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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plan for the corridor of Silla Buddhist temples in the 6~8th Century through examining rem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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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1598-1142 (Print) / ISSN 2383-9066 (Online) https://doi.org/10.7738/JAH.2019.28.5.019

1. 서 론

회랑은 고대 불교사원의 중심사역에서 가장 위계가 낮은 건물이긴 하나, 주요건물을 연결하고 전체 가람 구성을 완결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발굴조사보고서에 는 다른 건물지에 비해 세부적인 기술이 적은 편이고 평면은 평균치의 주칸 크기 하나만 제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발굴도면을 살펴보면 일정한 길이를 등분한 것이 아닌 경우도 있고 건축적 고찰이 다소 부

* Corresponding Author : [email protected]

본 연구는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의 『황룡사 복원 제5차 심화연 구』(2017∼18)의 일부를 심화·발전시킨 것이며 2019년 5월 17일 한 국건축역사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 원고를 기반으로 보완한 것임.

족한 경우도 발견하게 된다. 고대건축에 대한 원천자 료의 결함은 기술적 측면보다도 회랑건축에 대한 인식 과 단독 연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고대 건축의 회랑연구는 고구려·백제·신라·통일신라 등 광범위한 불교사원 유적에서 회랑건축이 갖는 전체 가람에 대한 상관관계와 공간연결방법을 형태위주로 고찰하거나

1)

동아시아의 범위로 확대하여 고대 건축 에서 회랑 특히 복랑(複廊)의 특징과 건축요소를 검토 한 연구

2)

가 주목된다. 상당량의 연구대상을 비교·검토

1) 회랑 건축계획을 상호 관계성을 통해 살펴본 선행연구로는 박언 곤·이은정의 「한국고대가람의 회랑에 관한 연구」(홍익대학교 환경 개발연구, 제6집, 2001)가 대표적이다.

2) 회랑의 건축요소와 기능을 동아시아 고대 가람의 복랑을 위주로 당대 회화와 발굴조사 자료에서 검토한 연구로는 현승욱의 동아시

유구검토를 통한 6~8세기 신라 불교사원 회랑 건축계획 연구

A study on the plan for the corridor of Silla Buddhist temples in the 6~8th Century through examining remains

김 숙 경*

1)

Kim, Sookyung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이 은 비

Lee, Eun Bee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

Abstract

The subjects of this study were limited to Silla buddhist temple remains in the 6~8th century, where the excavation survey report was published and the details of the remains of the corridor are revealed. Since the corridor completes the structure of temple and is involved in formation of the space, the building plan for corridors is thought to have an intention linked to the entire temple. Thus, more closer study is required for this construction plan to identify the role of corridors.

The corridor is a building that has a low architectural hierarchy and completes the layout and composition of the temple. In the unit planning of the corridor, unit were designed to be of a certain size in the temple layout.

Then, the overall scale was made by adding the fixed size of unit. The combination of corridors are the combined points of paths and were used as visual points. The structure of the corridor was constructed to be adjusted according to the size of the main compartment of the building to which it was connected and inserted under the roof of the building. The adjustment of the unit changed in the range of 0.5 to 2 of Silla’s system of measurement. The usage of embedded pillar in the corridor presents a new perspective on Silla architecture.

주제어 : 신라, 회랑, 주칸계획, 결합부, 굴립주

Keywords : Silla, Corridor, The unit planning, combination, embedded pillar

(2)

하여 회랑건축의 보편성을 밝히는 성과가 있었다.

최근 보다 정교한 신라 불교유적 발굴조사 자료가 축적됨에 따라 회랑건축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가 가능 해졌다. 개별 연구 대상에 집중하면 독립된 건립 과정 속에서 하나의 유적을 더 자세히 이해하는 장점이 생 긴다. 유구에 대한 건축적인 이해방식으로 가람배치와 회랑의 관계, 가람 내 회랑의 위계, 회랑 자체의 평면 계획 등을 다루고자 한다. 가람배치와 회랑의 관계는 영조척을 검출하여 살펴보고, 회랑의 평면규모와 초석 배치, 초석의 크기 등으로 건축적 위계와 평면구성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3)

본 연구에서 조사한 대상은 6~8세기 신라 불교사원 으로서 정형화된 평지가람인 황룡사지, 사천왕사지, 감 은사지, 고선사지 등의 회랑(단랑)이다. 이 중 유적의 노출상황에 따라 정보의 편중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자료가 양호한 황룡사지 창건가람의 남회랑, 사천왕사 지 회랑, 감은사지 서회랑, 고선사지 탑원 회랑 건축이 주요 분석대상이다.

