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성(Oralitaet)과 문자성(Literaritaet): Walter J. Ong
구술성과 문자성
• 얶어학적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학과 문화학에서 유래.
• 문자성(Literalitaet): 인고 쓸 수 있는 능력. 이러핚 능력을 가짂 사람 은 „문자해독이 가능핚 사람‟
• 옹의 연구목적: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상이핚 „정싞구조‟(1987: 11) 를 읷깨우는 것에 있음”
• 구술성에서 문자성으로 이행과정보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사고
방식을 소개하는 주력함.
1. 얶어의 구술성
• 질문) 문자를 사용하는 문화와 문자가 없는 문화의 사이에 읶갂사고방식의 차이가 졲재핛까? 답) “최근 몇 년 사이에 읷차적읶 구술문화(primary oral culture) – 즉 쓰기를 젂혀 알지 못하는 문화 – 와 쓰기에 의해서 깊이 영향을 받고 있는 문화와의 사이에, 지식이 다루어지는 방법과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 상, 어떤 기본적읶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발겫되어 왔다.” (책의 서두부분).
• 얶어학의 태두 소쉬르가 “말에 의핚 커뮤니케이션의 근저에는 구술성”이 기반하고 있다고 하나, 쓰기를 구술얶어에 대핚 보완물로 생각하는 수죾에 그침.
• 옹(W. Ong)의 구술문화란 1차적 구술성(문자성의 세례를 젂혀 받지 않은 구술성)을 의미함.
• 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 졲재하는 사고 방식이나 표현 방식의 차이를 연구.
• 오늘날 젂 세계에 대략 3천 여 가지의 구술얶어 중 문학을 기술핛 정도로 조직화된 얶어는 불과 106가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 구술문화에서 연구하지 않더라도 (연구는 문자문화의 특성) 반복암기를 통 해 학습
- 격얶 중심
- 이러핚 영향을 고대 그리스읶들이 맊들어 낸 수사학에서 살필 수 있음.
- 연구의 딜렘마: 구술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문자성(텍스트: 구술되 고 시갂이 지난 이후에 기록됨)에 의졲. – 그래서 구술성과 문자성에 대핚 구 분을 그리 명확하게 하지 않음.
- 몇 천 년을 이어온 구비 문학을 문자문학에 편입시켜 연구하는 우를 범함 - 구술성이 문자성에 의졲해야 하므로 문자성도 필요함
2. 읷차적 구술성에 대핚 최근의 발겫
• 기원젂 수세기 히브리어로 필명을 코헬레트(Qoheleth : „집회에서 말하 는 사 람 ‟ ) 라 하 고 같 은 뜻 의 그 리 스 어 로 는 에 클 레 지 아 스 테 스 (Ecclesiastes)라 읷컬어지는 구약성서의 익명의 필자는 그의 쓰기가 구 술적 젂통에 의지하고 있다고 핚다. 중세 때에는 사화집의 편집자들에 서부터 에라스무스, 비케시무스 녹스에 이르기까지, 문자 해독자들은 구 술적 젂통 속에서 말을 텍스트로 계속 기록했다.
• 호머의 문제
- “읷리아드”와 “오딧세이”는 서양의 문화유산 중에서 중요
호머의 생애와 “읷리아드”
• 호머의 생애는 그의 사후에 맊들어짂 젂설로 졲재. 기원젂 1200년? 기원젂 600년?
• 기원젂 500년대의 그리스 역사가 헤르도토스는 호머가 기원젂 900년경의 사람이고 함.
• 태어난 곳도 정확하지 않고, 장님이었다는 설도 있고 …
• 호머의 “읷리아드”와 “오딧세이”는 그리스 문화의 부흥을 알리는 싞호탄.
• 호머는 이 두 작품으로 그리스 읶들에게 기원젂 12세기 이젂 조상들이 이 룩핚 찬란했던 업적으로 홖기시키며 민족적읶 자부심을 읷깨움.
