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인문학칼럼] 죽림칠현, 세상을 등진 진정한 자유인들인가?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1

Share "[인문학칼럼] 죽림칠현, 세상을 등진 진정한 자유인들인가?"

Copied!
4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KIC News, Volume 22, No. 4, 2019

35

죽림칠현, 세상을 등진 진정한 자유인들인가?

이 상 은 교수 (상지대학교)

죽림칠현(竹林七賢)이란 ‘대나무 숲의 일곱 현인’이란 뜻으로, 오늘날 중국 허난 성(河南省)의 황하 북쪽 지 역 즉, 하내(河內) 지방의 대나무 숲에 모여 지내던 완적(阮籍, 210〜263), 혜강(嵇康, 223〜262), 산도(山濤, 205〜283), 향수(向秀, 227?〜272), 유령(劉伶, 221?〜300), 완함(阮咸, ?〜?), 왕융(王戎, 234〜305) 등을 가리킨다.

하필이면 대나무 숲에 모였을까? 대나무는 매란국죽(梅蘭菊竹)으로 대표되는 사군자(四君子) 중의 하나로 때 묻지 않은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대나무를 군자에 비유하는 덕목은 이 밖에도 여러 가 지가 더 있다. 강한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고고한 자태는 물론 뿌리가 굳고 줄기가 곧은 것은 군자의 절개로 비유되며, 속이 텅 비어 겸손하고 욕심 없는 군자의 마음을 닮았다고 보았다.

세상을 등지고 조용히 자유롭게 지내기에는 대나무 숲이 더없이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세상은 이들을 ‘명사 (名士)’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가 오늘날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나 ‘이름난 선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 라 죽림칠현 같은 특수한 인물들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들이 나눈 이야기 청담(淸談) 즉, ‘맑은 이야기’라고 하였는데, 이는 세속의 명예나 이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청담의 주제를 철학사에서는 현 학(玄學) 즉, ‘그윽하고 깊이 있는 학문’이라고 서술한다. 당시 현학의 대상은 《노자(老子)》, 《장자(莊子)》, 《주 역(周易)》이었으며, 이를 삼현(三玄)이라고 불렀다.

전통적으로는 죽림칠현을 명예니 이해관계니 하는 세상일을 떠나 대나무 숲에 은둔하여 좋은 벗들과 어울려 청담이나 나누며 지내던 자유인들이었다고 보고 그들의 삶을 존경하고 따르고자 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근대에 와서 이들에 대한 평가는 다른 면을 지적하기도 한다. 현대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루쉰(魯迅, 1881〜

1936)은 죽림칠현의 도피적 처세술이나 기괴한 행동이 정치적 압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표시한 것으로 보았 다. 중국 공산당 정권하에서도 유교의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은둔자적인 태도는 높이 평가되었다. 최 근의 상하이 대학의 자오지엔민(趙劍敏, 1955〜) 교수는 《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이란 저서에서 죽림칠현들 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죽림칠현을 탈속한 사람들로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속된 부분이 많았으며, 각기 서로 다른 속 물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이 남긴 가장 귀중한 유산은 스스로 속됨을 멸시하고, 속됨을 깨뜨리고, 속됨을 넘어서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다. 정말 슬픈 것은 속됨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실패하자 낙망해 길을 헤맸지만 올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태도로 속됨과 다시 어울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죽림칠현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일단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삶과 정신을 일별해보기로 한

http://www.ksiec45or.kr KIC News, Volume 22, No. 4, 2019

인문학칼럼

(2)

