- tional Psychoanalytic Association)산하 한국후원위원회 (Korean Sponsoring Committee)와의 서류 및 면접심사를 통해 인준을 받았고, 그 해부터 상급 분석가 후보생(Advanc- ed Candidate)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위원회는 내가 스터디 그룹을 졸업하고 국제분석가가 되 기 위한 조건으로 첫째, 개인분석을 더 받을 것(단, 내 경우 는 특수상황으로 두 번째 분석이고, 나의 분석가가 사망하였
기 때문에 내가 외국분에게 분석을 받게 되면 전화분석도 가 능하다고 IPA에서 허용해주었음), 둘째, 1년간의 분석교육 (didactic course)을 더 받을 것, 셋째, 지속적 사례분석모임 (continuous case conference)에 참가하고, 스터디그룹 주관 학술모임에 참가할 것 등이었다. 그 조건을 전해 듣고 나는 다소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항목은 가능하나 첫 번째 항목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 거 나의 분석가였던 분은 이미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한국에서 국제분석가들은 모두 나와 학회에서 친분이 있는 분들이었다.
외국에서 두 번째 분석가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렇다 고 한국에서 분석가를 구할 수도 없고, 정말 진퇴양난의 심정 이었다. 그때 스터디그룹 후원위원회 의장이신 Dr. Light- body께서 나이가 많으신 한국분석가에게 접촉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조언하셔서 정말 용기를 내어서 그분에게 연락을 해보니 진지하게 고사하셨다. 결국 내가 2차 개인분석을 받 기 위해서는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2 차 개인정신분석과 마라톤
나는 2011년부터 2차 개인분석을 받기 위해 미국의 분석가 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감독자이신 Dr. Levinson의 소개로 San Diego Insti- tute의 여자분석가인 Dr. Rosen을 소개받아 연락드렸다. 그 무렵 2011년 11월에 한국 스터디그룹 후원위원회의 방문이 있었고, 이번 방문 동안 특별히 후원위원회 의장이신 Dr. Li- ghtbody께서 중앙일보 주최 한국마라톤 풀코스에 나가시기 로 계획되어 있었다. 나는 장홍석 선생님과 같이 Lightbody 선생님을 시합장에 안내해드리고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분은 약 4시간 40분만에 완주하고 돌아오셔서 완주메달을 받으셨고, 우리는 축하드리고 기념촬영을 함께 하였다. 나는 그분의 놀라운 투지에 감명을 받았고, 분석가이자 마라톤 애 호가이신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나는 그분과 돌아오는 길에 나의 2차 개인분석 계획을 말씀드렸고, 선생님 도 나를 진지하게 격려해주셨다. 이 일을 계기로 나 역시 마 라톤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1년 12월에 San Diego 연구소의 Dr. Rosen과 나의 개인 분석논의가 있었고, 일단 Skype로 몇 차례의 분석예비면담 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내가 San Diego를 방문해서 1주일간 1일 2회의 분석을 받고, 그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계속해서 Skype로 대면분석을 받는 것을 논의하였다. 결국 2012년 1 월에 San Diego, La Jolla를 방문하여 Dr. Rosen의 사무소에 서 분석을 받게 되었고, 분석 중에 그분이 Skype로 분석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2차 분석이기 때문에 시간적 제한이 있
는 것 등으로 인해 다소 분석이 쉽지 않을 것을 암시하셨다.
그분은 나에게 같은 연구소 소속 교육분석가이신 Dr. San- ford Shapiro를 만나보라고 하셔서, 나는 그분께 전화해서 약속을 잡고 만나게 되었다.
나와 Dr. Shapiro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그분은 내가 보 내드린 나의 약력을 이미 읽으셨고, 내가 분석졸업을 위해서 2차 분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주셨다. 또한 그 분은 미국 내 동부에 거주하는 피분석자들을 위해 이미 Skype로 대면분석을 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마 음속에 있는 부담되는 것을 다 말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내 가 분석공부를 20년 넘게 했는데 아직도 분석가가 되지 못한 것이 실망스럽다고 말씀드렸고, 또한 우리 가정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분석가에게는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렸음)이 있어 요즈음 힘들게 지내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Dr. Shapiro 가 “정말 네가 많은 압박(pressures)을 받고 있는 것 같다”라 고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에 나는 정 말로 눈물이 핑 돌았고 감격하였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 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Dr. Shapiro는 나에게 언제부 터 분석을 할 수 있냐고 물어서 다음달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일사천리로 적절한 분석비와 약속시간을 잡아주셨 다. 나는 San Diego에서 돌아오면서 정말 기뻤고, 좋은 정신 적 아버지(psychological father)를 얻은 느낌이었다.
