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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분석 08 주: 종교철학 II: 신의 비존재 증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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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적 분석

제 8 주: 종교철학 II: 신의 비존재 증명

(2)

악의 문제

목적론적 논증이 자비로운 설계자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이라면, 그논증에 대한 가장 주요한 반론은 악의 문제 (problem of evil)를 지적하는 반론이다. 고대에 에피쿠로스(342-270 B.C.) 는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신은악을 막으려고 하는데도 악을 막을 능력이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하지 못하다. 신은 악을 막을 능력이 있는데도 악을 막으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신은 자비롭지 못하다. 신은 악을 막을 능력이 있고 또한 악을 막으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왜 악이 있는가?"

(3)

악의 문제 (계속)

흄은 이논증을 다음과 같이 딜레마 형식으로 제시한다.

만일 이 세상의 악이 신의 의도에서 나온다면, 신은 자비롭지 않다. 만일 이 세상의 악이 신의 의도를 벗어나 일어난다면, 신은 전능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 세상의 악은 신의 의도와 일치하거나 신의 의도를 벗어난다.

그러므로 신은 자비롭지 않거나 전능하지 못하다.

(4)

악의 문제 (계속)

흄의논증은 다음과 같이 형식화될 수 있다:

P1.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P2. 만일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나왔다면, 신은 자비롭지 않다.

P3. 만일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벗어나 일어난다면, 신은 전능하지 못하다.

C. 그러므로 신이 존재한다면, 자비롭지 않거나 전능하지 못하다.

더하여, 다음 전제를 추가해 보자:

P4.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자비롭고 전능할 것이다.

C와 P4로부터(즉 P1-P4로부터) 다음 결론이 타당하게 도출된다.

C*.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5)

신 개념의 분석

다음 정의를 고려해 보자:

D1. 신=df.전능하고 완벽히 자비로운 존재.

위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P4는 분석적 참일 것이다:

P4.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자비롭고 전능할 것이다.

따라서 유신론자는 P1-P3 가운데 하나를 부정하여야 한다:

P1.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P2. 만일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나왔다면, 신은 자비롭지 않다.

P3. 만일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벗어나 일어난다면, 신은 전능하지 못하다.

(6)

~P1: 악은 없다?

유신론자는 P1을 부정할 수 있을까?

~P1. 세상에 진정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해결책은 제안 자체가 상당히 뻔뻔스럽다고 여겨질 정도여서 받이들이기 어렵다. 무엇이 악인가에 관해서는 사람들 사이에 완전히 일치하는 의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 어떤 종류의 악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보통 우리는 고통과 고난이 나쁘다고 믿으며, 그것들을 되도록 피하거나 최소화하려고 할 때 이 신념을 드러낸다.

(7)

~P1: 악은 음성적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이 양성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결핍이나 상실, 즉 음성적인 것이리는 생각을 제시했다. 악은 전혀 없고 다만 선의 상대적인 결핍 상태가 있을 뿐이다. 악은 그야말로 비존재 (nonbeing) 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랬듯이 이 주장에는 실재하는 것은 완전한 것이므로 오직 신만이 완전하게 실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유한하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신의 피조물은 반드시 불완전한 선을 포함하므로 어느 정도는 악을 포함한다는 주장이 때로 덧붙여지기도한다

(8)

~P1: 악은 음성적이다? (계속)

그러나 악이 음성적이라는 제안은 말장난처럼 들린다. 전쟁은 음성적인 것, 즉 평화의 결핍 상태인가, 아니면 평화가 음성적인 것, 즉 전쟁의 결핍 상태인가? 전쟁과 평화를 어떤 방식으로 분류하든 둘 다 실재한다—전쟁도 있고 평화도 있다. 행복도 있고 고통도 있으며, 선도 있고 악도 있다. 양성적이거나 음성 적인 것으로 분류한다고 해서 실재하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을 겪는 사 람이 “고통은 음성적인 것일 뿐이다”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고통이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

(9)

~P1: 악은 음성적이다? (계속)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악이 음성적이고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비존재라고 하더라도 흄의 논증은, 약간만 수정하면, 신의 존재에 대한 강력한 반대논변으로 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P1*. 세상은 결핍되어 있다.

