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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사상으로서의 風流道와 韓國仙道의 상호연관 및 그 實體에 관한 연구-민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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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호연관 및 그 實體에 관한 연구 *

민영현

**49)

. 들어가면서

. 固有思想의 <있음>에 대하여

. 風流道의 내용과 성격

. 韓國 仙道의 성격과 함의

Ⅴ. 固有思想, 風流, 仙道의 실체적 이해

. 맺으면서

【 국문요약 】

반만년 한민족문화와 한민족사에 있어 그 뿌리 되는 생각과 의식 이 없을 수 없다. 곧, 한국 자생의 전통과 고유철학의 존재가 그것이 다. 대개 집단 속에서 무의식적 정신 에너지로 자리해 온 것을 ‘사고 의 原本’, 즉 정신의 ‘Arche-type(原型)’이라 하고, 이와 같이 한국문화 의 심층에 자리하면서, 그 정신적 고유성과 자생성의 사상을 여기서

* 이 논문은 2013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 행된 연구임(NRF-2013S1A5B5A07047730)

** 부산대학교 철학과 외래교수

(2)

는 일단 고유사상이라 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의 문화에 내재된 정신적 토대를 점검하는 것은 또 다른 문화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이는

‘한류의 本質’과도 관계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固 有思想 과 전통사상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러 나 한국사상사에서 고유사상은 곧바로 전통사상으로 연결되지 못한 다는 문제가 있다. 다만 최치원이 언급한 ‘玄妙 한 道 로서의 風流’에 서 한민족 고유사상의 존재를 확인한다. 바로 이 풍류도의 언급 덕분 에 자생적인 민족 고유사상의 존재를 말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이는 한민족문화의 정신적 특성이 되어 중국이나 몽골 또는 일본과 다른 한국적 성격을 추적하는 단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韓國仙道 역시 이와 같이 고유한 玄妙之道 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 사 실상 한국 선도의 전개에서도 신선낭가의 흐름을 부인하기는 어렵 다. 그리고 이제 이 둘은 만나야만 한다.

기본적으로 <仙道 >란 개념의 의미와 명칭은 단군신화에서 비롯하

는 것으로 파악된다. 나라에 원래 현묘한 도가 있다는 지적은 한국문

화의 사상적 모티브와 근원성이 자생적이며 동시에 이는 민족의 고

유성 속에서 발견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으로, 국조 단군의 시대로 거

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풍류를 통해, 이것이 신

선과 같은 소요유의 경계를 보며, 밝은 마음과 정신으로 즐긴다는 의

미에서 風月 이라 가차한 것임을 추측해본다. 이 경우, 고유성으로서

의 仙道 란 또한 민간의 순수사유요 , 생활의 관념이라 할 한민족 ‘살

림살이의 문화 ’를 만들어 온 ‘그 무엇, 곧 정신적 토대’로 변형되어

온 것은 아닐까 한다. 그야말로 한민족의 전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고유사상은 각각의 시대와 상황마다 새롭게 이해되어 왔고, 이는 오

늘에 있어 다시금 재분석 재파악 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 변형 계승

되어 왔다. 그리고 한민족이 지닌 활달성과 역동성은, 민족의 고유한

(3)

기상이 민초들과 더불어 ‘신(神)바람’을 만났을 때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실로 오늘에 있어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韓流 의 신바람 역시 고유한 風流⋅神仙郎家의 세계와 만나야만 할 것이다 . 그리고 이제 三敎 를 포함하고 조화시킨 風流道 와 인간의 긍정적인 변화를 요구해온 韓國仙道 의 수련과 수행의 정신세계 및 그 실체에 대한 이 해는 우리가 잃어버린 고유한 사상들을 다시 찾게 해 줄 것이라 기 대해보는 것이다.

주제어 : 고유사상, 풍류도, 한국선도, 한류, 살림살이의 문화

Ⅰ . 들어가면서

物有本末 事有終始 라!

1)

일에는 원인과 시발이 있기 마련이요, 근 본 없는 사물이 있을 수 없는 법이다. 하물며 반만년 한민족문화와 한민족사의 이야기가 오늘에 이어져 왔음에야! 여기에 그 뿌리 되는 생각과 의식이 없을 수 없다. 새삼 재론할 필요도 없이, 기본적으로 한국 자생의 전통적인 철학들이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된 문화 와 유물, 정신적 유산들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삶과 생활 속에 감 추어진 그 문화정신과 철학사상의 실체를 찾아가는 길은 어찌 이리도 힘든 것인가?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 그러므로 주어진 인생에서 차라 리 그 어떤 가치와 살아감의 의의를 찾아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한국문화는 韓流 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새로운 관심 과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 드라마, 음악 및 스포츠 등, 한국 젊은이 들의 적극적인 활동들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문 화전쟁의 시대를 맞아 이러한 현상은 반갑고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1) 󰡔大學󰡕제1장.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4)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단발성으로 끝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한국문화의 좋은 점을 세 계에 알리기 위해,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실 韓流 라는 용어가 나타나고 난 이후, 지금까지 많은 해석과 이 해가 시도되어 왔다 . 이러한 해석과 이해의 대부분은 “한류의 本質 이 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점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 지의 시도들이 한류의 본질을 온전히 다 담아 내었다고 하기에는 아 직도 미진한 것 역시 사실이다. 물론 이에 있어 어떤 하나의 이유 때 문에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울 지도 모른 다. 한류라는 것이 어느 하나의 측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 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류라는 물결을 이해하기 위해 서는 다양한 접근과 해석이 시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많은 이 해와 해석이 시도되는 가운데 또 다른 새로움이 나타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결국 韓流라 불리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그 의미 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이제 文化 를 대하는 인문학자들에게 남겨 진 하나의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에 관한 이해와 해석 은 아마도 또 다른 형태의 한류를 만들어 낼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오늘 21세기 세계화와 문화의 시대에 있어 양질의 문화를 창달한

다는 것은 새로운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새로운 생활양식으로서의 삶에 대한 변화된 이해를 필요로 하기 때

문이다 . 하지만 ‘하늘 아래 새 것은 없다’는 말처럼,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상 과거의 지혜와 삶에 대한 이해를 전적으로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溫故知

新 과 法古創新 의 의미는 문화 이해에 있어서도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온 바 있다. 그리고 이제 金蟬子 가, “乙丁 의 明氣 가 海東 에 … 壁星 이

三角山 에 강림 … 鯷岑 이 마침내 문명의 기운을 보전할 것 … ”이라 하

(5)

고, 翠窟子가, “조선은…小中華…, 중국에 聖人이 강생하면 조선에도 역시 眞人 이 강생 …,… 이제 새로 天子 가 나오면 조선도 또한 나라를 보전할 眞人이 강생할 것”

2)

이라 한 말을 여기에 되새겨 둔다.

본 연구는 韓流 의 본질을 추적하는 前 단계로써 , 한국의 고유사상 에 대해 주목해 본다 . 왜냐하면 한류를 문화적 측면에서 파악하는 일 은 결국 그 속에 감추어진 가장 기초적인 정신의 흔적을 찾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적이란 것의 의미 속에는 단순히 물질적이거나 현상적인 것만이 아닌 한국문화의 사상 철학과 같은 정신적 토대가 함께 터하고 있다. 따라서 한류 문화의 핵심에는 어떤 식으로든 한국인의 심층적인 정신 요소가 자리할 수밖에 없다 고 판단하는 것이다. 동시에 하나의 문화에 내재된 정신적 토대와 그 실체를 점검하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문화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본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문화의 심층에 자리한 사상적 고유성과 자생성 을 통해, 한류의 본질과 그 의미를 좀 더 점검해보려는 것이다. 이로 부터 稿는 특히 固有라는 의미에 주목하고자 하는데, 이는 기본적으 로 외래적 전통과 토착적 전통이란 양자 속에서 자생적인 고유 즉, 토착적인 뿌리의 의미에 집중해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Ⅱ . 固有思想 의 <있음>에 대하여

여기서 말하는 고유사상이란 사실상 자생적이고도 토착적인 한국 사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생적 고유’란 이미 많은 분들에 의해 설 파되고 알려진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존재에 대한 회의적인 시 각 또한 지금도 여전하다고 하겠다.

