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근대 집합주거의 실패요인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auses of Failure of the ‘Failed’ Modern Housing Projects
손세관*
Sohn, Sei-Kwan
Abstract
This research is an effort to clarify the causes associated with the 'failure' of public housing projects built in the 20th century. Two of the most brutal symbol of failure were selected: the Pruitt-Igoe built in St. Louis, U.S.A. and the Bijlmermeer in the south of Amsterdam, Netherlands. Many critics have attributed the problems of the selected housing projects to architectural failure, and proposed a series of new approaches to architectural design. The claim that many housing projects 'failed' because they were based on an agenda for social reform, derived from the ideas of the CIAM, presupposes that architects were in the position of authority over providing housing for the poor. This research tries to overturn the belief of architectural community which has placed the responsibility for the failure of public housing on designers. The sense of isolation and powerlessness felt by the residents, and the social problems attendant on those feelings, may be reinforced by design but is not caused by Modern Architecture. It should be stressed that the political- economic and social context is more significant than the architectural design for the failure of public housing projects such as the Pruitt-Igoe and the Bijlmermeer.
Keywords : Failure, Modern Housing Projects, Causes of Failure, Pruitt-Igoe, Bijlmermeer 주 요 어 : 실패, 근대 집합주거, 실패요인, 프루이트-이고, 베일메르메이르
I. 서 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힘들여 건설했지만 ‘실패했다’고 낙인찍힌 주거단지들을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실패한’ 주거단지들은, 졸 속한 결정으로, 획일적인 계획에 의해서, 대규모로, 그리 고 빠른 속도로 건설된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주 거단지들은 처음부터 성공한 환경이 되기 어려웠다. 건축 이론가 Relph(1976)는 이렇게 만들어진 주거환경은 예술 적 산물이 될 수 없으며 ‘키치(kitsch: 조악한 공산품을 지 칭하는 용어)’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규정했다. 그는 주민 들이 애착을 가지면서 뿌리내리고 살기를 원하는 환경이 아니라면 인간을 위한 환경이 될 수 없고, 결국 ‘실패한’
환경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이차세계대전 이후에 건설되었고, 이 후 ‘실패’로 평가된 주거단지들을 대상으로 그 구체적인 실패의 원인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실패한’ 주거단지들을 대상으로 그 원인을 밝힌 연구는 그동안 별로 없었다. 있 었다 해도 실패의 원인을 주로 ‘계획이 잘못되었기 때문’
이라고 쉽게 규정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1)계획가들의 잘
못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너무 단순 한 판단의 결과다.
이 연구에서는 그 실패의 원인을 구체적이면서 포괄적 으로 분석하려고 했다. 행정가들과 계획가들은 무엇을 간 과했는지, 주민들은 그러한 환경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실 패’라는 판단이 내려진 이후에 행정당국에서는 어떻게 했 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러한 환경이 앞으로 우리가 공공주택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계획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려고 했다.
2. 연구의 방법
이 연구는 ‘사례연구’를 통하며, 관련문헌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분석하는 방법을 취한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시대는 ‘근대’이며 그중에서도 이차세계대전 이후인 1950~1970년대이다. 이 연구에서는 당시에 건설된 주거단 지들 중에서 ‘실패’로 판정된 사례들을 선정하여 그 건설 배경, 계획의 특성, 인구·사회학적 특성, 이후의 대처방 법, 단지에 대한 평가 등에 관한 내용을 추려서 그 내용 을 분석하는 방법을 취한다.
이 연구에서는 ‘실패했다’고 알려진 주거단지 중에서 대
1) 그동안 미국과 유럽에서 발표된 많은 연구와 평론이 그러한 태도 를 견지했는데 예외적인 사례도 일부 발견된다. 다음 연구가 그 예 외적인 사례의 하나다: Bristol, K. (1991). The Pruitt-Igoe Myth.
Journal of Architectural Education, Vol. 44, No. 3, 163-171.
*정회원(주저자, 교신저자),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Ph.D.
Corresponding Author: Sei-Kwan Sohn, College of Architecture, Chung-Ang Univ. 84 Heukseok-Dong Dongjak-Gu, Seoul, Korea.
E-mail: [email protected]
표적인 두 사례를 선정했다. 첫째는, 미국 세인트루이스 (St. Louis)에 건설되었다가 철거로 사라진 프루이트-이고 (Pruitt-Igoe) 단지이며, 둘째는 ‘실패’로 판정된 이후 철거 와 대대적인 개조가 동시에 행해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의 베일메르메이르(Bijlmermeer) 단지가 그것이다<Figure 1, 2>.
이 두 단지를 분석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는, 이 두 단지는 단순히 실패했다기보다 는 이차세계대전 이후에 건설된 단지들 중에서 실패를 대 표하는 단지들이다. 이 두 단지는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면 안된다는 교훈을 전해주는 사례들로서, 역사상 악명을 떨친 주거환경들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이 두 단지들에 대해서는 많은 평가와 논의가 진행되었으므로 관련 문헌자료가 상당히 존재한다. 문헌분석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연구의 성격상 충분한 문헌자료의 존재는 분석 대상 선정의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분석대상으로 선정한 두 단지 중 하나는 철거되어 지 구상에 남아있지 않고, 다른 하나는 대대적인 개조가 진 행되어 많이 변해버린 상태다. 따라서 그것을 대상으로 직접 관찰이나 설문조사 등을 행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연구자는 원래 모습의 일부가 아직 남아서 건설 당시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암스테르담 의 베일메르메이르 단지를 대상으로는 현지를 수차례 방 문하여 현황을 조사하고 현재 거주자들과 ‘인터뷰’를 행 하는 등 현지조사를 진행하였다.
II. 이론적 배경
1. ‘실패한’ 주거단지에 대한 규정
이 연구는 ‘실패한’ 주거단지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그 렇다면 어떤 주거환경을 ‘실패’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지 규정할 필요가 있다.
‘실패한’ 주거환경은 사업을 추진한 기획자와 계획가들 이 설정한 환경의 성격과 질, 그리고 건축·도시적 이념 이 거주자들의 실제적 요구나 기대와 서로 맞지 않은 결 과물이다. 건축이론가 Lang(1980)은 그것을 ‘건축결정론 (architectural determinism)’ 또는 ‘환경결정론(environmental determinism)’ 즉 ‘계획이 인간의 행위를 결정한다’는 계 획가들의 잘못된 믿음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이렇게 사용 자와 환경이 서로 맞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한’ 환경이라 고 할 수는 없으며, 결국 일련의 ‘조정’이 필요하게 된다.
