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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mparative Study on 「Yanghwasorok」 and 『Zhangwuzhi』 - Focused on the Taste of Plants in Scholar's Garden, Korea and Chi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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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13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3S1A5B8A01055322).

Corresponding author: Hee-Soung Park, Institute of Seoul Studies, University of Seoul, Seoul 130-743, Korea, Tel.: +82-2-6490- 5365, E-mail: [email protected]

양화소록(養花小錄) 과 장물지(長物志) 화목류에 나타난 문인원림 취미 비교

박희성*․윈쟈옌**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A Comparative Study on Yanghwasorok and Zhangwuzhi

- Focused on the Taste of Plants in Scholar's Garden, Korea and China -

Park, Hee-Soung*․Yun, Jia-Yan**

*Institute of Seoul Studies, University of Seoul

**Interdisciplinary Program in Landscape Architec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ABSTRACT

The present study aimed to understand the taste of literati appearing in the Korean-Chinese garden by comparing Yanghwasorok(養花小錄) and Zhangwuzhi(長物志), which are one of the representative gardens in Korea and China.

The main subject of comparison is plants; the research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Gang Hui-an(姜希顔) stated that the ultimate purpose of growing and appreciating the gardening plants is the completion of oneself, while Wen Zhen-heng (文震亨) used gardening plants as a means to practice a life of reclusiveness(隱逸). Second, Gang Hui-an claimed that growing plants is human’s cultivation of virtue on the basis of Confucian view’s gaining knowledge by the study of things (格物致知), whereas Wen Zhen-heng realized the taste of ‘elegance(雅趣)’ through form of plants or planting method.

Third, although plant preference of literati of both countries is similar in many parts, there is a slight difference for putting gardening plants in pots and appreciating them. For example, even for selecting or placing pots, simplicity and lightness are characteristically reflected from Gang Hui-an while splendor and refinedness are characteristically shown from Wen Zhen-heng. Moreover, in light of the taste of appreciation of literati of the Song Dynasty(宋代), which is a sample of literati spirit, Gang Hui-an inherited the inner world of the spirit whereas Wen Zhen-heng expressed ‘literati-ness’ in visual images.

Key Words: Neo-Confucianism(性理學), Gaining Knowledge by the Study of Things(格物致知), Elegance(雅趣), Reclusiveness(隱逸), Appreciation(玩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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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본 연구는 한국과 중국의 대표 원림서(園林書) 가운데 하나인 양화소록(養花小錄) 과 장물지(長物志)를 비교하여 한중 원림에 나타난 문인의 취향을 이해하고자 했다. 주요 비교 대상은 화목류이며,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강희안(姜希顏)은 화목을 기르고 감상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자신의 완성에 두었지만, 문진형(文震亨)은 은일의 삶을 실천 하는 수단으로 화목을 이용하였다. 둘째, 강희안이 화목을 기르는 것은 성리학적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덕성 함양이지만, 문진형은 화목의 형태나 배식방법을 통해 ‘아(雅趣)’를 구현하였다. 셋째, 양국 문인의 화목 선호도는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지만, 화목을 화분에 두고 감상하는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화분을 선택하거나 배치하는데 있어서만 하더라도 강희안에게는 소박함과 담백함이, 문진형에게는 화려함과 세련됨이 특징적으 로 나타난다. 그리고 문인 정신의 표본이 되었던 송대(宋代) 문인의 완상(玩賞) 취미에 비춰볼 때, 강희안은 내면의 정신세 계를 계승한 반면, 문진형은 ‘문인다움’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출시켰다.

주제어: 성리학, 격물치지(格物致知), 아(雅趣), 은일(隱逸), 완상(玩賞)

Ⅰ. 서론

1. 연구 배경 및 목적

예로부터 동아시아 사회는 원림을 개인과 집단의 향유와 놀 이, 휴식의 장소로 간주했기 때문에, 원림 조영에는 건축처럼 법식을 만들거나 엄격한 제도를 적용하지 않았다. 원림과 관련 한 문헌이 원림조영에 필요한 기술서보다는 기문(記文)이나 감상문에 집중된 까닭도 이러한 원림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에 근거하여 원림 소재를 서술한 자료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조선 초 문인 강희안(姜希顏)의 양화소록(養花小錄) 과 명 말(明末) 문인 문진형(文震亨)의 장물지(長物志)는 이러한 가치 선상에 놓일 수 있는 저작물로, 문인 원림에 대한 내재된 의식과 원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본 논문은 각 저서의 가치에 의거하여 두 글의 내용을 견주어 봄으로써 양자에서 나타나는 문인원림의 특징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비교의 조건으로, 두 저서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보 인다. 첫째는 저자가 모두 전형적인 문인이라는 점이며, 둘째는 사물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겸비하고 있는 점이다. 셋째는 원 림을 매개로 개인의 정감(情感)을 호소하는 대신 사물에 내재 된 정감을 발견하여 그 정취를 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유사한 글의 형식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유서(類書)의 형식을 취하여 문인이 원림 생활을 하는데 지침이 될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양화소록 과 장물지 두 저서는 저자의 신분, 사회적 영향관계, 기술(記述)의 방식, 후대의 평가 등 여러 방 면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반면에, 인물의 면면이나 정치사회적 분위기, 시대가 추구하

는 가치, 생활환경 등의 측면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음은 당 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차이점은 앞서의 유사성을 기반 으로 한 것이며, 현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배경이 될 수 있으 므로, 두 저서의 상호 비교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2. 연구 동향

두 저서는 모두 전근대 한중 원림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중요 한 자료로, 각각의 선행 연구는 진척된 바가 크다.

양화소록 의 연구는 책에 내재된 강희안의 철학적 가치에 대한 연구가 주요하며(Kang, 1988; Kim, 2007; Moon, 2011), 책에 등장하는 화목의 재배법을 중심으로 한 연구도 있다(Lee, H., 2004). 조경학계에는 대표적으로 Kang and Lee(2009)의 연구가 있다. 그는 조선 초기 사대부의 자연관을 성리학적 측 면에서 고찰하고, 강희안의 양화정신을 해석하였다. 또 당시 선 행연구의 오류와 한계를 면밀하게 고찰하였다.

장물지는 양화소록 의 경우에 못지않게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가 진행되었다. 주로 미학/문학/철학/조경학 분야에서 연 구가 시도되었는데, 장물지를 통해 명대(明代) 지식인의 심 미성과 시대성을 논한 연구가 다수 있다(Yang, 2014; Kim, 2013; Clunas, 1996). 또 문진형이 추구했던 원림의 미학적 가 치를 발굴한 연구도 있다(Wang, 1992; Tong, 1994; Xie, 2010;

Tian, 2014). 이와 반대로 중국의 미적 체계를 바탕으로 장물 지를 해석한 경우가 있으며(Li, 2010), 문화의 측면에서 원림 과 은일문화의 관계로 고찰한 연구도 있다(Xie and Chen, 2010).

