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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 오규진, 허의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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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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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전기주거지를 중심으로42). 오규진․허의행*. 목. 차. Ⅰ. 머리말 Ⅱ. 연구동향 및 복원사례 검토 Ⅲ. 주거지 복원 Ⅳ. 복원된 주거지의 실험과 고찰 Ⅴ. 맺음말. <국문초록> 최근 주거지 조사방법과 관련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복원의 사례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취락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유구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우선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위에 개별유구에 대한 분석 및 해석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후, 취락 내 주거지 및 기타 유구 등의 배치상태와 기능적 공간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필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복원하고 내부에서 몇 가지 실험을 실시하여 조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복원의 대상은 청동기시대 전기의 세장방형 주거지로 결정하였다. 복원된 주거지 내부에서는 온습도 측정과 기타 노지와 관련한 실험을 실시하였다. 복원 결과 용마루의 설치 유무와 중앙 기둥 구멍의 판단에 다른 해석을 시도하였으며, 주거지 상면 및 기둥간의 결구 방식 등을 추정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화재폐기 주거지의 세심한 관찰을 통한 복원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실험결과 주거지 내부에서 노지의 운용은 1-2기 정도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노지 평단면의 관찰을 통해 일시적인 사용과 지속적인 사용의 확인방법을 추정하였다. 또한 바닥 점토 다짐과 숯의 이용을 통한 바닥의 경화처리 방식 등도 알 수 있었다. 이상의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주거지 노지에서 사용되는 땔감의 양을 추정하고 이의 확보 공간(면적)을 추정하여 보았다. 그 결과 백석동 유적을 비롯한 취락 들은 땔감의 확보공간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충청문화재연구원. - 175 -.

(2) 야외고고학 창간호. Ⅰ. 머리말 최근 몇 년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발굴조사의 성과에 힘입어 기존에 알려지지 않 았던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어 당시 인간의 생활상 연구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본고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개별주거지 및 취락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자료의 증가에 힘입어 청동 기시대 연구의 범위도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개별 주거지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흡하다. 예를 들면 전기 주거지에서 내부시설의 구조와 기능 문제, 노지와 관련한 문제, 그리고 주거지 주변으로 확인되는 작은 규모의 수혈유구에 대한 기능과 해석에 대한 문제 등이 그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취락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주거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위에 취락 내 주거지 및 기타 유구 등의 공간적 배치 의미와 그러한 배치가 전체 취락 내에서 어떠한 기능적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발굴 조사 당시 뚜렷한 조 사목적을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료를 획득․수집, 분석하여 개별 유구들의 구조 및 기타 여러 기능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얻어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필자들은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복원 및 실험을 실시하 고, 실험결과 획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설적 수준에서 개별취락의 획득 가능한 자원 영역을 추정하여 보았다. 본 연구에서 의도 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개별주거지에 대 한 복원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는 것과 복원된 주거지를 바탕으로 반복적인 실험을 실시 하여 다수의 데이터 값을 얻는 것이고, 둘째로는 획득된 데이터 값을 통하여 개별 취락 단위의 획득가능 자연영역을 추정하여 동시기로 추정되는 천안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입지요인을 분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할 수 있다. 최근 주거지 조사방법과 관련한 연 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연구 성과를 금번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유용한 참고자료로 활용하였다.(취락연구회 2004, 한국문화재조사연구협회 2004․2005). Ⅱ. 연구동향 및 복원사례 검토 현재까지 청동기시대 전기 주거지 복원과 관련한 연구성과는 대체로 미진한편이다. 주로 80년대 북한 및 남한 학계의 일부 연구자에 의해 부분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다가 이후로는 관련 연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김용간 외 1975, 김용간․석광준 1984, 황 기덕 1984, 임영진 1985, 윤기준 1985) 이들 연구자의 복원 성과는 주로 장방형 및 세 장방형 주거지에 한정되었다. 이는 아마도 주거지 발굴조사 예가 적었던 이유가 가장 크지만 주거지 복원에 대한 연구인식이 크지 않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로 판단된다. 90년대 이후에는 전기 주거지의 복원 시도가 감소한 반면 (중)후기의 주거형태인 송 - 176 -.

(3)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국리형 주거지에 대한 복원 연구가 새롭게 시작되었다.(김경표․류근주 1994, 신상효 1996, 조형래 1996) 90년대 후반 2000년대에 들어서는 고고학 전공자들에 의한 주거지 복원과 함께 건축 학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에 의한 복원 및 주거 건축 등의 문제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들은 주거 건축의 전문적인 지식과 건축공학적인 관점에서 당시 주거지 의 모습을 복원하여(엄윤정 1999, 김도경 2000, 김재호 2005) 상당 수준 연구의 진전을 이루게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복원안은 실측도면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같은 주거형태 라 하더라도 지붕의 형태와 주거구조, 시설 등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연구자들 대부분은 주거평면에서 확인되는 기둥구멍의 유무와 배치상태를 복원의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주거지 복원의 중요 속성인 기둥구멍 <표 1> 연구자별 전기주거지(장방형) 복원도 연구자. 김용간․ 석광준. 복원도. 연구자. 임영진. 윤기준. 엄윤정. 김도경. - 177 -. 복원도.

(4) 야외고고학 창간호. 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검증1)이 없고 주거지 발굴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는 탄화 목재 및 재층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거지 복원이 이루어진 점에 서 아쉬움이 남는다.2) 이하에서는 주거지 복원의 기존연구사례를 주거지 축조라는 관점에서 개략적으로 살 펴보고자 한다.. 1. 평면형태 및 깊이 청동기시대 전기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대부분 장방형 및 세장방형을 띠고 있으며 일 부 방형의 형태가 확인되고 있다. 평면 형태는 시간에 따른 변천상을 반영하는 근거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주거지 장단축 길이의 증가는 주거지 복원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즉 장축이 길어질수록 기둥의 수 및 벽체, 서까래의 목재양이 결정되고, 용마루 길이와 이에 투입되는 건축자재의 양이 결정된다. 용마루의 경우 지붕의 중심을 이루면 서 서까래를 받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무의 수령이 오래되어 굵은 것은 사용할 수 없고, 대략 10~15년 정도 수령의 나무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나무는 대 략 그 길이가 3~5m 내외이기 때문에 10m 정도의 주거지를 축조하기 위해서는 대략 2~4개 정도의 나무가 필요하다. 따라서 장단비의 증가는 용마루와 이를 받치는 기둥의 수를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2:1의 장단비는 단축에 비해 장축의 용마루 목재 가 약 2배 정도 더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단비의 증가에 따른 용마루와 지지 기둥의 증가는 주거지 축조에 많은 시간과 기술, 건축자재가 요구되므로 취락 내 세장방형 주거지의 수는 한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그림 2~3>은 전기 세․장방형 주거지의 장단비의 비율과 취락유형별 장단 비를 비교한 것이다. 그림을 보면 전기의 주거지는 장축이 2~3배 정도 단축보다 긴 형 태를 많이 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취락 유형별로 보았을 때 흔암리 유형 취락 의 주거지 장단비가 타 유형들보다 길어 취락 집단간 주거지 축조에 차이가 있었던 것 으로 추정된다. 평면 형태와 더불어 중요한 요인으로는 주거지의 깊이를 들 수 있다.. 1) 후술하겠지만 모든 기둥구멍의 동시 존재가능성에 대해서는 토층조사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2)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필자들은 주거지의 화재 폐기 실험 을 실시하여 발굴시 확인되는 주거지의 상부구조 추정의 자 료로 사용하고자 하였다.<그림 1> 물론 화재 폐기실험을 통 해 주거지의 상부구조를 복원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화재 의 특성상 목재가 남기 어렵고 발굴조사 과정에서 목탄이 확 인된다 하더라도 적은 수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이들을 통한 상부구조의 복원이 그동안 추정을 통해 이루어진 주거지 복원을 객관화 하는데 기초적인 작업임에 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화재 폐기주거지 실험에 대해서는 별고를 통해 다시 발표할 생각이며 본고에서는 발굴 조사된 주거지의 평면형태와 남아있는 기둥구조, 그리고 탄목이 일 <그림 1> 전기주거지 화재폐기실험 (炭木 倒壞 狀況) 부 확인된 주거지를 중심으로 주거지 복원의 근거로 삼겠다.. - 178 -.

