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1598-1142 (Print) / ISSN 2383-9066 (Online) https://doi.org/10.7738/JAH.2020.29.3.079
일출목 초익공 공포의 기원과 변천
The Origins and Changes of One Chulmok-One Ikgong Bracket-Sets in the Joseon Dynasty
전 해 완 Chun, Hae-Wan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석사과정)
류 성 룡*1) Ryoo, Seong-Lyong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Abstract
In Korean traditional architecture, the Gong-po style is divided into the Jusimpo, Dapo and Ikgong. Jusimpo and Chulmok-Ikong, where only Gong-po is placed on the column, differ in form of Gong-po depending on the viewpoint. Since ‘Chulmok-Ikgong’ has been generally regarded as ‘One Chulmok-Two Ikgong’, the precedent researches have been conducted mainly on ‘One Chulmok-Two Ikgong’ in the Gong-po style classification.
However, when it comes to ‘One Chulmok’, the style of Ikgong can be organized from the one to three steps and this study is particularly for examining the occurrence and transformation of ‘One Chulmok-One Ikgong’.
One of the case study sites, Bonghwa Cheongamjeong was originally built in the 16th century, and is believed to have been repaired from ‘Non Chulmok-One Ikgong’ to ‘One Chulmok-One Ikgong’. Since the beam linked directly to the upper part of a capital, it does not connect the eave trave(architrave) in between. Also, Soro which supports Jangyeo(the architrave strip) has been placed and linked in comparatively lower position. It is confirmed by the signigicant difference in the hierarchy of Gong-po forms in one architecture. The Jeonju-Hyanggyo Daeseongjeon, which was built in the 17th century among the subjects, was similar with ‘One Chulmok-One Ikgong’, but it was found to be the type of Jusimpo form because the bottom of the beam and the top of the Ikong are apart. And Gongan is confirmed at Cheomcha. In the 17th century, it can be seen that Heot-Cheomcha disappeared and Ikgong was started to use as a constant figure. The end of the 18th century, it can be seen that it was changed into a ornament added on Haeng-gong, being seen in the case of Hwaseong Dongjangdae. In conclusion, it can be seen that ‘One Chulmok-One Ikgong’ were developed in both the Jusimpo and Ikong style. The transformation into ‘One Chulmok-One Ikgong’ was inevitable consequence related with an elevation difference between the eave trave and the column trave.
주제어 : 공포(栱包), 익공(翼工), 출목익공(出目翼工), 일출목 초익공(一出目初翼工), 조선시대(朝鮮時代) Keywords : Gongpo, Ikgong, Chulmok Ikgong, 1 Chulmok 1 Ikgong, Joseon Dynasty
1. 서론
1-1. 연구 배경 및 목적
한국건축에서 공포 양식은 주심포식·다포식·익공식 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익공식은 출목의 유무에 따라
* Corresponding Author: [email protected]
다시 무출목익공식, 출목익공식으로 나누기도 한다. 주 심포와 출목익공은 유사한 구성이지만 다포식은 기둥 상부 및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위치하고 있어 쉽게 구분된다.
‘출목익공’ 가운데서 출목이 하나인 경우에는 익공이 두 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출목익공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일출목 이익공을 중심으로 이루어
건축물 종목 지정번호 건축연대 참고자료 전주향교
대성전 사적 제379호 1604년 『전주향교 정밀실 측조사보고서』
영천향교
대성전 보물 제616호 1610년
중수 『영천향교 대성전 수리공사 보고서』
사직단
대문 보물 제177호 1700년
전후 『사직단 대문 정밀 실측보고서』
봉화
청암정 명승 제60호 1526년
창건 현창종합건축사 사 무소 도면제공 부석사
취현암 세계문화유산구역 조선
중기 『영주 부석사 보수 정화준공보고서』
부석사
응향각 세계문화유산구역 1978년 『영주 부석사 보수 정화준공보고서』
춘천향교 대성전
강원도 유형문화
재 제98호 1785년 『강원도지정문화재 실측조사보고서 : 춘 천향교』
수원화성동장대 세계문화유산구역 1795년 수원성곽 복원 보수 공사도면 표 1. 조사대상 건축물
져왔다. 하지만 출목이 하나인 경우에도 익공 개수는 한 개부터 세 개까지 다양한 사례가 확인된다. 일출목 이면서 익공이 하나 사용되는 경우가 다수 확인된 바, 일출목 초익공 건축에 대한 일반적인 특징과 공포 형식 을 정리하고 무출목 초익공 건축과 비교함으로써 일출목 초익공 건축이 무출목 초익공 건축보다 진전된 형태라는 최근 연구가 있었다.1)
이를 바탕으로 본 연구에서는 일출목 초익공 건축들 사이의 공포에 대한 차이를 비교 · 정리하여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 일출목 초익공 공포의 시대적 특징을 확 인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일출목 초익공 공포 형식 이 주심포 형식에서 약화된 것인지 또는 무출목 익공 형식에서 발전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일출목 초익공 공포의 기원을 확인하는데 목적이 있다.