장물지는 원야, 한정우기와 비교연구도 진행되었다. 비 교연구의 경우, 장물지가 창작보다는 감상에 천착되어 있고, 명말의 문인 원림 문화의 총체로서 세속적 취향의 궁극을 보여 주는 것이라 보는 해석이 대표적이다(Ren, 2010; Shi,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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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원림을 주제로 한 비교연구는 원림 간 비교, 공간요소 와 경관의 비교, 양식이나 설계 기법의 비교가 많이 시도되었 다. 그에 비해, 원림서(園林書) 간의 비교연구는 장물지와

임원경제지의 연구가 유일하다. 원림서 비교를 시도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큰 연구이지만, 각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기보다는 책의 구성을 주로 비교하고 있어서 시론(試論) 의 성격이 강하다(Chenet al., 2014). 이런 점에서, 이번 장물 지와 양화소록의 비교 연구는 연구의 주제를 확장하고 심화 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으며, 두 저서를 통해 문인 취향을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의미를 가진다.

3. 연구 대상 및 내용

연구의 대상은 양화소록 과 장물지이다. 양화소록 은 본 래 독립된 저술이었으나, 강희안 사후에 아우 강희맹이 집안 인물의 시문을 모은 진산세고(晉山世稿)를 엮는 과정에 수 록하면서 후대에 전해지게 된다. 강희맹이 편찬한 목판본 진 산세고는 1478년에 간행하였는데, 양화소록 은 진산세고 4 권 1책 가운데 권 4에 수록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1474년에 쓴 강희맹의 서문이 전한다.

그밖에 필사본이 여럿 있어,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연세대 학교 도서관,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 등 여러 기관 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필사본은 일본에도 전해져서 일본 동 양문고 소장본과 마쓰오카(松岡玄達)의 필사본(1724), 오노본 (小野蘭山本)이 전존(傳存)하고 있다(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1973년에 이병훈이 처음 국역하였고(Lee, 1974), 그밖에 서 윤희․이경록(Seo and Lee, 2012), 이종묵의 역서가 있다(Lee, 2012). 본 연구는 1900년에 필사된 것으로 알려진 규장각본 양 화소록 을 저본으로 삼고, 역서들을 참고하였다. 주요 참고문헌 으로는 진주강씨 문량공파 종중 편 진산세고이다(Gang, 1473).

장물지는 1644년 이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명말 (明末)의 목판본과 청대(淸代)의 판본, 민국(民國)시대의 판본 이 전한다.

명말 목판본은 책의 각 권마다 ‘안문(雁门) 문진형(文震亨) 편(编)’과 ‘동해(东海) 서성서(徐成瑞) 교(校)’가 적혀 있다.

책머리에는 서문이 있고, “오흥(吴兴)의 심춘택(沈春泽)1)이 여 영초각(余英草阁)에서”라고 하여 글쓴이가 심춘택 임을 알리 고 있다. 총 3책으로 되어 있고, 판본 연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청대(淸代) 판본은 네 가지로, 건륭(乾隆)년간의 필사본이 사 고전서(四庫全書) 자부(子部)․잡가류(杂家类) 에 수록되어 있으며, 청말 상해신보(上海申报)에서 인쇄한 연운갑을편(砚 云甲乙编), 1853년(함풍 3년) 남해(南海) 오씨(伍氏)가 간행 한 월아당총서(粤雅堂丛书)판, 그리고 오의록총서(娱意录

丛书)판이 있다. 민국시대의 판본으로는, 1915년(민국 4년)에 출판된 중국도서회사의 화기인행본(和记印行本)인 고금설부 총서(古今说部丛书)판과 상해문명서국(上海文明书局) 석인본 (石印本)인 설고(说库)판이 있으며, 1936년(민국 25년) 상무 인서관(商务印书馆)에서 인쇄한 총서집성(丛书集成)판, 1928 년(민국17년) 신주국광사(神州国光社)에서 출간한 미술총서 (美术丛书)판이 있다. 그밖에 신보관총서(申报馆丛书) 속 집(續集)․기려류(記麗類) 판이 남아 있다(Chen, 1984).

본 연구에는 1984년에 발행된 천즈(陳植)의 교주본(校註本) 을 참고하고, 주해와 해석을 하고 도판을 곁들여 편찬한 쟈오 징(赵菁)의 역서를 활용하였다(Zhao, 2010). 그리고 필요에 따 라 강희안의 시문이나 장물지의 기타 항목 등을 참고하였다.

연구의 주요 내용은 첫째, 저자의 생애와 저술 배경을 바탕 으로, 두 저서의 기본적인 특징과 차이를 고찰하였다. 둘째, 각 저서의 구성 체계와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저술 의도와 특징을 살폈다. 셋째, 양화소록 과 장물지의 권2 화목 편을 중심 으로, 서술 방식과 내용을 비교하여 두 저자가 원림에서 추구 하는 가치와 취미의 차이를 살피고, 각 저서에서 기술하고 있 는 화목류를 연출과 감상의 관점에서 특징을 알아보았다.

주로 화목에 집중하여 분석한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양화소 록 과 장물지를 동일 조건에서 비교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화목이 원림의 풍격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화목은 전통적으로 문인이 자연의 이치를 알고 즐거움을 누리 기 위해 교감했던 중요한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원림 경영자가 화목을 대하는 자세는 원림의 풍격을 결정하는데 직접적인 영 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본 연구는 화목에서 보이는 문인원림 취미에 주목하여 양자의 비교를 진행하였다.

Ⅱ. 저술 배경과 주요 내용

1. 저자의 생애와 저술 배경

1) 강희안의 생애와 양화소록 의 저술 배경

강희안(姜希顏, 1418~1465)은 자가 경우(景遇), 호가 인재 (仁齋)이고, 본관이 경상도 진주(晉州)이다. 그의 집안은 여말 선초에 관료를 여럿 배출한 명문가이다. 조부는 강회백(姜淮 伯), 친부는 강석덕(姜碩德)이다. 특히 부친 강석덕은 세종의 장인이자 영의정을 지낸 심온(沈溫)의 딸과 혼인하여 왕실의 외척이 되었다. 조선 전기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강희맹(姜希 孟)이 그의 아우이다.

강희안은 세종23년(1441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 여 한림원에 보직되었고, 예조좌랑, 돈녕부(敦寧府) 주부(主 簿)를 역임했다. 세종25년(1443년)에는 정인지 등과 함께 세종 이 지은 정운(正韻) 28자를 해석하였고, 운회(韻會) 언문(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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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작업과 용비어천가 주석 작업에 참여하였다. 세종29년 (1447년)에는 이조정랑을, 세종31년(1449년)에 그는 돈녕부 동 부지사(同副知事)를 역임하였다. 단종2년(1454년)에는 집현전 직제학을 지내고, 세조6년(1460년)년에는 호조참의 겸 황해도 관찰사를, 세조8년(1462년)에는 인순부윤을 지냈다.

그는 천성이 온화하고 조용하여 말수가 적었으며, 청렴 소박 하고 문리에 통달하였으나, 젊어서부터 출세에 연연하지 않았 다고 한다. 시와 그림, 글씨에 뛰어나 세종 때의 안견(安堅), 최 경(崔涇) 등과 더불어 3절(三絶)이라 불렸다(Gang, 1473).

강희안의 원림 조영 활동은 양화소록 외에 구체적으로 남 아 있는 것은 없지만, 진산세고를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아우 강희맹은, 강희안이 평소 꽃에 취미가 있어 출근하는 시간이나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때를 제외하면 꽃을 키우는 일 로 소일하였다고 회고한다(Lee, 2012). 그리고 거처였던 사우 정(四雨亭)2)에서 소나무, 대나무, 국화, 매화, 난초, 서향화, 산 다, 석류나무, 귤나무, 창포 등 향기 좋은 꽃과 나무를 땅과 화 분에 심어 가꾸었다(Gang, 1473)3).

