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1598-1142 (Print) / ISSN 2383-9066 (Online) https://doi.org/10.7738/JAH.2019.28.6.043
조선후기 궁실건축에 사용된 격식기법의 유형과 변천
The Architectural Crafts as a Code of Manners and Their Historical Changes in Palatial Buildings and Royal Residenc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안 소 현 Ahn, So-Hyeon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석사과정)
전 봉 희*1) Jeon, Bong-Hee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Abstract
The grade of East Asian architecture is generally classified by the size, the shape of the roof, and the type of bracket set. The craftsmanship of columns, beam, purlin, stylobate, column base stone and paintwork is also a contributing factor for such classifications. These classifications can be found not only in historical documents such as Oksajo(屋舍條) of Samguksagi(三國史記) but also in house details regulations of residential architecture(家舍規制) of Joseon Dynasty. However, there are differences in detailed designs among the same grade of architecture regardless of the classification. In this research, the Palace, the Royal Residence(宮家), and the Jaesil(齋室) are considered as the Palatial Buildings and Royal Residences. And the advanced architectural ㅇ details which appear only in the Royal Architectures are defined as the ‘The Architectural Crafts as a Code of Manners’. The Architectural Crafts as a Code of Manners is detailed design, which can be seen as fabrication of materials and supplementary factors. The Architectural Crafts as a Code of Manners used in the Palatial Buildings and Royal Residences reveal the types and their historical changes. This research will present a basis for the repair and restoration of cultural heritages to be carried out in the future, and also prevent them from further damages, thus help to preserve the cultural heritages.
주제어 : 격식기법, 궁실건축, 위계, 변천, 의장 요소, 여모판, 알추녀, 초엽, 사벽첩, 토소란, 동바리
Keywords : The Architectural Crafts as a Code of Manners, Palatial Buildings and Royal Residences, Hierarchy, Changes, Design Element, Yeomopan, Alchunyeo, Choyeob, Sabyeogcheob, Tosolan, Dongbali
1. 서 론
동아시아 건축에서 건물의 등급은 대개 규모, 지붕의 형태, 공포 형식을 기본으로 구분하고, 이에 더해서 기 둥, 보, 도리, 기단, 초석 등의 가공 형태, 단청의 채색 여부로 판단해왔다. 이와 같은 구분은 통일신라 삼국 사기(三國史記), 옥사조(屋舍條) 뿐만 아니라 조선시
* Corresponding Author : [email protected]
이 성과는 2017년도 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 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과제번호:NRF-2017R1A2B4005100) 서울대학교 공학연구원의 지원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대 가사규제(家舍規制) 에도 포함되어있으며, 이것의 모범이 되었던 당률(唐律), 대명률(大明律), 송대의
영조법식(營造法式), 청대의 공정주법칙례(工程做法 則例)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하지만 위의 규제 기준 으로는 같은 등급의 건축이라도, 구분에 소속되지 않는 세부기법의 차이가 존재한다.
세부기법은 그동안 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 루어졌다. 선행연구들은 건물의 외관을 크게 구분할 수 있는 요소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이제 건물의 격을 좌 우하는 세부기법에 대해서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이 논문에서는 궁궐과 궁집, 재실 등 궁
실건축(宮室建築)1)에서만 특별하게 보이는 고급의 건축 기법을 각 부분별로 찾아내 정리하고, 그 종류와 성격, 기능을 고찰한 후, 그 기법들의 위계와 변천을 밝히고 자 하였다. 또한, 연구의 진행과 향후 전개를 위해 위계 적인 고급의 건축기법을 ‘격식기법’이라 명명하였다.
연구의 대상으로 원형이 잘 남아있으면서도 공통적 인 격식기법이 발견되는 25동의 건물을 선정하였으며, 그 목록은 <표 1>과 같다.
번호 건물명 건축
유형 건립연대
1 남양주궁집 궁집 1765
2 운현궁 궁집 노락당, 노안당 1864, 이로당 1869 3 장위동 김진흥가옥
(덕온공주 궁집) 궁집 1865 추정 4 창녕위궁 재사
(복온공주 궁집) 궁집 19세기 중반
5 창덕궁 낙선재 궁집 1847
6 창덕궁 연경당 궁집 1865
7 창덕궁 선향재 서재 1891
8 창덕궁 성정각 서재 1690년대
9 창덕궁 관물헌 서재 1724-1830
10 창덕궁 서향각 서재 1776
11 창덕궁 희우정 서재 1791
12 창덕궁 제월광풍관 서재 1799
13 창덕궁 의두합 서재 1865
14 창덕궁 운경거 서재 1865
15 창덕궁 폄우사 서재 1777 이전 추정
16 창덕궁 농수정 정자 1865
17 덕수궁 함녕전 침전 1897
18 덕수궁 즉조당 침전 1905
19 경복궁 협길당 침전 1891
20 창경궁 통명전 침전 1834
21 창경궁 양화당 침전 1834
22 창경궁 환경전 침전 1834
23 창경궁 경춘전 침전 1834
24 홍릉 재실 재실 1919
25 유릉 재실 재실 1926
표 1. 연구대상 궁실건축
먼저 격식기법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양반주택과 궁실건축을 비교 분석하여 각 건물에 사용 된 기법의 종류를 파악하고, 현장조사를 통해 이들을 확인하였다. 또한, 문화재 정밀 실측조사 보고서와 해 체 수리 보고서, 기법과 장인에 관한 연구자료들을 참 고하고, 영건도감의궤, 산릉도감의궤, 조선왕조실 록 등 관련 문헌을 조사하여 기법의 용어와 사용 시 기를 파악하였다. 20세기 초 근대 시기 사진 자료인
1) 이 연구에서는 궁실건축을 궁궐에 준하는 것, 궁궐과 왕실에 의 한 건축으로 정의하고, 그 중에도 궁궐의 내전과 궁가를 연구대상으 로 제한하였다.
조선고적도보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궁·능 관련 유리원판 도록, 국가기록원 자료 등을 현황과 비교하 여 세부기법의 수리 후 변형을 확인하였다.
2. 궁실건축의 격식기법 고찰
2-1. 격식기법의 정의
건축물의 등급은 전통시대에도 기본적으로 존재하였 다. 동아시아 목조건축은 궁궐에서부터 민가에 이르기 까지 목가구조의 원리를 공용해왔지만, 신분에 따라 그 등급을 구분하였다.
통일신라는 옥사조 를 제정하고, 계급별 주거 규 모, 형식, 건축재료, 실내치장 등을 제한하여 신분질 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2) 여기에 더해 옥사조 에서 는 느릅나무, 산돌, 석회의 사용과 기단석과 댓돌, 섬 돌의 가공을 금지하였다. 또, 부연, 막새기와, 장식기 와, 현어, 우물천장, 계단의 개수나 기단의 단수, 출목 공포와 같은 부가적 요소의 사용을 제한하였다. 즉, 신 분계급에 따른 재료의 가공 정도와 부가적 요소를 제 한함으로써 주거 형태를 구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가사규제 로 집터의 크기, 집의 규모, 장식을 신분 계급에 따라 제한하였다.3) 진채 단청과 초석 이외에 다듬은 돌의 사용, 화공과 초공 같은 공 포를 장식으로 보아 부재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송대 의 영조법식, 청대의 공정주법칙례에서도 등급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의 크기 단위가 다르고, 지을 수 있는 규모가 달랐다.