(5)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수혈주거지와 반수혈주거지) 9. 40. 8. 0.2. 0.1 10. 6. 장장장. 기기. 20. 7. Proportion per Bar. 30. 5 4 3 2 1. 0. 1.2. 2.4. 3.6. 4.8 6.0 7.2 8.4 9.6. 0. 0.0. 가. 가 가. 송. 송 송. 역. 가 역. 흔 흔. 송. 유유. 장장장. <그림 2> 주거지 장단비 분류. <그림 3> 취락 유형별 장단비. (허의행 2004, 216p 전제). (허의행 2004, 216p 전제). 일반적으로 주거지의 깊이는 주거 구조와 관련하여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즉, 벽 체의 출현과 더불어 처마와 지면과의 관계 등이 고려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김정기 1968, 김도경 2000:53쪽) 이들은 수혈식과 반수혈식의 차이를 서까래를 지면에 직접 설치하여 벽체를 세우는 정도의 차이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김재호는 앞선 김도경의 견해에 더해 주혈의 위치와 경사도, 깊이를 통한 구분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 고 있다.(김재호 2005:94~96쪽) 그러나 필자들은 복원과정에서 수혈식과 반수혈식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 하였다. 왜냐하면 대부분 경사지에 축조되는 주거지의 경사 상단부는 처마가 지면에 그 대로 닿아 수혈식의 모습으로 보이는 반면 주거지 경사 하단부는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벽체를 세우고 여기에 서까래를 기대어 처마를 축조하므로 반수혈식의 모습으로 보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혈식과 반수혈식 등의 용어 구분은 경사가 없는 편평한 대지에 축조된 주거지에 한해 사용할 수 있는 용어로 판단되며 따라서 경사지에 입지하 는 주거지의 구조와 복원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3). 2. 벽체 및 기둥 벽과 벽체에 관한 연구는 미진하지만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조형래 1996) 그는 세․ 장방형 주거지 벽체를 탄화된 목재편을 근거로 횡판벽으로 상정하고 있다. 중서부지역 전기주거지에서 벽체가 확인된 예로는 천안 두정동 유적(류기정 외 2001)을 들 수 있 다. 또한 시기적으로 늦은 유적 가운데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두정동 유적 3호 주거지에 서 내부에 기둥을 세우고 횡목재를 결구한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橫木을 벽에 붙이고 3) 최근에 조사되는 청동기시대 전기 주거지에서 벽체라고 판단되는 시설(벽구, 판자 등)이 많이 조 사되고 있으며, 이로 볼 때 주거지에 판자로 된 별도의 벽(내력벽은 아님)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벽이 있는 이러한 주거지의 형태는 반수혈이 되며, 처마의 끝은 지면에 닿지 않는 구조로 추정된다는 지적이 있음을 밝혀둔다.. - 179 -.

(6) 야외고고학 창간호. 縱木을 안쪽으로 설치한 방식이다. 횡목간의 간격은 약 10~20cm 정도이며 횡목이 놓 여져 있지 않은 빈 공간은 초본류나 진흙 등으로 마감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의 자료로 볼 때 청동기시대 주거지에 벽체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 실이다. 다만 벽체의 위치에 차이가 보인다. 역삼동 및 흔암리유형 주거지의 경우 벽에 인접하여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반해 가락동유형 주거지의 경우 벽과 일정거리 를 두고 기둥과 함께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음성 하당리 6호 주거지에서 이러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평면도와 토층도를 통해 보면 주거지의 중앙부 바닥에 집중적 으로 탄재층이 확인되는 반면, 벽에서 기둥(초석)이 놓여져 있는 곳까지는 전혀 이러한 양상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벽에 인접하여 벽체가 설치되지 않았음을 알게 한 다. 그렇다면 벽체는 기둥에 접해 결구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둥은 주거지 복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기둥의 유무와 배치상태를 통해 수혈이냐 반수혈이냐의 문제와 지붕의 형태까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동기시 대 전기 주거지에서 정연한 주공 배치와 간격 등이 확인된 예는 많지 않다. 특히 주거지 발굴의 마지막 단계인 바닥 정리과정에서 많은 수의 주공과 주혈 등이 확인되어 주 기 둥과 보조 기둥의 차이를 쉽게 구분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물론 주기둥의 경우 대 부분 주거지의 벽가에서 확인되나 그렇다고 뚜렷하게 정연한 예는 찾기 어렵다. 또한 주거지의 중앙과 노지 근처에서 확인되는 기둥들의 기능과 의미에 대해서는 연구된 바 가 거의 없다.4) 기둥은 상부구조를 받치는 역할을 하지만 중심기둥만 구비된다면 축조 가 마무리된 후 拔去하여도 상부의 붕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무수한 기둥구멍 에 대한 해석도 이러한 관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겠다.. 3. 서까래 및 지붕구조 서까래를 비롯한 지붕의 상부구조가 확인된 유적의 경우 아직까지 보고된 예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전술한 바와 같이 기둥구멍의 존재 유무로 이들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바닥에서 확인되는 탄목의 정밀한 관찰이 요구된다. 일 부 원형 주거지나 신석기시대 주거지 등에서 상부구조를 밝힐 수 있는 전소된 탄목들이 확인되고 있지만 청동기시대 전기주거지에서는 이러한 예가 적은 편이다. 따라서 지붕 구조의 복원은 주거지의 평면 형태와 기둥의 배치상태만을 가지고 맞배지붕인지 우진각 이나 팔작지붕이었는지를 추정하는 것이 대세이다. 우진각지붕이나 맞배지붕은 연구자 가 기둥의 형태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상부구조 복원에 있어 대공 의 유무 파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가능성만 존재할 뿐 관찰은 쉽지 않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주거지에서 지붕구조는 기둥의 배치와 형태로서 여러 각도로 추정되나, 서까래의 복원은 연구자에 따라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서까 래와 지붕구조를 잇는 결구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보이는데, 신상효(신상효 1996)를 4)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주거지 중앙 및 노지 근처 주공, 노지 내 주공의 흔적을 공간분할의 흔적으 로 보는 경향이 많다.. - 180 -.

