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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 : 기조연설문 및 주제발표 요약 >

1. “왜 국가는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가: 기술수명주기와 산업선별의 역할”

(이 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해방 이후, 특히 1960년대 이후, 한국은 소위 압축성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선진국이 100년 이상 걸린 과정을 몇 십 년 만에 달성하는, 그래서 선진국과 의 격차를 급속히 줄이는 추격형 성장을 하여왔다. 한국과 대만이 중진국 함 정을 넘어서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혁신, 즉 연구개발 투자에 집중한 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부터 한국의 GDP대 비 R&D, 즉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1%를 넘어서고 전체 R&D 중에서 민간 R&D의 비중이 공공 R&D를 넘어서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Lee and Kim 2010). 이러한 한국과 대만의 경험은 중진국 함정을 넘어서는 근본적 해결책 은 결국 기술혁신을 통해서 보다 고가의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혁 신 능력임을 시사한다.

나아가 각 국가의 혁신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 제이며 이에 대해서는 슘페터 학파의 국가혁신체제(National Innovation System)의 개념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Lundvall, Nelson 등 슘페터 학파 는 일찍이 국가혁신체제라는 개념을 주창하며, 이 국가혁신체제의 차이가 각 국가의 혁신성과의 차이를 낳고, 그것이 그 나라의 경제성장을 결정지음을 주장한 바 있다. 본고에서는 한국이 과거 추격형 성장단계에서의 국가혁신체 제는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살펴보고, 나아가서 향후 한국이 선진국에 안착하 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의 보다 선진국형 국가혁신체제를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정책과제를 다룬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보면, 한국은 80년대 중반 이후 제1기술적 전환점을 통 과하면서 선진국과 차별되는 영역, 즉 기술주기가 짧은 분야에 특화 및 계속 진입함으로써 선진국과의 소득수준의 격차를 줄이는 추격을 상당히 달성하 였다. 동시에 지식생산의 토착화 및 기술다각화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이 후 한국은 2000년대 들어서서 기술수명이 긴 분야로도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제2전환점을 통과하였으나, 아직은 미완성으로 보인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에 나타난 기술수명이 긴 분야로의 특허출원은 이 시기의 한국정부가 추진 한 바이오 산업, 생명과학분야에 대한 집중지원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러한 생명과학 산업 진흥정책은 어느 정도 특허를 내는 데에는 성공하였으 나, 산업으로서 상업적 성공을 아직까지는 거두지 못하였다는 것이 일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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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이다.

혹자는 기술수명이 긴 분야가 진입장벽이 높고 후발자가 성공하기 어렵다 면 왜 그 분야에 굳이 진입하여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한국 이 현재 잘 하고 있는 IT 등의 짧은 수명주기 산업에 계속 특화해도 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잘 되는 산업을 계속 발전시키는 것 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문제는 기술수명이 짧은 분야는 우리가 빨리 추격하 였듯이 중국과 같은 또 다른 후발자가 금방 쉽게 쫓아올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현재 중국과 한국의 추격 속도를 검토해보면, 중국의 추격이 가장 빠른 분야가 바로 기술수명이 짧은 분야이다. 상대적으로 자동차나 기계부품 소재는 추격속도가 IT에 비해서는 느리다. 그래서 한국이 또 한번의 도약을 통해서 진입장벽이 높고 기술수명이 긴 부품소재, 의료, 바이오와 같은 분야 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후발자의 추격에 대해서 덜 걱정하면서 좀 더 안 정적인 경제상황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바이오 산업 같은 경우라 하더라 도 의학과 같은 Red 바이오, 식품과 같은 Green 바이오, 그리고 바이오 플 라스틱 같은 White 바이오로 나눌 때, 그 동안 시도한 Red 바이오는 상대적 으로 더 어렵다는 것이 판단된 상황 하에서 바이오 플라스틱과 같은 White 바이오 등이 더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에 태양광, 풍력, 조력, 지열 등 신재생 에너지 산업에 지속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수명이 긴 분야로의 진입이라는 과제 외에도, 한국은 지식생산의 토착 화나 기술다각화 수준도 더 높일 필요가 있고, 과다한 집중도도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은 기존의 소수 대기업 주도의 혁신체 제로는 어렵고, 중소기업 등 다양한 경제주체의 참여가 필요하다. 즉, 선도형 추격에서 동반형 추격으로의 전환 및 창조경제라는 화두가 어느 정도 적절 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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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의 중화학공업화 과정과 성과”

(오 영석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화 선언으로 본격 추진되었다.

