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역사경관을 활용한 도심재생 -상하이 구 조계지역을 사례로-
한지은*
Inner City Regeneration Utilizing for Historic Landscapes : A Case Study of Old Settlements in Shanghai
Ji-Eun Han*
요약:문화와 경제개발을 대립적인 관계로 파악하던 전통적 관점과는 달리 오늘날 문화는 도시 성장전략의 핵심적 요소가 되었으며, 역사경관의 보존과 활용은 도심재생의 주요 도구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중국 상하이의 도심재생의 담론이 철거·
신축 중심의 대규모 재개발에서 역사문화를 강조하는 도심재생의 방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상하이 구 조계지역의 세 곳 을 사례로 근대역사경관을 활용한 도심재생의 양상을 살펴본다. 근대역사경관을 활용한 도심재생에 작동하는 자본과 문화, 역사의 관계를 검토함으로써, 최근 여러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강조하는 도심재생의 의의와 한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주요어:역사경관, 상하이, 도심재생, 개혁개방 이후 중국
Abstract:Scholars who accept the “development/protect” dichotomy in historic landscape take the tensions between economic development and cultural authenticity for granted. However, the role of historic landscape in urban development has changed in recent years, and many cities over the world use historic landscape for inner city regeneration and city marketing. This research shows that modern historic landscape has been utilized mainly for the inner city regeneration in Shanghai. Although Shanghai’s inner city regeneration using modern historic landscape seems to pursue historic continuity and to preserve place identity, there are limitations as well. This research will provide insights on recent inner city regeneration projects that emphasize history and culture more than ever.
Key Words : historic landscape, inner city regeneration, post-reform China, Shanghai.
본 연구는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를 수정 보완하여 작성한 것임.
*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HK Research Professer, Institute for Urban Humanities, The University of Seoul), [email protected]
1. 서론
최근까지 도시의 역사경관에 관한 일반적 전제는 보 존과 개발, 경제적 이익과 지역 정체성의 유지 사이에 는 갈등이 필연적이라는 것이었다. Tunbridge and
Ashworth(1996)는 이러한 갈등은‘헤리티지’의 개념 자체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것이라고 보는데, 경제적 상품으로서 판촉을 위해 선택되는 역사경관과 역사적 이며 심지어 성스럽게 여겨지는 헤리티지의 장소적 특 성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러나 오늘날 헤리티지로서 역사경관을 둘러싼 가장 큰 변화는 역사경관이 보다 분화된 시장에서, 보다 다양 한 방식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Graham et al, 2000).
도시재생의 담론과 행위는 장소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지역의 정책결정자들은 자신들의 상 황에 맞는 개발전략과 상상력을 채택하고자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Raco, 2003).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도시 들이 국가 경계를 넘어서는 공간 조직에 점점 통합되 면서 지난 20여 년간 특정 도시들은 세계경제의 중심 이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를 위한 장 소전략들은 단순히 경제적인 방법만이 아니라 다양한 상징의 조작과 아이덴티티의 구성을 통해 시도되어 왔 다(Kong, 2000; Paul, 2004; Yeoh, 2005). 주목할 것 은 이러한 도시의 장소판매 과정에서 장소와 역사의 결합, 혹은 역사의 변형이 자주 목격된다는 점이다 (Zukin, 1991; Kearns and Philo eds., 1993; Urry, 1995; Raco, 2003).
한편 사회주의의 자본주의적 수정이라는 체제의 전 환기를 겪고 있는 현대 중국의 도시공간은 개혁개방으 로 형성된 중국 사회의 정치경제적 변화들이 재현되는 곳이다. 중앙정부가 지역의 결정권을 지방정부에게 이 양하는 분권화 개혁의 과정 속에서 중국의 도시공간은 개발의 이익과 관련한 새로운 경쟁과 협상의 장소가 되었다. 중국의 도시공간을 둘러싼 변화는 도심재생의 과정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기존의 물리적 공 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대치하는 과정에서 관련 행위자 들 간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연구지역인 중국 상하이는 강압적 개항을 통한 (반) 식민주의 도시로 형성되어, ‘동양의 파리’라 불릴 정 도로 세계적 도시로 성장하였지만, 사회주의 도시의 전형으로 계획경제시기 국가의 통제 하에 있었으며, 개혁개방 이후 다시금 급속한 경제 성장과 도시 변화 과정을 겪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자본주의적 전환 이라는 개혁개방의 과정 속에서 상하이의 근대역사경 관은 지우고 싶은 대상에서 노스탤지어의 대상으로 극 적으로 변화하였다(Han, 2008). 나아가 식민지배의 상 징이었던 근대역사경관은 최근의 도심재생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의 하나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먼저 상하이 도심재생의 담론이 철 거와 신축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재개발사업에서, 역 사와 문화를 강조하는 도심재생의 방식으로 변화한 과 정을 추적한다. 이어서 상하이 구 조계지역을 사례로 오늘날 상하이의 도심재생에서 근대역사경관이 활용 되는 양상을 검토할 것이다. 사례 지역들에서 자본의 힘과 문화적 상징성의 변화가 각각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추적함으로써 역사경관을 활용한 도심 재생에서 자본과 문화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이 연 구의 목표이다.
2. 상하이 도심재생 담론의 변화: ‘위험 주택철거’ 에서‘역사경관보호’ 로
오늘날 상하이는 중국의 4대 성급시(省級市) 중 하 나이며, 총면적은 6,340km2로 중국 성급 행정구역 중 31번째를 차지하지만, 2010년 기준으로 총 인구는 2,301만 명으로 중국 도시 중 최대이다. 상하이에서 도 심 지역을 정의하는 방법은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다.
영문의‘downtown’이나‘inner city’의 번역어로 사 용되는‘중심성(中心城)’은‘교외지역’이나‘위성지 역’과 대비되는 한 도시의 중심지역을 의미하는 말로, 도시계획용어로는 도시적 건축경관이 나타나는‘건성 구(健城區)’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중국에서는 보통 중 심성이 도심을 말하지만, 상하이에서는 기능과 입지 특성 등의 측면에서 도심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은 일반 적으로‘내환선’이내 지역을 말하며, 본 연구에서도 이러한 정의를 사용하였다(Xu, 2004).1)
상하이의 도심내환선 지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황푸 구(黃浦區)와 양푸구(楊浦區), 홍커우구(虹口區)는 대 부분 영국과 미국의 공공조계에 속하던 지역이고, 루 완구(盧灣區), 쉬후이구(徐匯區), 징안구(靜安區) 등은 프랑스 조계의 영역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현재 상하이 도심 지역의 대부분이 조계지역에 속하였 던 역사적 사실은 구 조계지역의 근대역사경관이 상하 이 도심재생의 주요 자원으로 활용되는 토대가 되었
다.
이처럼 식민시기 조계지였던 상하이의 도심 지역은 오늘날에도 도시 기능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 며, 도시의 오랜 역사를 대변하는 이 도심 지역의 재생 은 곧 상하이 도시 전체의 기능 및 구조의 변화를 반영 하여 이뤄진다. 따라서 근대역사경관을 활용한 상하이 구도심재생은 지역의 고유한 맥락에 의해 형성된 것이 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생되는 도심 지역의 특 성과 재생의 자원이 된 근대역사경관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상하이의 도심재생에서 구 조계지역의 근대역사경 관이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 는 각종 근대 건축경관들이 계획경제시기 동안의 투자 부족으로 인해 최근까지 도심 지역에 남아있었고 이들 대부분이 비시장적 가격으로 이용되고 있었기 때문이 다. 따라서 개혁개방 이후 도심의 지가상승과 서비스 업 활성화와 같은 도심 재구조화의 동기가 강화하면서 근대역사경관을 활용한 도심의 재가치화가 지방정부 에 의해 주도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택 및 기반시설에 대한 만성적인 투자부족으로 개 혁개방 이전 상하이 도심주택의 상당수는 화장실이나 가스 시설조차 없는 노후한 주택들로, 1980년대 초 상 하이 도심 내 일인당 평균 거주면적은 약 5.6m2에 불 과하였다(Wang, 2006). 이에 1990년대 초 분권화 개 혁으로 도시개발의 결정권을 갖게 된 상하이시정부는 도시를 근대화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기치 하에 노후주택지구의 대규모 재개발, 즉‘구구개조(舊區改 造)’를 최우선 과제로 진행하였다.