1-2. 연구 내용 및 방법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또는 문화재 지정 구역 내 위치하고 있는 일출목 초익공 건 물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전주향교 대성전, 영천향교 대성전, 사직단 대문, 봉화 청암정이 해당된다. 이외 춘천향교 대성전(강원도 유형문화재)은 현재 무출목 초익공이지만 과거 사진2)을 통해 일출목 초익공이었 던 것이 확인되어 본 연구에 포함하였다. 또한 세계문 화유산의 유산구역 안에 포함되어 있는 수원화성 동장 대, 부석사 취현암, 응향각 등도 연구 대상으로 하였 다. 연구대상 건축물 현황은 〈표 ㅇ1〉과 같다.
1) 전해완·류성룡, 「일출목 초익공과 무출목 초익공 비교연구」,
『한국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16
연구 순서는 2장에서 출목익공 및 일출목 초익공 공 포형식 선행연구를 정리하였고, 3장에서는 조사대상 건축에서 확인되는 특징과 일반적인 건축 형식 및 부 재 치수를 확인하였다. 4장에서는 각 대상 건축물의 공포 결구 형태와 사용되는 부재의 특징을 서술하였 다. 그리고 공포가 결구되는 주심도리와 처마도리 하 부 부재 구성과 높이를 확인하고 분류함으로써 일출목 초익공 건축 공포의 발전 형태를 추정하였다.
본 연구는 대상 건축물에 대한 현장 답사와 문헌 조 사를 기본으로 실시하였으며 공포 형식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하여 도면화 작업에 오토캐드를 활용하 였고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3d 모델링을 실시 하였다.
2. 연구를 위한 이해
2-1. 익공 용어의 선행 연구
본 논문 진행에 앞서 익공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문 헌에 기록된 관련 용어를 정리한 연구를 살펴보면 다 음과 같다.
의궤에 기록된 공포부재는 크게 다포계 공포부재와 익공계 공포부재로 구분된다. 이 중 익공계는 시대에 따른 명백한 표기상의 변화를 나타낸다. 익공은 17c에 서 18c 중엽까지 주로 「立工」으로 표기되다가 18c 후반부터「翼工」으로 정착되었다.3)
산릉의궤에서는 19c 중엽 이후에 初翼工과 二翼工과 같은 표현이 쓰이지 않고 草翼工과 再翼工으로 쓰이고 있다. 여기에 몰익공은 산릉 및 영건의궤를 통해 18c 중엽에서 말까지 無立工이 중심용어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4)
그림 1. 『華城城役儀軌』 초익공과 이익공 그림
2) 오가와게이기찌(小川敬吉),「小川敬吉調査文化財資料」, 국립문화 재연구소, 91쪽
3) 김동욱·김경표·이왕기·박명덕, 「조선시대 건축용어 연구–조선후 기 영건의궤서에 기록된 부재명칭의 변천에 대하여」, 『대한건축학 회 논문집, 6권, 3호』, 1990, 6쪽
4) 이상명, 「산릉의궤를 통한 공포부재 용어 연구 –익공과 행공을 중심으로-」, 『한국건축역사학회 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16
1794년 간행된 『華城城役儀軌』에서는 부재 명칭과 그림이 함께 확인되는데, 각 건물 공사에 사용된 부재 와 수량이 기록되었다. 그 중 익공식 용어인 초익공과 이익공 등이 그림과 함께 확인되며 익공 상부의 소로 자리가 없는 것을 보아 두 그림 모두 출목이 없는 초 익공과 이익공을 설명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2. 출목익공 양식의 선행 연구
류성룡의「출목익공 기원과 변천에 관한 연구」에서 1출목 2익공을 ‘주심포식 출목익공’과 ‘전형적인 출목 익공’으로 나누고, 2출목 3익공을 ‘다포식 출목익공’으 로 분류하였다.5)
분류 건축
주심포식출목익공
개목사
원통전 개심사
심검당 환성사
심검당
전형적인
출목익공 봉정사
고금당 선암사
불조전 나주
정수루
다포식 출목익공
마곡사
영산전 흥국사
심검당 전주
풍남문 표 2. 출목익공 형태별 분류
(류성룡, 「출목익공 기원과 변천에 관한 연구」, p.218)
기본적으로 출목익공은 주두 아래부터 보방향 부재가 모두 간격 없이 맞닿아 있는 것으로서 주심포계 1출목 2익공은 보 방향의 부재만 맞닿아 있지만, 전형적인 1출 목 2익공의 경우 보 방향과 도리 방향의 부재 상·하단 면이 모두 맞닿아 있다. 따라서 주심포계 출목익공에서 는 알통소로가 사용되었는데 전형적인 출목익공에서는 도리 방향의 부재도 맞닿는 모습이기 때문에 양갈소로 에서 한 번 더 갈을 딴 네갈소로가 사용되었다. 이 경우 에는 도리 방향과 보 방향이 모두 맞닿아 있어 네갈소 로가 구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 면서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익공과 첨차의 형태와 소로의 5) 류성룡·주남철, 「출목익공 기원과 변천에 관한 연구」, 『대한건 축학회논문집, 13권, 4호』 , 1997
형태 및 배치에 따라서도 출목익공의 전후 시대를 구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일출목 초익공 건축에 대한 연구6)가 있다.