2) 李鍾殷 譯注, 󰡔海東傳道錄⋅靑鶴集󰡕, 普成文化社, 1986. 93쪽

(6)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의 문화는 결국 살아남기 위한 도전과 응전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진 투쟁과 화해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를 통해 사회와 문화 역시 형성된다. 곧, 생존을 향한 가열 찬 투쟁의 흔적으로 남겨진 것이 바로 사회와 문화인 것이다.

3)

개인의 경우, 이 는 life style, 즉 생활양식 내지 습관으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전체 사회라면 이것은 society culture, 즉 관습(custom)과 문화로 전승시키 게 된다. 그 속에서 지성적 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전 역량을 知的 遺 産 의 형태로 남긴다. 이로써 과거의 지식은 단지 사멸하는 것이 아니 라,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재생을 기다리는 원초적 생존력의 형태로 남 겨지는 것이다. 이것은 집단 속에서 무의식적 정신 에너지로 자리하 게 되며, 이를 일러 Jung은 ‘사고의 원본原本’, 즉 정신의 ‘Arche-type, 즉 原型’으로 파악한 바 있다.

4)

곧, 개인은 자신의 경험을 전승 유지 창발 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살이’해나가고, 민족은 스스로의 경험을 사회적 관습과 문화로써 민 족적 삶을 ‘살이’해 나간다. 이 경우, 장구하다는 것은 결국 그 문화 의 기반에 자리한 앎, 즉 문화사상의 깊이와 넓이에 관계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해 현명한 개인은 장수할 것이요, 올바른 문화사상은 민족의 삶을 만세토록 보존케 할 것이다. 여기에 반만년의 역사를 장 구히 유지해 오면서 새로이 韓流 를 만들어 낸, 한민족의 문화적 특질 과 그 정신적 동력 및 실체에 대해 새삼 돌아볼 필요를 느끼는 것이 다. 왜냐하면 하나의 민족문화가 장구한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3) 김지하는 문화란 결국 생명적인 것임을 강조하면서, ‘밥상공동체’(󰡔밥󰡕, 솔, 서울 1998. 91쪽)란 재미있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곧,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말이다.

4) “인간의 상상에서 나오는 것들은 언제나 시각적인 형태를 갖기 마련이다.

더구나 그것들은 판에 박힌typical 형태를 갖는 습관이 있다. 이것이 내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라 그것들을 원형archetype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파 드마삼바바/류시화, 󰡔티벳 死者의 󰡕, 정신세계사, 서울 2004. 173쪽. ;우나 살루스 해설 中)

(7)

는 사실은 결코 소홀히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가 지 닌 생존력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 속에 깃들인 정신과 앎의 우수성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고유사상을 파악하기에 앞서, 宋恒龍 이, “우리의 것이란 다름 아닌 이해되어진 것일 때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며 , 그 이해되어진 것이 우리의 것의 내용이 되는 것”

5)

이라고 한 지적을 떠올려 본다 . 즉, <토착적 내지 자생적 고유사상>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이는 기본적으로 현재 우리에게 이해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무의미한 관념의 추상에 그칠 위험이 다 분히 있다. 다시 말해 한국사상의 고유성이란 단지 고유하다는 말만 으로는 불충분한 것이다. 이는 身土不二 식의 단순한 집착을 넘어 일 정한 이해가 오늘의 우리, 즉 현대 한국인들에게 가능해야만 함을 의 미한다. 다른 말로 이는, 그것이 비록 신화나 전설이라 할지라도, 그 정신과 관념이 오늘 여기에 계속적으로 이해 전승되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경우 ‘현재 이해됨’이란,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행동을 일정하게 지배하고 이끄는 사유로서 작용함을 의미한다. 따 라서 새로이 이해되고 작동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옛날이야기 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韓流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한국인의 생 활의식이 문화 충돌과 접변의 형태로 새롭게 세계 속에 선보인 것이 기도 있다. 곧, 한국문화의 역동성과 공공성이 전 세계적인 보편성 위에서 승인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이는 어떤 의미로 한국인의 내면에 감추어진 삶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문화적 측면이 충분히 세

5) 宋恒龍, 󰡔東洋哲學의 問題들󰡕, 여강출판사, 서울 1987. 413-415쪽; 여기서는 固有의 문제를 개념적으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固有라는 말과 우리의 것이라는 말과는 그 자체 만으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는지도 모른다때문에 韓國思想 또한 우리에게 이해되 어진 것이면 어느 것 하나 韓國思想 아닌 것이 없다”(413쪽)

(8)

계와 소통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문화는 통시적 측면에서 과거와 현 재 그리고 미래와 조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고유사상을 탐색하고, 그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작 업은 새로운 문화의 모색을 위해서라도 지속되어야만 한다. 다만 여 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 그것은 비록 ‘자생적 고유’라 하더라도, 이것 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변형 없이 오늘에 전승 보 존되어 왔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곧, 한민족의 전 역사적 과 정을 통하여 고유사상은 각각의 시대와 상황마다 새롭게 이해되어 왔으며, 오늘의 한국인들에게는 다시금 재분석 재 파악 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 변형 습합되면서 전승되어 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고유사상이 생성된 이후, 이를 한민족이 생활 관념화함에 있어, 그것 은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고 轉化 하면서 남겨질 수밖에 없다. 그 대표 적인 형태가 최치원이 말한 ‘風流道’이며, 최근 학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神仙郎家나 朝鮮丹學으로 대표되는 ‘韓國仙道’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고유사상 내지 전통사상에 대한 이해는 그리 명증적이지 못하다. 儒敎와 佛敎로 대변되는 외래적 전통사상의 지 배적 위치가 굳건한데 비해, 고유사상의 토착적 전통은 그 올바른 위 상을 얻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韓流라는 측면에서 바 라본다면, 사실상 유⋅ 불보다는 풍류도적인 고유사상의 영향력이 오 히려 훨씬 더 강하지 않을까 한다. 유교나 불교의 엄숙성과 내밀성 보다는 풍류의 활달성과 역동성이 한류의 본질에 보다 더 가깝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미 진한 채로 있다.

일반적으로 固有思想 과 전통사상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상사에서 고유사상의 문제는 이것이 곧바

로 전통사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데 있다. 이는 역사적 과정을 통

해,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지 못하고 민간과 민초들의 생활사유

(9)

속에 뒤섞여 버린 데에서, 그 일차적인 원인을 찾아볼 수도 있다. 대 표적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이 이루어진 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 린 화랑도의 경우가 그러하다. 조선조에 이르면 화랑을 唱優 妓生 巫 夫 와 같은 것으로 이해했을 만큼, 많은 오해와 곡해가 나타나게 된 다 . 근⋅ 현대의 사상사적 이해는 더욱 심각할 수 있다 . 儒敎 와 佛敎 의 전통을 내세우면서 서구의 철학과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 고유 사상의 문제는 오히려 신화화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이 지녔던 활달성과 역동성은 사실상 古神敎 나 古仙 道 가 의미하는 것처럼, 민족의 기상이 ‘신(神)바람’을 만났을 때 이루 어진 것이다. 따라서 韓流 의 신바람 역시 결국은 風流, 神仙郎家 와 만나야 할 것이라 생각해본다. 뒤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國有, 玄妙 한 道 로서의 風流 ’가 전하고 있음으로 하여, 이를 부정할 사람은 많 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사상의 ‘있음’에 대한 이해 에 있어서는 대단히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는 분들이 많다. 아마도 그 대부분은 儒⋅佛⋅道 로서의 한국전통사상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대개 자기가 없이 다른 것을 만났을 때, 인간정신은 그대로 他 의