P2*. 만일 세상이 결핍되어 있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나왔다면, 신은 자비롭지 않다.

P3*. 만일 세상이 결핍되어 있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벗어나 일어난다면, 신은 전능하지 못하다.

P4.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자비롭고 전능할 것이다.

C. 그러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P1*은, 악이 음성적이라고 제안하는 철학자에 의하면, 우리가 “악이 존재한다”고 오도적으로(misleadingly) 말할 때 정말로 의미하는 바를 기술한 것이다. 따라서 그런 철학자조차도 P1*은 부정할 수 없다. 위 논증은 명백히 타당하다.

(10)

~P2: 악을 허용하시는 신이 자비롭다?

이렇게 볼 때, P1를 (또는 P1*를) 부정하는 길은 악의 문제 논증에 대한 그럴 듯한 해결책이 될 수 없어 보인다. 다음으로 고려해볼 해결책은 P2를 부정하는 것이다:

~P2. 세상에 신의 의도에서 나온 악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신은 자비롭다.

그러나 이것이진정한 해결책이 되려면 자비로운 신이 왜 악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용인하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한 가지 그러한 설명은최대의 선을 위해서 (약간의) 악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11)

~P2의 설명: 악은 최대의 선을 위해 필요하다?

한 가지 자주 언급되는 설명은, 선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약간의 악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악이 있다는 것은 선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악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사례에 익숙해 있다.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 을 완전히 되찾을 수 없을 경우, 당신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고통스러운 수술—그 자체만 놓고 보면 좋지 않은 수술, 즉 수술을 받지 않고서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면 받지 않을 수술—을 받는다. 고통과 고난을 당하는 일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 는 유일한 수단일 경우에 한하여 고통과 고난은 가치가 있다. (다음 슬라이드에 계속)

(12)

~P2의 설명: 악은 최대의 선을 위해 필요하다? (계속)

(앞 슬라이드에서 계속)

이 같은 상황은 얼마든지 있다. 전쟁마저도 때로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또는 더 나쁜 세상을 막을 수 있는—유일한 방법이 된다. 따라서 이 세상에 악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최대의 가능한 선을 얻는데 필요한 최소의 가능한 악이기 때문에 악은 신의 선함과 양립할 수 있다. 이것이 완전한 세상은 아니지만 가능한 모든 세상 가운데 최선의 세상이다.

(13)

~P2의 설명: 기적없는 최대선을 위해 악은 필요하다?

반론: 하지만 신은 전능하니까 어떤 악도 불러일으키지 않고 선을 최대화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의사가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환자에게 고통을 가하는 일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이 같은 생각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목적을 성취할 수 없는 제한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그러나 일단 의사가 환자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 어떻게든 고통을 가한다고 의심하게 되면, 우리는 그 의사를 무자비하고 사디스트 적인 괴물로 간주할 것이다. 신은 의사와 달리 전능한 존재라서 환자에게 지독한 고 통을 안기지 않고도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다. 그런데 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14)

~P2의 설명: 기적없는 최대선을 위해 악은 필요하다?

(계속)

재반론: 자연법칙을 망가뜨리는 기적을 불러일으키지 않고서 선을 최대화하려면 약간의 악은 용인해야?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기적이 필요한데, 계속해서 기적을 일으키면 자연의 정연한 질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 법칙은 어느 경우에도 전혀 기적을 필 요로 하지 않을 만큼 매우 탄탄하게 세워질 수 있다. 어쨌든 자연 법칙의 입안자는 누구인가? 신은 왜 피조물이 그토록 고통을 겪다가 죽어가도록 인과질서를 세웠는가?

(15)

~P2의 설명: 기적없는 최대선을 위해 악은 필요하다?

