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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사』5차시 강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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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사』5차시 강의록

담당교수: 윤 휘 탁(교양학부)

한중간 고구려사 논쟁

<고구려 → 고려로의 계승문제>

<한국>

 고려가 국호를 고려라 한 것은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고려는 고구려 옛땅 회복을 목표로 북진정책과 서경(西京)을 중시

 고려의 고구려 계승의식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백제・신라를 삼국시대로 기술 한 데서 나타남

 <송사宋史>에서 고구려-고려의 역사적 계승관계를 서술, 고구려사를 한국사로 인 정

 2000년 이전까지 중국이 고구려를한국사로 인정했다가 부정하는 것은 역사상식에 서 벗어남. 역사귀속, 계승문제는 갑자기 변화될 수 없음

<중국>

 고려와 고구려는 별개 국가. 고려는 조선족 조상이 세운 국가, 고구려는 중국 민 족의 조상이 세운 국가

 이 두 국가는 장기간 고려로 불렸기 때문에 같은 국가로 오해됨. <송사> 에서 고 려를 고구려와 같은 나라로 기술한 것은 착오(←정사를 부정)

 고려는 신라의 옛땅에서 건국하였지 고구려 옛 땅에서 건국한 것이 아님 두 나라 는 민족성분이 다르며, 고려는 신라인・백제인・일부 고구려인・한인(漢人)의 후예가 세운 국가

 고려는 신라를 계승한 나라이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가 아님

<고구려의 영역>

<한 국>

 고구려는 한사군 몰아내면서 세운 국가. 고구려 건국 후 중국영토에 속한 적 없음

 고구려의 영토 확장과정은 중국세력을 한반도와 요동에서 축출하는 과정이었음

 한사군이 한때 고구려를 관할했다고 고구려 700년 역사를 모두 중국사라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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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조선을 식민통치했다고 조선 500년사를 일본사라 주장하는 것과 같음

 한사군 설치지역은 중국영토가 아니라 원래 고조선 영토였음

<중 국>

 한의 현도군에서 건국, 몇 번 천도했지만 활동중심은 한사군의 관할범위 벗어난 적 없음

 고구려는 현도군, 낙랑군, 대방군 요동군 영역을 벗어난 적이 없음

 고구려는 고대 중국 영토 안에 존속했던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임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반도 중부 이북은 고대중국의 영토임

<지방정권의 문제>

<한국>

 책봉-조공은 고대 동아시아의 외교적 의례행위임

 책봉-조공관계는 중국보다도 주변국가가 조공무역 필요 때문에 자발적으로 요청 한 경우가 많았음

 평양 천도 이전까지 중국-고구려 사이에 책봉-조공관계 없었음

 당시 고구려 이외에, 백제, 신라, 일본, 베트남도 중국에 조공했음

 당시 중국에 조공한 일본, 베트남, 신라, 백제도 중국사인가?

<중국>

 고구려 왕들은 중국왕조의 책봉 받은 신하로서 인민을 관리했으므로 고구려는 중 국 지방정권임

 고구려는 중국 중앙왕조와 조공관계 유지, 그 관계를 끊고 중국 밖에 존재했던 적 없음

 고구려는 중국왕조에 조공했으므로 중국의 속국이고 지방정권임

<고구려-수·당 전쟁의 성격>

<한국>

 당이 신라와 연합, 고구려 침략한 것은 동아시아의 국제전쟁

 요동지역은 본래 고조선의 영토임

 고구려는 고조선과 부여 땅에서 성장, 영토수호 위해 수당과 전쟁

 고구려-수・당 전쟁을 영토회복 전쟁이라는 논리는 성립 안 됨

 고구려는 수나라의 지방정권이 아니라 중국 밖에 세운 독립국

<중국>

 수・당의 고구려 침략은 정벌이고 중국 내부의 통일전쟁이었음

 당이 고구려 멸망시켜 주(周)・한(漢)의 옛 영토인 요동을 수복, 직접 통치하려는 영토회복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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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는 중국 땅인 요동에 세워진 소수민족 지방정권

