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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Formation Process of North Korea's Pharmaceutical Production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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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 10.17480/psk.2018.62.4.237

북한 의약품 생산체계의 형성과정에 대한 고찰

엄주현 · 박혜경*#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Received May 14, 2018; Revised August 13, 2018; Accepted August 14, 2018)

A Study on the Formation Process of North Korea's Pharmaceutical Production System

Um Ju Hyun and Hyekyung Park*

Notrh Korean Studies Major(Dept. of Political Administration), University of Dong-Duk, Seoul, 04620, Korea

*School of Pharmacy, Sungkyunkwan University, Suwon 16419, Korea

Abstract — This study looked at the formation process of North Korea's pharmaceutical production system based on data disclosed by the North between 1945 and 2017 in order to find ways to cooperate in the inter-Korean cooperation era. Since 1945, North Korea has established the principle of free treatment and free supply of medicines, and has organized state – owned pharmaceutical factories and drug dispensaries to supply pharmaceuticals to national health care institutions first. As large-scale pharmaceutical plants and small and medium-sized pharmaceutical factories were established by region, and drug distribution centers were expanded, the basic demand for pharmaceuticals was finally met in 1980. However, as the inter- national environment deteriorated since 1990, the nation has been unable to produce and supply medicines, and patients have been procuring their own medicines through market systems. After Kim Jong Eun's inauguration in 2012, North Korea is trying to recover to the mid-1980s through reconstruction of the self-sustaining structure and acquisition of foreign cur- rency through development and production of Koryo Pharmaceutical. It is necessary to prepare for the mutual benefit of the North and South in the field of medicine supply through inter-Korean exchange cooperation based on the understanding of reality of North Korea.

Keywords North Korea, pharmaceutical industry, distribution of pharmaceuticals, drug, medical supplies, health care, Kim Jung-un, inter-Korean cooperation

서 론 (Introduction)

북한 당국은 북한에서는 ‘전반적 무상치료제’가 여전히 운영되 어 남녀노소 누구나 병에 걸리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진찰비, 입원비, 약값 등 일체 비용을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보장받는다 고 주장한다.1) 하지만 탈북자 등을 통해 본 북한의 현실은 1990 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후 치료약을 환자가 직접 구매하는 시스템으로 돈이 있어야 의약품 확보가 가능하고 민간의료시장 의 한 부분으로 장마당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정설로 받

아들여지고 있다.2)

같은 보건의료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한 나라에 대해 완전히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러 한 극과 극의 현실은 보건의료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북 한 상황 인식의 전반적 현상이다.

이러한 인식은 북한이라는 대상에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고, 파악할 수 있는 자료 수집의 한계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보다 근 본적인 원인은 남북의 적대적 분단체제로 인한 냉전적 시각의 내 재화로 북한을 객관적 이해가 아닌 변화시킬 대상으로 파악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상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객관성이 담보되 지 않을 경우 그 현실을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잘못된 현실

#

Corresponding Author Hyekyung Park

School of Pharmacy, Sungkyunkwan University, 2066, Seobu-ro, Jangan-gu, Suwon-si, Gyeonggi-do, 16419, Korea

Tel.: 031-290-7763

Fax.:

E-mail: [email protected] Short Report

종설

*

북한은 공식적으로 1994년부터 1997년까지를 ‘고난의 행군’ 기간

으로 명명하고 있다. 유례없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맞서 1930년대 말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시기를 빗대어 일컬었다. 박후건, 『북한 경

제의 재구성』 (서울: 도서출판 선인, 2015), 136쪽.

(2)

진단을 토대로 예측된 미래는 더욱 신뢰성을 갖기 어렵다.

북한의 제약 및 의약품 관련 국내 학위 및 학술지 논문을 검 토한 결과 박사논문은 단 2편에 불과하다. 학술지 논문의 경우 총 7편 중 6편이 탈북자의 경험을 통한 붕괴된 의약품 정책과 현실을 다루는 논문이며 나머지 논문은 북한에서 발행한 의학논 문 분석을 통해 천연물 의약품을 연구한 논문이다.

김진숙의 박사논문(2012)3)은 김정은 집권 이전의 의약품 관련 제도와 의약품 수급의 비정상성을 연구한 것으로 시기적으로 김 정은 시대의 의약품 정책을 포함하지 못하였다. 류국현의 박사 논문(2016)4)의 경우 304명의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고난의 행군’ 이후 장마당 또는 개인약국과 개인병원 이 활성화되었고 경제구조가 시장경제로 바뀌고 있다고 결론을 내고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를 강조하 며 무상의료를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 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렇게 북한의 의약품 생산 및 공급과 관 련한 연구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김정은 시대의 변화 상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북한이 고수하는 사회주의 체제와의 연 관성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남북 협력시대를 맞아 의약품 분야의 과 제 모색을 위한 기초작업으로 북한의 의약품 생산 및 공급체계 가 형성된 과정과 ‘고난의 행군’ 및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의 변화상황을 점검하였다.

연구방법 (Research Methods)

분석자료원

본 연구에서는 북한의 제약산업 발전과정과 유통현황을 파악 하기 위하여 북한에서 발행된 공식문서와 문헌을 고찰하였으며, 공식문서는 기본적으로 체제선전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비판적 검토를 위해 북한의 체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탈북자와 대 북사업자에 대한 직접 인터뷰 및 관련 저술 등을 통해 구체적인 현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 대상기간은 해방이후 부터 2017년까지를 설정하고, 이 기간에 출판되었거나 이 기간의 현황에 대해 설명한 자료를 취 합하였다.

구체적으로 검토된 북한의 자료는 다음과 같으며, 이들은 통 일부 북한자료센터에서 열람하였다.