http://www.ksiec.or.kr

36

공업화학 전망, 제22권 제4호, 2019

다. 어떠한 부류의 사상가들이 출현하는 데는 시대적 배경과 필연적인 연관이 있다. 먼저 한대에서 위진남북조 시대로 넘어가는 때가 극도로 혼란한 시기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 BC. 247?〜BC. 195)이 세운 한(漢)나라는 기원전 202년부터 기원후 220년까 지 422년간 지속하였지만 그 안에 파란이 많았다. 기원후 8년에는 왕망(王莽, BC. 45〜AD. 23)이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신(新)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기원후 25년에 한 왕실의 후예였던 청년 유수(劉秀)가 신을 무너뜨리 고 다시 한나라를 세워 황제가 되었다. 이 사람이 바로 광무제(光武帝, BC. 6〜AD. 57)이며, 왕망에게 나라를 빼앗기기 전을 전한(前漢)이라 하고, 신나라를 멸망시키고 한나라를 다시 세운 것을 후한(後漢)이라고 한다.

후한 말에는 농민반란으로 혼란한 시기가 계속되다가 장각(張角)이 만든 종교집단인 태평도에서 일으킨 ‘황 건의 난’이 한나라가 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 황건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떠오른 인물이 조조(曹操)와 유비(劉備)였으며, 그들은 혼란에 빠진 한나라 대신 위(魏)나라와 촉(蜀)나라를 세우게 된다. 강동 의 손권(孫權)이 세운 오(吳)나라와 함께 《삼국지》의 배경이 된 삼국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세 나라는 약 40여 년간 서로 견제하며 지내다가 위가 촉을 무너뜨리면서 균형이 깨진다. 그러나 위나라는 265년에 신하였던 사마씨(司馬氏) 집안에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晉)나라이다. 280년에 진나 라가 오나라를 무너뜨리며 통일을 이루었다. 하지만 진나라도 316년에 황제가 북방 이민족의 포로가 되면서 끝이 났고, 황실의 다른 친족이 남경으로 내려가 다시 진나라를 세웠다. 북쪽에 있던 진은 서진(西晉)이라 하 고 남쪽에 새로 세운 진나라는 동진(東晉)이라고 부른다.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가 위나라를 세운 220년부터 서진이 망할 때까지의 약 100년간을 위진 시기라고 한 다. 그 후로 남조의 동진이 망하고 송 - 제 - 양 - 진의 네 나라가 뒤를 이었으며 589년 수나라가 통일할 때까 지 혼란이 계속되었다. 북조도 북방의 다섯 이민족의 쟁투가 계속되며 16 나라를 세웠다가 망하는 이른바 ‘5호 16국 시대’가 있었다. 이처럼 북쪽의 이민족 왕조와 남쪽의 한족 왕조가 서로 대립하던 270여 년 동안을 남북 조 시기라고 부른다. 흔히 위진 시기와 남북조 시기를 합쳐서 위진남북조 시기라고 하는데, 약 370년이며 대 단한 혼란의 시기였다.

죽림칠현이 출현한 것은 바로 위진 시기였다. 이 시기는 한나라와 유교로 상징되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면 서 그 밑에 눌려있던 인간의 개성과 자유가 표출되는 시기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당시의 사상적 흐름은 철저 한 예의 도덕을 강조하는 유교의 구속을 벗어나 노장사상의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따르려고 하였다.

먼저 죽림칠현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완적과 혜강을 살펴보자. 이들이 활동한 시기는 대략 위나 라가 신하였던 사마씨 집안에 정권을 넘겨준 뒤였다. 이들은 사마씨 집단이 유가의 명교를 명분으로 내세워 정 권을 빼앗으려는데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완적은 본디 귀족 가문의 유력자였으며 여러 사람으로부터 관직을 권유받았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 는 유가의 대의명분과 예법을 천시했고 노자와 장자를 좋아했다. 특히 장자를 좋아해서 〈달장론(達莊論)〉을 쓰 기도 했다. 그는 위나라의 정치싸움을 보면서 거기에 끼어들기보다는 술이나 마시고 음악을 즐기는 것을 일상 으로 삼았다. 당시 실권자인 사마소(司馬昭)가 자기 아들(후에 황제가 됨)을 완적의 딸과 혼인시키려 하자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신 일도 있다고 한다. 결국 혼인은 성사되지 않아 화를 피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일화가 많지만 그 핵심은 형식과 예법을 완전히 거부했다는 것이다.

