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커뮤니케이션 9>정치 저널리즘의 정파성 고찰
--- 1.중앙일보 컬럼
<우리는 무엇에 감동하는가>
감동(感動)을 국어사전에서는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라고 푼다. 지난주엔 부 산에서 전해진 찡한 사연에 많은 국민이 감동했다. 이름하여 ‘치매 할머니 보따리’ 사 건이다. 주인공은 1948년생, 그러니까 만 66세의 여성 A씨다. 사실 요즘 66세는 할 머니라 부르기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손녀를 보셨으니 할머니가 맞다.
사연을 복기해 보자. 지난 15일 오후 부산 서부경찰서 아미파출소로 신고전화가 들 어왔다. 112 신고가 아니라 파출소 일반전화로 한 여성이 제보했다. “부산대학병원 앞길에서 웬 할머니가 보따리를 들고 서성거린다”였다. 경찰이 출동해 순찰차로 파출 소에 모셔왔다. 슬리퍼를 신고 계시길래 주변 주민일 것으로 생각하고 경로당 10여 곳과 주민센터·문화센터 등에 수소문했으나 허사였다. 한참 뒤 할머니가 자기 이름과 사는 곳(모라동)을 기억해 내고 경찰에 말해 주었다. 다시 부산하게 움직인 끝에 가족 과 겨우 연락이 닿았다.
여기까지는 흔한 사건이다. “부산 서부서 관내에서만 많을 때는 일주일에 3~4건이나 치매 노인 실종 신고가 들어온다”고 아미파출소 박헌중(49·경위) 관리주임은 말했다.
찡한 사연은 할머니가 들고 있던 보따리 두 개에 들어 있었다. 경찰이 가족에게 인계 하러 할머니를 모시고 간 곳은 아미동에서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개금동의 한 병원.
할머니의 딸(38)이 제왕절개로 딸을 출산하고 입원해 있었다. 그리고 보따리 하나에는 이불, 다른 하나에는 밥과 미역국·반찬이 들어 있었다. 오후 8시 가까워서야 병실에 도착했으니 음식은 이미 다 식어 있었다. 딸의 산후 구완에 쓰려던 밥이요 국이었다.
딸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간호사들이 사연을 듣고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다음 날 부산경찰청 페이스북에 이 이야기가 실리자 누리꾼들이 다투어 댓글을 달거나 퍼 날 랐다. 아미파출소에는 칭찬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쏟아졌다. 전화뿐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달걀, 1회용 기저귀, 화장지, 라면, 음료수를 들고 물어물어 파출소까지 찾아 왔다.
팍팍한 세상. 비록 당사자에게는 안타깝고 그나마 천만다행인 해프닝이었지만,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위로를 얻었다.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 사랑이 있고, 이제 누구에게나 남의 일이 아닌 치매 증세가 있고,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경사에다 경찰관의 헌신적 인 자세까지 겹쳐진 사연이다. 듣고 마음이 녹진녹진, 뭉클해지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 니다. 사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비슷한 일은 가끔 벌어진다. 지난달 22일에는 서울
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소 경찰관들이 행인의 신고를 받고 길 잃은 열한 살 아이의 집을 찾아주었다. 알고 보니 지적장애 3급이었던 꼬마는 자기 이름만 말할 뿐 부모 연락처와 사는 곳을 대지 못했다. 경찰관이 “짜장면 먹고 싶어”라는 아이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짜장면 배달해주는 중국집 전화번호 아니?”라고 묻자 전화번호 여러 개 를 줄줄이 말하더란다. 그중 한 곳이 강서구의 중국식당으로 확인되었고, 덕분에 부모 를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서울경찰청 페이스북).
