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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자라투스트라에 대한 분석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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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 精 神 分 析 :第 17 卷 第 2 號 2 0 0 6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Vol. 17, No. 2, Page 161~170, 2 0 0 6

니체의 자라투스트라에 대한 분석적 읽기

李 炳 郁

*

Psychoanalytic Reading of Nietzsche ’s Zarathustra

Byung-Wook Lee, M.D.*

머 리 말

니체(1844~1900)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몰락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던 서구문명에 대해 통렬한 반 박문이자 최후 선고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니체의 자라 투스트라는 이란의 조로아스터교 창시자의 실제 모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인다. 단지 반서구적 철학을 대표하 는 상징적 인물로서 그의 입을 빌려 니체 자신이 하고 싶 은 말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자라투스트라 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프로이트와 융도 니체에 경도했을 만큼 그는 서구지식인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오랜 서구적 전통과 기존 가치관을 무너뜨 리는 니체의 메시지는 마치 광야에 외치는 예언자의 목소 리처럼 우렁차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일 관했다.“신은 죽었다” 고 외친 그의 목소리는 매우 반그리 스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니체의 자라투스트라의 철학적 사상적 배 경과 의미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저술이 나오게 된 심리적 배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니체는 질풍노도와 같 은 심리상태에서 단숨에 자라투스트라를 썼다. 실제로 저술 당시의 니체는 자살 직전까지 가는 매우 암담하고 우울한 상 태에 빠져 있었다. 그 이유는 루 살로메로부터 청혼이 거절 당한 직후부터 삶의 모든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니체의 오기와 자존심은 놀라운 순 발력을 지니고 자신의 절망감을 극복해냈다. 그는 자신을 스 스로 구제하기 위해 필사적인 힘을 동원하여 자라투스트라 를 썼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다른 어떤 저서보다도 이 작 품에서 니체 자신의 감정적 혼란을 극복해낸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자라투스트라의 탄생 배경

니체의 삶에서 루 살로메와의 만남과 헤어짐은 그에게 결 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그녀를 만나지 않 았다면 자라투스트라의 모습도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의 그 모습과 매우 달라졌을지 모른다. 또한 절친했던 친구 파울 레가 개입되지만 않았어도 그들의 관계가 단절되는 단계까 지 이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니체의 운명은 자 신의 뜻대로 돌아가주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게서 연인을 앗아간 유대인 친구 파울 레 역시 루 살로메의 변심에 낙담 하여 절벽에서 투신 자살하고 말았다. 니체를 좌절시킨 두 장본인들이 러시아 장군의 딸과 유대인 철학자였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는 결국 순수한 독일 정신을 강조한 바 그너주의에 기울어지게 되었으며 노골적인 반유대주의자였 던 바그너를 숭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그너의 부인 코 지마에 대한 관심도 한 몫을 거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초인에 대한 동경은 한 때나마 바그너를 이상화 했다가 결 국 실망하고 돌아서게 된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Lehmann (1986)은 이처럼 니체가 바그너에 등을 돌리고 오히려 그 를 비난했던 동일한 과정을 융과 프로이트의 관계에서도 찾 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니체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융이 프로이트를 이상화 시켰다가 그에게 실망하고 적으로 돌변한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다. 어쨌든 니체의 초인사상은 본의 아니게도 바그너 숭배 및 헤겔의 영웅적 인간상과 맞 물려 나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 러나 Kaufmann(1975)은 이런 주장에 강력히 반발하고, 실제 나치즘의 인종이론은 니체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실 제로 그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물론 그러한 오 해들은 히틀러가 하사관으로 종군 시절에 니체를 탐독했으 며, 그의 자라투스트라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닐 정도로 니

*翰林大學校 醫科大學 精神科學敎室

Department of Psychiatry, College of Medicine, Hallym Uni- versity,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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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광이었다는 점과 그 후에는 바그너 숭배에 열을 올렸다 는 사실에서, 그리고 그의 [권력에의 의지]에 대한 사상 등 에서 니체에 대한 오해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Koehler (2001)도 히틀러와 나치 독일에 대한 바그너의 결정적인 영향에 대해 말한 바 있지만, 어쨌든 나치에 협력했던 작곡 가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오 랜 세월이 지난 후에 유대계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자 신의 철학적 영화 [오딧세이 2001]의 도입부에 역설적이게 도 리하르트 쉬트라우스의 교향시를 절묘하게 삽입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유인원이 도구의 사용에 첫 눈이 뜨이면서 손에 든 뼈다귀로 난폭하게 해골을 부수어 버리는 무서운 공격성의 표출 장면에서부터 그 유명한 교향시의 도 입부 음악이 장엄하게 울리는데, 이 때 유인원이 허공으로 날려버린 뼈다귀가 서서히 우주를 비행하는 우주선으로 바 뀌면서 그 배경음악도 아름다운 요한 쉬트라우스의 월츠로 바뀌게 된다. 이 또한 매우 역설적이다. 만인을 즐겁게 하는 요한 쉬트라우스의 월츠는 나치 독일이 죽음의 수용소에 갇 힌 유대인들에게 매일같이 들려주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인종주의에 반대한 사람이다. 비록 바그너와 교류 했지만 그의 반유대주의에는 동조하지 않았다. 니체는 오히 려 유대인 친구들과 교류했으며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 중에 는 유대인 지식인들도 많았다(Mandel 1998). 그런데 그가 왜 하필이면 고대 페르시아의 성자 자라투스트라를 선택했 겠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이 사람을 보 라]에서 그 이유를 밝혔지만 그것은 철학적 명분에 불과한 것이었을 수 있다. 진정한 이유는 그와 루 살로메를 사로잡 은 신의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토록 혐오했 던 서구기독교의 신은 결국 그 기원을 유대교의 여호와에 두 고 있다. 니체는 그러한 기독교 신의 뿌리를 근절시키기 위 해 이스라엘이 아니라 페르시아를 선택한 것이다. 신의 진정 한 뿌리는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융이 니체에 경도한 것은 이러한 숨은 동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융은 니 체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융의 시선도 자 연히 유대땅을 지나 머나먼 동방의 나라 인도와 중국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이병욱 2002).