(계속)

종합하자면: 전능한 신은, 악한 수단을 동원함이 없이, 잦은 기적을 불러일으키지 않고서도, 선을 최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자비롭다면왜 세상에 악을 용인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자비롭지만 전능하지 못한 의사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능한 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전능한 신은 선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 악한 수단을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6)

~P2의 설명: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다?

또다른 설명은,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악은 인간의 사악함으로 인해서 생겨난다. 인간은 자유롭다. 이것은 선뿐만 아니라 악을 행할 자유도 있다는 것을 의 미한다. 전능한 존재일지라도 인간을 자유롭게 해놓고서 악은 행하지 못하게 할 수 없다.

따라서 악은 인간이 갖는 자유의 불가피한 귀결이다.

이것이 아마 악의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되는 논증일 것이다.

(17)

~P2의 설명: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다?

하지만 자연적 악과 도덕적 악 사이에 차이가 있다.

I 자연적 악: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의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들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지진, 화산 폭발, 홍수, 허리케인, 전염병들이 자연적 악의 예이다. 이런 재난들은 인간의 활동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I 도덕적 악: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하는 나쁜 행위들을 말한다. 이를테면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고통, 약탈, 살인, 전쟁 등이 도덕적 악의 예이다.

이 가운데 인간의 자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악의 부류 는 오직 도덕적 악뿐이다. 자유를 근거로 하는 ~P2의 설명이 도덕적 악에 관해서는 그럴 듯하다고 할지라도, 자연적 악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18)

~P2의 설명: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덕적 악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하자.

A: 당신은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할 텐데,그것은 인간에게 선이나 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종종 악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자유의 결과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선택의 자유가 주어질 때 더 좋은 선택지 대신에 더 나쁜 선택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바로 이 사실에서 그 엄청난 악이 실제로 생겨나게 된다. 이를테면 권력을 쥔 한 사람이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을 강제 수용소에서

살해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인간이 가진 자유의 일부분이다.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면 당신은 시종일관 그에 따라야 한다. 인간이 자유롭다면 인간에게는 다른 인간에게 극악 무도한짓을 자행할 자유도 있다.

(19)

~P2의 설명: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다? (계속)

B: 하지만 인간의 자유가 그 엄청난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수백만 명의 다른 사람을 몰살할 권력이 한 사람의 자유로 인정된다면, 그 희생지들은 틀림없이 그 독재자의 자유를 조금이라도 더 제한하려고 했을 것이다. 독재자가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희생자들이 대학살을 당할 수밖에 없다.

독재자의 자유는 희생자들의 자유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포기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독재자의 자유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방 안에 독가스를 뿜어 대면서 이것이 독재자의 결정의 자유에 대해 희생자가 치르는 대가라고 말해 주는 것이 희생자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그보다 적은 대가를지불하면서 자유를 누 릴수는없을까?

A: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사람들이 자유롭다면 사람들에게는 악을 저지를 자유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는 일종의 망상이다.

(20)

~P2의 설명: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다? (계속)

B: 하지만 인간이 새처럼 날 수 없고 막대기나 돌멩이를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에게 자유롭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런 제약들에 조금 더 제약을 가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공격을 받 지 않도록 보호 장비를 착용함으로써 살인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수많은 결정을 내리고, 사람들에게 많은 선택권이 허용되어 있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자유로운 다른 행위자를 파멸시키지 않고서도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영역들 가운데 하나는 학문적 창조나 예술적 창조의 영역이다. (다음 슬라이드에 계속)

(21)

~P2의 설명: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다? (계속)

B: (앞 슬라이드로부터 계속) 살인을 동반하기까지 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고서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많이 있다. 나는 그런 영역들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선택의 기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 상태로는 한 사람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자유로우면서도 악이 없는 세상을 신이 고안해 낼 수 없다면 신은 전능하지 않다는 것을 당신에게 상기시키고 싶다.