한국은 1970년대 초반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중화학공업에 대한 대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져 1980년대 초반 및 1990년대 초반에 과잉투 자 문제로 합리화를 단행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한국은 기존의 산업 선별적 정책으로부터 기능별 정책으로 전환한 ‘공업발전법’의 제정(1986년)을 기점으로 민간기업의 자율성 확대, 혁신 주도형 산업발전으로의 전환, 대외 개방정책 등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중화학공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1980년대 중반의 3저 현상(원화의 저평가, 저유가, 저금리)과 2000년대 이후 중국의 부상은 한국의 중화학산업을 만개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의 중화학공업화는 경제력 집중, 경제의 불균형 성장 등 적지 않은 기 회비용을 가져오기도 했으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노동집약적 경공업에 비 교우위가 있었던 1970년대 당시의 비교우위 여건에 도전하여 자본․기술집 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하려는 기나긴 노력이었다.

실제, 한국은 1990년대 초반에, 노동집약재를 수출하는 노동풍부국에서 자 본집약재를 수출하는 자본풍부국으로 전환되는 커다란 구조적 변화가 일어 났다. 또 2012년 현재 조선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32.9%(세계 2위), 자동차 8.7%(세계 5위), 반도체 14.6%(세계 3위)에 달하는 등 중화학산업은 오늘날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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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만의 중화학공업화 정책경험”

(CHEN Tsung Yun 대만 ITRI 연구원)

본 보고서는 1970년대 대만에서의 중화학공업의 발전에 관하여 중점을 두 고 있다. 동 기간 중 대만 경제는 UN으로부터의 탈퇴와 1차 오일쇼크와 같 은 불리한 국제적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외부 도전 요인들과 관련하여 대만 정부는 수입 대체 산업 지원을 위하여 그 경제 정책상의 변화를 시도 하였다. 1970년대에 대만은 10대 인프라구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화학공 업화를 본격 육성하였다. 당시 중화학공업화는 경공업에 투입되는 중간재를 수입대체하기 위한 ‘수입대체형 발전전략’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대만 정부는 다양한 정책적 도구들의 도입을 통하여 내수 공급망을 활용 하고 기존의 하부 산업의 수요 충족을 목표로 하는 원자재 공급을 위한 상 부 산업의 구축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제반 노력들을 통하여 대만은 오일 쇼 크를 견뎌내고 산업화 수준을 성공적으로 심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위 ‘얕은 접시’ 형태라고 하는 대만 경제는 1980년대 들어 또 다 른 국제적 영향에 직면하였었다. 정책적 방향 역시 그 전략 산업들의 변경에 집중하였다. 즉 대만은 1980년대에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기계 및 IT 를 중심으로 한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패턴으로 전환하였다.

결론적으로 대만은 비록 중화학 공업에 대하여 역점을 둔 기간이 10여 년 남짓이었고 또한 정책적 강도 역시 비교적 강력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러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만 의 중화학공업화는 국영기업의 형태로 정부의 개입이 이루어졌으나 전체적 으로는 한국과 달리 시장주도형이었다. 또 향후 대만 산업의 발전방향은 기 술혁신을 통한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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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필리핀 중화학공업화의 수수께끼”

(Ma. Joy V. Abrenica 교수)

