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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비전략적 리비아 군사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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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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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분쟁으로 확대된 재스민 민주혁명

오바마는 2003년 3월 단행된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공격을 격렬하게 반대 했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이라크 전쟁을 조속히 종결시 킬 것”임을 약속했고, 미국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 령이 된 인물이다. 그러나 임기 3년차에 접어든 오바마는 이라크, 아프가니 스탄 전쟁을 종결시키지 못했으며 2011년 3월 세 번째 전쟁, 자신이 시작한 전쟁으로는 첫 번째 전쟁을 시작했다. 리비아에서의 전투가 확대될 경우 오 바마는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숫자의 전쟁을 동시에 치른 인물로 기록 될 것이다. ‘평화의 대통령’을 지향했던 오바마는 현실 국제정치 앞에서 이상 의 한계를 절절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현재 리비아에서 진행 중인 전쟁은 작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 동 민중들의 민주주의 혁명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수천 년 역사 이래 처음 나타난 아랍 민중 혁명은 1월 14일과 2월 11일 각각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 재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자극받은 리비아 국민들은 2월 14 일 독재자 카다피에 대항,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저항을 시작했다. 그러나 포악한 독재자 카다피는 결코 호락호락 물러설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 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자국민들을 향해 전투기 폭격마저 단행할 정도였다. 지 도력도 부재하고 무기도 부족한 리비아의 반군은 카다피의 정부군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카다피는 반란군들에게 항복할 것을 종용했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무자비하게 학살할 것이라는 경고도 했다.

프랑스를 선두로 하는 서방국가들은 “리비아 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며

“군사적으로 개입하여 리비아 반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가 2011-04-12

오바마의 비전략적 리비아 군사작전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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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열정적으로 리비아 반군을 위한 무력 개입을 주장한 이유는 리비아에 대한 국가 이익이 다른 서방국가들보다 비교적 강렬했기 때문이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리비아와 접한 이탈리아, 프랑스는 지정학적으로 다른 서방국가 보다 리비아 사태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전망이 좋아 보이지 않 는 다음 번 대선을 앞두고 무엇인가 업적을 쌓아야 하고 지도력을 과시해야 할 사르코지 대통령의 개인적 필요성은 리비아 반군을 지원하는 데 프랑스 가 가장 앞장섰던 이유 중 하나다.

결국 서방국가들은 3월 17일, 제한적인 리비아 군사개입 허락을 유엔으로 부터 받아낼 수 있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3’이 의결된 것이다. 중국 과 러시아가 기를 쓰고 반대했기 때문에 군사 개입은 “리비아 민간인을 보 호”하는 선에서 그리고 수단은 “리비아의 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치”하는 것으로 한정되었다. 카다피의 무자비한 보복 앞에 떨고 있을 리비아 반군의 목숨을 보호하자는 조치에 차마 반대할 수 없는 중국, 러시아는 이같이 제한 적인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기권” 의사를 표시했다.

전쟁 원칙을 무시한 오바마의 리비아 군사작전

군사작전이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이 걸려 있을 때만 행하는 것이며 군사 작전에는 반드시 군사작전(전쟁) 이후의 비전, 그 비전을 성취하기 위한 군 사 계획, 정확한 목표, 일이 잘되지 않을 경우의 대안 등이 사전에 마련되어 야 한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쉬워도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미 국의 전쟁사는 전략적 실패 사례들로 점철되어 있다.

윌슨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의하지도 않은 채 “세계를 민주주의가 안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며 1차 대전에 개입했고, 루스벨트는 2차 대전 이후 소련과의 동맹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한 별 생각 없이 소련과 동맹이 되어 독일을 무찔렀다. 41대 대통령 부시는 사담 후세인의 군사력만 파괴하 면 후세인 정권은 당연히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 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채 걸프전을 치렀다.

그의 아들 43대 조지부시는 후세인을 권좌에서 축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전 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후세인이 축출된 후의 이라크의 모습에 대해서는 생 각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후보 시절,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비전과 계획 없이 전쟁에 개 입했다는 사실을 강력한 어조로 비난한 바 있었다. 자신은 그런 어리석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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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을지 모른다. 대통령이 되기 전 오바마는 “미국 의 국가안보는 지구 곳곳의 인권 문제와 연계되어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 가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미국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 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켜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3은 바로 인권의 보호를 위해 군사작전을 할 수 있다는 허가장이었다. 오바마는 미국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미군에게 리비아 공격을 명령했다. ‘오디세이 새벽(Odyssey Dawn)’이라고 명명된 작전에서 미국군은 다른 NATO 군사력보다 탁월한 공습 능력을 발휘했다. 작전을 개 시한 지 열흘째인 3월 28일 연설에서 오바마는 자신의 업적을 자화자찬했 다. 오바마는 “카다피가 자국민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을 막는 것이 미국 의 이익”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폭격작전으로 리비아의 ‘민간인이 보 호’되었고 리비아 정부군의 군사력이 대폭 약화되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미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며 미국은 리비아에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동맹국들에게 책임을 전가했으며, 오늘 밤 그 목표를 달 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미국은 ‘지원자의 역할(supporting role)’을 맡는다. 그럼으로써 미국은 이루고자 하던 바를 이루었다”고 말했 다. 미국의 개입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일부 국가들은 이 같은 (카다 피의) 악행에 대해 눈을 감고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미국은 다른 나라다”라 고 응수했다.