벗들과 좋은 나무를 선물로 주고받았고4)집에 귀한 꽃이 많 아지자 벗들이 꽃구경을 하러 들르기도 했다. 강희안이 혼자 꽃을 감상할 때는, 매화가 피면 그 아래에서 혼자 술을 따르면 서 시를 지었고, 대나무를 심고는 그 흥을 시에 담았다. 가을이 면 국화 곁에서 도연명의 흥취를 따라 술을 마시고, 작은 수레 를 타고 단풍 구경을 나서곤 하였다(Gang, 1473).

양화소록 은 강희안이 돈녕부에 근무했던 1449년경에 사우 정에서 한가함을 틈타 저술한 것이다. 저술 당시에 그가 사우정 에 있었음에 대한 근거는 사우정에서 읊은 시(四雨亭雜詠) 와 양화소록 에 수록된 16종의 화목이 대부분 겹친다는데 있다.

양화소록 의 시작에 “산림에서의 소일거리로 삼는 한편 호 사가들과 그 뜻을 함께 하고자 한다”고 썼던 것처럼, 강희안은 애호가의 입장에서 책을 저술하였다. 동생 강희맹 역시 “(양화 소록에는 형 강희안이) 평생 펼치지 못한 자신의 은미(隱微)한 뜻을 담았다. 이 책은 옛 방법을 널리 모으고 자신의 견문을 첨 가하여… 은연중에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를 돕는 뜻을 담았으 니…”라 하여 글의 이면에 담겨있는 세상의 이치를 높이 평가 한다.

한편, 국문학자 이종묵은 양화소록 의 가치에 대하여, 18세 기 대표 학자인 김이만(金履萬)과 장현광(張顯光)이 양화소 록 을 소장하고 평소에 애독하였으며, 많은 필사본이 전해지므 로 독자층이 매우 넓었을 것이라 평하였다(Lee, 2012). 또, 이 후에 편찬된 허목(許穆)의 석록초목지(石鹿草木志)나 이만 부(李萬敷)의 노곡초목지(魯谷草木志), 신경준(申景濬)의 순 원화훼잡설(淳園花卉雜說) , 류박(柳璞)의 화암수록(花菴隨錄)

은 물론이고,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와 서유

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이르기까지 양화 소록 은 원림과 관련한 대부분의 사료에 주요한 참고자료가 되 고 있어, 학술적 측면에서나 원림 문화의 영향력에 있어서도 그 지위가 독보적이다(Kang, 1988).

2) 문진형의 생애와 장물지의 저술 배경

문진형(文震亨, 1585~1645)은 자는 계미(啓美)이고, 남직록 (南直錄) 소주부(蘇州府) 장주현(長洲縣, 지금의 강서성 소주 지역) 출신이다. 그는 그림과 글에 조예가 깊은 명망 있는 집안 에서 태어나 일생을 편안함과 풍요로움 속에서 지냈다. 오파 (吴派)의 한 사람인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이 그의 증조 부이다.

문진형은 젊은 시절을 줄곧 고향 소주에서 보냈다. 천계원년 (1621년) 남경(南京)의 국자감(国子监)을 졸업하고, 5년 뒤 은 공(恩贡)을 받는다. 또 숭정10년(1637년)에는 북경으로 가서 롱주판서(隴州判書)를 지냈다. 이후 무영전(武英殿)의 중서사 인(中书舍人)을 지냈으나, 동림당인(东林党人)을 성원하는 등 의 이유로 정치적 부침을 겪었다. 숭정15년(1642년)에는 군대 위문의 명을 받고 소주로 내려갔다가 고향집에서 휴가를 취하 였다.

숭정17년(1644년) 6월에 청(淸)의 군대가 소주를 점령했을 때, 문진형은 양징호(阳澄湖) 근처에서 피신하고 있었는데, 체 발령(剃发令)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강에 투신하여 자살을 시도했다. 나중에 구조를 받았지만 울분으로 6일 동안 절식해서 결국 토혈하며 절명하였다(Chen, 1984; Jiang, 1996).

문진형의 집안은 대대로 원림에 깊은 조예가 있었다. 증조부 문징명은 왕헌신(王獻臣)의 졸정원 조성에 깊이 관여했으며 졸정원기(拙政園記) 가 포함된 졸정원도책(拙政園圖冊)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일찍이 정운관(停云馆)을 증축하 면서 “산을 의지해 뜰 앞에 오동나무 한 그루를 심었으며, 뒤쪽 에는 대나무 숲을 만들었다(Wen, 1929)”고 전한다. 부친 문원 발은 형산초당(衡山草堂), 난설재(兰雪斋), 운경각(云敬阁), 동 화원(桐花院) 등의 원림을 조성했고(Wang, 1992), 형 문진맹 (文震孟)은 약포(药圃)를 만들었는데, 후에 크게 수축(修築)하여 당대(當代)에 가장 유명한 원림으로 이름을 날렸다(Cao, 1933).

문진형은 이러한 가풍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그는 소주에 있 는 자신의 집에 ‘향초타(香草垞)’라고 하는 가원(家園)을 조성 하였다. 이곳은 본래 풍씨(冯氏) 집안의 폐원을 개조한 것으로, 원림에 선연당(婵娟堂), 수협당(绣铗堂), 농아각(笼鹅阁), 중향 랑(众香廊), 사월랑(斜月廊), 소대(啸臺), 옥국재(玉局斋) 등을 조성하고, 키 높은 나무(喬柯)와 기석(奇石), 방지(方池), 곡소 (曲沼), 은거처(鹤栖), 울타리(鹿砦)와 물고기 서식처가 있는 침상(鱼床) 등을 두었다. 이 원림을 두고 세간에서는 “물과 풀 이 청아하며 건축물은 곱고 아름다워 소주에서 손꼽히는 명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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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 평하였다(Gu, 2014). 그밖에 서교(西郊)의 벽랑원(碧浪 園)과 남도(南都, 남경)의 수희당(水嬉堂)도 조성하였는데, “두 곳 모두 위치가 맑고 산뜻해서 사람이 마치 그림 속에 있는 것 같다”고 전해진다(Jiang, 1996).

그는 평생 문예생활도 즐겼다. 거문고와 서예의 기교가 뛰어 나 수도 북경에서 명성을 얻었다고 하며, 저술활동도 활발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알려져 있는 장물지는 계성(計成)의

원야(園冶), 진호자(陳淏子)의 화경(花鏡과 함께 중국의 대표 원림서로 꼽힌다. 원림학자 천즈(陳植)는 “장물지는 비 록 서술이 간략하지만 원림에 필요한 제반의 요소를 두루 갖추 었으며,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어서 독창적인 가치가 있다”고 평하였다. 뿐만 아니라 문진형 개인의 취미에 국한된 것이 아 니라, 풍전등화와 같았던 명 왕조 사대부 계층의 보편적 정신 세계를 원림을 통해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중국 원림의 예술과 풍격이 일면 드러나고 있는 저서라 하였다(Chen, 1984).