4)

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고고학적 조사결과를 토대로 하되 보고서에서 멈추지 않고 고대건축연구로 더 나아 가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가 신라 불 교사원의 회랑건축에 대한 관점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그 성격규명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2. 주요건물과 회랑의 배치

2-1. 연구방법

가람배치 검토는 도식적인 배치형태를 가진 경우 주 요건물의 상대적인 위치관계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자 하는 것이며 이 때 회랑은 가람의 범위를 한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위치 관계는 영조척으로 풀이될 때 좀 더 당시의 조영계획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영 조척은 배치계획에서 주요 건물의 위치가 중심이 된다 는 전제 하에 주요 건물, 주로 금당의 유구 평면에서

아 고대가람 복랑 형성시기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 제31권 제 9호(통권323호) 2015년 9월)가 있다.

3) 발굴조사결과는 유적별로 노출현황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연구 시 그 결과를 균등하게 도출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감은사는 후대 건물지 아래 서회랑을 발굴하지 않은 채 발굴도가 작성되었다. 동·

남회랑도 유실된 상태이므로 정비과정에서 발견한 서회랑 자료를 포함시켜 모식도를 작성하였다. 고선사지의 경우 금당원의 북편이 부정확하여 전체 배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4) 본 연구대상의 한정은 정형화된 참조틀안에서 논의가 가능한 방 향으로 정해져서 동시기 유적이지만 유구양상이 복잡해서 파악이 어려운 분황사지, 전인용사지, 천관사지, 황복사지 등의 사례를 제외 시켰음을 밝혀둔다.

검출하였다.

2-2. 황룡사 창건가람의 회랑

황룡사 가람배치에서 중금당의 위치와 규모를 결정 하였던 영조척은 고구려척(1척=35.6㎝)이었다. 가람 전 반적으로 고구려척 80척 길이를 기준으로 그 배수의 수치가 전체와 부분에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전체 가람의 크기는 한 변이 고구려척 800척의 길이이며 그 중심에 중금당 의 중심이 놓여있었다.

5)

아래 <그림 1>은 중금당의 조성시기인 584년경을 기준으로 한 황룡사 가람배치(안)

6)

을 토대로 회랑내곽 에서의 중금당 등 주요건물의 배치관계를 표시한 것이 다. 동·서 금당은 중금당 중심을 지나는 중축선에서 각기 160척 길이만큼 떨어진 곳에 건물의 중심이 위치 하도록 하였다. 또한 회랑내곽의 크기가 남북길이 400 척이며 그 남·북단에서 각각 북·남 담장에 이르기까지 160척과 240척으로 이격되게끔 조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금당은 회랑내곽 400척의 길이를 다시 240척 과 160척(3:2)으로 나누는 위치에 그 중심을 두고 있 다.

7)

6세기 황룡사 가람계획은 전체와 부분에서 80척 즉 8장의 단위를 이용하여 그 틀을 만들고 있었다.

그림 1. 황룡사 주요건물과 회랑의 배치 분석

창건가람의 (원)동·서회랑은 양 금당의 중앙을 지나 고 있고

8)

중원의 내폭은 동·서원보다 약 20척 정도 넓

5) 김숙경, 황룡사 가람계획 척도 연구 , 건축역사연구, 25권, 4호, 2016, 71쪽

6) 김숙경, 황룡사 중건가람배치 연구 , 건축역사연구, 23권, 4호, 2014, 90쪽

7) 김숙경, 앞의 글, 2016, 71~72쪽

8) 김숙경, 앞의 글, 2014., 89쪽

(3)

다. (원)동·서회랑은 북으로는 강당 동·서편건물의 강 당쪽 첫 번째 주칸에 연결되고, 남회랑은 중문에서 각 기 동서방향으로 6번째 주칸에서 결합된다. (원)동·서 회랑은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세 금당의 배치와 규 모에 따라 계획된 것이다.

2-3. 사천왕사 회랑

사천왕사 가람배치 영조척은 금당지 초석간의 실측 치를 기준으로 검출한 295㎜를 적용한다. 아래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람배치는 익랑을 경계로 후 정(後庭)에 있는 단석지(壇席址)와 전정(前庭)에 있는 동·서 목탑지가 각기 남북 중심선이 일치하고 있다.

또한 금당 중심을 기준으로 동·서편으로 각기 70척, 북으로 70척 거리에 단석지가, 남으로 80척 거리에 목 탑지가 위치하고 있다. 목탑지에서 남회랑 남단 주열 선까지의 거리는 75척이다.