우선적으로 북한 노동당이 진행한 1946년 1차부터 2016년 7 차까지의 당대회 문헌을 고찰하였다. 당대회에서는 총결기간의 평가, 정세에 따른 노선 및 정책 분석, 향후 추진계획 등의 청사 진을 제시하는데, 이는 당을 중심으로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설계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 문 건은 당대회에서 결정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인민 경제계획의 수립 및 평가 등 구체적인 사업내용 또한 포함하고

있다.

다음으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현황들을 파악하기 위하 여 로동신문을 1993년 12월부터 2017년 6월까지 분석하였다. 로 동신문의 경우 노동당 기관지로 체제선전에 활용되지만, 신문이 라는 특성상 매일 발행되며, 다양한 단위 및 지역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1차 자료이다.

또한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출간한 ‘김일성저작집’(총 47권, 1979~1996)을 검토하였다. 북한 연구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북한에서 발간된 1차 자료의 이해이다. 특 히 북한 정치체제의 특성상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 건설의 청사 진을 보여주는 당 지도자의 인식이 담긴 교시는 매우 중요한 의 미를 가지고 있어, 이에 대한 이해는 북한 연구에 있어서 필수적 이라고 할 수 있다.

주 연구대상이 북한자료이기 때문에 용어에 있어서 상이한 것 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황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파악한다는 취 지에서 대부분 원문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의약품 성분 등 필요한 경우에는 영문표기를 병기하였다.

분석내용의 시기구분

연구대상 기간이 1945년부터 2017년까지로 광범위하기 때문 에 이 기간 중 수행된 7차례의 당대회와 9차례의 인민경제발전 계획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하여 고찰하였다(Table I). 북한의 국가정체성이 여전히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국 가의 경우 당-국가체계로 일당인 노동당이 국가를 지도하며 운 영 되기 때문에 일정 시기마다 개최되는 당대회는 국정운영의 방 향이나 핵심이슈가 변경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기는 민주개혁 시기로 1945년 해방이후부터 1950 년 6월 한국전쟁 전까지로 1,2차 당대회 및 3차례의 인민경제발 전계획이 수립된 기간이다. 두 번째 시기는 전쟁 및 전후복구 시 기로 한국전쟁과 전후복구 기간인 1950년 7월부터 1955년까지 로 설정하였으며, 이 시기에는 3개년 인민경제발전계획이 1차례 (4차) 수립되었다, 세 번째는 사회주의 체제 구축 시기로 3차 당 대회와 5개년 인민경제발전계획(5차)을 추진한 1956년부터 1960 년까지, 네 번째는 사회주의 공고화 시기로 4, 5차 당대회와 첫 번째 7개년 인민경제발전계획(6차) 수립이 이루어진 1961년부터 1970년까지로 설정하였다. 다섯 번째 시기는 6차 당대회 및 6개 년 인민경제발전계획(7차)과 함께 두,세번째 7개년 인민경제발전 계획(8, 9차)이 수립된 1971년부터 1988년까지로 사회주의 성숙 기이다. 여섯 번째 시기는 고난의 행군시기로 베를린 장벽이 붕 괴된 1989년부터 2011년 김정일 사망까지, 일곱번째 시기는 2012 년 김정은 집권부터 7차 당대회를 포함하여 2017년까지로 구분 하였다.

첫 번째 민주개혁 시대의 경우, 1946년과 1948년의 1, 2차 당 대회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1차 당대회의 경우 노동당 창립대

(3)

회로 개최되어 구체적 평가사업이 추진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4 번째 사회주의체제 공고화 시기에 4차와 함께 5차 당대회가 포 함된 것은 1차 7개년 인민경제발전계획이 1970년까지 연장되고 이를 총화하는 차원에서 5차 당대회가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 두 번째의 전쟁과 전후복구 및 여섯 번째 고난의 행군 시대 는 당대회가 열리지는 않았지만 한국전쟁과 체제붕괴 가능성까 지 대두되었던 특수한 상황으로 별도로 구분하였다. 특히 고난 의 행군 시기는 다른 시기에 비해 상당히 긴 기간으로 설정되었 는데, 이는 해당시기에 공식화된 1차 자료의 내용이 충분하지 않 기 때문이다. 북한연구에서 주로 사용하는 1차 자료 경우, 발간 의 우선적인 목적이 체계 선전용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어려 운 시기에는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결과 및 고찰 (Results and Discussion)

당대회와 경제발전계획에 기초하여 구분된 7개의 시기별로 간 단한 정치경제, 보건의료 특성과 함께 의약품 생산/공급체계 형 성과정 및 현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Table II, Table III).

(1) 민주개혁 시기(1945년~1950년 6월)

1946년에 1차 당대회를 개최하여**, 기본과업인 20개조 정강 을 발표하고, 1947년과 1948년 각 1년씩 2차례의 인민경제계획 을 추진하였다. 1948년는 제2차 당대회를 개최하고, 1949~1950 년까지 추진할 3번째 인민경제발전2개년계획을 결정하였다.

발표된 정강 중 보건의료 관련된 내용으로 의료노동자에 대한 생명보험 실시와 국가병원 확대를 통한 무상의료실현이 포함되 었다. 이에 따라 1947년부터는 사회보험법에 따라 노동자와 사 무원 및 그 부양가족에 대해 무료치료제와 의약품 무료공급제를 실시하였고. 이를 위한 국가병원 확대는 보건의료인의 증대 및 의약품 생산과도 자연스럽게 연동되었다.

그 결과 1949년 개인병원과 국영병원의 비율은 17:100으로 역 전되었고, 인민약국은 28개나 조직되었으며, 국영제약공업이 창 설되었다. 인민약국 망을 더욱 확대하기 위한 정책 추진과 함께 각 도에 의약품 배급소를 조직해 생산된 의약품이 국가보건기관 들에 우선적으로 공급되도록 하였다.5)

하지만 당시 북한에는 합성화학약품 생산 토대가 전혀 없었다.