이와 같이 신분이 높을수록 낮은 신분에 비해 좋은 방 식으로 건축할 수 있었고, 이때 건축 방식의 우열은 세부 적인 기법을 구분 지음으로써 구체화하였다. 전통시대에 등급을 제한한 것들은 고급의 기준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외 고급기법들은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나 인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섬세한 차이이며, 장인의 기교나 건축주의 안 목 같은 개별적인 사안으로 여겨져 무시되어왔다.
연구자는 이러한 세부적인 고급기법들을 모아 정리 하고자 선행연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세부기법’, ‘고급
2) 삼국 통일기에 제정된 옥사조 는 외국문물의 유입 등으로 전래의 옥사제도와 신분질서가 문란해지자,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흥덕왕이 834년에 교서를 내려 준수할 것을 신칙(申飭)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호열, 한국 건축사 연구 1-분야와 시대, 발언, 2003, 197∼198쪽) 3) 가사제도(家舍制度)가 없어, 백성들의 집이 귀족의 집을 지나치고 귀족의 집이 궁궐을 능가하는 정도로 치장하려 다투니, 상하가 넘나 들어 참으로 외람되다. … 주춧돌을 제외하고 다듬은 돌을 쓰지 말 고, 화공(花拱)을 구성하지 말며, 진채(眞彩)로 단청하지 못하게 하여 검약을 무종(務從)하게 하라.(세종실록 세종 13년(1431) 1월 12일)
기법’, ‘의장요소’, ‘세부의장’ 등의 용례와 그 의미를 검 토하였다. ‘세부기법’은 가구 부재의 형태, 규격, 결구를 분석하거나 창호 구성 기법, 내부 미장 기법, 열손실 방지 기법 등 특정 기법의 상세한 연구에 사용되었 다.4) ‘의장(意匠)’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구상, 고안 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5) 일본이 ‘design’의 번역어로 기존 한자어인 ‘의장’을 사용한 이후 한국에 도입되어 만들어진 대상의 형태, 색채, 문양까지로 그 의미가 확 장되었다.6) 현재 한국건축에서 의장은 후자의 뜻으로 주로 부재의 형태, 문양의 외관상 미감을 논할 때 사용 하고 있다. ‘장식’은 주로 공포나 기와, 합각부, 굴뚝, 담장, 난간의 문양에 이용되었다. ‘의장’이나 ‘장식’은 기단부의 기법이나 토소란과 같은 미장 기법을 포함하 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의장적, 장식적으로 더 화려 하다고 위계가 높은 것이 아닌 궁궐에서 사용하는 문 양의 상징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여 한계가 있다고 판 단하였다. ‘고급기법’은 용어 자체에 등급의 의미가 내 포되었지만, 높고 낮음을 구분하기 모호한 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논문에서는 위계의 의미가 잘 나타나는 세부 고급기법을 격식기법으로 정의하였다. 흔히, 건물의 위계를 ‘格’으로 구분하여 격이 높다, 낮다로 표현한다. 건 물의 등급을 구분 짓는 방식을 ‘격식’으로 정의할 수 있으 며, 격식을 구현하는 기법을 ‘격식기법’이라 할 수 있다.
등급을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닌 격식기법은 가 사규제에서 등급으로 제한한 것들에 비해 더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하위개념으로 볼 수 있지만, 돌의 사용방법 등과 같이 경우에 따라 위계가 일치하기도 한다. 한편, 격식기법은 궁실 이외의 고급건축에서 사 용되기도 하고, 특정 장인이 사용하는 개별적 기법일 가능성도 있다. 또, 궁실건축에 참여했던 장인 집단이 궁 밖의 다른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한 경우도 있을 것
4) 이혜민 외 3인, 제천 신륵사 극락전 가구(架構)의 세부기법에 관 한 연구 , 한국건축역사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 논문집, 2018, 23∼26 쪽 ; 장순용, 덕수궁 즉조당 창호의 복원적 고찰 , 건축역사연구, 1 권, 1호, 1992, 18∼32쪽 ; 장순용·김동욱, 침전건축의 창호구성 기법 과 경복궁 복원건물의 고찰 , 건축역사연구, 8권, 4호, 1999, 161∼176 쪽 ; 정정남, 경운궁(덕수궁) 침전 온돌의 열손실 방지를 위한 건축 기법 , 한국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 논문집, 2013, 129∼134쪽 5) 上曰: "畫師輩意匠未到處, 在傍指揮也." 임금이 이르기를, "화사 (畵師)들의 의장(意匠)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곁에서 지휘(指揮)토 록 하라."하였다. 정조가 희우정에서 강세황을 소견하고 어용을 모 사하는 일을 지휘하게 하면서 ‘의장’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정조 실록』정조 5년(1781) 8월 28일)
6) “1909년 ‘한국의장령’이 공포되어 ‘의장’이 ‘design’을 의미하는 용 어로 알려졌다.”(오윤정, 용어와 건축-의장(意匠) , 建築, 59권 11호, 2015, 49쪽); “특허 의장 상표 실용 신안에 관한 일본국의 법령 등 을 공포하다.”(『순종실록』순종 2년(1909) 11월 2일)
이다. 따라서, 격식기법이라고 하여 반드시 궁실건축에 한정할 순 없지만, 대개 집중적으로 등장하였기에 이 논문에서는 궁실건축에 사용된 격식기법을 보고자 하 였다.
2-2. 궁실건축의 용례와 차별성
조선시대 궁궐은 의례영역과 생활영역이 구분되는데, 생활공간의 건축물이 공식적인 의례를 위한 공간에 비 해 격이 낮은 건축양식을 채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 다. 이렇게 궁궐의 주거건축이 정전과 같은 의례건축에 비해 격식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대부집과는 구분 되었다. 궁궐은 높은 기술 수준을 가진 장인들이 동원 되어 엄격한 규범에 맞추어 지어지기 때문에 여러 의 장적 기법들이 확인된다. 또, 궐외 왕족의 주택도 타 계층과의 격식 구분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궁궐보 다 더 넓은 범위인 궁실의 용례를 살펴보았다.