Dr. Shapiro와의 Skype를 통한 분석은 1년 3개월간 지속 되고 종결되었는데, 나는 내가 분석받는 동안 마치 couch 위 에서 누워 분석 받는 것처럼 편안하였다. 분석가는 시작부터 끝까지 나를 이해주신 느낌이었고, 내 마음속 의식부터 무의 식까지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을 깨닫게 해주신 느낌이었다.
하루는 내가 피분석자를 분석해나가는 것에 대해서 지도감 독자에게 다소 심한 지적을 받고 낙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Dr. Shapiro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말해보라고 해서 그 내용 을 말씀드렸더니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잘하고 있고, 내가 보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셔서 내가 굉장히 자신감을 얻고 분석환자도 적극적으로 더 열심 히 보게 된 것 같다. 이 일을 계기로 후원위원회 의장이신 Dr.
Lightbody가 언젠가 나에게 “분석환자를 보면서 개인분석을 받아야 환자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문제도 극복할 수가 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새삼 마음속에 와 닿게 되었다.
분석수련졸업과 국제분석가 자격취득
분석상급후보생(advanced candidate)으로서 분석수련을 마치고 졸업요건을 갖추었을 때 2013년 10월에 방문한 한국 후원위원회 위원들(Dr. Lightbody, Dr. Falk)과 한국분석연
구회소속 분석가들 5명(정도언, 홍택유, 유재학, 이무석, 김미 경)이 배석한 자리에서 졸업 사례발표를 하게 되었다. 발표 는 성공적이었고, 후원회 의장이신 Dr. Lightbody의 졸업축 하 말씀과 여러 선생님들의 졸업축하 말씀이 있었다. 나는 정 말 감사하다고 했고, 지금까지의 내가 해온 과정들에 대해 뿌 듯함을 느꼈다. 1기 분석후보생들과 한국분석학회회원들께 도 이 소식을 알렸고 모두에게 축하도 받았다. 미국의 슈퍼바 이저 선생님들 또한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해 주셨다.
졸업 후 2013년에 11월에 Dr. Lightbody 선생님이 IPA Di- rect Membership(정회원 국제분석가) 자격을 얻기 위한 신청 서를 보내주셔서 그 신청서를 작성해 그분께 보내드렸다.
2014년 3월 초에 그분에게서 답변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최근 국제분석가 자격을 주는 기준이 엄격해져서 내 경우 국제분 석가 자격을 수월하게 받기 위해서는 IPA 산하 New Group Committee에서 지정한 분석가에게 일정기간 새로운 사례 슈 퍼비전을 받고, 그 분석가가 보고서를 위원회에 보내면 된다 는 것이었다. 나는 주저없이 새로운 사례에 대해 지정분석가 에게 슈퍼비전을 받았고, 또한 New Group Committee 의장 이신 호주 분석가 Maria Teresa Hooke 앞에서 새로운 분석 사례를 발표하였다. 그 후 2015년 1월 뉴욕 국제 분석학회 이 사회(IPA Board Meeting)에서 나의 정회원 국제분석가 자 격이 인준되었다.
맺 음 말
내가 경험한 분석은 마라톤과 같다.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 도 포기하지 않으면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 내 경우 분석 이란 마라톤을 뛰면서 여러 험준한 코스와 장애물을 경험했 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종착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내가 완주한 이 기쁨은 정말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완주했듯이 나에게 찾아온 피분석자들에게 분석가로 서 내가 완주한 경험과 지혜와 인내를 모두 나누고 싶다.
끝으로 나의 완주를 도와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우선 와병 중에 계시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항상 내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아내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조두영 선생님 이하 한국분석학회 선배선생님들, 중앙의대 정신과교실 선생님들, 미국의 Dr. Otto Kernberg, Dr. Paulina Kernberg, Dr. Melvin Lansky, Dr. Nadine Le- vinson, Dr. Alvin Robbins, Dr. Sanford Shapiro, Dr. Richard Lightbody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IPA의 Korean Sp- onsoring Committee, Korean Psychoanalytic Study Group, Allied Center, New Group Committee of IPA에게 감사드 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