Lang(1980)에 의하면 서로 맞지 않는 환경이 적절한 조 정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사용자는 스트레스에 시달리 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훼손, 파괴 등의 행위로 표출된다 고 규정했다.2)
그런데 완전히 ‘실패한’ 주거환경은 어떠한 조정도 통 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 경우는 대대적인 개조를 행하거나, 그것도 모자라면 결국 철거라는 극단적인 방법 을 사용하여 해당 환경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근대에 지 어진 주거단지 중 이렇게 대대적인 개조 또는 철거 등의 방법을 동원한 사례가 상당히 많다. 우선 이 연구의 분석 대상으로 선정한 프루이트-이고 단지는 전면철거를 시행 했고, 베일메르메이르 단지는 철거와 대대적인 개조를 병 행했다. 그밖에도 영국 런콘(Runcorn)의 ‘타운센터 하우징 (Towncenter Housing)’ 등이 철거라는 방법으로 사라진 경 우이고, 영국 셰필드(Sheffield)의 파크 힐(Park Hill) 단지 등이 대대적인 개조작업이 행해진 사례에 속한다. 이런 사례들이 ‘실패한’ 주거단지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2. ‘실패한’ 주거단지들에 대한 그동안의 분석과 평가
‘실패했다’고 판정된 주거단지들에 대한 그동안의 평가 는 비교적 단순했다. 실패의 원인을 주로 계획상의 실책 으로 돌린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관련 전문가집단에서 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보편화되었다. 근 자에 와서는 ‘실패’가 계획이라는 물리적 차원을 넘어서 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으나 그러한 주장이 일반적인 논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아니다.
2) Lang, J. T. (1980). The Built Environment and Social Behavior:
Architectural Determinism Reexamined. VIA: Architectural Journal of Graduate School of Fine Art, University of Pennsylvania, no.4, 146-153.
Figure 1. Aerial View of Pruitt-Igoe
© 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
Figure 2. Aerial View of Bijlmermeer
© Stadsarchief Amsterdam
1972년 프루이트-이고 단지가 폭파되자 많은 언론매체 와 학자들은 대부분 건축설계의 잘못에 책임을 돌렸다.
처음에는 편복도 등 건축적인 요소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점차 건축이념 전반에까지 논의를 확대했다. 그들의 일반 적인 논지는 계획가들이 저소득계층의 요구에 세심한 관 심을 가지지 못했고, 백인 중산계층 라이프스타일에나 맞 는 디자인을 흑인이 주류를 이루는 거주자들에게 강요했 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저소득계층 흑인들만의 특별한 요 구를 간과한 결과가 실패를 낳았다는 것이다. 단지의 폭 파 후 이를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Washington Post)』
에서는 그 원인에 대해서, “불과 한 세대 전에 농장으로 부터 풀려나 이곳에 이주해온 가난한 가족들과 고층아파 트 사이의 불일치”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렸다.3)즉 고층 아파트로 계획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라는 것이다.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폭파를 크게는 ‘근대건축의 실패’
와 관련짓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건축평론가 Jencks(1997)다. 그는 단지가 폭파되었다는 작은 사건이 마치 ‘근대건축’이라는 이데올로기 전체의 실패를 대변하 는 것처럼 침소봉대했다. 그는 ‘이 단지가 근대건축의 이 념을 충실하게 담았고, 그 결과 좋은 디자인으로 평가되 어 상까지 받았지만 주민들의 요구를 담는데 완전히 실 패했으므로 결국 파괴되었다’는 논지를 펴왔다.4)
이론을 앞세운 학자들도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는데,
『방어적 공간(Defensible Space)』을 쓴 Newman(1972)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프루이트-이고 단지에서 계속해 서 범죄와 파괴행위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서 단지 내 부에 ‘방어할 수 없는’ 공간이 과다하게 많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폈다. 즉 주동 내부의 복도는 너무 길고, 각 아파 트에서는 그곳을 볼 수 없으며, 주동의 현관은 거대한 외 부공간에 면해 있기 때문에 거주자들은 누가 그곳을 들 어가고 나가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 라서 집합주택의 공용공간을 계획할 때는 사적, 반(半)사 적, 반(半)공적, 공적 공간 등으로 위계적으로 구분해 주 면 범죄와 파괴행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5)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실패원인에 대해서 분석한 학자 들도 별 차이가 없다. 그들은 주로 이 단지가 가지는 물 리적인 결점에 초점을 두고 비판했다. 우선은, 단지 규모 의 거대함 때문으로, 광대한 오픈스페이스와 그 위에 자 리하는 주동의 규모가 인간적인 스케일을 넘는다는 점이 다. 둘째는, 건물들의 획일성과 단조로움이 주민들을 심리 적으로 질리게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커뮤니티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서 제공된 주차장, 통로공간 등 여러 공용 시설들이 너무 공동성과 평등성을 강조한 나머지 ‘내 것’
으로 인식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6)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문헌에서는 베일메르메이르 단지 의 실패원인에 대해서 비교적 폭넓은 관점에서 분석한 결 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건축계획과 주거지 계획에서의 실패, 계획과 건설과정에 있어서 피드백(feedback) 기능의 결여, 다양한 계층의 요구와 필요에 근거한 건축계획 및 관리계획의 불충분, 의사결정과정에서 협의와 합의과정의 결여 등이다.7) 이렇게 과거와 다소 달라진 해석을 내렸다 해도 결국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을 ‘계획의 실패’로 규 정하고 있다.
III.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건설 및 해체 과정과 계획적 특징
1.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건설배경
프루이트-이고 단지는 1949년 미국 연방정부에서 제정 한 ‘주택법(Housing Act)’에 근거해서 건설한 것이다. 이 법은 이차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미국도시를 살리기 위 해 연방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가 표출된 것 으로서, 슬럼의 철거, 도심재개발, 그리고 공공주택의 건 설을 위해서 연방정부가 주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주요한 골자로 하였다.