이처럼 상하이에서 초기의 도심재개발은 토지조사 와 이를 통해 위험건축, 즉‘웨이방(危房)’을 선정하여 철거하고, 신규 주택을 건설하여 주민을 이주시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재개발을 통해 도시경제를 부흥하 고, 해외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도시환경을 최대한 빨리 개선하고자 한 시정부는 분권화로 획득한 자신의 정치적 힘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1991년에 상하이시 제6차 당 대회에서 시구 지역 내 365만m2의 위험불량 주택을 개조하는 소위‘365프로젝트(365工程)’가 제시 되었고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규모 도심주택재개발이 시작되었다. 빠른 목표달성을 위해 시정부는 국내외
개발기업들과 구정부에게 상당한 혜택을 제공했다.2) 이 프로젝트로 인해 2000년 말까지 상하이에서 위험불 량주택으로 선정되어 철거된 면적은 500만m2로 계획 을 초과달성한 것이었고, 1991~2001년까지 총 약 2,700만m2의 주택이 추가로 철거되어 약 64만 가구의 이주민이 발생했다(Shanghai Statistics Bureau, 2002).
대규모 철거와 신축을 진행하기 위해서 지방정부는 도심재개발의 목적으로‘위험불량주택의 선정 및 철 거’및‘더 살기 좋은 주택의 제공(安居工程)’을 내세 워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80 년대 주택재개발사업이 야오슈이농(藥水弄), 스민춘 (市民村), 시링자자이(西凌家宅) 등 대규모 판자촌의 철거와 대단지 노동자주택지구의 건설에 집중되던 것 과 달리, 1990년대 이루어진 도심재개발은 임대료가 높은 도심 지역의 비교적 오래된 주택을 철거하고 상 품주택을 건설하여 수익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다 (Wang, 2006).
무엇보다 개발을 우선시하는 정책 속에서 역사건축 의 보호에 대한 고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구정 부들이 경쟁적으로 재개발에 뛰어들면서 도심 내 근대 건축의 상당수가 파괴되었다. 또한 목표달성을 앞당기 기 위해 용적률, 건축고도제한 등의 지표들을 개발기 업에 양보하면서 상하이 도심 지역은 규제 없는 고층 화로 혼잡스러운 상태가 되었고, 도심 지역의 저소득 층 거주지가 상업 및 오피스 빌딩으로 전환되면서 원 거주민의 재정착이 차단되고 도심공동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외에 일부 지역에서는 상업 및 사무 빌딩 과 고급 주택의 공실률이 높아지거나, 개발 중단, 개발 기업의 파산이 나타나기도 했다(Xu, 2001). 이처럼 노 후주택의 대규모 철거와 신축 방식으로 진행된 1990년 대의 도심재개발은 물리적 개발에만 집중함으로써 상 당한 문제점을 야기했다.
이에 기존의 도심재개발에 대한 대안으로, 2000년대 이후 상하이시정부는 지역의 역사와 분위기의 보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도심재생정책을 내놓게 된다. 2000년 말 기존‘365프로젝트’의 목표가 달성되자, 2001년 초 상하이시 건설위원회와 부동산국 등이 함께 <주민재정 착율을 높이는 새로운 구도시지역 개발을 촉진하기 위 한 시행방법>을 발표하는데, 이에 따르면 전면적 철거
와 신축으로 이뤄지던 도심재개발을 지양하고, 역사적 가치에 따라‘철거·개조·보전’의 방법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것을 제시하였다. 시정부는 개발과정 에서 기준 이하의 구식이농주택(도시계획 상 2급 이하) 은 연도에 따라 철거하고, 상태가 양호한 주택이나 역 사·문화적 가치를 가진 주택은 지구나 가로를 중심으 로 <도심지역사풍모보호계획>에 따라 개조와 보전을 병행하도록 규정하였다(Xu, 2001; Wang, 2006).
이제 가능한 한 많은, 위험불량주택을 선정하여 철 거 후 신축하던 도심재개발 전략은, ‘역사적 가치를 지 닌’건축을 선정하고 그것의 이용과 개발을 추진하는 도심재생 전략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상하이의 새로운 도심재생에서 역사경관의 보호와 개발은 대립적인 말 이 아니라 서로 결합적으로 작동하며, 근대역사경관과 그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주요 자원으로 사용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강조하는 도심재생정책으로 의 변화는 이전의 대규모 재개발과정에서 역사건축의 상당수가 파괴되고, 철거 및 이주 관련 분쟁과 원주민 대체 현상 등의 문제점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강화된 것이 한 원인이지만, 개발의 자원으로 사용된 근대역 사경관의 특징도 한 이유가 되었다.3)중국에서 근대역 사경관은 민족주의에 의해 확고한 지지와 보호를 받는 국가적 문화재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식 민주의와 관련된 갈등적 해석이 공존하는 곳이다. 탈 식민주의 근대역사경관의 이러한 특성은 국가적 문화 재와 달리 경관의 개조로 인한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여 지를 제공해 주었다. 더욱이 개혁개방의 과정에서 근 대 시기 상하이에 대한 긍정적 노스탤지어가 형성되면 서(Han, 2008), 근대역사경관은 화려한 과거를 판매함 으로써 세계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상하이 지방정부 에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따라서 기존에 안전이나 경제적 가치를 강조하던 도 심재개발의 담론과 달리, 2000년 이후 상하이의 도심 재생은‘역사보호’와‘예술과 문화의 발전’, ‘신경제 의 혜택’과 같은 문화적인 담론들에 의해 주로 추진되 며, 옛 건물을 모두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역사 건축군의 일부, 혹은 외관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는 특징을 보인다. 역사경관을 고려하는 도심재생으 로의 변화는 개발의 목표가 단순히 경제적인 것이 아
닌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는 점에서 일견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개발전략은 미학적 지향을 전면에 내 세움으로써 새로운 개발이 만들어 내는 문제들에 대한 비판에 완충장치를 만든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비 경제적 목표로 보이는 도시의 역사와 분위기를 보호한 다는 개발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 도심 내 남아 있는 근대역사건축자원의 재가치화 혹은 상품화 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미의 도시들에서도 도심 내 역사건축의 보호와 개 발의 문제는 오랜 갈등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도심 내 자산개발의 욕구와 건축의 역사 성 보호라는 목표의 타협점으로 흔히 제시되는 방식이 바로 건물의 정면이나 외벽, 즉‘파사드(façade)’는 남 겨두고 내부를 철거 혹은 개조하는 이른바‘파사디즘 (Façadism)’이다(Ley, 1996). 보존주의자들은 이를 두 고 역사적 의미에 대한 파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실제 도시개발의 맥락에서는 무자비한 개발을 막는 가 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옹호된다. 개발과정에서 남아 있는 옛 건축을 완전히 보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 문에, 그 중 가치가 있는 (것이라 정의되는) 일부를 보 호하고, 그 외 부분을 지역 분위기에 맞추어 개발하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 특히 도시 내에 고대의 문화재보다 훨씬 많은 근대건축을 가지고 있던 상하이에서 건물 외부의 역사 적 의미는 남겨두고, 다른 용도로 개발이 가능한 파사 디즘은 특히 매력적인 방법이었다. 이에 도심재생에서 역사경관의 처리가 중요한 문제가 되기 시작한 1990년 대 말부터 도시역사경관을 이용한 지역개발의 선전 문 구에‘보호성개발(保護性開發)’, ‘개조적재이용(改造 的再利用)’, ‘정구여구(整舊如舊)’와 같은 낯선 단어들 이 본래 단어의 의미와는 달리 파사디즘을 통한 역사 건축 개발과 이용을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개념들로 사 용되기 시작한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이제 도심에 수많 은 근대건축물이 있는 상하이의 도심재생에서 보호와 개발은 대립적인 말이 아니라 상호 결합적으로 작동하 고 있다.
역사경관을 활용한 도심재생을 통해 지역의 경제성 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보호와 개발의 대상이 되
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자원에 대한 범주를 새롭게 정 의하고 구성하는 일이 필요했다. 상하이는 1986년 중 앙의 국무원으로부터‘국가역사문화유명도시’로 비준 받았고, 문화재관리법인 국가 문물법에 따라‘본래의 자리에서 완전한 보호의 대상(原址保護)’이 되는 총 19 곳의‘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를 가지고 있다. 한편 근 대건축은 식민주의의 역사적 문제를 제외하고도 오랜 역사와 넓은 영토를 지닌 중국에서 국가적 차원의 문 화재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대부 분의 지역에서는 국가적 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단순 보호에 그치고 있던 1990년대 초부터 상하이의 지방정 부는 독자적으로 근대역사건축 관리제도를 추진한다.