그런 점에서 니체는 유대인을 증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투하고 있었음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루 살로메의 사랑을 앗아간 유대인 친구 파울 레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다. 여기 서 우리는 니체가 왜 엉뚱하게도 고대 페르시아의 성자 자 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얘기해야만 되었는지에 대한 수수 께끼의 해답 하나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며, 융과 헤세가 왜 그토록 아프락사스 신에 관심을 지녔었는지 알게 되는 것이

다. 그리고 그런 배경을 토대로 융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헤세의 걸작 [데미안]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의 신관이 등장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이 병욱 2002). 자라투스트라의 영어명인 조로아스터는 곧 배 화교의 교주를 의미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영향은 역시 루 살로메가 쥐고 있었다.

독일인과 유대인 모두를 좌절시키면서 그녀가 선택한 최종 배우자는 독일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페르시아계 귀족 가문의 후예인 언어학 교수 칼 안드레아스였던 것이다. 그토 록 시대를 앞서가는 자유분방함으로 지성적 면모를 보이는 듯싶었던 이 러시아 귀족의 딸은 결국 자신과 같은 귀족 신 분의 남성을 배우자로 맞아들임으로서 그녀를 흠모하던 많 은 지식인들을 실망시켰다. 특히 니체는 더욱 그러했다. 그 로 하여금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모순적 구조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일 수밖에 없는 뼈아픈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니체가 페르시아의 성자를 자신의 대변자로 선 택한 다른 이유가 또 하나 있었던 것이다. 칼 안드레아스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실로 높은 경지에 오른 뛰어난 초인 자 라투스트라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영원한 연적이 되고 말았던 안드레아스를 일거에 초라한 인물로 전 락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숨은 동기는 루 살로메의 매우 세속적인 선택으로 인해 그 자신을 크게 실 망시킨 사실에 대한 비난이요 조롱인 동시에 자신의 정신적 승리를 자축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결국 그가 전하는 메 시지는“루, 당신은 고작해야 일개 페르시아 학자를 선택했 지만, 나는 이렇게 위대한 페르시아 성자가 되어 당신과 같 은 한 여자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상대하게 되 었소.” 가 아니겠는가.

초인과 마녀

니체의 초인사상은 플라톤의 철인정치 사상 계보에 속한

다고 볼 수도 있다. 저열한 대중정신에 대해 뿌리 깊은 혐오

감을 지녔던 그로서는 도덕적으로 초월적인 존재의 출현을

갈망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낡은 도덕적 양심에서 벗어

나 새로운 도덕적 이상형을 추구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초인

의 존재로서 인간이 도달되어야할 미래의 인간상으로 보았

다. 특히 그는 무력한 성직자들에 의해 날조된 도덕률을 공

박하고 진정한 초인은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양심의 기원을

신의 음성이 아니라 인간의 가슴 안에 있는 몇 몇 인간의 음

성에서 찾고,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정규적으로 강요되어온

모든 것으로 정의했는데, 이는 바로 프로이트의 견해와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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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일치하는 내용이다(강영계 2003). 결국 따지고 보면,

프로이트가 자신의 후기 이론에서 채택한 초자아 및 이드의 용어도 니체에게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Kaufmann 1992).

이와는 반대로 여성에 대한 그의 혐오감은 쇼펜하우어에 버금가는 성질의 것이라 해도 결코 무리가 아닐 정도로 반 감이 심했는데, 초인사상에 비한다면 일종의 마녀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여성에 대 한 평가절하는 루 살로메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이 직접적인 원인이요, 어머니와 그의 누이동생과의 경험이 간접적인 원 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니체의 삶에서 의미 있 는 관계를 형성했던 네 사람의 여성을 꼽는다면 어머니와 누이동생, 그리고 루 살로메와 바그너의 부인 코지마 등을 들 수 있다. 그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니체를 루 살로메와 떼어 놓기 위해 안간 힘을 썼다. 그리고 실제로 니체는 그 녀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 모 녀에게 루 살로메의 존재는 순진한 니체를 유혹하고 그의 일 생을 망치는 희대의 위험한 요부요 사악한 영혼을 지닌 마 녀였다. 목사 미망인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루 살로메 때문 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위협하며 난리치는 아들에 대해 눈 하나 깜짝 안하면서 자신의 딸에게 말하기를, 그는 결혼 하거나, 미쳐버리거나, 자살하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이들 모녀의 마음에 가 장 걸리는 부분은 그가 결혼하는 것이었다(Peters 1974). 이 들 모녀의 집요한 방해 공작과 설득은 효과가 있어서, 결국 루 살로메는 니체를 버렸으며, 배신감에 치를 떨던 니체도 마침내 그녀를 위험한 마녀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마녀를 이기기 위해서는 신의 도움을 빌어야 하지만 그에게 신의 존 재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당연히 초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인간과 초인]을 통하여 여성을 사냥하는 남성이라는 기존의 관습적 구도를 타파하 고 거꾸로 생명력의 번식을 위해 남성을 사냥하는 신여성인 류의 존재를 희화적으로 그린 바 있다. 그렇다면 니체가 루 살로메의 사냥에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루 살로메가 니체 사냥을 포기한 것인가. 어쨌든 니체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 졌고, 거의 울부짖는 심정으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 했다]의 제 1 부를 단숨에 써내려 간 것이다. 그리고 서구사 회를 향해 일갈하기를,“신은 죽었다” 고 사망선고를 내린 것 이다. 그러나 실제로 신의 죽음에 대한 언급은 자라투스트 라 이전에 이미 그의 [The Gay Science]에 나온 말이었다 (Nietzsche 1972).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는 니체를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철학은 새로운 돌풍 을 몰고 왔다.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모든 일을 용서 받는 청년기는 스스로 아무 것도 용서치 않으며, 스스로 모