수많은 개인의 감동은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집단적인 감동이 제도를 바꾸 고 사회를 낫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도처에서 분출되는 감동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변화의 그릇에 담아내는 일은 정치와 행정의 몫이다. 과연 우리 정치는 그 런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 부산 치매 할머니의 경우 남편과 사별한 후 작은 주공아파 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인지(認知) 장애를 안고 홀로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 까. 자식들이 있지만 가정마다 곡절이 있을 테니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내가 따지고 싶은 것은 이름표나 실종 방지장치(배회 감지기) 같은 서비스가 왜 할머니에게는 제공 되지 않았으며, 노인요양보험의 간병서비스도 받지 못하고 있었는지, 구청·시청은 그 동안 무얼 했는지 하는 의문이다. 정치인과 관료에게는 감동의 이면에 깔린 문제점을 갈무리해 사회를 변화시킬 의무가 있지 않은가.
이건 아파트 관리비(난방비) 비리 의혹을 폭로하다 폭행사건에까지 휘말린 배우 김부 선씨 사례에도 해당된다. 한 여성이 외롭게 싸우는 동안 구청·시청, 지방의회, 경찰·검 찰과 국회의원은 손 놓고 있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대 마초 합법화 주장을 다시 꺼내지만 않는다면, 김부선씨를 지방의회 의원으로라도 추 천하고 싶다. 다수의 잔잔한 감동을 잘 담아내 큰 변화를 이끌어내면 우리 국회도 감 동을 넘어 환호와 환희를 불러일으킬 텐데,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짜증과 혐오만 자아내니 큰일이다. 제발 아미파출소 직원들만큼이라도 일을 해보라.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2. 한겨레 컬럼
[세상 읽기] 한국 언론 믿을 수 없다
정권이 언론 나팔수 취급하면 정권 불신 커져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한 시민단체의 고발은 외신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외 신들은 이 문제를 대한민국 대통령의 명예 문제가 아닌 언론자유의 문제로 보고 있
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에는 종이신문을 출퇴근길에 읽었는데, 요즘은 타임라인을 보는 편이다. 지면을 통해 뉴스를 통합적으로 연계해 보는 노력은 약화되는 듯하다.
대신 뉴스 접근 통로를 응축시켜, 제한된 경로 안에서 신뢰할 만한 뉴스를 확인해 보 는 일상이 만들어졌다.
방송 뉴스도 시청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이명박 정권 초기까지는 공정보도나 탐사 보도 기능이 얼마간 살아 있었지만, 이후로는 거의 모든 뉴스보도가 갈등하는 정치적 쟁점을 회피하거나 정권의 의지를 중계하는 식으로 변질돼 뉴스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정권 감시·비판 기능이 소멸됐으니 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른바 종합편성채널의 뉴스는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진다. 택시와 식당 같은 공간에 서 귀에 거슬리는 해석적 편견을 꾸역꾸역 듣는 일은 고역이다. 더구나 뉴스의 남녀 앵커들이 연예프로도 아니건만 큰 소리로 웃고 떠들거나 추임새를 넣으며, 자질이 떨 어지는 패널의 ‘음모론’ 앞에서 춤을 추는 풍경은 안타깝다.
아마 많은 수의 젊은이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생산·소비하고, 장년 층은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정보를 생산·소비하는 것 같다. 이 미 디어 활용의 차별적 장 안에서는 ‘사실’에 대한 입장과 해석이 차별적인 ‘기호공동체’
가 구성되며, 이것이 정보 생산/소비 주체를 당파적으로 연합시키는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모든 정보에는 이른바 ‘노이즈’라는 것이 있고, 거기에 더불어 에스엔에스(SNS) 특 유의 정념이 투사되고 증폭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럼에도 정보수용자들은 게시된 정 보를 기계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성적·합리적 판단에 따라 ‘사실’과 ‘징후’를 읽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정보들이 가령 지난 대선 당시 여러 국가기관의 조직적 ‘여론조작’의 예에서 확인되듯, 합리적 정보생산과 비판적 수용이라는 커뮤니 케이션 장의 질서를 왜곡하고 갈등을 증폭시키게 되면, 정보수용자의 입장에서는 공 론장으로부터의 이탈을 신중하게 고려하게 된다.
