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제 4주: 유명론 I
유명론을 고수할 이유들
유명론자들은 보편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1. 만일 보편자들이 존재하면 다수의 개별자들에 의해서 예화되어야 하는데 이는 불합리한 결과들을 낳는다. 2. 오직 동일성 조건이 명확한 존재자만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는데, 보편자들의 동일성 조건은 불명확하다. 3. (지난 주에 이미 논했던 대로) 보편자를 통해 유사성이나 술어화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무한퇴행을 낳는다는 불평이 있다.실재론에 대한 비판1: 다중예화비판
A. 수적으로 서로 다른 개별자들이 동일한 보편자를 예화한다고 가정하자. P1. 개별자들은 서로 구분되고 비연속적인 여러 장소들을 동시에 점유한다. P2. 만일 A와 P1이 둘다 참이면, 하나의 보편자가 서로 구분되고 비연속적인 여러 장소들을 동시에 점유해야 한다. P3. 만일 하나의 보편자가 서로 구분되고 비연속적인 여러 장소들을 동시에 점유(이하: 다중장소점유)하면, 여러 반직관적 결과들이 성립할 것이다. P4. 그런 반직관적 결과들은 성립할 수 없다. C. 따라서 A는 틀렸다; 즉, 수적으로 서로 다른 개별자들에 의해 예화되는 보편자 따위는 없다.실재론에 대한 비판1: 다중예화비판 (계속)
앞의 논변에서 언급된 다중장소점유의 반직관적 결과들이란 다음과 같은 결과들을 말한다:
(1) 빨강이라는 색깔(the color red)은 자신으로부터 15마일 떨어져 있다. (2) 삼각형의 형상(the shape of triangularity)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동시에 가까워진다.
확실히 무엇인가가 위와 같은 식으로 위치하거나 움직인다는 것은 꽤 반직관적 (counterintuitive)이다.
실재론에 대한 비판2: 동일성조건비판
많은 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동일성조건 규준) 어떤 범주 C의 존재자들이 진정으로 존재한다면, C에 속하는 존재자들에 대해서 그들이 어떤 조건에서 수적으로 동일(numerically identical) 하고, 어떤 조건에서 그렇지 않은지 말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자신이 새로운 종류 K의 입자들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자신은 어느 K입자가 어느 K입자와 동일하거나 구별되는지 가려낼 수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고 하자. 당신은 그 사람을 쫓아 K의 입자들이 존재한다고 믿겠는가, 아니면 그 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겠는가?실재론에 대한 비판2: 동일성조건비판 (계속)
그러나 보편자에 대해 명료한 동일성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우리는 보편자 U를 예화하는 개체들을 통해 U의 동일성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언뜻 다음 제안은 그럴 듯하게 보인다:
보편자 U와 U' 는 수적으로 동일하다 IFF U를 예화하는 모든 대상들이 U’도 예화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똑같은 개별자들에 의해 예화될지라도 두 보편자들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예) 인간성(being human)이라는 보편자를 예화하는 모든 것은 깃털없는-두발- 동물임 (being a featherless biped)이라는 보편자도 예화하며 그 역도 성립한다. 그러나 인간성과 깃털없는-두발-동물임은 분명히 다른 속성들이다.
실재론에 대한 비판3: 무한퇴행비판
지난 주 우리는 실재론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주장되는 세 가지 유형의 무한퇴행들을 살펴보았다. 그 가운데 첫번째, 두번째 무한퇴행들은 F를 예화함=F를 예화함을 예화함=F를 예화함을 예화함을 예화함=... 과 같이 설정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되었다. 반면 세번째 무한퇴행은 그런 방식으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음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실재론에 대한 이른바 무한퇴행비판은 아직 살아있는 위협이다. 이제 실재론자들이 유명론자들의 세 비판논변들, 즉 다중예화비판, 동일성조건비판, 그리고 무한퇴행비판에 대해 어떤 반론들을 돌려주는지 차례로 살펴보자.다중예화비판에 대한 반론1: 위치없는 보편자?
다중예화비판 논변은 다음 전제를 가진다는 점을 기억하라: P2. 만일 (i) 수적으로 서로 다른 개별자들이 동일한 보편자를 예화하고, (ii) 개별자들은 서로 구분되고 비연속적인 여러 장소들을 동시에 점유하면, (iii) 하나의 보편자가 서로 구분되고 비연속적인 여러 장소들을 동시에 점유하게 된다.왜 (i)과 (ii)로부터 (iii)이 도출되는가? 그것은 개별자들이 있는 시간과 장소에 그것들이 예화하는 보편자 역시 위치한다는 생각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것은 보편자가 시공간적 위치를 가진다는 주장을 전제한다.
다중예화비판에 대한 반론1: 위치없는 보편자? (계속)
러셀은 보편자가 위치를 가짐을 부정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 의 북쪽에 ...가 있음’이라는 보편자가 에든버러와 런던을 관계맺게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관계를 찾을 수 있는 시공간적 장소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는 런던에 존재하지도 않고, 또 에든버러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 둘을 관계 맺게 하는 것으로서 이 둘 사이에서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보편자가 시공간적 장소를 결여한다면, 다중예화논변의 전제들 중에 하나는 거짓이 되므로, 그 논변은 더 이상 실재론자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다중예화비판 반론2:개별자직관=보편자직관?