1991년 제정된 <상하이시 우수근대역사건축 관리보 호방법>은 중국 지방정부가 제정한 최초의 근대건축보 호에 관한 규정이었다. 1989년 시정부에 의해 제 1차 61곳의 우수역사건축이 선정된 이후, 1994년 175곳, 1999년 162곳, 2005년 230곳이 우수건축으로 선정되 었고, 2007년 현재 총 663곳, 2,154동의 건물, 총면적 은 400만m2이 해당된다. 그러나 이 규정은 일부 정부 부처의 행정 법령으로 발표되어 법률적 지위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1990년대 대규모 개발 속에서 우수근 대건축의 상당한 파괴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2년 상하이 인민대표상임위원회가 <상 하이시 역사문화풍모구 및 우수역사건축 보호조례>를 제정하면서 도시 내 역사건축의 보호가 정식 법규로 규정되었다(Wu and Wang, 2006).
이 조례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건축의 보호대상이 개별 건축의 점(點)적 보호에서 지역의 역사적‘분위기 (風貌)’, 즉‘역사문화풍모구’의 면(面)적 보호로 그 범 위가 확대된 점이다. 이에 따라 개별 건축뿐 아니라 와 이탄, 인민광장 등 도심지 12곳에 총면적 27km2의 역 사문화풍모구가 지정되었다. 또한 이 조례에서는 보호 의 범위뿐 아니라 대상 또한 확대되었는데, 본래 1949 년 이전의‘우수근대건축’이 보호의 대상이었던 것에 서, 30년 이상 된‘우수역사건축’으로 확대되었다. 특 히 주목할 점은 보호대상과 관련하여 중국 내 최초로 산업건축의 보호개념이 제시되었다는 점이다4)(Wu and Wang, 2006). 곧이어 역사문화풍모와 같은 구역 보호의 개념은 특정 분위기를 담고 있는 거리의 보호
까지 확대되었다. 상하이시는 2007년 <상하이시 풍모 보호도로 규획관리에 관한 의견>을 발표하는데, 이에 따라 도심 내 100여 곳을 역사풍모보호도로로 선정하 고, 그 중‘1종 역사풍모보호도로’인 64곳의 경우 도로 폭 확대와 도로 양변의 건축고도변경을 금지하기로 한 다.
이처럼 근대역사경관이 집중된 상하이 도심지의 개 발에 있어 기존의 대규모 철거와 신축을 중심으로 하 던 도심재개발이, 2000년대 이후 지역의 역사와 분위 기의 보호를 강조하는 도심재생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오늘날 상하이의 도심재생에서 근대역사경관의 보존 과 활용이 지역의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적 활동으로, 나아가 지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문화적 활동으로 이 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에 아래에서는 구 조계 지역의 도심재생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살펴보 고자 한다.
3. 상하이 구 조계지역 도심재생 사례 연구
근대역사경관을 이용한 상하이 구 조계지역의 도심 재생의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본 연구는 다음의 세 지 역을 사례로 선정하였다. 우수상업건축의 재이용을 중 심으로 하는 황푸강변의 와이탄(外灘) 지역과, 식민시 기 상하이의 대표 건축인 스쿠먼(石庫門) 주택을 중심 으로 재생이 이뤄진 루완구의 타이핑차오(太平橋) 지 역, 그리고 서양식 화원주택(花園住宅)의 재이용이 나 타나는 구 프랑스 조계지역이 그것이다.
이들을 사례지역으로 선정한 이유는 세 곳 모두 현 재 상하이의 주요 도심재생지역인 동시에, 역사경관을 활용한 상하이 도심재생의 구체적 특성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례지역인 와이탄 지역은 식민지배의 상징 적 장소인 동시에 현재 도시의 핵심 상업 지역이다. 이 에 와이탄의 건축적으로 우수한 근대 시기 상업건축의 재이용은 시정부의 주도하에 추진되는 도심재생의 대 표적 사례가 되었다. 두 번째 지역인 루완구의 타이핑 차오 지역은 상하이의 독특한 건축양식인 스쿠먼 주택
의 재개발이 이뤄지는 지역이다. 이 지역이 기존의 도 심재개발과 차별적인 점은 노후한 스쿠먼 주택을 모두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스쿠먼으로 상징되는 상하이의 문화적 특성을 선택·부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홍콩의 개발업자와 구정부의 적극적 협력으로 건설된 타이핑차오 지역 내의 신톈디(新天地) 지역은 오늘날 중국에서 역사경관을 이용한 도심재생의 가장 성공적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옛 프랑스 조계지역에서 화원주택을 재이용한 도심재생의 사례 는 근대역사경관에 대한 노스탤지어어의 유행과 그로 인한 소비의 역할을 보여준다. 특히 사회주의시기 자 산계급의 상징으로 핍박의 대상이 되었던, 구 프랑스 조계지역의 서양식 주택들이, 오늘날 유행의 하나로 적극적으로 소비되는 것은 상하이의 도심재생에서 근 대 역사경관의 상징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이다.
1) 와이탄 우수상업건축의 재이용
(1) 와이탄의 세 번째 주인
남북 총 4km인 황푸강 서안의 와이탄은 그 중심적 위치뿐 아니라, 주요 기구의 입지, 건축의 규모와 경관 의 상징성 등으로 조계 성립 이후 상하이의 식민 지배 의 상징적 장소였다. 특히 와이바이두교(外白渡橋)에 서 진링동로(金陵東路)까지의 중산동일로(中山東一路) 총 1.5km에는 1920~1930년대 각국의 건축 양식으로 만들어진 근대건축물 총 53동이 남아 있어 이른바‘만 국건축박람회’라 불린다.
조계의 행정기관, 영사관 등을 제외하면 와이탄 근 대건축군의 대부분은 1930~1940년대 각국의 은행 건 물로 지어진 것들이다. 1848년 상하이 최초의 외국은 행인 Oriental Bank를 시작으로, Mercantile Bank of India, 프랑스의 Banque de L’Indochine, 미국의 The International Banking Corporation New York, 네덜 란드의 Nederlandsche Handel-Maatschappij, 일본의 타이완은행 등 각국의 은행지점들이 밀집하면서, 1930~1940년대 와이탄에는 총 27의 외국계 은행과 중 국계 은행 86곳, 전장(錢場) 48곳, 6곳의 신탁공사와 외환·증권교역소 등이 설립되어 중국 및 동아시아의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중국의 성립과 함께 와이탄에 자리 한 이들 금융 기관은 모두 국유화되었고, 조계 지배의 상징적 건물들은 행정기관이나 국가기관의 사무실로 변경되었다. 이는 제국주의 지배와 자본주의의 상징적 장소였던 와이탄을 새로운 상하이의 행정적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였다. 웅장한 신고전주의식 건축물인 영국 Hong Kong & Shanghai Bank는 상하이시인민 정부의 청사로, 일본의 Yokohama Specie Bank of Shanghai이 상하이시방직국으로, 프랑스의 The Banque de L’Indochine은 상하이시 교통경찰대대의 사무동으로 전환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방 식으로 와이탄에 자리한 100여 동의 건물은 사회주의 성립 이후 국유기관의 사무실 등으로 바뀌거나, 식 당·상점으로 변경되었다. 계획경제시기 국유단위에 부과되는 임대료는 실질적으로 없거나 매우 적은 금액 이었고, 공간 또한 입주한 단위들에 의하여 자의적으 Figure 1. Study Region 연구 지역
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일부 건물은 자전 거 보관소로 이용되거나, 옛 은행금고가 창고나 식당 의 냉장고로 이용되는 등 본래의 용도와 상관없이 40 여 년간 비경제적으로 이용되었다(Wang, 1998).