일제시대에 약초를 활용한 소규모 공장들이 존재했으나, 일명 ‘빨 간약’이라고 일컬었던 머큐로크롬부터 아스피린에 이르기까지 판 매되는 모든 의약품은 100% 일본에서 생산한 것들이었다.6)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초기부터 자립적 민족경제 노선을 견지하면서 기본적으로 자국 내 원료를 활용할 방안을 고심하였 고, 그래서 당시 인민들을 독려한 구호도 ‘우리의 약은 우리 손 으로!’였다.

자립적 제약산업 구축을 위해 일제시대 공업단지였던 함경남

**

북한은 2016년 7차 당대회 전인 1월과 4월, 6차례에 걸쳐 과거 당 대회 관련 기사를 게재하였는데 1차 당대회를 1945년 10월 10일 개 최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립대회’ 즉 ‘북조선 5도당 책 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1차 당대회로 소개하였다. 하지만 이전 시기 에는 1946년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이 합당한 창립대회를 1차 당대회로 간주하였다. 『로동신문』 , 2016년 1월 23일.

Table I − The political and economic characteristics by period

Order Period Major event Economic policy

1 1945~1950.6 democratic reform 1946 1

th

party congress 1948 2

nd

party congress

(1) 1947. 1-year plan for economic development (2) 1948. 1-year plan for economic development (3) 1949. 2-year plan for economic development 2 1950.7~1955 war and restoration the Korean War (4) 1954. 3-year plan for restoration

3 1956~1960 establishment of a

socialist system 1956. 3

rd

party congress (5) 1957. 5-year plan for economic development (1960 Early performance)

4 1961~1970 socialist system consolidation

1961. 4

th

party congress 1970. 5

th

party congress

(6) 1961. 1

st

7-year plan for economic development (extention to 1970)

5 1971~1988 socialist maturity 1980. 6

th

party congress

(7) 1971. 6-year plan for economic development (extention to 1977)

(8) 1978. 2

nd

7-year plan for economic development (extention to 1986)

(9)1987. 3

rd

7-year plan for economic development

6 1988~2011 a march of hardship the collapse of socialism 1995 requste the aid

The failure of the 3

rd

7-year's economic development program.

economic deterioration

The support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including South Korea

The voluntary marketization of the people 7 2012~2016 Kim Jong Un's reign party-state system restoration

2016. 7

th

party congress

Nuclear Power and Economic Development Policy

Absorption in Market Function System

(4)

도 흥남지역에 1946년 흥남(본궁)제약공장 건설을 추진하여 1947 년 완공, 조업을 시작하였다. 이밖에도 평양곡산공장 제약직장,

평남제약공장, 평남건국제약, 화학공업소가 재건 및 확장되었다 7) 하는데 기존의 개인기업을 국가가 인수해 의약품 생산을 추

Table II − Key health policies by period

Order Period Key healthare policy and outcome

1

Democratic reform 1

th

& 2

nd

party congress

1945.~1950.6

- The government provided free treatment for workers and their families through social insurance.

- Expansion of state-run health care facilities such as hospitals and pharmacies - The ratio of private and state-owned hospitals in 1946 to 17:100 in 1949.

2 War and restoration 1950.7~1955.

- In the first half of 1950, the complete elimination of an area without medical facilities. But Destroying more than 80% after the war.

- The free health service was implemented in 1953.

- Recovering pre-war level of health care facilities

3

Establishment of a socialist system 3

rd

party congress

1956.~1960.

- Absorption of Oriental medical doctors to national health care facilities.

- Completely changed to national and cooperative ownership in 1958.

- The establishment of national medical facilities up to the administrative endpoint unit in 1960

4

Socialist system consolidation 4

th

& 5

th

party congress

1961.~1970.

- The 1961 decision to implement the physician-in charge system - Promoting preventive medicine policy in 1966.

5

Socialist maturity 6

th

party congress

1971~1988

- Promoting a policy to resolve the gap between urban and rural areas.

- Modernizing rural hospitals.

- Construction of abortion center for rural women

- Promote the establishment of Children's Hospital in the administrative endpoint unit 6 The march of hardship

1989~2011

- Ask for support to the international community

- The collapse of the nation's free medical treatment /Free Medical System

7

Kim Jong Un's reign 7

th

party congress

2012~2017

- Improvement of health care service

- Strengthening the Preventive Project and physician-in charge system

- Quality Improvement of Medical Care : Combination of Advanced medicine and Kory medicine - Efforts to normalize Free Medical System for the preferential group or the vulnerable.

Table III − Pharmaceutical Industry and Distribution in North Korea by period

Order period Characteristics

1

Democratic reform 1

th

& 2

nd

party congress

1945.~1950.6

- The construction of a state-owned pharmaceutical factory and the transfer to a state-owned factory of existing small and medium-sized factories.

- In the first half of 1950, the foundation of the state-owned pharmaceutical industry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People's Pharmacy Network.

- Drug distribution centers are organized in each province and priority supply to national health facilities

2 War and restoration 1950.7~1955.

- Expansion of drug production using herbal medicine.

- In 1952, drug production recovered to above the pre-war level.

- Lack of medicines depend on aid and income of socialist countries.

3

Establishment of a socialist system

3

rd

party congress 1956.~1960.

- Meeting basic demand through expanded production of synthetic drugs

- Planning and systematization of pharmaceutical production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Pharmaceutical Industrial Control Bureau in 1956

- In 1956, the number of people's pharmacies expanded to 500.

4

Socialist system consolidation 4

th

& 5

th

party congress

1961.~1970.