설혹 보편자들이 시공간적 위치를 가질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다중예화비판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논변의 또다른 전제를 생각해 보자:
P4. 그런 반직관적 결과들은 성립할 수 없다.
여기서 반직관적 결과들이란 다음과 같다:
(1) 빨강이라는 색깔(the color red)은 자신으로부터 15마일 떨어져 있다. (2) 삼각형의 형상(the shape of triangularity)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다중예화비판 반론2:개별자직관=보편자직관?
확실히, 어떤 x가 다음 조건을 충족한다고 말하는 것은 반직관적으로 들린다: (1) x는 자신으로부터 15마일 떨어져 있다. (2) y는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동시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거리나 움직임을 따질 때에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그 존재자들이나 움직이는 그 존재자가 개별자(들)일 것이라고 무의식 중에 가정하기 때문 아닐까? 데이빗 루이스가 지적한 대로, 반복적으로 나타남으로써 보편자는 직관적 원리들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것은 파괴력 있는 반론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직관은 분명 개별자들과 관련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동일성조건 비판에 대한 반론: 동일성조건은 필수?
이미 살펴봤듯이, 동일성 조건 비판은 존재에 대한 다음 규준에 기반한다: (동일성조건 규준) 어떤 범주 C의 존재자들이 진정으로 존재한다면, C에 속하는 존재자들에 대해서 그들이 어떤 조건에서 수적으로 동일(numerically identical) 하고, 어떤 조건에서 그렇지 않은지 말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규준을 만족하는 존재자들은 생각보다 드물다. 우리들 자신을 생각해 보자. 우리 스스로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더구나, 데카르트의 코기토 논변은 이 직관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른바 인격동일성 문제, 즉 시점 t1의 인격체 x와 시점 t2>t1의 인격체 y가 어떤 경우에 동일한지 정확히 말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면 위 규준에 기초한 동일성조건 비판은 실재론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 없다.무한퇴행비판에 대한 반론: 제약된 실재론
이제 무한퇴행비판에 답할 차례다. 다음은 세번째 무한퇴행을 약간 변형한 것이다: (E1) a는 b와 R한다. (E2) <a,b>는 R을 예화1한다. (E3) <<a,b>,R>은 예화1를 예화2한다. (E4) <<<a,b>,R>,예화1>는 예화2를 예화3한다. ... 만일 (E2)를 (E3)로 분석할 필요가 없다면, 이 무한퇴행은 도중에 끊길 것이다.무한퇴행비판에 대한 반론: 제약된 실재론 (계속)
그러나, 무한퇴행을 피하려는 것 이외에, (E2)를 (E3)로 분석하지 말아야할 독립적인 이유가 있을까? 아마도, 관계 R을 일종의 접착제에 비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비유에 의하면, (E1) a는 b와 R한다 고 했을 때, a는 어떤 의미에서 b와 붙여지는 것이다. 이때 <a,b>가 어떤 존재자 R에 의해서 붙여지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기 위해 우리는 (E1)을 (E2) <a,b>는 R을 예화한다. 로 고쳐쓸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a,b>와 R이 "예화한다"가 표현하는 관계를 접착제로 하여 붙여진다고 생각해야 할까? 이 물음에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마치 어떤 사물(들)과 접착제를 서로 붙이기 위해서 또다른 접착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무한퇴행비판에 대한 반론: 제약된 실재론 (계속)
이제 지난 주 논했던 실재론자의 첫번째 원칙을 다시 떠올려 보자: (A1) 모든 술어는 어떤 보편자를 표현해야 한다 앞의 논의에 의하면, 실재론자들은 이 원칙에 예외를 인정해야할 것이다. 즉, (A1#) 모든 술어는, "예화한다"를 제외하고, 어떤 보편자를 표현해야 한다 와 같이 그들의 원리를 제약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술어 "R한다"가 적용되는 두 개별자들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관계가 필요하며 "R한다"는 그 관계를 표현하겠지만, "예화한다"의 경우 관련된 개별자와 보편자는 후자에 의해서 이미 연결되었을 (비유하자면 이미 접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무한퇴행비판에 대한 반론: 제약된 실재론 (계속)
종합하자면, 한편으로는 "예화한다"라는 술어가 일반적인 술어들과는 달리 어떤 보편자를 표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무한퇴행이 방지되고, 또 한편으로는, 무한퇴행의 가능성과는 별도로, 그 술어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보편자를 표현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할 독립적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보편자 실재론이 무한퇴행을 불러일으킨다는 유명론자들의 비판에 대항하여, 실재론자들은 첫째, 그런 무한퇴행을 방지할 수단을 갖춘 것으로 생각되며, 둘째, 그런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왜 정당화되는지에 대해 충분한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오컴의 면도날
우리가 지금까지 고찰한 반론 중 그 어느 것도 유명론을 선호해야 할충분히 만족스러운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 반론들은 모두 실재론 내에서 나타나는 기술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유명론자들이 실재론을 거부하는 일차적 이유는 이런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그 진정한 이유는 이른바 최선의 설명 (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 추론에 의거하면 우리는 언제나 유명론을 실재론보다 더 그럴 듯하다고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 (계속)
최선의 설명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이란 다음과 같은 추론방식이다:
1. p라는 증거가 있다.
2. p를 설명할 수 있는 가설들로서는 H1, H2, H3, ...가 있다. 3. 이 가운데 Hn이 p의 가장 좋은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