그러나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도심에 우수한 건축 군을 가진 와이탄 지역이 이처럼 제대로 된 시장가치 를 평가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는 점은 상하이 도 시발전의 대표적 걸림돌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분권화 개혁으로 도시의 개발 및 관리에 대한 결정권을 되찾 게 된 상하이 시정부는 와이탄 지역을‘원동(遠東)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던 옛 모습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정부에 의해 와이탄 건축군의 용도전환사
업이 시작되는데,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는 계획경제 시기 와이탄으로 이주한 행정 및 사무 기구들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그곳에 금융·증권·무역 기구, 다 국적 기업 등을 입주시켜 와이탄이 본래의 금융·무역 기능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995년 5월 중산동 일로 12호를 사용하던 시정부청사가 인민광장의 신청 사로 이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기구들의 이전이 착수되었다(Wang, 1998).5)
이제 국가에 의해 거의 무상으로 분배되던 와이탄의 건물들은 드디어 상업적 가치를 되찾고 새 주인을 맞 게 되었다. 가장 환영받은 입주자들은 바로 와이탄 건 물들의 옛 주인인 금융 기관들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 은행 상하이분행, 중국교통은행 본부, 미국 시티은행
Table 1. The Change of Users in the Bund. 와이탄 사용기관의 변화(2010년 8월)
Bund Before 1949 Socialist Shanghai Present
Shanghai offices of Royal Dutch
Metallurgical Designing Institute of Shanghai, China Pacific Insurance Co.
1 Shell and Asiatic Petroleum
Shanghai Real Estate Administration (under renovation) Company
3 Union Assurance Company Shanghai Civil Architecture and Design Three On the Bund
Institute (‘high-class’ shopping centre)
5 The Nishin Navigation Company Shanghai Changjiang Navigation Company
Hua Xia Bank Hospital
6 The Imperial Bank of China China Shipping Merchant Company High-end shops and upscale restaurants
9 China Merchants Steam Navigation
Shanghai Council of Trade Unions Investment Promotion Institute,
Company Shitazy Chen(designer’s shop)
10-12 Hong Kong & Shanghai Banking
Shanghai Municipal Government Shanghai Pudong Development
Corporation Bank
17 North China Daily News Building Shanghai Silk Import and Export Corporation AIA Insurance
18 Chartered Bank A Household Textiles Company of Shanghai, Bund 18 (high-end shops, Steamer Company of the Mediumwave etc. restaurants and galleries)
19 Palace Hotel Peace Hotel Peace Hotel
24 The Yokohama Specie Bank of
Shanghai Textile Administration. Industrial & Commercial Bank of
Shanghai China
27 Jardine Matheson & Co. Shanghai Foreign Trade Bureau under renovation
29 The Banque de L’Indochine The Traffic Control Department of Shanghai China Everbright Bank Public Security Bureau (under renovation) 33 British Consulate General Second General Office of the Shanghai
Penninsula Hotel Municipal People’s Government
과 모건스탠리, 스위스은행, 프랑스 리옹은행, 홍콩상 하이은행 등 국내외 유명 금융 기구와 중국 태평양보 험공사, 미국 AIA보험회사와 증권회사 등 다국적 기업 들이 와이탄 건물에 입주한다(Sang, 1995; Zou, 1996). 용도전환 된 총 48동 중에서 1987년에서 2000 년까지 임대가 이루어진 건물은 총 34동으로, 그 중 금 융기능 임대가 18동, 상업기능이 11동으로, 금융기관 으로의 용도전환이 가장 뚜렷하였다(Huangpu District Real Estate Bureau, 2001)
그러나 2000년 초 상하이에는 이미 푸동의 루자주이 (陸家嘴) 지역에 금융 기능이 집중되어 있었고, 수변지 역과 도심지라는 입지적 특성을 갖는 와이탄의 경우 고급 소비공간으로의 이용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시 정부는 와이탄 지역의 기능을 재조정하고자 한다. 이 에 따라 와이탄, 즉 중산동일로 3호·5호·6호·9호·
18호·19호, 27호를 세계적 수준의 독특한 소비공간 으로 개발하는 개조가 시작되었고, 현재에도 와이탄에 서 개조가 진행 중인 대부분의 건물들은 고급 소비 및 서비스 시설로의 전환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 는 2005년에 발표된 상하이시‘11차 5개년 계획 (2006~2010)’에서 와이탄 지역을 기존의 금융 및 본사 기능 이외에, 고급 호텔 및 레스토랑, 고가품 상점 등 의 국제적 기능이 혼합된, 이른바‘정상급 상업 지역’
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 제시되면서 보다 명확해졌 다. 이제 와이탄은 동양의‘월스트리트’보다는, 뉴욕
‘5번가’나 파리의‘샹젤리제’같은 곳으로 불리고자 하며, 이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와이탄의 근대역사경 관을 상업화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
도심 지가의 급상승과 그로 인해 높아진 개발 수익 으로 점점 더 많은 해외자본이 상하이로 유입되면서 와이탄은 점점 더 세계적인 경관으로 바뀌고 있다.
2010년 현재 와이탄 지역에서는 시정부의 중점프로젝 트인 황푸강 연안개발사업 중 하나인‘와이탄위안(外 灘源)’개발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황푸강과 쑤저우 하천이 만나는 와이탄 북단의 와이탄위안의 개발은 2010년 2차 개발이 착수 중으로, 개발 과정에서 역사 건축의 보호담론, 도심재가치화의 요구, 지방정부와 해외자본 역할 증가와 같은 오늘날 상하이 도심재생의 다양한 특성들이 잘 드러나는 사례이다.
2002년 시작되어 현재 마무리된 와이탄위안의 1차 개발지역은 황푸강 서편, 쑤저우하천 이남의 베이징동 로(北京東路) 이내 총 8.3만m2에 해당된다. 이 지역의 건축물들은 주로 1920년에서 1936년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구 영국영사관을 비롯한 10동의 건물이 우수 역사건축으로 지정되어 있다. 와이탄과 쑤저우하천이 연결되는 지리적 위치와 수변경관, 대규모 역사건축이 포함된 개발지역의 특성으로 인해 와이탄위안의 개발 은 2000년대 초 상하이 도시재개발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수립된 <상하이시 와이탄위안 지구 상세계획>에 따르면 이 지역의 개발목표는‘옛 풍모를 되살리고, 현대적 기능을 건설’하는 것으로, 즉, 지역의 역사경관을 중심으로 한 개발을 통해, 문 화·상업·관광이 결합된 지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것이다.
개발은 황푸구정부가 국유개발기업인‘신황푸그룹 (新黃浦集團)’에 위탁하여 토지확보를 위한 철거와 이 주사업, 기본시설을 건설하는 것으로 착수되었다. 공 개입찰과정을 통한 와이탄위안의 개발자 선정과정에 는 록펠러를 비롯하여, 모건스탠리, UBS, 시티그룹, 메릴린치 등 거대 해외금융자본들이 대거 참여를 희망 하였는데, 과거 중국 도시개발의 참여주체가 주로 홍 콩과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 자본이었던 것과 비교 할 때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한 이는 주로 중국부동산기업의 주식을 사들이거나 대출을 제공하 는 방식으로 개발에 참여하던 해외자본들이 부동산 개 발에 직접 참여하면서 도시개발에서 해외 금융자본의 역할이 점차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 다. 이러한 관심 속에 최종적으로 역사건축개조사업에 경험을 가진 록펠러국제그룹(Rockefeller Group International)이 개발자로 선정되었다.
역사건축보호라는 난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은 과거 도시개발의 보편적 문제로 제시되던 역사문화의 보호가 개발과 공 존하거나 나아가 개발의 핵심적 주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와이탄위안의 경우에는 철거가 필요없는 우수건축이 많았기 때문에 기타 도심 재개발 사업에 비하여 이주 문제도 크지 않았다. 또한 1990년 대 말 와이탄의 용도전환이 주로 금융과 사무 기능으
로 진행되면서 상하이의 대표적 관광지인 와이탄에는 상대적으로 문화와 여가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기존에 와이탄의 역사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활용 한 일부 호텔이나 소비시설이 매우 고가임에도 불구하 고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는 점은 해외 개발업 자들의 경쟁적 참여를 더욱 자극하였다.
지방정부와 개발기업의 적극적 참여 속에서 총 건축 면적 18.3만m2의 와이탄위안 1차 개발지역의 근대건 축들은 국제적 호텔과 여가상업시설, 사무용도로의 전 환을 목표로 현재 개조가 마무리되어 입주가 진행 중 이다. 이 지역의 개발에서 강조되는 것은 무엇보다 역 사적이고 문화적인 도심지와 수변지역의 분위기이며, 이를 위해 근대건축물들은 가로에 접한 건축의 입면은 보호하고 내부는 상업적 용도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개 조적재이용이 주로 이용되었다. 앞으로 주변의 개발이 완성되고 나면 도심의 낡은 근대건축지역은 역사와 문 화가 결합된 상하이 최고급 소비공간으로 변모할 것이 다.