장물지는 저술 시기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1621년이 라는 설이 있지만, 출전이 정확치 않고, 각 권별 감수자의 생졸 연대를 따지면 오랜 시간에 걸쳐 작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5). 다만 서문에 심춘택이 글을 써줄 당시에 소주 향초택의 선연당 과 옥국재를 구경한 것으로 보아 장물지가 완전히 완성된 때 는 문진형이 고향에 있었던 1644년 이후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는 강희안이 양화소록 을 저술한 지 약 200년이 지난 시 점이다.

심춘택이 쓴 장물지 서(序) 에는 문진형이 밝힌 저술 의 도가 인용되고 있다.

나[문진형]는 오(吳) 지역 사람의 심성(心)과 재주(手)가 날로 변 해간다는 사실이 걱정스럽다. 자네[심춘택] 말대로, 잠깐의 여가 에 쓰이는 장물(長物)조차도 본래 근원이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될 텐데, 이 책[장물지]이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막아주지 않을까 한 다(Chen, 1984; Zhao, 2010).

문진형이 피력한 저술의 뜻에 대해, 심춘택은 다음과 같이 응대한다.

이 책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 번잡스러움을 덜고 사치풍조를 없앤 다는 말은 여기 이 서문으로 족하다… 세인에게 이 책을 알리고 모 두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책을 통해 계미[문진형]의 정취와 재능, 정감이 전달될 뿐만 아니라 사물을 다루는 뜻도 깊이 알 수 있다(Chen, 1984; Zhao, 2010).

문진형은 일상생활에서 소소하게 다룰 수 있는 사물을 문인 의 입장에서 소개하여, 변질되고 사라지는 문인의 기질을 지키 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의 벗 심춘택은 문진형의 풍격이 그대 로 드러나는 장물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처럼 장물지에는 원림을 통해 순수한 문인의 정취를 알 리겠다는 문진형의 의지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장물지에는 계성(計成)이 원야(園冶)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원림을 조 성하여 일으키는 일(興造)보다는 원림에서 추구하는 삶의 방 식이 무엇인지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2. 구성 체계와 주요 내용

1) 양화소록 의 구성 체계와 주요 내용

양화소록 의 본래 명칭은 청천양화소록(菁川養花小錄)

이다. ‘청천’은 강희안의 고향인 진주의 남강(南江) 상류를 칭 하는 것으로, 풀이하면 ‘강희안의 화목 가꾸기에 대한 작은 기 록’ 정도가 된다.

책의 처음에는 아우 강희맹의 서문과 강희안이 직접 지은 짧 은 글이 있다. 다음으로 소나무(老松), 향나무(萬年松), 대나무 (烏班竹), 국화(菊花), 매화(梅花), 난혜(蘭蕙), 서향화(瑞香 花), 연꽃(蓮花), 석류꽃(石榴花), 치자꽃(梔子花), 사계화(四 季花), 산다화(山茶花), 자미화(紫微花), 왜철쭉(日本躑躅花), 귤나무(橘樹) 등 16종의 화목과 괴석을 소개한다. 모란(木蘭) 과 작약(芍藥)은 화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하여 다루지 않 았지만, 구양수(歐陽修)의 낙양모란기(洛陽牡丹記) , 왕관(王 觀)의 양주작약보(揚州芍藥譜) 등의 의견을 따른다고 했으 므로, 실제 그가 특별히 키우고 가꾼 화목은 18종 남짓으로 볼 수 있다.

각 조목에는 주로 해당 화목의 고유한 성질과 이상적인 형 태, 상징과 의미 등이 자세하게 나온다. 화목의 품종과 품격에 대한 설명은 주로 이아(爾雅), 설문해자(說文解字), 증류 본초(證類本草) 등과 같은 중국의 고전과 왕희지(王羲之), 구 양수, 소식(蘇軾), 심괄(沈括) 등 많은 중국 선현의 글을 전거 로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강희안의 주관적 경험과 취향은 양화(養花) 부분에서 잘 드 러난다. 화분에서 재배하는 법부터 꽃을 빨리 피게 하는 법, 꽃 이 싫어하는 것, 종자나 뿌리를 보관하는 법은 물론, 꽃에서 찾 아야 할 것이나, 꽃을 기르는 뜻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화목을 재배하면서 터득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으며, 화목을 키우면서 알게 되는 소소한 즐거움, 혹은 안타까움 등의 감정을 자신의 경험담을 곁들여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2) 장물지의 구성 체계와 주요 내용

장물지는 문진형이 살면서 곁에 두고 즐길만한 사물들에 대한 견해를 적은 책이며, 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 운데 원림과 직접 관련한 것은 총 6권으로, 각각 권1 실려(室 庐) , 권2 화목(花木) , 권3 수석(水石) , 권4 수어(獸魚) , 권6 궤탑(几榻) , 권10 위치(位置) 이다. 그밖에 6권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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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에서 향유할 수 있는 소품과 제반 생활에 관련한 글이다.

각각은 권5 서화(書画) , 권7 기구(器具) , 권8 의식(衣 饰) , 권9 주거(舟車) , 권11 소과(蔬果) 6), 권12 향명(香 茗) 이다. 이들 여섯 주제는 원림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 고, 이들을 제대로 즐길 때 문인으로서의 삶의 풍격은 완성 된다.

각 주제마다 도입부에는 문진형이 직접 쓴 짧은 글이 있고, 여기서는 주로 주제를 다루고 감상하는데 필요한 원칙을 간단 한 실례와 함께 소개한다7). 예컨대, 3권 수석 편에서는 돌과 물은 원림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소재로, 어떤 돌을 고르고, 어 떤 못을 만드느냐에 따라 천하의 기운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 였다. 또 권4 금어 편에서는 아름다운 원림에는 새와 물고기 를 보는 즐거움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이 즐거움은 곧 속세 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은자(隱者)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 하 였다.

다음 절에서 상론하겠지만, 문진형은 권2 화목 편의 시작 글에서 “꽃을 키울 때는 유명하고 진귀한 것만 키우는 것은 안 되고, 다양한 종류의 꽃을 함께 키우는 것이 좋다”고 하여 원림 에서 화목을 다루는 기본 원칙을 제시였다. 그리고 복사, 오얏, 매화 등의 꽃나무를 통해 운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간략히 소개하였다. 이어서 “난초와 국화를 재배하는 데에도 예로부터 각각 방법이 있으니, 원림을 관리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방법을 가르치고, 그들의 기술을 두루 살펴보도록 해야 한다. 이 또한 속세를 피해 조용히 사는 이(幽人)가 힘써야 할 일이다. 이것 이 곧 권2 화목 편이 뜻하는 바이다”라고 하여 원림에 필요한 문인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모두 42개의 조목을 통해 원림에 심고 가꿀 만한 수 목을 제시하였다. 화목의 종류는 모란(木蘭)과 작약(芍藥), 백 목련(玉蘭), 해당(海棠), 동백(山茶), 복사(桃), 오얏(李), 살구 (杏), 매화(梅), 서향(瑞香), 장미(薔薇)와 목향(木香), 해당화 (玫瑰), 박태기(紫荊)와 죽도화(棣棠), 자미화(薇花), 석류(石 榴), 부용(芙蓉), 치자(薝葡), 재스민(茉莉, 素馨)과 자귀(夜合), 진달래(杜鵑), 소나무(松), 무궁화(木槿), 목서(桂), 버드나무 (柳), 회양목(黃楊), 회화(槐)와 느릅(楡), 오동(梧桐), 참죽(椿), 은행(銀杏), 오구(烏臼), 대나무(竹), 국화(菊), 난초(蘭), 접시 꽃(葵花), 양귀비(罂粟), 원추리(萱花), 옥잠(玉簪), 금전(金錢), 연꽃(藕花), 수선(水仙), 봉선(鳳仙), 계관화(秋色), 파초(芭 蕉)이다. 주로 화목의 형태와 생장 습성을 설명하고, 다양한 품 종을 소개하는데, 원림 경관으로서 갖고 있는 심미적인 풍격과 쓰임새 등을 서술하면서 각기 등급을 매긴다. 뿐만 아니라 그 는 화병에 꽂아 감상하는 꽃(甁花)과 화분에 심어 즐기는 일 (盆玩)에 대한 의견도 곁들여서 수십 가지의 꽃과 나무를 어디 에 두고, 어떤 모습으로 가꾸며, 어떻게 감상할지를 정확하고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Ⅲ. 화목류에 나타난 원림 취미의 비교