(7)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비롯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주거지 복원시 ‘Y'자형의 기둥에 도리를 결구하는 방식으 로 추정하고 있다. 그 근거로 대전 구성동 C-1호 주거지에서 확인되는 탄화목을 들고 있으나 탄화된 위치와 탄목의 방향을 보면 서로 연결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화재로 소실되면서 기둥들이 같은 방향으로 도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결구방식에 대한 보다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겠다. 그렇다면 결구방식은 상식적으로 접 근할 때 기둥끼리 홈을 파서 서로를 고정시켜 결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에 의하면 지붕의 구조는 기둥의 배치형태에 따라 좌우되는 점은 전술한 바와 같다. 현재까지의 자료로 볼 때 기둥배치 형태는 대체로 두 개의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아마도 이러한 구분은 청동기시대 전기 주거지의 취락유형별 차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표 2> <표 2> 기둥에 따른 지붕형태 기둥유형. 특징. 지붕형태. Ⅰ. 기둥구멍이 장단벽에 접해 배치. 우진각, 맞배. Ⅱ. 기둥구멍이 장단벽에서 일정간격을 띠고 배치. 우진각, 팔작. 취락유형 흔암리 및 역삼동유형 주거지 흔암리 및 가락동 유형 주거지. Ⅲ. 주거지 복원 1. 복원의 예비(복원의 방향 및 계획) 앞선 연구성과들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주거지 복원을 실시하였다. 주거지 복원의 기본은 역삼동식 주거지를 바탕으로 하였다.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으 로 하며 주거지 벽가쪽으로 중심기둥과 벽체를 설치하고자 하였다. 상기의 기본을 바탕으로 다음의 <그림 4>와 같은 기본 계획도 및 설계도를 작성하였 다. 주거지의 규모는 길이 920cm, 폭 300~320cm, 깊이 90~150cm5)이며 용마루까지의 직선 높이는 300cm정도로 계획하였다. 주거지 축조에 들어간 재료는 두께 약 10-15㎝ 정도의 12-15년산 소나무 및 참나무 이며, 약 70여기 사용되었다6). 이엉과 벽체는 주변에서 자생하는 갈대 등의 초본류를 위주로 하고 결구에 사용된 넝쿨은 칡을 주로 이용하였다. 주거지 입지는 구릉의 경사지를 선정하고 축조 재료는 주변의 자원을 가능한 한 이용하 도록 하였다. 인력은 5명이 투입되었으며 장비는 낫과 톱(나무를 자르고 다듬는데만 사 용)을 사용하였다. 주거지 복원 장소는 아산 신도시 발굴현장이다. 소요되는 기간은 기초 5) 주거지의 길이, 폭, 깊이는 백석동유적 주거지의 규모를 기본으로 필자들이 임의로 선정하였다. 장단 비는 약 2:1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깊이는 백석동 보고서에 기재된 잔존 깊이에 약 0.5를 곱하여 깊이를 추정하였다. 복원은 당시의 구조에 최대한 가깝게 접근하여 그 주거지의 특징이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을 염두에 둔다면 차후 복원 시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6) 기둥 10, 출입구 2, 보 및 도리 11, 서까래 36, 용마루 2, 기타 10. - 181 -.

(8) 야외고고학 창간호. <그림 4> 주거지 추정설계도 공사를 포함하여 기둥 축조와 지붕조성, 그리고 내부시설의 인테리어 등에 약 1달 반가량 소요7)되었다.(아침 8시부터 오후 5-6시까지) 2월 초순부터 3월 중순까지 실시하였다.. 2. 기초공사<그림 5~6> 이렇게 결정된 계획도 및 설계도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복원을 실시하였다. 우선 지반을 조성하였다. 축조 당시 표면토가 결빙되어 초기 굴착에 굴삭기를 사용하 였다. 차후 주거지 굴토 시 인력에 의한 노동 소비 시간을 체크하여 전반적인 주거지 축조에 소요되는 제반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7) 주거지 복원의 경험과 자료의 부족, 추운 계절적 영향으로 인해 많은 기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재료가 준비되고 축조에 경험이 쌓여 숙달된다면 집을 짓는데 약 2-3주 정도로 단축될 것이다.. - 182 -.

(9)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그림 5> 주거지 굴착 과정. <그림 6> 주기둥 설치 모습. 3. 복원 1) 외부 상기 예비복원 후 본격적인 주거지 복원을 실시하였다. 복원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주거지 대지조성(굴착)이 끝난 후 기둥을 설치하였다. 기둥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이용하였다.8)<그림 7~8> (2) 기둥열의 배치는 벽의 네모서리에 4주를 설치하고 장벽에 접해 중간으로 3개, 단벽의 중앙으로 1개의 보조기둥을 설치하여 4×2간의 모습을 기본으로 하였다.<그림 8> (3) 기둥위에 보와 도리를 얹혔다.<그림 9> 기둥과 보, 도리는 미끄럼 방지를 위해 홈을 파서 결구하고 칡넝쿨을 이용9)하여 단단하게 엮었다.<그림 10~11> 결구방법은 칡줄기를 이용하여 ‘X’자 형태로 돌리면서 엮었다. (4) 단벽쪽에 위치한 기둥과 도리위에 우선 서까래를 얹히고 중앙축선에 기둥을 3개 정도 세워10) 길이 5m 정도의 용마루 2개를 연결하여 설치하였다.<그림 9, 11~12> 용마루간의 결구는 칡넝쿨로 수차례 돌려 엮었으며, 주거지 장벽보다 길게 설치하여 단 벽쪽으로 유입되는 빗물의 침투를 막을 수 있게 하였다.. 8) 청동기시대 전기주거지와 그 주변에 대한 수종분석에서 주로 참나무가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박원규 2004:499~504), 주변으로 참나무 등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9) 넝쿨의 경우 채취 후 수분이 모두 말라 비틀어지거나 단단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로 결구가 이루어졌을 경우에는 끊어지거나 바스라지게 된다. 따라서 결구에 쓴 넝쿨은 껍질을 벗겨내고 물에 담아 수차례 쳐서 부드럽게 만들어 사용하였다. 10) 주거지 중앙에서 확인되는 주공은 용마루를 받치던 기둥구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 된다. 주거지 중앙에 기둥이 놓여 있으면 노지 사용에 일정부분 제약을 받게 된다. 또한 생활공 간도 좁아지게 되므로 실생활에 큰 불편함을 주게 된다. 그리고 용마루를 받친 기둥은 지붕이 완성된 후 拔去하여도 지붕의 무너짐은 전혀 없다. 이를 구분해 내기 위해서는 앞서도 언급하였 지만 주거지 중앙의 주공 토층양상과 벽가쪽에 위치한 주공의 토층양상을 동시에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동일한 퇴적 양상이 보여진다면 동시사용 근거로 볼 수 있는 반면에 이와는 다 른 양상이 확인된다면 그와 반대되는 해석이 내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 183 -.