<산케이신문> 기자의 ‘대통령의 7시간’ 보도와 이를 번역 보도한 <뉴스프로> 번역자 에 대한 검찰 조사는 외교적 마찰과 언론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는 국제적 비난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시대착오적 사건이다. 이 사건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여럿이겠지 만, 나는 이 사건을 둘러싼 ‘맥락’을 해석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화된 보도의 ‘맥락’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냉정하게 말
하면 “한국 언론 믿을 수 없다”가 아닐까. 얼마나 한국 언론의 보도 기능을 불신하면 평소 ‘혐한 보도’로 악명 높은 산케이신문의 보도에 시민들이 귀를 기울이겠나. 이는 한국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으며, 그것을 초래한 이 정권 에 대한 불신 감정 역시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어떤 편인가. 나 역시 한국에서 ‘보도되지 않는 진실’이 있다고 판단되면 관련 외국 언론 사이트를 직접 방문하여 기사와 자료를 검색·대조하곤 한다. 그런데 이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아베정권 등장 이후 일본의 시민들 역시 그러하다. 일본 언론 어디에서도 후쿠시마의 진실을 찾아볼 수는 없으니까.
정치권력이 언론을 나팔수 취급하면, 결국 정보수용자는 매체비평가 비슷하게 진화 하면서, 국제적 뉴스 네트워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된다. 권력이 독재화되면 거꾸 로 미디어 문해 능력이나 정보검색 능력이 향상되는 반작용이 나타난다. 아이러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3.한겨레 컬럼
<대통령 무책임제’보다 내각제가 낫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개헌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특히 권력 구조에 관해 서는 확실한 ‘반내각제론자’였다. 대통령 중심제의 오랜 전통을 버리는 것에 대한 막 연한 두려움도 있었고, 우리나라처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한 나라에서는 그래도 대통 령 한 사람 바꾸는 것이 가장 확실한 개혁 방안이라는 신념도 있었다. 무엇보다, 한 국의 정치 지형상 내각제가 시행되면 보수 정당이 세세연년 집권하게 되리라는 판단 이 내각제를 꺼린 더 솔직한 이유였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대통령제를 계속 유지하느니 차라리 위험 부담 을 안더라도 내각제가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목도한 대통령제의 폐해가 너무 끔찍한 탓이다. 흔히들 대통령 중심제의 장점은 효율 적이고 일사불란한 국정운영 능력이라고 말하는데, 정작 나타난 모습은 정반대다. 무 능과 무책임, 혼란과 갈팡질팡은 하늘을 찌르고, 일사불란함은 오직 정부와 대통령의 무능·무책임을 가리려는 데서만 발휘될 뿐이다.
대통령 중심제의 폐해가 이처럼 극심하게 나타난 것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품성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런 폐해는 1인 권력 체계의 불가피한 병통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분권형 대통령제든 순수 의원 내각제든 이제는 권력 구조를 개편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정치권에서도 개헌 논의가 솔솔 불거져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 위원회 소속 조해진·김영우 의원 등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분권형 개헌을 특위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고,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도 세월호 특별법 협상 타결이 끝나고 나면 개헌을 본격 논의하자는 말이 나온다.
개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제나 거론되는 것은 ‘국민적 공감대’다. 정략적 목적을 벗어나 공동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백번 지당한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이 말은 늘 개헌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데 활용돼 왔다.
국민적 공감대처럼 실체를 붙잡기 힘든 추상적인 말도 없다. 여론조사를 해도 질문 내용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 민적 공감대란 말은 결국 개헌 논의를 일단 뒤로 미뤄놓자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논거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경제 살리기도 바쁜데’ 따위의 주장이 더해지면 국민 적 공감대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 돼 있다.