1.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인생관과 은일(隱逸)의 삶 화목을 가까이에 두고 즐기는 것은 한국과 중국에서 공통적 으로 나타나는 문화다. 특히 한국은 고려 때부터 문․무인들이 원림에 화목을 식재하고 즐긴 것으로 알려진다. 매화, 난혜, 소 나무, 국화, 대나무, 연꽃, 장미 등 양화소록 에 언급된 대부분 이 이미 이 시기에 유행하였고, 맨드라미, 조팝, 해바라기 등의 종류도 문헌상에 등장한다.

여러 기록에 화목이 주제로 등장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원 림이 유행하고, 원림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고려인들은 가원을 가꾸고 특정한 꽃이 만개할 때면 그 꽃들이 무리지어 장관을 이루는 곳을 찾아 시회(詩會)를 열었다. 최충 헌(崔忠獻)의 가원(家園)에는 석류(千葉榴花)가, 양국준(梁國 峻)의 가원에는 작약이, 이규보(李奎報)의 동산에는 장미가 혜 (惠), 수좌의 사원(寺院)에는 자색 모란이, 김연(金曣)의 가원 에는 영산홍이 유명하였다고 한다(Yu, 2000).

화목 애호에 대한 문화는 조선 전기에도 이어진다. 김종직 (金宗直), 김시습(金時習), 고득종(高得宗)은 물론 퇴계(退溪) 이황(李滉)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인들이 좋은 화훼가 있다는 장소를 찾아가길 마다하지 않았고, 스스로 양화법을 배우고, 움 집을 마련하여 양화의 기술을 터득했다(Lee, 2010). 강희안의 양화(養花)에 대한 애정은 당시 유행했던 문인 취향의 일환으 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강희안의 화목 애호가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스스로 양화소록 을 저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손수 파종하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잎을 관리하여 겨울을 나는 화목의 일련의 과정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등, 적극적인 원예활동을 표출한다. 또 움집(土宇)을 두어 국화 등 추위에 약한 화목을 보호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고, 꺾꽂이나 접붙이기와 같은 원 예술을 시도하는 일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것은 단지 화목을 감상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다.

어느 날 저녁에는 “뜰에서 구부정하게 엎드려 흙을 북돋워 나무를 심는데 지겨운 줄 몰랐다” 하였으니, 강희안의 화목 가 꾸기에 대한 열정은 한편으로 18세기 이후 조선의 문인사회에 크게 유행한 습벽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그의 활동을 단순한 습벽으로 치부해야 할지는 생각 해 볼 여지가 있다. 강희안의 양화 취미는 성리학적 ‘격물론(格 物論)’과 정확하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천지 사이에 가득 찬 만물을 보니 수 없이 많으면서도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오묘하고도 오묘하게 모두 제 나름대로 이치가 있습니다. 이치를 진실로 연구하지 않는다면 앎에 이르지 못합니 다. 비록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작은 것이라도 각각 그 이치

(7)

(理)를 탐구하여 그 근원으로 돌아가면 그 지식이 두루 미치지 않 음이 없고 마음은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나의 마음은 자연스 럽게 사물과 분리되지 않고 만물의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게 됩니 다(Gang, 1473).

꽃을 키우는 이유(養花解) 에 나오는 위의 구절은 강희안 이 화목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보여준 다. 그에게 양화는 “몸을 해친다거나 눈을 즐겁게 하여 마음을 미혹하게 하는 인생의 방해물이 아니며”, 오히려 세상의 이치 를 알고 자아를 발견하는 기회인 것이다.

강희안에게 화목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사물의 이치가 마음을 꿰뚫는다(使其心無不實通)’거나 ‘나의 마음이 사물과 분리되지 않는다(吾之心 自然不物於物)’ 하여 화목과 자아와 상통하는 관계로 본다. 이것은 다음의 구절을 통해 보다 자세 하게 알 수 있다.

‘사물을 살필 때는 자신부터 돌아보고(觀物省身) 지식이 완전해진 다음에야 뜻이 성실해진다(知至意誠)고 옛 사람들도 이미 말하였 습니다… (중략) 그들의 덕목을 본받아 나의 덕으로 삼으면 이로움 이 어찌 많지 않으며 뜻은 어찌 커지지 않겠습니까(Gang, 1473).

강희안의 “사물을 살필 때는 자신부터 돌아보고(觀物誠身) 지식이 완전해진 다음에야 뜻이 성실해진다(知至意誠)”는 말 은 대학(大學)의 “사물의 이치가 밝아지면 앎에 이르고, 앎 에 이르면 뜻은 참되고 바르다(格物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는 구절을 일컫는다.

성리학을 정립한 주희(朱熹)는 외부에 있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격물(格物)을 자아의 내부, 즉 마음의 이치를 자각하는 작용으로 보았다. 외경과 자아는 분리되어 있지만 거울과 같은 자아의 마음(心)과 마음에 새겨진 사물의 그림자(情)가 서로 통하게 되면서 안팎의 구분이 사라진다. 게다가 ‘물(物)’은 천 지 사이에 존재하는 일체의 자연 현상은 물론 도덕규범까지도 포함되는 것이므로, 자아는 천지만물의 이치와 통하게 되는 것 이다(Han, 2015).

강희안이 화목을 면밀하게 탐구하고 경험과 실증으로 화목 의 성질을 이해하려 한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성품에 대한 완전한 완성이다. 그는 자신의 윤리적 이상을 주희의 격물치지 의 입장에서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진형은 ‘몸 외의 주변 사물(身外餘物)’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였을까? 그 실마리는 장물지 권 1 실려(室廬) 편의 머리글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산수(山水)에 거처하는 것이 으뜸이고, 시골(村)에 거처하는 것이 그 다음이며, 성 밖(郊)에 거처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내가 설령 산속 동굴이나 계곡에 머물지 못하고 기리계(綺里季)나 동원공(東

園公)과 같은 은자(隱者)의 자취를 좇지 못하며, 시끄러운 저잣거 리를 전전하며 속세에 뒤섞여 있다 하여도, 반드시 문(門)과 뜰 (庭)은 반듯하고 정갈해야 하며(雅潔), 집(室廬)은 깨끗하고 정숙 해야 한다(淸靚)… (중략) 그래야 사는(居) 사람에게는 늙어감을 잊게 하고, 머무는(寓) 사람에게는 돌아감을 잊게 하며, 노니는(遊) 자에게는 피곤함을 잊게 한다(Chen, 1984; Zhao, 2010).