든 일을 용서하는 노년기는 아무 것도 용서받지 못한다.” 그 러나 니체는 루 살로메를 결코 용서하지 않은 반면에, 서구 인들은 니체를 용서한 것이다.

니체는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한 자라투스트라의 가르 침을 말하면서,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 자가 어린아이가 되는 과정을 소개했다. 인간의 정신은 무 거운 짐을 싣고 사막을 달리는 낙타처럼 정신의 사막을 달 린다. 그러나 가장 쓸쓸한 사막에서 낙타는 사자로 변한다.

정신은 자유를 획득하고 사막을 지배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사자는 사막을 부정하고 강탈하려 들지만 결국에는 어린애 로 변한다. 창조의 유희와 신성한 긍정의 단계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니체도 한 때는 관습에 얽매여 루 살로메와의 세 속적인 결혼을 갈망하며 스스로 낙타가 되고자 했지만 그러 한 꿈을 포기하고 황폐한 사막 한 가운데서 정신을 지배하 려는 사자로 돌변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어린아이와도 같 은 순수한 긍정의 세계를 통하여 새로운 창조의 유희를 만 끽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라 는 장에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반문한다.

무엇이 무거운가? 억센 정신은 이렇게 묻고 낙타처럼 무 릎을 꿇고 짐을 충분히 싣고자 한다. 용사들이여. 내가 짊 어지고 나의 억센 힘에 기쁨을 느끼게 될 가장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 자신의 오만을 괴롭히기 위해 굴종하는 것, 자신 의 지혜를 비웃기 위하여 스스로 바보인 체 하는 것-이것 이 가장 무거운 짐이 아닌가? 혹은 그들이 자신들의 승리를 축하할 때 우리가 무관심해 하는 것, 유혹하는 자를 유혹하 기 위해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것이 가장 무거운 짐이 아 닌가? 혹은 병석에서 병문안 오는 자들을 쫓아 버리고 그대 가 원하는 바를 결코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와 사귀는 것- 이것이 가장 무거운 짐이 아닌가?

자라투스트라의 이러한 반문은 결국 니체 자신의 실제 경 험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의 가장 무거운 짐은 자신을 유혹하는 루 살로메를 유혹하기 위해 높은 알프스 산에 오 른 니체 자신을 스스로 탓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승 리의 문턱에서 친구 레에게 그녀를 양보하고 스스로 물러나 지 않았던가? 그리고 상심한 그가 앓아누웠을 때 모든 방문 객을 사절하고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과 마주했 던 그의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리 고 왜 이처럼 철학적인 내용을 시의 형태로 써야만 되었는 가? 그것은 머리로 생각해서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심장에 서 솟구치는 울부짖음에 따라 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초인이 되어야 했던 것

이다. 초인의 탄생은 결국 절망의 나락에까지 다다랐던 상

황에서 자신을 구제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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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투스트라의 암호 해독

1883년 초판이 나온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엄밀히 말해서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로 제목을 바꾸어야 한다. 작품 속에서는 니체가 자라투스트라이고 자라투스트 라가 니체이기 때문이다. 분석적으로 말한다면 니체는 의식 적인 자아이며 자라투스트라는 그 자신의 무의식적 부분을 대표한다. 루 살로메는“문학은 꿈과 그 해석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이다”라고 하였다(Stephan 1992). 니체는 자신의 꿈과 현실적 각성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였으며 심각한 우울에 빠졌다. 그리고 자라투스트라를 통하여 그는 일종의 정신적 지옥체험을 통과하였다고 본다. 니체는 물론 개신교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기독교를 혐오했으며, 그렇다고 조로 아스터교를 믿은 것도 아니다. 그는 신의 사망선고를 외쳤 지만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한 적도 없다. 그에게 믿고 안 믿고 하는 문제는 모두가 같은 범주에 드는 것이기 때문이 다. 그가 강조한 것은 믿음(believing)의 문제가 아니라 앎 (knowing)의 문제였다. 따라서 믿음과 불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매우 간단한 일이지만, 안다는 것은 피나는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고 생각한 것이다. 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신을 믿고 안 믿고 하는 일은 너무도 쉬운 일이지만, 신을 안다는 것은 아 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자리는 자라투스트라의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다루는 자리가 아니 며 또한 저자의 본분과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에, 여 기서는 니체의 개인적인 심리적 배경을 탐색하는 선에서 그 칠까 한다.

