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 News, Volume 23, No. 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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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5번 교향곡
❙강 정 원 교수 (고려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구스타보 두다멜(좌)과 테오도르 쿠렌치스(우)>
베토벤의 기념비적인 교향곡 5번은 너무나도 유명하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간과하고 그 냥 넘어가기 쉬운 곡이다. 따따따 딴 ~으로 시작되는 <운명>을 누가 모를 것인가… 유명세 덕분에 비발디의 <사 계>와 더불어 입문자들은 이곡의 상세한 부분은 생략하고 지나가기 쉽다. 하지만 이 곡은 언제 어디서 누구의 연주를 들어도 그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명곡 중의 백미이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고뇌에서 시작 하여 환희로 종결된다.”라는 표현이나, “운명이 나를 두드린다.”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아도 순수한 음악의 한 곡으로 충분히 작품의 완성도를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측면은 음악의 역사에서 하이든-모차르트에서 시작된 고전적인 교향곡 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파격적인 시도라는 점이다. 5번 교향곡은 형식적으로는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충실 히 따르고 있지만, 그 내용은 인생의 고뇌를 소설처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교향곡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점이 있다. 즉, 이전까지는 음악이 어떤 행사의 장식물이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베토벤 은 하나의 스토리를 가진 독립적인 예술작품으로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더욱이 각 악장의 주제 선율들은 서로 상이하지만 뚜렷한 지향점을 가지고 설계되어 있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체계적인 음악의 설계는 이미 이전 작곡가들이 시도해 왔지만, 베토벤의 5번에서 보여준 것은 이러한 시도의 결정판 같은 것이었다.
흔히 이 곡을 접할 때 “따따따 딴”으로 시작하는 1악장의 주제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전 악장을 이어가는 중 요한 주제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2악장의 우아한 행진곡 풍의 변주곡과 3악장의 푸가를 곁들인 스케르초, 3악장 에서 쉼 없이 환희로 이어지는 불꽃같은 4악장이 더 인상적이다. 특히 종착점을 향하여 질주하는 듯한 4악장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마약 같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곡의 총 연주시간도 약 30분을 조금 넘는 분량 으로 부담 없이 감상하기에 적합하다.
KIC News, Volume 23, No. 3, 2020
음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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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화학 전망, 제23권 제3호, 2020이 곡의 연주에 대하여 논하자면 각자의 취향도 다르고 거의 모든 지휘자들이 자신의 명성을 걸고 최선의 녹 음에 도전했기 때문에 한두 장의 명반을 선정하기에도 부담이 된다. 음질을 따지지 않는다면, 2차 세계대전 시의 녹음에 해당하는 1942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를린 필의 연주가 최고의 명반일 것이다. 하지만 지글거리는 잡음과 귀에서 파열하는 금관악기의 소리를 감안하면 역사적인 연주를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감상해야 할 것 같다.
많은 비평가들이 추천하는 연주는 클라이버/카랴안/솔티 등의 연주인데, 특히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스튜디오 리코딩이 많지 않은데다가 특유의 탄력 있는 해석으로 7번과 함께 이 곡의 최고의 명반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연주는 빠르고 박력 있는 현대적인 해석의 연주로 알려져 있는데, 1악장은 다른 연주보다 매우 빠르지만, 4악장 도입부에서는 오히려 느려지고 있다. 다소 느리게 시작했지만 최후의 코다 부분에서는 갑 자기 가속이 붙어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쾌감을 연상시킨다.
카를 뵘의 연주는 흔히 느리고 진부한 연주로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베토벤의 3번, 5번, 6번의 연주는 상당 히 훌륭하다. 개인적으로 칼 뵘의 연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나친 루바토(박자나 강약의 작위적인 조절)를 잘 사 용하지 않고, 악보에 충실하면서 디테일을 중요시하는 연주를 한다는 점이다. 카를 뵘의 연주가 느리다고는 하지 만, 실제로 4악장의 연주시간을 고려해 보면 약 10분의 연주시간에서 클라이버보다 2분가량 더 빨리 연주했다.
클라이버의 연주가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속도를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하기 때문이다. 카를 뵘의 연주는 악기간의 밸런스를 정확하게 조절하고, 지나친 속도나 강약의 점프를 피하기 때문에 베토벤의 의도에 충실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된다. 이러한 강점은 모차르트나 브람스의 교향곡에서는 더욱더 빛이 나게 된다.
중후한 스타일의 연주로 오토 클렘페러의 연주를 뺄 수 없을 것이다. 카를 뵘보다 더 느리게 느껴지는 연주이 다. 연주시간을 물리적으로 계산해 보면 다른 연주들과 비교하여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청취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클라이버의 가벼운 연주와 클렘페러의 육중한 연주는 완전히 다른 음악처럼 들린다. 느리고 커다란 스 케일에서 꿈틀거리는 베토벤의 웅대한 의지를 감상할 수 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통통 튀는 스타일의 연주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혜성같이 등장한 신진 지휘자들의 연 주로 다소 빛이 바랜 듯하다. 특히 베네수엘라 출신의 지휘자 구스타브 두다멜의 등장은 전 세계 음악팬들에게 충격이자 새로운 선물이었다. 베네수엘라 빈민가 출신의 지휘자가 자신의 나라의 청소년 연주자들 중심으로 구 성된 오케스트라로 전 세계를 감동시킨 실화는 영화 <엘 시스테마>로도 제작되어 유명해졌고, 2007년 교황 베네 딕트 16세의 생일 축하 연주에 초대되어 전 세계에 중계된 모차르트와 드보르작 연주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 되었다.
두다멜의 베토벤 연주는 클라이버가 의도한 속도와 강약의 대비가 뚜렷한 연주의 결정판을 보여준다. 더욱더 놀라운 점은 자신이 조직한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실황을 감상해 보면 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베를린 필이나 빈 필에 못지않은 충실도와 긴밀한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을 보여준 다는 점이다.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다멜의 연주를 들어보면 이 궁금증에 대한 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휘자에 따라서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도 졸작을 만들 수도 있고, 무명의 오 케스트라가 역사적인 명연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스 출신 지휘자의 테오도르 쿠렌치스는 2020년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앨범을 출시했다. 이 지휘자는 Musica Aterna 라는 자신만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해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으며, 헤비메탈 로커 같은 복장, 오케 스트라 단원 전원이 서서 연주하는 등 외형적으로 기존의 전통을 깨는 행보를 하고 있으며, 연주의 내용에서도 극한의 루바토로 전혀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지나치게 파격적이라서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여간 새로운 연주자들이 등장하고 새로운 해석의 음반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의 입 장에서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