- In 1962 Established General Administration of Pharmaceuticals and Medical Devices

- In 1965, it was reorganized as the General Administration of Industry for Pharmaceuticals and Medical Devices.

- Encourage self - sufficiency of medicines using herbs.

- Export of some synthetic medicines in 1967.

5

Socialist maturity 6

th

party congress

1971~1988

- Modernization of production facilities at state-owned pharmaceutical factories.

- Drug production in pharmacies and hospitals.

- Expansion of export of the Koryo medicine to the outside world

6 The march of hardship 1989~2011

- Individuals and markets are responsible for part of the drug distribution.

- Personal management pharmacy appearance

- Established an equity joint venture with overseas pharmaceutical companies

7

Kim Jong Un's reign 7

th

party congress

2012~2016

- Modernization of pharmaceutical factory and medical equipment factory and sufficient production - State pharmaceutical distributors manage personal pharmacy

- Development and production of Koryo medicine

(5)

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흥남을 주목했던 이유는 제약산업은 화학공업과 밀접 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흥남에는 일제가 남긴 주요 화학 제품 생산시설이 집중되어 있었고, 모든 것을 새롭게 건설하기 에는 자금, 노동력, 기술과 자재 등 모든 것이 충분치 않은 상황 에서 이를 활용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조치로 보인다.

흥남제약공장의 건설과 소규모 제약공장의 재건으로 1947년 에는 144종의 의약품과 10종의 위생재료 및 의료용기구 등 당시 시급히 요구되는 적지 않은 의약관련 물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 고 한다.8) 하지만 이는 과장된 숫자로 보이는데 10여년 후인 1956 년 3차 당대회 평가에서 필수의약품 300종 중 100여 종밖에 생 산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1948년에는 아스피린직장을 새롭게 건설하였으며 300리터의 약초제제를 생산할 수 있는 제약직장도 신설하였다. 이로서 1950 년 상반기에는 흥남제약공장을 비롯하여 평양, 신의주, 청진제약 공장 등 20개의 제약공장이 건설되어 국영제약공업의 토대가 마 련되었다.9)

(2) 전쟁 및 전후복구 시기(1950년 7월~1955년)

해방 직후부터 추진한 사회주의 보건의료정책으로 1950년 상 반기에 의사가 없는 ‘무의면’이 완전히 해소되었으며, 전쟁기간 이었던 1953년부터 전 인민을 대상으로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실시하였다. 이는 당시 전쟁으로 인해 인민들이 돈을 지불하고 치료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함과 함께, 체제보위와 국가에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된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은 1954년부터 ‘전쟁 전 수준 회복’을 목표로 4번째 ‘전후 복구 3개년 인민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였다. 동시에 완전히 붕 괴된 토대 위에 새롭게 사회주의 공업화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중공업 우선노선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자금과 노동력이 중 공업 구축에 우선 투입되었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복구는 빠르 지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약산업의 경우 파괴되지 않은 공장에서 의약품을 계 속 생산하였고, 약초를 이용한 의약품 생산도 증가하면서 1952 년에는 의약품 생산량이 전쟁 전 수준을 넘어섰고, 1953년에는 1946년에 비해 15배로 늘었다고 한다.10)

1957년 3월 14일자 『로동신문』에 의하면 흥남제약공장에 서 2개월 동안 공장 건물들과 구내를 기본적으로 정리하고 잿더 미 속에서 파철과 부속품을 모아 자체로 정제기, 분쇄기, 합성탱 크 등 제약설비들을 만들었다고 게재하였는데, 이를 통해 북한 에서 가장 큰 제약공장인 흥남제약공장조차 1957년까지도 복구 가 완료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따라서 부족한 대부분 의 의약품은 외국에서 수입하였다고 한다.11)

(3) 사회주의 체제 구축 시기(1956년~1960년)

북한은 1956년에 제3차 당대회를 개최하고, 처음으로 장기계 획인 인민경제5개년계획(1956년~1961년, 5번째)을 수립하였으 며, 이 기간 동안 사회주의제도를 확고히 세우기 위해 개인소유 를 국가 및 협동적 소유로의 변화를 유도하였다.

보건의료인에 있어서도 일부 개인의사로 남아있던 동의사(한 의사), 치과의사 등을 개인의사들의 협동단체인 동의종합의원 등 에 소속시킴과 동시에 인민병원에 진료과목을 추가하여 국가기 관에 적극 인입시켰으며, 약종상들도 대부분 국가보건기관으로 흡수하였다.12)

이러한 정책으로 1958년 북한 전역이 사회주의 소유형태로 전 환되고13) 모든 보건의료인들도 국가보건기관에 소속되는 등 사 회주의보건제도가 구축되면서, 1960년에는 농촌의 행정말단 단 위인 리(理)단위까지 국가의료시설이 들어섰다.14)

제3차 당대회에서는 또한 화학공업을 발전시켜 제약생산을 높 일 것을 강조하였다.15)이에 따라 복구건설을 통해 신의주제약 공장에서 캄파슬폰산소다(sodium kampasulfonte) 생산연구에 성 공하였고, 흥남제약공장에서는 비구말, 술파티아졸(sulfathiazole), 구아니진(guanidine) 등이 생산되면서, 보건성 의약품공업관리국 산하의 제약공장들의 생산실적은 전쟁 전에 비해 7배로 높아졌 고, 가정약 생산이 대대적으로 늘어나 그 수요를 기본적으로 충 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인민약국의 수도 1949년 에 492개였던 것이 1956년에는 500개로 늘어나 전쟁 전 수준을 회복하였다고 한다.16)

국가의료망의 확대가 진행되면서 의약품 등의 수요가 증대한 것은 당연하였다. 1956년 6월 내각결정 제63호로 화학공업성에 제약공업관리국을 새롭게 조직하였다.17)제약공업을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운영 할 수 있는 내각기관이 설립된 것이다. 1957 년 9월에는 내각결정 제91호를 채택해 인민경제개발계획이 완료 되는 1961년에는 1956년에 비해 의약품 생산 4배 이상 증대, 페 니실린공장 완공, 수입 제약원료에 대한 자체 생산 등의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였다.18)

특히 이 기간 제약공업기지 조성의 주요 대상은 순천제약공장 의 아스피린직장과 페니실린직장이었는데 아스피린직장은 1958 년 9월에 완공되었다. 김일성은 1958년 순천제약공장을 직접 방 문해 아스피린 생산으로 감기약 문제가 풀렸다고 만족해했다고 한다.