궁실(宮室)은 궁궐에 준하는 것으로서, 왕족이 거주 하는 곳을 일컫는다.7) 또, 지배자의 집인 궁궐, 권위있 는 집, 즉 궁궐급의 건축물을 의미하기도 한다.8) 조은 주는 “궁실은 왕가일족과 관계된 왕실에 소속된 시설 물”이라고 정의했다.9) 『동국여지승람』서문에서 궁실 은 “위아래의 구분을 엄하게 하여 위엄과 무거움을 보 이는 곳”이라 하고, 공해를 제외한 건축물들을 수록하 였다.10) 신영훈은 “궁실은 왕권이 경영하는 모든 건축 물을 통틀어 일컫는다. 아주 넓은 의미의 단어로, 궁궐 과 함께 객관과 공해까지도 망라된다.”라고 하였다.11)
이와 같이 궁실건축은 궁궐에 준하는 것, 왕족이 거 주하는 곳, 위엄이 있는 곳이다. 이 연구에서는 궁실건 축을 궁궐과 왕실에 의한 건축으로 정의하고, 그중에 서 연구대상을 궁궐의 내전과 궁가로 제한하였다.
기법의 분석 요소는 타 계층과의 비교를 통하여 궁 실건축에서만 사용되는 요소들을 추출하였다.12) 비교
7) “本朝に於て名稱は同じく宮と云ふも、其の性質は夫れぐ異なるも のがある. 以上記述した宮闕即ち国王の住居の宮以外、之に準ずべき ものとして王族、即ち王后、王世子、太王、王の私親、後宮たる淑嬪 の住居する所、並に遊幸する所をも同じく宮と稱し、又別宮、離宮、
行宮、東宮、館、亭等とも稱した.”(경성부, 『경성부사』 제1권, 1934, 73쪽) 8) 문화재청, 『조선시대 궁궐 용어 해설』, 2009, 65쪽
9) 조은주, 근대기 한양도성 안 궁묘와 궁실의 변용 , 서울시립대학 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55쪽
10) “宮室 所以嚴上下 示威重也”(『新增東國輿地勝覽』(奎貴 1932-v.1-25), 一冊, 卷首, 東國輿地勝覽序)
11) 신영훈, 國寶11. 宮室建築, 藝耕産業社, 1985, 196쪽
12) 궁실건축과 조선시대 양반 주택이었던 문화재급 전통가옥의 기 법 비교는 온라인으로 서비스되는 ‘한옥기술개발 R&D 전통한옥사
대상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양반주택을 대상으로 하였다. 먼저 격식기법은 사대부집과 궁실건 축의 비교로 위계가 크게 구분되고, 궁실건축에서 사 용된 고급기법 안에서도 다른 층위로 위계가 존재하였 다. 격식기법은 기능상의 차이보다는 의장적 차이가 크고, 그것은 재료의 가공정도와 부가적 요소의 형식 으로 드러난다.
궁실건축은 재료의 가공 정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재 료는 목재와 석재로 분류되고, 가공의 방식은 규격, 형 태, 결구로 나눌 수 있다. 석재는 다듬는 정도, 물림 턱 결구 등 가공 정도에 따라 분류되었다. 목재는 부재의 형태, 규격, 종류, 결구에 따라 가공의 방식이 달라진다.
궁실건축은 부가적 요소를 추가적으로 사용하였다.
부가적 요소는 꼭 필요하진 않지만, 기능적, 구조적, 장식적으로 보강을 위해 첨가한 부재를 말한다. 여모 판, 초엽, 사벽첩, 토소란, 알추녀 등의 부재를 사용하 여 위계를 높이기도 한다. 합각부, 굴뚝, 담장 등에 건 강과 길상의 상징인 수(壽), 복(福), 희(喜), 박쥐, 포도 문양, 호리병 문양을 넣기도 한다. 또, 궁궐건축의 지 붕마루에는 양성을 하고, 장식기와인 용두, 취두, 잡상, 토수를 설치하여 위계를 구분하였다.
구분 재
료 분류 기준 구성 요소
재 료의 가공
목재 형태, 규격, 종류, 치목, 결 구, 쇠시리
기둥, 보, 도리, 창방, 대공, 인방, 마루, 동바 리, 공포, 초엽, 창호 석
재 치석, 형태, 규격, 다듬 방
식, 턱가공, 쇠시리, 기단석, 초석, 동바리기 둥, 고막이석
부가 적요 소
부재 특정 부재의 유무 여모판, 초엽,
사벽첩, 토소란, 알추녀 문
양 동물문-용, 봉황, 거미, 박쥐
글자문-희(喜),수(壽), 복(福) 창호, 난간, 합각벽, 천 장, 기와, 담장, 굴뚝 기와 막새, 장식기와 용두, 취두, 토수, 잡상 표 2. 궁실건축에 사용된 기법의 위계 기준
3. 부분별 격식기법의 종류
3-1. 기단부 : 기단, 초석, 고막이, 동바리기둥 조선시대는 가사규제 로 주초석 외에 숙석(熟石)의 사용을 제한하였지만, 궁실건축은 기단과 고막이, 동바 리에 다듬은 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궁실건축의 기단은 다듬은 기단석을 사용하고, 국가민속문화재로 례 DB’에 있는 105채의 상세 사진과 정보를 활용하였다.
지정된 한옥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재료의 가공에 차이 를 두었다. 가공석의 경우 건물의 위계에 따라 단수를 다르게 하고, 단수가 높아질수록 쌓기 방식에도 차이를 두었다. 상부돌을 안쪽으로 들여쌓는 방식에서 상부갑 석을 내밀어 쌓고 월대를 두는 방식으로 차이를 둔다.
갑석의 상부 모서리는 빗모로 가공하고, 하부 모서리에 는 물끊기 홈을 둔다. 또한, 초석과 기단의 고정을 위 해 물림턱을 두기도 하고, 모서리돌을 빗모로 가공하여 세부적인 부분까지 공력이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초석은 궁실건축에서 잘 다듬어진 방형형태로 평균 높이 330㎜, 흘림이 1치 이내로 거의 없는 것을 사용 한다. 보통 사대부집에서 자연석초석이나 높이 150㎜
정도의 흘림이 강한 사다리형 초석을 사용한 것과는 형태와 가공 정도에서 차이가 있다. 고막이도 궁실건 축은 고막이석이나 전돌을 사용하고 통풍구는 주로 철 물을 이용하였다. 특이하게도, 창경궁 침전들에서는 주 로 통풍구가 있는 목재로 된 고막이판을 사용하였다.
그림 1. (左) 유릉 재실 초석 물림턱 (右) 유릉 재실 기단 모서리돌 동바리 기둥은 다듬은 돌기둥을 사용하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대부집에서 동바리로 보통 방주를 사용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팔모석주는 창덕궁 낙선재 일곽에서 보이고, 사모석주는 운현궁, 덕수궁 함녕전과 즉조당에서 확인된다. 동바리기둥으로 팔모 초석과 팔모기둥을 사용한 사례로는 창덕궁 성정각, 농수정, 낙선재 일곽, 연경당, 운현궁이 있다. 창덕궁 폄우사와 희우정, 남양주 궁집에서는 사다리꼴의 동바 리가 확인되는데, 그중 남양주 궁집의 동바리기둥은 턱빗모로 모접기를하여 세심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가 공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동바리기둥은 채의 위계 와 위치에 따라 형태를 구분한 사례도 있었다.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에서는 팔모초석에 원형기둥을 사용하였 고, 안채 정면은 팔모초석에 팔모기둥을 이용하고, 안 채 배면과 행랑채에서는 방형초석에 사다리형 기둥을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동바리기둥은 부식이 잦은 부재 로 돌을 사용함으로써 내구성을 강화하고, 사다리꼴이 나 팔모형태를 이용하여 사대부집과는 격을 달리한 것 으로 볼 수 있다.