이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도시들에서 일반화된 현상은 백인 중산층들은 교외로 이주하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 흑인들이 들어오면서 슬럼이 확산되는 것이었다. 세인트 루이스도 미국의 여느 대도시들과 마찬가지였다. 인구는 줄어들었지만 흑인들은 밀려들어오면서 도심은 활력을 잃 었다. 시당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심재 개발에 주력했다. 슬럼지역의 토지를 매입하여 건물을 완 전히 쓸어버리고 이를 민간 사업자에게 싼값에 파는 계 획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땅들은 주로 상업용도나 중 산계층을 위한 주거지로 활용하려 했다. 중산층을 다시 도심으로 불러들이려는 유인책의 일환이었다.8)
프루이트-이고 단지는 그러한 사업 중 하나였다. 도심 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57에이커의 면적이었다.
1950년에 시에서는 5,800호의 공공주택을 건설할 수 있는 자금을 연방정부로부터 지원 받았는데, 이 자금의 절반을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건설에 투입했다. 시에서는 이곳에 있던 낡은 주택들을 완전히 쓸어버렸고, 그 자리에 총 2,700호의 주택에 15,000명의 인구를 수용하는 계획을 수
3) Wilson, A. (1973). Demolition Marks Ultimate Failure of Pruitt- Igoe Project. Washington Post, August 27, 3.
4) Jencks, C. (1977). The Language of Post-Modern Architecture.
New York: Rizzoli, 9-10.
5) Newman, O. (1972). Defensible Space. New York: Macmillan, 56-58, 66, 77, 83, 99, 101-108, 188, 207.
6) Priemus, H. (1986). Post-war Public High-rise Housing Estate:
What went wrong with Housing Policy with the Design and with Management. Netherlands Journal of Housing and Environment Research, Vol. 1, No.2, 162-163.
7) 角橋徹也· 崎賢明. (2002). アアムステルダムㆍベルマミ一ア 住宅團地の失敗の原因に關する硏究. 日本建築學會計劃系論文集, 第 561號, 208.
8) Meehan, E. (1979). The Quality of Federal Policymaking:
Programmed Failure in Public Housing. Columbia. Mis.: University of Missouri Press, 56-87.
립했다. 이러한 수용인구는 기존에 이곳에 거주한 인구보 다 많은 수치였다.9)
2. 단지계획에 대한 시당국의 태도
시에서는 계획을 담당할 건축가로 레인웨버ㆍ야마자키
& 헬무스(LeinweberㆍYamasaki & Hellmuth) 합동사무소 를 선정했다. 당시 건축가들은 시의 주택국에서 이미 정 해놓은 각종 지표를 그대로 준수해야 했는데, 대지규모는 물론이고, 계획세대수, 호수밀도 등에 있어서 변경의 여지 는 전혀 없었다. 건축가들이 처음 수립한 계획은 저층ㆍ 중층ㆍ고층이 적절히 섞인 안이었다. 그런데 그런 계획은 시의 건축조례에는 부합했지만, 그것을 시행하면 연방정 부에서 정한 세대당 공사비를 초과했다.10) 따라서 연방 공 공주택국(PHA, Public Housing Administration)에서 파견 된 감독관은 11층 높이의 판상형 주동으로 구성되는 일 률적인 계획을 강요했고, 계획은 그렇게 귀결되었다.11)
<Figure 3> 당시 연방정부는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자 재 부족현상에 봉착하자 이러한 계획과 정책을 적극적으 로 밀어붙였다.12)
모든 주동을 고층화시킨 후에도 연방 공공주택국에서는 건설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계속 압력을 가했다. 이러 한 압력은 건축계획과 단지구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결국 프루이트-이고 단지가 실패하는데 커다란 원인으로 작용했다. 미국 공공주택 정책의 실패원인을 정리한 Meehan(1979)의 연구가 이를 잘 말해준다. 그에 의하면, 이 단지의 계획과정에서 각종 유희시설, 어린이놀이터, 조 경시설, 주동 일층에 자리한 공중목욕탕 등은 예산절감의
이유로 사라졌다. 그는 단지가 준공된 이후의 상황에 대 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철물의 질이 너무 낮아서 문손잡이와 자물쇠는 사용할 때부터 부서졌는데 입주하기 도 전에 이미 부서진 것도 많았다. 부실한 창틀 때문에 창유리는 바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날아간 것이 부지 기수였다. 부엌에서 선반은 가장 얇은 합판으로 만들었고, 열에 견디는 재료를 사용하도록 지정된 카운터 표면은 일 반 나무로 마감했고, 싱크는 너무 작았으며, 배기용 송풍 기는 설치하지 않았고, 스토브와 냉장고는 가장 작은 사 이즈로 그리고 가장 싸구려로 설치했다...”13) 이렇게 값싼 재료로 엉터리로 시공한 부분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 큼 많았다. 결국 단지는 처음부터 실패를 예고하고 있었 던 것이다.
3.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계획적 특성
언급한대로, 프루이트-이고 단지는 11층 높이의 고층주 동 33동이 기계적으로 배열된 단지다. 건축가들은 이러한 고층주택의 거주성 향상을 위해서 여러 가지 지혜를 동 원했는데, 우선 두 가지의 중요한 계획요소를 채택했다.
하나는, 3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였고, 다른 하나는, 유리 창으로 외부와 격리된 폐쇄형의 편복도였다. 편복도는 엘 리베이터 운행과 연계하여 3층 단위로 설치되었다. 건축 가들이 이렇게 한 것은 복도를 중심으로 ‘독립된 근린’을 창출하겠다는 의도였다. 엘리베이터는 복도가 있는 층 즉 1,4,7,10층에서 서는데, 사람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복도와 계단을 통해서 각자의 주택으로 진입했다. 세탁실 과 창고도 이 복도를 통하게 했다. 건축가들은 이 복도를 이웃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단지가 완성된 후 그 계획내용이 『아키텍 쳐럴 레코드(Architectural Record)』등 여러 건축잡지에 실렸을 때, 가장 주목받은 내용도 바로 이 복도였다.14) 특 히 『아키텍쳐럴 레코드』에서는 3층마다 서는 엘리베이 터와 연계된 복도에 대해서 “고층주택이 가지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혁신적인 보정장치”라고 후한 점수를 주 었다15)<Figure 5>.
4.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사회·경제적 특성
단지는 1954년에 완성되었다. 원래 계획하기로는, 단지 는 두 부분으로 구분해서, ‘프루이트 구역’은 흑인이, 그 리고 ‘이고 구역’은 백인이 거주하도록 했다. 그런데 연 방대법원에서 이러한 흑ㆍ백 분리수용에 제동을 걸었고, 백인들은 흑인들과 섞여 사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단 9) Bristol, K. (1991). The Pruitt-Igoe Myth. Journal of Architectural
Education, Vol. 44, No. 3, 164.