필리핀이 산업 및 기술적 기반 조성에 실패한 것은 정책 당국 및 학계 모 두에 있어서 하나의 과제이다. 여타 개도국들과 마찬가지로 필리핀 역시 지 난 1960년대에 내수에 중점을 둔 수입 대체 기반의 산업화 정책을 시도하였 고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수출 주도 정책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선진국 대 열에 진입한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필리핀은 아직도 협소한 수출 산업과 수 입 의존 및 미비한 지식적 기반의 한계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실 정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는 몇 가지 설명이 제시되어 왔다. 그 중 하나는 거 시경제적 실패라는 원인을 꼽고 있는데 이로 인하여 위기와 경기 상승이 반 복되는 패턴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즉 경기 상승과 침체의 사이클로 인하여 혁신 대신에 투기가 조장되어 왔다는 견해이다. 하지만 산업화에 성공한 동 남아시아의 국가들 역시 1970년대 및 1980년대의 격동기 동안에 이러한 활 황과 침체의 반복적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견해는 산업화의 실패 이유로 자유주의적이고 시장 중심적인 철학으로 인해 국가가 경제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지 못했다는 원인을 꼽고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 적 시장 경제는 필리핀의 정책 수립에 있어서 사실상 최근의 화두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필리핀 정부가 일정한 경제 계획을 토대로 한 직접 투자 및 생산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다만 그러한 계획이 성공한 국가들의 것 들처럼 잘 설계 및 시행이 되지 않은 것이다. 세 번째 견해에 의하면 대규모 의 자본 집약적 생산을 촉진함과 동시에 후방 통합(backward integration)과 농산물 생산 및 수출을 힘들게 하였던 장려 정책(관세 등) 구조상의 실패를 들고 있다. 그러한 구조는 소비재의 국내 생산 진작에 기여하였을 수는 있으 나 궁극적으로 한 국가의 산업적 기반이 되는 국내 자본재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였다. 필리핀의 기술 관료들은 산업 발전 도모를 위하여 외국으로부터 의 직접 투자에 너무 많은 중점을 두었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FDI들은 국 내에서의 능력의 배양보다는 정부 지원에 의한 세제 혜택의 활용에 더 관심 이 많았고 따라서 경제의 여타 부문과 그들의 간의 관계는 전혀 응집력을 갖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일부에서는 필리핀 지도층의 근시안적이고 이기 적인 태도가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왜 이들이 외국 에서보다 더 애국심이 약한지에 대하여는 설명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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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필리핀이 산업화에 실패한 이유에 관하여 개별적인 설명으로서의 가치는 있겠으나 그 어느 것도 독자적으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사실 산업화의 실패는 전술한 내용들 모두의 산 물, 즉 미흡한 거시경제 정책, 시장 자유주의, 결함 있는 장려 정책 구조, FDI에 대한 과도한 의존, 그리고 산업을 주도하는 계층의 애국심 부족 등이 어우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본고는 1960년대와 1980년대까지의 산 업 정책들을 지원할 역할을 가졌던 무역과 투자, 국내 규제, 인적 자원 및 과학과 기술 정책상의 혼선에 대하여 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정책상 불협 화음은 5개 산업군 즉,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그리고 펄프 및 제지 산업에서의 정책 실패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필리핀은 1970년대에 조선 산업을 발전시키려 시도하였으나 일본으로부터의 저가 중 고 선박의 자유로운 수입을 허용하였고 수입 선박의 취득에 대하여는 금융 적 지원 체계가 있었으나 국내에서 건조된 선박에 대하여는 그렇지 못하였 고 아울러 관련 산업들 (금속 주조, 단조, 기계가공 등) 역시 등한시 하였다.

한편, 자동차 산업 발전 프로그램은 중소 부품업체들의 등한시 및 조립 업체 들 국내 부품 사용 및 브랜드와 모델들에 대한 취약한 규제 때문에 실패하 였다. 결과적으로 외국계 조립 공장들이 국내 부품 산업의 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당초의 기대는 실현되지 못하였으며 동 발전 프로그램은 경제 의 나머지 부문들에 대하여 외부효과를 가져다 주지 못하였다.

본고는 1960년대 이래 필리핀 산업 정책의 동기 유발 및 장려책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본 내용에서는 프로그램 설계와 시행상의 취약점들을 지적하고 산업화 계획과 지원 정책간의 응집력 부족, 그리고 그러한 프로그램들을 시행하기 위한 제도상의 취약점들에 대하여 다 루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도로부터의 교훈을 바탕으로 본고는 현 정부의 산업 정책 관련 방향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아울러 국내 정책 선택과 관련한 새로운 무역 환경에 던져주고 있는 제한 요소들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다. 또한 취약 한 국내 산업들이 시장 환경의 도전 요인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하여 최근 정부가 발표한 지원 정책들에 대하여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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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브라질의 중화학공업화: 성공인가, 실패인가?”