북한은 이로서 1958년 기준으로 라남제약공장의 이스트직장 과 1톤 능력의 코데인(codeine)직장, 흥남제약공장의 술파구아니 딘(sulfaguanidine) 및 에텔엔파에스직장, 60톤 능력의 술파민 (sulfamin)직장, 6천만 개의 각종 주사약을 생산할 수 있는 순천 제약공장의 주사약직장 등이 신설, 복구, 확장되어 100톤의 각종 의약품 생산능력이 새로 조성되었다고 밝혔다.19)

순천페니실린(penicillin)공장은 1961년 완공되어 생산을 시작 하였다. 또한 흥남제약공장에서는 이소니찌드(isoniazid)를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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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요가 많은 6종의 의약품과 20여 종의 합성약 증산계획을 세우고 합성약품공장 확장공사를 추진하였다. 더불어 동의약 연 구와 약초를 활용한 생약제제에 관심을 두었는데, 평양제약공장 에서는 기침약인 마가목팅크동초를 이용한 가공의약품 생산직장 을 건설해 생약제제 생산기지를 조성하였다.20)

실제로 북한이 발표한 통계자료집에 의하면 의약품 공업과 관 련해 1948년을 100으로 하였을 때 1949년에는 11배, 1953년에 는 15배, 1956년에는 29배, 1959년에는 229배, 1960년에는 295 배가 증가하였다.21)

(4) 사회주의 공고화 시기(1961년~1970년)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는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수행할 6 번째 인민경제7개년계획을 채택하였다. 5년보다 긴 7개년계획을 수립할 정도로 체계가 더욱 안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60년대 중소분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의 입장을 대 변했던 북한에 대한 소련의 원조 전면 중단,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와 1969년 EC-121 격추 사건으로 인한 미국과의 심각한 군 사문제, 남한의 군사정권 수립과 베트남전쟁 확전 등으로 북한 은 국방예산을 크게 늘릴 수밖에 없었고22), 그 여파는 경제에 고 스란히 이관되어 야심차게 준비하던 인민경제7개년계획이 3년이 나 연장되어 1970년에야 마감되었다.23)

한편, 1966년 김일성은 ‘사회주의의학은 예방의학이다’라는 발 표를 통해 치료보다는 예방의학을 강조하며 병을 사전에 차단하 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즉 보건의료 비용을 낮추기 위해 사후적 처치가 아닌 사전적 예방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선언 이라고 할 수 있다.

6번째 인민경제7개년계획의 가장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는 화 학공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화학공업의 발전은 인 민경제의 기술 진보를 촉진하고, 자연자원을 다각적이고 효과적 으로 이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화학공업의 기초인 산, 알칼리 공업을 발전시켜 의약품 등을 국내 생산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제약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24)

이러한 기조하에 1962년 보건성은 산하에 제약의료기구총국 을 설치하였고, 1965년 제약의료기구공업총국으로 개편하면서 의약품 및 의료기구 생산에 관심을 돌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 면서 6번째 인민경제7개년계획 전반기에 항생제와 합성의약품 생산의 토대가 튼튼히 다져져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였다.25)

한편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는 1967년 ‘제약공업과 의 료기구공업을 발전시킬데 대하여’를 발표하였는데 의약품과 의 료기구의 자체 생산을 위해 적극적인 대책을 세울 것과 동시에 필요한 제약설비들과 의료기구 생산설비들을 외국에서 수입해 제약 및 의료기구 공업기지를 튼튼히 꾸려야 한다고 제시하였다.26) 김일성은 1967년 흥남제약공장을 현지지도하며 대(大)합성제 약기지로 꾸릴 것을 밝혔고, 일부 목표가 현실화된 것으로 보인

다. 흥남제약공장에서는 세계적으로 몇 개 나라에서만 생산되는 감마피콜린(γ-Picoline)을 자체로 생산했고, 얼마 전까지 수입하 던 이소니찌드를 수출하였다고 한다.27)

그러나 이시기의 국제적 여건의 어려움으로 인한 영향은 제약 산업에도 그대로 전가되어, 순천제약공장의 항생소직장의 경우 원료공급 문제를 지도자가 직접 나서야 했을 정도로 원료수급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28)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인민약국과 병원에서도 약초와 의약품을 생산하도록 하였으며, 소규모 공장 및 기업소 들에서도 제약 및 의료기구 직장 또는 작업반을 조직해 의약품 등을 생산하게 하였다.

(5) 사회주의 성숙기(1971년~1988년)

1970년 제5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보건의료 관련 과업은 농촌 보건위생사업을 발전시켜 도농 간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었다. 이 를 위해 농촌지역의 거점 병원인 군인민병원들을 더욱 현대화했 으며, 농촌여성을 위한 산원시설이 확대되었다. 또한 리진료소의 병원화와 모든 리에 아동병원을 설립하는 사업도 추진되었는데 이는 1974년에 완수하였다고 밝히고 있다.29)

1970년대에는 1960년대 추진하지 못했던 선진기술에 의한 제 약산업의 현대화를 추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는데, 세계적 인 데탕트(긴장완화) 기조에 따른 것으로. 이 시기 선진국들과의 일시적 교류로 일부 부족했던 제약산업의 현대화를 추진한 것으 로 보인다.