10) Meehan, E. (1979). 앞의 책, 71.
11) 계획을 주도한 건축가 Minoru Yamasaki는 고층건축에 대해서 소극적이었다. 한 건축잡지에 실린 Catherine Bauer와의 토론에 의 하면, 그는 고층주택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것을 수 용한 이유는 제한된 땅에 고밀도로 개발해야 한다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Bauer, C. (1952). Low Buildings? Catherine Bauer Questions Mr. Yamasaki’s Argument. Journal of Housing, No. 9, 227.
12) Bristol, K. (1991). 앞의 글, 164.
13) Meehan, E. (1979). 앞의 책, 71-73.
14) 당시 프루이트-이고 단지에 대해 다룬 대표적인 잡지기사는 다 음과 같다: Four Vast Housing Projects for St. Louis: Hellmuth, Obata and Kassabaum, Inc. (1956). Architectural Record, No. 120, 182-189; Slum Surgery in St. Louis. (1951). Architectural Forum, No. 94, 128-136.
15) Four Vast Housing Projects for St. Louis. (1956). 185.
Figure 3. Site Model of Pruitt-Igoe
© State Historical Society of Missouri
지는 흑인들만 사는 주거지가 되었다.16) 그런데 이곳에 이 주해온 흑인들도 계획 당시 염두에 두었던 계층이 아니 었다. 원래는 가장(家長)이 남자이고 직업이 있는 계층을 대상으로 했는데, 실제로 입주한 계층은 생활보호를 받는 결손가정으로 여자가 가장인 가족이 많았다. 1965년을 기 준으로 보면, 입주가족의 62퍼센트는 여자가 가장이었고, 38퍼센트는 가족 중에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입 주자 중에서 여자의 숫자가 남자보다 2.5배 많았다. 입주 자의 삼분지이는 미성년자였고, 그 중 70퍼센트가 12살 미만이었다.17) 이들은 입주 초기에는 단지에 대해서 대체 로 만족해했다. 비록 값싸게 지은 아파트였고 단지의 조 경과 커뮤니티시설은 열악했지만 아파트의 내부만은 그들 이 원래 살던 슬럼지역보다 양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58년부터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첫째로 나타난 현상은 거주율이 낮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단지의 거주율은 1957년에 91퍼센트로 최고점에 달했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프루이트 구역’은 1956년에 95 퍼센트이다가 6년 후에는 81퍼센트로 떨어졌으며 1965년 에는 72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이고 구역’은 처음부터 70 퍼센트에 약간 못 미치는 숫자로 출발해서 거의 그 수준 을 그럭저럭 유지했다.18) 이렇게 되자 세인트루이스 주택 국은 당장 단지의 유지ㆍ관리의 어려움에 봉착했다. ‘주 택법’에서는 거주자로부터 걷어 들이는 임대료를 가지고 단지의 유지ㆍ관리를 시행하도록 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임대료를 걷지 못하고 임대료를 체납하는 입주자의 숫자 가 늘어나자 시에서는 유지ㆍ관리에 드는 비용을 대폭 삭 감해버렸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도 고치지 않았고, 주택 내부의 웬만한 문제는 신고가 들어와도 거들떠보지 않았 다. 파이프가 터지고 가스폭발 사고가 나도 대수롭게 여 기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프루이트-이고 단지는 눈에 띠 게 황폐한 장소로 변해갔다19)<Figure 4>.
5.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쇠퇴 및 해체과정
단지에는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파괴행위 또한 끊 이지 않았다. 범죄와 파괴행위는 입주한지 몇 년이 지나 지 않아서 생기기 시작했다. 범죄는 곳곳에서 발생했는데, 복도와 엘리베이터가 가장 빈번한 장소였다. 결국 3층마 다 서는 엘리베이터와 복도는 커뮤니티를 증진시키기는커 녕 범죄발생을 조장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거주자들은 집으로 가기위해 꼭 복도를 통과해야 했는데, 이곳에서 불량배들에게 위협받고 공격받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Figure 6>. 엘리베이터 또한 가해자로서는 범죄를 위한 적절한 장소였다. 엘리베이터는 비용 때문에 작은 것을 설치했는데, 이 또한 가해자에게는 유리했다. 엘리베이터 는 오줌냄새가 진동하기 일쑤였는데, 그곳에서 내리면 ‘고 통스러운’ 복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 붙은 세탁실 과 창고도 안전하지 않았으므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20)
1965년에 시당국에서는 단지의 환경개선을 위해서 연방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을 투입했지만 사정은 별로 나아 지지 않았다. 거주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범죄는 증가 했으며, 유지ㆍ관리는 더욱 허술해졌다. 한때에는 34대의 엘리베이터 중에서 28대가 운행되지 않았다.21) 1970년에 이르러 전체 주택의 65퍼센트가 빈 상태가 되었다. 결국 정부에서는 단지를 허물어버리기로 결정했는데, 남은 문 제는 폭파시키는 것과 해머로 부수는 것 중 어떤 것이 비 용측면에서 나은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남은 주민을 11 동의 건물로 이주시킨 후, 1972년 3월 16일에 단지의 중 16) Bristol, K. (1991). 앞의 글, 165.
17) Rainwater, L. (1970). Behind Ghetto Walls: Black Families in a Federal Slum. Chicago: Aldine Publishing, 13.
18) Hall, P. (1996). Cities of Tomorrow. Oxford: Blackwell Publishers, 237.
19) Meehan, E. (1979). 앞의 책, 74-83.
20) Bailey, J. (1965). The Case History of a Failure. Architectural Forum, No. 123, 22-23.
21) Hall, P. (1996). 앞의 책, 238.
Figure 5. 1951 Artist's Rendering of Pruitt-Igoe Gallery Source. Oscar Newman (1972), p. 72.
Figure 6. Actual View of Pruitt-Igoe Gallery Source. www.defensiblespace.com Figure 4. Abandoned Buildings of Pruitt-Igoe
© St. Louis Post-Dispatch
앙에 있는 세 동의 건물을 실험적으로 폭파시켰다. 단지 의 부활을 위한 최종단계의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1973 년에 남은 단지를 허물기 시작해서 1976년에 작업이 완 료되었다.
