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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 News, Volume 25, No. 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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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南面)을 이해하다

전 성 운 교수 (순천향대학교)

뜬금없지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천진한 아이의 질문이 그렇고, 근본을 파고드는 학생들의 질문이 그렇다. 필자 역시 업(業)이 가르치는 일이라, 가끔 엉뚱해 보이지만 근본과 관련된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런 질문의 하나가 ‘남면(南面)하다’란 한자어와 관련된 것이다. 사실 남면하다의 지시적 의미는 금방 알 수 있다. ‘남녘 남(南)’자에 ‘얼굴 면(面)’으로 된 한자어니, ‘(사람이나 사물이) 남쪽으로 향하다’라는 뜻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질문 내용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질문은 ‘남면하다’라는 한자어의 다른 의미, ‘(사람이) 임금의 자 리에 오르거나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다’라는 뜻에 대한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남면하다’의 의미 규정 이나 용례가 있다. 예컨대, “철종은 강화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세도 정치의 희생양으로 남면하게 되었 다.”와 같다. 강화도에서 나무꾼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강화도령이라 불렸던 철종, 그가 당시의 정치 세력 에 떠밀려 왕위에 올랐음을 이르는 문장이다.

여기서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증손자, 정조(正祖)를 큰할아버지로 두었던 철종이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기 까지의 전후 내막을 다 풀어내기란 너무 벅차다. 그저 학생이 질문한, ‘남면’이란 말에 ‘임금의 자리에 오르거 나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림을 이르는 말’이 더해진 까닭만 알아보자. 학생도 그 점이 알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남면이 임금의 자리를 뜻하게 된 까닭은 일견 자명(自明)하다. 임금이 남쪽을 향하여 신하와 마주앉은 데 서 유래한 말일 뿐이다. 그렇다면 임금은 왜 남쪽을 향하여 앉는 것일까? 임금이 남쪽을 향해 앉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우주의 중심을 어떻게 이해했는가와 관련된다. 자연 세계에 대한 인식이 임금의 자리를 정하는 인문적 문화 행위로 표상된 것이다.

과거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하나의 완전한 질서의 틀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 세계 질서의 틀을 파악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것을 알아야만, 그 속에서의 삶이 편안할 수 있었기 때문 이다. 세계가 불규칙이고 비정합하게 운행될 경우, 사람들의 운명은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 내던 져지게 된다. 이 경우 자신의 내일, 모레 혹은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태양이 떠올라,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날이 계속될 것이라 생각할 때, 삶은 비로소 안정감을 갖게 된 다.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 즉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서 불안해하며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된다. 요컨대 사 람들은 세계가 일정한 질서의 틀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범주 내에서 운행된다고 믿고 살아갔다.

그렇지 않으면 괴변(怪變)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과거 사람들은 정합한 논리 체계로 세계 질서의 틀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 결과 어떤 경우에도 변 치 않는 절대적 기준이 필요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혹은 어떤 특정한 조건에 따라 변하는 것들은 기준이 될 수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시간의 변화에도 그리고 한양, 시골, 타국에서도 그 위치나 모습이 바뀌 지 않아야 했다. 변하지 않아야 모든 질서의 근간이 될 수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찾아낸 것이 하늘과 땅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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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화학 전망, 제25권 제1호, 2022

심축인 북극성이었다.

북극성은 북반구 하늘의 중심이다. 모든 별들은 시간의 변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북극성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원을 형성하며 돈다. 오직 북극성만 그 모습 그대로 제 자 리를 지킨다. 북반구의 존재를 알지 못 했던 시기, 북반구 사람들이 보기에 북극성은 변하지 않는 우주의 중심 그 자체였다. 북극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방위의 길잡이였으 며 시간을 분할하여 헤아리는 기준이었다. 그렇기에 북극 성이 사계(四季)를 바로잡고 기후 변화를 주관하며 뭇 생 명의 생장소멸(生長消滅)에 관여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은 북극성이 모든 존재의 기준이자 중심이 되는 신(神)이라고 여겼다.

북극성의 주변에는 하늘의 궁전이 있다고 믿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사람들은 하늘을 주재하는 신이 그 가속 (家屬)과 함께 거주하는 공간이 북극성 주변의 별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극성 주변에는 자미원(紫微垣), 태 미원(太微垣), 천시원(天市垣)이라는 세 개의 담장으로 이루어진 공간과 건물이 있고, 하늘의 궁전은 좌자미원(左 紫微垣)과 우자미원(右紫微垣)이란 두 개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안에 태자(太 子), 제성(帝星), 서자(庶子), 후궁(後宮), 천추(天樞) 등이 거주하는 건물들이 있다고 믿었다. 사족(蛇足)이지만, 중국 북경에 명(明)과 청(淸)의 황제가 거주했던 궁궐의 이름이 자금성(紫禁城)인 것도 자미원(紫微垣)에서 따온 말이다. 하늘의 궁전을 감싸는 담장처럼, 지상 세계의 궁궐을 가리키는 건물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천제로서의 북극성과 하늘 궁전 그리고 그 신하들의 형상은 오래된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다음의 그림은 중국 한(漢) 나라 때의 화상석(畫像石) 탁본이다. 천제(天帝)를 수레에 태워 모시고 가는 북두칠성(北斗 七星)을 형상한 것이다. 사람들은 북극성 주변을 돌고 있는 북두칠성이, 천제를 모시고 하늘을 순회하는 신하 들이라고 생각했다.

<천제를 수레에 모시고 순시하는 북두칠성의 형상>

북극성이 온 우주, 하늘의 중심이며 주재자라면, 황제(皇帝)나 왕(王)은 땅의 중심이며 주재자라 할 수 있다.

