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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東坡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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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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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40, No. 3, 2022 … 321

동파육(東坡肉)

오 장 수

jsohbb@naver. com

아들이 동파육을 먹자고 했다. 작년 12월 여 의도의 고급 중국 식당에서였다.

LG화학 선후배들과 잠원동 중국집에서 오찬 을 했다. 선배님께서 마오타이를 한병 가져 오셨 다. 다 마시고 연태 고량주도 한병 시켰다. 내공이 깊은 중국집 같아서 동파육도 주문했다. 금년 1월 중순이었다. 거기서 끝냈어야 했는데 공부가주도 한병 시켜 마시고 눈길을 기분좋게 걸으며 다같이 즐겁게 헤롱댔다.

1월 말에 대학 동기들과 서초동인지 방배동인 지 중국집에 갔다. 내가 연태 고량주와 동파육을 시켰다. 다 좋아했다.

중국 출장중 식당에 가도 꼭 동파육이 있는지 물어보고 시켜 즐겼다.

역시 고량주나 중국 술에는 동파육이 최고의 안주이다. 맛도 최고지만 이 동파육을 만든 소동 파(蘇東坡)와 그의 문학과 정치가 어우러진 삶을 생각하기 때문에 술맛이 더 난다.

소동파는 황주(黃州)에 은거했다. 여기의 동쪽 언덕을 동파(東坡)로 이름짖고 자신의 호로 삼았

다. 여기서 동파는 동파육을 만들었다. 돼지고기 를 두껍게 썰어서 소흥주를 넣고 오래 푹 삶은 후, 간장과 갖은 양념을 넣고 다시 푹 조린 음식을 만 들었다. 돼지고기 냄새는 흔적도 없고 소흥주와 중국 간장과 갖은 양념이 어우러진 기막힌 맛이 다. 오래 삶고 푹 졸여서 씹히는 맛도 일품이다.

주변에 가난한 백성과 나누어 먹었다. 동쪽 언덕 (東坡)에 올라 이 요리를 안주로 술과 한 많은 삶을 마셨다. 이때 지은 시가 불후의 명작 적벽부이다.

소동파는 본명이 ‘소식’이다. 아버지 ‘소순’과 동생 ‘소철’과 3분이 모두 당나라와 송나라를 통 틀어 글을 가장 잘 쓴다는 당송 팔대가에 올랐다.

이들을 일컬어 3蘇라고 한다. 천재 집안이었다.

동파는 북송 시대, 서기 1037년에 미산(眉山)에 서 탄생했다. 사천성의 성도에서 남쪽으로 65km 이다. 무협지에서 아미파로 유명한 아미산(娥眉山) 근처이다. 漢字도 같다.

동파가 21세, 동생 소철이 19세때 가장 어렵다 는 과거시험 진사시에 동반 합격했다. 북송의 인종 황제가 장래 나라를 이끌 재상감을 두명이나 얻었 다고 황후에게 말하면서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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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322 … NICE, 제40권 제3호, 2022

소동파는 천재 시인이자 띄어난 행정가로 젊어 서부터 황제와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신법을 주창한 왕 안석 일파에 반기를 들 었다. 이들의 음해로 동파는 일생을 감옥과 귀양 으로 살았다. 술과 동파육으로!

이렇게 정치적 핍박을 받던 시절 벗과 여산(廬 山)의 서림사(西林寺)에 올랐다. 동파가 40대 중반 때였다. 이 한창 나이에 천재의 꿈을 펼치지 못하 고 있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겠는가!

동파는 서림사의 벽에 시를 썼다. 이 시의 제목 이 題西林壁(제서림벽)이다.

— 가로로 보면 산맥이요 옆에서 보면 봉우리라 원근고저 각기 다른 모습이구나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것은 내 몸이 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 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 「김 성곤의 중국 한시 기행」 P95) 동파의 답답한 심사가 엿보인다.

이 詩를 읽고 나의 삶도 돌아봤다.

내가 인생을 모르는 것은 인생 속에 있기 때문인 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럼 삶을 모른다는 얘기인가?

그럼 삶을 벗어나 죽은 뒤에 삶을 알아서 어디다 써 먹을 것인가?

죽은 뒤에 앞의 삶을 알면 무엇하리오. 모르면 또 어떤가.

살아서 우리가 죽음 뒤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 서 그런가 보다.

살아서 삶을 알고 죽어서 죽음을 알면 또 얼마나 골치 아플 것인가.

“삶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자살을 했다. 일본의 전설적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죽 어서 이 분이 삶을 돌이켜 이해하고 계실까? 이해 해봤자 죽어서 어디다 써먹을려고?

신은 죽지 않는다. 인간은 그래서 신을 동경한 다. 그러나 그게 아닌 것 같다.

미국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가 멋진 연기를 보 인 '트로이'라는 영화가 있다. 테레비에서 두어번 반토막씩 봤다.

트로이의 신전에서 神을 섬기는 여사제가 그리스 軍에게 잡혀서 노예가 되었다. 이름은 브리세이아 (?)인가 기억이 가물거린다. 왕자의 사촌, 트로이 황제의 조카였다.

여러명의 그리스軍으로부터 능욕을 당할 뻔할 때 아킬레스(브래드 피트)가 이 여사제를 구했다. 아 킬레스의 막사로 같이 온 여사제는 아킬레스를 경 멸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전사(warrior)라 고.

아킬레스가 여사제를 가만히 보면서 얘기했다.

“神들이 가르쳐 주지않는 비밀을 하나 알려줄까?

神들은 인간을 부러워해. 인간은 필멸하니까. 인 간은 반드시 죽으니까.

그래서 삶이, 순간이 아름다운거야.

영원히 사는 神들에게는 이런게 없지.

지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매 순간이 너무 아 름다워!”