것과 동화될 수밖에 없다. 반면 자신을 갖고 他를 만난다면, 여기에

는 다양한 현상과 결과들이 나오게 된다. 충돌과 접변, 변화와 창달

이 거듭하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사실 반만년 한민족문화사 속에서

오늘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결국 변화와 창달이었지, 同化 의 관계는

아니었음을 기억한다 . 바로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고유사상의 존

재를 다시금 말하는 것이며, 이는 곧바로 민족문화의 특성이 되어 중

국이나 몽골 또는 일본과 다른 한국적 성격을 나타내 온 것이라 생

각하는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문화적 성격의 특수성 때문에라도, 역

으로 한국의 고유사상은 존재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

다. 이 경우 고유사상은 결국 자생적 토착형의 사유체계라는 분명한

(10)

자신의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유추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은 아마도 민족의 삶 가운데서 고유 사상은 어떤 식으로든 갈무리 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하여 오 늘의 한류 역시 유 ⋅ 불이 아니라, 바로 이 민족의 고유한 정신에 의 지하여 나타난 것이라 추측해보는 것이다 . 그리고 이제 고유사상의 있음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국유현묘지도로서의 풍 류 ’요, 또한 ‘신선낭가로서의 한국선도’의 문제이다.

風流 그리고 仙道 !

여기서 이들 각각을 규정하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풍류도에 대한 접근이 있어왔고, 동시에 한국 선도를 말한 여러 논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계에서 이들이 차지하 는 비중을 보면, 이들은 사실상 아직 전혀 논의조차 안 된 세계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옳을 것이다. 유불도의 관련 논문들이 양산되는 것 에 비하면, 이 분야의 연구는 鳥足之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또 종합적이거나 일관된 衆智 하나를 모으지도 못한 상황임 을 감안하면, 이는 차라리 시작 단계의 연구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다만 고유사상과 관련한 숱한 재야단체들의 존재와 결부하여 말한

다면, 이는 다르다. 아직 학계에서는 공식 연구를 시작도 하지 않았

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사회 내에서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세력

을 지닌 사상영역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이 학문 또는 학술

적인 것이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에 속한다 . 하지만 사회단체들이

열광적이고 감성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한국문화의 본원적 정신세계

에 대해 도리어 한국학계는 애써 무시하고 평가절하 함으로써, 이 분

야의 정상적인 학문 성립 자체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반성적 작업의 한편에서, 개인적으로는

風流 와 韓國仙道 가 고유사상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 주기를 기대해본

(11)

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더욱 치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 또한 핵심은 무엇인가 함이 백일하에 밝혀져야 할 것이다. 특 히 民衆의 바람과 원망, 하나의 프로토 타입으로서의 가장 본질적인 한국적 문화형에 대한 이해 및 한국문화의 세계이해와 인간사상은 어떠한가에 대한 사상적 이해 역시 주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이다.

이를 위해 다음 장에서는 나라에 원래 있었다는 風流道 에 대해 살 펴보고, 다음으로 韓國仙道 의 성격과 내용들에 관해 접근해보고자 한다. 이로써 서로를 연결시키는 사상적 고리와 이들이 사용된 맥락 에 대해 새롭게 이해해보려는 것이다. 風流 란 어떤 의미로 神仙 과 같 은 逍遙遊 의 경계를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밝은 마음과 정신으로 즐 긴다는 뜻을 달리 風月 이라 가차한 것이 아닐까. 여기에 韓國仙道 는 또 다시 孤雲 을 그 仙脈 의 중심에 둠으로써, 고유한 玄妙之道 의 세계 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겠다. 그리고 아직도 한국 선 도의 성격과 존재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만나기는 힘들다 하겠으나, 사실상 이것이 지닌 한국 신선낭가의 기본적인 흐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Ⅲ . 風流道 의 내용과 성격

일찍이 孤雲 崔致遠은 한국문화의 자기모습과 그 철학에 대해, 「鸞 郞碑序」 에서 ‘國有玄妙之道 曰 風流’라 하였다. 이제 그 전문을 본다.

나라에 현묘한 道가 있으니 이름하여 풍류(風流:불류..불구내)라 한다.

그 가르침을 세운 내력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이는 실로 삼 교(三敎)를 포함하고 뭇 생명을 맞이하여 서로 化하며 더불어 生하게 하는 것이라. 이는 또 다음과 같아서, 들어와서는 집안에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

(12)

에 충성하는 것은 노나라 사구(魯司寇:공자)의 뜻과 같고, 무위(無爲)로 일 을 처리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행함은 주나라 주사(周柱史: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여러 악한 일을 짓지 않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 (竺乾太子:석가모니)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 :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 之源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出則忠於國 魯司寇 之旨也 處無爲之事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諸善奉行 竺乾太子 之化也”6)

상기한 인용의 첫머리에 바로 풍류라는 말이 나온다. 이에 학계에 서는 주로 풍류도 또는 풍월도란 개념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풍류도에 대해서는 일찍이 안호상의 흥미 있는 분석이 있었다.

그는 풍류도의 이두식 발음에 유의하여, 이는 “風月道 의 ‘風’이 옛 날엔 발함풍자요, 또 바람을 배람이라고도 하며, 또 풍월도의 ‘月 ’은 달월자다 ⋅⋅⋅⋅ 풍월도는 ‘발달길’이요 ‘배달길’이란 말이다. 風流 道의 ‘流’는 흐를 류자인 동시에 다르날류(달아날류)자임으로, 풍류도 역시 ‘발달길’이요 ‘배달길’이며, 또 風流敎 는 ‘발달교’요 ‘배달교’란 말”

7)

이라 하였다. 곧, 풍류도란 한민족이 고대로부터 지켜내려 온, 자신들의 명칭 그대로의, ‘배달민족의 道’⋅‘배달의 사상’이란 이름 에 다름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결국 풍류도가 한민족 원형의 道 와 사상에 해당하는 것임을 지칭한 것으로, 그러한 민족고유의 사 상을 다만 신라식의 이두법을 써서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 다. 또한 한국 고유사상의 존재에 관한 연구에 있어, 풍류도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고유사상에 관한 연구 역시 최치원으로부터 출발할 수밖 에 없다. 나라에 원래 있었다는 道 로써, 풍류도라는 공인된 언급 자 체가 孤雲 의 「鸞郞碑序」 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곧, “나라에 玄妙 한

6) 󰡔三國史記󰡕 卷4. 新羅本紀 진흥왕조.

7) 안호상. 󰡔나라역사 육천년󰡕. 뿌리. 서울 1987. 224쪽.

(13)

道가 있으니 … 이는 실로 삼교를 포함하고, 만물을 응접하며 뭇 생 명들과 화합하는 이치를 담은 것 ”이라 함이 바로 그것이다. 이 경우, 하나로서의 風流道 는 셋으로서의 三敎思想을 포함하는, 폭이 넓고 깊어 현묘한 사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는 단순히 삼교를 결합시 켜 놓은 것인가 . 아니다. 적어도 이에 관해서는 풍류도에 삼교의 내 용 이외에 독창적인 어떤 다른 요소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8)

하지만 이의 기록, 즉 나라에 있었다는 풍류도에 관해서 조차, 지 금도 여러 가지 異說 과 함께 그 실체에 대한 論難 을 제기하는 경우 가 있다.