사천왕사 금당은 중건된 것이다. 선대 금당은 기초 만 남아있는데 그 범위가 현 유구보다 남쪽에 위치하 고 있기 때문에 당초에는 단석지와 목탑지의 위치가 각기 남과 북으로 75척 등간격으로 계획되었을 수도 있다. 이때 선대 금당의 중심은 기초유구의 중심보다 남쪽으로 약 1.3m 내려온 위치가 된다. 금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중복 유구가 없었기 때문에 금당의 중건 은 창건과정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림 2. 사천왕사 주요건물과 회랑의 배치 분석

선대 금당과 서탑의 기초축조방식이 유사하나 서탑 은 중복 유구가 없고 기초유구 범위가 전부 노출된 것 도 아니었다. 그래서 목탑의 중심은 이동이 없었던 것 으로 간주하였다. 익랑은 중건 금당의 측면 중심과 일 치하고 역시 중복유구는 없었다.

가람 내부는 금당과 익랑을 경계로 양분되어 있는데 양 공간의 계획은 내부에 위치한 목탑지와 단석지의 배치로 알 수 있다. 두 공간은 회랑 두 칸 분량의 차 이가 있고 전정이 보다 넓은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9)

공간의 너비는 역시 내부 건물의 규모를 반영하여 익 랑의 길이로 조절하고 있다.

2-4. 감은사 회랑

감은사 가람배치 영조척은 금당지 하부 초석간의 실 측치를 기준으로 검출한 290㎜를 적용한다. 가람 내 중요한 건축은 중문, 금당, 강당 등 건물과 동서 양 석 탑이다.

아래 <그림 3>의 모식도에서 표현된 것처럼 감은사 가람배치는 전정의 양 탑이 금당과 중문의 중심간 거 리 중앙에 위치하며 가람 중축선에서 동서로 각기 65 척씩 이격되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동·서회랑의 바깥 주열선까지 60척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 금당 과 익랑으로 양분된 공간은 전정이 금당중심에서 강당 까지 105척, 후정이 남회랑까지 95척의 거리를 두고 있어 전정이 10척 정도 더 넓다.

회랑은 어느 쪽에서도 유구가 온전하게 모두 확인되 지는 못하였으나 발굴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평균적인 주칸 크기는 2.9×2.9m로 10척 크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고 남회랑이 10칸, 동·서회랑이 20칸 규모이다.

그림 3. 감은사 주요건물과 회랑의 배치 분석

서회랑은 익랑의 북편 부분의 동서폭이 확장되었고 남편 유구는 주칸의 도리칸 길이가 일정치 않게 변경

9) 배치계획에서 회랑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사례는 일본 법륭사에

서 발견된다. 서원의 금당과 목탑은 그 중심을 동·서회랑 및 남회

랑의 특정 위치 주열선에 일치시키고 있다. 또 내곽의 공간은 두 건

물의 정면이 더 넓은 전정을 갖도록 하고 목탑보다 금당측에 한 칸

크기만큼 더 넓은 공간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奈良六大寺大觀刊行

會編, 『奈良六大寺大觀 第一卷:法隆寺』, 岩波書店, 2001 참조)

(4)

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4장에서 다루 고자 한다.

3. 주요건물에 대한 회랑의 위계

3-1. 연구방법

초석은 유적에서 건물을 식별할 수 있는 유구이고 주좌의 크기로 주경(柱徑)과 주고(柱高)를 유추할 수 있다.

10)

회랑은 가구짜임이 간단하고 주고와 주경이 주요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가람 내 각 건물지에 남아있는 초석의 속성을 비교함으로써 상대 적인 회랑의 위계를 판단할 수 있다. 사천왕사는 금당 지·목탑지 외에는 초석이 남아있지 않아 제외하였다.

3-2. 황룡사 창건가람의 (원)회랑

황룡사 창건가람의 (원)남회랑

11)

초석은 발굴도면에 서 3개, (원)동회랑은 1개의 초석이 확인되나 이를 실 측한 자료는 없었기 때문에 발굴도면에서 도상 실측을 하였다.

12)

이들 회랑 초석의 한변은 약 540㎜인데 이 크기는 황룡사에서 매우 작은 편에 속한다.

13)

만일 (원)남회랑의 주경을 약 350㎜로 보고 고려시대 현존 건물의 주경 대 주고의 비율 8~8.3배를 적용하면 회 랑 주고는 2.8~2.9m로 추정할 수 있다.

중금당은 창건 이후 초석이 그대로 남아있고 방형주 좌 크기는 초석 전체 크기의 2/3정도이다.

14)

아래의

<표 1>은 각 건물지 초석 크기를 주종을 이루는 범위 로 요약 정리한 것이다.