(22)

~P2의 설명: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다? (계속)

A: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의 전능함은 신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도형이 원이라면 그것은 사각형이 아니기 때문에, 신은 둥근 사각형을 그릴 수 없다. 또한 신은 이미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도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신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전능

(omnipotence)은 자연 법칙을 중지시키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을 행하는 능력이다.

(23)

전능함이란 무엇인가?

A와 B 사이의 대화에서 중요하게 떠오른 한 가지 이슈는 이것이다:

과연 전능한 신은 자유의지를 부여하면서도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인간을 창조할 수 있었는가?

만일 이 물음의 대답이 “그렇다”라면, ~P2에 대한 앞의 설명, 즉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려면 자비로운 신조차도 그 결과로 발생할악의 가능성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잃게 된다. 만일 그 대답이 “아니다”라면 그 설명은 그럴 듯해진다.

이제 다음 정의를 생각해 보자:

모든 x에 대해서, x가 전능하다면 그리고 그래야만 x가 의도하는 모든 것이 실현된다.

여기서 문제는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한 사건들만 포함하는지, 아니면 불가능한 사건들까지 포함하는지이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

(24)

~P2의 설명: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다? (계속)

B: 신이 전능하다는 말은 신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행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고서도 인간이 이미 여러 가지 점에서 제한받고 있는 것처럼, 그 자유가 다른 여러 가지 점에서 제한되도록 인간을 창조하는 일이 어째서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겠는가? 사람들은 새처럼 날 수 없으면서도 어째서 (예컨대) 다른 사람을 그렇게 쉽게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수 있을까?

즉, 설혹 전능하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한 어떤 사건도 신이 의도하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지라도, 예컨대 살인은 불가능하면서도 다른 행위에서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는 것은 분명히 가능했기에, 자비로운 신이 왜 살인이라는 악을 저지를 수 있도록 인간을 창조했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25)

~P2의 설명: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다? (계속)

A: . . . 인간답게 자유로운 행위자를 창조하여 우주 안에 정착시키려는 창조주에게는 세 가지 선택지가 가능하다:

1. 창조주는 개선할 필요가 전혀 없는 완벽한 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

인간답게 자유로운 행위자는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알고 올바른 것을 추구하며,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2. 창조주는 모든 것이 개선될 필요가 있는데도 전혀 개선될 수 없는 근본적으로 악한 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 (다음 슬라이드에 계속)

(26)

~P2의 설명: 인간의 자유가 악의 원인이다? (계속)

(앞 슬라이드에서 계속)

3. 창조주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근본적으로 선한 우주, 즉 개선되어야 할 것이 많고, 인간답게 자유로운 행위자 모두가 무엇이 올바른지 아는 것은 아니며, 그들의 목적이 종종 좌절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목적 달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

신이 창조한 세계는 세번째이다. 왜냐하면 그런 우주에서만 그들 자신의 결정과 행위를 통해서 인격을 형성할 수 있고, 그들 자신의 행위 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27)

너무 많은 심각한 악?

그러나 그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흄의 논증은 여전히 신의 비존재를 보여주도록 수정될 수 있다:

P1#. 이 세상에는 그것이 완벽하거나 기본적으로 선한 우주이기에는 너무 많은 심각한 악이 존재한다.

P2#. 만일 이 세상에는 . . . 너무 많은 심각한 악이

존재하며, 그것이 신의 의도에 따라 일어난다면 신은 자비롭지 않다.

P3#. 만일 이 세상에는 . . . 너무 많은 심각한 악이

존재하며,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벗어나 일어난다면, 신은 전능하지 못하다.

P4.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자비롭고 전능할 것이다.

C*.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기독교적 전통의 신개념 하에서 P4는 분석적 참일 것이며, 지금까지의 논의를 돌이켜볼 때, 어떻게 P2#를 부정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렵다. P3#가 참이라고 해보자. 만일 당신이 유신론자라면, 유일하게 남은 선택은 P1#를 부정하는 것이다.