대선 과정에서 ‘임기 중 개헌’을 철석같이 약속했던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 불가 이 유로 내세운 명분도 “경제 살리기 불씨를 살려야 할 시점에서 개헌은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지금처럼 국민적 공감대가 무르익을 분위기 가 마련된 적도 별로 없었던 듯하다. 현 정권은 개헌 논의를 회피한 명분과는 달리 그동안 경제 살리기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경제는커녕 나라가 이처럼 모든 면에서 곤두박질친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오만과 전횡은 하늘을 찌르고, 의 회민주주의와 사법부의 독립성은 날로 시들어 가고 있다. 현실을 바꿀 필요조건은 충 분히 숙성된 셈이다.
결국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설득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그 임무는 일차적으 로 정치권이 맡을 수밖에 없다. 다만 개헌 논의 접근 방식은 세심하고도 치밀해야 한 다.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원 포인트 개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지만, 너무 많은 것 을 손대려다 결국 논쟁의 늪에 빠져버리는 우를 범해서도 곤란하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 이유다.
차기를 꿈꾸는 대선 주자들 중에도 더러 개헌 반대론자가 있겠지만 결국 개헌의 최 대 걸림돌은 박 대통령이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순전히 정치권의 몫이 다. 선거가 없는 2015년에 개헌을 하든가, 아니면 다시는 영원히 개헌 이야기를 꺼내
지 말든가, 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시점이 됐다. 언제까지 개헌의 쳇바퀴 속에서 달리기를 계속할 건가.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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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저널리즘의 정파성>
1.한국 언론의 정파성과 독자들의 인식
-우리는 신문이나 인터넷, SNS, 강의, 친구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대중 종합일 간지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이 보수와 진보로 나눠져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인지해왔다. 특히 이들 종합 일간지에 게재된 사설과 칼럼은 분명하게 그들이 속한 신문사나 주 독자층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분명한 논점을 피력하고 있는 현실을 보아 왔다. 우리 사회의 논쟁적 사안과 특정 정치집단이나 시민단체에서 제기된 정치 사회 경 제적 이슈를 놓고 이들 신문들이 보여주고 있는 두드러진 시각의 차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가습기 살균제 수사’ ‘조선업계 해법’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싸고 각 신문이 보이고 있는 논조는 각 정당의 시각차를 그대로 대변하는 것처럼 지지영역을 분명히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동안 이러한 한국 미디어의 정치저널 리즘의 정파적 경향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분야는 남북관계에 대한 보 도였다, 특히 개성공단 폐쇄에 관한 보도태도를 보면 정치커뮤니케이션에서 정 파적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앞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서도 보듯이 최근에는 남북문제 말고도 노 동정책을 포함한 정부정책과 국회운영과 관련된 논쟁적 이슈 전반에 걸쳐 정 파적 정치커뮤니케이션이 나타나고 있다.
-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한국 언론의 정파적 지형은 <조선일보> <중앙일 보> <동아일보>가 보수, <한국일보> <서울신문>이 중도, <한겨레> <경향신문>
이 진보로 나타나고 있다. 일부 논쟁적 사안에서 사회갈등의 다양성과 복잡화 에 따라 이념적 경계가 흐트러지는 경우도 생기긴 하지만, 이념적 경향성을 무 너뜨릴 정도의 보도 경향은 아니다.
2.정당하지 못한 정파성
-한국 정치저널리즘의 정파성이 문제가 되는 경계는 각 언론사의 정파적 태도 가 사실과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영향을 미쳐 독자들이 실체를 정확히 파악 하지 못하는 데 있다. 논쟁적 사안에 대해 제시하는 관점과 취재원의 선택에서 상당한 불균형, 즉 이념적 경향성을 선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건전한 공론 형성 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학자 최현주는 “그동안 여러 분석결과는 똑같은 현실에 대해 보수 신문과 진보 신문이 제시하는 현실 사이의 현격한 간극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방해한다는 독자들의 광범위한 생각을 실 증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치저널리즘은 자신들의 정파성을 독자들과 일치시키기 위해 프레임, 제목, 취재원 선택, 확인된 사실과 그렇지 않은 주장의 혼용 등을 방식을 사용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논쟁적 사안을 놓고 ‘매체의 정파성에 의한 의도적 배 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저널리즘에서 나타나는 정파성의 중요한 특징은 정당 정파성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신문> <경향신문>의 정당 과 신문 사이의 병행관계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98년 언론사 세 무조사를 실시한 김대중 정부시기에 뚜렷해지기 시작했는데, 노무현-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정당 정파적 특성이 공고해 지고 있다.