<고구려 유민의 거취와 고구려사 귀속 문제>

<한국>

 유민과 후손의 계승의식 여부가 역사귀속을 결정

 포로수, 편입된 유민수나 영토 크기만으로 역사계승 논할 수 없음

 고구려사 계승의식의 증거: ①고구려 부흥운동, 부흥국(報德國)의 존재, ②삼국통 일 강조한 신라의 통일의식(一統三韓), ③고구려 계승국임을 표방한 발해・후고구 려・고려의 존재, ④고구려・백제・신라를 삼국사로 정리한 삼국사기・삼국유사・제왕 운기・동국이상국집

<중국>

 70여 만의 고구려인 중

- 30만: 전쟁포로로 중국에 끌려가 한족 등에 흡수

- 10만 이상: 발해 건국했다가 멸망한 후 요(遼)・금(金)에 흡수 - 수만: 돌궐로 유입된 후 돌궐 멸망 뒤 중화민족에 흡수 - 10만 이상: 신라로 편입

 중국이 고구려유민을 한국보다 더 많이 흡수했으므로 고구려사의 계승권을 확보 하고 있음

 고구려사=중국사

<고구려 → 고려로의 계승문제>

<한국>

 고려가 국호를 고려라 한 것은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고려는 고구려 옛땅 회복을 목표로 북진정책과 서경(西京)을 중시

 고려의 고구려 계승의식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백제・신라를 삼국시대로 기술 한 데서 나타남

 <송사宋史>에서 고구려-고려의 역사적 계승관계를 서술, 고구려사를 한국사로 인 정

 2000년 이전까지 중국이 고구려를한국사로 인정했다가 부정하는 것은 역사상식에 서 벗어남. 역사귀속, 계승문제는 갑자기 변화될 수 없음

<중국>

 고려와 고구려는 별개 국가. 고려는 조선족 조상이 세운 국가, 고구려는 중국 민 족의 조상이 세운 국가

 이 두 국가는 장기간 고려로 불렸기 때문에 같은 국가로 오해됨. <송사> 에서 고 려를 고구려와 같은 나라로 기술한 것은 착오(←정사를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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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는 신라의 옛땅에서 건국하였지 고구려 옛 땅에서 건국한 것이 아님 두 나라 는 민족성분이 다르며, 고려는 신라인・백제인・일부 고구려인・한인(漢人)의 후예가 세운 국가

 고려는 신라를 계승한 나라이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가 아님

고구려사는 한국사이다!

 중국: 고구려사=중국사라고 서술한 역사책 없고, [송사]는 고구려사=한국사

 한국: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이상국집]에서 고구려사 기술

 당의 군주, 원의 최고 통치권자는 고구려=한국사로 인정

 [신당서] [구당서] [명사明史] 등 중국 역사책도 고구려를 독자국가로 인정

 중국역사책: 고구려전(傳), 백제전, 신라전을 외국열전(列傳)=외국사로 분류

 중국인은 고구려사의 역사계승의식이 없음. 한국인은 역사계승의식 있음

 2000년까지 중국교과서에서도 고구려사=한국사로 인정, 교육시켰음

 고구려가 중국왕조에 조공했으므로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면, 당시 중국에 조공한 일본, 베트남, 백제, 신라도 중국의 지방정권이고 중국사인가?