그림 2. (左) 창덕궁 석복헌 동바리기둥 (中) 창덕궁 낙선 재 동바리기둥 (右) 남양주 궁집 동바리기둥
3-2. 몸체부:기둥 가공, 여모판, 초엽, 사벽첩, 토소란 몸체부 격식기법은 입면상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분으로 대부분 부가적 요소를 사용한 기법으로 나타 났다. 방주는 모서리가 날카로워 손상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좋지 못하여 모서리를 쇠시리 가 공으로 모를 접어 처리한다.13) 기둥은 모든 사례에서 모서리 가공을 하고, 그 쇠시리 형태는 총 25건 사례 전부에서 둥근턱빗모를 형태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다.
기둥 면의 쇠시리 가공은 단순한 기둥에 변화를 주 고 면 중앙에 수직선을 장식하여 기둥이 반듯하게 서 있음을 표시한다.14) 창덕궁 성정각, 남양주 궁집, 창덕 궁 폄우사, 서향각, 의두합, 농수정, 덕수궁 즉조당, 낙 선재 일곽 사각당에서 기둥 면 가공이 확인된다. 기둥 면 가공의 형태는 모두 쌍사로 사용되었고, 쌍사 폭은 12-20㎜까지 나타난다.
구분 면가공 + 모접기 모접기
형태
면(쌍사)+모(턱빗모) 모(턱빗모) 표 3. 기둥의 가공
이런 기둥 면 가공은 목재뿐만 아니라 석재에도 사 용이 되었는데, 화성 방화수류정 기단의 쌍사연석, 창 덕궁 금천교, 존덕정 입구 돌다리, 창경궁 통명전 앞 돌다리 등 궁궐 안 석교 난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가공이 어려운 석재에도 사용할 만큼 기둥 면 가공을 격식기법으로 인식하고 격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기법 으로 보인다.
여모판은 장식재처럼 보이지만 마루 귀틀 하부에 설 13) 김도경,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현암사, 2011, 105쪽 14) 신영훈, 한국의 살림집, 열화당, 1983, 293쪽
치되는 부재로, 디딤석에 신발을 벗고 마루 통행 시 신발이 마루 하부에 떨어지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 기 능적인 이유에 의해 생겨난 부재로 추정된다.15) 창덕 궁 석복헌, 운현궁 노안당과 이로당, 덕수궁 함녕전, 덕수궁 즉조당, 홍릉 재실, 유릉 재실 25개 중 6개의 사례에서 여모판이 확인된다. 추가적으로 여모판은 경 복궁 향원정, 창덕궁 낙선재 일곽 사각당에서도 발견 된다. 여모판은 침전과 같은 전각에서 전면 마루 하부 에 고막이석을 설치하여 주로 배면 가퇴에 사용되었 다. 정자나 재실에서 여모판은 대청 전면 부분에 사용 된 것으로 확인된다. 여모판의 형태는 연덩굴무늬나 구름무늬로 나타났다.
구분 연덩굴무늬 구름무늬
형태
사례
운현궁 이로당16) 운현궁 노안당 표 4. 여모판의 종류
초엽은 부재 처짐을 방지하기 위해 도리나 창방, 목 기연, 반침, 선반 하부에 설치한다.17) 총 25개 중 7개 의 사례에서 초엽이 발견되는데, 창덕궁 성정각과 같 이 궁궐에서는 주로 누마루 하부나 중층건물 하부에서 주심 밖으로 내민 귀틀을 보강하고 있다.18) 또한, 남양 15) 廉隅板(염우판)은 화성성역의궤에서 영화정의 마루 구성재로 기록되어, 마루의 마구리를 막는 부재를 칭한 것으로 추정된다.(경기 문화재단,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 2007, 184쪽) 한편 인정전중 수의궤 , 중화전영건도감의궤 , 경운궁중건도감의궤 에서 廉隅(염 우)는 닫집 상부 마구리 부분을 가리면서 장식효과를 거두도록 하는 판재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영건의궤연구회, 영건의궤, 동 녘, 2010, 794쪽) 또, 난간 하부의 인방이나 멍에 등에 덧댄 널 등을 赤貼(적첩)이라고 한다. 赤은 관습상 치로 읽는 것으로 보아 치마널 을 덧대었다는 뜻을 한문으로 기록하면서 치첩이라 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경기문화재단, 앞의 책, 2007, 295쪽) 裳板(상판)은 치마널 로, 툇마루 등의 마루귀틀 마구리에 댄 널로서 귀틀재를 보호하며 치장으로 댄 넓은 널이다.(장기인, 韓國建築大系Ⅴ 木造, 보성각, 1993, 356쪽) 여모판은 의궤에서 廉隅板, 赤貼, 裳板으로 사용했을 것 으로 추정되지만, 본 논문에서는 용어의 혼동을 피하고자 논문, 보고 서에서 통용되고 있는 용어인 여모판으로 칭하고자 한다.
16) 서울특별시, 雲峴宮 : 實測調査報告書, 1993, 142쪽
17) 초각한 재의 총칭으로, 화성성역의궤에서는 목기연 밑에 까치 발을 수직으로 박공판에 세워대고 못으로 고정한 부재이다.(장기인, 앞의 책, 1993, 301쪽), 산릉의궤에서 초엽(草葉), 계자각(鷄子脚)으 로 혼용하여 표기한다.(이상명, 산릉의궤 정자각을 통해 본 조선후 기 관영건축의 시공기술 , 명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6, 164∼166쪽)
18) 궁궐에서 사용된 초엽의 추가 사례로는 창덕궁 부용정, 창덕궁 함원전, 창덕궁 흥복헌, 창덕궁 대조전, 경복궁 향원정이 있다.
주 궁집, 창덕궁 희우정, 운현궁에서는 초엽을 반침 하 부에 사용하고, 창덕궁 서향각은 선반 하부에서 확인 된다. 연경당 선향재에서는 창방 뺄목을, 창덕궁 석복 헌 동행각에서는 도리를 보강한다. 초엽은 사대부집에 서 보기 힘들고, 사용되더라도 합천 묵와고가에서처럼 가새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편, 궁실건축에서 초엽은 누마루, 반침, 선반 하부에 사용하여 잘 보이지 않음에 도, 넝쿨무늬로 초각하여 사용한다.