9)

그러나 이런 실체적 논란의 와중에도, 난랑비서의 분명한 문맥적인 이해로써 자생적이며 원초적인 의미의 그야말로 본래적인 한국정신이라 할 어떤 사상적 관념이나 정신체계가 한국 上代 의 시 기에 이미 존재하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또한 인간 정신 의 존재에 대한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원리 때문에도 그러하다. 다만 지금까지 정립해 놓은 한국철학사를 통하여 고유사상에 관해 달리 언급한 자료가 부실하기 때문에, 孤雲은 다른 사상적 단초를 통해 이 를 파악 이해하였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10)

8) 韓鍾萬 外. 󰡔孤雲 崔致遠󰡕. 민음사. 서울 1989. 155쪽.

崔英成. 󰡔崔致遠思想硏究󰡕. 아세아문화사. 서울 1990. 124-125쪽.

9) 金哲埈風流道에 대해, 자생적이라기보다는 삼교사상의 유입 이후에 나타 난 사상적 혼합형으로 보기도 한다(金哲埈, 「三國時代의 禮俗과 儒敎思想」;

󰡔大東文化硏究󰡕제6⋅7合輯, 1969-1970. 133쪽). 작년(2015년, 가을) 한국동서 철학회 발표회장에서 참석자들과 논자는 이를 두고 1시간이 넘는 논쟁을 벌 이기도 하였다.

10) 宋恒龍은 다음과 같이, “鸞郞碑序文은 우선 내려진 그 정의야 어찌되었든 간에 韓國思想 自體에 대한 최초의 관심⋅⋅확실한 문제의식 속에서 定意

⋅⋅三敎思想에 대한 定意를 아울러 내림으로써 그 三敎思想을 통한 韓國 思想에의 理解接近을 시도”(󰡔韓國道敎哲學史󰡕. 성균관대. 서울 1987.

222-223쪽)한 것이라 하고, “風流思想에 대한 三敎思想으로서의 崔致遠의 해 석은 애당초 이해의 접근을 하지 않았으면 모르거니와 그에게는 더 다른 이 해의 접근은 불가능했을 것⋅⋅三敎思想으로서의 해석을 분명히 한 것은,

(14)

이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규정할 경우 그 의미의 확 장을 가질 수 없다는 논리학적 동일률을 이해한다면, 간단히 풀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곧 고운은 현묘지도와 풍류 그리고 포함삼교를 동 일선상에 놓고 상호간의 연결고리를 통하여 그 이해를 요청하고 있 는 것이다 . 이 경우 파악되는 대상으로서의 ‘현묘한 道’는 곧 풍류이 다. 그러므로 풍류란 결국 그 명칭이 되고, 이어지는 포함삼교란 그 내용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계의 연구결과로 볼 때, 이는 달리 古神道 내지 古仙道 라고 부르는 일련의 개념으로 연결 될 수 있다.

고선도란 무엇인가. 대개 고선도란 신화적 제정일치의 시대에 있 어 신봉되었던 한국의 自然宗敎, 즉 古代 神敎 의 이론체계 및 그 정 신적 기반을 담당한 ‘한국 고대 神仙道 의 논리와 사상’을 의미하는 용어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도 아직은 사전적 의미에 상당 하는 분명한 개념정립 또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 있다. 다만 「난 랑비서 」 에 제기된 仙史 와 風流 를 상호 연관시키고 또 삼교의 상황을 이해해봄으로써, 고신교 내지 고선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가 질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이는 달리 仙敎 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도교학회에서는 대체로 이를 한국 신선도교 또는 낭가정신 등의 용어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리고 이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 역시 다양한 갈래를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은 이를 한국선도와 연관 지어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거의 일치 된 견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

이 대목에서 풍류를 언급한 고운의 다른 저작 속에 다시금 道 에

관한 다양한 언급과 개념들 또한 숨어 있음을 지적해둔다. 곧, ‘東人

意識’으로 지칭되는 고운의 대표적인 사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

나 한국의 고유한 사유 속에 감추어져 있는 그 어떤 정신내용을, 고

바로 이러한 風流思想의 내용을 분명히 함으로써 韓國思想의 밑뿌리를 찾 으려는 目的意識이 뚜렷했던 것”(上同. 226쪽)이라 한다.

(15)

운은 <風流>란 명칭과 기록으로 남겨 전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 다. 이는 단순히 개념적 명칭이란 의미를 넘어, 한국문화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승인한다는 중요한 뜻을 또한 지니게 된다. 특히 韓國仙道 를 중국의 도교와 혼동함에 있어, 風流 의 의미는 더욱 더 각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

곧, 한국선도가 중국의 도교와 비록 그 습합과정을 통해 상호 유사 한 사유체계를 보인다 해도, 그 실체적 의미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이 다. 그러므로 ‘가장 흡사하면서도 서로 다름’의 사상, 그것이 한국선 도와 中國道敎 다.

11)

따라서 仙道 와 道敎 를 논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상이성에 관한 인식을 먼저 필요로 한다. 풍류도와 관계된 <仙>이란 결국 한국 자생의 공동체적 인간관이요 동시에 고대적 神 의 의식과 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록 도교적으로, 오해된다 하더라 도, 이는 본질적으로 한국적 심성수련의 內丹學 이며 동시에 한국인 의 자기의식, 즉 그 正體性 으로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나라에 원래 현묘한 도가 있었다는 것은 곧, 한국문화의 사상적 모티브와 근원성은 자생적인 것이며 동시에 이는 민족의 고 유성 속에서 발견되어야 함을 밝힌 것이다. 따라서 외래적인 불교와 유교 역시, 다만 이러한 자생적 민족문화의 허용범위 내에서 말해져 야 하는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곧, 한국전통문화의 유교⋅ 불교적 특성은 그것이 한국의 역사, 즉 민족사의 기록과 생활 속에서 다만 표층적으로 존재했을 뿐, 이들이 한민족 전체의 민족문화적 성격을 모두 대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역사 기록시기의 2천년과 +@로 규정된 한반도 원조선의 역사, 한 국문화는 기록이 전하는 삼국시대의 삼천년도 더 전에 이미 자생하 였고 토착되어 왔다. 그리하여 반만년의 시간대를 지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유입된 유교와 불교는 한민족문화사의 흐름 가운데서 문화

11) 민영현, 도교적 사유체계와 그 相同⋅相異에 관한 연구」(󰡔선도문화󰡕제7집,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출판부, 2009/08, 45-83쪽), 참조.

(16)

적 접변과 교류를 통해, 한민족 표층사의 한 지점을 지켰을 뿐이다.

이러한 외래의 문화는 이미 있었던 한민족 기층의 문화의식과 접변 과 교류를 통하여 서로 만나고, 이후 승인됨으로써 비로소 한국의 전 통문화라는 역할을 허용 받은 것이다. 그러나 “굴러온 돌이 박힌 돌 을 빼 낸다 ”고, 전통문화는 한국사의 잘못된 이해를 통해, 본질적인 한 국인의 문화의식과는 다소 아니 상당히 다른 형태로 유교의 조선, 불 교의 고려로 변질하고 만다. 이로부터 서구에 알려진 한국문화에 대한 대부분의 이해 역시 유교와 불교로서의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문화로 이해되고 있는 儒⋅佛 은 결코 한국문화 의 전부로 기능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한반도 안의, 역사기록시기 내에서, 그리고 표층 기득권층의 비호 아래 이데올로기화하면서 한 국문화의 일부로 기능했을 뿐이다. 반면 민족의 기층에서 보다 많은 민중들과 만나 진정한 한국문화정신의 순수성을 유지해 온 것은 자 생적 민족정신의 사유이다. 곧, 민족사회 속에서 반만년 이상의 역사 와 흐름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른 ‘그 무엇’인 것이다. 이것은 민간의 순수사유요, 그 생활의 관념이라 할 한민족 ‘살림살이의 문화’를 만 들어 온 정신이기도 하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는 한복을 지어 입은 백의민족의 마음이며, 온 돌과 김치, 두레와 향약 및 계와 혈연⋅ 지연의 緣 과 같은 관계의 법 칙을 발견했던 한민족 근원의 정신이요, 민간 기층의 생명의식이다.