자라투스트라는 그가 하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Nietz- sche 1999). 그리고 하산 도중에 마주친 한 성자가 여전히 신을 찬양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중얼거린다.“이 럴 수가 있나, 이 늙은 성자는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아직 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자라투스트라는 출발부터 매우 도발적인 화두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 니 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이 과연 기독교의 신을 의미하는지 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그것은 물론 니체의 무의식 속에 내 재된 개신교 목사로서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또는 아버지가 믿었던 하나님을 뜻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니체가 여신처럼 숭배했던 루 살로메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 모두 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다중적 의미일 수도 있다. 융은 자라 투스트라에 대한 세미나에서 단순히 니체 자신의 신에 대 한 반란으로 해석했지만(Jarrett 1997), 그러나 그것은 방 대한 신화에 대한 지식을 보유한 대가의 해석치고는 너무

도 평이한 논평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니체는 신적인 존 재를 여전히 믿고 있는 성자에 대하여 매우 빈정대는 투로 말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아름다운 여신에게 버림받은 한 고독한 철인의 좌절과 낙담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빈정거림 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늙은 여인과 젊은 여인에 대하여]의 장에서는 위험한 여 인에 대한 경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갖고자 하니 그것은 위험과 유희 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인을 가장 위험한 장난감으로서 소 유하고자 한다. 남자는 전쟁을 위해서, 그리고 여자는 용사 의 휴식을 위해서 교육되어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은 어리석 은 것이다. 너무 달콤한 과일-용사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다. 가장 달콤한 여인도 쓰디쓰기 때문에 그는 여인을 좋아 한다. 여자는 남자보다 아이를 더 잘 이해한다. 그러나 남자 는 여인보다 더 아이 같다. 진정한 남자에겐 유희를 하려는 아이가 숨어 있다. 그대 여인들이여, 일어나라. 그리하여 남 자들 속에 있는 아이를 찾아내어라.

그러므로 니체는 세상의 모든 남성들에게 경고한다. 여자

란 유희를 원하는 남성들을 유혹하지만 달콤한 여인일수록

위험한 법이며, 동시에 모든 남자들은 어린아이 같은 경향

이 더욱 강해서 여자들의 손아귀에 더욱 잘 놀아날 수 있

는 위험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니체가 루

살로메에게 당했던 뼈아픈 경험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물

론 여자가 지닌 강력한 힘에 주의를 환기시킨 말이지만, 그

렇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휴식을 위해 교육시켜야 한다

는 부분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사기 쉬운 말이 될

것이다. 그 때 자라투스트라가 만난 늙은 여인이 그에게 던

진 충고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그대는 여자에게 가려고 하

는가, 그렇다면 채찍을 잊지 말게나.”여자를 찾아 가는데

난데없이 채찍이 왜 필요한가? 채찍은 니체에게 어떤 의미

가 있으며 또한 무엇을 연상시켰는가. 여자를 때리고 혼내

주라는 말인가. 아니면 가학적 환상의 표출인가. 니체는 루

살로메에게 청혼을 거절당하고 절망감에 빠진 이후 자라투

스트라의 제 1 부를 단숨에 썼다고 했다. 스위스 뤼체른에서

그리고 알프스 산중에서 루 살로메와 니체 그리고 친구 파

울 레 사이에는 서로 간에 미묘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엉

킨 채 각자 다른 동상이몽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함

께 찍은 사진에서 루 살로메는 오른손에 채찍을 들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니체는 그녀에게서 당한 배신감 그리고 모

욕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채찍은 그래서 필요했던

것이다. 자존심 강한 니체의 입장에서 그녀로부터 당한 거

절감은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감과 모멸감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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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켰으며 그러한 굴욕적인 감정은 강렬한 분노감과 복수

심을 야기했다. 그리고 채찍으로 상징되는 가학적인 복수심 은 전체 여성에 대한 혐오감과 평가절하로 이어졌으며 그러 한 혐오감 때문에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야만 되었다.

[아이와 결혼에 대하여]라는 장에서 니체는 드디어 자신 의 강한 질투심을 드러낸다. 결혼을 두 마리 짐승의 결합이 라고 비하시키며 경멸조로 말한다. 그리고 자신처럼 쓰라린 상처를 겪어본 자만이 진정한 사랑에 눈 뜰 수 있는 것처럼 훈계하고 있다. 가면 쓴 여인을 맞이하는 남성들의 어리석 음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지 만 그것은 바로 그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니체는 사 랑하는 법을 제대로 몰랐던 것 같기 때문이다. 비록 배우지 도 못하고 깨달음도 얻지 못했지만 순박한 사랑으로 살아가 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 사나이는 품위가 있으며, 또한 대지의 의미에 대해서 도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그의 아내를 보았을 때, 대지는 한낱 놈팡이들의 소굴로 보였다. 그렇다. 성자가 한 마리의 거위와 결합했을 때, 나는 대지가 진동하며 발작하 기를 바란다. 이 자는 영웅처럼 진리를 찾아 나섰지만 드디 어 작은 거짓을 얻었다. 그는 그것을 자기의 결혼이라 불렀 다. 그러나 결혼이란 대부분 두 마리의 짐승이 서로 결합하 는 것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초월하여 사랑해야 한다. 그러 기 위해서는 우선 사랑하기를 배워라! 그러기 위해 그대들 은 쓰디쓴 사랑의 축배를 들지 않으면 안 된다.