그림 3. (左) 남양주 궁집 초엽 (中) 창덕궁 석복헌 동행랑 초 엽 (右) 창덕궁 서향각 초엽
사벽첩은 미장 면 테두리에 솔대를 둘러 벽체 두께 를 수장 폭보다 두껍게 하고, 목재 수축으로 이질 재료 인 벽과 생긴 틈을 막아주어 단열기법으로 사용한다.19) 그뿐만 아니라 인방과 벽선에 미장 시 정벌마감을 깔 끔하게 할 수 있다. 사벽첩의 사례는 창덕궁 연경당, 선향재, 성정각, 관물헌, 의두합, 홍릉 재실, 유릉 재실 로, 총 25개 중 7개가 있다. 사벽첩은 폭 10-20mm 각 재에 쇠시리가 들어가 있고, 사벽의 내외부 인방과 벽 선에 사벽첩박이로 고정한다. 추가적으로 창덕궁 대조 전 영역 양심합에서도 찾을 수 있었고, 덕수궁 석어당 과 홍릉 재실에서는 내부 사벽첩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벽지로 도배하여 전체를 감싸기도 하였다.
그림 4. (左) 창덕궁 성정각 사벽첩 (右) 사벽첩 상세 토소란은 당골벽이 탈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깔끔한 마감을 위해 사용하는 미장기법으로, 손이 많이 가서 격식 높은 집에 사용된다. 궁실건축에서는 당골막이
19) 산릉의궤에는 사벽첩(沙壁貼) 또는 사벽첩박이(沙壁貼朴只)가 기록되어있다. 이를 풀이하면 사벽첩은 사벽에 붙인 부재를 의미하 고, 사벽척박이는 이를 고정하기 위한 철물을 뜻한다.(이상명, 앞의 논문, 2016, 328∼331쪽)
골에 힘살을 설치하고, 도리 상부와 미장벽체가 만나 는 부위에 재료분리대로 토소란을 설치한다. 토소란의 사례로는 창덕궁 서향각과 폄우사, 연경당, 낙선재, 취 규정, 덕수궁 함녕전, 즉조당, 운현궁, 유릉 재실로, 총 25개 사례 중 15개 사례에서 발견된다.
그림 5. (左) 창덕궁 폄우사 토소란 (右) 창덕궁 낙선재 토소란
그림 6. 토소란 상세도
3-3. 지붕부 : 알추녀, 막새기와의 부분적 사용 옥사조 에서 겹처마와 막새기와는 왕족인 성골에만 허락된 가장 높은 위계의 지붕 형식으로 기록되어있 다. 이처럼 지붕부는 처마와 기와의 마감으로 위계를 구분할 수 있다. 보통 처마는 홑처마와 겹처마 두단계 로, 기와는 와구토와 막새기와, 막새기와에 장식기와로 마감한 것 세단계로 분류하지만, 알추녀와 막새기와의 부분적 사용으로 추가적 위계가 존재한다.
알추녀는 건물의 규모가 큰 경우에 거대한 곡재를 구하기 어려울 시 추녀 하부에 덧대어 추녀의 곡선을 만드는 부재이다.20) 하지만 연구대상의 궁실건축 사례 들은 규모가 작고 추녀 길이가 짧아 목재수급에 문제 가 없는 곳에도 알추녀를 사용하였다. 이는 알추녀가 조로 곡선을 위해서가 아닌 홑처마보다 위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기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21) 알추녀의 사례로는 창덕궁 의두합, 운경거, 연경당, 낙선재 일곽 석복헌, 수강재, 남양주 궁집, 장위동 김진흥가옥 총 25개 중 7개에서 확인된다.
20) 卵春舌(난추녀)라는 부재 卵(난)을 훈차해서 알추녀라고 부르고 추녀 아래에 덧대어지는 부재로 중화전영건도감의궤, 경운궁중건도 감의궤에는 알추녀가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영건의궤연구회, 앞의 책, 2010, 745∼746쪽)
21) 이연노, 조선후기 홑처마이면서 사래를 갖는 건축에 관한 연구 , 건축역사연구, 26권, 4호, 2017, 45∼54쪽
구 분 ← 高 격식기법의 위계 유형 低 →
재료의가공
기단석의 종류와 마감
가공석, 모서리돌, 물림턱 가공석 자연석
방전 강회다짐 흙마감
초석의 형태
높이300㎜ 이상, 흘림율1치 이내
높이240㎜ 미만,
흘림율3치 이상 자연석
동바리
팔모석주 사모석주 팔모초석+팔모기둥 사다리형기둥 방주
고막이
고막이석 전돌 토석
기둥 가공 면가공, 모접기 모접기 없음
부가적 요소
여모판
있음 없음
초엽
초각있는 초엽 초각없는 초엽 가새형 까치발 없음
사벽첩 있음 없음
토소란 있음 없음
처마 겹처마 알추녀, 홑처마 홑처마
기와 막새, 장식기와 막새 추녀, 합각부 막새, 와구토 와구토
표 5. 격식기법 위계 분류
그림 7. 창덕궁 의두합 알추녀
기와 마구리의 마감은 일반적으로 와구토로 마감하 고, 그보다 격이 높은 건물은 막새로 마감하고, 궁궐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격은 토수와 용두, 잡상으 로 장식한다. 하지만, 와구토와 막새 마감 사이에 한가 지 위계가 더 존재한다. 막새기와의 부분적 사용으로, 팔작지붕이면 추녀부와 합각부 주변 일부를 막새로 마 감하고, 맞배지붕이면 내림마루 너새기와를 막새로 마 감한다. 이는 창덕궁 연경당, 창덕궁 선향재, 홍릉과 유릉 재실에서 확인된다.
그림 8. (左) 창덕궁 연경당 안채 추녀부 및 합각부 막새기 와 (右) 창덕궁 선향재 내림마루 너새기와 ((左) 문화재청, 문화재원형기록정보시스템, 1992, 도면_보물 제1770호_창덕 궁 연경당_안채 정면도 재편집 (右) 문화재청, 문화재원형 기록정보시스템, 2001, 도면_사적 제122호_창덕궁_연경당 실측 원도 선향재 정면도2 재편집)
4. 격식기법의 위계와 변천
4-1. 격식기법의 위계 분류
격식기법 안에서 위계가 존재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가 공과 마감의 정도, 부재의 규격과 종류, 문양의 가공 난이 도에 따라 위계를 <표 5> 로 분류하였다. 그 위계는 재료 가공의 어려움, 비용, 노동력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다.