戰場의 피로에 아킬레스는 잠이 들었다.

목에 칼날의 섬뜩함을 느끼고 깼다.

여사제가 칼을 목에 대고 말했다.

“죽여 버리겠다.”

아킬레스가 말했다.”죽여라.”

“두렵지 않느냐?”

아킬레스가 대답헸다.”두렵다 그러나 죽여라. 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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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40, No. 3, 2022 … 323 찮다. 언젠가는 죽을텐데 지금 죽어도 좋다.”

영화 내내 브래드 피트, 아킬레스의 솔직담백 함과 자신있게 죽음울 관조하는 멋과 매력이 잔잔 하게 에게海의 해변 백사장에 퍼졌다.

트로이 목마의 전설이 성공하고, 그리스軍이 트로 이 성안으로 물 밀듯 쳐들어가고 있었다. 아킬레 스는 신전에서 아가맴논으로부터 여사제를 구했 다. 그러나 여사제의 절박한 반대의 절규에도 불 구하고 트로이의 둘째 왕자 파리스는 활로 아킬레 스를 죽였다. 첫째발은 아킬레스건에 맞혔다. 그 리고 가슴에 세발을 더 명중시켰다. 절친 오딧세 이가 아킬레스의 두 눈에 저승 갈 노잣돈 동전을 얹고 불에 태워 神에게 보냈다.

죽지않는 신을 인간이 만들었다. 죽음이 두려 워서.

정진홍 교수는 “신의 고향은 아무래도 인간의 가 슴인 것같다.”고 했다.

그러나 신들이 인간을 부러워한다는 것을 아킬레 스에게 들켜 버렸다.

가장 가까운 두사람의 죽음 앞에서 죽을려고 노력을 했다.

죽지 못하고 죽음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다가 죽은 분이 계신다. 국민 작가 박완서씨다.

남편이 죽었다. 슬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들이 죽었다. 슬픔이라고 말도 할 수 없는 슬픔으로 살 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다가 슬퍼서 죽을려고 삶을 포기했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굶으면 죽을 수 있을 것같아 굶었다. 그러나 세월 이 흘러 어느날 배가 너무나 고파 음식을 먹었다.

살려고 음식을 먹는 자신에게 비겁하고 간사한 환 멸을 느꼈다. 괴로웠다.

괴로워하면 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또 삶을 포기했

다. 괴로워하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흘러 삶은 이어졌다.

작가는 가느다란 명줄을 이어 오다가 죽음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었 다고 했다. 죽으면 아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남편 도 보고.

꿈에도 잊을 수없는 아들을 볼 수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죽음을 향해 살았다.

슬픔을 죽음에 대한 희망으로까지 승화시킨 인간이 었다. 보통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다.

여산 속에서 여산의 진면목을 못 본 소동파는 여산을 내려왔다.

그가 그의 삶의 진면목은 결국 못 본 것 같다. 그 러나 다음을 보면 다른 사람의 삶의 진면목을 본 것 같다.

소동파가 특별히 흠모하는 시인이 있었다. 이 백도 두보도 아니었다. 그 보다 약 700년 전에 살 았던 도연명이었다. 도연명은 위진 남북조 시대 동진 사람이었다. 소동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시인들에 대하여 좋아하는 바가 없다. 오직 도연명의 시만을 좋아하는데,. . . (중략) 내가 도연명의 시문만을 좋아하겠는가? 그 사람 됨됨이의 경우에도 실로 느끼는 바가 많다.”

(「김성곤의 중국 한시 기행」P100)

도연명의 고향이 바로 이 여산 자락이었다.

이분의 인간 됨됨이와 삶을 볼 수있는 글이 있다.

자전적인 글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이다.

“(전략)

집 주변에 다섯 그루 버들이 있어서 그것을 따 서 호를 삼았다. (도연명의 호가 五柳이다. ) (중략)

독서를 좋아하였으나 깊이 따지지 않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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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324 … NICE, 제40권 제3호, 2022

(중략)

성품은 술을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늘 얻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이를 알고 간혹 술자 리를 마련하여 그를 부르면 가서 마시는데 반드시 취할 때까지 진탕 마셨다. 취한 후에는 물러나는 데 일찍이 가고 머무름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후략)”

(같은 책 P101)

술을 진탕 마시는 것은 나와 견주어 볼만 하다.

그러나 나는 미련이 남아 일찍 가지를 못하니 이 신선과 오래는 못 겨룰 속물중의 속물이다.

“어쩌면 술은 도연명이 그토록 추구했던 진실한 삶으로 안내하는 또 하나의 빛이었으니, 도연명은 그빛의 조명 속에서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삶의 진 실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책 P104)

동파육 시키고 연태 고량주를 마시고 싶다. 소 동파에게 연락해서 도연명 모시고 오라고 해서.

거기에 소크라테스와 이순신 장군도 초청하고

싶다.

요즘 코로나로 6명까지 가능하니 김훈 소설가 는 내가 전화해서 오시라고 해야겠다.

여기에 다자이 오사무와 박완서씨도 꼭 같이 모시 고 싶으나 7명이상이라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아킬레스도 부르면 올 것 같은데 동파육이 와인 안주로 좋을지 걱정이다.

소크라테스와 이순신 장군에게는 취한 겸에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다.

‘마누라의 핍박을 어떻게 견디고 인내하면서 살았 느냐고?’

‘선조와 조정 대신들의 엉터리 국정 운영에도 불 구하고 왜그렇게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켜냈느냐 고?’

지난 2월 9일 잠원동 그 중국집에 또 갔다. 대 학 선배와 동기와 같이.

연태 고량주를 시켰다. 친구의 반대에도 내가 공 부가주도 시켰다.

안주로 동파육을 주문했다.

-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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