황룡사 중건가람의 동남회랑은 한변이 700~800㎜내 외의 원형1단 방형초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 초 석의 크기만 보면 감은사의 금당에 해당할 정도로 큰 편이지만 황룡사 각 건물의 규모와 초석크기는 다른 유적에 비해 대체로 매우 큰 편이기 때문에 황룡사 내 에서는 역시 낮은 위치에 있다. 창건가람에서의 위계

10) 주경은 초석크기의 1/2이내이거나 원형 2단 주좌직경보다 클수 없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고려시대 건물의 기둥은 주경과 주고비는 단주가 8~8.3배, 고주가 10.4~14.3배 이내에 있다. 국립문화재연구 소·경주시, 『황룡사 중금당 복원심화연구 1차』(황룡사연구총 서,12), 2015, 64쪽

11) 황룡사 중문과 남회랑, 이외 각 회랑은 여러 시기의 유구가 중 첩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창건가람의 회랑을 구별하여 발굴조사보고 서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원)회랑으로 구분하였다.

12) (원)회랑 초석 크기는 보고서에 기술되어 있지 않아, 발굴야장 을 스캔한 후 캐드에서 드로잉하고, 캐드상에서 실측한 것이다.

13)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 『황룡사: 회랑 및 외곽문 영역 복원 심화연구 1차』(황룡사연구총서, 17), 2018, 27쪽

14)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 앞의 책, 2015, 44쪽

는 중금당–강당–중문-(원)회랑의 순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중건 시기(7~9c)에 건축된 목탑, 동·서회랑, 남회랑, 종·경루 등의 초석도 비교해볼 수 있다.(<표 1>참조)

건물지 초석

위치 초석 속성

유형 크기(㎜)

중금당 내진 방형초석 한변 1,000 내외 외진 방형초석 한변 760~900, 1,000 차양칸 방형초석 한변 700

목탑 최외곽 방형초석 한변 1,050~1,250 강당 내진 방형초석 한변 950~1,300

외진 방형초석 한변 870~1,100 중문 최외곽 방형초석 한변 870~970 종루 최외곽 방형초석 한변 870~990 동남회랑 동단부 원형1단

방형초석 한변 700~800 원형주좌 ∅500내외 동회랑 - 방형초석 한변 750~900

방형초석원형1단 한변 750~950 원형주좌 ∅600내외 (원)동회랑 - 방형초석 한변 540

표 1. 황룡사지 주요 건물과 회랑의 초석 속성 비교

3-3. 감은사의 서회랑

감은사지의 모든 초석은 원형 2단 주좌가 있는 방형 초석이다. 감은사지의 모든 건물의 기단외장은 석조 가구식기단이다. 초석의 실측치는 가급적 발굴당시부 터 정비공사 이후에도 제 위치를 지키고 있다고 판단 되는 초석에 한하여 검토하고자 하였다.

감은사 서회랑지에 남아있는 초석은 한 변이 570~

650㎜인 방형초석이며 원형주좌 2단의 직경은 360~

370㎜이다.

15)

만일 회랑 기둥의 하단 주경이 300㎜이 라면 주경 대 주고의 비율에 따라 주고는 2.4m내외로 추정할 수 있다.

금당과 강당은 도리칸의 크기가 3.5m로 같으나 강 당 내진열 초석은 금당 초석들과 비슷한 크기이고 외 진열의 초석은 금당지보다 작고 회랑지보다 크지만 원 형주좌의 직경은 회랑지와 비슷하다. 강당은 내·외진 초석에 큰 차이를 두고 있어 내진 고주를 사용한 건물 로 볼 수 있다. 중문은 신방석과 한 몸으로 만들어진 초석인데, 원형2단 주좌의 크기는 실측 가능한 1단 원 형주좌 직경(534㎜)을 기준으로 이보다 100~150㎜ 작 게 추정하였다.(<표 2> 참조)

익랑지의 초석은 회랑지보다 약간 작은 편이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초석의 크기로 감은사지 각 건물의

15)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 『감은사지 종합정비 기본계획』,

2007, 224~225쪽

(5)

위계는 금당–강당–중문–회랑-익랑의 순으로 볼 수 있겠다. 이 순서는 기단고의 고저순과도 일치한다. 서 회랑은 굴립주공이 있는 분할초석이 있어서 매우 특기 할만한 사항이며 이에 대해서는 4장에서 다루었다.

건물지 초석

위치 초석 속성

유형 크기(㎜)

금당 - 원형2단

방형초석 한변 750~800 2단주좌 ∅415~468

강당 내진 원형2단

방형초석 한변 750~840 2단주좌 ∅474

외진 원형2단

방형초석 한변 640~710 2단주좌 ∅386

중문 중앙 원형2단

방형초석 -

2단주좌 ∅380~430

서회랑 - 원형2단

방형초석 한변 570~650 2단주좌 ∅360~370

서익랑 - 원형2단

방형초석 한변 520~600 2단주좌 ∅380내외 표 2. 감은사지 주요 건물과 회랑의 초석 속성 비교

3-4. 고선사 탑원 회랑

고선사지에 초석이 남아있는 곳은 금당원의 금당지, 탑원의 회랑지와 비각지뿐이다

16)

. 비각지는 방형주좌 위에 원형 2단의 주좌를 조출하였으나 금당지와 회랑 지 초석은 방형초석이라고 보기 어렵고 원형 또는 부 정형 초석에 가깝다. 보고서에 초석의 실측치수가 정 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수록된 실측도면에 있는 스케일바를 기준으로 치수를 파악하였다.