 고구려가 장악한 요동은 수/당의 영토가 아니었음. 수/당의 고구려 침략은 영토 수복전쟁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전쟁임

당나라는 한반도를 몽땅 차지하려고 했다!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보임

 백제 땅에 5개의 도독부(都督府)를 두어 백제를 통치할 계획 수립

 665년 웅진(熊津)도독부와 그 산하의 7州를 설치, 의자왕 아들 부여륭(扶餘隆)을 웅진도독에 임명

 신라에는 계림(鷄林)대도독부를 두고 문무왕을 계림주(州)대도독에 임명

 문무왕과 백제의 륭이 화친 맹약 맺도록 해서, 당이 백제의 유민을 무마하고 세 력하에 두는 동시에, 신라가 백제 땅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견제

 당은 고구려 멸망시키고 668년 평양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 두어 고구려, 백 제, 신라 등을 포함한 동방 전체를 총괄하고자 함

→ 신라는 전승국이면서도 패전국인 백제, 고구려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됨

 신라-당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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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는 검모잠의 고구려 부흥군을 도와 당을 몰아내려고 시도

- 674년 고구려 부흥운동 지도자 안승을 고구려왕(후에 보덕국왕)에 임명

 고구려, 백제 귀족들에게 작위를 제공, 고구려, 백제의 유민을 포섭

 백제 땅에서 당의 괴뢰군(부여륭의 군대)과 당군을 격파

 671년(문무왕 11)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 → 백제 땅에 대한 신라의 지배권을 완전 장악

 672년 당은 당나라 군대 1만, 말갈군 3만 명 동원, 신라 침략

 당나라에 있던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金仁問)을 신라왕에 임명 → 형제(문무왕-김인문) 사이를 이간질

 다시 수십만의 군대를 동원해서 신라를 침략

 675년(문무왕 15) 신라군은 고구려군을 신라군에 편입

 매초성(의정부)과 한강에서 당군 20만 격파, 軍馬 3만 마리와 무기 노획

 금강 하류(기벌포)에서 당의 수군 격파, 대동강 이남의 당군 축출에 성공

 676년 당은 한반도 통치기구인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양(遼陽)으로 옮기고 한 반도에 대한 신라의 지배권을 실질적으로 인정

 신라는 대동강과 원산만을 잇는 선 이남의 땅을 점유

삼국통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부정적 평가:

 신라는 외국세력(당)을 끌어들여 대동강 이남지역을 통일했지만, 고구려 영토를 대부분 상실했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통일

 삼국통일 과정에서 외세를 끌어들임으로써 외세의 간섭과 영토 탈취라는 안 좋은 사태를 초래

 고구려 유민들은 7세 말 고구려 땅에 발해 건국, 고구려 후계자임을 자처, 신라와 경쟁

→ 민족의 힘을 분산시키고 우리 민족의 역랑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

 긍정적 평가:

 독립된 기반 위에서 한민족의 형성을 위한 기반 마련

 신라가 발해와 함께 남북국(南北國)의 형세를 이루며 대립하고 있었지만, 신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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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와 주민, 그들의 사회 문화가 한국사의 주류 문화를 형성

 신라가 당을 물리치고 통일 완수한 것은 신라인의 자주적 성격을 보여줌

 신라의 민족통일은 고려 건국 이후 발해를 부분적으로 포섭

 고려 이후 영토가 확장되고 조선이 건국된 이후 삼국시대의 유민(遺民)의식이 없 어짐

☞ 역사적 교훈: 통일은 독자적인 힘으로 이룩해야 함. 강대한 외국세력을 끌어들 일 경우 통일 후의 강대국의 영향력과 점령 야욕을 물리치기 어려움

- 한국전쟁이 좋은 사례임(미국, 중국 세력의 개입 초래 → 남북분단)

삼국의 역사책

 고구려: 건국 초기에 <유기(留記)> 100권 편찬

- 영양왕 때(600) 이문진(李文眞)이 <유기>를 <신집(新集)> 5권으로 개수

 백제: 근초고왕 때 고흥(高興)이 <서기(書記)> 편찬

 <일본서기>(720)는 백제기, 백제본기, 백제신찬(新撰) 등을 인용 → 이것은 일본 건너간 백제 유민들이 후대에 쓴 것으로 보임 ※ 백제사를 복원하려면 일본 역사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음

 신라: 545년 진흥왕 때 거칠부(居柒夫)가 <국사> 편찬

 12세기 초 고려 인종 때의 <삼국사기>는 이것들 참조 - 신라의 불리한 내용 삭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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