혜강은 죽림칠현 중에서 참으로 매력적인 인물이다. 용모가 빼어나고 재주가 뛰어나 글을 잘 지었으며, 음악 에도 정통하였다. 장자의 기일원론을 바탕으로 한 〈양생론(養生論)〉이 유명하며, 유가의 음악사상을 집대성한

《악기(樂記)》의 음악론을 비판하여 소리 자체에는 애락의 감정이 없다는 〈성무애락론(聲無哀樂論)〉을 썼다. 혜 강도 완적과 마찬가지로 형식주의적인 예의 도덕을 반대하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하였다. 그가 말한 “명교를 넘 어서 자연에 맡긴다(越名敎而任自然).”는 말은 후에 도가(道家)의 예술철학 내지는 미학사상의 핵심 명제가 되

(3)

KIC News, Volume 22, No. 4, 2019

KIC News, Volume 22, No. 4, 2019

37

었다.

혜강의 성격은 매우 강직하여 악을 미워하고 직언을 가리지 않았다. 사마씨 정권에 협조하라는 요구를 끝까 지 거부하였다. 결국 그는 모함으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당시 태학생 3,000명이 그의 사면을 원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혜강은 태연자약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금(琴)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 유명한 광릉산(廣陵 散)이라는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사기》에 의하자면 혜강이 죽었을 때 울지 않은 선비가 없었다고 한다.

산도는 죽림칠현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사마씨 정권에서 가장 먼저 본격적으로 벼슬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높은 관직을 맡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청렴하고 강직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한다. 혜 강을 사마씨에게 추천했다가 혜강으로부터 절교 편지를 받은 것은 유명한 얘기지만, 혜강이 죽음에 이르러 산 도에 자신 아들을 부탁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렇게 강직한 사람도 자식 앞에서는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향수(向秀)는 상수라고도 읽는다. 향수는 완적, 혜강과 매우 가까웠으며, 처음으로 《장자》의 주석서를 낼 정 도로 노장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장자》에 대한 주석으로는 바로 곽상(郭象)과 더불어 향수가 대표적이다. 혜 강의 생시에는 죽림에서 함께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지만, 혜강이 죽은 후로 사마씨 정권에서 높은 벼슬을 하며 세속적인 삶을 살았다. 이런 두 가지 삶을 놓고 스스로 내적 갈등이 적지 않았을 테지만 혜강의 죽음은 그만큼 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이 틀림없다.

유령은 위나라 말에 건위장군을 지냈던 사람인데, 진나라 초기에 파면되었다. 그는 늘 술에 취해 살았으며, 우주를 좁다고 여기며 마음먹은 대로 거침없이 산 사람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술을 찬미하는 〈주덕송(酒德頌)〉

이 유명하다. 그는 술을 마실 때 늘 괭이를 멘 하인이 따라오게 했다. 술을 마시다가 죽으면 바로 땅에 묻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나? 또한, 그는 술만 먹으면 옷을 벗는 버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런 추태를 나무 라면 그는 “하늘과 땅이 내 집이요, 방은 나의 옷인데 당신은 어째서 남의 옷 속에 들어와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가?”라며 반박했다고 한다. 한 번은 제발 술을 좀 끊으라고 애원하는 부인의 하소연에 혼자서는 술을 끊을 수 없으니 하늘에 기도하고 맹세할 수 있도록 술과 안주를 준비해 달라고 한 뒤 그 술을 먹고 대취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어쩌면 세상을 잊고 세속을 벗어나고자 하는 절규이었는지도 모르나 진정한 자유 인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완함은 완적의 조카로 음악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던 인물이었던 같다. 그가 산시상시(散騎常侍)의 벼슬을 할 때, 순욱이 새로 편종의 음률을 정했는데, 모두가 훌륭하다고 하였지만 완함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로 인해 좌천되었다가 나중에 그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어 다시 복직되었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하다. 지금도 그 의 이름을 딴 비파(琵琶)와 비슷한 완함(阮咸)이라는 악기가 전해오고 있다.