(2) 와이탄 상징의 변화: ‘식민주의’의 상징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식민시기 와이탄은 상하이의 경제적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조계의 행정기관과 각국의 대사관 등이 집중 되어 있던 정치적 중심지였다. 특히 당시 서구 국가들 의 지배적 건축양식을 반영한 고층 건물들은 그 규모
의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상하이 조계 번영의 시각적 상징이었다. 따라서 사회주의 체제 성립 이후 오랜 기 간 와이탄은 제국주의의 본거지이자 굴욕적 역사의 상 징적 장소로 여겨졌다. 따라서 사회주의 성립과 문화 대혁명의 혼란 속에서 식민지 장소기억의 재구성은 와 이탄에 집중되었고, 이는 주로 경관의 제거와 새로운 기념비의 건설 등을 통해 이뤄졌다(Han, 2008).
그러나 식민지배의 기억은 1990년대 이후 상하이 시 정부의 적극적 노력에 의해 서서히 지워졌다. 1994년 의 와이탄 용도전환사업을 시작으로 황푸강변의 경관 및 수변경관정리사업, 근대건축물의 야간조명사업 등 이 차례로 진행되었고, 이국적인 근대건축군이 밀집한 와이탄은 점차 상하이의 자랑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와이탄을 식민주의의 상징에서 세계적 문화유 산의 상징으로 바꾸려는 시정부의 노력을 단적으로 보 여주는 사례는 바로 2003년 와이탄‘세계문화유산신 청’을 둘러싼 논쟁이다. 이미 1996년에 와이탄건축군 은 국무원으로부터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상하이 시정부는 식민지 권력과 금융의 중 심지였던 와이탄의 근대건축군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자 2003년 2월 <와이탄건 축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에 대한 건의>를 중앙정부에 제출하였다.6)
치욕적인 식민주의의 상징적 장소를 세계문화유산 에 등재를 신청한 이 사건은 이후 중국 내 여론의 큰 Figure 2. Restoration Project of Waitanyuan. 와이탄위안 개조 사업
반향을 불러일으키는데, 특히 상하이와 베이징 언론 사이의 첨예한 논쟁으로 불거졌다. 먼저 상하이의 세 계문화유산 신청에 대하여 베이징의 중국공산주의청 년단 기관지인『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는 2003년 7 월 2일‘와이탄 건축군은 어떤 문화유산인가’라는 표 제 아래에 와이탄 건축은 확실히 정교한 예술품이며 줄곧 상하이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지만, 반면에“와이 탄건축군은 분명 식민문화를 상징하는 것이며, 이를 세계문화유산에 신청하는 것은 자신의 흉터를 드러내 는 것인 동시에, 또한 상처의 아픔을 잊은 행위라고 말 할 수 있다.”라는 내용의 논설을 실었다.7)언론의 논란 이 계속되면서 와이탄건축군의 세계문화유산신청은 결국 기각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부각된 베이징과 상 하이의 논쟁은 식민주의 장소기억이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에 얼마나 상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 징적 사건이 되었다. 국가주의적 관점을 따르는 중앙 에서 보는 와이탄은 민족의 부끄러운 상처인 반면, 세 계화를 추구하는 상하이 정부에 있어 와이탄은 중국이 가진 세계적 수준의 문화이며 자랑스러운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수근대건축이 만들어 내는 옛 상하이의 노스탤지어와 이국적 분위기는 와이 탄 근대건축들의 개조와 재이용을 자극하였다. 지금까 지 와이탄의 근대건축들은 다음의 3가지 방법으로 이 용되어 왔다. 첫째는 역사적 가치가 없거나 노후한 옛 건축을 철거하고, 신축하는 방법으로 중산동일로 15호 와 현재 진행 중인 와이탄위안의 일부 건물이 그 예이 다. 두 번째는 건물 전체의 구조를 포함한 모든 것이 보호대상이 되는 문화재급 역사건축은 건물전체가 보 호된다. 세 번째 방법은 건축의 본래 분위기를 유지하 는 상태에서 외관과 내부구조, 장식 등을 새로운 기능 에 맞추어 고치는 것으로, 현재 와이탄에서 진행 중인 건축은 대부분 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개조방 식은 주로 건물의 입면과 외부의 보호를 강조하는 파 사디즘을 추구하지만, 이후 건물의 상업적 가치를 극 대화하기 위해 본래 건축의 정교하고 예술적인 복원이 점점 더 개조사업의 핵심적 내용이 되고 있다.
최근의 와이탄 건축의 개조는 해외 개발기업들이 건 물 전체를 지방정부 혹은 건물의 사용단위로부터 임대
한 후, 유명 해외건축사무소 등에 개조작업을 맡기고, 이를 세계적 브랜드 상점이나 유명 레스토랑에 임대하 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참여하는 해외 건축설 계사의 명성과 섬세한 복원과정 등은 홈페이지와 언론 에 상세하게 보도되고, 건축의 개조과정은 예술작품의 복원과 같은 수준으로 격상된다. 대표적 사례로‘와이 탄 18호’의 경우에는 이탈리아의 유명 고건축 복원사 무소에 의해 복원이 이루어졌는데, 2004년부터 2년간 이루어진 개조작업은 이탈리아의 Kokaistudios와 상하 이 동지대학(同濟大學) 설계연구소 등 중국과 해외의 저명회사의 공동 작업으로 수행되었고, 2006년 유네스 코가 수여하는‘Asia-Pacific Heritage Award’를 받았 다. 건물 입구와 도로에 붙어있는 수상내역은 이 건물 의 공인받은 세계적 수준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증명 하는 역할을 하며, 이곳에 입점한 해외 유명 상점과 레 스토랑들은 말 그대로 세계적 수준의 가격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처럼 근대건축의 건축적이고 미학적인 가 치를 극대화하도록 개조한 후 최고급 소비시설로 변경 하는 방법은 상하이 근대건축의 가장 성공적 재이용으 로 평가받으며, 현재 도심지에 남아 있는 상당수 우수 근대건축과 고층건물들의 활용 모델이 되고 있다.
2) 타이핑차오 지역의 스쿠먼 주택 재개발
(1) 상하이 도시주택‘스쿠먼’과 도심 재개발 상하이의 스쿠먼 주택은 1870년에서 1930년경까지 조계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건설된‘이농주택(里弄住 宅)’의 한 유형을 일컫는 말이다. 초기와 후기 스쿠먼 주택을 합하면 당시 이농주택의 70% 이상을 차지하였 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상하이를 상징하는 주택양식으 로 여겨진다(Fan, 2004). 상하이 조계에 처음으로 건설 된 이농주택은 대부분 외국인 부동산개발업자에 의해 임대를 목적으로 대규모로 건설되어 신문 광고 등을 통해 판매된 상품주택이었다.
초기의 스쿠먼 이농주택은 태평천국운동 이후 조계 로 유입된 비교적 부유한 지주나 관료들을 위해 지어 진 것이었지만, 20세기 초 스쿠먼 주택은 상하이의 높 은 임대료를 절감하기 위한 중하계층의 집단거주지로 변모하였다(Lu, 1999).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이 성립
되면서 스쿠먼 주택의 소유권에는 큰 변화가 발생하는 데, 국유화로 상당 수 스쿠먼 주택은 저렴한 임대료로 무주택자에게 배분되었다. 그러나 이들 저소득 주민에 게 할당된 주택들은 계획경제시기 동안 거의 보수되지 못한 채 노후화되었고, 오늘날 스쿠먼 주택은 상하이 의 빈곤계층, 실업자, 노약자 등의 사회적 약자들이 주 로 거주하는 도심의 대표적 빈민 주택으로 바뀌었다.
1997년 상하이 시내에는 전체 주택의 약 17.1%를 차 지하는 스쿠먼 주택에 267만 명이 살고 있었는데, 일 인당 주거면적이 5.8m2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과밀한 상태에 있었다. 특히 스쿠먼 주택들은 주로 옛 조계의 중심 지역이었던 황푸구와 루완구, 홍커우구 등 도심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함으로써 스쿠먼 주택의 재개 발 문제는 상하이 도심의 중요한 해결과제가 되었다 (Li, 2004).