(10) 야외고고학 창간호. <그림 7> 기둥설치 1. <그림 8> 기둥설치 2. <그림 9> 기둥 및 보, 도리 설치. <그림 10> 기둥 및 지붕 결구모습. <그림 11> 용마루 설치. <그림 12> 용마루 결구모습. <그림 13> 서까래 설치 1. <그림 14> 서까래 설치 2 - 184 -.

(11)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그림 15> 산자 설치 모습. <그림 16> 서까래 및 산자 설치 완료 후. <그림 17> 초본류 엮기. <그림 18> 용마루 초본류 설치. <그림 19> 용마루 근처 초본류 결구. <그림 20> 서까래 초본류 설치 모습. (5) 용마루가 설치된 후 본격적으로 서까래와 橵子를 얹히기 시작하였다. 서까래 는 기둥과 동일크기로 설치하고 산자는 상부 하중의 문제가 고려되어 기둥보다 약 1/3 가량 작은 두께의 나무를 설치하였다.<그림 13~16> (6) 설치된 서까래 위에 이엉을 얹혔다.<그림 17> 이엉의 재료는 주변 습지에서 자 생하는 갈대 및 초본류를 사용하였다. 이들을 두 세단 겹싸면서 한집을 만들고 이를 다 시 칡넝쿨로 이어주면서 단단하게 엮었다.<그림 20> 용마루에 올라가는 이엉의 경우 빗 물 유입을 고려하여 따로 엮어 만들어 설치하였다.<그림 18~19>. - 185 -.

(12) 야외고고학 창간호. 2) 내부 주거지 외부 복원이 이루어진 후 내부시설을 설치하였다. (1) 벽체를 설치하였다. 벽체는 잔가지 및 대나무를 격자상으로 배열하고 칡넝쿨 로 엮은 후 안쪽으로 초본류를 설치하였다.<그림 21~22> 기둥구멍을 굴착하지 않고 주 기둥과 기둥사이에 연결하여 단단하게 고정시켰다.<그림 21>. <그림 21> 벽체 설치. <그림 22> 내부 벽체 시설. <그림 23> 저장공 설치. <그림 24> 출입구 시설. <그림 25> 바닥 점토 다짐 후 노지설치. <그림 26> 노지 설치. - 186 -.

(13)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2) 출입구와 저장공을 단벽에 설치하였다.<그림 23~24> 출입구와 저장공의 위치 는 노지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출입구는 온도의 변화가 매우 민감하게 발생하며 따라서 온도의 유지를 위한 노지의 설치가 필요하다. 이에 반해 저장공은 노 지의 반대쪽에 설치하였다. 노지 근처가 온도가 높아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 또는 미 생물의 활동에 적절한 장소이기 때문에 곡물의 신선도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방편 으로 인식하였다. (3) 바닥을 다짐처리 하였다.<그림 25> 다짐은 수분을 머금은 황토를 바닥에 전면 적으로 깔고 나무를 이용하여 단단하게 두들겼다.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의 방지 를 고려하였다. (4) 노지는 출입구가 설치된 단벽쪽으로 2기를 설치하였다.<그림 26> 상기의 모든 공정과정을 통해 다음 그림과 같은 주거지 복원이 완료되었다.11) <그림 27~34>. <그림 27> 복원 완료 후. <그림 28> 복원 완료 후 세부(환기창). <그림 29> 복원 완료 후(출입구쪽). <그림 30> 복원 완료 후. 11) 이와 함께 복원된 주거지 내부에 노지를 설치하면서 생기는 연기의 배출과 이엉이 얹어진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물의 내부 유입 모습을 관찰하였다. 상기 문제를 언급함에 있어 일부 연구자들 은 까치구멍의 존재를 추정하고 있으나, 노지를 설치하여 불을 때운 결과 연기는 용마루 근처로 뿌옇게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선사인들의 주거지 축조 시 까치구멍의 설치는 선택사항으로 볼 수도 있다. 빗물은 서까래 위에 얹혀진 2~3중의 이엉으 로 인해 유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187 -.

(14) 야외고고학 창간호. <그림 31> 지붕구조 세부. <그림 32> 복원 완료 후 전경. <그림 33> 주거지 복원도 1. <그림 34> 주거지 복원도 2. Ⅳ. 복원된 주거지의 실험과 고찰 본장에서는 복원된 주거지를 통해 당시 주거인들의 생활상에 대한 접근이라는 측면 에서 온습도의 측정이라든지 노지사용 방법 등에 대한 열환경 실험을 실시하였다. 실험 을 통해 나타난 결과는 주거지 발굴조사 시 참고자료로 제시하고자 하며,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나온 내용에 대해서는 발굴조사 당시 확인되는 자료들과 비교 검토해 보았다. 또한 이러한 실험으로 얻어진 결과를 바탕으로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취락의 자원 확보에 대해서 試論的으로 접근해 보았다.. 1. 내ㆍ외부 온․습도측정12) 실험은 노지에 불을 땐 경우와 때지 않은 경우로 구분하였다. 주거지 복원이 완성된 3월 중순부터 4월초까지 약 15회의 측정을 시도하였다. 측정은 오전(8~9시경)과 정오 12)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환경은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한 생활양식과 함께 개선되고 있다. 체 온조절의 부담이 가장 적은 온도, 다시 말하면 덥지도, 춥지도 않는 최적온도는 18° 정도이며 15.6~20° 정도에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실내의 쾌적함을 유지하려면 온도 외에도 습도를 고려해야 하는데 습도가 30%미만이거나 80%이상이면 좋지 않고, 40~70%정도면 대체로 쾌적 함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쾌적함을 주는 습도는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15°에서는 70%정도, 18~20°에서는 60%, 21~23°에서는 50%, 24도 이상에서는 40%가 적당한 습도이다. 사람이 느 끼는 춥고 덥다는 감각은 겨울은 추위에 대하여, 여름은 더위에 대하여 민감하게 되어 있다. 또 같은 기온이라 하더라도 봄에는 가을보다 보통 두껍게 옷을 입고 있다. 이와 같은 사항들이 복합 되어 최적온도는 겨울에는 낮아지고 여름에는 높아지게 된다.(기상청 참조). - 188 -.