-독자들은 한국 언론이 정치 커뮤니케이션 사안에 따라 균형하게 보도태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 정파성, 즉 정당 정치화가 높은 수준으로 영향을 미 치면서 일관되게 정부와 여당, 또는 야당과 일치하는 방향성을 보이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3.언론 정파성의 역사
<미국의 신문>
-신문은 초기 발행부터 불편부당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독일 신문 학자인 토비아스 포이세르(Tobias Peucer)는 이미 1690년에 ‘기자가 갖추어 야 할 기본자세에는 신뢰성과 진실추구가 포함된다. 자신의 편을 위해 의도적 으로 어떤 잘못된 것을 섞거나 중요한 사안에 대해 확실하지 않은 것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학자 카스파 폰 슈틸러(Kaspar von Stieler)는 1695년 ‘신문의 재미와 유용성’에서 ‘신문은 순수한 소식만 전해야하고 의견이 나 비평은 실어서는 안 되며, 정파적인 신문은 법으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마이클 셧슨(Michael Schudson)dp 따르면 미국의 경우 상업화와 이와 병행 해서 진행된 전문직화 과정을 통해 신문이 정파성에서 벗어났다. 언론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18세기 중반까지 미국 신문은 정치와 거리가 멀었고, 정치적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된 18세기 후반에 언론은 매우 정파적이 되었고, 정당은 <무기>로 신문을 창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기에 기자직은 아직 전문적인 직업으로 정착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1833년 <New York Sun>을 시작으로 대중지가 생기면서 상황이 변하긴 했 으나, 19세기 후반까지 신문이 정당 및 정치인의 재정지원을 받는 등 정당과 연계가 계속되었고,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경영에서 광고가 중요한 재원이 되고 신문이 재정적 호황을 누리면서 정당으로부터 독립성을 천명하기 시작했 으며, 1920년대 들어 기자들의 위상과 소속감, 지위가 향상되었다.
-당시 미국 편집인협회는 기자윤리강령을 채택했는데, 진실추구(Sincerity)와 진실성(Truthfullness), 정확성(Accuracy), 공공성(Fairness) 객관성 (Objectivity), 불편부당(Impartiality)을 포함시켰다.
-부상하는 직업군인 기자들에게 객관성은 진보된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고, 기사 의 양이 중가하면서 에디터들이 기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불편부당, 객관성 은 신문의 중요 규칙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게 마이클 셧슨의 설명인 데, 객관성 도입은 인간인식의 한계와 사실의 주관성에 대한 성찰이 그 배경이라 는 것이다. 셧슨은 미국 저널리즘의 특징이 뉴스 전문직의 독자성 위에 형성된 상업적 조직으로 운영된다고 보았다.
<한국의 신문>
-근대적 형태의 신문인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의 발행 주체는 정부였으며, 계몽적 성격이 강해 객관성 추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독립신문이 후기에 정론 지의 성격을 강하게 보였으나,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뒤 정파적 신문이 등장하 고 있다. 즉 공산주의 계열의 좌익신문과 보수 우익신문, 민주주의를 표방한 진보신문으로 나뉘어 대립과 갈등을 양산했다.
-그러나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좌익신문이 종이와 잉크 난을 이유로 급격히 쇠
퇴하고 보수 우파신문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야당지와 야당지로 분화했다. 정 당 정파성을 보였으나, 반부패 반독재 노선을 걸어 공공성과 균형성을 추구하 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특히 4.19 이후 남북 분 단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진보적인 <민족신문>이 창간돼 관심을 모았으나 5.16 이후 폐간되는 사태를 맞았다.