‘삶을 위한 앎’으로써, 의⋅ 식 ⋅ 주의 한국적 지혜와 그 정수를 모아 만든 문화사상 , 그것이 진정한 한국민족문화의 철학사상이요, 우리네

아버지 ⋅ 어머니들의 애정 어린 마음이라 할 것이다. 다만 「 난랑

비서 」 가 밝혀주는 것처럼, 이는 불교의 그것⋅ 유교의 그것 그리고 도

교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아니하였던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렇기에 그 문화적 다툼이나 권력적 전투를 살벌하게 하지 아니하고,

다만 전체로서 온전히 새로이 들어온 유 ⋅ 불 ⋅ 도와 조화하고 종합하

(17)

였던 한국의 정신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사적 이해는 새로 유입된 서구의 정신과 사상, 곧 기독교의 한국적 전개에 대해서도, 이를 새롭게 파악할 주요한 단 서가 되기도 한다. 조선조 후반 척사위정이나 사문난적 등, 異敎 와의 문화전쟁은 유교와 기독교의 그것이었지 , 한민족 문화기층과의 싸움 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돌은 봉건과 근대의 충돌이요, 권력의 표층 과 세력의 표층이 서로 만들어 낸 헤게모니 장악의 싸움이었을 뿐, 민족문화와 외래문화의 싸움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한민족 문 화의 기층에 갊아 있는 문화정신은 그야말로 ‘弘益人間 이요, 在世理 化 이며 接化群生 의 의식’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결단코 배타와 차별 의 문화일 수가 없다. 그렇기에 한민족문화사는 새로운 문화정신과 만나 오히려 즐거워하고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주기도 했던 문화 적 특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죽하면 丹齋마저도, “유교와 불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유교⋅조 선의 불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교의 조선⋅ 불교의 조선이 될 뿐이 라”

12)

고 한탄했을 것인가. 그러나 이는 단순히 한탄할 문제만은 아닐 지도 모른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한국의 자생적 문화사상 자체가 지 극한 조화와 화해의 아름다움을 추구해 왔던 정신이기 때문이다. 곧,

‘삶을 위한 앎’으로서의 문화정신을 추구하는 한에 있어, 한국정신은 언제나 他와 我의 상호 조화와 합일을 추구했을 뿐, 이를 차별하고 몰아세우며 배타와 이기로 살아온 것이 아니다. 이럼으로써 한민족 문화는 그 기층의 정신과 민족 저류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진정한 스 스로의 문화세계, 즉 포용과 관용 종합의 세상을 형성해 온 것이다.

거스르고 반역하는 마음을 죽이고, 다만 돌고 도는 인생사에 구름 가듯 바람 가듯 그렇게 자연과 벗하는 마음을 그 깊은 문화현실로,

12)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이와 비슷한 의미의 언설을 여러 번 반복하고 있다. 대표

적으로 그의 논문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일 대사건」(󰡔韓國史硏究草󰡕, 을유문 화사, 1987)의 결론에서는 사대주의의 득세와 그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18)

玄妙之道는 전해져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韓流 아니 한국문 화의 밑바닥에 잠복해 있는 것은 사실상 어우러짐과 생명의 정신이 며, 화해와 종합의 의식 그 위에 구축해 온 참여와 관조의 문화였다 하겠다. 이로부터 다시금 한국적 살림살이의 문화를 형성케 했던 ‘그 무엇 , 곧 정신과 철학’으로써, 이제 風流道 를 이해함이 마땅하지 않 을까 한다.

13)

Ⅳ . 韓國 仙道 의 성격과 함의

韓國仙道 란 무엇인가 ? 이에 대한 학계의 정론은 사실상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신선도교에 대한 것은 고작해야 중국도 교의 아류 정도이거나, 도교적 수련에 대한 한국적 대응 정도로 이해 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선도와 관련하여 아마도 가장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형태로 연구 결과를 제출해 놓은 것이 있다면, 이는 아마도 선도문화 연구원에서 내놓은 󰡔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

14)

가 될 것이다. 여기 서는 800쪽이 넘는 방대한 작업 속에 한국선도와 관련된 다양한 쟁 점들을 다루고 있다. 곧, 총설을 포함하여, 선도의 시원과 발흥, 계승 과 전개, 잠복, 새로운 전개와 약진이라는 총 7개장을 통하여 한국선 도의 대강을 설명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그 기본적인 시각은 머리말에서 밝힌 것과 같이, 나라에 원래 있었다는 현묘지도

13) 사람을 살려 쓴다는 말이 있다. 姜甑山은 이 말을, “形於天地 生人…天地生 人 用人…”(甑山道 󰡔道典󰡕, 2편 23장)이라 하였다고 전하는데, 이는 다른 것 이 아니라 ‘사람 살리는 일로 인간 살이 함의 기본’으로 삼는 일이다. 아마 도 우리말 가운데 가장 그 문화적 함의를 짙게 드리운 것이 바로 이 ‘살림 살이’라 하겠다.

14) 선도문화연구원, 󰡔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출판부, 천안 2006.

(19)

가 곧바로 선도의 기원이 된다고 못 박고 있다는 점에 있다. 또한 이 러한 선도의 맥락이 유입된 외래종교로서의 유 ⋅ 불 ⋅ 도 그리고 무교 에 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하면서, 이들 4대 종교문화와 선도의 상관 성을 분석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달리 한국선도를 말할 때 ,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桓 檀古記 󰡕를 토대로 엄청난 분량의 주석과 해설을 가미하여 상재시킨 자료

15)

도 있다. 여기서는 仙道 라고 하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 았지만, 한국 고대의 신교와 선의 개념을 원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 본적으로 한국선도의 이해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곧, 고신교 내지 고 선도라고 부르는 한국 고유의 사상과 철학이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시각인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이 방대한 연구 작업과 결과물 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학계의 일반 이해는 이러한 고대적 시원 성을 지닌 한국철학사상의 존재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편이다. 이 는 아마도 한국고대사를 온전히 정리할 필요가 있는 역사학계의 연 구자와 담당자들이 먼저 감당해야 할 책임이 아닐까 싶다. 역사적 실 체에 대한 검토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사상사적 논의가 제 대로 된 터전을 잡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국 선도는 대개 ‘國仙⋅郎家’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이에 대한 仙脈 을 말한 경우로는 󰡔 靑鶴集 󰡕이나 󰡔 海東傳道錄 󰡕 , 󰡔海東異蹟 󰡕 과 󰡔朝鮮道敎史 󰡕 등, 다양한 자료들이 있는데, 이들을 통해 그 맥락 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의 도맥을 이은 것으로 알려 진 김시습은 󰡔 雜著󰡕를 통해, 조선단학파의 총괄적인 이해를 알려주 기도 한다. 말하자면 淸寒子 의 仙 에 관한 이해와 언급은 韓國仙道 의 근본적이고도 전통적인 견해와 상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이다.