일출목 초익공 건물은 모두 조선시대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구조는 3량가부터 5량가, 크게는 7량가 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지만 주로 5량가 형식이 많이 사 용되었다.
일출목 초익공 형식은 비교적 단순한 구조이지만 공 포 구성에 있어서 주심도리와 처마도리 하부에 설치되 는 부재는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다. 장여가 1 개 사용되는 경우, 2가지 사용되는 경우, 장여와 첨차 가 혼용되는 경우 등이 확인되었다,
일출목 초익공 건축을 먼저 무출목 초익공과 비교해 보면, 공포를 구성하는 단 수가 서로 같다. 무출목 초 익공에서 보뺄목의 길이를 늘인 다음 처마도리장여와 처마도리를 설치하게 되면 일출목 초익공이 된다.〈그 림 2. 참조〉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일출목 초익공은 무출목 초익공에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2. 무출목 초익공과 일출목 초익공 구조 형식 실제로 익공부터 주심도리까지 전체 결구 구성에 대 하여 두 공포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7)
무출목 초익공은 주두에 익공 하나만 써서 꾸민 공 포8)이기 때문에 포집 중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결구 과정은〈그림 3〉과 같다. 사파수에 보 방향으로 익공 을 끼우고 도리 방향으로는 창방을 사개맞춤한다. 기 둥 중심에 네옆갈인 주두를 두고 창방 상부에는 주심 도리 장여를 받치는 양갈소로를 둔다. 보는 주두 상단 에 두고 직교 방향으로 주심도리 장여와 주심도리를 6) 전해완·류성룡, 「일출목 초익공의 결구와 부재크기에 관한 연 구」, 『한국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16 7) 전해완·류성룡, 「일출목 초익공과 무출목 초익공 비교연구」,
『한국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16, 또한 다음의 그림2, 그림3, 그림4 역시 같은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8) 본 연구자는 기둥 위에 주두가 설치된 경우를 공포의 최소한 조 건으로 보고 이 내용을 서술하였다.
구분 공포 3d 결구 공포 단면도
전주향교 대성전
정면 공포
배 면 공포
영천향교 대성전
평 주
사직 단 대문
평 주
봉화 청암정
우주
평주
부석 취현사 암
정 면평 주
표 3. 일출목 초익공 공포 결구 결구하게 되면 무출목 초익공이 된다.
일출목 초익공은 무출목 초익공 결구에 더하여 익공 상부에 알통보강 네갈소로를 두고 출목 위치에는 처마 도리 장여와 처마도리를 결구하여 완성한다.
그림 3. 무출목 초익공과 일출목 초익공 결구 비교
무출목 초익공과 일출목 초익공의 차이점은 처마도 리 장여와 처마도리의 유무 때문에 익공과 보의 형태 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익공에는 처마도리 하 부를 받치는 소로 자리가 필요하고, 보에서는 처마도 리 장여와 처마도리가 결구되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림 4. 무출목 초익공과 일출목 초익공의 익공과 보 비교 이외에 일출목 초익공 건축과 무출목 초익공 건축 은9) 가구 규모 및 부재 크기, 처마 내밀기 등에 있어 서 일출목 초익공 건축이 무출목 초익공보다 큰 것이 확인된 바 있다. 이를 미루어보면 일출목 초익공은 처 마도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건물 가구가 높아지고 처마 를 길게 낼 수 있어서 무출목 초익공보다 구조적으로 진전된 형태임을 생각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선행 연구에서 더 나아가 대상 건축 8동에서 사용된 공포의 결구 부재들을 확인하고 도리 하단에 사용된 부재 등의 높이에 대한 비교를 통해 일 9) 전해완·류성룡,「일출목 초익공과 무출목 초익공 비교 연구」,
『한국건축역사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논문집』, 2016에서 발표한 내 용이며 무출목 초익공 건축은 맹씨행단. 관가정, 향단, 독락당, 해운 정, 무첨당, 소호헌 총 7건을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출목 초익공 건축의 전개 방향과 발생 원인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3. 일출목 초익공 공포 형식 3-1. 일출목 초익공 공포 결구
10) 춘천향교 대성전의 경우 도면은 없고 사진만 남아있으므로 과 거 사진을 근거로 하여 도면을 그리고 결구 방식을 추정하였다.
구분 공포 3d 결구 공포 단면도 부석
응향사 각
평주
춘천 향교대성 전10)
정 면평 주
수원 화성동장 대
평주
본 표는 선행 연구의 내용을 바탕으로 사례를 추가하였고 틀린 곳은 수정 · 보완하였음
연구대상 건축물 8동의 공포 결구를 정리하면 <표 3>
과 같다.