재료의 가공 기법은 기단석, 초석, 동바리, 고막이, 기둥 쇠시리 가공이 있었다. 기단석은 종류에 따라 자 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는지, 가공하여 다듬석으로 사 용하였는지, 모서리 처리 방식에 따라 위계를 분류하 였다. 기단 면의 마감은 궁궐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전 을 사용하였는지, 강회나 흙으로 마감하였는지에 따라 나누었다. 궁실 건축의 초석은 흘림이 1치 이내, 높이 가 300㎜이상의 방형초석과 흘림이 강한 높이가 240㎜
미만 사다리형 초석으로 분류하였다. 동바리기둥은 돌 기둥만을 사용한 것과 초석에 나무기둥을 같이 사용한 것이 있었는데, 돌기둥만을 사용한 것을 더 높은 위계 로 보았다. 사각보다는 팔각이 가공을 더 한 것이므로 가장 높은 위계로 여겨, 팔모석주, 사모석주, 팔모초석 에 팔모기둥, 사다리형기둥, 각주형태로 나누었다. 고 막이는 고막이석, 전돌, 토석마감 세단계로 위계를 분 류하였다. 기둥은 모접기와 면 가공한 것을 가장 높은 위계로 보고, 모접기만 한 것은 중간 위계, 모접기를 하지 않은 각주 형태를 가장 낮은 위계로 구분했다.
궁실건축이 대상인 만큼 모접기를 하지 않은 건물은 없었다.
부가적 요소기법으로는 여모판, 초엽, 사벽첩, 토소 란, 처마, 기와가 있었다. 여모판은 존재 유무에 따라 위계를 나누었고, 초엽은 사용 여부와 초각이 넝쿨무늬 로 들어간 것과 간략한 형태를 구분하였다. 단열기법 인 사벽첩은 사용 여부에 따라 위계를 나누었고, 토소 란도 존재 여부에 따라 분류하였다. 처마는 가장 높은 위계로 겹처마, 홑처마에 알추녀를 사용한 것을 중간 위계, 홑처마를 낮은 위계로 보아 세 단계로 나누었다.
기와 마감은 막새기와에 장식기와가 있는 것, 전체 막 새기와, 전체는 와구토에 추녀부나 합각부, 내림마루 일부에만 막새기와를 사용한 것, 전체 와구토로 네 단 계의 위계로 분류하였다. 지붕부의 변칙적 구성을 추 가적 위계로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4-2. 건축유형별 격식기법의 특징
건축유형별로 격식기법을 다르게 적용하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궁궐 침전, 궐내 기타건물, 궁집으로 나누어 <표 6> 으로 분석하였다. 궐내 기타건물은 창덕궁 후원의 서재 로 활용된 건물이 주를 이루고, 왕릉 재실은 살림집의 형 태로 사례수가 적어 궁집에 포함하여 분류하였다.
침전의 사례로는 덕수궁 함녕전, 즉조당, 경복궁 협길당, 창경궁 통명전, 양화당, 환경전, 경춘전, 영춘헌 총 8개소를 분석하였다. 전체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침전의
격식기법은 동바리기둥으로 석주를 사용하고, 기둥면 에 쌍사로 쇠시리 가공을 하였다. 지붕부는 막새기와 에 장식기와를 사용하고, 토소란을 설치하였다. 여모판 은 덕수궁 함녕전, 즉조당에서 사용되었고, 겹처마가 사용되어 알추녀는 사용되지 않았다.
구 분 궁궐
침전(7) 궐내
기타건물(10) 궁집(6)+재실(2)
동바리기둥 석주7
(100%)
팔모석주,
각주 2 (20%) 팔모석주, 각주3 (38%) 사다리꼴형6
(60%) 사다리꼴형 1 (13%) 기둥 면 가공 7 (100%) 5 (50%) 1 (13%)
여모판 2 (25%) 4 (50%)
초엽 4 (40%) 3 (38%)
사벽첩 8 (80%) 5 (63%)
토소란 7 (100%) 2 (20%) 5 (63%) 처마 겹처마 7 (100%) 4 (40%) 1 (17%) 알추녀 2 (20%) 5 (71%)22) 막새 전체 7 (100%) 6 (60%) 2 (25%)
추녀부 2 (20%) 5 (63%)
표 6. 건축유형별 격식기법 사용
궐내 기타건물의 격식기법을 살펴본 결과, 2개의 사 례를 제외한 8개의 사례에서 벽체에 사벽첩을 설치하 였다. 동바리기둥은 10개의 사례 중 6개의 건물에서 사다리꼴 형태를 적용했고, 지붕 기와는 대부분 전체 막새거나 추녀부, 합각부 막새로 위계를 다르게 하였 다. 서재의 사례로는 창덕궁 성정각, 서향각, 선향재, 폄우사, 관물헌, 희우정, 제월광풍관, 운경거, 의두합을 분석하였다. 창덕궁 후원 정자에 사용된 기법으로는 공통적으로 지붕의 막새기와 사용과 동바리 기둥으로 석주가 발견되고, 일부 기둥 면 쇠시리 가공과 여모판 이 확인된다.
궁집의 격식기법으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지붕 위계 로 추녀 하부에 알추녀를 설치하고, 처마부, 합각부 막 새나 전체 막새를 5개의 사례에서 적용한 것이다. 동 바리기둥은 주로 팔각석주나 팔각초석에 팔각기둥을 사용하였다. 남양주궁집에서는 사다리꼴 형태를 동바 리기둥으로 사용하였는데, 모접기에 면 쇠시리 가공까 지 한 것을 확인하였다. 또, 궁집에서 토소란, 사벽첩 이 5개의 사례에서 발견된다. 현존하는 궁집의 사례로 는 화길옹주 궁집(남양주 궁집), 운현궁, 창덕궁 낙선 재, 연경당, 덕온공주 궁집(장위동 김진흥가옥), 복온공 22) 홍릉 재실의 경우 추녀가 없어 제외하여, 총 7개의 사례 중 알 추녀가 있는 사례로 비율을 계산하였다.
주 궁집(창녕위궁재사), 화순옹주 궁집(김정희선생 고 택) 총 6개소를 분석하였다. 왕릉 재실은 추녀부나 내 림마루의 막새기와, 사벽첩, 토소란, 여모판의 기법을 적용한 것이 홍릉, 유릉 재실에서 발견된다.
궁궐의 일상 공간 중 가장 위계가 높은 침전은 기법 에서도 격식이 높은 유형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 된다. 궁집과 궐내 기타건물은 격식기법에 따라 사용 비율이 차이가 있어 우위를 정할 수 없었다. 초엽과 사벽첩은 궁궐 침전에서 사용되지 않고, 여모판과 알 추녀, 추녀부 막새기와는 주로 궁집과 재실에서 사용 되었다. 격식기법은 건축유형에 따라 다른 기법이 적 용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4-3. 격식기법의 변천
격식기법이 사용된 시기를 확인하기 위해 각 건물의 건립연대로 시기적 분포를 <그림 13> 으로 표현하였 다.23) 시기별로 살펴본 결과, 기둥 면 가공은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사용하였다. 모접기는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기둥 면 쇠시리 가공은 기능적으로 동 일하고, 노임이 더 드는 일로 격식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기법으로 볼 수 있다.