(28)

너무 많은 심각한 악? (계속)

P1#을 풀어쓰면 다음과 같이 된다:

P1#. 이 세상에는, 그것이 완벽하거나 기본적으로 선한 우주—즉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말해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이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우주—이기에는, 너무 많은 심각한 악이 존재한다.

이것을 원래의 P1과 비교해 보자:

P1.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확실히 P1이 참이라는 것은 P1#가 그러하다는 것보다는 더 명백해 보인다.

(29)

너무 많은 심각한 악? (계속)

하지만, 곱씹어보면 P1#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다음은 배를 타고 시리아에서 탈출하다가 죽은 에이란 쿠르디의 사진이다 :

대체 티없는 세 살 아이가 단지 시리아 난민 부모에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죽을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이, 자유로운 인간들이

개선해나갈 만한 기본적으로 선한 우주를 만든다는 목적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30)

~P3의 설명: 신은 전지하지 않다?

P1, P2, 그리고 P4가—또는 P1#, P2#, 그리고 P4가—거짓일 수없다면, 아마도 P3는 참일지 따져봐야할 것이다. 다음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P3. 세상에는 신의 의도에서 벗어난 악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전능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유일한 설명은 아마도 신은 자비롭고 전능하기 때문에 악이 발생하는 것을 알았다면 그것을 방지했겠지만, 사실 신은 악이 발생하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망없는 해결책이다. 적어도 기독교적 전통 하에서는 다음 정의가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D2. 신=df.전능하고 완벽히 자비로우며 모든 것을 아는 존재.

(31)

보다 완전한 악의 문제 논증

신의 전지함(omniscience)이 어떻게 악의 문제와 관련될까? 그 논증의 새로운 버전은 다음과 같다:

P1.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P2. 만일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나왔다면, 신은 자비롭지 않다.

P3a. 만일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벗어나 일어났으며, 신이 그것을 알고도 막지 못했다면, 신은 전능하지 못하다.

P3b. 만일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벗어나 일어났으며, 신이 그것의 발생을 알지 못했다면, 신은 전지하지 못하다.

P4.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완벽히 자비롭고, 전능하며, 전지할 것이다.

C. 그러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32)

보다 완전한 악의 문제 논증 (계속)

이미 논했다시피, P1은 부정할 수 없다. P2를 부정하려면

자비로운 신이 어떻게 의도적으로 악을 허용할 수 있는지 설명하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모든 설명은 불만족스러웠다. P3a와 P4b는

“전능”과 “전지”의 뜻에 의해 분석적으로 참인 듯하다. P4는 기독교적 신개념 자체처럼 보인다. 이 논증은 타당하다. C를 합리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길은 정말 없을까? 이미 말했듯이, P1-P3b를 부인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기독교의 신개념 즉

D2. 신=df.전능하고 완벽히 자비로우며 모든 것을 아는 존재

를고수하는 한 P4를 부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기독교적 신개념을 부분적으로 포기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33)

~P4: 신은 자비롭지 않거나 또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이것은 다음 주장을 수용할 것을 요구한다:

~P4. 신은 완벽히 자비롭지 않거나 또는 전지전능하지 못하다.

이것은 다음 세 가지 가능성들을 허용한다:

1. 신은 전지전능하지도, 완벽히 자비로운 것도 아니다.

2. 신은 전지전능하지만 완벽히 자비로운 것은 아니다.

3. 신은 완벽히 자비롭지만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첫째 가능성이 맞다면, 우리가 왜 그런 존재를 경배해야 하는지 알 수없다. 따라서 나머지 두 가능성들만 다루기로 하자.

(34)

~P4의 설명: 악신의 가능성

둘째 가능성, 특히 신이 완전히 악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전능한 사탄을 상싱해 보면 이 세상에 악이 만연하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은 정말 사탄이 설계한 것 같다. 이 악마 가설에 대한 증거는 신이 자비롭고 전능하다는 견해에 난점이 있다는 바로 그 사실, 이를테면 인간의 불행과 고난이 만연해 있다는 것, 생물이 다른 생물을 잡아먹음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 등등에서 발견된다. 수많은 사람이 서서히 고통을 받다가 죽어가고, 지진으로 인해 지하의 바위틈에 끼인다면, 이것이 바로 악의적 존재가 기뻐할 그런 종류의 것이다. 전통 신학에서 문제가 되는 일이 악마 가설에서는 “예사로운 일”이다.