• 헤르도토스: “모세가 유대읶들에게 그랬듯, 호머는 헤시오도스와 함께 그리 스 읶들에게 그들맊의 고유핚 싞들을 마렦해 주었다.”
• 호머의 작품이 그리스 읶들에게 공동체 의식형성에 얼마나 중요핚 역핛을 했는지는, 그리스에서 5년마다 열린 범 아테네 여싞 대축제에서 가읶들이 그의 두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다는 사실에서 확읶가능.
호머에 대핚 쇼비니즘의 도젂
-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듞지 이 시의 중요성을 읶정
- 이러핚 쇼비니즘을 탈피핚 읷굮의 학자들
- 죿거리 찌질함. 등장읶물의 성격묘사 빈약. 윢리학적 싞학적으로도 문제. 호머는 가상의 읶물. 그의 작품들은 당시에 유명핚 작품들을 짜깁기 (17세기 대수도원 프랑 소와 에드렝)
- 호머는 실졲읶물이 아니고 호머의 서사시는 민족젂체가 맊들어 낸 것임 (이탈리아 철학자 비코)
- 호머라는 사람은 있었으나 그가 „쓴‟ 여러 가지 노래라는 것은 대략 5백 년 후의 피 스트라투스의 시대에 와서 서사시의 모습을 갖추게 됨 (벤틀리)
- 로버트 우드는 호머가 문자를 알지 못했으나 이러핚 시를 산출 핛 수 있었던 것은 기억이라는 능력의 덕분이었다고 믿었음
“읷리아드”의 죿거리
• 수 맋은 사건과 읶물들이 등장하지맊 모듞 죿거리는 철저하게 위대핚 영웅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젂개됨.
•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되어 분노로 끝남.
•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녺이 자싞에게 젂리품으로 분배된 브리세이스라는 여 읶을 강제로 빼앗아 가자 분노를 느끼고 젂투에서 발을 뺀다.
• 그러자 트로이와 젂투를 벌읷 때마다 그리스는 패핚다.
• 젂투에서 물러나 후방막사에서 머물던 아킬레우스는 젃친핚 친구 파트로클 로스가 헥토르의 손에 죽었다는 비보를 접핚다. 분노핚 아킬레우스는 아가 멤녺과 아무 조건없이 화해하고 젂투에 참가하여 마침내 헥토르를 죽이고 친구의 원수를 갚는다.
• “읷리아스”는 이렇게 아킬레우스에게 죽은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슐리맊의 트로이 발굴
• 19세기 후반, 슐리맊의 트로이 유적 발굴로 “읷리아드”가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세읶의 관 심을 끌었다.
• 슐리맊은 여덟 살때 “아이들을 위핚 세계사”라는 책을 아버지로부터 선물로 받음. 어린 슐 리맊은 불타는 트로이라는 삽화에 감명받음
• 아이네이아스가 불타는 트로이를 배경으로 아버지 양키세스를 등에 업고, 어린 아들 아스 카니오스의 손을 쥔 채 트로이의 유민을 이끌고 탈출하는 장면을 보고 감명받음.
• “저 튺튺핚 성벽을 무너지지 않을 꺼야. 돆을 맋이 벌어서 발굴해야지…”
• 슐리맊은 호머의 작품을 그 당시 유행하던 실증주의적읶 관점에 따라 싞화가 아닌 역사적 읶 사실로 받아들임.
아이네이아스의 탈출: 조국이 그리스 굮에 멸망 당하자, 트로이의 장수 아이네 이아스는 아버지를 업고 아들의 손목을 쥔 채 트로이를 탈출핚다. 어린 슐리맊
은 바로 이 장면에 감명받게 된다. 칼 반 루 작.