루 살로메와 안드레아스 교수의 결합은 니체가 보기에 너 무도 세속적이면서도 위선적인 결합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 것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단지 서로의 필요성에 따른 계약 결혼과도 같은 눈속임에 불과한 것임을 그는 간파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결혼에 대해 계속되는 빈정거림은 소외된 자신에 대한 위안 처럼 들리기도 하고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여 아 무에게나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니체는 사 랑의 소유욕을 탐욕이라고 불렀는데, 사랑과 탐욕은 똑같은 본능의 각기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Nietzsche 1974). 따라 서 그는 [순결에 대하여]라는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숲을 사랑한다. 도시에 산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거기에는 너무도 부정한 여인들이 많다. 부정한 여 인의 꿈보다는 살인자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이 낫지 않 은가?

그러나 니체는 [독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라는 장에서 분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위선적인 술수를 부리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위선적으로 위에 올라서려는 심리를 반 영하는 것으로 매우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는 것이다. 물론 분노의 억압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모두 독이 된다는 사실 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말처럼 되지 않는 것이 분 노의 감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당신에게 적이 있다면, 그 원수를 은혜로써 갚지 말라. 그것은 그를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보다 는 그가 당신을 이롭게 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하라.

여기서 니체는 자신의 분노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 한다. 자신의 분노를 부정하고 악을 선으로 보답하는 식으로 행하는 것은 결코 두 사람 모두에게 이롭지 못함을 설파한다.

그는 계속해서 주장하기를, 차라리 화를 내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전혀 복수심을 품지 않는 것보다는 약간 품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 는 말이기도 하다. 니체 자신도 루 살로메의 배신이 없었다 면 그의 자라투스트라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너 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루 살로메는 그 를 이롭게 한 셈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독 거미에 대하여]라는 장에서 죄의식에 빠진 그는 복수심으로 부터의 해방을 부르짖는다. 그리고 마음속에 남을 처벌하려 는 강한 충동을 지닌 모든 자들을 의심하라고 외친다.

욕될지어다! 나의 옛날의 적인 독거미는 나를 물었다. 신 성하고 확실하고 아름다운 나의 손가락을 물었다.“형벌과 정의가 있어야 한다.”독거미는 이렇게 생각한다.“그는 여 기서 헛되이 적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그 렇다. 독거미는 스스로 복수하였다. 슬픈 일이다! 이제 그것 은 복수로써 나의 영혼까지 현혹시킨다. 나의 친구들이여, 내가 현혹당하지 않도록 나를 여기 이 기둥에 단단히 매어 두라! 복수의 회오리바람이 되느니 차라리 기둥에 매인 성 자가 되련다!

이렇게 해서 니체는 자신을 사로잡은 배신감과 분노와 좌

절, 그리고 강한 복수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마음의 독을

스스로 치유한 것이다. 그는 일관되게 약자에 대해 강한 적

대감을 보였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약함을 감지했기 때

문이 아닐까 한다. 니체야말로 건강이 좋지 못해 항상 약을

달고 살았으며 사랑에도 실패하고 현실 적응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장본인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한 실

패를 통하여 그리고 절망의 깊은 심연에서 범인들이 보지

못한 인간 정신의 비밀을 목격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가

까이 [취가(醉歌)]의 장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6)

니체의 자라투스트라에 대한 분석적 읽기

166

아! 개는 짖고 달은 밝다. 내가 한밤중에 생각하는 것을 그 대들에게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어버리련다! 이제 나는 이 미 죽어버렸다. 다 끝나버렸다. 거미여, 그대는 왜 내 주변 에 거미줄을 쳤는가? 그대는 피를 원하는가? 아! 이슬이 내 리고 때는 다가온다.

그대들 고귀한 인간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나 는 예언자인가? 나는 몽상가인가? 아니면 술주정뱅이인가?

또는 한밤중의 종소리인가? 아니면 이슬방울인가? 혹은 영 원의 향기인가? 그대들은 그것을 듣지 못하는가? 그대들은 그것을 냄새 맡지 못하는가? 이제 내 세계는 완성되었다. 한 밤중은 또한 대낮이다.

여기서 니체는 드디어 덫에 걸린 삶의 어두운 터널을 빠 져나와 밝은 대낮을 맞이한다. 그에게는 캄캄한 한밤중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술 취한 자의 헛소리로 듣는다 해도 그는 자신의 예언적 음성에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은 죽음 의 심연을 걷는 과정을 통하여 새롭게 허물 벗은 자만이 느 낄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던 것이다. 적어도 니체는 그 런 점에서 비록 자신을 버린 루 살로메였지만 그녀와의 뼈 아픈 경험을 통해 그만의 자유로운 세계에 도달하는 행운 을 얻은 것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과연 니체로 하여금 그러한 성찰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겠는가? 자라투스트라는 그런 점에서 니체와 루 살로메 의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니체의 정신병리

니체는 정신이상 상태로 1900년에 누이동생의 품안에서 죽었다. 그러나 루터파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 역시 정신이 상으로 1848년에 죽었다. 물론 이들 부자의 정신이상에 유 전적 요인이 관계된 것인지 그 여부는 확인된 바 없다. 1889 년 그의 첫 발작 이후 그가 입원했던 바젤 정신병원에서 그 에게 내린 진단은 매독에 의한 진행성 마비였다. 그러나 오 늘날의 관점에서 그의 병력을 자세히 검토한 프랑스의 정신 과의사 Roge ´(1999)는 조울병을 진단하고 있으며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도 조증상태에서 단숨에 써내려간 것으로 본다.