문진형은 비록 스스로가 시끄러운 도시에 머물지만, 산수에 거처하고 있는 것과 같은 삶을 살고자 했는데,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원림 생활이었다. 산수에 거처하는 것을 최고 로 생각한 것은 그가 은자(隱者)의 삶, 즉 산수로의 은일(隱 逸)을 꿈꿨기 때문이다.

문인이 은일의 삶을 추구하는 것은 중국의 오랜 전통이다.

중국에서 은일에 대한 기록은 상고(上古) 요순(堯舜)시대부 터 등장하며, 청대(淸代)에 이르기까지 그 전통은 끊어진 적이 없다. 은일은 ‘숨는 것’으로, 본래는 벼슬을 원했지만 과거(科 擧)를 통해 명성을 얻기가 어렵고, 또한 평생 벼슬에 머물더라 도 그것이 꼭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바를 깨달은 후에 택한 결과에 불과한 것이었다(Gang and Chen, 1997). 그러나 은일 하는 무리가 사회에서 하나의 계층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중국 의 문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은일을 표명하는 것을 하나의 덕목으로 여겼다.

심춘택 역시 전한(前漢)시대 사마상여(司馬相如)와 탁문군 (卓文君)의 가도벽립(家徒壁立)의 삶부터 동진(東晉)시대 도 연명의 전원생활, 당대(唐代) 왕유(王維)와 백거이(白居易)의 한적한 삶, 그리고 송대(宋代) 소식(蘇軾)의 유배지 생활까지, 환경은 비루했지만 정갈하고도 담백했던 그들의 고매한 삶을 칭송했다.

문진형은 은일의 삶을 피력한 심춘택의 의견을 높이 평가하 였을 뿐만 아니라8), 장물지에서는 실제로 스스로를 ‘유인(幽 人)’이라 칭하며, ‘은자(隱者)’임을 자청하였다. 권2 화목 의

‘장미’ 편에서는 다음의 구절을 보자.

장미꽃으로 향낭을 만들면 향기가 오래 간다…(중략) 하지만 유인 (幽人)이 패용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Chen, 1984; Zhao, 2010).

문진형은 장미를 가시도 많고 색깔도 세속적이어서 식용으 로는 적당하지만, 은일하는 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꽃으로 봤 다. ‘대나무’ 편에서는 대나무로 연출할 수 있는 그윽한 운치를 소개하면서 은자에게 어울리는 경치를 제안하였다. 이처럼 장 물지 곳곳에는 은일하는 자의 시선이 투영되어 있다.

소상죽(瀟湘竹)의 경우, 암석이나 작은 연못가에 몇 대를 심으면 역시 그윽한 경치(幽致)를 만들 수 있다(Chen, 1984; Zhao,

(8)

2010).

은일은 통상적으로 속세를 떠난 것을 의미하지만, 중국의 문 인사회에서 은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속적이다. 역사적으로, 세상을 떠나 속세를 초월했다고 말한 대부분의 은자들이 추구 했던 최고의 이상은 ‘상제(上帝)’나 ‘신(神)’과 같은 초자연적 세계를 쫓는 것이 아닌 사회와 인간에 근거하는 세속의 정신이 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정에서 은거하든’, ‘학계에서 은거하 든’, ‘상업계에서 은거를 하든’, 아니면 정말로 ‘산수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모두 감춰 버리든’, 결코 명교(名敎)를 포기하지 않았고, 은일하여 자신을 수양하면서 도덕과 윤리를 기초로 한

‘도’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또한, 언제나 국가의 흥 망을 자신의 책임으로 삼아, 유가의 청렴하고도 고상한 뜻을 지키고자 했다(Gang and Chen, 1997).

중국의 일반적인 은일문화에 비춰볼 때, 장물지에 비친 문 진형의 은일은 천하를 두루 구하려는 ‘겸제천하(兼濟天下)’의 적극적이고도 진취적인 성격보다는 홀로 자신의 몸을 잘 지키 는 ‘독선기신(獨善其身)’의 입장이 강하다.

문진형은 사물을 보고(玩賞) 즐기는(快)9) 대상으로 간주하 여 오직 운치 있고 격조 있는 삶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로 보 았다. 강희안과 같이 내재된 사물의 본성을 알고, 자신을 바라 보거나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고자 한 것도 아니었고, 사물을 통해 난세(亂世)를 걱정하거나 무너진 유교의 권위를 한탄하 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는 다만 ‘장물(長物)’에 자신의 내면 의식을 투사시켜 고 결한 은자의 취향에 대한 진정성을 스스로 정의 내린다. 다소 소극적이고 비유적인 방식이지만, 장물지에 드러나고 있는 그의 정취(韻)와 재주(才), 정감(情)은 붕괴된 도덕적 질서에 대한 울분을 읽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러한 그의 심정은 심 춘택이 쓴 다음의 글에 잘 드러난다.

근래에 부호의 자제들이나 하찮고 아둔한 이들이 의기양양하여 스 스로를 호사가라 칭하니, 매번 감상할 때마다 입 밖으로 말을 내뱉 으면 곧 저속(俗)해지고, 손만 대어도 바로 조악(粗)해진다. 그래 서 애지중지 아끼고 보호하지만 종극에는 질펀해져 더러움이 심해 지게 된다. 이에 진정한 정취와 재주, 정감을 가진 사인(士)은 서 로 경계하여 풍아(風雅)를 논하지 못하게 되었다(Chen, 1984;

Zhao, 2010).

명말의 사회는 상업화로 야기된 잉여의 산물이 사치와 과시, 소비의 문화를 부추기던 시절이었다. 경제적 번영은 부를 축적 한 계층에게도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문인과 상인의 결탁이 유행하면서 문화의 세속화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문인 이라 자청하는 이들은 각종 결사(結社)와 강회(講會)를 적극 적으로 열었지만10), 그들이 예전의 문인 정신을 계승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한편의 문인 무 리들은 은일문화를 공고히 하고 자신들의 취향을 배타적으로 지키려 하였다.

문진형이 바로 이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는 장물지를 자신과 뜻이 맞는 동료들과 나누어 보았고11), 원림의 취향을 공유하였다. 그가 문장에서 ‘나의 동료(吾黨, 吾辈, 吾儕)’를 즐 겨 쓴 것이나, 진운(眞韻)․진재(眞才)․진정(眞情)으로 문인 정신의 진정성을 강조한 것, 세인의 견해를 단호히 부정하고 자신이 가지는 문인 취향을 피력하는 일12) 등은 모두 이러한 배타성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물론, 이때의 배타성은 다른 무리 와 구별하는 우월감과 문인 풍격에 대한 순수성이다.

2. 덕성(德性) 함양과 아취(雅趣)의 향유

양화소록 은 본래 꽃을 키우면서 알게 된 원예적 지식을 기 록한 책이지만, 그는 각종 화목의 특징을 면밀히 관찰하고 양 화로써 그 성정을 파악하여 궁극에는 세상의 이치를 바르게 보 는 격물치지를 실천한다.