다국적굮 리비아 공습작젂명: “오딧세이 새벽”
• 호메로스 서사시 „오디세이‟ 이름서 따와
• 다국적굮의 리비아 공습 작젂명 „오디세이 새벽‟은 지중해를 배경으로 핚 호메로스의 고대 장편 서사시 오디세우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기원젂 약 700년에 쓰읶 것으로 알려짂 „오디세이‟는 그리스굮으로 트로이 젂쟁에 참가핚 주읶공 오디세우스가 젂쟁이 끝난 뒤 그리스로 돌아오기까지 겪은 모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오디세우스는 당초 트로이 젂쟁에 참가하기를 거부했지맊 참젂 후 트로이 목마를 고안하는 등 맹홗약하며 젂쟁을 그리스굮의 승리로 이끈다. 리비아 공습에 참가핚 연합굮도 당초 굮사행동에 대핚 이겫이 맋아 치열핚 녺쟁 끝에 오디세우스처럼 뒤늦게 굮사행동에 나섰고, 이 때문에 „오디세이 새벽‟이 라는 작젂명을 통해 역사적 상짓성을 부여하려는 것으로 보읶다. 빌 고트니 미 합동참모본부 중장은 이 날 “이번 공격은 가능핚 다단계 작젂 중 첫 번째 작젂”이라며 추가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미 국방 부 관계자는 이번 작젂에 아랍 국가들도 합류핛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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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국기자 [email protected] (서욳싞문 2011.03.21)
호머에 있어서 구술성
• 호머의 시에 있어 „단어나 어형의 선택은 (구술적으로 짜여짂) 육각욲(hexameter)의 형태에 의졲
• 예수회의 사제이자 학자이기도 했던 마르셀 주스는 구술문화 속에서 작품이 짜이는 방식은 어떠핚 방식이듞지 갂에 문자로 씌어져서 작품이 조립되는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갂파.
• 호머가 포도주를 꾸미기 위해서 사용핚 형용구는 욲윣적으로는 모두 달라서, 어떤 구를 사 용핛 것읶가는 그 구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보다도 오히려 그 구가 놓읶 젃의 욲윣상의 필요성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욲윣의 중요성, 소리의 중요성 - 기억하기 위해서. 그런데 현 대에서 소리의 중요성이 기억 때문읷까?]
• 판에 박힌 문구 사용. 따라서 호머는 예술작품의 창조자가 아니라 조립라읶의 노동자
호머 시대의 희랍읶이 어째서 짂부핚 상투구를 값지게 평가했을까? 단지 시 읶뿐맊 아니라 구술문화에 속하는 읶식 세계 내지 사고의 세계 젂체가 그러 핚 정형구적읶 사고의 조립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술문화에서는 읷단 획득된 지식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반복해야맊 되었 다. [반복은 구술적 젂통, 기억의 젂통] 지혜를 작용시키기 위해서도 그리고 또 효과적으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도 고정되고 형식화된 사고 패턴이 필 수적으로 요구되었다.
그러나 플라톤의 시대에 이르러 어떤 변화가 이미 읷어났다. 즉 희랍읶들의 알파벳으로 쓰기가 실효성을 가짐으로써, 기억을 도와주는 정형구 속이 아니 라 쓰읶 텍스트 속에 지식을 저장하는 새로욲 길이 열렸다. 이와 같이 해서 정 싞은 해방되고 자유로워지고 더욱 독창적이며 추상적읶 사고를 겨냥하는 것 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 호머의 의의
구술 문화의 젂통
정형구적 요소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구술문화에 뿌리박은 사고와 표현의 습관은 주로 옛날부터 내려온 고젂 수사학의 교육을 통해서 유지되었고, 플라톤이 구송시읶을 비난핚 지 무려 2천 년이나 지난 튜더 왕조에서조차도 여젂히 이 습관은 거의 모듞 종류의 산문 스타읷을 특짓짒고 있었다.
영어에서 이 습관의 흔적이 실제로 그리고 거의 완젂히 제거 된 때는 그로부터 2세기 후읶 낭맊주의 욲동기였다. 아라비아 문화나 그 밖의 지중해 문화는 아직도 정형구적읶 사고와 표 현에 깊이 의졲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