한편 분권화의 결과 도심재개발이 구정부의 권한 하 에 놓이면서, 구정부는 스쿠먼 주택지역 재개발의 가 장 핵심적 주체가 되었다. 1990년대부터 구정부는 개 발기업과 연계하거나 혹은 스스로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그 과정에서 상당수 스쿠먼 주택이 철거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역사적 가치의 보호를 강조하는 도심재생 정책이 실시되면서 스쿠먼 주택의 선택적 보존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오늘 날 건축연도가 50년이 넘은 스쿠먼 주택들은 보통 두 가지 방법을 통해 도시에 남게 되었다. 첫 번째 방법은 보수를 거쳐 계속 주택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신식스쿠먼 주택의 경우 주방이나 화장 실 등을 추가하는 이른바‘청타오개조(成套改造)’등의 시설 개선을 통해 주거 기능을 유지한다. 두 번째 방법 은 스쿠먼 주택의 건축적 분위기를 이용한 개조를 통 하여 주택을 상업적 용도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이는 타이핑챠오 지역의‘신톈디’개발을 모델로 하는 경우 가 많다.
신톈디는 현재 상하이의 가장 유명한 관광 및 소비 지역 중 한 곳이다. ‘Where yesterday meets tomorrow in Shanghai today’이라는 테마 아래 건설된 신톈디에 서는 오늘날 상하이 전통의 스쿠먼 주택의 외관을 간 직한 레스토랑과 바에서 프랑스 요리와 재즈음악을 즐 길 수 있지만 이 지역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99년부터 홍콩의 루이안그 룹(瑞安集團)이 13억 위안을 투자하여 최고급 소비 지 역으로 재생하기 전까지 이곳은 도심 내 가장 낙후하 고 인구밀도가 높은 스쿠먼 주택 밀집지역 중 하나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신톈디 개발은 스쿠먼 주택의 역사적 분위기를 핵심 테마로 삼아 이루어졌다. 이곳의 스쿠먼들은 대부분 1920~30년대 건축된 구식스쿠먼 주택의 전형적 양식 을 가지고 있다. 비교적 넓은 평면과 문미의 장식적 요 소들이 잘 남아있지만 철거와 신축이 가능한 2급 이농 주택으로 분류된, 건축적으로 그리 우수한 건물은 아 니었다. 특히 개조 전의 벽면과 기와 등은 상태가 좋지 않거나 본래 모습이 사라져, 새로운 벽돌과 기와를 화
Figure 3. Restoration and Remodelling of Sikumen House. 스쿠먼 주택의 복원과 개조
학처리를 통해 옛것처럼 만들어 교체하는 방식이 사용 되었다. 개조과정에서 본래 건물의 베란다나 처마, 스 쿠먼대문 등의 외관은 남겨졌지만, 상당수 건축은 외 관과 지붕의 일부만 보전되거나 대문을 제외한 나머지 를 완전히 새롭게 건설한 것도 있다. 물론 모든 건물의 내부는 서비스업 시설로 이용하기에 적당하도록, 옛 모습을 완전히 없애고 현대적인 공간으로 개조되었다.
그러나 신톈디의 주변지역을 잠시만 둘러보면 이 사 업이 근대 스쿠먼 주택이 밀집한 역사지구의 보호를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님을 곧 확인하게 된다. 신톈 디는 주변의 인공 호수와 최고급 아파트, 사무용 오피 스의 건설을 포함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타이핑치아 오지구’도심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된 것이며, 총 52헥타르의 개발지역에는 7만 명의 주민과 23개 거 주 블록이 포함되어 있다(He and Wu, 2005). 타이핑 차오의 개발을 맡은 홍콩의 루이안그룹이 이렇게 대규 모의 프로젝트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루완구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타이핑차오지구의 개발을 수립할 1996년 당시 루완구는 시정부에 의해 추진된 대규모 불량주택철거 및 개발사업인‘365프로젝트’의 목표를 이미 완성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옛 프랑스 조계 지역이었던 루완구의 경우 40% 이상의 주민이 스 쿠먼 주택에 살고 있었으며, 이들 대부분 타이핑차오 지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상하이 최대의 상업 거리와 인접한 도심의 핵심 지역에 스쿠먼 주택이 밀집한 상 황에서 루완구정부는 중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던 홍 콩의 루이안그룹과 협력하여 도심재생을 착수하게 된 다.
루완구정부의 적극적 역할은 철거와 이주과정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톈디 개발지역의 1,950가 구는 6개월 만에 이주하였고, 인공호수 건설을 위해 3,800가구의 주택과 156개 단위들은 단지 43일 만에 이주가 완료되었다. 이는 상하이에서 최단기간 이루어 진 철거이주 사례였다. 또한 인공 호수를 중심으로 하 는 타이핑차오 공원의 건설에 있어서 시정부로부터 대 규모 공공녹지 건설에 제공되는 특혜를 얻어내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했다8)(Xu, 2004; He and Wu, 2005). 특 히 루이안그룹이 신톈디와 타이핑차오 공원의 완공일 자를 중국공산당 창당 80주년 기념일에 맞추고자 하면
서, 프로젝트에 대한 지방정부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결국 신톈디와 인공 호수, 타이핑차오공원의 건설은 단순히 역사보호나 도심 녹지 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 었다. 근대역사경관을 활용한 신톈디 개발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분위기와, 인공호수 및 공원 등으로 조성 된 주변 환경의 개선을 바탕으로 주변의 개발이익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2001년 신톈디와 타이핑 차오공원이 완공되자마자, 개발회사는 신톈디와 인공 호수의 건너편에‘추이후톈디(翠湖天地)’라는 상하이 최고급 아파트의 건설을 시작한다. 스쿠먼 주택을 전 부 철거한 후 건설된 이 아파트는 2003년 말 1차 판매 분에서 평방미터 당 가격이 17,000~25,000위안으로 당시 상하이에서 가장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광고를 시작하기도 전에 모두 팔리는 성공을 거둔다(Xu, 2004).9)한편 2007년부터 시작된 2차 판매분인‘추이 후톈디위안(翠湖天地御宛)’또한 평방미터 당 7만 위 안 전후의 상하이 최고가격으로 팔렸다. 현재에도 진 행 중인 타이핑차오 개발에서 개발지구 내 23개의 블 록 중 신톈디와 타이핑차오공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 역은 철거 후 고층의 오피스 등이 신축될 예정이다. 장 기적인 측면에서 이들 도심의 스쿠먼 주택들이 상업적 개발의 파도 속에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신톈 디와 불과 한 블록 떨어져 있는 낡은 스쿠먼 주택에 위 치한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유적 또한 이러한 개발의 위험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워 보 인다.
타이핑차오 개발처럼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는 상업 지역을 건설하여 고급 주택 및 오피스 지구를 위한 환 경을 조성하는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독 특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타이핑차오에서는 옛 조계지역과 스쿠먼 주택이 만들 어 내는 근대 상하이 노스탤지어가 그러한 역할을 하 였다. 따라서 전통적 스쿠먼 주택과 중공 제1회의장의 복원과 재이용을 중심으로 하는 신톈디의 개발은 소위
‘대표적 복원사업(signature restoration)’으로서 이 거 대한 전체 프로젝트의 가치를 상징하고 정당화하는 역 할을 하게 된 것이다(Graham et al, 2000). 더욱이 스 쿠먼 주택은 상하이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그려지 고, 중공 제1회의당의 복원이 공익을 위한 것으로 여겨
지면서, 개발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경제적 이익에 도 불구하고 지방정부로부터 광범위한 지원과 협력을 받았다.
이처럼 신톈디를 중심으로 한 타이핑차오 개발은 중 국에서 도시개발과 역사경관의 보호가 결합된 최초의 사례로 불리며, 옛 상하이의 노스탤지어가 도심재생에 서 얼마나 큰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보 여준다(Lu, 2002). 과거의 이미지를 이용한 성공적인 도심재생의 방법으로서 신톈디의 개발과정은 이후 이 른바‘신톈디 모델’이라 불리며 중국 각지에서 회고적 분위기를 활용한 도심재생의 새로운 유형으로 자리 잡 았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에서 이른바‘신톈디 모델’
이라 불리는 도심재생 모델은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지 구의 조성을 통해 지구 전체의 지가를 상승시키고, 대 규모 투자비용은 이후 고급 고층 아파트와 오피스 등 의 건설을 통해 회수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Ding, 2006).