전주향교 대성전의 익공 상단은 보뺼목 하단과 떨어 져 있으며 정·배면 공포의 주심도리 하부 결구 부재가 다르다. 정면에서는 주심도리 장여 하부에 장여가 설 치되어 있으며 배면에서는 주심도리 장여 하부에 첨차 가 결구되고 있다.
영천향교 대성전은 익공이 물익공 형태이며 주심도 리 장여 아래에 재장여(가반장여)11)가 위치하고 있다.
사직단 대문의 익공은 수평에 가까운 수서 형태이며 쇠서 옆면에 연화두형으로 초새김하였다. 규모는 작지 만 사직단으로서의 위엄성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구조 적으로 복잡한 형식은 피하고 출목익공식을 취한 것으 로 보인다.12) 주심도리와 처마도리 하부에 각 1단의 장여를 설치하였다.
봉화 청암정은 우주와 평주 공포에서 익공 부재의 높이가 서로 다르다. 우주 공포에서는 창방뺄목이 익공처럼 사용되고, 뺄목 상단이 주두 하부선과 같은 높이가 된다. 그런데 익공 부재가 높게 만들어진 평주 에서는 보뺄목이 처마도리를 받지 않고 익공이 직접 처마도리와 결구되는 모습이다. 평주의 익공은 우주에 서 사용된 익공보다 높기 때문에 처마도리 장여와 처 마도리를 감싸는 모습이 되었다.
11) 문화재청, 『영천향교 대성전 수리공사 보고서』, 2001, 69쪽 12) 문화재청, 『사직단 대문 정밀실측보고서』, 2005, 99쪽
그림 5. 부석사 취현암 옛 사진 (좌 : 정면, 우 : 배면 / 출처 : 영주부석사보수정화준공보고서, 촬영일자 1980년)
부석사 취현암과 부석사 응향각(1978년 신축)은 공 포의 형태와 결구 방식이 유사하다. 부석사 취현암과 응향각은 두 건물 모두 주심도리 하부에 장여를 2개를 겹쳐 설치하였다. 취현암에는 처마도리 장여가 1개, 응 향각에서는 처마도리 장여가 2개 사용되었다. 부석사 취현암은 정면 공포가 일출목 초익공이나 배면 공포는 무출목 초익공이다.
춘천향교 대성전은 과거의 사진을 통해 정면 평주 공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수평으로 뻗은 형태의 익공 이 결구되고 있고 처마도리 장여 하부에 익공과 행공 이 십자맞춤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6. 춘천향교 대성전 정면 공포
(출처 : 오가와 게이끼찌 사진 촬영, 촬영일자 1916∼1944) 수원화성 동장대는 처마도리 장여 하부에 행공을 익 공과 직교하여 결구하고 있고 주심도리 하부에는 높이 가 높은 장여를 하나 설치하였다.
3-2. 일출목 초익공 공포 구성
일출목 초익공 공포의 결구 방식은 다양한데, 처마 도리장여가 결구되는 위치나 처마도리와 주심도리 하 부에서 결구되는 장여의 개수 등에서 다른 모습이다.
일부 건물에서는 첨차와 행공이 결구되고 있다. <표 4>는 일출목 초익공 건축의 결구 부재와 도리 하부 부재를 정리한 표이다.
처마도리 하부를 보면 8동 가운데 5동은 도리 하부 에 장여만 설치하는 방식이고 3동은 도리 하부에 장여 를 2단 설치한 경우(부석사 취현암)이며 춘천향교 대 성전과 수원화성 동장대는 장여 하부에서 익공에 직교 하는 행공을 설치한 경우이다.
주심도리 장여의 하부는 8동 가운데 4동이 2단으로 서 전주향교 대성전, 영천향교 대성전, 부석사 취현암 과 응향각 등이 해당된다. 전주향교 대성전은 정면 공 포에서는 판벽에 사선 방향으로 마감한 첨차를 설치하 였고 배면 공포에서는 장여 하부에 첨차를 설치하였 다.
구분 건축물
처마도리하부구성
장여 1단 결구 (5동)
전주향교 대성전, 영천향교 대성전, 사 직 단 대 문 , 봉 화 청 암 정 , 부석사 응향각
2단 결구 (3동)
장여-장여
결구 부석사 취현암 장여-행공
결구 춘천향교 대성전 수원화성 동장대
주심도리하부구성
장여 1단 결구 (4동)
사직단 대문, 봉화 청암정, 춘천향교 대성전, 수원화성 동장대
2단 결구 (4동)
장여-장여 (3동)결구
영천향교 대성전 (가반장여) 부석사 취현암 부석사 응향각 장여-첨차
(1동)결구 전주향교 대성전 음영이 들어간 부분은 첨차가 결구된 대상임.
표 4. 장여 하부 구성 현황
일출목 초익공 건물 가운데 3동에서는 행공과 첨차 가 결구되고 있다.