IV.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건설 및 쇠퇴 과정과 계획적 특징
1.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건설배경
베일메르메이르 단지는 암스테르담에서 남동쪽으로 7.5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총면적 700헥타르에 인 구 6만 명을 수용하도록 계획된 거대단지다. 오늘날에는 4만 명 정도가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계획 당시에는 전 주택의 75퍼센트가 임대주택으로 구성되었다. 암스테르담 시에서는 1953년에 베일메르메이르의 간척지에 대규모 주 택단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네덜란드는 이차세계대전 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인 주택부족 에 시달리고 있었다. 1962년에 암스테르담시(市)는 시의 회에 주로 중산계층을 수용하는 새로운 주거단지의 건설 계획을 제출했고, 이어서 마스터플랜의 수립을 시작했으 며, 1965년에 계획이 완성되었다. 건설공사는 1966년에 시작되어, 2년 후부터 입주가 시작되었다. 이후 계속 건 설을 밀어붙인 결과 1975년에 단지건설이 최종적으로 완 료되었다.22)
2. 단지계획에 대한 시당국의 태도
새로운 단지의 마스터플랜은 암스테르담 도시계획국의 간부였던 지그프리드 나슈(Siegfried Nassuth)가 팀을 꾸 려 직접 수립했다. 이렇게 거대한 단지를 건설하는데 있 어서 그 계획을 오로지 시가 주축이 되어서 수립한 것은 특이한 일이었다. 계획을 맡은 나슈는 당시 근대건축국제 회의(CIAM)의 계획이론에 열광적으로 심취해 있는 사람 이었다.23) 그는 계획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시청 내부의 극 히 폐쇄된 소집단 이외에는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일절 경청하지 않았다. 또한 여러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는 당연히 없었고,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았다. 모든 결정권은 나슈를 위시한 소수의 사람들이 쥐고 있었고, 일부에서 제기된 반대의견이나 비판은 전혀 고려하지 않 았다.24)
1960년대 이후 가속화된 고도성장에 힘입어 네덜란드의 중산계층은 생활양식이나 주택에 대한 기호에 커다란 변
화가 생겼다. 소득이 증대하고 여가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교외의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커뮤니티 지향보다는 개인주의 경향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데 단지를 계획한 나슈 팀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간과했 다. 이 정도 규모의 단지를 계획할 때는 입주자의 주택에 대한 기호,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 세밀한 예측조사를 펼친 후에 계획에 착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초보적 수준의 조사도 하 지 않았다. 또한 고층주택을 기피하는 네덜란드인의 전통 적인 주거스타일에 대해서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 은 단지 ‘미래도시’ ‘확대된 스케일’ ‘75퍼센트의 노동자 주택’ ‘다기능의 공동시설’ 등의 개념에만 매달렸다.25)
3.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계획적 특성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에 건축된 건물의 90퍼센트는 11층 높이의 고층아파트로 이루어졌다. 아파트 주동의 1층에는 세탁실, 창고, 집회실 등 공용시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창고로 구성되었다. 계획을 수립할 당시 이곳에 입주할 대상주민은 주로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중산계층으로, 자 녀가 있는 가족이었다. 따라서 주택은 면적 100~120제곱 미터인 대형주택이 많았다. 전체 주택의 50퍼센트가 3LDK (거실+식당, 부엌, 침실 셋)로 구성되었다.26) 주동에서 각 주택으로의 진입은 2층에 있는 홀을 통하게 했는데, 여기 서 엘리베이터를 통해 위층으로 올라간다. 각 주동에서는 편복도를 기본적인 진입체계로 사용한다.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에서 눈에 띠는 것은 중앙부에 넓 게 자리하는 ‘벌집’ 형상의 거대한 주동들이다<Figure 8, 9>. 한 변이 대략 100미터 길이로, 정육각형을 이루면서 길게 이어지는 형상을 취한다. 단지 전체에는 31개의 ‘벌 집’이 자리하는데, 하나의 ‘벌집’이 수용하는 주택 수는 평균 425호이다. ‘벌집’을 형성하는 주동 중에서 가장 긴 것은 600미터 길이에 830호의 주택을 수용한다. 이 ‘벌 집’ 주동의 2층에는 주동과 주동을 연결하는 복도형 통로 가 설치되었는데, 이 통로는 여러 주동을 이어서 주차장, 22) Mentzel, M. (1990). The Birth of Bijlmermeer: The Origin and
Explanation of High-Rise Decision Making. Netherlands Journal of Housing and Environment Research, Vol. 5, No. 4, 365-367.
23) 건축가 Giegfried Nassuth의 건축이념과 그가 계획한 베일메르 메이르 단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다음 문헌에서 잘 다루고 있다:
Nassuth, G. & van Stralen, M. (1998). Giegfried Nassuth: Oeuvre Award 1998 Architecture. Amsterdam: Stichting Fonds voor beeldende Kunsten.
24) Mentzel, M. (1990). 앞의 글, 370.
25) Mentzel, M. (1990). 앞의 글, 368
26) 角橋徹也· 崎賢明. (2002). アアムステルダムㆍベルマミ一ア 住宅團地の失敗の原因に關する硏究. 日本建築學會計劃系論文集, 第 561號, 205.
Figure 7. Connecting Gallery of Bijlmermeer
© Stadsarchief Amsterdam
전철역, 학교, 그리고 근린센터로 연결된다. 팀 텐(Team X) 그룹이 제안한 ‘공중가로’의 개념을 채용한 것이다27)
<Figure 7>.
베일메르메이르 단지는 전 지역을 개방된 하나의 주구 (住區)로 구성하여 중앙에 중심센터를 두고 두 개의 부수 적인 지구센터를 두었는데, 중심센터에 모든 시설이 집중 적으로 배치되었다. 결국 단지에는 상업, 스포츠, 레크리 에이션 시설이 부족했으며, 접근 또한 어려웠다. 이것이 이 단지가 중산계층에게 인기가 없었던 이유의 하나였다.28) 단지의 주변에 철도와 전철이 개설되었지만 이것은 단지 가 완성되고 한참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단지는 한동안 ‘외따로 떨어져 교통이 불편한 위성도시’
로 인식되었다.29) 단지에는 모두 31곳에 주차용 건물을 설치했고, 주민들의 차량은 모두 이곳에 주차하도록 했다.