금당원 금당지 초석은 파손된 상태였으나 원형 2단 의 초석으로 볼 수 있다. 보고서에 실린 실측 도면을 보면 금당지 초석은 원형 2단의 직경이 500㎜로 추정 되는 원형초석이다. 탑원 남회랑지에 남아있는 초석은 부정형이나 상면에 원형 1단의 주좌가 조출되어 있고 원형주좌의 직경은 320~375㎜이다.

17)

탑원 비각지에는 한변 600㎜의 방형초석이 있으며 원형2단 주좌의 직경은 350~400㎜이다. 탑원 서남모 서리에 위치한 비각은 탑원에서의 배치, 회랑보다 큰 주칸 크기, 회랑보다 40㎝ 높은 초석레벨, 유일한 방형 초석 잔존, 회랑과 완결되지 않는 평면 주열 구성 등 을 미루어 볼 때 회랑보다 뒤늦게 또는 회랑 폐기 후

16) 본고에서 고선사지의 금당원(金堂院)과 탑원(塔院)이라는 분류 는 중심사역이 회랑으로 구획하여 병렬로 연결된 경우 중원, 동·서 원 등으로 부르는 용례에 따라 수정한 것이다. 발굴조사보고서 (1977)에서 금당구(金堂區), 탑구(塔區)로 정리되어 있음을 밝힌다.

이 보고서는 익랑을 중회랑으로, 초석의 원형주좌를 원형초석으로 정리하고 있는 등 최근의 발굴조사보고서 서술경향과 차이가 있다.

17) 문화재관리국 경주사적관리사무소, 『고선사지 발굴조사보고 서』, 1977, 23·36·38·123쪽 도면 참조

에 세워진 것

18)

으로 생각된다.

고선사지의 비각지 초석은 감은사지의 회랑과 거의 비슷한 크기이나 탑원의 남회랑 초석은 이보다 작은 편이다.

4. 회랑 평면의 구성

4-1. 연구방법

회랑은 사역의 외곽을 에워싸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동서방향의 회랑과 남북방향의 회랑이 만나는 부분이 발생한다. 결합부는 구조적으로 정방형이 되도록 하거 나, 규모차이가 클 때는 건물을 이격시켰다. 회랑에는 출입구가 포함되며 출입구는 주로 회랑의 단부와 익랑 결합부에 설치되었다. 익랑은 중심사역을 전정과 후정 으로 분리시켜 독립된 공간을 구성하게 했다.

발굴조사보고서에는 회랑 유구를 기술할 때 실측값 을 길이에서 칸수로 나누어 평균을 내거나 대푯값 하 나만을 제시하고 있지만, 전체 가람과 영조척을 고려 하여 발굴도면을 살펴보면 평면구성에서 새로운 측면 을 발견할 수 있다.

4-2. 황룡사 창건가람의 (원)남회랑

발굴조사보고서(1984)에 의하면, (원)남회랑 동측은 도리칸이 [(4.2m×5칸)+(3.2m×1칸)+(4m×11칸)+(2.7m×1 칸)〕으로 총18칸이며 보칸은 3.2m이다. 중문에서 6번 째 칸은 (원)동회랑과 결합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원) 동회랑의 보칸폭에 맞추어 좁힌 것이다.(<그림 4>)

그러나 발굴도면을 캐드화해서 다시 실측해보면, 도 리칸이 [(4.4m×1칸)+(4.1m×4칸)+(3.2m×1칸)+(3.95m×11 칸)〕으로 구성되고, 보칸은 2.78m임을 알 수 있다. 도 리칸의 칸수는 총17칸

19)

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 다. 중문에서 첫 번째 칸은 좀 넓게 잡았고 나머지 4 개 칸은 일정하다.

최근 황룡사 중문지 보완조사(2016~2017)에서 노출 된 창건가람 중문(3×2)의 평면유구에서 영조척을 검출 하면 293㎜이다. 이를 (원)남회랑의 도리칸에 대입하면 [(15척×1칸)+(14척×4칸)+(11척×1칸)+(13.5척×11칸)〕이 되며 보칸의 크기는 중문의 보칸 2.9m(10척)보다 반척

18) 김영옥, 경주 고선사지 가람의 변천에 관한 고찰 , 대구사학, 제108호, 2012, 31쪽

19) 발굴조사보고서에서는 (원)동남회랑의 동단 한칸이 동승방에 결

합된 것으로 헤아린 것이지만 건물간의 이격거리로도 볼 수 있어

칸수 산입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원)동남회랑의 동단부와 동승방

과의 이격거리 2.7m는 단위 주칸을 병렬시킨 후 남은 치수라고 생

각한다.