춘천향교 대성전과 수원화성 동장대에서는 처마도리 하부에서 행공이 사용되었고, 전주향교 대성전에서는 건물 배면의 주심도리 하부에서 첨차가 사용되었다.
처마도리 하부에 결구되는 부재는 구조적인 역할을 하 지 못하므로 의장적인 요소로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정 된다. 전주향교 대성전의 배면 공포에 사용된 첨차는 공안 및 연화두형 초각 등이 있어서 주심포 건축의 특 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장여 하부에 설치된 부재의 높이 변화를 확인하면 〈표 5〉와 같다.
처마도리 하부 부재 높이와 주심도리 하부의 높이를 비교해 보면, 봉화 청암정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주심도
리 하부의 높이가 처마도리 하부 부재 높이보다 높은 것 을 알 수 있다.
구분 종단면도 처마도리 하부 주심도리 하부 전주향교
대성전 180 397
영천향교대성전 270 440
사직단대문 163 300
봉화
청암정 150 150
부석사취현암 190 296
부석사
응향각 185 275
춘천향교
대성전 · ·
수원화성
동장대 18013) 315
음영이 들어간 부분이 2단 결구 구성이며 이 경우 단면
높이의 합계를 기입하였다. (단위:mm)
표 5. 처마도리 및 주심도리 하부 높이 비교
봉화 청암정의 경우에는 처마도리 장여와 주심도리 장 여의 높이가 같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익공의 출목소로와 주두 높이를 동일선상에 두는 일반적인 모습에서는 불가 능하지만 처마도리 하부 소로를 주두의 높이보다 낮게 결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높이차를 둘 수 있었다. 주심 장여의 하부를 1단으로 구성하든 2단으로 구성하든 중요 한 점은 처마도리에 비해 주심도리가 높아야 하는 원칙 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13) 수원화성 동장대의 처마도리 하부 부재는 장여와 행공의 2단 결구이나 행공은 익공과 결구되므로 처마도리 장여높이만 기입하였 다.
4. 일출목 초익공 공포의 기원
4-1 전주향교 대성전 공포와 일출목 초익공 주심포 건축에서 출목익공으로 변화할 때 보 방향의 상·하부 살미가 맞닿게 되는데 전주향교 대성전의 살 미는 상부의 보뺄목과 떨어져 있는 형태이다. 따라서 전주향교 대성전은 출목익공 이전의 주심포 건축을 간 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7. 전주향교 대성전 전경 및 활주 상세 (출처:문화재청) 전주향교 대성전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퇴가 없고 내부에 고주를 사용하지 않은 무고주 5량 형식의 가구이다.
대성전의 공포는 보뺄목 하단과 익공 상단이 맞닿아 있지 않고 떨어져 있어서 주심포 공포의 특징을 보여 준다. 보에 결구된 처마도리와 처마도리 장여가 소로 를 통해 헛첨차와 연결된다.
그림 8. 전주향교 대성전 공포 결구 현황
(좌-정면, 우-배면 / 출처:전주향교 실측조사보고서)
전주향교 대성전의 공포는 정면과 배면의 모습이 서 로 다르다. 배면에 사용한 첨차는 양단을 연화두형으 로 초각한 반면 정면에 사용한 첨차는 연화두형 초각 이 없으며 마구리면을 사선으로 잘라서 마감하였다.
다만 정면 공포 중 좌측벽과 우측벽에서 바깥으로 노 출되는 첨차에는 연화두형 초각이 있다. 이를 감안하 면, 건물 초창 시 연화두형 초각을 한 주심첨차를 사 용했지만 중수 과정에서 정면의 첨차는 변경이 되었고 배면의 첨차는 원래 것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14)
14) 문화재청, 『전주향교 정밀실측조사보고서』, 2014, 169쪽
그림 9. 전주향교 대성전 주심도리 하부 첨차 및 소로 (좌-정면, 우-배면 / 출처 : 전주향교 실측조사보고서) 또한, 주심하부 첨차 양단에 설치된 상부 소로의 모 습도 정면과 배면이 서로 다르다. 배면의 연화두형 초 각 첨차 양쪽에는 양갈소로가 사용되고 있으나 정면의 사절 첨차 양쪽에는 딱지소로를 사용하였다.15)
이외에 정면 귀공포 주심첨차와 배면 주심첨차 상단 에는 공안이 남아있는데 정면 중앙 2곳 공포와 비교했 을 때, 더 오래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4-2. 봉화 청암정과 일출목 초익공
그림 10. 봉화 청암정 전경
(출처 : 본인 촬영, 촬영일자 2016년 7월 23일)
봉화 청암정은 丁자형 평면을 하고 있으며 6칸의 대 청과 몸채 안쪽에 마루방을 내고 앞뒤로 반칸을 늘린 모습이다. 정침은 일출목 초익공 공포이지만 익사 위 치는 민도리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림 11. 봉화 청암정 일출목 초익공 현황 (출처:본인 촬영, 촬영일자 2016년 7월 23일)
15) 문화재청, 앞의 보고서, 2014, 176쪽
그런데 봉화 청암정 공포는 원래가 무출목 초익공 형태였는데 후대에 일출목 초익공 건축으로 변경되었 다고 추정되는 정황들이 있는데, 이에 관한 내용은 다 음과 같다.