(15)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12시경), 오후(3~4시경)로 구분하여 실시하였다. 측정 온습도계는 주거지의 외부 출 입구쪽과 내부의 주거지 중앙 장벽 중간부분에 설치하고 측정하였다.13) 측정에 앞서 천안지역의 3~4월의 최저․최고기온 및 습도를 살펴보았다.<그림 35~37>을 보면 3․4월의 날씨는 전반적으로 변화폭이 큰 편이지만, 밤 및 새벽 시간대에는 온도가 영하까지 하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후 겨울철 노지설치를 통한 온도측정의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15. 10. 5 3월. 0 31 일. 29 일. 27 일. 25 일. 23 일. 21 일. 19 일. 17 일. 15 일. 13 일. 9일. 11 일. 7일. 5일. 3일. 1일. 4월 -5. -10. -15. <그림 35> 천안지역 일평균 최저기온 25. 20. 15 3월 4월. 10. 5. 31 일. 29 일. 27 일. 25 일. 23 일. 21 일. 19 일. 17 일. 15 일. 13 일. 11 일. 9일. 7일. 5일. 3일. 1일. 0. <그림 36> 천안지역 일평균 최고기온 90 80 70 60 50. 3월. 40. 4월. 30 20 10. <그림 37> 천안지역 일평균 상대습도 13) 온 습도계 고장에 따른 오류가 2~3차례 있었다.. - 189 -. 31 일. 29 일. 27 일. 25 일. 23 일. 21 일. 19 일. 17 일. 15 일. 13 일. 11 일. 9일. 7일. 5일. 3일. 1일. 0.

(16) 야외고고학 창간호. 다음의 <그림 38~39>은 실제 측정 결과를 표시한 것이다. 그림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1) 온도와 습도는 반비례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온도가 상승하면 습도는 하강하 는 것을 볼 수 있다. (2) 노지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의 온습도 결과이다. 주거지 내․외부 온도차는 약 1~4°의 차이가 관찰된다. 외부의 온도차는 고저 차이가 크게 나는데 반해, 내부 온도는 10° 이하의 영상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20 100 80. 오전 온도 오전 습도. 60. 오후 온도 40. 습도. 20 0 내. 외. 내. 1회. 외. 2회. 내. 외. 3회. 내. 외. 내. 4회. 외. 5회. 내. 외. 내. 6회. 외. 내. 7회. 외. 8회. 내. 외. 내. 9회. 외. 10회. 내. 외. 11회. 내. 외. 내. 12회. 외. 13회. 내. 외. 내. 14회. 외. 15회. <그림 38> 노지 미 설치시 주거지 내ㆍ외부 온습도 측정 결과 70 60 오전 온도 50. 습도. 40. 정오 온도. 30. 습도 오후 온도. 20. 습도. 10 0 내 1회. 외. 내. 외 2회. 내. 외 3회. 내. 외 4회. 내. 외. 내. 5회. 외 6회. 내. 외 7회. 내. 외 8회. 내. 외 9회. <그림 39> 노지 설치시 주거지 내ㆍ외부 온습도 측정 결과 습도는 평균적으로 약 70%이상 측정되었는데 사람이 생활하는데 있어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적정수치가 기록되었다. (3) 노지를 이용하였을 경우(1기 설치시) 1) 주거지 내부 평균온도는 외부 온도와는 상관없이 17~20°도를 유지한다. 2) 습도는 60%이하로 현저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3) 단 외부온도의 상승과 함께 내부온도도 같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나 25°를 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늦겨울 및 초봄에 한정된다) (4) 노지를 이용하였을 경우(2기 설치시) 노지를 2기 설치 시 내부 온도는 25°를 넘어가면서 체감상 약간 덥다는 것을 느낄 - 190 -.

(17)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정도였다. 이상과 같이 주거지 내․외부 온도 측정실험을 통해 2기의 노지로 10m 정도의 주거 지에서 적정 온도를 내는데 큰 문제점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주거지 내부 에서 확인되는 많은 수의 노지 운용방식과 기능적 차이점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와 함께 상기 실험결과를 통해 보완하여야 할 문제점을 적기하고자 한다. 첫째, 지속된 기간의 데이터 축적, 즉 24시간 동안의 측정과 사계절을 모두 지나면서 온습도를 측정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또한 노지주변과 주거지 장단벽쪽 그리고 저장공 근처의 온습도의 측정이 미비하여 저장과 관련한 문제의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둘째, 불을 땔 때 사용하는 땔감의 양과 나무 재질에 따른 온도의 변화 측정이 이루어 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 이렇게 노출된 문제들을 지속적인 연구와 실험을 통해 보완하고자 한다.. 2. 생토면 노지 관련 실험 전기 주거지에는 풍화암반토를 그대로 이용하고 노지를 설치한 예가 많다. 노지는 전 술한 바와 같이 주거지 내부에서 모두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의 파악을 위해서 는 노지에서 지속적인 불때움을 통해 평단면의 비교라든가 온습도측정 등의 여러 실험 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노지의 기능적 문제라든가 사용을 위해 이동된 문제, 노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간분할(안재호 2006) 등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은 노지실험을 통해 이들 문제의 대안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실험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5개소의 노지를 풍화암반토면에 그대로 설치하였다. 땔감의 재료는 길이 30㎝, 두께 10㎝ 정도의 원목을 약 20kg정도 사용하였다. (2) 1․ 3․ 5․ 9․ 10회 이상 연속적인 불때움을 실시하였다. (3) 연소된 후 자연소각 될 때까지 방치하였다. 약 6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4) 소각 후 노지의 단면을 절개하여 토층상태를 관찰하고 도면 및 사진기록 하였다. <그림 40>. <그림 40> 노지 실험도(1ㆍ3ㆍ5ㆍ7ㆍ14회) - 191 -.

(18) 야외고고학 창간호. 이상과 같은 실험 절차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1회 연소 후 노지의 평면은 원형의 형태를 띠며 단면에서는 약 1~4cm 정도의 깊이로 적색의 소토흔이 관찰되었다. 노지가 놓여진 자리는 경화된 상태가 약하고 토양 이 대체로 무른 편이다. 이후 3~7회 정도 노지 불때움에서는 최초 불때움 보다는 소토 화가 깊게 진행되나 8~10cm 정도의 깊이에서 더 내려가지는 않았다. 불의 영향을 직 접적으로 받은 중앙부는 토양의 경화 상태가 매우 단단하여 삽날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 였다. 노지의 불때움 횟수가 증가할수록 경화면이 단단해 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 다. 발굴조사를 하다 보면 종종 노지의 한가운데로 원형의 점토층 또는 사질토층(약간 단단함을 느낄 정도)이 채워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전술한 경화면으로 판단해 볼 수 있겠다.14) 천안 용곡동 두터골유적 주거지에서 이러한 모습이 확인된 바 있다. <그림 41~42> (2) 5기의 노지를 전면에 다 설치한 후 동시에 불을 때면 주거지 바닥 및 벽면의 습기가 전체적으로 제거되는 모습이 관찰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 및 벽가에 크랙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거지에서 등간격을 이루며 전면에 노지가 확인 된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 4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지가 주거지의 장축선상에 등간격을 이루며 배치되 어 있을 경우, 노지의 중앙으로 원형의 소토흔 및 경화된 면이 관찰되는 노지(<그림 40>의 서쪽 단벽 근처 및 동쪽 단벽 근처)와 그렇지 않은 노지(<그림 40>의 중앙)가 공존할 경우 지속적인 노지 사용 흔적을 추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사진 41> 천안 용곡동 두터골유적 2호 주거지 전경. <사진 42> 두터골유적 노지 세부 모습. 14) 경화된 면이 수분을 흡수하면서 토양공극이 풀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여겨진다. 주거지 발굴시 색조가 달라 제토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의 주의가 필요하겠다.. - 192 -.