따라서 악신의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면, 유신론자는 악의 문제로부터 놓여날 수 있다. 또 신이 이런 의미에서 악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신(?)의 변덕과 횡포를 피하려면 숭배하고

제사지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악신은 적어도 우리에게 도덕적 권위를지니는 그런 존재일 수는 없다.

(35)

~P4의 설명: 신의 선6=인간의 선?

이보다 더 인기있는 관점은, 우리들이 가진 선의 개념으로 볼 때 신이 완전히 선한 것은 아니지만, 신 자신의 선의 개념을 놓고 볼 때는 그가 완전히 선하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1. 어떤 인간이 선하다고 말할 때와 2. 신이선하다고 말할 때,

“선”이라는 말이 1에서 나타내는 개념과 2에서 나타내는 개념은 서로 다르다는 관점이 영향력을 가져왔다. 그리고 후자의 개념에 의하면 신은 완벽히 선하다. 자연의 질서를 생각해 보자. 인간적 관점에서는, 서로 잡아먹다가 비참하게 죽는 야생동물의 삶은 악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런 자연질서에는 어떤 비장미같은 것도 있는 듯하다. 아마도, 신이 선하다는 것은 신 자신의 관점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36)

~P4의 설명: 신의 선6=인간의 선? (계속)

그러나, 이런 생각이 완전히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외계종족이 있어서, 고도의 문명을 가졌지만 우리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도덕체계를 가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은 주위에 있는 종족들이 서로 싸우게 하고 비참하게 죽게 만들지만, 그것이 그들의 관점에서는완벽하게 선하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왜 우리들의 관점에서 그들을 평가할 때 그들이완벽하게 선하다고 말해야 하는가? 비슷한 관점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대로의 신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37)

~P4의 설명: 불완전한 신?

신이 전지전능하지 못하다면 어떨까?

자비롭기는 하지만 미약한 인간처럼 능력이 유한한 우주 설계자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견해에 따르면 악의 문제는 없다. 신의 지식이나 능력이 유한하여 존재하는 악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악이 존재한다. 신은 인간과 함께 이 세상의 악을 최소화하려는 동업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가 때로 제안되기도 했다. 이 견해는 악의 문제에 부딪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악이 부분적으로 사람들에게 달려 있고 사람들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악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하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을 확실히 보증해 줄 수 있는 신—예를들어 보상을 받을만한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고, 전혀 계획에 차질이 없는 신—을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38)

~P4의 설명: 불완전한 신?

종합하자면, 신이 완전히 자비롭지 않거나 전지전능하지 않다면, 우리가 신을 경배하는 두 가지 이유들 중에 적어도 하나는 충족되지 못할 것이다:

1. 신은 우리들에게 도덕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 신이 악하거나 우리들의 도덕성과는 다른 어떤 이질적인 의미에서만 선하다면, 설혹 그가 우리에게 나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숭배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경배는 아닐 것이다.

2. 신은 우리들에게 현세 혹은 내세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신이 완전히 자비롭더라도, 그가 부분적으로 무지하거나 부분적으로 능력이 없어서 현세의 행복도 내세의 행복도 제공해 주지 못한다면, 도덕적 존경의 대상은 되더라도 종교적 신앙의 대상은 되지 못할 것이다.

(39)

요약

I 몇천년 전부터 신의 존재와 세계 속의 악의 존재가

양립불가능하다는 논증이 고려되어 왔다. 그런 논증을 “악의 문제”라고 부른다.