(2) 상하이 도시문화의 상징으로 변모한 스쿠먼 주택
스쿠먼 주택은 상하이의 힘겨운 도시생활을 상징하 는 장소였다. 조계 인구가 급증하고 주택수요와 물가 가 급등하면서 한 건물을 여러 방으로 나누어 생활하 면서 스쿠먼 주택은 당시에도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옛 상하이 노스탤지어 의 유행과‘해파문화’10)를 중심으로 하는 상하이 도시 문화의 열기 속에서 스쿠먼 주택은 도시를 대표하는 장소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러한 변화는 1990년대 큰 인기를 얻은 왕안이(王安億)의 소설『장한가(長恨 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근대 상하이에 대한 회고 적 정서를 담은 이 소설에서 상하이를 상징하는 장소 는 화려한 와이탄이나 서양식 주택이 아니라 상하이의 가난한 보통사람들이 거주하는 스쿠먼 주택이었다. 비 좁고 낡았지만 여전히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도시 주택으로서 스쿠먼은 체제의 변화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보통의 상하이 사람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곳으로 부상한다(Zhang, 2000; Chen, 2006). 이처럼 근대 상하이의 노스탤지어의 유행은 평 범하고, 오래된 대상들을 욕망의 아이콘으로 바꾸는
심미적 시선을 낳았고, 마침내 쇠락과 빈곤의 상징이 었던 스쿠먼 주택을 상하이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장 소기억을 가진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한편 스쿠먼 주택이 상하이 해파문화의 정수로 떠오 르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중국과 서양의 양식이 혼합되 고, 비좁은 속에서도 풍부한 공간구성을 가지고 있는 스쿠먼 주택이‘중국과 서양의 융합’과‘모든 것을 포 용하는’상하이 도시정신의 핵심적 내용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Zhao, 2006; Guo, 2006). 본래 스쿠먼 주택의‘스쿠먼(石庫門)’이란 말은 서양식의 석조 문틀을 가진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스 쿠먼 주택은 벽돌과 목재가 결합된 중국 강남 지방 주 택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한편으로, 한정된 토지에 최 대한 많은 가옥을 짓기 위해 영국식 연립주택의 병렬 식 구조를 모방하였다. 또한 건물의 창문틀, 테라스, 기둥 등 상당수 장식이 유럽의 양식을 채용하여 만들 어졌다.
이처럼 동서양의 건축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특성은, 스쿠먼 주택을‘중국과 서양의 장점을 합한 것’이라는 의미의‘중서합벽(中西合璧)’이라 불리도록 하였고, 이 는 곧 개항도시 상하이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상징한다 고 여겨졌다. 이제 스쿠먼 주택은 과거 빈곤과 쇠락의 상징에서 국제적 대도시 상하이만의 자랑스러운 유산 이 되었고, 신톈디 개발을 시작으로 근대역사경관을 이용한 상하이 도심재생의 주요한 테마 중 하나로 활 용되고 있다.
스쿠먼 주택이 더 이상 빈곤과 쇠락함의 상징이 아 니라 상하이 도시문화의 상징으로 변화함으로써 스쿠 먼 주택을 이용한 도심재생의 사례 또한 빠르게 증가 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과정에서 해외자본과 외국인 관광객들의 역할이 큰데, 상하이만의 독특하고 이국적 인 분위기를 추구하는 관광객들의 욕구와 이러한 상업 적 기회에 민감한 해외 개발자본들은 도심에 남아 있 는 스쿠먼 주택 밀집지역들을 빠르게 상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홍콩 개발기업에 의한 신톈디개발의 성공에 뒤이어, 루완구의 톈즈방(田子坊)의 경우 스쿠먼 주택 들이 특유의 분위기를 이용한 카페나 레스토랑, 작은 상점 등으로 개조되었고, 쉬후이구의 젠예리(建業里) 의 경우 스쿠먼 주택을 테마로 한 대규모 도심재생사
업이 해외 개발회사에 의해 진행 중에 있다.
이처럼 스쿠먼 주택의 역사적 상징성을 이용하고자 하는 오늘날 도심재생을 이끈 것은 옛 시기에 대한 노 스탤지어이다. 따라서 개발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래 건축이 가지고 있는 낡은 느낌이며, ‘옛것을 옛것처럼 고치는 것’이 개조의 핵심적 내용이 된다. 따 라서 개조되는 스쿠먼 주택들은 낡은 옛 분위기를 만 들어 내기 위해서 철거되는 노후건축의 재료들을 구입 하여 사용하거나, 각종 기술적 방법을 동원하여 새것 을 옛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내기도 한다.
3) 옛 프랑스 조계지역의‘ 화원주택’의 재이용
(1) 서양식 화원주택의 재이용
주로 1949년 이전에 지어진 넓은 정원을 가진 유럽 식 건축을 말하는‘화원주택(花園住宅)’은 중공성립 당 시 상하이에 5,000동, 약 300만m2가 분포하고 있었다.
현재 상하이의 화원주택은 구 프랑스조계였던 쉬후이 구, 창닝구(長寧區), 루완구, 징안구 4개 구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중 쉬후이구가 39%로 가장 많고, 창닝구 29%, 루완구 9%, 징안구가 8%를 차지하고 있다 (Zhang, 2007). 화원주택은 대부분 조계시기 서양 상 인이나, 국민당 군벌, 관료자본가, 민족공업가, 부동산 개발상 등의 소유였던 곳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각종 서양 근대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주택 뿐 아니라 교회와 수녀원 등 종교 건축도 포함한다.
그러나 화려한 이력들을 가진 소유주들이 중공 성립 이후 타이완과 홍콩 등지로 떠나면서, 이들 주택은 대 부분 국유로 귀속되었고, 일부는 국유기업이나 단위에 의해 사용되거나 주택으로 분배되었다. 특히 문화대혁 명 시기에 홍위병들에 의해 상하이 조계의 화원주택들 에 대한 자산몰수나 점거 등이 발생하면서, 남아있던 주인들조차 대부분 자신들의 집을 잃거나 먼 곳으로 이주당하고, 이들 주택은 정부기관의 사무실이나 여러 가구로 나뉘어 분배되었다. 그러나 계획경제시기 동안 의 심각한 자산투자의 부족은 역설적이게도 이들 화원 주택들이 개발에 의해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도심 속 에 남아 있도록 하였고, 개혁개방 이후 도심재생의 중 요 자원으로 이용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화원주택들이 도심재생에 이용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 주택이 개발이 가능한 상품으로 시장에서 거래되 어야 했다. 개혁개방 이후 주택의 시장화가 가능해지 자 상하이 정부는 주택의 소유권 문제를 개선하고자 한다. 1987년부터 개인주택의 소유권 회복정책이 시행 되는데 주로 건국 초의 국유화 과정, 이른바‘사회주의 개조시기’의 문제와 문화대혁명 기간에 무단으로 점거 몰수된 개인주택의 문제, 홍콩과 마카오, 타이완 등 화 교의 재산권 문제 등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상하이에 서도 1988년 시정부에 의해‘상하이시 화교 개인주택 회복정책 실시방법’이 발표되고, 이로 인해 몇몇 화원 주택들이 원 소유주에게 되돌려졌다. 대표적으로 상하 이에 대부분의 화원주택이 밀집한 쉬후이구의 경우 1992년 말부터 약 56동이 홍콩과 마카오의 화교를 포 함하는 원주인에게 되돌려졌고 1991년 시정부의 <상 하이시 사유임대부동산의 사회주의개조 유류문제의 실시방법>에 따라 건국 초 소유권을 빼앗긴 약 199동 의 소유권이 회복되었다(Editorial Board of Xuhui District Gazetteer, 1997).11)
2000년대 들어와서는 임대와 매매가 가능한 화원주 택을 외국 회사의 사무실이나, 호텔,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의상실 등으로 전환하는 일이 도심의 구정부 의 적극적 지원을 통하여 활발해지고 있다. 1998년부 터 주택시장에 판매되기 시작한 화원주택들은 처음에 는 대부분 개인주택으로 구매되었지만, 이후 홍콩이나 타이완 등 해외 화교와 외국인, 중국인 부호 등을 중심 으로 이들 주택을 투자목적으로 구매하는 사례가 급증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근대 화원주택과 교회 등을 개 조하여 고풍스러운 사무실로 개조하거나,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 부티크호텔, 갤러리, 의상실 등 고급 소비공 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화원주택을 이용한 대표적 개발사례로는 상하이시 문물보호단위의 하나였던 말러주택을 Hengshan Moller Villa Hotel이라는 호화 호텔로 개조한 경우를 들 수 있다. 본래 조계의 서양인 부호의 주택이었던 이 곳은 사회주의 성립 이후에는 공산주의청년단 상하이 시위원회의 사무실로 사용되어 왔다. 이를 2001년 대 규모 개발회사인 헝산그룹이 사들여 16개의 객실을 가 진 고급 호텔로 변경하였는데, 이는 상하이에서 시급
문물보호단위를 민간기업에게 전매하여 개발한 최초 의 사례가 되었다. 이외에도 주로 상하이음악원(上海 音樂院), 상하이미술원(上海畵院), 상하이월극원(上海 越劇院) 등의 단위에 의해 사용되던 근대 주택과 교회 등이 임대 혹은 개발업자와의 합자를 통해 레스토랑과 주점 등 각종 소비 공간으로 변경되고 있다.