먼저, 보뺄목 형태를 보면 출목 위치에 처마도리를 얹을 자리가 없다는 점에서 무출목 초익공과 같다. 이 를 감안하면, 무출목 초익공의 긴 보뺄목을 주두 위치 에서 절단해서 짧게 만든 후 높이가 높은 익공 부재를 결구하고 여기에 소로, 처마도리 장여, 처마도리 등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림 12. 봉화 청암정 정침 평주 공포 부분 변형 과정 (추정)
또한, 처마도리 장여 하부에 설치된 소로의 모습이 특이하다는 점 역시 변형의 정황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보통의 출목익공 공포는 처마도리 장여 하부에 소로를 설치할 때 익공 상부에 위치시킨다. 그 러나 봉화 청암정의 경우에는 익공 상부에 소로를 설 치하면 서까래를 걸 수 없는 모습으로, 소로를 익공 높이의 중간에 설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 13. 봉화 청암정 정침 평주 원형 및 변화 과정 (추정)
마지막으로, 청암정은 정침에서 일출목 초익공을 사 용하였고 익사에서 민도리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일 반적인 정자(丁字) 건축과 비교하면 다른 모습인데, 같 은 건물 안에서는 정침과 익사의 공포를 같게 만들거 나 위계의 차를 두는 경우에는 정침을 무출목 익공, 익사를 민도리로 하거나 정침을 일출목 익공, 익사를 무출목 익공으로 하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이를 따른다면 청암정의 경우, 정침의 일출목 초익 공을 기준으로 한다면 익사는 무출목익공이 되어야 하 고 익사의 민도리를 기준으로 한다면 정침은 무출목익 공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된다.
그림 14. 봉화 청암정 공포 형식
(실선-일출목 초익공, 점선-민도리 납도리)
4-3. 수원화성 동장대와 일출목 초익공
연구대상 중 비교적 늦은 시기에 건축된 수원화성 동장대는 타 연구대상과 비교하였을 때, 공포에 사용 된 부재가 다른 모습이다.
1795년 건축된 수원화성 동장대는 『화성성역의궤』
에서 그림과 함께 사용된 부재 내역, 건축의 크기 등 에 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20간이 되는 넓은 규 모의 건축이며 삼포팔작(三包八雀)16)이라고 설명하였 다.
그림 15. 수원화성 동장대도(좌-전체전경, 우-축부) (출처:『화성성역의궤-국역증보판(상)』)
동장대의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화성성 역의궤』에서는 ‘정면은 정간이 11척, 좌우로 제1간이 9척, 다음의 제2간이 각 8척이 되고 측면은 18척, 전후 로 퇴가 각각 8척17) 이라고 하였다. 『화성성역의궤』
의 동장대 도면이 정면 5간, 측면 3간으로 그려진 점 까지 고려하면, 현재의 수원화성 동장대 평면이 정면 5칸, 측면 4칸인 것과 다른 모습이다. 이를 감안하면, 동장대 측면 가운데에 중앙 기둥을 후대에 추가하였다 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만, 측면의 중앙간을 기둥 없이 18척으로 건축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사 16) 경기문화재단, 『화성성역의궤-국역증보판(상)』, 2015, 70∼71쪽 17) 水原文化財保全會, 『華城城役儀軌』, 1965, 27쪽
실과 함께 동장대에 대한 『화성성역의궤』 표현이 측 면이 아닌 내부를 기준으로 기술되었을 가능성 역시 의문으로 남는 점이다.
그렇지만, 『화성성역의궤』의 동장대와 현재의 동 장대는 정면의 전체 너비와 측면의 전체 너비, 그리고 평면 규모가 같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림 16 참조>
『화성성역의궤』에서 동장대의 공포 부재는 익공 44개, 행공 12개, 한대 4개18)로 기록되어 있어 현재 동 장대의 익공 및 행공 개수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동장대에는 익공은 30개, 행공은 14개가 사용되 고 있다.
그림 16. 수원화성 동장대 화성성역의궤 기록과 현재 건축 비교
그런데 측면 중앙 기둥의 공포룰 제외하고 살펴보 면, 익공은 동자주에 결구된 8개, 내고주 상단에 결구 된 8개, 평주에 결구된 12개를 더해서 총 28개이다. 또 한 귀포에 사용된 귀한대(귀포 1개 당 익공 4개)가 익 공과 같은 높이의 부재이기 때문에 귀한대 익공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16개를 더하면 전체 익공 수는 44개가 된다. 행공 역시 중앙 기둥에 설치된 2개 를 제외하면 12개이다.