(6)

줄인 2.78m(9.5척)로 파악이 된다.

20)

(원)남회랑의 건 축계획은 일정한 주칸 크기를 정해서 길게 병렬시키 고, 결합부는 구조적인 면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해 결한 것이다.(<그림 5> 참조)

또한 황룡사 (원)남회랑의 중문에서 6번째 주칸은 정방형 평면을 만들어 남쪽으로 약간 돌출시켰다. 이 러한 결합방식은 직교하는 두 회랑의 결합부를 처리하 는 기법으로 생각되는데, 불국사의 경우 동·서회랑이 남회랑과 결합되는 부분에서 한칸 더 돌출시켜 양 경 루(현재의 범영루와 좌경루) 3칸 건물로 계획한 사례 가 있음을 참고할 수 있다. 돈황 막고굴의 성당 148번 굴 남벽 벽화 등 당대 사원도에서도 이 부분에 각루를 세우거나 출입구로 사용하였던 사례가 있었다. 각루는 문루나 주요 건물과 서로 호응하며 사원의 입면을 풍 부하게 하고 공간을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 다.

21)

사천왕사 동회랑의 경우에 남단부의 남쪽에 남 아있는 적심이 있는데, 직교하는 두 회랑이 결합하면 서 동회랑을 한 칸 더 남쪽으로 돌출시킨 구조로 추정 해볼 수 있다.

그림 4. 황룡사 (원)남회랑 주칸계획 기존안 모식도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 앞의 보고서, 2018, 28쪽 그림2-3 편집)

그림 5. 황룡사 (원)동남회랑 주칸계획 분석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 앞의 보고서, 2018, 28쪽 그림2-4 편집) 위의 사례를 보면 황룡사 (원)남회랑의 돌출부는 정 면에서 교각을 세우거나 상부에 각루를 건축했을 가능 성이 있으며 출입시설로 사용할 수도 있다. 황룡사 창 건가람은 신라 불교사원 중에서 이러한 기법이 가장 먼저 시도된 예라고 볼 수 있다.

20)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 앞의 책, 2018, 27~28쪽

21) 「佛國寺古今創記」;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수리보고서』, 2017, 13쪽; 蕭黙, 『敦煌建築硏究』, 文物出 版社, 1989, 88쪽;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 앞의 책, 2018, 65쪽 재 인용

4-3. 사천왕사 회랑

사천왕사의 각 회랑은 기능적으로 평면이 조절되어 있다. 초석은 대부분 결실되었지만 적심석의 잔존상태 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발굴조사보고서(2013)의 각 회랑 단위 주칸 크기는 익랑이 2.6×2.6m, 동·서회랑 이 2.6m×3m, 남회랑이 2.6×3m이다.

22)

모든 회랑의 도리칸 길이는 2.6m로 동일하며 사역 내에서 회랑의 입면이 균일해진다. 동·서회랑과 남회 랑은 보칸 크기가 3m로 같고 동·서회랑의 남단은 남 회랑과 3×3m로 정방형 평면을 만들어 결합된다. 캐드 상에서 발굴도를 도상실측하면 익랑은 2.6~2.8m, 동·

서회랑은 도리칸 크기가 2.5~2.7m이다. 중건 금당의 영조척 295㎜를 적용하면 회랑은 9척을 기준으로 계획 되었고 동·서회랑과 남회랑의 보칸에서는 10척으로 계 획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동·서회랑은 익랑을 기준으로 남쪽 18칸, 북쪽 14칸 이며 남회랑은 동서 11칸, 익랑은 동서 9칸이다. 익랑 이 연결되는 위치의 회랑에는 모두 외곽으로 출입문을 두고 있었다. 익랑은 금당의 동서측면의 계단에 연결 되도록 위치하고 있는데 금당과 익랑의 기단고 차이가 크다. 중국과 발해 고대건축에서 보여지는 익랑 바닥 의 경사로와 경사지붕은 사용되지 않았다.

익랑의 규모는 사역의 내폭, 즉 내부공간의 규모에 따라 조절되는데, 감은사지 7칸, 고선사지 4칸, 불국사 3칸 등이다. 이 중 사천왕사 익랑이 가장 길다.

그림 6. 사천왕사 회랑 주칸계획 분석 4-4. 감은사 서회랑

22)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사천왕사Ⅱ 회랑내곽 발굴조사보고

서』, 2013, 143·155·158쪽 보고서의 남회랑 실측치는 도리칸과 보칸

크기가 뒤바뀐 오기(誤記)이므로 이를 정정하여 검토하였다.