(19)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3. 주거지 바닥 다짐 후 노지 관련 실험15) 현재 세․장방형 주거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바닥 처리 시설은 생토를 그대로 이용한 예가 많다. 그러나 최근 발굴조사의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폐기 후 바닥에 흙을 깔고 다 져 재사용되는 사례 등이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생활면으로 볼 수 있느냐는 여 전히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즉 이곳에서 노지의 설치유무 파악과 노지의 설치로 인해 발생하는 경화면 및 소토부가 확인되지 않는 점 등으로 볼 때 일반적인 주거지와는 용 도면에서 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주거지 바닥을 점토로 다짐하는 이유는 원바닥으로부터 올라오 는 습기 및 냉기의 차단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바닥에 점토를 깔고 노지관련 실 험을 실시하여 앞선 문제들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실험은 우선 주거지 바닥에 수분이 포함된 황토를 전면에 깔고 나무를 이용하여 다짐 하였다. 다짐토의 두께는 약 10cm 정도이다. 물론 주거지의 생토면 바닥에서 노지가 확 인되기 때문에 생활면은 동물의 가죽이나 식물체를 깔고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다.16) 하지만 이러한 예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으므로 제외 한다. 실험은 다음 절차의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관찰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1) 바닥 다짐 후 토층을 절개하고 단면을 관찰 하였다. 관찰 결과, 두께 10cm의 다짐토에서 압력을 가 해 두들긴 상단 5cm 정도까지는 토양의 공극이 치 밀한 반면, 그 하단은 성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 이렇게 다져진 바닥에 노지를 설치하고 평면 및 단면의 모습을 관찰하였다. 관찰 결과 노지는 평면 원형으로 확인되었다. 단. <그림 43> 바닥 다짐 후 1차 노지 연소실험 (단면 관찰). 면은 다짐층 상면 5cm까지는 적색의 소토 흔적이 보인 반면, 하단에서 반원형의 흑색토가 확인되었다. 이는 토양에 혼입된 초본류가 연 소과정에서 열에 의해 타면서 생성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17) 바닥 다짐토 토층의 정 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15) 천안 용곡동 두터골유적을 조사하면서 의문을 가졌던 것을 실험해 보았다. 16) 최근 주거지 토양에 대한 분석사례를 소개한 글이 발표되었다. 그에 따르면 주거지 토층에서 시 료를 떼어낸 후 물리 화학적 분석 및 현미경 관찰을 통해 바닥면의 사용을 추정하는 사례가 외국 에서 늘어나고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이희진 2006,「지질고고학의 새로운 연구경향과 전망」 『고고학』제5권 제1호, 서울경기고고학회.) 17) 정확한 과학적 근거는 없으나 열이 토양속 공극을 통해 전도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다짐토의 상면은 토양의 공극이 적은 관계로 열이 통과하되 그 아래는 토양 공극이 커서 토양내 혼입되어 있는 초본류가 타는 것으로 여겨진다.. - 193 -.

(20) 야외고고학 창간호. (3) 노지를 설치하여 바닥면의 경화상태를 살펴보았다. 관찰결과 1) 다짐토 위에 그대로 노지를 설치한 곳은 바닥이 경화되면서 단단해지고 토양색은 진한 황갈색을 띤 다. 2) 지속적으로 불을 땠을 경우는 점차 적색으로 변하며 주변 바닥부는 수분이 증발 하면서 크랙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모습은 최근 조사된 천안 용곡동 두터골 8호 주 거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8호 주거지는 장방형의 평면형태를 가지며 내부에는 2차례의 바닥사용 흔적이 확인 되었다. 벽가쪽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토양을 다짐하였던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서단벽쪽으로 소토된 노지의 모습과 함께 주변으로 숯과 유물 등이 확인 되어 바닥 다짐 후 노지를 설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 주거지 바닥에 남아있는 목탄 및 회색 재층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주거지 바 닥의 일정면적에 다짐 전 목탄 및 재를 깔고 그 위로 노지를 설치하고 실험을 실시하 였다.. <그림 44> 바닥 다짐 후 노지실험 관찰도. <그림 45> 두터골 8호 주거지 전경. <그림 46> 8호 주거지 2차면 노지 세부. 관찰결과, 재와 목탄이 깔려 있는 곳에서 경화된 범위가 매우 넓게 형성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그림 44>의 우측 노지) 이들이 왜 주거지 바닥에서 확인되는지는 현재로서는 명확한 결론을 얻을 수 없다. 또한 화재폐기 후 재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도 - 194 -.

(21)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목탄이 방습과 온열작 용에 효과가 탁월하다(韓國木炭硏究所 1999) 는 연구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8) 이처럼 주거지 바닥에 목탄 및 재층이 깔려 있는 예는 용곡동 두터골 2호 주거지에서 확 인된 바 있다.<그림47> 2호 주거지는 평면 세 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내부에는 다수 의 주공과 노지 기타 저장공 등이 많이 확인 <그림 47> 2호 주거지 바닥 토층 모습. 되었다. 특히, 수차례에 걸친 중복사용이 추. 정된다. 주거지 바닥에는 숯이 전반적으로 깔려있고 그 상면에는 일정두께의 토층이 확 인되는데, 앞선 실험관찰과 연계될 가능성이 있다. 즉 바닥다짐 후 경화처리와 온열효 과의 극대화를 의도한 인위적인 목탄 및 재층의 투입 행위로 판단된다.. 4. 땔감 자원 획득 공간의 설정 진화론적 측면에서 열의 효율적 이용방식의 변화는 인간사회발전과 그 궤를 같이한 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열을 발생시키기 위한 기초자원 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우선된다는 말과 일치한다. 이러한 보편적인 원칙은 청동기시대 주민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특히 최근과 같이 고도로 발달된 단열재와 주거 구조 를 갖추지 못한 청동기시대에는 노지에서 발생하는 열의 분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는 소위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였음은 자명하다. 이는 결국 열 발생을 위한 기초자 원인 풍부한 땔감의 확보는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청동기시대 전기에는 주거지 수와 면적이 그 이전시기인 신석기시대보다 증가하면서 노지의 수 또한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이에 따른 자원(땔감)의 양 또한 늘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각 취락집단은 주변의 환경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자원(땔감)을 확보하여 나갔을 것이다. 따라서 취락 내 주거지에서 소비되는 땔감의 양을 산출해보면 주변 자원 이용의 면적 (공간 또는 영역)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며 더불어 취락간의 관계 설정도 가능할 것으 로 생각되어진다. 이와 더불어 취락집단 간 자원(땔감) 확보과정에서의 분쟁, 이를 방 지하고자 일어날 수 있는 교환 또는 매매 등의 사회조직의 등장, 자원의 확보 공간을 위해 인접한 취락과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입지하는 양상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필자들은 청동기시대 전기 취락에서 주거지마다의 노지 수 18) 유구 내에서 확인되는 목탄 및 흑색의 재층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저장공 내 토층에서 확인되는 목탄의 띠 흔적들인데, 저장을 도와주는 역할을 이들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 195 -.