이러한 실천적 양상은 몇 가지 특징으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화목의 성정으로써 치국(治國)의 뜻을 표명하는 것이다. 강희 안은, 어떤 이가 노송의 오래된 가지를 치고 수피(樹皮)를 벗 겨 새 것을 자라게 했다는 고사에 빗대어 “옛 법은 폐해가 많 기 때문에 새 법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어린 관료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판했다. 그리고 “‘귤이 강북에서 자라면 탱 자가 된다’고 했던 안자(晏子)의 말과는 달리, 귤나무는 어디에 있든 그 본성은 달라지지 않으니, 이 뜻을 새기면 나라를 다스 리는데 보탬이 될 것(Gang, 1473)”이라 하였다. 이것은 세상을 교화하여 나라를 지키고 윤리와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 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는 화목으로써 인간의 덕성을 함양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화초를 재배하는 것은 키우는 사람의 심지(心志)를 굳게 하고 덕성을 기르기 위함일 뿐이다. 운치와 지조가 없는 것은 절대 로 감상해서는 안 되며 울타리 주위나 담 아래 적당한 곳에 재배하 되 가까이 할 필요는 없다. 가까이 한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지조 있는 선비와 비루한 사내가 한 방에 같이 있는 것과 같아서 풍격이 금방 떨어진다(Gang, 1473).

찬바람이 불어도 변치 않는 저 소나무의 지조가 모든 꽃과 나무보 다 위에 있음은 덧붙일 것도 없습니다. 그 밖에 은일의 모습을 지 닌 국화와 품격 있는 매화, 난혜와 서향 등 10여 종은 각기 운치 를 자랑하고, 창포에는 가난한 외로움을 견디어 내는(孤寒) 절개 가 있으며 괴석은 확고부동한 덕을 지녀 군자의 벗이 될 만합니다.

언제나 함께 하며 눈에 담아두고 마음으로 본받을 것이니 어느 것 도 소홀히 하여 멀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덕복을 본받아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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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으로 삼으면 이로움이 어찌 많지 않으며 뜻이 어찌 커지지 않겠 습니까(Gang, 1473).

강희안의 양화에 대한 기본자세는 마음에 품은 뜻을 굳게 하 고, 덕성을 함양하는, 성정(性情)을 위한 규범의 실천이다.

양화소록 의 소나무의 지조, 국화의 품격, 매화, 난혜, 서향의 운치, 창포의 절개, 괴석의 확고부동한 덕은 결코 감정이나 유 행으로 선별된 것이 아니며, 강희안의 인생관과 인생철학이 반 영된 소산이다.

셋째,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화목에 대한 세인의 평 가로서 비유하고, 그러한 세상에 초연한 마음을 드러낸다.

서울에서 꽃을 기르는 사람들은 서향의 높은 운치를 알지 못하고 또한 기르는 방법도 알지 못해서 돌보고 감상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말라죽게 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 꽃은 쉽게 죽으니 별로 귀하지 않구나”라고 한다… (중략) 아아, 모든 생물은 각각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진실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 하면 아무도 없는 산에서 혼자 피었다가 지더라도 끝내 알려지지 못하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며 어찌 원망스럽지 않겠는가(Gang, 1473).

사계화만은 사계절에 걸쳐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꽃을 피우려는 뜻을 잠시도 쉬지 않으니 한없이 진실하고 순수한 성덕(聖德)에 비할 만하다. 그리고 오행으로 말하자면 토(土)가 언제나(四時) 왕 성한 것과 같다. 나의 고향은 지리산 아래 청천강 가에 있다. 대나 무 울타리 주위에서 사계절마다 활짝 피는 꽃이 모두 사계화인데 그곳 사람들은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벼슬살이 수 십 년 동 안 얼굴을 달리하고 시류에 따르면서도 마침내 이룬 바가 없었다…

(중략) 내가 화훼를 기를 때 오로지 이 꽃을 높게 평가한 것은 이 꽃의 성품을 더욱 상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Gang, 1473).

실제로 그의 아우 강희맹은 양화소록 을 책으로 편찬하면 서 글의 서문에 형이 생전에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펼치지 못 했던 것을 안타까워했다13). 또 시, 서, 화에 모두 뛰어나다 평했 던 서거정(徐居正) 역시 강희안의 덕과 재능을 칭송하며, 벼슬 이 재능에 미치지 못했다며 아쉬워하였다14).

강희안은 향기가 널리 퍼지고 앵두처럼 빨간 열매가 푸른 잎 과 잘 어울리는 서향과 사시사철 꽃 피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 는 사계화의 훌륭한 성질을 세인들이 몰라주는 것에 한탄한다.

그렇지만 본인이 서향과 사계화의 가치를 알았듯, 그 고결한 가치는 언젠가는 알아주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의지를 전한다.

양화소록 에는 자신의 기품을 드러내고 과시하기 보다는 사물을 통해 자신의 성정을 끊임없이 수련하는 자세, 엄격하고 도 절제되어 있는 감정이 담겨 있다. 이것은 ‘담박함을 즐기고 번거롭고 화려한 일을 싫어했다’15)는 그의 천성과 부합되는 점 이다.

강희안이 원림에서 화목을 키우며 현실세계에서 구할 수 있 는 인간의 도리를 구하고자 했다면, 문진형은 원림을 심미의 대상으로 보고 지극히 미적(aesthetic)인 것을 추구하였다.

상기한 바와 같이, 문진형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은사로 서의 성품(韻)이다. 그리고 은사의 성품으로 장물지에서 제 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미적 정취는 ‘아(雅)’이다16).

‘아’는 본래 시경(詩經)의 ‘풍(風)․아(雅)․송(頌)․’에서 나온 것으로, 이때 ‘아’는 궁정에서 사용하는 전통 악조를 말한 다. 국가 의례에 사용될 만큼 가장 규범적인 것이라 하여, 옛 사람들은 ‘바른 것(正)’의 뜻으로 새겼다. 심미적으로는 예스럽 고 아담하며 맑고 속되지 않는 정취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반인 의 범속한 습성과는 다른 성질의 것을 말한다(Cheng, 1995).

문진형은 ‘아’의 정취를 주로 ‘예스러움(古)’으로 말한다. 그 는 예스러움을 주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방식17)과 화목의 고풍 스러운 형태 등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 화목의 예스러 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나무 중에서는 천목송(天目松)이 가장 예스럽다(最古). 높이가 2자를 넘지 않고 나뭇가지는 사람의 팔뚝과 같다...(중략) 화가 마 원(馬遠)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꼬불꼬불한(欹斜詰屈)’ 모습을 묘 사하였고, 곽희(郭熙)는 ‘호방하고 거침없다(露頂張拳)’고 하였다.

유송년(劉松年)은 ‘엇갈리고 중첩되는 것(偃亚层疊), 성자소(盛子 昭)는 끌어당겼다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듯한(拖拽軒翥)‘ 기세가 있다고 하였다… (중략) 가지와 줄기는 늙었지만 굳세고, 이끼는 여러 색이 뒤섞여 얼룩덜룩하다(Chen, 1984; Zhao, 2010).

산속에 자라는 매화 가운데 이끼가 있는 것을 골라 난간(藥欄)에 두면 정말 예스럽다(Chen, 1984; Zhao, 2010).

[매화는] 이끼 낀 굵직한 나뭇가지를 가진 것을 골라서 암석 혹은 뜰(庭除)에 심는 것이 가장 예스럽다(Chen, 1984; Zhao, 2010).