제5차 당대회 이후 1971년부터 1976년까지 7번째 인민경제6 개년계획을 추진하면서 차관 총액의 50% 이상을 서방으로부터 도입하는 등 나름대로 개방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두 차례 의 석유파동과 수입원자재 가격상승 및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비 철금속의 국제가격 하락으로 1976년 채무불이행 국가가 되면서 추가적인 기술과 자본도입이 어려워져 1년을 연장해 1977년에 완료되었다.30)

7번째 인민경제6개년계획에서 제약산업 분야의 중점목표는 자 체의 자재 및 원료를 이용한 의약품 생산 및 대량생산을 통한 완 전한 수요충족으로, 이를 위해 3가지 방향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첫째로는, 국가의 중앙제약공장을 현대화하고, 더불어 지방의 중소규모의 제약공장과 의료기구공장들을 신설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전문제약공장뿐 아니라 의약품공급기관과 치료예방기 관에서도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 번째로 약초생 산을 전군중적인 운동으로 전개하였는데, 화학약제가 인체에 해 롭다는 논리하에 약초를 재취하는 것과 더불어 인위적인 재배를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북한은 수입에 의존하던 강심제, 스테로 이드호르몬제제, 호흡흥분제, 구충제 등을 자국내 약초로 생산하 게 되었다.31)

특히 이 시기 흥미로운 점은 동의약으로 국내의 수요를 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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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킨 것뿐 아니라, 수출을 하고 있다는 언급이다. 약초의 채취와 재배가 전군중적으로 강조되면서, 1970년대에는 동의약이 건강 식품으로 수출될 정도로 생산량이 증가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 제6차 당대회를 통해 예방의약품부터 치료의약품, 동 약제품부터 화학제약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산하고 있으며, 합 성제약공장들에서는 해열제, 진통제는 물론 합성항생제, 합성비 타민, 합성호르몬들을 자체로 만들어 내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합성항비루스(anti-virus)약제, 합성효소제, 합성혈액대용액에 대 한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서고 있으며, 현대적인 대규모 항생제 약품공장들이 건설되어 페니실린, 스트렙토미찐(streptomycin), 테라미찐(teramycin)을 비롯한 항생제에 대한 수요를 기본적으 로 충족시키고, 여러 가지 광폭항생제들과 항암제까지 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다고 한다.또한 지방마다 건설된 중소제약 의 료기구 생산기지들로 인해 지방보건기관들의 사업이 물질적으로 보장되고, 의약품관리소와 지방병원들이 자체적으로 건설한 의 약품 생산시설에서 아트리포스(atrophos)와 같은 심장병치료약, 코카르복실라제(cocarboxylase)와 같은 조효소, 각종 비타민약품, 2계열결핵치료제와 항생제들이 생산되어 치료예방사업에 효과적 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32)

하지만 북한에게 1980년대는 고난의 행군 시작을 알리는 전조 의 시기로 1985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등장 이후 사회주의 종주 국에서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근본적 변화에 조응하기 위하여 1984년 합영법을 채택해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보건의료 발전에 관심을 기울일 여 력이 없었다.

(6) 고난의 행군(1989년~2011년)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가속화된 동구권 사회주의 국 가들의 체제전환으로 원유와 코크스 등과 같이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기본원료의 수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국 가계획에 의해 모든 산업이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있는 북한의 경 제특성상 산업 전반에서 문제가 나타났으며, 이에 따라 1987년 부터 1993년까지 추진한 8번째 경제계획인 제3차 인민경제7개 년계획은 공식적으로 실패가 선언되었다.

1994년 러시아의 원유 공급 중단33), 김일성의 사망, 연이은 자 연재해 등은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생활 전반을 국가 의 중앙공급에 의지하던 북한 주민들에게는 사망선고와 같았다.

이로서 인민이 굶어죽는 일명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고, 1995 년 유엔에 긴급구호를 요청하였다. 국제기구뿐 아니라 전 세계 의 민간단체들이 대북지원을 시작하였으며, 보건의료 분야의 지 원은 WHO(세계보건기구), UNICEF(유엔아동기금), UNFPA(유 엔인구기금)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의약품 공급에 있어서도 이러한 상황은 그대로 반영되었다. 화 학공업이 정상 가동되지 못하면서 제약원료가 생산되지 못해 제

약공장의 운영 자체가 어려워졌으며, 또한 일부 생산된 의약품 의 경우에도 지방의 의약품관리소나 병원 등으로 원활하게 공급 되지 못하면서 병원 의사들은 의약품을 처방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자를 스스 로 조달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고 기존에 운영되던 농민시장 과 자발적으로 생성된 민간시장인 장마당, 야시장 등이 활용되 었다.

북한은 1997년까지의 고난의 행군을 마감하면서, 1998년 헌법 을 개정해 국방위원장 김정일을 중심으로 전략적인 국방공업에 국가가 집중 투자하고, 경제는 총리를 중심으로 시장을 적극 활 용하는 시장의 병행 정책을 공식화하였다.34)

이러한 공식화는 2002년 7.1경제관리조치로 가시화되었는데, 2003년부터 상설 종합시장을 도입하고 개인들의 상업 활동 및 기관, 기업소, 무역회사의 국영상점 임대 운영을 허용하는 등 시 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동안 무질서하게 나타난 시장을 국 가 관리 하에 두려는 시도를 추진하였다.30)