(22) 야외고고학 창간호. 를 모두 합하고 이에 들어가는 땔감의 양을 산출해보았다. 또한 땔감의 양을 통해 주변 지역에서 자원의 획득 가능한 공간(영역)을 추정해 보았다. 이렇게 구해진 땔감 양과 자원의 획득 가능 공간(영역)의 설정을 바탕으로 주변지역 취락과의 입지 관계도 동시 에 살펴보았다. 연구대상 지역은 천안지역이며 백석동 유적을 중심으로 그 주변지역을 포함한다. 이 지역은 최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개발에 힘입어 상당수의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유적이 확인되지 않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지표 시․발굴조사가 이루어 졌기 때문에 뚜렷한 유적의 분포범위를 알 수 있어 청동기시대 전기의 각각의 취락 규 모를 파악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그림 48>참조) 분석에 앞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전제하였다. 봄과 여름 가을의 활동기를 거쳐 겨울에는 인간의 활동이 휴식기에 들어가는데 이때 에는 자원의 활용보다는 보관과 비축이 우선시 된다. 따라서 겨울철에는 주로 주거지 내부에서 많은 활동이 일어나며 노지의 설치를 통한 체온의 유지가 필요하다. 결국 노 지의 설치는 최소 11월 중순부터 3월 중하순 정도까지 최소 3개월 내지 최대 5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 특히 가장 추운 달인 12~2월까지의 3개월 정도는 24시간 동안의 지 속적인 보온이 필수적이다. 상기의 전제와 노지 실험내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노지 수에 따른 땔감의 양과 이들을 획득하기 위한 산림 면적을 산출하여 보았다. <표 3> 노지 수와 달수에 따른 땔감의 양 (땔감의 조건: 건조나무 12년산, 높이 250~300cm, 직경 12cm 무게 약 10kg). 1기. 2기. 3기. 4기. 5기. 1달. 2,400. 4,800. 7,200. 9,600. 12,000. 2달. 4,800. 9,600. 12,000. 19,200. 16,800. 3달. 7,200. 12,000. 14,400. 16,800. 19,200. 4달. 9,600. 19,200. 16,800. 19,200. 21,600. 5달. 12,000. 16,800. 19,200. 21,600. 24,000. 우선 전술한 바와 같이 20kg 정도의 땔감으로 약 6시간의 보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1개의 노지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최대 4회(24시간/6시간)의 노지설치가 있어야 한다. 땔감 양으로 단순계산하면 약 80kg(4회×20kg) 정도의 땔감 이 필요한데, 이를 다시 1달로 계산하였을 경우 약 2400kg(80kg×30일) 정도 이상의 땔 감이 노지 1기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최소 3달을 지낼 경우는 약 7200kg(2400kg×3달)의 양이 필요하며, 최대 5달의 경우는 약 12,000kg(2400kg×5달) 의 땔감이 필요하게 된다.(<표 3> 참조). - 196 -.

(23)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이처럼 많은 양의 땔감이 노지 1기 당 필요한데 전기 주거지의 경우 노지의 수가 최 소 1기에서 최대 5~7기, 많게는 10기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땔감의 양은 노지수와 비례 하여 증가하게 된다. 이상의 산출조건을 바탕으로 천안 백석동 유적의 주거지 노지수를 합산해서 취락에 서 필요한 땔감의 양을 산출해 보았다. 천안 백석동 유적은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3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총 100여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19) 주거지에서 노지는 최소 1기에서 최대 10기가 설치되는 등 그 수에는 차이가 있다. 전체 주거지에서 확인된 노지 수는 총 145기 정도이다. 이를 바탕 으로 최소 3달을 꾸준히 땠을 경우 약 1,044,000kg(7,200kg(3달 필요량)×145기)이며, 최대 5달의 경우 1,392,000kg의 땔감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땔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산림 면적이 필요한지 파악해 보았다. 계산의 편의상 1㎡당 수령 약 15~20년산의 나무 20)가 식재되어 있다 가정 하면 주거지 전체 노지를 다 때웠을 경우 필요한 산림 면적은 약 104,440㎡ (1,044,400kg/10kg)정도이다. 이 면적은 한해 기준으로 한 경우이며 나무의 수령이 최 대 10~15년 정도 되어야 땔감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보면 나무의 성장속도까지를 계 산하면 최소 10배 이상의 산림면적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상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다음의 <표 4> 및 <그림 48>과 같이 백석동 유적 주변의 땔감 확보 최소 면적을 추정하여 보았다. 이러한 분석결과를 통해 개별 취락별로 일정 범위의 산림지역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 다. 또한 자원(땔감)의 속성상 과도한 벌채는 자칫 취락의 존재 자체에 위험한 요인으 로 대두 되는 바 개별 취락간 자원의 중복사용은 자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현상은 청동기시대 전기유적의 공간적 분포상에서도 확인된다. <표 4> 노지수와 땔감 필요량 및 최소 자원확보 필요면적 유적명. 노지수. 땔감 필요량 (최소 3달). 땔감 필요량 (최대 5달). 땔감 자원확보 필요면적. 백석동. 145+∝. 1,044,000kg. 1,392,000kg. 1,044,400㎡+∝. 불당동. 90+∝. 648,000kg. 864,000kg. 648,000㎡+∝. 명암리. 35+∝. 252,000kg. 336,000kg. 252,000㎡+∝. 19) 백석동 유적은 연구자에 따라 최소 2단계에서 3단계의 취락으로 구분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현 재 우리 연구원에서 이 지역과 인접한 동일능선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시굴당시 최소 100여기의 유구수를 고려하면 백석동 유적 주거지의 수는 200여기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주거 지가 단계별로 구분된다 하더라도 주거지 노지 총수는 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늘어날 가능 성이 있다. 아직 발굴조사 중에 있으므로 자세한 합산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최소량의 땔감양 계 산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20) 수분이 있을 경우 무게는 약 40-50kg 정도이며 건조되었을 경우 약 10-20kg 정도의 무게가 추정 된다. 땔감으로 이용하기에 적당한 크기로 자르거나 활용하는데 유용하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10kg을 전제로 하였다.. - 197 -.

(24) 야외고고학 창간호. <그림 48> 유적범위 및 추정땔감자원영역 <그림 48>은 백석동유적을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에서 실시된 지표, 시굴, 발굴 조사 내용을 모두 적기 한 것이다. <그림 48>을 보면 백석동유적 주변으로 대규모 청동기시 대 취락의 존재가 확인된다. 즉 백석동유적의 남쪽으로 불당동 유적이 위치하며, 서쪽 으로는 명암리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명암리유적의 경우 유적 주변부에 대한 조사 시 청동기시대 전기취락이 추가적으로 확인되고 있어 백석동유적 수준의 대규모 취락이 입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술한 백석동, 불당동, 명암리유적의 주변으로는 규모가 작은 취락이 반원상으로 배 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별취락의 공간적 분포양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 정한 규칙성을 알 수 있다. 즉 취락의 분포에 있어 일정 정도의 거리가 유지되고 있음이 간취된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볼 때 개별 취락간에 산림자원에 대한 일정한 영역이 있 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 198 -.