여모판은 현존하는 건물로 보면 19세기 중반부터 20 세기 초까지 침전과 궁집, 왕릉 재실에서 사용된 기법 처럼 보인다. 하지만, 1793년 부용정에서도 여모판이 사용되어 18세기 후반부터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의 정자 부용정과 농수정, 수강재, 낙선재 일곽의 사각당 일부, 경복궁 협길당과 종묘의 향대청, 운현궁 이로당은 사진으로 여모판이 확인되나 보수 시 누락되거나 변형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그림 9. (左) 창덕궁 부용정 (右) 경복궁 협길당
((左) 조선총독부, 조선고적도보10권, 1930, 1432쪽, (右) 열화당, 『한국의 고궁건축』, 1988, 71쪽)
부용정의 여모판은 조선고적도보』에서 발견되나 현 재는 사라지고, 석재 계단이 2단에 3단으로 변경되었다.24)
23) 격식기법은 건물의 건립연대를 통해 사용 시기를 추정하면 건 립 당시부터 기법이 존재하였는지, 후대의 수리공사로 보수된 부분 인지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흐름 파악을 위해 분석하였다. 격식기 법의 변천은 위계가 사용의 여부로 분류되는 부가적요소에 한하였 고, 기둥 면 가공을 추가하였다.
농수정의 여모판은 정면과 좌측면에 2개가 설치된 것 을 조선고적도보』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79년 발간 한『한국건축의장』과 1984년 韓國의 美 14 宮室·民家
에서 여모판이 발견되고, 1988년 농수정 도면에서 여 모판이 확인된다. 2003년 주남철의 『연경당』 농수정 도면에 여모판이 표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았을 때, 창 덕궁 농수정의 여모판은 1988년 이후 2003년 이전에 사 라진 것으로 추정된다.25)
그림 10. 창덕궁 농수정 (左) 1915-1930년 (右) 2019년 ((左) 조선총독부,『조선고적도보』10권, 1930, 1437쪽)
사라진 여모판의 설치 흔적이 귀틀 하부에 현재 남 아있다. 정면 여모판의 규격은 두께 24mm, 길이 1,930mm, 높이 150mm이고, 좌측면 여모판은 두께 24mm, 길이 1,580mm, 높이 65mm로 확인된다.
그림 11. 창덕궁 농수정 정면 귀틀 하부 여모판 설치 흔적
그림 12. 창덕궁 농수정 정면도
(문화재청, 문화재원형기록정보시스템, 1988.05, 도면_사적 제122호_창덕궁_사모정 입면도 재편집)
창덕궁 수강재는 1992년 낙선재 일곽 복원 전 현황 자료에서 배면 가퇴 부분에 여모판이 확인되나 현재 24) 부용정은 1956년 국가기록원 사진(CET0047466)에서도 여모판이 발견되지 않는다. 조선고적도보 사진이 촬영되었다고 추정되는 1915-1930년과 그 사이에 변형되어, 여모판은 1915년에서 1956년 사 이에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25) 농수정은 1979년, 1984년 단행본에서 여모판이 발견된다.(주남 철, 한국건축의장, 일지사, 1979, 78쪽 ; 신영훈, 韓國의 美 14 宮 室·民家, 중앙일보사, 1984, 160쪽)
그림 13. 격식기법의 사용 시기 추정
소멸되어 발견할 수 없다.26) 운현궁 노안당, 이로당 외 부에는 남아있으나 이로당 중정에 있는 여모판은 1996 년 수리 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모판은 연구대 상 외 사례에서도 소멸된 것을 확인하였다. 경복궁 협 길당 여모판은 <그림 9>에서 볼 수 있듯이 구름무늬 형태였으나 2005년 보수공사에서 초각이 없는 여모귀 틀 형태로 변경되었다. 종묘 향대청 여모판은 2004년 보수공사에서 소멸되고, 왕실일가와 관련된 김좌근고 택은 2009년 여모판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된다.27) 여 모판은 상류주택인 도편수 이승업가옥, 마포 최사영가 옥, 백운장 몽룡정, 아산 윤보선 생가와 필운동 홍건익 가옥에서도 여모판을 확인하여, 20세기 초까지 사용된 기법으로 추정된다.28)
26) <낙선재 일곽(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신관)>, 국가기록원(CEU0000297), 1992; 문화재청, 문화재원형기록정보시스템, 1992, 도면_사적 제122 호_창덕궁_낙선재 정비공사 마-다 수강재 종단면도(현황)
27) 경복궁 협길당은 문화재청, 경복궁 집옥재 수리보고서, 2005에서 여모판의 변형을 확인된다. 종묘 향대청은 「문화재관리상황카드」, 국 가기록원(DE0000023), 1961에서 여모판을 발견된다. 경복궁 협길당과 종묘 향대청 모두 보수 도면에는 여모판이 표현되어있으나 보수 후 사 진에는 변형되거나 사라진 것으로 나타난다. 김좌근 고택은 『경기도 지정문화재 실측조사보고서_김좌근 고택』, 경기도 이천시, 2009, 81쪽 사진3.05 사랑채 전경(1984.1)에서 사라진 여모판을 확인할 수 있다.
28) 마포 최사영고택:1906년 건립,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가옥:1865-1875 년 건립, 아산 윤보선 생가:1907년 건립, 홍건익가옥:1934-1936년 건립, 백운장 몽룡정은 창덕궁 비원장이었던 김가진이 창덕궁 후원 중수
초엽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의 궁집과 창덕 궁 후원 서재들에서 발견된다. <그림 13>에서 초엽은 19세기 후반의 창덕궁 선향재에서 사용되고 사라진 기 법처럼 보이지만, 20세기 초반 재건하여 연구대상에서 제외한 창덕궁 침전인 대조전 영역에서도 누마루 하부 에 초엽이 사용되었다. 초엽은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토소란은 철종예릉산릉도감의궤(1864)에 토소란(土 小欄), 토소란박이(土小欄朴只)가 표기되었고, 19세기 초 설치하기 시작하여 19세기 중엽 이후 보편적으로 사용한 기법이다.29) 하지만, 18세기 후반인 궁집과 20 세기초반 왕릉 재실에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토소란 의 사용 시기를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사 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사벽첩은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창덕궁 후원 서재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궁집과 왕릉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고종이 남은 자재로 집을 짓도록 지시하 여 1904년 건립한 정자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남아있는 사진에 여모 판이 확인된다.(사단법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소장 (https://www.ajunews.com/view/20190114010824551); 朝鮮之風光
,1930; 조선총독부철도국, 반도의 근영, 1938; T. Fisher Unwin,
THE STORY OF KOREA, 1911) 양반가 생활풍속 중 여러 사진 에서 여모판이 확인된다.
29) 이상명, 앞의 논문, 2016, 164∼166쪽
재실에도 나타났다. 산릉의궤를 토대로 보면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30) 사 벽첩은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창덕궁 폄우사, 제월광 풍관, 희우정, 낙선재, 의두합, 연경당 행랑채에 사용되 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변형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폄우사는 사벽첩의 흔적이 문선과 중인방에 남 아있으나 벽체 보수 시 기법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2001년 도면에 사벽첩이 보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 는 것을 보아 그 이전의 변형으로 추정된다. 운경거는 의두합과 같이 효명세자가 건립한 서재로, 1928년에 촬영된 의두합, 운경거 사진에는 사벽첩이 확인된다.31) 사벽첩은 의두합에 현재 남아있지만, 운경거에서는 사 라진 상태이다.
