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인력의 해외유출
| 정 욱 |매일경제신문 지식부 기자 ([email protected])
‘인재가 ○○의 미래다’, ‘사람이 곧 기업이다’, ‘사람이 성장의 근본이다.’
이는 국내 대기업들이 내걸고 있는 인재경영 구호이다. 비단 구호를 살펴보지 않 아도 인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많은 기업이 인재 확 보를 위해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인력을 보강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기업이 인재 확보에 들이는 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성과 노력이라면 이제 국내 우수인재들이 한국 기업을 선호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반대의 상황이 다. 최근 취업 준비 중인 우수인재를 상대로 한 설문에서 가장 좋은 조건의 취업은
‘외국 기업의 해외 본사 및 지점 취업’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매일경제신문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재수지 적자, 한국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우수한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2004년 현재, 해외에 거주 중인 대졸 이상 인구는 15만 8,319명으로, 이는 전체 인구 4,900만 명 의 0.07%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의 0.03%(39만 198명)나 일본의 0.04%(29만 1,660명)보다 높은 수준이다. 지금 현재도 문제지만 해외유출 증가추이를 계산해보 면 2015년에는 총 인구의 0.16%에 해당하는 대졸 이상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 으로 추산된다.
한국을 떠나는 것 자체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우수한 인력이 해외에서 선진 기술을 배우고 돌아온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한국을 떠난 우수한 인재의 대 부분이 해당 국가에 정착하고 만다는 점은 큰 문제가 된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조 사에 따르면 미국대학 이공계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중 미국에 머 무는 사람의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1992~1995년 학위 취득 5년 후에 미 국에 머무는 비율은 1,849명으로 전체의 42.1%였다. 그러나 2000~2003년 이 비율 이 69.9%까지 증가한다. 즉, 미국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10명 중
현재 우수한 인재들이 한국을 떠 나고 있으며, 우수한 인재 대부 분이 해당 국가에 정착하고 있 음. 이러한 수치는 2000~2003 년 현재 69.9%까지 증가함
7명은 5년이 지나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셈이다. 이는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 굴지의 전자업체 인사 담당 A부장은 구체적인 협상 조건 등이 조율된 상태에서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인재의 영입을 시도했을 때 성공확률이 10% 미만이라고 말 한다. 이미 구체적 조건 등에서 합의를 본 상태에서도 10명 중 1명만이 한국으로 돌 아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해외에 거주 중인 한국인 인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 내에서 우수한 기술을 개발하고 보유한 핵심인력 역시 외국으로 떠나고 있다. 휴대 전화, 반도체 등 한국이 선진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에서 한국 기술자들은 산업 스파이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미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 잘 알려졌듯이 이로 인한 피해는 심각하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선진기술 해외 불법 유출 건수는 2002년 5 건, 2003년 6건에서 2004년 26건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29건을 기록했다. 피 해액은 2002년 200억 원에 불과했으나, 2003년 13조 9,000억 원으로 695배 늘었 고, 2004년 32조 9,000억 원, 2005년 35조 5,000억 원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이들 피해의 대부분은 우수인력이 정보를 빼돌려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인재의 해외유출로 인한 이득 역시 적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세기 한국은 우수인력의 해외 송출로 선진 기술을 배웠다. 또 해외로 나간 인력 들이 한국으로 보내오는 송금액은 국내 투자의 기초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제 시대가 변했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대학교육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 중 이민자의 비율이 15% 수준이다. 대학교육 이상 이수한 사람의 이 민비율이 한국과 비슷한 국가는 도미니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이다. 이 중 이민으 로 인한 GDP 증감 효과 비교에서 온두라스가 0.04% 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 반 면, 한국은 -0.04%로 나타났다. 우수 인력의 이민율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온두라스의 GDP 성장률 영향에 차이가 있는 것은 국가별 산업구조가 다르기 때문이
인재유출로 인한 GDP 증감 효 과에서 한국은 -0.04%로 나타 나, 해외 인력 유출은 국가 경쟁 력 약화로 직결됨을 보여줌 그림1. 졸업 후 5년 내 귀국하지 않는 이공계 석박사
2,500
2,000
1,500
1,000
500
0
1992~95 1996~99 2000~03 1,849
42.1% 50.9%
69.9% 체류율
1,759 2,409
자료: National Science Foundation, Science and Engineering Indicators 2006.