나뭇가지가 굵으면서도 비틀어져 꼬불거리고 이끼가 끼어 있는 소나무와 매화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에게 ‘예스러움’

은 낡고 고리타분하며 촌스러운 것이기 보다는 오랜 시간을 거 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일종의 아우라와 같은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Kim, 2013).

‘아’의 근간은 유가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화목을 통해 세상 을 이해하고자 하는 강희안의 취미와 일면 상통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문진형이 추구하는 ‘아’는 화목의 외관에서 환기되는 기 운을 말하는 것이어서, ‘아’의 근원적인 가치와는 차이가 있다.

한편, 장물지을 읽다보면 문진형이 유난히 ‘속된 것’을 꺼 려했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주로 화목의 배식법 으로 설명된다.

[목련과 동백은] 같은 시기에 꽃이 피는데, 개화기가 되면 홍백이

(10)

엇갈려 있는 것이 화려하게 눈길을 끌지만 그리 격조 있는 모습은 아니다(差俗) (Chen, 1984; Zhao, 2010).

벽도(碧桃)와 인면도(人面桃)는… (중략) 보통의 복사꽃보다 고와 서(更美) 연못가에 많이 심으면 좋다. 그러나 복사나무와 버드나 무를 같이 심는다면 그것은 매우 촌스러운 일이다(相間便俗) (Chen, 1984; Zhao, 2010).

문진형은 꽃의 색이 지나치게 화려하게 어우러지거나 연못 가에 두면 좋은 화목이라도 무턱대고 함께 심는다면, 이것은

‘속된 것’이라 하였다. 또한 그는 두서없고 번잡스러운 경관을

‘술집’과 같은 저잣거리의 모습에 비유하여 화목으로 연출될 수 있는 저속한 풍경을 비난한다.

꽃은 의당 하늘거리고(瘦) 예뻐야지(巧) 번잡스러운 것은 적합하 지 않다. 만약 가지(枝) 하나를 꽂는다면 반드시 가지가 특이하고 (奇) 예스러운(古) 것을 골라야 하고, 두 개를 꽂는다면 (품격의) 고하(高下)가 있어야 한다. 또한 [화병에] 한 두 종만 꽂아야지 너 무 많이 꽂으면 술집같이 된다(Chen, 1984; Zhao, 2010).

목향(木香)이 시렁 위를 타고 올라가 처마가 되면 이를 ‘목향시렁 (木香棚)’이라 부른다. 시렁의 목향에 꽃이 필 때, 그 아래에 사람 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앉아있으면, 이 광경이 술이나 음식을 파 는 집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Chen, 1984; Zhao, 2010).

문진형은 꽃병에 이것저것 예쁜 꽃을 마구 꽃아 두는 것이 나, 목향이 화려하게 핀 시렁 아래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모여 있는 모습은 문인과는 격에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처럼 장물지에는 유난히 ‘속된 것을 꺼린다(忌俗)’는 표 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하여 혹자는 강박증과 혐오증과 같은 문진형의 개인 성향이 드러나는 것이라 했지만 (Kim, 2013), 장물지에 일관되게 드러나고 있는 문인의 취향 을 생각할 때, 여기서 ‘속(俗)’은 단순히 속된 것을 꺼린다고 보 기 보다는 오히려 ‘아(雅)’를 드러내기 위한 역설로 이해해야 한다. ‘속’을 반복하고 강조함으로써 결국 ‘아’를 취하려는 자신 의 속내를 더욱 강렬하게 표출시킨 것이다.

3. 화목의 식재 방식과 화분에 두고 즐기기(盆玩) 여기서는 두 저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화목을 중 심으로 다루되, 화분에 대한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양화소록 과 장물지에서 서로 다루고 있는 화목에 대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첫째, 양화소록 은 장물지보다 200년가량 앞서 제작되었 지만 다수의 화목이 서로 겹친다. 이것은 당시 우리나라와 중 국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조선 초기 문인

사회는 중국의 사상과 문예를 크게 영향 받았던 때였고, 대부 분의 화목을 중국 자료를 전거로 들어 설명하는 강희안의 경우 도 예외는 아니었다.

둘째, 서로 다른 주거 환경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 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전통적으로 한옥의 가옥 구조를 바 탕으로 외부공간이 만들어지는데 반해, 중국은 가옥을 화목, 수 석 등과 마찬가지로 원림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간주하기 때문에 화목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확실히 넓고 다양하다.

게다가 본가가 진주인 강희안은 서울 땅이 비싸서 뜰에 화목을 가꾸는데 환경적 제약이 있었음을 토로한 것18)에 비해, 문진형 은 오(吳) 지역을 대표하는 가문의 사람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 있었다.

셋째, 두 사람이 거주했던 지역 환경의 차이를 들 수 있다.

강희안이 거주하던 한양과 문진형이 거주하던 소주는 기후환 경에서 차이가 있다. 위도 37.6도에 위치한 한양을 기준으로 했 을 때 문진형의 고향인 소주(蘇州)는 위도 31.3도로, 제주보다 낮다. 이 때문에 화목 선정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 다. 강희안이 한양에서 대나무 키우기를 몹시 힘들어 했고, 겨 울철 냉해를 방지하기 위해 토우(土宇)를 자주 이용했던 반면,

장물지에는 대나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남부수종인 목서 (桂)나 해당화(玫瑰) 등이 등장한다. 이것은 서로 다른 환경으 로 인해 나타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저술하는데서 오는 배경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양화소록 은 화 분에 키운 소재만을 한정하고 있지만, 장물지는 원림의 한 요 소로서 화목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저 서에는 공통으로 나오는 화목이 많으며, 장물지에는 화분에 심는 화목에 대한 견해가 적지 않게 등장하므로, 본 연구에서는 상기한 내용을 기저에 두고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비교하였다.

두 저서에는 소나무와 향나무, 대나무, 국화, 매화, 난혜, 서 향화, 연꽃, 치자화, 사계화, 동백, 자미화, 석창포가 등장하며, 강희안이 땅에 심어야 마땅하다 하여 기술을 생략한 모란과 작 약 또한 포함되어 있다19). 괴석을 화목류와 함께 화분에 심어 감상하도록 한 것 역시 공통적이다. 양화소록 에서만 등장하 는 것은 오직 귤나무와 왜철쭉이고20)장물지에는 앞서 언급 한 소재들 외에도 수선, 양귀비, 부용, 원추리, 옥잠 등의 초화 류 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두 저자는 모두 소나무를 실내에 두어 예스러운 자태를 감상 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소나무를 마당(庭)에 심을 때는 강희 안은 섬돌 앞에 심고(階前偃蓋一孤松)21), 문진형은 넓은 마당 앞이나 넓은 대(臺) 위에 대칭하여 짝을 이루어 식재하였다(栝 子松植堂前廣庭或廣臺之上不妨對偶)(Chen, 1984; Zhao, 2010)(Figure 1 참조). 매화 역시 예스러운 자태와 향기를 감상하고자 하였다.

난혜와 서향화는 향기를 즐겼고, 석류는 붉은 꽃의 색감이 주

수치

Figure 1. Banmuyingyuan(半畝營園) in Hongxueyinyuantuji(鴻雪因緣 圖記) 는 즐거움에 주목하였다. 연꽃 또한 모두 연못에 키우는 것을 가장 합당하다 여겼다
Figure 2. Example of the arrangement of pots in outer space in Joseon period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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