2005년 이후에는 북한내에서 활동하던 국제기구 및 단체들에 게 프로그램 중단 요청, 식량배급 재개와 시장에서의 식량판매 금지, 남성들과 50세이하 여성의 시장 판매행위 금지, 중국인 소 유 약국 폐쇄 등의 조치들을 잇달아 시행했다. 이는 그간의 대외 의존 문화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한 것으로 그간 받았던 인도적 지원을 지양하고 국제기구 등과 함께 향후 지속가능한 개발협력 을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자국의 산업 기반을 다시 가동하기 위해 시장으로 빼앗겼던 노동력을 확보하 는 조치로 일정정도 북한 경제의 정상화 조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를 전후해 북한은 외부 자원을 적극 활용해 제약 공장 건설과 제약기술 향상 등의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 하였다. 2004년부터 WHO와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기술지원 사업을 진행하며, 북한 병원들이 사용하고 있 는 70~80%의 국제기구의 지원 의약품을 북한 제약공장에서 생 산한 의약품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수립, 추진하였다.35)

남한 민간단체들은 2004년 정성제약공장을 필두로 대동강제 약공장, 김일성종합대학항생제공장,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 제약 생산시설 지원 등을 추진해 새롭게 제약공장을 건설하거나 제약 시설을 현대화하는데 기여하였다. 더불어 1984년에 채택된 합영 법(외국인이 대주주가 되어 북한에 공장을 설립할 수 있는 법)에 근거하여 합영제약회사 설립을 통해 기술과 원료의약품을 안정 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함경북도 나진제약공장의 경우, 대북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 는 외국인이 합영회사로 설립해 운영하면서 의약품의 종류와 생 산량이 확대되었다. 또한 2002년 스위스 기업과 북한 보건성 산 하의 평양제약공장이 공동 투자해 설립한 평스제약합영회사는 2004년 9월부터 아스피린, 이부프로펜, 독시사이클린, 마크로라 이드계 항생제 등 신약과 10종류의 고려약 등 50여종을 생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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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다. 특히 이들 합영회사는 산하 직영 약국들을 개설해 공세 적으로 영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의약품유통회사 운영을 통해 단 순히 자신들의 공장에서 생산된 의약품뿐만 아니라 중국 등 외 국에서 수입한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36)

(7) 김정은 집권 시기(2012년~2017년)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은 집권 후 공식적으로 모 습을 드러낸 첫 연설에서 “만난 시련을 겪고 지금까지 당을 믿 고 버틴 인민들에게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였다.37) 그리고 그 약속은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일정정 도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신감을 통해 김정은 정권은 집권 5년만인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보건사업을 통한 보건지표 제고, 위생방역기관의 현대화와 전염병 예방, 의사담당구역제 강화, 의 료봉사 질개 선을 위한 선진의학 적극수용 및 신의학과 고려의 학의 접목 등의 보건의료 발전방향을 제시하였다. 이와 함께 제 약공장과 의료기구공장의 현대화 및 충분한 생산을 강조하였다.

당대회 직전인 2015년에는 러시아와 의약품을 공동으로 생산 하기로 하고, 첫 사업으로 평양에 ‘카튜샤’란 공동 브랜드로 5개 의 약국 체인망을 개설해 러시아 의약품과 의료기구 및 설비 등 을 판매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전해졌다.38)

대북지원을 지속하는 해외동포에 의하면 2017년 최근까지도 병원에 국가가 공급하는 의약품이 거의 없으며, 의약품들은 제 약회사들의 유통망과 개인들이 운영하는 약국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즉 현재까지 시장이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판 단된다.

유엔의 세관통계 데이터베이스 ‘유엔 컴트레이드(UN Comtrade)’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2011 년부터 2015년까지 37개국 이상의 국가로부터 약 1억4131만 달 러(약 1,588억 원)의 의료용품을 수입했고, 전체 수입액의 약 68.2%가 중국에서 수입되었으며, 이중 91.5%가 의약품이었다.39) 하지만 2017년 6차 핵실험으로 인해 북한은 의약품에 대한 수 입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16년부터 ‘자강력 제일주의’를 외치며 인 민들에게 대북제재의 장기화를 염두에 둔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것 과 동시에 다양한 의약품 개발 및 생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원료 확보가 가능한 고려약 개발과 생산을 독려하 고 있다. 새로운 고려약 생산공장 건설 및 현대화를 추진하여, 평 양의 경우 평양시 고려약생산관리국 산하에 평천고려약공장, 모 란봉고려약공장, 중구고려약공장, 대동강고려약공장, 형제산고려 약공장 등 각 구역에 고려약생산공장을 갖추고 있다.40) 이러한 노력의 종국적인 목표는 신약을 대체할 수 있는 의약품의 생산 과 건강제품 개발을 통한 해외수출 증대로 대북제제로 막힌 광 물자원의 수출을 대신하여 외화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 중에 하

나로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는 기존 제약공장의 GMP 인증에 대한 관심이다. 주 요 제약공장의 생산 공정 전반을 현대화하면서 자동화와 무인 시 스템을 구축해 표준화된 국가규격과 GMP 인증을 통해 상품의 질을 높이려는 모습이다.41)이는 북한산 의약품의 질을 높여 수 입 의약품을 대체하려는 노력으로 판단된다.

세 번째로는 의약품을 대량으로 생산하지 않던 기관에서 적극 적으로 의약품을 생산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회창군의약품 관리소의 경우 자체적으로 제약공장을 건설해 군내의 병원시설 에 필요한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국가에서 의약품이 내려 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생산을 한다는 것이다.42)이러 한 각 단위는 노력들은 모범으로 칭송되며 더욱 확대되는 추세이다.