-5.16 이후 한국 신문들은 독재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곧 군사정부의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한편으로는 정부권력에 순치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 으로서 신문사 이익을 추구하며 권력과 유착했다.
-이 시기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는 한국 언론의 ‘객관주의’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탈(脫)정치화된 사건보도의 영역에서였다. 정권의 억압에 순응하면 서 정권이 주는 특혜를 받아들인 언론사 사주들이 범죄보도 중심의 탈정치적 상업주의를 추구했으며, 언론인들도 이에 순응했다.
-한국 언론의 정파성이 강화되기 시작한 때는 <한겨레신문>이 등장한 1988년 으로 볼 수 있다.모두 비슷한 성향의 신문들만 있는 상황은 정파적으로 인식되 기 보다는 ‘대세’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정파적 대립을 본격화한 것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판박이 편집태도를 보였던 한국 신문이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정부 와 노선을 같이한 <한겨레> <경향신문> <서울신문>이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신 문으로,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조선일보, < 동아일보> <중앙일보> 는 보수신 문으로 양분됐다. 이때부터 한국 언론은 보수와 진보로 불리게 되었으며, 노무 현 정부 들어서 더욱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 이후 새로 등장한 인터넷 등 대안언론의 새로운 힘과 위상이 높 아짐에 따라 정치권력은 보수성향의 주류 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과잉 권력을 견제하고 기존 구조를 변화시키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직접 공격했고, 조·중 ·동도 정치권력의 직접적인 공격에 격렬히 저항했다. 정치권력 은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취재지원 시스템을 비롯해 기존 언론구조를 크게 흔들어놓았고, 조·중·동이 공동으로 이에 저항하는 양상을 띨 만큼 공격과 저 항의 전선은 심각한 정파성으로 분출됐다. 이러한 정파성은 이명박 정부에 이 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사회구조적 원인>
-언론의 정파성이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때가 김대중 정부 이후라는 점에 서 볼 때 그 원인이 권력이동에 따른 헤게모니 투쟁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추 정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도전을 받은 기성체제의 핵심영역과 그 핵심영역에 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엘리트 집단의 헤게모니 투쟁이 언론을 통해 가시 화 된 것, 그것이 정파성이라고 할 수 있다. 기성체제에게 집권을 통해 획득한 국가권력은 국가에 부여된 물질적, 물리적, 법적, 제도적 권한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거점이 되는 데, 정권의 수평적 교체를 통해 기성체제가 그동안 당연시 했던 특혜와 혜택이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국 언론은 군사정부와 적절히 타협하고 견제하면서 기업으로 크게 성장하고, 정치 적 영향력을 확대해왔던 터다.
-이러한 위협받는 상황, 즉 위기의식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더욱 커졌다 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보다 더 많은 기성체제 바깥의 사람들이 정부의 주요 공직에 충원되었고, 기성체제와 국가권력간 중첩성이 현저히 약화, 축소 된 것이다. 기성체제를 향한 사회적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요구 하는 목소리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어긋나 고 무력화되는 사례들이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보수 와 진보로 분류된 언론들의 정파성이 강화되고 ‘언론전쟁’과 같은 적대적 태도 와 갈등을 보였다.