이상을 종합하게 되면 첫째,『화성성역의궤』의 동 장대과 현재 동장대의 공포 형식은 같다고 볼 수 있 고, 둘째, 일출목 초익공 역시 삼포라고 했다는 점에서 출목이 하나가 있는 공포는 익공 개수와 상관없이 삼 포로 구분했다는 것이며, 셋째, 익공 높이와 같은 귀포 귀한대까지 익공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현재의 동장대가 측면 4간으로 된 모습 은 『화성성역의궤』 당시의 동장대 계획과 다른 것이 며 후대에 측면 중앙 기둥이 추가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8) 경기문화재단, 『화성성역의궤-국역증보판(하·부록)』, 2015, 594쪽
그림 17. 수원화성 동장대 정면 평주 공포 (출처:본인 촬영, 촬영일자 2016년 7월 26일)
공포의 구체적 모습을 살펴보면, 다른 연구대상의 일출목 초익공들은 익공 위 소로에서 처마도리장여와 처마도리가 설치되지만 수원화성 동장대에서는 익공 중간 소로에 행공이 맞춤되고 이 위에 설치된 소로에 서 처마도리장여와 처마도리가 설치되는 모습이다.
그림 18. 수원화성 동장대 결구 추정 구조도
결국, 익공이 하나 사용된 점에 일반적인 초익공 공 포와 다르지 않지만 처마도리 하부에 설치되는 부재 단수가 추가된 것이다. 익공의 중간 높이까지 홈을 내 서 옆갈네갈소로를 결구하고 행공을 맞춤하는 등의 작 업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출목초익공의 익공 부재와 비교하였을 때 단면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동장대 형식의 일출목 초익공은 구조적 인 약화를 감수하고 의장적인 효과를 위해 고안된 모 습인 것을 알 수 있다.
4-4. 일출목 초익공 공포 기원에 대한 추정
현존하는 일출목 초익공 건축의 수는 7동으로 타 형 식에 비해 사례 수가 적으며 창건 당시 지어진 본래의 양식이 어느 시기에 어떤 중수 과정을 거쳐 현재 모습 이 되었는지에 관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어 연구에 한계점이 있다. 다만 앞서 살펴보았던 연구를 정리하 면 일출목 초익공 공포는 전주향교 대성전과 같은 주 심포 건축의 변화에서 출발한 것으로 17세기에는 헛첨 차가 사라진 일정한 모습이 되어 널리 사용되었으며 18세기 말에는 춘천향교 대성전이나 화성 동장대와 같 이 행공을 추가한 장식성 강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 을 알 수 있다.
연구대상 건물을 건축 연대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창건연대가 16C인 봉화 청암정은 원래 무출목 초익공으로 건축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후대 에 출목이 추가되는 모습으로 변경되었는데, 국립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일제강점기의 봉화 청암정 사 진을 보면 현재의 모습과 같기 때문에 적어도 1910년 이전에 일출목 초익공 형식으로 개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9 일제강점기의 봉화 청암정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소장자료)
17C 건축으로는 전주향교 대성전과 영천향교 대성 전, 부석사 취현암 등이 있다. 전주향교 대성전은 임진 왜란으로 소실된 후 1604년 현재 위치에 재건된 이후 로 1675년, 1819년 등 다수의 중수 과정을 거치게 되 는데 자세한 보수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정면 의 공포가 바뀌게 되면서 배면 공포가 더 오래된 모습 을 간직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정면과 배면 공포가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헛첨차가 유지된다는 점에서 앞 뒤 공포 모두 주심포 형식이다. <4-1참조> 그러나 헛 첨차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출목 초익공 의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천향교 대성전 또한 1610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
었는데, 1622년 중수기록과 함께 1736, 1744, 1751년 등의 중수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전의 보수 내용은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1751년 이후 이루어진 보수는 누 수에 대한 기와, 창호 등 보수인 것으로 확인되므로 영천향교 대성전의 공포는 17C 초 건축 모습으로 추 정할 수 있다.
부석사 취현암은 1649년 묵서가 확인되나 일제강점 기에 원래 위치에서 범종각 근처로 이전되었으며, 당 시에 지붕에서 변화가 발생하였지만 공포의 짜임과 구 성은 영천향교 대성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 20. 일제강점기의 사직단 대문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소장자료)
사직단 대문의 초창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내용이 없고 건립된 위치도 다르기 때문에 본래의 형식을 확 실하게 알 수 없지만 1700년 초『사직단도』와 1783년 제작된 『사직단 도설』을 보았을 때, 같은 3간으로 그려져 있어 같은 형식의 건물로 추정할 수 있다.19)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사진의 일제강점기의 사직단 대문 모습은 현재와 다르지 않다.