(7)

발굴조사보고서(1997)에는 모든 회랑의 주칸 크기가 2.

9~3.0m라고 기술하고 있다. 금당지 평면에서 검출한 영 조척을 대입하면 회랑은 모두 10척으로 계획된 것이다.

23)

그런데 도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서회랑 북단에서 1~7번째 주칸의 크기는 보칸이 3.2m(11척)로 더 넓게 조정되어 있다. 적심의 중복으로 보아 보칸 규모가 변 경된 것을 알 수 있다. 또 북단에서 9번째 주칸은 익 랑과 결합되므로 서회랑이 이 위치(북에서 8번째 칸) 에서 남과 북으로 분리된 구조였을 수 있다. 또한 서 회랑 북단에서 12·13번째 도리칸의 크기는 2.9m가 아 니라 2.2m와 3.3m이다.(<그림 7>) 그리고 서회랑과 익랑의 결합부는 주칸 크기가 같으나 초석의 고막이석 조출방향을 보면 지붕만 연결시키는 구조였던 것 같 다. 이 위치에서 서회랑 외곽으로 출입문을 두었다.

그림 7 . 감은사 서회랑 주칸계획 분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앞의 보고서, 1997, 도면 14. 편집)

초석아래 굴립주공 서회랑 초석 분할된 초석

그림 8. 감은사지 서회랑 초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앞의 보고서, 1997, 도면 14. 편집) 한편 감은사 서회랑지 서측 주열선에서 굴립주 용례 가 3개소 발견되었다. 2개소는 초석이 분할되어 있어 기둥을 꽂은 후 초석을 설치하는 것이고 1개소는 원형 초석 하부에서 주공을 발견한 사례이다. 세 굴립주는 5~6칸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북단에서 5번째, 11번째, 16번째 위치이다.

이들 초석의 레벨은 도상실측을 했을 때 북단 첫 번 째 초석을 기준으로 15㎝, 40㎝, 90㎝만큼 점차 낮아지

23) 보고서(1997)에서는 감은사의 영조척을 당척(298㎜)보다는 고구 려척(350㎜기준)으로 환산하는 것이 더 유력하다고 파악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강당은 도리칸 12척, 회랑은 8척으로도 볼 수 있다.

고 있었다. 발굴조사보고서(1997)에서도 서회랑 북단에 서 남단까지 초석 상면레벨이 1m정도 차이가 난다고 기술하였다.

24)

회랑이 남쪽으로 점차 낮아지면서 가중되는 하중에 대한 부담을 일정간격으로 설치한 굴립주에 담당시킴 으로써 안정성을 꾀하려고 한 것 같다. 그렇다면 서회 랑이 층단형의 구조를 사용하지 않았고 남쪽을 기준으 로 볼 때 등랑(登廊)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굴립주 사용 이 이러한 구법에 대한 고대인들의 대응기법이었을지 도 모른다.

25)

4-5. 고선사 탑원 회랑

고선사는 탑이 없는 중심사역과 탑만 있는 탑원이 동서방향으로 병렬하고 있는 사원이다. 금당원이 먼저 건축되고 탑원이 나중에 건축되면서 회랑 벽을 공유하 게 되어 그 경계부에 복랑이 생겼다.

26)

고선사는 금당 원의 강당 등 북편이 불확실하고 금당을 포함한 동편 유적이 모두 유실된 상태이므로 여기에서는 탑원 위주 로 검토하였다.

탑원의 사방은 단랑으로 구성되며 서남측에 비각이 나중에 포함되어 있고 회랑이 후세에 개조된 점도 있 었다. 발굴도면을 살펴보면 탑원의 북회랑과 금당원 서회랑의 주열선이 일치되도록 계획되어 있으나, 탑원 동회랑의 보칸은 2.1m로 좁아져 북단은 북회랑 주열선 과 어긋나 있고, 남단은 남회랑에서 좁아진 주칸을 맞 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탑원 동회랑이 금당원 서회 랑에 덧붙여진 것은 탑원 북회랑보다 나중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되며 남회랑과 결합되는 부위는 주칸을 맞 추어 조정하였다.