4.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사회·경제적 특성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에는 당초 목표로 두었던 중산계층 이 입주하지 않았다. 일부 입주했던 중산계층도 탈출을
시작하여 1970년대 중반까지 백인을 중심으로 전체 17퍼 센트의 입주민이 단지를 떠났다.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에 서 중산계층이 탈출한 가장 큰 이유는 이 단지가 당시 중 산계층이 가졌던 주택에 대한 기호나 생활양식과 전혀 맞 지 않았기 때문이다.30)
중산계층 대신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는 갈 곳이 없는 저소득계층이었다. 1975년에 네덜란드의 식 민지 수리남(Surinam)이 독립하자 다수의 이민자들이 이 곳에 밀려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베일메르메이르는 급속 하게 다민족 사회로 변모했다. 1991년 1월 현재 베일메 르메이르 거주자의 31.4퍼센트가 수리남이민자들이다. 그 리고 전체 거주자의 80퍼센트가 흑인으로 구성된다.31) 이 주해온 사람들의 대다수는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사회적으 로는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상부층에서 쓰레기를 던져버 리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공중질서에 대한 의식수준이 낮은 사람들이었다.32)
5.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쇠퇴과정
베일메르메이르 단지는 입주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 아 ‘혼란과 황폐의 마을’로 변모했다. 이곳은 프루이트-이 고 단지와 마찬가지로 마약, 범죄, 불법점거, 파괴와 훼손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빈발하였다. 길과 주차장에 오물과 쓰레기가 넘쳐나는 단지가 되면서 그 악명이 전국적으로 퍼졌고, 정부는 이 단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상도 시 베일메르메이르’를 지향했던 단지가 ‘도시빈민자의 지 옥’이란 오명의 주거지로 바뀌어버린 것이다.33)
베일메르메이르는 광대한 단지였으므로 관리를 해야 하 는 공간도 엄청났다. 예를 들면, 주동을 서로 이어주는 통 로의 총연장은 12킬로미터, 편복도의 총길이는 110킬로미 터, 계단실의 수는 150개, 엘리베이터의 수는 220개, 1층에 설치된 공용공간의 수는 만이천개에 달했다. 이렇다 보니 단지를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이 원래 예상한 것보다 상당 히 증가했다. 그런데 빈집이 늘어나고 임대료를 채납하는 집이 늘면서 관리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했다. 당초 중산계 층을 목표로 한 단지이기 때문에 주택의 면적이 컸고, 그 만큼 내야 하는 임대료도 비쌌다. 그러나 이곳에 입주한 사 람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여력이 없었으므로 임대료를 체납 하는 가구가 많았다. 1991년에만 임대료 체납액수가 1200 만 길더(Guilder) 즉 60억 원 정도였으며, 주택조합이 그동 안 진 부채의 누적액은 약650억 원에 달했다.34)원활한 관 리의 어려움은 이 단지가 실패하는데 커다란 원인으로 작 용했고, 그것은 프루이트-이고 단지와 유사한 것이었다.
27) Kloos, M. (1997). Dirk Frieling; A Perpetual Stumbling Block.
Archis, No. 3, 22.
28) Helleman, G. & Wassenberg, F. (2004). The Renewal of What was Tomorrow’s Idealistic City: Amsterdam’s Bijlmermeer High- rise. Cities, Vol. 21, No. 1, 5.
29) Luijten, A. (1997). A Barrel of Contradiction: The Dynamic History of the Bijlmermeer. Archis, No. 3, 17.
30) 角橋徹也· 崎賢明. (2002). 앞의 글, 207.
31) 角橋徹也· 崎賢明. (2002). 앞의 글, 207.
32) Helleman, G. & Wassenberg, F. (2004). 앞의 글, 6.
33) Priemus, H. (1986). Post-war Public High-rise Housing Estate:
What went wrong with Housing Policy with the Design and with Management. Netherlands Journal of Housing and Environment Research, Vol. 1, No.2. 176.
34) 角橋徹也· 崎賢明. (2002). 앞의 글, 207.
Figure 8. View of Honeycomb Blocks of Bijlmermeer Source. Netherlands Architecture Institute (a), www.ethesis.net/groen (b)
Figure 9. View of a High-rise Building of Bijlmermeer
© Sohn, Sei-Kwan
6.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대대적인 재생사업
단지가 실패로 낙인찍히고 황폐화하면서 암스테르담 시 에서는 1980년대 초반부터 이 단지에 대한 대대적인 재 생사업을 시작했다. 시당국에서는 이곳의 물리적 환경을 바꾸는 정도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했 고, 결국 사회·경제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략을 수립했다. 1990년에 구성된 특별위원회에서는 고층주택을 대폭 철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근본적인 재생방안을 제 시했다.35)
시에서는 1991년부터 고층건물의 상당부분을 철거하고 그 결과 생기는 부지에는 저층주택을 건축해 분양함으로 써 단지의 주거형식과 소유형식의 다양화를 시도하였다.
또한 주민의 사회적ㆍ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 육의 시설과 여건을 충실하게 하고, 문화와 여가활동을 다양하게 증진시키는 사업도 병행하였다. 동시에 단지의 관리를 강화하여 범죄, 마약, 파괴, 쓰레기 무단투척 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사회불안이 없는 양질의 커뮤니티 로 끌어올리는 사업도 추진하였다. 재생사업은 오늘날에 도 진행되고 있다36)<Figure 10>.
V. ‘실패한’ 주거단지의 실패원인에 관한 수정된 해석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실패한’ 단지들의 실패요인은 계획이나 디자인이라는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다. 정책상의 혼선, 물량 위주의 무모한 공급 등 정치·
경제적인 실책에서 계획적 결함에 이르는 상당히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그동안의 진단에 대한 수정된 해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주택문제에 대처하는 국가적 정책의 결함
프루이트-이고 단지는 1949년에 제정된 ‘주택법’의 결 과물이다. 이 법은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무모한 도심재개 발, 그리고 인종문제에 대한 정책상의 무관심 등 상당한 문제를 야기했다. 대도시에 넓게 형성된 슬럼을 쓸어버리 고 그곳에 과거의 공간구조와는 완전히 다른 주거환경을 건설함으로써 만성적인 사회문제를 물리적인 수단으로 해 결하려 했던 것이다. 또한 그곳에 고층아파트를 ‘독립된 단지’ 형태로 대량으로 건설함으로써 저소득계층을 지리 적·사회적으로 고립시켰다. 이 법이 광범위하게 시행된 결과 미국에는 프루이트-이고 단지와 유사한 실패 사례가 수백 곳에 퍼져있다.37) 사회ㆍ경제학자인 Meehan(1979)은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실패는 미국의 공공주택에 대한 정 책이 지니는 ‘예정된 실패’라고 주장했다.38) 결국 프루이 트-이고 단지의 실패는 잘못된 정책이 낳은 당연한 실패 로 보아야 한다.