춘천향교 대성전은 1594년 중건되었고 1785년의 중 수된 기록이 있지만 <그림 6>의 공포 시기는 1785년 중수 때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추정은 1795 년의 화성 동장대 공포와 같은 구성이라는 점에서 근 거를 들 수 있다. 10여년 후의『華城城役儀軌』의 동 장대는 삼포팔작(三包八雀)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설명된 공포가 현재의 모습과 같은 것을 확인한 바 있 는데, 익공 중간에 1출목의 행공을 추가한 구성에서 춘천향교 대성전 공포와 같다. 따라서 18세기말 유행 했던 일출목 초익공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주심포 공포가 출목익공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일 출목 초익공 역시 나타나게 되었다. 17C 초 건축된 전 주향교 대성전은 헛첨차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체적 짜 임과 구성은 일출목 초익공과 같다.
전주향교 대성전 이후, 일출목 초익공 건축은 보와 19) 문화재청, 『사직단 대문 정밀실측보고서』, 2005, 159쪽
도리 방향의 부재가 모두 맞닿아 있는 전형적인 출목 익공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17C 건축인 영천향교 대성 전, 사직단 정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8C 말 춘천향교 대성전과 수원화성 동장대 등에서 변화가 나 타나는데 일출목 하부에 행공을 추가하여 장식성을 높 이는 방식이 출현하였다.
이와 같은 일출목 초익공의 흐름 속에서 추후 확인 이 필요한 중요한 사례로 봉화 청암정이 있다. 16C 초 무출목 초익공으로 건축된 이후에 일출목 초익공으로 변경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공포가 변경되는 시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청암정의 공포 변경이 18세기말 춘천향교 대성전 이전인지 또는 이후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암정 공포 변경 의 중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는 익공의 중간 높이에 소 로를 설치하는 기법인데, 청암정에서 먼저 사용된 것 인지 아니면 춘천향교 대성전에서 먼저 사용된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청암정이 먼저라고 한다면, 익공 중간 높이에 옆갈네갈소로를 결구하는 기법이 고 안되면서 18세기 말, 행공까지 맞춤할 수 있는 장식성 강한 일출목 초익공으로 변화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 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춘천향교 대성전이 앞선 것으로 밝혀진다면, 익공 중간 높이에 옆갈네갈소로와 행공을 설치하는 화려하고 복잡하며 기술력을 요하는 기법이 고안됨으로써 청암정의 무출목익공 공포를 일 출목 초익공으로 변경하는 작업이 가능할 수 있게 되 었다고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5. 결론
본 논문은 일출목 초익공 양식의 발생 및 변화양상 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일반적인 건축 형식을 확인하고 공포 부재 결구 현황 및 결구 방식 차이에 대해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출목 초익공 건축은 다양한 성격의 건축에 서 사용되었으며 특히 향교 대성전처럼 경내의 다른 건물과 비교하여 높은 위계를 표현하고 싶은 건물에서 사용되었다. 지역적으로 경상북도에서 4건이 확인되었 지만 이 외에도 강원 및 전북과 같은 다양한 지역에서 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일출목 초익공 공포가 주심포 형식과 무출목 초익공에서 각각 영향을 받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 다. 먼저 주심포 영향을 찾아볼 수 있는 사례로 전주 향교 대성전이 있는데, 보뺄목 하단과 익공 상단이 맞
닿지 않은 1출목의 공포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전형적인 모습의 일출목 초익공으로의 변 화를 예상할 수 있다.
셋째, 무출목 초익공에서 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출목 초익공은 봉화 청암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보뺄목이 주두 상부에서 직절되어 처마도리를 받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마도리장여 하부의 소로가 주두 결구 높이보다 하부에 위치하는 점, 하나의 건축 내 공포 형식의 위계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넷째, 일반적인 일출목 초익공 공포는 주심도리 장 여 하부의 부재 높이를 높게 구성해서 처마도리와 서 까래를 결구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주심도리 하부 부 재의 높이를 높게 하는 방법으로 장여 높이를 조절하 는 방법과 두 개의 장여를 사용하는 것, 장여와 첨차 를 함께 사용하는 방법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처마도리와 주심도리 하부 부재에 첨차 와 행공을 사용한 건축은 3동이 확인되고 전주향교 대 성전의 경우 공안이 초각된 첨차가 사용되었다. 이는 주심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건축연 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중건된 춘천향교 대성전과 수원화성 동장대의 경우 처마도리 장여 하부에 의장적인 요소로 첨차를 결구했다.
일출목 초익공 건축은 헛첨차의 주심포 공포 중 전 주향교 대성전과 같은 형식에서 발전하였다. 무출목 초익공에서 일출목 초익공으로의 변화는 처마도리의 위치 및 주심도리 하부 부재의 높이 차이로 판단되며 본 연구를 바탕으로 차후 일출목 초익공과 일출목 이 익공을 비교함으로써 출목익공의 형식과 결구 형태 등 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또한 봉화 청암정에서 무출목 초익공에서 일출목 초 익공으로 변화하는 시점과 춘천향교 대성전 및 화성 동장대 등에서 행공을 사용한 일출목 초익공의 출현 시점의 선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 역시 일출목 초익공 기법 발전의 단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부적 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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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2020. 05. 31) 게재확정(2020. 0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