그리고 한국선도에 대한 또 다른 이해의 하나로, 신채호가 언급한

15) 안경전, 󰡔桓檀古記󰡕, 상생출판사, 2012

(20)

「先」과 「仙」이 있다. 신채호는, “결국 敬天愛人⋅弘益人間의 종교사 상은 「  」 을 실천하는 「 애 」 의 정신인데 … 따라서 풍류도는 곧 선 비도이다”하고, 여기서 道家의 仙과 古神道의 仙을 혼동해서는 안 되 며, “한국의 선비도는 경천애인⋅ 홍익인간의 진리관을 섬기면서 학 문을 통하여 진리를 생활화하고 … 나라가 무력침략을 당하면 생사를 가벼이 하며 俗務 와 世情 에 구애받지 아니하는 고로 전쟁에 나아가 용감하고, 늘 하늘의 빛을 두려워하는 靑天白日 의 祭天靈魂 을 지님 에서 빛냈다”

16)

라고 설명한다 . 달리 安昶範 은 神仙道 를 말하면서, 이 를 민족사상의 원류로 파악하는데, 그 사상적 근원은 三神 하나님의 원래 뜻[原義]인 天一⋅地一⋅人一 의 三才一體 에 있다 하였다. 이로 부터 三敎一體 사상이 발원한다면서, 고신도를 고대 한국인들의 삶과 신앙에 나타난 사상적 원리로 이해하는 것이다.

17)

또한 魯平奎 는 李 奎報 의 사상을 고신도에 접목시키면서 유의할 만한 견해를 보인다.

곧, 이것은 韓民族 상고 때의 제정일치적인 神政사회 이래의 고유사 상으로 桓雄 시대로부터 연원하는 것이요, 기본적으로 샤머니즘이 내 재된 것이라 하고, 다시 고신도의 핵심은 인간본연의 천부적 순박함 에 있는 것이라 한다.

18)

결국 이상의 입론들이 갖는 하나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한국 上 代 에는 자생적이고 고유한 자체적인 사상이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 이다. 그리고 이는 글자 그대로 현묘한 道로서의 풍류이며, 또한 古 神敎 내지 古仙道 로서 韓國仙道 에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上代 의 고유한 사유와 관념에 있어 독특한 철학적 측면이 있다 면, 그것은 대개 天 과 山岳崇拜 그리고 神仙思想 의 셋이라 하겠다 . 그 중에서도 사상사적 측면에서 가장 보편성을 띄는 것은 하늘숭배,

16) 申采浩. 󰡔조선상고사󰡕. 문공사. 서울 1982. 200쪽 17) 安昶範. 󰡔民族思想源流󰡕. 교문사. 서울 1989. 71-83쪽.

18) 東方文化硏究院. 󰡔東方哲學思想硏究󰡕. 서울 1992. 159쪽 ; 魯平奎, 「李奎報古神道思想과 三敎融和」.

(21)

곧 天思想으로 불리는 일련의 고대적 사유이다. 이는 세계의 여러 민 족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신화적 사유단계의 특징 중 하나 이며, 한국의 천사상 역시 ‘太陽, 곧 밝음 내지 광명숭배’라는 특징적 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19)

이에 대해 일찍이 崔南善 은 이를 사상 , 불함문화 등으로 불렀거 니와, 張秉吉 은 祭天 의 사상으로, “하늘을 뜻하는 우리의 古語 는 한 울이라 ”하며, 「 한 」 은 「 환 」 이요 밝음을 의미하며, “「 한 」 은 끝이 없는 넓이의 울타리를 가진 것”

20)

이라 설명한다. 또 유승국은, “<廣開土大 王碑>에 보면 고구려의 시조 東明王 이 승천할 때 그 아들에게 이 세 상을 道 로서 다스리라(以道與治)고 하였고, <眞興王巡狩碑>에도 順 從 과 勢道 를 말하여 나라의 정치를 道 로써 다스리라고 하였으니 ”,

21)

일찍부터 이 땅에 道 라 부를 그 어떤 사상적 내용이 있었음은 분명 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명확하게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의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

柳承國은 이를 祭天儀式과 祖上崇拜의 관념이라 하며, 이것이 人 間尊重思想 으로 연결된다 하였고,

22)

金炯孝 는 風流 또는 風月道 를 주장하여 이것이 郎家思想으로서의 신바람 기질과 중정의 정신이라 하였다.

23)

즉, 그 사상적 내용을 정확히 밝히기는 어려우나, 분명한

19) 檀君神話三國의 건국설화에 나타난 建國理念들에는 이미 그 밝음의 뜻과 의미가 표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始祖 東明聖帝의 성은 요 이름은 朱蒙이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高>는 太陽을 뜻하고, 또 新羅 始祖 朴赫居世의 <박>은 <>에서 온 것이요, 혁거세는 弗矩內니 이것도 태양 신을 숭배하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百濟는 나라 이름을 <>(百濟)이라 하였다”한다.(金勝東, 󰡔韓國哲學思想󰡕, 정문출판, 부산 1984. 18쪽)

20) 趙明基 外. 󰡔한국사상의 심층연구󰡕, 우석, 서울 1990. 24-25쪽; 「祭天⋅祭政에 대한 思想」.

21) 柳承國, 󰡔韓國思想現代󰡕, 동방학술연구, 서울 1988. p313.

22) 上同. 314-317쪽.

23) 金炯孝, 󰡔韓國思想散考󰡕, 일지사, 서울 1985. 142-147쪽⋅195-201쪽.

(22)

것은 道의 관념과 더불어 한국 上代에는 자체적인 사유체계와 세계 이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참고할 만한 또 다른 기록들이 있다.

곧, 조선조 도교사서들이 그것으로, 이들은 한결같이 桓因眞人 이나 檀君王儉 이 東方道學 의 원류라고 밝힌다 . 이를 보면, 󰡔靑鶴集󰡕에는,

“記壽四聞錄에 기록하기를 우리 東方道流의 근원은 桓仁眞人이다. 桓仁 은 東方仙派의 祖宗이 된다. 桓雄天王은 桓仁의 아들이다. 이로써 동방의 백성들을 교화하였으니, 이후 단군이 그 業을 이었다”24)하였고,

󰡔揆園史話󰡕에서는 “옛날 檀儉이 기틀을 일으키고 業을 세우니 無爲로써 道를 삼았다”25) 하였는데, 이에 더하여 李能和는 白岳叢說」을 인용하여,

“向彌山人이 말하기를, 仙道가 천하에 있다면 중국은 黃帝가 廣成子에게서 배운 것이고, 우리 東方은 文朴이 桓仁의 연원을 얻음으로써 깨끗하고 맑 은 학문을 전하게 된 것”26)

이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기록들을 따르면 , 韓國仙道 의 기본맥락은 그 시발 부터가 중국의 成立道敎 나 老⋅莊 의 도가사상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 자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한국선도는 근원적으로 중국과 다르게 성립하였다는 것이며, 조선단학파의 인물 들은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와 같이 나라에 원래 있었다는 仙史 와 仙道 에 대해 , 현실 적으로 추론해 볼 수 있는 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아마도 <仙>이란

한국철학회 편, 󰡔韓國哲學史󰡕 上, 동명사, 서울 1987. 13-21쪽.

24) 󰡔靑鶴集󰡕. “卞沚 記壽四聞錄者記 吾東道流之叢有曰 桓仁眞人⋅⋅⋅桓人 爲 東方仙派之宗 桓雄天王 桓人之子也⋅⋅以化東民 檀君繼業”

25) 󰡔揆園史話󰡕. 「漫說」 “昔者 檀儉之肇基立業也 以無爲爲道”

26) 李能和, 󰡔朝鮮道敎史󰡕, 보성출판사. 제2장. “向彌山人曰 先導之在天下 中國 則黃帝得於廣成子 吾東則文朴得 桓因之源 傳爲 潔淸之學”

(23)

용어를 사용하여, 그 사상체계의 이름으로 삼았을 때에는 그만한 이 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仙>이란 개념의 한국적 명칭과 그 의미 에 대해 찾아가 보기로 하자.

