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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CE, 제35권 제1호, 2017특 별 기 고
“넘어지기는 쉽다. 일어서는 게 어렵지.”
오 장 수
현 학회장 / LG하우시스 대표이사 jsohb@lghausys.com
제목의 이 말은 용평 스키장 리프트 의자 뒷면에 쓰여 있는 글 입니다.
뒤 리프트를 탄 분들이 볼 수 있게 쓰여진 것입니 다. 스키나 보드타는 분들께 뭔가 경고의 Message같 은데 다음의 말들을 보면 철학적인 의미가 또한 상 당합니다.
“가끔은 내리고 싶지 않다.”
“일어설게요. 호루라기 좀 그만 부세요.”
“옆사람과 딱히 할말이 없다.”
“넘어지기는 쉽다. 일어서는 게 어렵지.”
1,2년 전부터 리프트를 타고 가노라면, 앞 리프트 의자 뒷면에 쓰여진 이런 글귀를 보고 참 잘 썼다라 고 생각만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도대체 어떤 글귀들이 몇가지 종류가 적 혀있는지, 유심히 내려가는 빈 리프트를 계속 뒤돌 아 보면서 확인한 결과 위의 4가지 글귀가 반복적으 로 쓰여 있는 것을 최종 확인했습니다.
스키장들은 저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 하는 스키장은 곤지암, 하이원, 용평입니다.
곤지암은 도시적입니다. 뭔가 젊음이 풍요롭게 들떠 있는 것 같습니다. 슬로프는 물론 모든 것이 최 고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잘 관리된 세련된 분위기입
니다. 서울에서 가까운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음식 들도 맛있습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리프트권 시 간제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모든 설비와 운영체제가 고객을 배려한 정성이 엿보여서 기분이 좋습니다.
최상급 Slope가 없고, Slope 수가 적은 것 빼면 모든 것이 최고입니다.
하이원은 조금 분위기가 다릅니다. 다운타운에 들어서면 일단 전당포들이 즐비한 것이 뭔가 좀 이 상합니다. 동네분위기는 들떠있습니다. 스키장은 거 의 젊은이들의 놀이터입니다. Slope도 많고 설질도 잘 관리합니다. 그러나 리프트 설계는 잘못되어 있 습니다. 거의 모두 Hera리프트에 집중되어 줄을 길 게 서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 외 리프트는 늘 한산 합니다. 반대 편 빅토리아 리프트에도 약간의 스키 어가 있습니다. 사우나가 밸리 콘도에만 있어서 힐 콘도나 마운틴 콘도에 묵을 경우 곤돌라 이용객이 너무 많아 사우나 왕복 동선이 너무 어렵습니다. 다 양한 Slope와 좋은 설질을 제외하면 단점이 더 많습 니다.
용평스키장은 일단 마니아들의 놀이터입니다. 젊 은 고수도 많지만 강호의 장노년층 기인이사도 많습 니다. 값비싼 콘도, 버치힐, 베르데힐, 굉장히 값비싼 포레스트 콘도를 소유한 오너 회장님들께서 노련한 내공을 내뿜으시는 곳 입니다. ‘대관령 ○○회관’식 당에 가면 이런 강호의 기인이사 고수님들을 뵐 수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5, No. 1,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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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기는 쉽다. 일어서는 게 어렵지.”
가 있습니다. 이 식당의 오너 회장님은 우리나라 스 키 1호 선수였던 어○○ 회장님이십니다. 70대 중반 이신데 종종 최상급 레인보우 Slope와 사우나에서 만 나뵙습니다. 91세의 이 회장님, 86세의 모 회장님, 70 대 회장님들은 많으시고요, 저는 젊은이입니다. 제 가 이 기인이사 고수님들을 모실 실버 스키 클럽을 결성해서 총무를 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91세의 이 회장님은 버치힐 콘도에 머무시면서 지금도 부츠를 신으시고 차를 모시고 골드로 가셔서 스키를 타시는 분입니다. 여름에는 뉴질랜드에 가셔서 거의 한달 이상 스키를 타십니다. 건설중인 값비싼 테라스 콘 도로 옮기시면서 버치힐 콘도를 저보고 사라는 것을 안 샀습니다. 정말 부럽기 짝이 없는 분 입니다. 용평 은 강호의 고수들이 다 모이는 곳입니다. 맛집도 많 습니다. 오대산, 대관령, 동해안 등 주변에 가볼 곳도 많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리프트 뒤의 산뜻하면서도 철 학적인 글귀들이 용평스키장을 대변합니다.
“가끔은 내리고 싶지 않다.”