(Mauricio Canedo 박사)

브라질과 한국 두 나라는 산업화 정책을 펼쳐온 경험들을 갖고 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일정한 산업화 정책의 경험들을 갖고 있다. 일부 국 가들은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여 한국과 같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국가들 이 있는 반면, 브라질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들이 원하는 결과들을 달성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성공과 실패의 관건은 산업화 정책이 대상으로 하는 기업과 해당 부문들 에 대하여 어떠한 장려책을 펼쳐왔는가에 달려있다. 명확하지 못한 지나친 보호 정책과 한시적 법안들의 미비, 투입 요소 및 신기술 채택에 있어서의 장벽들(브라질에서의 일반적인 경험)은 바로 실패의 요소가 된다고 볼 수 있 다. 한국은 이러한 실패 요인들을 피함으로써 경제 구조를 바꾸고 꾸준한 성 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한편 보다 높은 성장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일정한 수평적 정책들이 필요 한 조건들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적절한 인프라 기반과 인적 자원에 대한 충분한 투자, 그리고 적절한 거시경제적 환경이 갖춰지지 못한다면 해당 국 가의 성공은 확신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성공은 수평적 정책(교육과 인프라 및 혁신에의 투자)과 경공업 정책(기술자 양성에 대한 투자), 그리고 잘 설계된 중공업 정책(일정 부문들에 대한 보호와 여신 제공 및 향후 점차적인 지원의 감축과 국제 경쟁에 대한 노출 증대)들이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브라질에서는 산업화 정책이 짧은 기간 동안 후미로 밀려나있다가 점차로 공공정책 측면에서의 그 중요성이 더해져 왔다. 그리하여 21세기에 들어서는 연이은 공업 정책들이 발표되어 2003년에는 “공업, 기술 및 무역 정책(PITCE)”, 2008년에는 “생산성 향상 정책(PDP)”, 그리고 2011년에는 “브 라질 마스터 플랜(PBM)”이 각각 발표되었다.

기술 혁신 장려를 위한 진전은 있었지만 중공업 정책에 대하여 보다 많은 주안점이 두어졌다. 국내 물자 관련 기준들에 대한 중요성도 커졌고 내수 산 업 진작을 위한 정부의 구매력의 활용 역시 강화되었다. 소위 국가적 대표주 자들의 육성과 일부 부문들에 대한 예외 정책들도 마찬가지로 수립이 되었 다. 전반적으로 볼 때 국가 전체적인 성장을 위한 “목표 계획(Target Plan)”

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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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알제리의 사회주의적 중화학공업화”

(김계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1962년 독립 이후 사회주의적 이념에 따라 추진된 알제리의 국가주도 공 업화 전략은 기업의 위기, 국가 재정의 위기, 대외 채무 위기 등 3중의 위기 를 거쳐 1980년대 후반 시스템 위기로 귀결되었다.

알제리는 석유자원 등 주요 생산수단과 산업의 국유화를 통해 공업화를 위한 자금원을 확보하고, 계획화 방식에 따라 1970년대에는 대규모 공공투자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특히 이 시기 알제리가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OPEC의 등장과 국제 원유가격의 급등에 힘입어 알제리는 투자에 필요한 자 금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영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투자, 산업별 단일기업 체제라는 독 점 구조, 효율성보다는 양적 확대를 부추기는 유인 구조 등 사회주의적 공업 화에 고유한 문제에 산업간 불균형을 초래하는 투자배분, 현대적 산업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기업가 그룹의 부재, 정부 및 공공부문의 정책 역량의 부족 등이 결합되면서 발전전략은 공기업의 비효율성과 과잉채무, 대외채무의 누 적, 정부부채 증가라는 3중의 위기로 귀결되어 발전전략의 근본적 수정이 불 가피해 진다.

1980년대 초부터 기업분할과 분권화를 중심으로 한 체제내 개혁을 시도하 지만 형식적인 변화에 그쳤을 뿐 기업 운영에서나 정부정책 수준에서 근본 적인 변화는 없었다. 제2차 오일쇼크에 의한 대외경제여건의 호전이 일시적 으로 기존 발전전략의 생명 연장을 가능하게 했지만 80년대 후반의 원유가 하락을 계기로 알제리 경제는 정치·사회적 위기를 동반한 시스템 위기로 넘 어간다.

알제리 공업화 전략의 결과는 국가-국영기업 중심의 사회주의적 방식과 석 유자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라는 자원부국적 특성, 공업화 경험이 일천한 개도국적 특성의 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투자자금의 원천이면서 발 전전략의 유지를 가능하게 한 자원지대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업화 전략의 표면적 목표와는 달리 알제리 경제는 점차 지대추구경제 (rentier economy)로 변모되었고, 공기업-비공식경제로 이어지는 거래는 부가 가치 생산보다는 지대의 배분을 둘러싼 협상 네트워크로 변모되었다.

알제리의 중화학공업화 경험은 자원부국에서 국가-국영기업 주도의 대규모 투자로 산업다각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많은 나라들이 ‘자원의 저주’라는 함 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참고해야 할 타산지석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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