(25)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Ⅴ. 맺음말 선사취락의 연구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양호한 이 시기의 자료를 획득하는데 어려 움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부분의 취락이 경사면상에 입지함으로써 자연 환경에 의한 파괴가 심하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필자들은 실험고고 학적 방법을 통해 취락의 입지요인에 대하여 접근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접근과정에 서 앞의 지적과 같이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성격의 연구주제가 뒤섞여 본 연구의 초점 인 취락의 입지요인분석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흐려지고 말았다. 이는 한편으로 필자들 의 욕심에서 기인한 바가 큼을 인정할 수 밖에는 없다. 아마도 기존의 주거지 복원자료 와 실험 자료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금번 연구과정에 대한 자세한 보고에 치중하였던 결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번 복원 및 실험을 통해 천안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입지요인에 대한 가설적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복원된 주거지의 노지를 통한 주거지 내부의 열환경에 대한 검토결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복원 및 실험과정에서 추가적으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주거지 내부의 기둥배치 문제 및 노지의 사용, 배연문제 등 많은 부분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복원 및 실험과 정에서 많은 오류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자 원(땔감) 확보 영역에 대한 시론적 추론과정에서 자의적인 해석과 논리의 비약이 상당 부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추후 자료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 199 -.

(26) 야외고고학 창간호. <參考文獻>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6,『조선기술발전사 1』원시․고대편. 김경표․류근주, 1994,「청원 궁평리유적의 청동기시대 집터 복원에 관한 연구」『淸原 宮坪里 靑銅器遺蹟』, 韓國高速鐵道建設公團․忠北大學校先史文化硏究所. 김도경, 2000,『韓國 古代 木造建築의 形成過程에 關한 硏究』, 고려대학교대학원 박사 학위논문. 金載昊, 2005,「保寧 寬倉里 住居遺蹟 硏究」, 東亞大學校大學院 博士學位論文. 金正基, 1968,「韓國竪穴住居址考(一)」『考古學』第一輯, 고고학회. 羅建柱․姜秉權, 2003,『牙山 鳴岩里遺蹟(11․3地點)』, (財)忠淸文化財硏究院 문백성, 2004,「Ⅳ. 竪穴建物址 關聯 分析」『竪穴建物址 調査方法論』, 춘추각. 박원규․김요정, 2004,「천안 운전리 청동기 유적지에서 출토된 숯의 수종분석」『천안 운전리유적』,『天安 云田里 遺蹟』, (財)忠淸文化財硏究院․大田地方國土管 理廳. 申相孝, 1996,「松菊里型住居址의 復元的 考察」『湖南考古學報』4, 湖南考古學會. 安在哠, 2006,「靑銅器時代 聚落硏究」釜山大學校大學院 博士學位論文. 엄윤정, 1999,「울산지역 청동기시대 취락과 주거의 건축적 특성에 관한 연구」울산대학 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오후배, 2004,「Ⅲ. 수혈건물지의 각종 부속시설」『竪穴建物址 調査方法論』, 춘추각. 윤기준, 1985,「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집터에 관한 연구-지역적 특성과 그 구조를 중심으 로」『백산학보』제32호, 백산학회. 李南奭․李勳․李賢淑, 1998,『白石洞遺蹟』, 公州大學校博物館․忠淸南道 天安市. 이희진, 2006,「지질고고학의 새로운 연구경향과 전망」『고고학』제5권 제1호, 서울경 기고고학회. 林永珍, 1985,「움집의 分類와 變遷」『韓國考古學報』17․18, 韓國考古學會. 趙亨徠, 1996,「竪穴住居의 壁과 壁溝에 관한 硏究」, 釜山大學校大學院 碩士學位論文. 中央文化財硏究院․大田地方國土管理廳, 2004,『陰城 下唐里遺蹟』. 忠淸南道歷史文化院․天安市經營開發事業所, 2004,『天安 佛堂洞 遺蹟』. (財)忠淸文化財硏究院, 2004,「천안 부대동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제2캠퍼스 신축부지내 文化遺蹟 試掘調査 略報告書」. (財)忠淸文化財硏究院, 2006,「천안 제4지방산업단지 진입도로 확장 조성부지 내 문화 유적 시굴조사 약보고서」. (財)忠淸文化財硏究院, 2006,「천안 백석동 벽산아파트 신축예정부지 내 문화유적 시굴 조사 보고서」. (財)忠淸文化財硏究院, 2006,「천안 백석동 2차 벽산아파트 신축예정부지 내 문화유적 시굴조사 보고서」. (財)忠淸文化財硏究院, 2006,「온양-음봉간 지방도 확포장공사 구간(1공구) 내 문화유적 시굴조사 보고서」. (財)忠淸文化財硏究院, 2006,「천안 용곡동 두터골 유적」현장설명회자료집. 취락연구회, 2004,『竪穴建物址 調査方法論』, 춘추각. 韓國木炭硏究所, 1999,『숯이 사람을 살린다』, 志成文化社. 許義行․姜秉權, 2004,『天安 云田里 遺蹟』, (財)忠淸文化財硏究院․大田地方國土管理廳. - 200 -.

(27) 청동기시대 주거지 복원 및 실험. The Restoration and the Experiments of Dwelling Site in the Age of Bronze - Focused on the dwelling site in the early age of Bronze -. Oh, Kyu-jin & Heo, Ui-haeng (Chungcheong Cultural Properties Research Institute). Abstract Recently, as studies related to the method for researching into dwelling site have been actively progressed, cases of restoration is increasing. Firstly, the most important thing in studies on settlement is to clearly recognize the function and the construction of individual remains. Based on the recognition, in priority, the analyses and the interpretations of individual remains should be performed. After that, we should specifically study on residences in settlement, other remains, and their arrangement, functional spaces. Realizing the process of the study, we restored residential area in the Age of Bronze to make use of the results from the experiments in that place. The object to be restored was decided for long rectangular residences in the early age of Bronze. In the restored dwelling site, we measured the temperature, and carried out the experiments of the ground. After restoration, we try to differently understand the existence or non-existence of the ridge of roof, the holes in the middle pillars, and then presumed the upper side of residences and the constructive methods between pillars. Above all, it is necessary to restore the residential which had been destroyed by fire, after observed carefully. From the result, we found that it had been possible to use ground by 1-2gi, and also traced the verifying method of temporary or lasting uses. We understood the method of hardening ground by using clay and charcoal. Through above experiments, we presumed the volume of firewood and the space for it. The result was that settlements including remains in Baekseok-dong site had recognized that they needed to secure the space for firewood. key word : The Restoration and the Experiments of Dwelling Site, 노지, volume of firewood and the space .. - 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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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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