한국신화의 가장 특징적인 측면은 인간과의 관계성 속에서 하늘의 개념이 파악 설정된다는 데 있다 . 환인, 환웅-웅녀, 단군왕검으로 이 어지는 일련의 계보는 결국 지상과 인간의 관점을 중심으로 설정되 어 있는 것이다.

27)

또 단군신화의 말미에 기록된 “入山爲山神”하였 다는 부분에서 일정하게 仙 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단 군이 山神 이 되었다 하였는데, 왜 이를 仙 이라 하고 또한 韓國仙道 의 시발로 보는 것인가. 이는 기본적으로 단군의 ‘入山爲山神’, 즉 ‘산에 들어, 신이 됨’이라 한 ‘仙去(僊去)’, 곧 ‘仙化 내지 神化’의 관념 때문 에 그러하다.

28)

이에 대해 일찍이 李能和 는 이르기를,

“檀君은 동방최초의 임금으로⋅⋅⋅君자는 東君 帝君 및 眞君 등의 仙 家의 용어이며 또한 雲中君, 湘君 등 神君의 이름과 같은 것이다. 이로 보 아 檀君이라 함은 仙이라 할 수도 있고 神이라 할 수도 있다”29) 하였다.

그리고 崔南善은 「檀君論」에서, “妙淸의 八聖이 대개 仙人神人天仙 天女로 칭하는 자요, 仙人이라 한 것은⋅⋅⋅<三國史記>의 仙人王儉이 후 세의 기재에는 神人으로 出하는 등…高麗의 仙風으로 외래종교에 대한 固 有信仰의 名號(이름)”30) 라 하여, 이것이 그 표현은 각각 달라도 내실은 한 가지임을 고증하고 있다. 또, “古宗敎에서는 天과 先祖를 山岳에 배정하여

27) “신화에 나타난 하늘은 군림하는 하늘이 아니요, 인간과 대화하며…세계를 이끌어가는 상호협조적인 존재하늘중심주의가 아니라 인간중심적인 성 격…”(閔泳炫, 󰡔仙과 󰡕, 세종출판사, 1998. 116-117쪽)

28) 檀君神話를 기록한 󰡔三國遺事󰡕 󰡔帝王韻記󰡕 󰡔高麗史󰡕 󰡔東國輿地勝覽󰡕 󰡔應制 詩註󰡕 󰡔東國通鑑󰡕등은 모두 ‘古記’를 인용하여 山神 내지 神으로 쓰고 있으 나, 󰡔三國史記󰡕 卷17 高句麗本紀 東川王條에는 “平壤者 本仙人王儉之宅也”

라 하여 으로 기록하고 있다. 29) 󰡔朝鮮道敎史󰡕, 앞의 책. 總說.

30) 崔南善, 󰡔六堂崔南善全集 2󰡕, 현암사 : 韓國史2. 127쪽

(24)

숭배하며, 그것을 인격적으로 보는 이름을 山神이라고도 하고 仙人이라고 도 하며⋅⋅⋅이 경우의 仙은 漢文類로 말하면 神이라고도 하는데 합당하 며…仙人이라는 것은 종교의 行者 내지 神道의 體現者에 대한 칭호이며, 古代에서는 그대로 敎權的 君主의 이름”31)

이라고 한다.

바로 이와 같은 神과 仙의 상호 동질적인 이해를 통해, 한국사상의 자생적 사유체계를 일러 학계에서는 古神敎 나 古仙道 또는 한국 神 仙道 나 巫神敎 등 ,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여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仙 이란 근본적으로 국조 단군의 山神化 의 사실 속에서 비롯하게 된다. 동시에 신화와 구비전승의 자료 및 한국 민간의 풍습 및 지명과 풍수 등등, 이들은 仙 과 연관된 신화적 사유의 다양한 내 용을 알려주는 살아 있는 자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결국, 비 록 용어는 다르다 할지라도, 단군으로부터 출발하는 한국철학의 자 생적 근원정신 곧 고유사상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어 온 것이 다. 그리고 이 같은 고유사상을 일러, 고운은 風流 라 이름하고 玄妙 之道 라 풀이하며 仙史 를 언급한 바, 그 자신의 최후 행적 역시 이와 버금가는 것임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고운의 이러한 언급이 없었다면, 한국의 고유사상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불가능한 상황에 봉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國有玄妙之道 의 의미와 그 존재에 관한 이해는 고유사상과 韓國仙道에 접근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이에 근⋅ 현 대의 많은 학자들 역시 풍류도 내지 風月道 를 이해함에 있어, 國仙 이 나 神仙郎家 와 동일한 의미로 고유사상을 받아들이고, 다시금 「난랑비 서 」 의 의미 분석을 통해 이를 현재적으로 재해석 ⋅ 재정립하려는 경 향을 보여 온 바 있다 .

이를 보면, 일찍이 安浩相 은 고신도를 제정일치적인 고대사회의

31) 上同. 361쪽.

(25)

신앙이요 가르침이라 하면서, 초기에는 한얼교⋅蘇塗敎⋅한배교라 하였는데 이때가 곧 上古時代 라 하고, 그 다음 시대엔 代天敎⋅ 고구 려에선 敬天敎⋅신라에선 崇天敎⋅배달교로 변천되어 내려온 것이 라 하였다. 그는 또 渤海 에선 眞倧敎⋅ 고려에선 王儉敎⋅ 조선에선 大倧敎 라 하였고 , 요⋅ 금 ⋅ 청의 백성들은 이를 天神敎 라 하였다 한 다.

32)

이를 따라 구한말 민족종교사상의 하나인 大倧敎 에서는 스스 로를 한배교 ⋅ 단군교 ⋅ 수두교 ⋅ 대종교 등의 명칭 변천을 거쳐 1909 년 일제의 침략에 맞서 重光 하였으니, 이는 원래 태고 고신도의 현재 적 변경이라고 스스로를 표명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金炯孝 는 이를 玄相允 이 언급한 祭天⋅敬天 의 사상에서 출 발하여, 崔南善 의 불함문화론과 관련시킨다. 곧, “古神道 의 신앙은 「 

애 」 가 바로 하님이고, 그것이 또한 단군이며, 단군이 「 리 」 이 고 「 리 」 가 곧 「  」 이요 , 「  」(대감)의 정신이 곧 「  」 이요 , 곧 「백」이니, 「박」은 곧 「  」의 詞意 또는 譯字로 이어지게 된 다”

33)

하였다 . 이로부터 “風流道 는 곧 「  」 의 정신, 「  」 의 정신을 생활화하는 「애」의 기상을 뜻함과 같다”하였다. 이에 반해 金永 斗 는 한국의 원형정신을 風流道 라 하면서, 풍류도의 이데올로기적 조직화는 논리적인 체계화라기보다도 실천적이고 현실적이며 정치 적인 면으로 기울었다 하였다.

34)

이와 거의 동일한 맥락에서 개인적으로는 신화의 구조이해를 통하 여 仙 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神人 이나 人神 의 의미로 나타 나는데 , 신화의 기본 틀을 도식화해보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35) 32) 안호상, 󰡔나라역사 육천년󰡕, 뿌리, 서울 1987. 60-61쪽 ; 이의 기사에 대해

서는 아직 그 분명한 증거를 찾기는 어려운데, 그러나 현재 大倧敎 측에서 는 사실상 이를 거의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형편이다.(󰡔韓國思想大全集󰡕 권 27, 三一神誥(外), 양우당, 서울 1988. 16쪽. 「大倧敎史의 抄略」)

33) 金炯孝, 󰡔韓國思想散考󰡕, 일지사, 서울 1985. 199쪽

34) 高大民族文化硏究所, 󰡔韓國文化史大系Ⅱ󰡕, 서울인쇄, 서울 1978; 金永斗 「韓 國政治思想史」. 39쪽.