공감이 갑니다. 스키라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스릴도 있으나 또한 위험하여 도전 정신을 필요로 합니다. 안전의식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최상급 실 버나 레인보우 1, 2 같은 경우는 가끔은 내리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내려서 도전 을 하고야 맙니다.
“일어설게요. 호루라기 좀 그만 부세요.”
보드 타시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슬로프에 앉아 있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위험하다고 패트롤들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서 내려가 시기를 경고 합니다. 보드를 타기보다는 이렇게 주 로 슬로프에 앉아 있는 분들을 스키장에서는 낙엽이 라고 부릅니다. 비 오는 날 떨어져서 땅바닥에 붙어 있는 낙엽같다고. 이렇게 제가 어느 날 설명을 하니, 듣고 있던 제 딸이 당장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게 아니고, 보드를 멋있게 턴(Turn)하면서 내려오는 모
습이 낙엽이 늦가을 멋지게 떨어지는 모습과 비슷해 서 생긴 말”이라고. 딸의 소신과 의견을 존중하며 세 상에는 Debate를 해야 할 것과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비 오는 날 도로 위에 떨어져 붙어 있는 낙엽을 일본에서는 은퇴한 남편 이 집에, 부인에게 붙어 사는 것을 빗대어 젖은 낙엽 (濡れ落ち葉, 누레오치바, ぬれおちば)라고 한다”고 홍 해준 회장님께서 수필집에서 소개한 적도 있습니 다. 제가 이 말이 기억이 가물거려 동경출장 중 박 순 필 부장과 추 일웅 차장께 물었더니 이 두분이 자세 히 다음과 같이 설명도 해주고 친절하게 메일도 보 내 주었습니다.
“쓸어도 쓸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 모습에서 변하 여, 주로 정년퇴직 후, 남편이 특별한 취미도 없기 때 문에, 부인이 외출하려 하면 반드시 “나도(같이가)”
라고 하며 아무데라도 같이 가는 모습을 지칭하게 되었다. 젖은 낙엽 증후군 이라고도 한다. 그 경우 젖 은 낙엽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젖은 낙엽, 누레오치바(ぬれおちば) !
호루라기 불기 전에 일어서서 끈질기게 도전합시 다!
“옆사람과 딱히 할말이 없다.”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일단 옆사람을 한번 쳐다보 게 됩니다. 요즈음은 헬멧 쓰고, 고글 쓰고 얼굴을 다 싸매고 있어서 옆사람을 봐도 얼굴을 볼 수가 없습 니다. 이 말이 옆사람과 얘기를 좀 하라는 것인지 하 지 말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옆 사람에 게 쓸데없는 말 걸지 말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어떻 든 이 글들을 쓰신 분을 한번 만나서, 원저자의 뜻하 는 바를 여쭈어 보겠습니다.
“ 넘어지기는 쉽다. 일어서는 게 어렵지.”
스키에 입문하면 처음에 넘어지는 법과 일어서는 법을 배웁니다. 상급이상 슬로프에서는 오히려 쉽게 일어설 수 있는데 완만한 경사면에서는 일어서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스키를 오래 타다 보면 넘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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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넘어지면 일단 창피하니까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다가 넘어지면 크고 작게 다치 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특히 어깨를 다치는 경우 가 많습니다. 중심을 잃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빨 리 넘어지라고 스키 코치들이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가능한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다가 넘어지면 다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 렇게 고치고 싶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빨리 넘어져라. 그리고 곧바로 일 어나라. 그리고 또 달리자. 끈질기게.”
최근 유명해진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창업 회장 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는 못생기고, 가난했으며, 많이 배우지도 못하 고,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끈질기게 끝까지 도전했습니다.”
꼭 이 네가지 글귀의 원저자를 만나서 애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스키는 정말로 부지런한 사람들이 아니면 탈 수
가 없습니다. 실행력이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운 동입니다. 일단 시작하지만 끈질기게 계속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남들이 다 자고 있는 주말 새벽에 일 찍 일어나서 추위를 무릅쓰고 나가야 합니다. 장비 또한 복잡하고 귀찮기 짝이 없습니다. 부츠, 장갑, 스 키 플레이트, 폴, 헬멧, 마스크, 스키복 …
일일이 다 준비해서 차에 싣는 것도 보통 일이 아 닙니다.
부츠를 신으면 걷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스키장 다녀와서 차에서 내려서 집으로 가지고 가서 정리 하는 것도 여간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 아 닙니다..
“가끔은 내리고 싶지 않다.”
“일어설게요. 호루라기 좀 그만 부세요.”
“옆사람과 딱히 할말이 없다.”
“넘어지기는 쉽다. 일어서는 게 어렵지.”
2월을 맞아 이 말들을 되새기면서, 끈질기게, 희 망차게, 도전합시다.
용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