명
다. 온두라스는 해외 진출 인력이 배워온 기술로도 발전이 가능하다. 아직 경제발전도 가 높지 않고, 주력 산업 역시 첨단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반 대다. 경제성숙도가 높은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각 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을 벌여 야 한다. 그만큼 해외로의 인력유출은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핵심인재의 비율과 국 민소득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더라도 이 같은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보상체계 미흡이 원인
한국의 핵심인력이 해외로 빠져 나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인재에 대한 사회적 보상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데 있다. 한 국 사회에서는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더라도 사회적으로 인 정받기 쉽지 않다.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은 의사, 변호사 등 이론바‘사(士)자 직업’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적 보상체계를 가장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임금을 살펴보면 이를 확실 히 알 수 있다. 고용정보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04년 변호사의 평균 임금은 1억 3,068만 원, 의사 8,921만 원에 달했다. 이에 비해 기업임직원은 6,366만 원, 엔지니어 3,404만 원, 과학자는 3,978만 원에 불과했다.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수입을 낮추어 신고하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실제 격차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심인재들은 기업이나 이공계를 택하기보다 수입 과 사회적 인정이 보장된 의대나 고시로 몰릴 수 밖에 없다.
인재의 편중은 이미 고등학생들의 대학 학과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① 사회적 보상 체계의 부재
② 조직 내 인화를 중시하는 한 국의 기업문화
③ 한국의 열악한 사회적 인프라
그림2. 두뇌유출과 국민소득
주: 두뇌유출 지수 = (1/IMD Brain Drain Index)×100(숫자가 클수록 두뇌유출 정도가 큼).
자료: IMD(2004), OECD(2004).
공계열에서 수학능력시험을 기준으로 상위 30개 학과를 살펴보면 2006년에는 의 대, 치대, 한의예과 등이 총 26개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가장 높은 학과인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도 27위에 머물러 있다. 이는 지난 82년 이공계 상위 30개 학과 중 의 대, 치대, 한의예과가 15곳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변화를 절감할 수 있다. 사회적 보 상체계가 갖추어지지 않고, 이를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인지하는 상황에서 한국에 남아있기를 원하는 핵심인재가 많을 수는 없다.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려 는 인재를 한국 사회가 해외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기업문화도 문제다. 조직 내 인화를 중시하는 한국의 기업문화는 핵심인재를 발탁하는 데 장애가 된다. 이 때문에 인재를 키우는 일은 항상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기업 관계자들 역시 인재를 키우지 못하는 문화를 인정하고 있 다. 대기업 B사의 대표는“유능한 인재를 시기하는 문화에서는 인재가 크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헤드헌팅업체의 C대표는“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기업의 문화가 인재의 성장을 막는다”고 말한다. 또한 D은행 인사담당 임원은“내놓고 핵심인재를 키울 수 없 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라고 토로한다. 최근 한 행사에서“상당수 회사는 A급 인재(핵 심인재)를 뽑아다 B급 일을 시키고 C급 보통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라는 한행수 대한 주택공사 사장의 지적은 이러한 우리 기업의 인재관리를 잘 꼬집었다고 볼 수 있다.
인재가 한국을 빠져나가는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의 사회적 인프라가 열악하기 때 문이다. 해외에 거주 중인 한국인 핵심인재들은“한국은 경력 관리도 하기 힘들뿐더 러 자녀교육 등이 걱정돼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IMD가 전 세계 인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가가선호도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60개국 중 42위에 머물렀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이라는 한국 경제의 위상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같은 조사 에서 한국에 대한 선호도는 10점 만점에 4.3점으로 미국(8.6점), 아일랜드(7.3점)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5.2점) 보다도 낮다.
그림3. 한국 업종별 연봉 비교
14,000 12,000 10,000 8,000 6,000 4,000 2,000
0 변호사 의사 기업임직원 엔지니어 과학자
13,068
8,921
6,336
3,404
3,978
자료: 한국고용정보원. 『직업통계』.