일견 그럴 듯해 보이는 오바마의 리비아 전쟁 논리는 사실은 대단히 빈약 하다. 오바마는 역대 어떤 미국 대통령들보다 더 형편없이 전쟁의 원칙 (maxims of war)들을 통째로 무시하고 있다. 우선 오바마는 “전쟁이 끝난 이후 리비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구상이 아예 없이 리비아에 대한 폭격작전을 개시했다. 전쟁의 제1 원칙인 ‘목표의 원칙’이 통째로 위반 되고 있는 것이다. 목표가 없으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있을 리 없 다. 서양 전쟁 철학의 태두, 클라우제비츠 장군은 “추구하려는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에 관한 방안이 없는 한 누구도 전쟁을 시 작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오바마는 군사작전이 성공한 후 리비아의 모습 은 어떨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제시하지 않은 채 전투를 개시해 버 렸고 전투를 종결시킬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바마는 미국 군사력 사용에 관해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는 데는 성 공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1973, 아랍연맹의 동의,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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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을 NATO에 귀속시킨 것 등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는 절차상의 성 공일 뿐이지 원하던 전쟁 목적의 성공적인 달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 바마의 백악관 대변인 제이 카니는 “이번 작전은 전쟁이 아니므로 전쟁 원칙 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시간적으로, 목표상으로 제한된 군사행동 (time limited scope limited military action)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민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구조적으로 더 큰 정 치적 목적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무시하고 있다. 리비아의 반란군 은 카다피에게 저항했기 때문에 생명이 위태롭게 된 것이다. 그래서 카다피 가 존재하는 한 그들의 생명은 보호될 방법이 없다. 결국 리비아 민간인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는 궁극적으로 누가 리비아를 통치해야 하는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카다피를 향해 무력 개입을 한 이상 오 바마는 리비아 반군의 운명에 무책임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카다피 의 축출이 선행되지 않는 한 리비아 반군의 운명을 보장할 방도가 없기 때 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바마와 미국의 고위급 관료들은 카다피의 운명에 대 해 일관성 있는 언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오바마와 미국의 고위 관리 들은 “카다피가 없는 리비아가 리비아와 세계를 위해 더 좋을 것”이라고 생 각한다. 오바마는 “나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지도자들이 그런 목적을 공 유하고 있다. 카다피가 떠나는 날이 빨리 다가오도록 다른 나라들과 함께 노 력하겠다”고 말함으로써 미국 단독으로는 카다피 축출에 앞장서지 않을 것임 을 말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미 군사작전을 시작한 오바마가 “우리는 카다피 축출이라는 목표를 비군사적인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We will actively pursue it through non-military means)”고 말하고 있다 는 점이다. 오바마는 본시 그 의미가 대단히 불분명한 “강력한 외교”라는 수 사(修辭)를 좋아했다.

결국 군사작전이 시작된 지 3주 정도가 지난 4월 7일 미국 아프리카사령 부의 카터 햄 사령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의 지상군을 파견하는 것을 고 려할 수도 있다”며 “반 카다피군이 카다피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가능성은 낮 은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NATO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카다피의 정부 군이 점차 승기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이 빠진 NATO 공 군은 잦은 오폭 사고를 발하고 있으며, 리비아 반군과 다국적군 간의 밀월관 계도 와해되고 있는 중이다. 오바마는 물론 지상군 파견을 생각하지 않는다 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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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사태의 교훈

리비아 사태는 “아무리 사악한 독재정권일지라도 군부의 막강한 지지를 받 는 한 민중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다”며 “역사상 대혁명들은 결국은 국제사 회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다”라는 비교정치학자들이 주장하는 혁명이론의 적실성을 또 다시 증명해 주고 있다. 북한 정권은 군부의 지지가 변함없는 한, 그리고 국제사회가 적극 개입하지 않는 한 자신들의 정권은 연 명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북한 정권의 종식 없이 북한주민들은 인 권은커녕 삶을 보장받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인권을 외교정책의 목표라고 생 각하는 미국과 서방 제국들이 리비아 군사작전을 벌이며 삐걱대는 모습을 보며 북한 문제의 해결을 도울 수 있는 궁극적인 주체가 대한민국 외에 그 누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리비아든 북한이든 독재자를 축출하는 1차적 책임은 독재에 허덕이는 주민들이 져야 할 것이다. 북한주민 들에게 북한은 리비아와는 달리 동족인 대한민국이 지원해 줄 것이라는 믿 음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자.

참조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