(2) 신중산계급과 구 프랑스 조계지역의 낭만 옛 프랑스 조계지역은 상하이 사람들에게나 외국인 모두에게 늘 이국적인 장소로 여겨진다. 상하이 도심 서남부 지역의 프랑스 조계에는 화원주택들 사이로 넓 은 도로의 양편에는 유럽식 가로등과 프랑스에서 수입 된 울창한 플라타너스가 늘어서 있었다. 1920년대부터 프랑스 조계의 중심이었던 Avenue Joffre(현 화이하이 로)는 각종 의상실, 제화점, 악기점 등의 고급 상점이 들어선 조계의 대표적 소비 지역이었다. 특히 서양인
들을 위해 만들어진 카페와 상점 등이 당시의 젊고 부 유한 상하이인들에게 유행하면서 프랑스조계와 그 곳 의 독특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는 근대 상하이의 세련되 고 모던함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근대에 형성된 프랑스 조계의 이국적 이미지가 오늘 날까지도 문화적 영향력을 갖게 된 데에는 1920~30년 대 상하이의 문인과 예술가들의 영향이 크다. 조계의 카페 등에서 주로 현대적인 소설, 희곡, 산문 등을 작 업하여 신문잡지에 기고하여 생활하던 당시 상하이의 지식인들과 전업작가들은 서양문화에 대해 걱정과 놀 라움이 결합된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곤 하였지만, 이 들에게 카페로 대표되는 서양 문화는 일종의 문화적 유행으로 작동하였음은 분명하다. 이른바‘모던 상하 이’를 만들고 소비하던 근대 작가와 지식인들의 작품 속에서 프랑스 조계지는 번화하고 대중적인 상업 지역 이었던 공공조계지와는 달리 언제나‘문화적 아우라’
Table 2. Reuse of Garden Villas in Old French Concession. 구 프랑스 조계지역의 화원주택 재이용 사례 (November, 2007)
Address Before 1945 Socialist Shanghai Present
333 Tongren Road Former residence of Wu Tongren,
Shanghai Tricycle Union Mandarine Sky Restaurant Chinese magnate
30 Shanxi S. Road Former residence of Moller, Committee of Communist
Hengshan Moller Villa Hotel
Jewish Merchant Youth
Former residence of the president of
Shanghai Conservatory of Xi’s Garden 1 Dongping Road the Central Bank under the reign of
Music (Chinese Restaurant)
Kuomintang
11 Dongping Road Former residence of Soong Mei-ling,
- SASHA’s
the wife of Chiang Kai-shek (English Style Restaurant) Research Institute of Applied Fine Arts Former residence of a
79 Fenyang Road
of Shanghai Governor-general of French Applied Fine Arts Gallery Concession
150 Fenyang Road Former residence of a General of
Shaoxing Opera Institute Ambrosia
Kuomintang (Japanese Food Restaurant)
82 Xinle Road Former club house of a gang leader Shanghai Transportation
Mansion Hotel Shanghai Administration
811 Hengshan Road Pathe Records Studio EMI Record La Villa Rouget (French Style Restaurant) 201 Caoxi N. Road St. Ignatius Convent - Ye Olde Station
(Chinese Restaurant)
를 불러일으키는, 이국적인 곳으로 그려졌다(Lee, 1999).
또한‘프랑스오동나무(法國梧桐)’라 불린 플라타너 스로 가득한 프랑스 조계는 이러한 장소의 분위기를 선호하고 소비하는 이른바‘프티부르주아(petit- bourgeoisie)’의 낭만적 성향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기 이러한 이국적이고 소비적인 문 화에 대한 선호는 소자산계급, 즉‘샤오즈(小資)’적 태 도라고 불리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상하이‘샤 오즈’의 이미지는 보통 우울하고, 정치적 의식이 결여 된 채 사랑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로 대표되었고, 문화 대혁명의 와중에는 서양식 주택에 살고 있던 옛 작가 와 상공인들은 샤오즈 문화를 이유로 엄청난 박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Yang and Liu, 2001).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샤오즈’는 중국에서 다 시 유행하는 단어가 된다. 다양한 매체 속에서 등장하 는 샤오즈는 이전의 어두운 이미지와는 달리 물질적·
정신적 향유를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일 군의 젊은이들을 일컫는 말로 변화한다. 자산계급에 대한 서양의 정의와 달리 중국에서 샤오즈는 그 범위 와 실체가 정확하지 않지만, 보통 일정 수준의 지위와 재산을 가진 도시의‘화이트칼라(百領)’나 차별적 분위 기와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보보스(布波族)’등의
‘신세대(新新人類)’를 가리킨다(Han, 2003; Feng, 2007).
분명한 점은 중국적 맥락에서 이들의 구분이 경제적 인 것이 아니라, 주로 문화적인 잣대를 통해 이루어진 다는 점이다. 유행으로서 샤오즈를 구성하는 핵심어는
‘분위기(情調)’, ‘유행(時尙)’, ‘예술(藝術)’등이며, 이 들은 실질적 사회계층이라기보다는 도시적 상상과 마 케팅의 대상을 일컫는다(Han, 2003; Wang, 2005). 이 러한 사회적 상상으로서의 계급인식에 대하여, Wang(2005)은“인식의 구분이‘계급’에서‘취향’으로 도약한 것”으로 정의한다. 즉 중국에서 샤오즈와 보보 스와 같은 집단들은 계급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문화 적 판매자들에 의해 라이프스타일로 제공되는 것이며,
‘코즈모폴리턴’문화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중국인들 은 이러한 상상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현대 중국의 각 종 매체에서 제공되는 샤오즈적 라이프스타일은 보통
의식주와 여가 등에 대한 서구의 이미지를 통해 만들 어지며, 끊임없이 서구에 대한 모방적 소비를 부추긴 다.
따라서 오늘날 상하이에서 옛 프랑스조계는 세계적 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상하이의 신중산계급들 을 위한 차별적 소비공간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스스 로를 샤오즈, 보보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도시 의 새로운 집단들에게 옛 프랑스조계의 독특한 경관과 분위기는 분명히 유행의 하나로 여겨진다. 신문잡지, 영화 등에서 끊임없이 제시되는 상하이 신중산계급의 샤오즈적 라이프스타일은 1920~1930년대 스타일로 장식된 구 조계지역의 카페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 고, 플라타너스가 우거진 옛 조계의 상점과 갤러리를 산보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다. 특히 상하이의 신중산계급들은 화원주택 등 구 조계지역의 역사경관 을 이용하여 재생된 도심 지역에서 자신들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소비를 추구하는데, 이들은 다시 이들 장소에 새겨진 식민주의적 장소기억을 세련 되고 이국적인 장소로 그 의미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편 이러한 프랑스조계의 노스탤지어를 이용한 도 심재생에서는 이국적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서 주로 서양인의 이름으로 된 Avenue Joffre, Hardoon Road, Route Francis Garnier, Route Ratard와 같은 옛 조계 도로명이 경관 설명의 맨 앞에 놓인다. 또한 현재 호텔 과 카페, 고급 레스토랑으로 변모한 화원주택들에 살 았던 근대 시기의 서양인 모험가, 대부호, 국민당요인 과 같은 옛 주인의 극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가 제시된 다. 이때 서양식 도로명 제정에 담긴 식민주의와 옛 주 인들의 반민족적 행위 등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은 희석되는 반면, 유럽풍의 경관과 어우러지는 서구적 이름과, 전설이나 영화주인공과 같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옛 주인에 관한 낭만적 노스탤지어가 그 중 심에 자리한다.
상하이 역사문화풍모보호구의 하나인 쉬후이구의
‘헝산로-푸싱로(衡山路-復興路)역사문화풍모구’는 옛 프랑스조계 지역의 노스탤지어를 이용한 도심재생 이 형성되는 맥락을 잘 보여준다. 헝산로 일대는 1914 년 프랑스조계의 3차 확장으로 조계에 속하게 된 곳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