국민건강보험공단. 「2004년 전문직 개인사업단 건강보험료_. 만원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 인재들 사이에서 한국이 외면 받는 이유는 법률, 의료, 교육 서비스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구 1,000명당 의사 와 변호사 수는 각각 1.6명, 0.13명으로, OECD 가입국 평균인 2.89와 0.75명에 비 해 턱없이 낮은 실정이다.
경쟁 도입이 필수
우수한 인재가 한국에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보상 시스템이 개 선되어야 한다. 사회적 보상시스템의 개선을 통해서만 우수인재들이 기업과 연구개발 등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분야로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변호사, 의 사 등 현재 한국사회의 보상체계 중 최상위에 속한 직업부터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 변 호사와 의사는 잘 알려진 대로 인원 제한이 있는 대표적인 직군이다. 이 때문에 사회 타 분야에 비해서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원을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이 분야에도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 경쟁도입은 이들 분야에 대한 사회적 보상체계의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다. 또한 경쟁을 통해 서비 스의 강화 등을 촉발시켜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사회적 인프라의 향상까지 이 루어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우리 정부가 소득 3만 달러 달성 목표로 잡고 있는 2015년 까지 OECD 수준 달성을 위해서 변호사는 연간 2,000명을 더 선발해야 한다.
기업에서는 전반적인 경쟁을 확산시키고 이에 대한 보상을 적절히 실시해야만 인재의 해외유출을 막을 수 있다. 핵심 인재상을 명확히 규정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선발과정을 통해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핵심인재를 규정하고 나름의 경력개발 경로를 마련한 상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에서 선발과 정 및 선발된 대상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핵심 인재 선발 과정에 대한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힘들다.
그림4. 국가 선호도 지수
미국 아일랜드 중국 한국
8.6
7.3
5.2
4.3
자료: IMD(2004). IMD 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
60개국 중 42위
① 사회적 보상 시스템의 개선
② 기업 내 경쟁의 확산과 적절 한 보상 실시
③ 핵심인력에게 직급을 넘어 주 요 업무 분배
또한 이들 핵심인재에 대한 보상을 파격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 기업의 보상수준은 명확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보상수준 역시 낮다. 한국 기 업의 성과급 수준은 현재 삼성전자가 기본급의 100%를 지급하는 정도가 최고 수준 이다. 이는 선진기업의 평균인 200%의 절반으로 핵심인재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물론 기업의 매출이 고정된 상태에서 성과급만을 늘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의 실적에 기여한 공로에 따른 명확한 보상규정을 세우고, 그 상한선을 높임으 로써 잠자는 조직을 깨울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핵심인재로 분류된 직원에 대해서는 도전적인 업무를 맡기는 체계가 구축되 어 있어야 한다. 특히 직급을 뛰어넘어 핵심인재에 중요한 업무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기업은 연령, 직급을 중시해 연배에 맞는 업무를 맡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핵 심인재가 조직의 중요업무를 맡게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도전적이고 중요한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핵심인재가 한국 기업을 외면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핵심인재의 성장을 가로막고 해외유출을 조장하는 문제점들은 과감하게 개혁해 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기업문화 전반의 개혁을 필요로 하며, 그만큼 최고 경영자의 관심과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최고경영자가 인사를 자산의 업무로 여기고 적극적으로참여하는모습을보여야만조직의변화가성공적으로이루어질수있다.
인재가 모든 조직의 핵심이라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러 나 우리 기업은 아직까지 인력을‘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핵심 인재를‘자 산’으로 여기고 이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서만 육성하고 또 붙잡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 없이는 인재 유출 역시 계속될 수 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인력을‘비용’에서‘자산’으로 인식하는 사고 전환과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인재의 유출을 막아 야 함
2.89
1.6
0.75
0.13 의사
그림5. 인구 1,000명당 의사 및 변호사 수
변호사
자료: 통계청, 건강보험심사평가원, OECD, 대한변호사협회.
OECD 한국 단위: 명
국민건강보험공단(2004). 「2004년 전문직 개인사업자 건강보험료」. 한국고용정보원(2004). 『직업사전』.
NSF(2006). Science and Engineering Indicators.
IMD(2004). IMD 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
OECD(2004). Employment Outlook.
___(2005). Health Spending and Resources.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