그림 14. 창덕궁 폄우사 사벽첩_2019.05
그림 15. 폄우사 좌측면도
(문화재청, 문화재원형기록정보시스템, 2001, 도면 _사적 제122호_창덕궁_반도지 및 존덕정 주위 정 밀실측설계(2-1) 좌측면도3_폄우사 재편집)
알추녀는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까지 궁집에 서 주로 사용되고, 서재는 의두합, 운경거에서 나타난 다.32) 연구대상 외에 여주 김영구 가옥(1753), 경주 양
30) 이상명, 앞의 논문, 2016, 328∼331쪽
31) 문화재청, 궁·능 관련 유리원판 도록, 2004, 230쪽
32) 1915-1930년 창덕궁 취규정에는 알추녀가 설치되어있지만, 현재 는 발견할 수 없다. 현재와 건물의 양식이 상이한 것으로 보아, 취 규정은 추후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조선총독부, 조선고적도보
10권, 1930, 1442쪽) 1976년 복원되어 사례에서 제외했던 화순옹주 궁집인 김정희선생고택에서도 알추녀가 발견된다.
동 무첨당(조선중기), 안동 하회 옥연정사(1586), 함안 무기연당(18세기 중엽), 영동 김참판 고택(18세기 중엽), 강릉 칠사당, 우정총국 등에서도 발견되어, 16세기 조선 중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추녀부 막새를 사용한 기법은 18세기 중반에서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재와 궁집에서 주로 나타난다. 기 와는 보수공사에서 쉽게 변형될 수 있는 부분으로 그 변형은 여러 방향으로 나타난다. 기와 수키와 끝 마감 방식이 와구토에, 추녀부와 합각부 주변만 막새기와를 사용한 것들이 창덕궁 희우정, 연경당 장락문, 장양문, 동익랑, 낙선재 장락문에서는 전체 와구토로 변형되었 고, 운현궁에서는 전체 막새로 변형되었다. 기와 마감 은 전체 막새나 와구토로 통일시키려는 경향을 보였다.
폄우사는 와구토에서 막새로 바뀌고, 제월광풍관은 와 구토에서 막새로 변형된다. 취한정은 합각부 너새기와 가 없어진 것으로 확인된다.33) 연구대상 외에 추녀부나 내림마루 막새를 사용한 기법은 창덕궁 농산정, 운현궁 영로당, 석파정, 육사당 등에서 확인된다.
그림 16. 창덕궁 연경당 장양문 동익랑 기와 (左) 1928년 (右) 2019 년 ((左) 문화재청, 궁·능 관련 유리원판 도록, 2004, 231쪽)
격식기법의 시기별 변천을 살펴보았고, 사진자료를 통해 여모판, 기와, 사벽첩의 소멸을 여러 사례에서 확 인하였다. 문화재 보수공사 시 격식기법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않아 보고서에 언급되지 않고, 기법의 소멸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이러한 변형은 건물 사용자 변화로 인한 수리 관점이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궁 실건축은 왕실가족이 생활하던 공간에서 관람객이 보는 공간으로 건축물의 용도가 변경되었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섬세한 기법들은 점점 소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5. 맺음말
이 연구는 조선후기 궁실건축에 사용된 고급건축 기 법인 격식기법에 주목했다. 25개의 궁실을 대상으로 격식기법의 종류를 찾아내고, 기법을 위계로 분류하였 으며, 건축유형별 격식기법의 특징과 기법의 변천을 33)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 『일본 궁내청 소장 창덕궁 사진첩』, 2006, 26쪽
추정하였고,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궁실건축에 사용되는 격식기법 총 11가지를 발견하였 다. 구체적으로 기단, 초석, 동바리, 고막이, 기둥은 재료 가공의 차이가 있었고, 여모판, 초엽, 사벽첩, 토소란, 처 마, 기와는 부가적 요소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가사규제에서 초석으로 제한된 숙석(熟石)은 궁실건 축에서 기단과 고막이에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기둥 은 면까지 쌍사를 주어 가공하고, 동바리 기둥도 내구 성과 형태를 고려하여 팔모석주나 팔모초석에 팔모기 둥을 사용하였다.
여모판은 궁집에서 주로 사용하였고, 20세기 초 양 반가옥에서도 흔히 사용하였던 기법으로 확인된다. 초 엽은 넝쿨문양으로 궁집과 궐내 기타건물에서 도리나 창방, 누마루, 반침, 선반을 보강하였다. 사벽첩은 창덕 궁 후원에서 주로 발견되었고, 단열목적인 것으로 추 정된다. 토소란은 궁궐 침전 전체 사례에서 확인되고, 궁집에서도 50%의 사례에서 확인된다.
조선후기에 겹처마와 막새는 궁실건축에서도 쉽게 사용하지 않는 높은 위계로 궁궐 침전에서 사용했고, 알추녀와 기와 끝은 와구토에 추녀, 합각부 주변만 막 새를 궁집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궁실건축의 격식기법은 재료 가공과 마감 정도에 따 라 위계가 있었다. 궁궐 침전, 궐내 기타 건물, 궁집 건축유형별로 격식기법은 다르게 사용되었다. 침전은 격식기법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궁집과 궐내 기타 건물은 기법별로 차이가 있었다. 침전은 동바리 기둥 으로 석주를 사용하고, 기둥을 면까지 가공하고, 막새 와 토소란을 사례 전체에서 사용하였다.
격식기법의 시기적 변화를 사례로 확인하였다. 기둥 면 가공과 초엽, 사벽첩은 17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 반까지 사용하였다. 여모판과 토소란, 알추녀, 추녀부 막새는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되었다.
격식기법은 20세기 초의 사진자료와 현재 건물을 비 교하여 기법의 소멸을 확인하였다. 여모판이 총 5개의 사례에서 사라졌고, 이는 주로 정자에서 소멸되었다. 기 와의 추녀부나 합각부의 막새를 사용한 기법은 한가지의 마감방식으로 통일한 와구토나 막새로 변형되었다. 사벽 첩은 주로 창덕궁 후원 서재들에서 소멸하였다. 이러한 변형은 궁실건축이 생활공간에서 관람공간으로 변화되 어, 격식기법들의 소멸을 초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격식기법은 더욱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 연구대상을 확장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에서 발견하지 못한 격식기법이 추가로 더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추가적
인 연구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격식기법에 관한 연구는 향후 이루어질 문화재 보수, 복원 작업에 근거를 제공하고, 기법이 훼손되는 것을 방 지하여 문화재 원형 보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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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2019. 10. 11) 수정(1차:2019. 12. 5) 게재확정(2019.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