완함은 숙부인 완적 및 친척들과 큰 동이에 술을 담아놓고 둘러앉아 큰 잔으로 퍼마셨는데, 때로는 돼지 떼 가 마시러 오면 돼지들과 함께 어울려 마셨다고도 한다. 이런 기행은 사물과 하나가 되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준 일화라고 생각된다. 참고로 이 당시의 술은 지금의 중국 바이주(白酒)와 같은 높은 도수의 술이 아니라 막걸리 와 같은 빚은 술 종류이다. 고량주와 같은 높은 도수의 술은 송대(宋代) 이후 서역에서 증류식 주조법이 들어 온 후에 중국에 유행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왕융을 살펴보자. 왕융은 죽림칠현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 이 났던 인물이지만, 재주와는 달리 덕은 매우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는 일찍이 사마씨 정권에 아부하여 높은 벼슬을 두루 거쳤다. 성품이 매우 탐욕스럽고 인색하여 재물을 모으는 데만 열중하였다. 직접 셈판을 들고 계 산하면서 늘 재물이 부족한 듯이 행동했다고 한다. 집안에 멋진 자두나무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씨를 심 어 가꿀까 봐 늘 자두 열매의 씨에 구멍을 내 팔았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의 비난은 물론 완적도 그를 속물이 라고 비판했는데, 어떻게 죽림칠현의 한 명으로 거론되었는지 의문이다.

이상으로 죽림칠현의 삶을 특징적인 것만으로 살펴보았다. 완적과 혜강 그리고 유령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4)

http://www.ksiec.or.kr

38

공업화학 전망, 제22권 제4호, 2019

모두 세속과 타협하여 살았다. 전통적으로 죽림칠현에 대한 평가가 고고하고 자유분방한 은자의 경지로만 본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시대의 변화나 사상적 변화에 대응하는 또는 적응하는 삶의 모습들은 예나 지금 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죽림칠현은 처음에는 모두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행하며 살기를 원하여 함께 모였을 것이 다. 모두 노장사상이나 현학을 좋아했지만, 수준이 같은 것도 아니었고, 자유롭게 살기는 했어도 삶의 방식도 또한 같지 않았다. 결국 가치의 기준이나 판단은 사회 현실이나 개인의 성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는 점은 명확하다.

참조

관련 문서

이에 본 연구는 병원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직종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간호직종과 고객과의 대면접점 상황에서 직무를 감당하고 있는 진료행정직종, 두

이에 본 논문에서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에스컬레이 터의 안전사고의 특징과 유형에 대해 한국승강기안전 관리원(이하 ‘승안원’)과 행정안전부

가장 많은 손상 중의 하나인 회전근 개 질환은 비교적 나이가 든 선수에 호발하며, 회전근 개의 직접적인 손상으로 인하여 기능적인 저하를 관찰 할 수 있다. 치료는

5.1 유형별 연어 지도 방안 먼저 학습자들은 형용사+명사 어휘적 연결에 따른 연어의 경우 가장 높은 오답률을 나타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3개체의 순으로 많은 생물량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이를 전술한 바의 조사지역별 출현종수와 비 교하였을 때( Tabl e3) ,4개 조사지역 가운데 뱀사골에서

일반소비자 집단에서 안경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상담결과에 대해서도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는 이러한 결과는, 사이버콘드리아에 대한 여러 대 책 가운데

반적으로 높은 가운데 생산자서비스와 사회서비스 의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제조업의 비율은 서울이 부 산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과 부산의 생산

먼저 상황버섯(Phellinus linteus) 자실체 추출물에 대한 용매 계통분획을 실시하여 저해 활성이 가장 높은 에틸아세테이트 추출물을 얻었고 이를 3차 례의 sillic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