황제와 왕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중심이자 다스림의 근본이다. 그러니 당연히 하늘의 주재자처럼 북 쪽 하늘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야 앉아야 한다. 북쪽 하늘에서 남쪽을 향한 채 땅을 내려다보는 북극성처럼 말 이다. 이것이 황제나 왕의 남면(南面), 즉 북극성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앉는 까닭이다.

이렇게 임금이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앉게 되자, 이와 관련하여 여러 단어가 생겨났다. ‘남면출치(南面 出治)’나 ‘지남(指南)’과 같은 단어가 그것이다. 남면출치는 “임금의 자리에 오르거나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스

<북극성 중심의 별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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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을 이르는 말”로 줄여 남면이라고 한다. 또 지남은 “남쪽을 가리킴”이란 뜻과 함께 “가리켜 지시함 또는 이 끌어 가르침”이란 의미도 있다. 임금이 뭇 신하와 백성을 올바르게 이끌어 가르친다는 것에서 왔다. 그리고 좌 동우서(左東右西)란 말도 여기서 생겼다. 좌동우서는 왼쪽이 동쪽이고 오른쪽이 서쪽이란 뜻이다. 북쪽을 등지 고 남쪽을 바라보는 북극성, 왕의 자리를 기준으로 왼쪽이 동쪽이 되고 오른쪽이 서쪽이 된다.

이것은 실제로 왕을 기준으로 한 신하들의 배열에서도 나타난다. 즉 왕을 향해 신하들이 자리할 때는 남면 한 임금의 왼쪽인 동쪽에 문신(文臣)이 자리하고, 오른쪽인 서쪽에 무신(武臣)이 자리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 는 양반이란 말도 동쪽의 문신반(文臣班)과 서쪽의 무신반(武臣班) 두 반(班)을 가리키는 것에서 왔으며, 궁궐 앞부분의 동쪽에 있는 문을 숭문문(崇文門), 서쪽 문을 숭무문(崇武門)이라 이름 붙인 것도 이와 연관된다. 제 사(祭祀)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다. 신위(神位)를 기준으로 왼쪽을 동쪽, 오른쪽을 서쪽이라 칭한다. 모두가 북 극성이 기준이 되며, 자연 질서에 대한 정합한 인식이 인문 질서의 수립에 적용되며 나타난 현상들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의 틀은 방향의 존비(尊卑)라는 문화 현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즉 해가 동쪽에서 솟아오 르는 것처럼, 동쪽인 왼쪽이 오른쪽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예컨대 고대 중국에서 오른쪽보다 왼쪽 을 더 높이 쳐서, 󰡔노자(老子)󰡕의 “좋은 일에는 왼쪽을 숭상하고 나쁜 일에는 오른쪽을 숭상한다”고 했고, 왼쪽 은 양(陽)이고 오른쪽은 음(陰)이라고 했으며, 남자는 왼쪽으로 가고 여자는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또한 수레를 탈 때 왼쪽이 높은 자리라고 여겼으며, 제사에서 왼쪽에 남자의 신위(神位)를 오른쪽에 여자의 신 위를 배치하는 것 등도 그러하다.

인문적 인식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지역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기도 한다. 역사적 경험이 반영된 까닭이다.

관중(關中)의 왼쪽 지방을 통치하러 가게 되었다는 말에서 온 좌천(左遷)은, “낮은 관직이나 지위로 떨어지거 나 외직(外職)으로 전근”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사기(史記)󰡕에서는 우승상이 제일 높고 좌승상이 다음이 라고 했다. 또한 우(右)에는 숭상하다, 고귀하다 등의 뜻이 있고, 좌(左)에는 정상이 아닌 나쁜의 뜻이 부가(附 加)되기도 한다. 우(右)는 높음의 상징, 좌(左)는 낮음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좌의정이 우의 정보다 높았으며, 좌는 신(神)을 우는 인(人)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이해하고 있다. 물론 오른쪽의 ‘오른’은 옳 다 혹은 정상적이다란 의미를, 그리고 왼쪽의 ‘왼’은 그르다 혹은 비정상적이다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인문 현상은 모두 자연에서 질서의 근간을 찾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를 정합하게 이해하려는 부단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북극성을 우주의 중심이자 기준, 신적 존재로 이해한 것을 유치한 생각이라고 비 웃지는 말아야 한다. 자연 질서에 대한 정합한 논리 체계로의 인식을 위한 인간의 부단한 노력이라고 여겨야 한다. 20세기 최고의 이론 물리학자였던 스티븐 호킹도 이렇게 적고 있다.

어항 속 금붕어의 시각은 우리의 시각과 다르지만, 금붕어도 둥근 어항 바깥의 물체들의 운동을 지배하는 과학 법칙들을 정식화(定式化)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힘을 받지 않는 물체의 운동을 우리라면 직선운동 으로 관찰하겠지만, 어항 속 금붕어는 곡선운동으로 관찰할 것이다. 그럼에도 금붕어는 자기 나름의 왜곡된 기준 틀(Frame of Reference)을 토대로 삼아 과학 법칙들을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법칙들은 항상 성 립하면서 금붕어로 하여금 어항 바깥의 물체들의 미래 운동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금붕어가 세운 법칙들은 우리의 틀에서 성립하는 법칙들보다 복잡하겠지만, 복잡함이나 단순함은 취향의 문제이다. 만일 금붕어가 그런 복잡한 이론을 구성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타당한 실재상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 스티븐 호킹 외, 󰡔위대한 설계󰡕(까치, 2010)

지금 우리가 보기에 어항 속 금붕어의 굽은 시선으로 정식화한 과학 법칙이라고 해도 그 타당한 실재상을 인정해야 한다. 누가 따지며 우기겠는가.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에 북극성은 우주의 중심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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