발굴조사보고서(1977)에 의하면 금당원의 회랑은 도 리칸 2.9m, 보칸 3.05m로 계획되고 익랑은 이보다 약 간 축소되어 보칸 2.64m이다. 탑원의 남회랑은 도리칸 3.17m이며 보칸은 금당원과 같이 3.05m이다. 금당원은 금당과 종축선이 일치하는 위치에 중문이 남회랑과 연 결되어 있으나 탑원의 출입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24)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감은사 발굴조사보고서』, 1997, 117쪽 25) 고대 건물지에서 발견되는 굴립주는 지하건물(벽주식·수혈식)이 지상화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신라 불교사원 유적에서 굴립주 건물 이 발견된 적이 없었다. 감은사지는 전반적으로 지상건물로 구성되 어 있고 굴립주 혼용방식은 서회랑에서만 확인된다. 경사대지에 회 랑을 건축할 때의 고대 건축기술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26) 원래 복랑이 계획된 것은 아니다. 금당원과 탑원의 각 배수로

유구, 탑원의 동회랑 규모 등으로 미루어 조성시기는 선후가 분명하

다. 김영옥, 앞의 글, 2012, 18~21쪽, 26쪽; 현승욱, 앞의 글, 2015,

80쪽

(8)

금당원의 익랑이 서회랑과 만나는 부분에서 탑원방 향으로 출구가 설치되었을 수 있다.

27)

그런데 발굴도 면을 캐드화하여 실측하여 보면 금당원의 익랑은 서회 랑과 결합되지 않고 분리된 구조로 보인다. 탑원의 북 회랑과 서회랑은 주칸 크기가 3.05m내외이며 서회랑의 중앙부에는 적심 간격이 크게 벌어져 4~4.9m로 실측 되는 부분도 있어서 회랑에 포함된 출입시설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보다 더 정교한 자료를 확보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림 9. 고선사지 탑원 회랑 주칸계획 검토

5. 맺음말

이상으로 6~8세기 신라 불교사원 중 황룡사지 창건 가람, 감은사지, 사천왕사지, 고선사지 등의 회랑 건축 계획에 관해 검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회랑은 가람배치에서 도식적인 형태를 완성시키고 건물간 산술적 배치관계에 따라 계획되었다. 중심사역 은 장(丈)단위의 배수관계와 대칭구도에서 주요 건물 의 위치가 결정되며, 회랑은 공간의 분할과 한정, 연결 과 분리 등 공간의 성격을 조절하도록 설계되었다.

황룡사 창건가람의 (원)회랑은 내부 공간을 병렬적 으로 삼분할하고 감은사·사천왕사의 회랑은 가람을 남 북으로 양분시키며 내부공간에 위치한 건축의 성격과 기능에 따라 공간크기가 조절되어 이를 회랑으로 한정 하게 된다.

27) 문화재관리국 경주사적관리사무소, 앞의 책, 1977, 78~80쪽

회랑의 주칸 크기는 가람의 영조척을 검출하여 대입 시켜 보면 주로 10척 내외로 계획되었고 0.5~2척 범 위에서 변화가 있다. 익랑은 다른 회랑보다 규모가 가 장 작은 편이다.

회랑간의 결합부는 정방형 평면을 만들며 때로 칸수 를 더해 돌출시키기도 하고 출입구나 시각적 포인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법은 황룡사 창건가람의 남회랑 에서 가장 먼저 시도되었다. 또한 복랑은 고선사지가 신라 최초의 사례이며 인접한 두 별원의 조성시기에서 생긴 격차로 비롯된 것으로 회랑을 공유할 수밖에 없 는 경계부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

감은사 서회랑과 같이 경사진 지형의 등랑 계획에서 일정간격의 굴립주 혼용은 신라건축에 대한 새로운 관 점으로 여겨지며 추후 신라건축의 굴립주 용례로 검토 할 필요가 있다.

회랑은 중심사역 내 주요건물보다 초석과 주좌의 크 기가 가장 작고, 주경과 주고도 상대적으로 작아져서 건축적 위계가 가장 낮았던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회랑은 출입구를 포함하고 기능에 따라 주칸 크기가 균등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회랑의 중건과 변화는 가 람 전체의 동향과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유적 조사 시 보다 상세한 조사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1. 문화재관리국 경주사적관리사무소, 『고선사지 발굴조 사보고서』, 1977

2.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황룡사 유적발굴조사보 고서Ⅰ』, 1984

3.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감은사 발굴조사보고서』, 1997

4. 박언곤·이은정, 「한국고대가람의 회랑에 관한 연구」, 환경개발연구, 제6집, 2001

5.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 『감은사지 종합정비 기본계 획』, 2007

6.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사천왕사Ⅱ 회랑내곽 발굴조 사보고서』, 2013

7. 국립문화재연구소·경주시, 『황룡사 회랑 및 외곽문 영 역 복원심화연구 1차』(황룡사연구총서, 17), 2018 8. 김숙경·이은비, 「유구검토를 통한 신라 불교사원 회랑

건축계획에 관한 기초연구」, 한국건축역사학회 춘계학 술발표대회 논문집, 2019, 17~18쪽

접수(2019. 7. 8) 수정(1차:2019. 9. 16) 게재확정(201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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