결 론 (Conclusion)

북한은 1945년부터 1980년 6차 당대회까지 40여 년간 기초적 이고 대량생산이 필요한 의약품은 국가 중앙제약공장이 담당해 공급을 하였고, 각 지역에서 필요한 의약품은 지방의 중소규모 의 제약공장과 보건의료기관 자체의 의약품 생산시설에서 생산 해 보급하였으며, 그 외에 부족한 의약품은 약초 등을 활용해 동 의약을 적극 생산하는 체제로 구축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국가가 그 역 할을 할 수 없게되자, 개인 약국과 제약합영회사 등의 유통망을 통해 부족한 의약품을 유상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중앙 및 지방 의 제약공장이나 의약품관리소 등에서는 최소한의 국가 공급 의 약품을 생산하거나 이윤을 낼 수 있는 의약품 또는 건강식품을 생산해 경쟁에 나서고 있다.

2012년 김정은 집권이후 위태로운 상황을 벗어나면서 고려약 개발과 생산을 통한 자립구조 재건 및 외화 획득을 통해 1980년 대 중반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내부적으 로는 국가의 무상공급 의약품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며, 대외적 으로는 핵보유 헌법 명시와 경제 및 핵무력 병진노선을 천명하 면서 수행된 6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국제적인 대 북제제의 강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어 성과여부는 여전히 불투명 하다. 또한 제재국면이 해소된다고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낮은 수 준의 보건의료서비스 질을 개선해야 하는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

이러한 북한의 현실을 이해하며 보건의료 분야에서 통일 이전 에 남북 교류협력으로 제약산업에서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방 안 모색과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로 북한은 자립경제에 기반한 제약산업을 구축해 왔으나 기 본적인 필수의약품 정도를 생산하는 것에 그쳐, 외국과의 교류와 협조를 통해 선진기술과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합영회사를 적극적 으로 유치하고 있으며, 이를 남한의 제약계가 활용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북한이 시장경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전에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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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간의 경제적 차이가 확대되면서 북한 주민들 중에 고품 질의 의약품을 선호하는 층이 분명히 존재하며, 과거 10년간의 남북 교류협력을 통해 남한 의약품이 북한에 제공되면서 남한 의 약품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남한 의약품을 유 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

세 번째로는 남한에서도 원료의약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북한에 원료의약품 생산기지건설이나 퇴장방지의약품 또는 저가의 필수의약품을 북한에서 생산할 수 있는 방안을 통 해 남북이 서로 이익을 줄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도 필 요하다.

마지막으로 통일 이전 남북 제약산업의 발전방안에 대한 청사 진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위해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조 직과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및 북미 관계의 정상화 를 위한 프로세스가 가동되면서 남북 당국 간의 관계가 급속하 게 변화되고 있다.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협력의 시 대가 다시 재개되었으며, 이러한 남북 교류협력 시대에 의약품 분야의 효과적인 교류협력으로 남북 주민 모두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방안이 모색되길 기대한다.

본 연구는 북한의 공식자료를 기초로 고찰함에 따라, 내부적 사정에 따라 자료가 공개되지 않은 시기가 존재하며, 과, 기본적 으로 체제에 대한 선전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한다는 것은 본 연 구의 제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추후 다양한 채널의 자료접근 을 통해 해결되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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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Kim, I. S., : Kim Il-Sung Collection Vol 25, Wokers’ Party of Korea Press, Pyungyang, p.234 (1983)

24) Dolbegae Editorial Department : Major Documents of North Korean Workers' Congress, Dolbegae, p.133 (1988).

25) Laboratory for Kim Il-Sung Comrade’s health though : The Health Direction of the Great Reader Kim Il-sung, the Department of Health, Scientific Encyclopedia Publisher, Pyungyang, p.235 (1990).

(10)

26) Kim, I. S., : Kim Il-Sung Collection Vol 21, Workers’ Party of Korea Press, Pyungyang, p.278 (1983).

27) Kim, I. S., : Kim Il-Sung Collection Vol 23, Wokers’ Party of Korea Press, Pyungyang, p.362 (1983).

28) Korea Institute for National Unification (KINU) : North Korean Confidential Document in German Area, Sunin, Seoul, p.239 (2006).

29) Seung, C. H., : People's Health Work Experience, Social Science Publisher, Pyungyang, p.22 (1986).

30) Lee, C. H., : The change in North Korea’s economic policy through the 7th Joseon Rodongdang Congress, Review of North Korean Studies, 19(3), (2016)

31) Hong, S. W., : Joseon Health History, Scientific Encyclopedia Publisher, Pyungyang, p.687 (1981).

32) Hong, S. W., : Joseon Health History, Scientific Encyclopedia Publisher, Pyungyang, p.695 (1981).

33) Park, H. G., : Reorganization of the North Korean economy, Suninbooks, Seoul, p.130 (2015)

34) Park, H. G., : Reorganization of the North Korean economy, Suninbooks, Seoul, p.178 (2015)

35) Kim, J. S., : A Study on the Pharmaceutical sector and Healthcare in North Korea,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North Korean Studies, Seoul, p.114 (2012).

36) Homepage of Pyongsu Pharmam J-V Co., Ltd. ht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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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The speech of Comrade Kim Jong Un, the supreme leader of our party and people, at The Great Leader Kim Il Sung's Birthday, 100th Anniversary Celebration, The Rodong Newspaper, April 16, 2012.

38) Pyongyang. Opening Russian Pharmacy. Fast Food Chain., SPUTNIK Korea, December 18, 2015.

39) North Korean medical products imports of 158 billion won in the last five years. Dependence on China, Kora Pharmaceutical Association News, October 13, 2016.

40) Strengthening the Efforts to Produce Effective Public Medicines, The Rodong Newspaper, May 10, 2014.

41) More effective Koreadrug with the power of science and technology, The Rodong Newspaper, June 20, 2017.

42) Dedicated to the party’s health policy, The Rodong Newspaper, July 29, 2016.

수치

Table I − The political and economic characteristics by period
Table III − Pharmaceutical Industry and Distribution in North Korea by period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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