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BT, NT 등 첨단산업이 고부가가치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건강
을 파는 산업’, ‘시간을 파는 산업’이 그러한 첨단산업 못지않게 많은 부가가치 를 창출하는 산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가가 삶의 질과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그것을 담 보하는 조건이 건강이므로 두 가지 산업에 대한 수요는 무한히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우리 농업이 건강한 식생활을 보장하는 산업으로 소비자의 확실한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수입 농산물은 물론 의료산업, 건강용품산업과 경쟁하 는 산업이 될지도 모른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이야기가 말해주듯 훌륭한 농 산물이 건강용품은 물론 의료서비스를 대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농촌이, 도시민이 즐겁게 찾아오는 공간이 된다면 도시의 레저∙
스포츠산업이나 문화산업과 경쟁하는 고부가가치 창출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 다. 러시아와 북유럽의 공연문화는 긴긴 겨울 밤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한 것이고, 라틴의 축제문화는 화창한 한낮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는 노 력의 자연스런 결과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요컨대 시간을 즐겁고 보람 있게 보내려는 노력이 많은 다양한 문화를 창조해 냈던 것이다.
앞으로 쾌적한 자연 속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는 수 요는 끝없이 늘어날 것이고, 농촌 공간이 그런 도시민의 절실한 욕구를 충족시 켜 줄 수 있는 문화상품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산촌의 토지이용과 농업 생산 활동을 단순히 지금 당장의 농가경제 문제를 해결한다는 편협한 시각을 넘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넓고 긴 안목에서 사려 깊게 생각해야 한다.
먼저 모든 농산촌의 토지이용과 생산활동은 농촌을 아름답고 쾌적하게 가꾸 고 건강한 식품을 가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패러다임이 중요하다. 농산촌지 역 토지는 철저한 계획 아래 경관과 환경 그리고 문화가 보전되도록 이용되고 국 토 시 론
농산촌토지의 가치와 이용
이정환｜GS&J인스티튜트 원장,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2
3
관리되어야 한다. 한 필지의 전용, 건물∙시설물 한 채의 건축도 환경과 경관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 려한다는 인식이 중요하고, 모든 국토정책과 농정은 이런 인식 위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최근 규제가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경쟁력을 약 화시킨다는 이유로 토지이용 관련 규제에 대한 비판 이 많고, 지자체는 지역경제를 위해‘경제활동의 증 진’이라는 잣대만으로 토지이용 문제를 재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OECD국가의 농촌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결과 환경, 경관, 문화가 잘 보전된 지 역에는 사람이 모이고 경제도 활성화되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은 대부분 사람들이 떠나고 경제도 침체된 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농촌의 기본가치는 자연 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환경과 경관을 자랑하던 양 수리를 중심으로 하는 한강변은 무질서한 개발로 아 름다움이 파괴되고 경제적 활력도 시들어가고 있음 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또 하나의 절경 변산반도 는 양식시설이 난립하여 그 고고하던 아름다움을 상 실하였고, 그밖의 농산촌 곳곳에서도 무분별한 형질 변경과 건물∙시설물 건축으로 환경과 경관이 망가 져 버린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조금 더 일찍 환경과 경관을 우선하는 토지이용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 라 이용과 관리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다음은 농산촌지역에서의 모든 생산활동은 지역 의 물질순환체계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엄격하게 관 리되어야 한다. 가축은 그 지역 내 농작물이나 기타 식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의 양을 초과하지 않는 범 위 내에서 사육되어야 하고, 축산과 경종농업은 물질 순환이 이루어지도록 연결되어야 한다. 다른 생산활 동도 그 지역의 자정능력 범위 내에서 환경부하를 높 이지 않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축산 같은 산 업의 지역 내 입지는 환경과 경관의 보전이라는 목표
에 합치되도록 규제되고 조정되어야 한다.
동시에 농지는 농지로서 보존되어야 한다는 농본 주의적 사고도 경계해야 한다. 농촌이 시간을 파는 공간이 됨에 따라 다양한 토지수요가 발생할 것이므 로 이러한 수요를 농지전용으로 충족시키는 데 인색 할 이유가 없다. 농지보존을 위해 수려한 산자락을 갉아먹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법률적 규제와 정책도 필요하지만 지역의 환경과 경관, 문화가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원이자 그 지역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회가 된다는 데 대해 지역주민들이 깊이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공감 위에 지역의 경관과 환경, 문화를 보전하기 위 해 자율적으로 규범을 만들고 감시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에 맞추어 그런 주민의 자구 적 노력을 뒷받침하는 법적근거를 정비해 나가야 함 은 물론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환경과 경관은 기본 적으로 공공재이므로 이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개인 의 이익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갈등이 생길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 개인 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려 하지 말고 규제에 대 한 적절한 보상시스템을 만들어 합의를 이룰 수 있도 록 해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국토 협약이라는 개념에 따라 경관과 환경보전을 위한 규 제와 활동에 대해 보상제도를 확립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도 이러한 목적의 직접지불제도를 세밀하게 마 련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