두 가지 병명이 다 맞는다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적절한 치 료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 했을 것이다. 어쨌든 수개월 만에 병원을 퇴원한 이후에는 1897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8년간 그녀의 간호를 받았으며, 그 뒤에는 파라과이에서 귀국한 누이동생이 그를 죽을 때까지 돌봤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그의 자

라투스트라 집필을 전후해서 보여준 심리적 상태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에 말년에 그가 보인 정신상태를 문제 삼지는 않 겠다.

니체가 자라투스트라의 집필에 들어가기 전, 그는 엄청난 정신적 혼란과 위기에 빠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 한 위기를 유발한 것은 루 살로메가 자신을 버리고 유대인 친구 파울 레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는 한 때 친 구 파울과 깊은 사이인줄도 모르고 루 살로메를 자신의 집 에 초대하여 그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직접 대면시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모녀의 눈에는 그녀가 아무리 아름답 고 지적인 총명함에 빛나는 여성이었다 하더라도 마음에 들 리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모녀간에는 니체를 독 점하려는 경쟁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예리한 감 각을 지닌 루 살로메가 그런 사실을 놓칠 리가 없었을 것 이다.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를 오가며 누구를 선택할 것인 가에 고심하던 루 살로메는 결국에는 두 사람 모두를 포기 하고 언어학 교수였던 칼 안드레아스를 평생의 반려자로 선 택한 것이다. 그녀의 최종 선택은 니체와 레, 그리고 프로 이트의 제자 타우스크 등에 충격을 주었다. 이들 가운데 두 유대인 레와 타우스크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다. 루 살로메는 1894년에 쓴 글에서 자신이 니체와 교 류할 때 이미 그의 정신상태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으며, 실 제로 그에게 그의 저술내용과 정서적 불안정 상태의 관계 를 언급하고 충고까지 했다고 주장했다(Andreas-Salome 2001). 그녀가 보기에는 니체의 심리적 불안정 상태가 그 의 철학 전개 과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녀의 주장은 자신으로 인해 야기된 여러 문제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니체 자신의 문제로 전가시키기 위한 것으로 평가 되기도 했지만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보인 심각한 우울증이었다. 그는 외

부와 단절한 채 두문불출했으며 그의 우울증은 자살을 계획

할 정도로 심각했다. 더욱이 그 자살은 단독 자살이 아니라

전 세계를 끌어안고 공멸할 성질의 실로 거대한 동반 자살

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혼자만 죽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

를 죽이고 또한 그 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기독교인들을 끌

어안고 함께 죽는 자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구 파멸 망

상은 아니더라도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를 전복시킬 의도는

충분히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복수심의 발

로이기도 하다. 물론 그러한 복수심은 루 살로메를 향한 것

이며 자신에게 시련과 고통을 안겨준 잘못된 서구문명의 구

조적 모순도 포함해서였다. 그의 삶에 유대인이 개입되지만

않았다면 그는 사랑과 종교를 모두 거머쥘 수 있었을지도 모

(7)

李 炳 郁

167

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상황에서 그가 헤쳐 나

올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제 3의 길이었을 것이다. 니 체는 그것을 낯선 이국의 땅 페르시아의 성자 자라투스트 라에서 찾은 것이다. 강한 복수심과 분노, 그리고 죄의식과 자살 충동, 이처럼 철인 니체를 혼란에 빠트린 장본인이 일 개 한 여성이었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도덕적 양심에 대한 반란을 도모했던 니체로 하여금 죄 의식을 느끼게 했던 마음속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 금해진다. 비록 그의 의식적인 자아는 자신의 초자아에 반 항을 꾀했지만 니체의 무의식적 초자아의 존재는 여전히 막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점이 니체의 한계였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근친상간적 욕구에 관한 것이다. 물론 니체의 근친상간적 소망은 분석적 해석의 결과 가 아니라 그 자신의 고백이기도 하다. Nietzsche(1951) 는 자신의 누이동생 엘리자베트에 대한 은밀한 욕망으로 평 생을 두고 괴로워했다. 목사의 자녀들로서 이들 남매의 긴 밀한 관계는 어릴 때 한 침대에서 서로의 따스한 체온을 느 꼈던 이후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소년시절에는 누 이동생을 위해 수많은 시를 쓰기도 했으며 그녀는 그런 오 빠의 시를 오래 간직했다. 이처럼 다정한 오누이 사이에 갑 자기 나타난 루 살로메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매우 뛰어 난 인물이었으며, 질투심에 빠진 노처녀 엘리자베트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빠와 루 살로메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두 여성의 만남을 Peters(1974)는 판이한 기질의 두 여성들 간에 벌어진 한 판 대결로 묘사했다. 한 쪽은 용감하고 자유분방한 여자였고, 다른 한 쪽은 독선적 이고 소심한 여성이었다. 루 살로메는 니체와 파울 레 사이 에서 고민했지만, 니체는 루 살로메와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다. 결국 루 살로메가 의외의 인물과 결혼함으 로써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그 후유증은 매우 컸다.

아버지의 종교를 부인하고 어머니를 그토록 증오했던 니 체는 자신의 근친상간적 욕구의 대상을 어머니로부터 누이 동생에게로 돌렸던 것이다. 그러나 루 살로메에 빠져있던 오 빠에 대한 실망감과 더불어 세속적 야심에 가득 찬 엘리자 베트는 1885년 당시 독일에서 이름을 날리던 반유대주의자 인 동시에 바그너 숭배자였던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결혼 하여 남미 파라과이에서 새로운 독일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남편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려는 야망에 들떠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그 계획은 무산되고 남편도 결국 자살하고 마는 비운을 겪었다. 니체 는 그녀의 남편을 끔찍이도 싫어했었는데 그것은 정치적인 이유보다는 누이동생의 사랑을 빼앗아 갔기 때문일 것이다.