베일메르메이르 단지는 1935년 수립된 암스테르담 종합 확장계획(Amsterdam General Extension Plan)의 결과물이 다. 이차세계대전 이후 주택부족 문제에 시달렸던 네덜란 드는 암스테르담에만 22만호가 넘는 주택을 시급하게 공 급해야 했다. 결국 ‘대량건설’이라는 정책을 채택했으며, 한 지역에 한꺼번에 수만호씩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을 사 용했다. 당연히 인간적 스케일을 훨씬 뛰어 넘는 슈퍼블 록(super-block) 속에 같은 건물을 반복하는 단조로운 주 거환경을 조성했다. 동시에 고층아파트 건설을 적극 권장 했다. 지자체가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때 고층주택 형식을 채택할 경우에는 건설호수에 보너스쿼터를 주었다.39) 당 시의 정책입안자들은 이러한 환경이 가지는 문제를 전혀 몰랐다. 그들은 새로운 개념의 주거환경을 만든다는 환상 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인간생활의 미래상’을 베일메르메 이르 같은 초대형 단지에서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2. 주택공급 대상에 대한 이해의 부족
프루이트-이고 단지가 건설된 1950년대 초반 미국의 주 택정책 입안자들은 흑인을 중심으로 하는 저소득계층의 라이프스타일과 생각에 대해 무지했다. 그들은 사회·경 제적으로 소외되었고 차별받았다. 반면에 사회적인 결속 력은 강했고 커뮤니티 지향의 생활양식을 선호했다. 그런 데 정책입안자들은 그러한 측면을 몰랐다. 미국의 사회학 자 Rainwater(1970)는 프루이트-이고와 같은 주거단지에서 발생하는 파괴와 폭력행위는 가난과 차별에 시달리는 저 소득계층의 이해할 수 있는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파괴와 폭력을 구사하는 것은 사회적인 소외감, 고립감, 그리고 경제적인 무기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소
35) Helleman, G. & Wassenberg, F. (2004). 앞의 글, 7.
36)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재생사업에 대해서는 다음 문헌에서 잘
다루고 있다: 角橋徹也· 崎賢明. (2003). アアムステルダムㆍベル マミ一ア高層住宅團地の再生事業に關する硏究. 日本建築學會計劃系 論文集, 第564號, 219-226.
37) Comerio, M. (1981). Pruitt-Igoe and Other Stories. Journal of Architectural Education, No. 34, 28.
38) Meehan, E. (1979). 앞의 책, 83-87, 194-198.
39) 角橋徹也· 崎賢明. (2002). 앞의 글, 205.
Figure 10. Situation of Eastern Part of Bijlmermeer before (a) and after(b) Physical Renewal
Source. Helleman, G. & Wassenberg F. (2004), 10.
득계층의 주거환경을 물리적으로 개선하고 이를 통해 그 들의 행동패턴을 바꾸려는 노력은 소득수준 등 제반 사 회적 환경이 향상되지 않으면 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40) 베일메르메이르 단지는 입주가 막 시작된 1970년대 초 반에 이미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이 서로 맞지 않음 이 파악되었다. 출산율이 저하하고 핵가족화가 가속하면 서 주택에 대한 기호의 변화가 현저해지자 단지는 중산 계층으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여기에 미처 예측하지 못했 던 이민자들의 대량이주는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 다. 그런데 당국에서는 계획의 내용에 전혀 수정을 가하 지 않은 채 사업을 그대로 진행했다. 1970년대 초반에 베 일메르메이르 단지 주변의 하스퍼담(Gaasperdam), 홀렌드 레히트(Holendrecht), 벤서폴더(Venserpolder) 단지 등에서 는 고층아파트 건설에서 방향을 수정하여 다양한 계층을 위한 저층주택의 건설을 시작했다. 중산계층들이 대거 그 리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당국에서는 원래의 계획 을 변경하지 않았다.41) 대상 계층의 선호를 이해하지 못 했을 뿐더러 제반 여건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 했던 것이다.
3. 관료주의 및 탁상행정의 실책
앞서 살펴 본대로,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계획과정에서 건축가들의 실책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상당히 크다. 계 획의 중요한 사항은 모두 세인트루이스 주택국과 연방 공 공주택국에서 결정했다. 건축가들은 부지의 위치, 밀도, 각 종 공공시설과 조경시설의 삭제,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고층주택 등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모두 배 제되었다.42) 그들에게 주어진 재량권이라야 주동 내부의 공간계획뿐이었는데, 그것도 제한된 비용을 감안해야만 했 다. 결국 프루이트-이고 단지가 폭파되어간 과정에서 건 축가들의 실책보다는 위에서 지시하고 감독하는 행정관료 들의 실책이 더욱 무겁다고 할 수 있다.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경우는 단지계획과 건축계획을 주도한 사람들이 시에 근무하는 관료들이었으므로 계획의 주체는 ‘당국으로부터 계획을 의뢰받은 건축가’의 입장은 아니었다. 계획을 주도한 시의 건축전문가들은 당시의 사 회적 상황과 입주할 계층의 요구를 파악하는데 실패했고 계획과정에서도 많은 외부 전문가들의 비평과 우려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므로 결국은 정책 및 소통의 실패로 귀 결된다. 위로부터의 지시와 자신들의 아집에 따라 일방적 인 밀어붙이기식의 사업추진이 결국 ‘실패’로 귀결된 것 이다. 왜곡된 관료주의의 결과이기도 하고, 사용자와 현장 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탁상행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4. 턱없이 부족한 재정의 투입
이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연방정부가 주도해 건설한 많 은 공공주택이 실패로 귀결된 커다란 원인의 하나는 값 싸게 주택을 공급한 실책의 결과였다. 정부에서는 터무니 없이 싼 가격으로 공공주택을 건설했기 때문에 적절한 수 준의 환경을 제공하는데 실패했다. 프루이트-이고 단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시당국과 연방정부의 관료들은 값싸게 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같 은 형태의 건물을 기계적으로 반복시키고, 공공시설과 조 경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폭 삭감하고, 실내의 가구와 설 비는 수준 이하의 조악한 제품을 쓰도록 강요했던 것이 다. 그 결과 단지는 처음부터 ‘인간’이 애착을 가지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없었다.