I 흄은 악의 문제 논증을 다음 형태로 제시한다: P1.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P2. 만일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나왔다면, 신은 자비롭지 않다. P3. 만일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그것이 신의 의도에서 벗어났다면, 신은 전능하지 않다. P4. 신이 존재한다면 전능하고 완벽히 자비로울 것이다. C.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I 신의 다음 정의를 고려해 보자: D1. “신”은 전능하고 완벽히 자비로운 존재에 적용된다. 이 정의가 옳다면 P4는 분석적 참이다.

(40)

요약 (계속)

I P1, 즉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I 악이 음성적이다, 즉 어떤 의미에서 결핍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철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핍”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과연 악이 과연 결핍일 뿐 진정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I 더 중요한 문제로서, “악이 존재한다”는 문구를 “세상이 결핍되어 있다”로 바꿔도 악의 문제 논증은 그대로 성립할 것이다.

(41)

요약 (계속)

I 따라서 P2를 부정하는 게 더 그럴 듯한 해결책이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해결책은 자비로운 신이 왜 악을

의도적으로 허용하는지 설명할 것을 요구한다.

I 한 가지 설명은 선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약간의 악은

요구된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주사로 인한 약간의 통증을 허용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I 그러나 이 설명은 신의 전능함과 조화되기 어렵다. 유한한 능력만을 가진 의사는 아픈 주사를 놓지 않고서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겠지만, 전능한 의사가 있다면 아무 통증 없이 같은 환자를 치료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전능한 신이 있다면 어떤 악도 불러일으키지 않고 세상의 선을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I 하지만 악이 발생하려할 때마다 그것을 방지하려면

시시때때로 기적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자연의 정연한 질서를 지키려면 잦은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이 전능하다면 애초에 인과질서를 수립할 때 기적이 없이도 어떤 악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지 않았을까?

(42)

요약 (계속)

I 자비로운 신이 왜 악을 의도적으로 허용하는지에 대한 또다른 인기있는 설명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허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I 그러나 이 설명도 갖가지 문제점들을 동반한다. 자유의지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배스킨 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했으면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왜 결백한 희생자에게 총탄을 날리는 선택을 가능하게 인간을 창조했는가?

I 아마도 1. 완전히 선한 세계, 2. 기본적으로 악한 세계, 3.

불완전하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 의해 개선되어 나갈 수 있는 기본적으로 선한 세계 가운데서 오직 3.만이 자유의지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그런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I 그러나 이 세계에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선한 세계이기에는 너무 많은 심각한 악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이란 쿠르디의 죽음은 그런 예이다.

(43)

요약 (계속)

I 그렇다면 P3를 부정하면 어떨까? 그러나, 자비로우며 전능한 신이 그가 의도하지 않은 악이 발생해도록 놔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I 한 가지 제안은 그가 자비롭고 전능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악이 발생하는것은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I 그러나 이것은 가망없는 해결책이다. 신에 대한 기독교적 개념에 의하면 신은 자비롭고 전능할 뿐만 아니라 전지한, 즉 모든 것을 아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I 달리 말하자면, 악의 문제 논증은 대략 다음처럼 다시 수정될 수 있다: P1.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P2-P3b. 만일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면, 신은 자비롭지 않거나, 전능하지 못하거나, 전지하지 못하다. P4.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완벽히 자비롭고, 전능하며, 전지할 것이다. C. 그러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44)

요약 (계속)

I 위 논증은 타당하며 P1-P3b는, 위에서 논의되었던 대로,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I P4 역시 기독교적 신개념에 의하면 분석적 참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신개념을 부분적으로 수정한다면 어떨까?

I 만일 신이 완벽히 자비롭지도, 전지전능하지도 않다면, 왜 그런 존재를 경배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I 만일 신이 악하지만 전지전능하다면, 그의 횡포를 피하기 위해 그런 신을 경배해야 될지도 모르지만, 인간들에게 어떤 도덕적 권위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I 만일 신이 전지전능하지는 못하지만 완벽히 자비롭다면, 그런 신은 도덕적 존경의 대상이 되겠지만 우리에게 현세나 내세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다.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