한 때 그녀는 병든 오빠에게 파라과이에 가서 자기와 함께 살 것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Nietz

-

sche 1951).

이와는 좀 다른 관점에서 Koehler(2002)는 니체의 동성 애적 성향을 주장했다. 그러나 니체는 자신의 동성애적 욕 구를 행동으로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하였으며 그로 인해 고 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는 편두통과 복통 등에 시달렸으며 밤마다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의 주변 인물들 과의 관계가 순탄치 못했던 것도 동성애 때문이었으며, 실 제로 니체는 이태리에서 시인 바이런의 도착적 행위를 흉 내 내기도 했다는 것이 쾰러의 주장이긴 하지만 그러나 입 증된 사실은 아니다. 물론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사실에 비 추어 본다면 그런 의구심도 받을만하지만, 그의 근친상간적 욕구와의 관련성을 생각해 볼 때, 동성애 문제는 그 가능성 이 희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없이 자란 니체의 초자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진다. 그에게 주어진 우상파괴자로서의 모습은 당연히 그의 도덕적 기준에 의문을 가질 수가 있지만, 그의 [도덕계보학]

은 바로 그러한 양심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 흔히들 니체에 대하여 반도덕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렇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양심과 영혼의 형성 과정이 내재 화(internalization)에 의한다고 했으며, 또한 그는 여기서 나 쁜 양심을 심각한 병으로 여긴다고 분명히 말했다(Nietz

-

sche 1969). 그것은 초자아 기능의 이상을 프로이트보다 앞서 이미 언급한 내용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양심을 병으로 본 것은 물론 아니다. 니체의 초자아는 오히려 매우 엄격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형적으로는 반도덕 을 외친 것 같지만 그것은 도덕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가치관에 대한 도전이었다고 본다. 물론 아버지 없 이 자란 그에게 어떤 발달상의 문제를 논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심과 도덕적인 측면에서 그 어떤 결함이 발 견되는 것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의 강한 초자아는 쾌락 과 탈도덕이라는 명제에 부딪쳐 극심한 혼란을 겪은 것으 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점에서 이창재(2005)는 니체가 명확한 가치 기준의 제시 없이 은유적 유희에 멈춘 결과, 학 문과 비학문을 오락가락하는 몽상가로 오해받는 여지를 남 겼으며, 그 때문에 여전히 이분법적 사유체계를 극복하지 못 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 경험의 부재는 그의 남성성

형성에 그 흔적을 남겼으리라 짐작된다. 한창 자랄 나이에

그는 여성들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외관상으로는 니체가 매

우 강한 남성적 인상을 풍기지만 내면적으로는 수줍고 소

극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여성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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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자라투스트라에 대한 분석적 읽기

168

및 약자에 대한 경멸감은 그 자신의 여성적 수줍음에 대한 부정일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을 돌봐준 여성들에 대한 양가 적 태도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어 머니를 폭군으로 부를 정도로 그녀에 대한 증오심이 컸는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별다른 애도반응을 보이지 않았 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진정한 첫 여성은 어머니가 아니라 누이동생이었다고 고백했다(Nietzsche 1951). 그가 루 살 로메에게 이끌렸던 것도 그녀의 강한 남성적 이미지에 압도 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는 매우 수줍은 청년처럼 그녀 에게 접근했지만 루 살로메는 그녀 자신의 문제 때문에 오히 려 자신을 돌봐줄 강한 남성을 원했던 것이다(이병욱 2004).

적어도 그녀에게는 니체의 존재가 자신이 바라는 그런 남성 상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니체가 보인 전지전능적 과대사고는 좌절과 실의에 빠진 상황에서 동원된 그의 퇴행적이고도 유아적인 나르시시즘의 표출로 보인다. 그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나 이전의 철 학자들 중에서 도대체 그 어느 누가 심리학자였단 말인가?”

라고 묻고 있다(Nietzsche 1969).

이 말은 그 자신의 자부심의 발로일 수도 있고, 자신의 연 약함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감 때문에 오히려 과대적 사고를 동원하여 그것을 극복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Miller (1991)는 니체의 아동기 외상적 경험을 말하고 지나친 적 대적 감정의 억압으로 인해 그의 내면화된 잔혹성이 반복 되어 표출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다소 거칠고 난폭 한 말투는 글쓰기를 통해서 나타난 것이지 실제의 그의 모 습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자라투스트라의 글쓰기는 분 명히 그에게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일 종의 승화 기제를 통하여 그는 자신을 억누르는 심적 부담 감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재들의 글쓰기에서 엿볼 수 있는 자족적 측면을 결 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Pletsch 1984).