베일메르메이르의 단지는 중산계층에 목표를 두고 건설 한 단지였지만 시에서는 비용절감에 주력했다. 거대한 주 동, 반복되는 통일된 디자인, 표준화 등이 적용된 것이 그 때문이었다. 그들은 비용절감 차원에서 이 단지를 프리패 브(prefab) 공법을 사용해서 건설했다. 대량공급이라는 목 표에 가장 적절한 공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설익은 이 공법은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단지가 완성되 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곳곳에서 벽체의 균열이 발생했 고 부재의 맞춤부분에서 누수가 생기는 등 각종 문제가 드러났다. 점점 흉측하게 변해가는 아파트의 외관은 중산 계층의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았으며, 결국 그들은 이 단 지를 외면해버렸다.
5. 건축계획 및 단지계획상의 실책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계획과정에서 건축가들의 재량권 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계획상의 실책이라는 책 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들이 계획한 단조롭 고 거대한 콘크리트의 벽들은 주민들의 소외감을 촉진시 켰고, 그것이 단지에 대한 각종 파괴행위로 연결되었다.
조경도 제대로 되지 않은 거대 외부공간은 주민들의 소 외감을 더욱 깊게 했다. 또한 길고 어두운 복도 등 주민 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공용공간들은 범죄유발을 조장하는 장소가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통하는 진입 체계는 쉽게 프라이버시의 손상을 입혔다. 결국 프루이트 -이고의 단지계획은 판상형 주동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적 질서를 강조했으나 사람들의 인성에 적합한 다양성과 유 연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계획은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 된다.43) 첫째는, 스케일의 거대함이다. 전체 면적의 80퍼 센트를 점하는 광대한 오픈스페이스와 녹지, 그리고 거대 한 주동들과 주차용 건물들, 그리고 선형의 주동을 서로 연결하는 긴 통로 등 모두가 인간적 스케일을 초월하는 공간들이다. 둘째는, 통일된 계획에 의해서 초래된 건물과 공간의 획일성과 단조로움이다. 주동이나 그 주변의 공공 40) Rainwater, L. (1970). 앞의 책, 9, 403.
41) 角橋徹也· 崎賢明. (2002). 앞의 글, 209.
42) Bristol, K. (1991). 앞의 글, 169. 43) 角橋徹也· 崎賢明. (2002). 앞의 글, 207.
시설은 모두 단일한 디자인으로 이루어졌으며, 사용된 부 재들도 반복성, 규칙성, 표준화 등이 강조되었다. 셋째는, 시설계획과 커뮤니티 구성에 있어서 ‘공동이용’과 평등성 이 과잉으로 강조된 것이다. 하나의 주동은 보통 400호가 넘는 주택을 담으며, 몇 개 되지 않는 출입구와 홀이 이 들을 서비스한다. 대규모 주차용 건물, 길고 긴 연결통로 등은 모두가 많은 주민들의 ‘공동이용’을 전제로 계획된 것이다. 이러한 계획상의 실책은 프루이트-이고 단지와는 다르게 계획가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다.44)
VI. 결 론
이 연구에서는 근대의 주거환경 중 대표적인 ‘실패’ 사 례를 대상으로 그 실패의 원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 펴보았다.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실패에는 계획의 차원을 넘어서는 더욱 커다란 문제가 근저에 깔려있다. 그것은 이차세계대전 이후 심화된 미국 대도시의 구조적 문제 즉 저소득층의 빈곤, 인종차별, 무분별한 슬럼철거, 고층 위 주의 도심재개발, 미국 공공주택정책의 실책 등이 그 중 요한 배경이 되었다.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경우도 실패 의 가장 큰 원인은 건축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의 불일치 로 결론지을 수 있는데, 그 원인은 결국 정책상의 실패라 고 할 수 있다.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실패한’ 주거단지의 사례는 앞으 로 우리나라가 시행할 공공주택 개발을 위해 여러 시사 점을 제공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공공이 선도하 는 주택개발의 양이 점차 늘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바, 그 것에 관한 세심한 전략이 요구된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 는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얻게 된다.
첫째는, 기획단계에서의 통합성(統合性)과 유연성이다.
정책을 수행하는 개발주체의 졸속계획은 ‘실패’로 귀결되 기 쉽다. 주거지를 계획할 할 때는 건축·단지 등 공간 계획의 차원을 넘어서 주민 생활의 질 전반에 영향을 미 치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관점에서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능주의를 넘어 ‘주민들의 요구에 대 한 종합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폭넓고 유연한 접근 방법이 시대의 상황에 부합한다.
둘째는, 주거지의 규모의 적절성과 형태적·유형적 다 양성이다. 단순하고, 같은 형식이 반복되며, 인간적 스케 일을 넘는 주거지는 피해야 한다. 공사비 절감만을 염두 에 둔 과다한 표준화와 반복생산은 실패로 귀결되기 쉽 다. 또한 고층 일변도의 주거환경도 공공주택의 경우는 피해야 한다. 소량 다품종, 주거형식과 입주계층의 다양성 은 커뮤니티 형성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셋째는, 주거지 계획에 있어서 ‘참여와 협력’의 중요성
이다. 실패는 장래의 주민에 대한 정보부족과 외부의 조 언에 대한 귀 막음이 크게 작용하였다. ‘참여와 협력’의 형태는 다양한데, 일반시민에서 관련 전문가, 정책입안자, 행정집행자 등 폭넓은 관계자가 일련의 파트너십을 구축 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여와 협력’의 과정은 번거롭지만 1980년대 이후 ‘합리적 계획’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 각된 것을 부정할 수가 없으며, 그러한 방법을 쓴 주거지 개발은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판명된 경우가 많다.
넷째는, 사후관리와 피드백 기능의 중요성이다. 살펴본 두 실패 사례의 경우, 입주 후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대처의 부족이 결국 ‘파괴’와 ‘대대적 정비’
라는 극단적인 해결로 이어졌다. 성공한 프로젝트가 되기 위해서는 장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그것에 대처할 수 있 는 시스템의 유연함이 요구된다. 공공주택의 경우는 세심 하고 포괄적인 관리와 피드백 기능이 필요하며, 발생한 문제에 대해 보완 및 개조작업을 적절하게 시행할 필요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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