(26)

단군신화의 구조(삼국유사) 신화해석과 그 이해 환인(桓仁) -부(父) 격절신 천상천(천외천)

弘益人間 ⇔ 천부(天符) 삼인 환웅(桓雄) -자(子) 현세신 현재천(하늘신)

풍백,우사,운사 태백산 신단수 삼천무리 神市 개천시조

󰁿 무(巫)

5360여사 在世理化(虎)

웅(熊) 백일 땅과 동물

쑥과 마늘 삼칠일 민간의 생명사상 수련과 수양

선택 인(忍) 수계제불(修禊除祓)

웅녀(熊女) 인형(人形) 대지모신(大地母神) 呪願有孕,

인간탄생의 이야기

한웅가화(夫化)

+웅녀인화(婦化) 天+地,

신(神)+수(獸) 남(男)+여(女)

천지인(天地人) 합일

단군왕검(人), (子) 한민족의 정체, identity

← 신화와 역사의 분기점 →

원조선의 역사

평양성 조선

배달(풍류)임금 개국시조

조상신앙

아사달

소도경전 및 삼한관경의 시대

기자 장당경

(仙) 󰁽

아사달 산신(山神) 산악신앙

무속과 민간신앙 풍류도와 국선낭가 한국 민족문화의 기층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단군신화에는 기본적으로 巫 와 仙 에 대한 이해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곧 고유사상의 仙道的 성격으로, 儒⋅佛⋅

35) 이 표는 이전 단군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가운데 수록된 것인데, 여기에 재 인용한다. 이 단군신화의 구조와 내용은 󰡔三國遺事󰡕 卷一, 紀異 第一, 「古朝 鮮」의 기록에 근거한다.

(27)

道⋅巫의 4가지를 언급하면서 설명하고 있는 선도문화연구원의 입장 과도 어쩌면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다만 이의 대강은, 홍익이화의 가르침이 단군 아버님 이래로 태 극음양과 거대한 천지자연의 이법에 따라 한민족과 그 뜻을 함께해 왔음을 나타낸다 . 그 사이에 仙 과 巫 의 갈래가 나타나고 , 한민족 생 활문화의 기초적인 풍습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韓國仙道 와 神仙郞家 의 뜻 또한 신선의 그러한 삶과 같이, 개인의 영달이 아 니라 어차피 왔다갈 인생, 생사의 난문 앞에서 표표히 그 삶을 정리 했던 위대한 선조들의 정신과 함께 하였음을 전한다. 다만 이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선도가 이러한 기록의 중요성을 소홀히 했던 것은, 또 한 가히 仙家 의 법통에 들어맞는 것은 아닐까 한다. 한 번 왔다 잘 놀다 가면 그 뿐, 다시 무엇이 나의 발목을 잡을 것이며 또 달리 내 가 잡을 것은 무엇이 있을 일이던가.

Ⅴ . 固有思想 , 風流 , 仙道 의 실체적 이해

학계에서는 고유사상과 전통사상의 문제를 파악할 때, 대략 세 가

지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 첫째는 삼국 시대에

유입된 유⋅불⋅도 사상이 한국화하고, 이후 표층 정신문화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며 이어져 왔다는 측면에서, 유⋅ 불 ⋅ 도의 사상형을

그대로 전통사상으로 파악하는 방식이다. 둘째, 외래적인 흐름에 반

대하고 자생적 전통과 고유라는 의미에 집중하여 국조신화에 나타난

사상성이 전통사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측면이다. 이는 대개 민

족사상적 이해로서 파악할 수 있다. 셋째, 고유와 외래의 각각을 인정

하고 한국문화사의 전 영역에 나타난 다양한 사유체계를 받아들임으

로써, 이들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28)

곧, 실증성을 주로 한 강단학계에서는 대체로 첫 번째 경향, 그리 고 일부 민족종교 및 소위 재야학계에서는 두 번째의 경향을 주로 보인다.

36)

그러나 이 둘은 어차피 일정한 편향성을 보이는 것이라 생 각된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는 이 양자의 입장보다는 세 번째의 절 충적인 방식이 보다 적합하다고 본다 . 이러한 이유는 한국고유사상 이 실로 다양성의 종합으로 나타나고 있고, 또 그렇게 이해함이 가장 적절하겠기에 그러하다. 이는 결국 고유사상과 風流 , 韓國仙道 로부터 한민족문화가 터전하고, 그 위에 외래적 삼교가 전통사상으로 문화 사적 과정을 함께 해 왔기 때문이다. 더하여 자생적 고유와 외래적 삼교사상과의 相和 관계에서 볼 때,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흡수 통합하여 전체 한국문화를 형성한 것으로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 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곧, 고유사상이 삼교사상을 흡수하여 한국문화를 전개시킨 것이

아니요, 또 외래적인 삼교가 고유한 정신요소들을 모조리 구축함을

통해 한국문화를 완성시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固有 와 外來 의

양자는 공히 한국적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문화세계를 형성하는데

있어 각기 나름의 역할을 해냄으로써, 실질적인 한국의 정신⋅ 사유 ⋅

사상⋅문화의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해되는 것은, 고유

사상의 존재가 다른 전통사상들을 결코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다. 다만 고유사상의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문화의 기본 성격을 달

리 파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좀 더 명확히 할 점은,

이 같은 고유사상이 현대 한국사회와도 결코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실로 三七日 과 百日 이라는 産育 의 전통과 三神 과 민간신

36) 이러한 연구경향의 불일치로 인해 韓國傳統思想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새로 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겨지는데, 이 점은 하루빨리 해결되어야 할 韓國思想界의 긴급한 懸案이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방법론적 대안의 개척이야말로, 이의 연구에 있어서 참으로 필수적인 부분이라 아니 할 수 없다.(이가원 외, 󰡔韓國學硏究入門󰡕, 지식산업사, 서울 1988. 236-238쪽 참조)

(29)

앙의 현실성 및 在世理化와 接化群生에 나타난 化의 철학과 忍耐의 美德 등등은 여전히 한국사회의 불변의 가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사실 문화의 전승과 창달의 과제는 사상과 문화가 갖는 기본적인 상호가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지금 이곳의 삶 과 세계를 떠난 , 전통을 위한 전통⋅ 고유를 위한 고유사상의 존재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과 유리된 삶과 세계 또한 뿌리 없는 나무와 같이, 그 근본과 주체성을 상실한 卽物的 이며 현상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한 고유사상의 여 러 내용과 양상들을 고려할 때, 여기에는 또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민속학에서 필드(field), 즉 현장을 중시하는 것과 같 다. 곧, 철학이나 역사에 앞선 시대나 시기로서의 신화적 사유 그리 고 자생성과 고유성의 측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생활 현 장을 추적해야만 한다. 나라에 원래부터 있었다는 자생적 사유나 그 흔적을, 단순히 동아시아사와 이를 답습한 한국사 속에서 기록된 자 료만을 통해 확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문화와 사상사 에 나타나고 있는 철학정신은 온전히 이론으로서의 세계인식 내지 삶의 구조에 대한 체계적 논리적인 이해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실 체적 접근을 典籍 에 국한하게 된다면, 이에 대한 이해는 처음부터 불 가능한 것이 된다.

기본적으로 유물이나 기록으로 확정할 수 없는 고대사와 고대문명

에 대한 접근은 최대한의 역사철학적 해석을 필요로 한다 . 한국의 고

유사상 또한 그러하다. 기록이 진실을 전달한다고 단순히 믿을 수 있

을 것 같으면, 그 어떤 새로운 해석이나 이해도 필요 없을 것이다. 하

지만 역사기록으로 남겨진 사료들은 사실상 상당한 정도로 권력적

지향성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들이 어떤 현실성과 합리

성을 배제한 채 전달되고 있다면, 이는 반드시 재삼재사 검토되어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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