-이러한 양상은 언론이 기성체제와 그 주변부 엘리트 집단의 대리전을 벌였다 기보다는 언론이 전쟁의 당사자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게 언론학자들의 분 석이다. 즉 신문사의 소유주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기존체제의 일원 이거나, 그 주변부의 엘리트들이었던 것이다. 한국 언론의 정파성이 세계관이 나 정치적 성향에서 오는 현실 구성을 넘어 때로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 축소, 과장, 은폐하거나 다른 진영에 속해있다고 판단되는 보도대상이나 다른 언론사에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결국 스스로가 당사자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군부독재 혹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언론은 도구적 정치의 장에 속해있었으 나, 민주화 이후 ‘제도정치의 장’으로 이동했다고 보았다.(강명구 2004) ‘시민 사회적 정치의 장’을 선택할 수도 있었으나 <한겨레> 역시 김대중 정부 이후
제도적 정치의 장으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급격하게 복합적으로 표출되는 사회 갈등을 안정적으로 조정하 는 제도적 장치나 구조가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정당 이 갈등 조정의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과거 사회갈등은 이념 적 갈등(남북문제)으로 환원되어 억압받았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점차 이러한 전략이 먹혀들기 어렵게 되었다. 이 때문에 정당의 갈등조정과 타협의 역할은 커졌지만, 극심한 대립과 반목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이해관계나 집 단은 대화와 협상 보다는 실격행사나 떼쓰기 식으로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시 도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여기에 인맥 등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이익을 관철 시키려는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언론학자들은 정당의 이러한 상황, 이러한 공백을 한국의 언론사들이 메우고 있거나 메우기를 자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치과정을 관찰하고 보도하 며, 갈등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언론이 갈등주체의 대변인이나 변 호인, 혹은 갈등 조정행위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축구중계를 해야 할 언 론이 선수들의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고, 스스로 게임을 하면서 중계까지 하는 형국’이라고 비유하고 있다.(강명구 2004)
-한국의 신문 산업 및 신문경영의 특성도 정파성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한 다. 높은 품질의 지면을 생산해 독자 수를 늘리고, 이를 광고수입으로 연계시 키는 서구적 비즈니스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 력을 자산으로 광고영업과 부수사업을 확장해온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 다는 분석이다.
<한국 정치커뮤니케이션의 사회구조적 현실>
-세월호 참사를 특별법을 둘러싸고도 한쪽에서는 ‘그들이야말로 국가다’라는 말로 국가의 구조 책임과 보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쪽에서는
‘국가를 위해 산화한 희생자냐? 의사자로 어떻게 국가를 지킨 유공자보다 많 은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공격이 맞붙어있다. 지난해 광화문 단식 현장 에서는 ‘이제 그만하자’는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단식 부모와 시민단체 옆에서 피자를 배달시켜 먹는, 해외 토픽에 소개될 법한 웃지 못할 광경까지 벌어졌 다. 이러한 대치 현상은 위안부 문제에 이르기 까지 전 방위적이고 광범위하 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요소인 대화와 타협을 통한 공론형성 보다는 내
가 속한 집단과 선호하는 이념에 더욱 충실하겠다는 개인·집단 이기주의의 발 로로 볼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책임자 처벌과 보호 문제도 지난 5년 넘게 정부, 국 회, 수사기관, 기업, 시민단체가 손을 놓고 있다가 희생자 가족들의 끈질긴 투 쟁과 문제제기로 공론화된 현안이다. 그 과정에서 의료계의 연구 발표가 있었 으나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가, 4·13 총선 이후 공론화되고 있다. 국회 청문회 가 열릴 가능성이 높으나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역대 정권의 ‘책임 공방’으로 끌고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갈등에서 비롯된 정치 커뮤 니케이션의 후진성이며, 정치 저널리즘의 한계이다.
-대통령과 국회와의 관계는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현실적 으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정치 현장이라고 하겠다. 여당이 과반을 넘는 다 수당일 때는 정부 출범 초기에는 대통령의 청와대와 국회와의 관계가 수직적 관계였으나, 집권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갈등과 대결의 구도를 만들어냈다. 특 히 김대중 정부와 과반이 넘었던 한나라당,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 민주당의 탄핵,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대표의 새누리당의 세종시를 둘러싼 갈등, 박근혜 대통령과 19대 국회의 관계는 협치(協治)나 조화가 아닌 불통과 갈등의 지속이 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4·13 총선 이후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 “한이 많이 남 을 것 같다”는 심경 토로는 책임소재를 떠나 정치적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 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