니체는 분명히 천재임에 틀림없다. 또한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지 결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천 재일수록 심리적 갈등과 고통이 더욱 클 수도 있다. 동시에 모순된 행동으로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Pletsch(1987)는 천재의 개념을 일반인들이 너무 안이한 방식으로 남용한다고 보고, 천재를 하나의 문화적 범 주로 간주했다. 특히 니체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한 천재 에 관한 전기는 어차피 창작일 수밖에 없으며, 그가 남긴 기 록들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 기보다는 단지 기억의 흔적만을 다루기 쉽다는 것이다. 융 의 회상록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 위대한 철인의 작품을 통하여 그가

겪은 삶의 흔적을 탐색하는 작업은 매력적임에 틀림없다. 물 론 지금까지 검토한 문제들은 니체의 본질에 다가서기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니체가 겪게 된 이처럼 다양한 심리적 혼란이 그의 철학에 어떤 영향을 주 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Rosen(1995)도 지적하였듯이 니체를 통하여 알 수 있는 점은 그가 매우 모순된 이중성을 보여주었다는 것 이다. 다시 말해서 혼돈과 무지의 철학을 말하는가 하면 초 인과 권력에의 의지를 주장하기도 하는 등, 서로 상충되고 일관성 없는 철학을 내세움으로써 통일된 하나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니체의 혼란된 심 리 상태를 고려한다면 그 정도의 모순성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고 본다. 천재는 오히려 완전치 않다. 적어도 인간 적으로 보거나 심리적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니체의 자라투 스트라는 특히 그렇다. 다른 방대한 저작들과는 달리 그것 은 니체의 삶에서 가장 위기에 몰린 시기에 나온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는 결국 자기 치유를 위해 자라투스트라 를 썼던 것이다.

맺 음 말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일종의 고백록인 동시에 그 자신 의 소망과 백일몽을 철학적인 사색의 형태로 표현한 것으 로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뜨거운 철학적 성찰은 수많은 사 람들에게 실로 상상할 수 없는 강한 충격과 깊은 영향을 주 었지만, 그 철학적 메시지에 담긴 니체 자신의 심리적 배경 을 탐색하는 작업은 그의 철학 내용 자체를 다루는 일보다 더욱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의 삶에 대한 많은 연구 성과들에 입각해서 그의 작품 배경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 수 있다. 루 살로메의 존재가 없었다면 니체의 자 라투스트라는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녀의 존재는 이 작품 탄생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열쇠를 지닌 인물이었다.

또한 루 살로메를 중심으로 벌였던 유대인 친구 파울 레 와의 경합과 그리고 그의 투신 자살,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 를 오가며 그 선택에 고심하던 루 살로메가 결국 두 사람 모두를 버리고 최종적인 배우자로 선택한 페르시아계 안드 레아스 교수에 대한 미묘한 감정 등이 주된 동기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결국 친구와 연인, 그리고 누이동생까 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비극의 탄생]을 썼던 니체였지 만 그 자신이야말로 진정으로 비극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과 절박한 자살 충동의 위기의 순간에

(9)

李 炳 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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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니체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페르시아의 성자 자라투스트

라였으며 그는 이 성자의 입을 빌어 자신의 내적 고통과 소 망을 거의 울부짖는 목소리로 토해낸 것이다. 목사의 아들 로 태어나 자신의 신학적 배경을 거부하고 신의 고향인 유 대인의 땅이 아니라 머나먼 동방의 낯선 페르시아의 성자에 게서 새로운 기원을 찾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그동안 숨막 히는 기독교문명에 식상하고 있던 많은 지식인들에게 신선 한 해갈의 효과를 제공하기도 했다. 따라서 니체의 시선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하고 있었으며, 이는 미래가 아니 라 과거에 시선을 고정시킨 프로이트와 매우 대조적인 모 습을 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관심과 재해석 은 미래를 전제하는 것이기에 과거와 미래는 전혀 무관한 것 이 아니며, 동시에 니체가 말한 초인도 자신에 대한 통찰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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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자라투스트라에 대한 분석적 읽기

170

ABSTRACT

Psychoanalytic Reading of Nietzsche’s Zarathustra

Byung-Wook Lee, M.D.

Nietzsche’s Zarathustra is the most popular masterpiece among all metaphysical writings. I am not interested in Nietzsche’s psychiatric condition, including the controversial diagnosis, but rather in the psychological backgrounds of his stormy and anguished composition of Zarathustra. I think that his Zarathustra seems to be a kind of covertly confessional crying, and the philosophical expression of Nietzsche’s personal wishes, daydreaming, regrets, and enormous rages.

I suspect that the events that directly triggered Nietzsche’s composition of Zarathustra were the love affair with Lou Salome and her direct rejection of him. He had a break down and psychic crisis immediately afterwards.

Although he had previous many psychological problems including the incestuous attraction to his younger sister, negative effects from his mother, early loss of father and a failed love affair, he seemed to be reborn and purified through the cathartic effects of his writings of Zarathustra, and he felt being cured temporarily.

But I wonder why he spoke of his psychological yearnings through the mouth of the famous ancient Persian pro- phet Zarathustra. He declared daringly that God is dead. Western people believe that their God is the same as the Jewish God Jehovah. I mean that why didn’t he make a choice of Israel, and why he did select Persia. I suspect that there were special meanings. First, his Jewish friend Paul Ree was a plunderer of his lover Lou Salome. Secondly, Professor Carl Andreas who married Lou Salome was a second plunderer, and his original root was the Persian. Of course I believe that Nietzsche was not racist, but seemed to be very ambivalent to the Jewish especially just after the departure with Lou Salome.

Lou Salome wandered between the German and the Jew for the choice of her marital partner, but she decided to the Persian. Nietzsche wandered about between Lou Salome and his younger sister for his eternal soul mate, but he lost all things. I think that he was a really tragic man.

KEY WORDS

:Nietzsche·Zarathustra·Lou Sal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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