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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경험평가를 통한 환자중심성 향상 근거, 의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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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안

1. 들어가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환자경험평가를 곧 시행할 예정이다. 새로운 영역의 질 평가 도입 전 후로는 주로 기술적인 사항에 논의가 모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평가의 목적을 올바로 구현하 기 위해서는 그런 실행 차원의 논의 못지않게 가치와 이론적 차원의 논의도 중요하다. 이 글에 서는 먼저 환자경험평가가 추구하는 가치인 환자중심성이 한국 의료에서 중요한 문제인지, 그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서술하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건강보험체계에서 환자경험 접근 법을 채택하는 근거, 환자경험평가의 의의를 다룬다. 마지막으로 환자중심성 향상을 위한 다수 준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2. 환자중심성은 한국 의료에서 중요한 문제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문제 영역을 살필 것인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세계보건기구(WHO)가 2000년 국가별로 의료체계의 성과를 평가할 때 사용한 세 가지 영 역을 참고하기로 한다(WHO, 2000). 먼저 당연히 국민의 건강 상태가 포함되어 있다. 건강 상태는

환자경험평가를 통한 환자중심성 향상:

근거, 의의, 과제

도영경*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 글쓴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2015)과 서울대학교병원(2016)으로부터 각각 연구비를 지원받아 환자중심성 관련 주제로 연구를 수행한 바 있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환자경험평가 분과에 참여한 바 있음을 밝힙니다. 이 글의 일부 내용은 2016년 5월 개최된 한국보건행정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습니다. 학술대회에서 의견을 주신 분들과 위의 두 연구를 함께 수행한 공동연구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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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서비스의 기술적 수준, 접근성과 효과성과 같은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두 번째 영역은 의 료비 부담이다. 가계에 부담을 주는 재난적 의료비의 발생 빈도나 소득 계층 간 의료비 부담의 공평성 등이 고려 사항이다. 남은 하나는 반응성(responsiveness)으로서 환자가 의료에 대해 갖 는 기대를 의료체계가 얼마나 충족하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질병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 이 겪을 수 있는 존엄성과 자율성의 침해, 불안과 수치심 등의 문제에 대처하는 의료체계여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 반응성과 초점이 다르지만 비슷한 개념적 구성을 공유하는 것이 환자중심성(patient–centeredness)이다. 반응성이 의료체계의 성과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 었다면, 환자중심성은 주로 의료의 질을 구성하는 요소로 사용되었다. 이 글에서는 구분하지 않 고 섞어 쓰기로 한다. 이제 위의 세 영역을 차례로 살펴보자. 먼저 국민의 상당수가 큰 어려움 없이 질병에 걸렸을 때 효과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응급의료, 재활의료, 장기요양 등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고, 분만 의료와 같이 지역별로 편차를 보이는 의료서비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과거의 TV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보던, 국내 의료진의 실력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질병의 치료를 위해 외국으로 간다든 지 하는 일은 이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학술지의 연구 결과나 통계를 보더라도 일부 질병 치 료의 경우에는 유럽이나 북미 국가보다 치료 성적이 더 좋게 나타나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 허 혈성 뇌졸중 입원 후 30일 내 사망과 같은 급성기 질병의 치료 성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OECD, 2015). 이는 한국 의료가 적어도 의학 지식과 기술에서는 선진 외 국에 비해 뒤처지지 않음을 시사한다. 효과적인 의료서비스를 제때 제공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 을지라도 그것은 의료기관의 분포나 인력, 연계 등 관련 제도의 문제가 크지, 의학 지식이나 기 술의 문제라기 보기는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의 규모와 성격을 꽤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 이다. 의료서비스 적정성 평가를 통해 다양한 진료 영역에서 의료의 질을 측정해 왔고, 질 향상 을 위한 자원 투자나 재정적 지원과 같은 제도 개선 노력도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살펴 볼 영역은 의료비 부담이다.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4년 현재 63%이다. 이는 평균적으로 전체 진료비 중 63%만 건강보험이 보장해 준다는 의미이다. 이 수치는 유럽 고소득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경증 질환의 경우 에는 나머지 37%가 큰 부담이 되지 않지만 중증 질환이나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이 야기가 달라진다. 중증 질환의 경우 소득 대비 일정 비율 이상의 의료비를 지출하는 재난적 의 료비 발생 위험이 있다. 재난적 의료비는 소득을 분모로 삼기 때문에 가난한 계층에 더 많이 발 생하는 불평등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으로 정부는 여러 보완책을 도입해 왔다. 암 등 중증질환과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산정특례제와 소득계층별로 다른 기준 을 적용하는 본인부담 상한제 등이 그 예이다. 다시 TV 방송의 예를 들면, 과거에는 심장병 환 아 돕기 모금과 같은 방송 행사가 자주 있었지만 요즘에는 흔히 볼 수는 없다. 비급여 서비스의 확대로 인해 의료비 본인부담의 감소가 체감할 정도로 뚜렷하지는 않지만 필수적인 의료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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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안 이용에 있어서는 과거에 비해 의료비 부담의 문제가 개선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고액의 본 인부담 의료비 발생 위험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에 대한 가계의 반응이 민간의료보험 가입으로 나타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소득, 재산 등 기준에 따라 보험료가 부과되는 건강보험과 달리 민간의료보험은 가입자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여 보험료를 달리 책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일한 민간의료보험 상품에 가입한다면 고소득층에서 비해 저소득층은 가계 소득 대비 보험료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료비 부담의 공평성 면에서 두 가지 방향의 다른 힘이 작 용한다. 소득, 재산 등 기준에 따라 건강보험의 보험료 부과가 의료비 부담의 공평성을 향상하 는 방향이라면,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낮아 발생하는 본인부담과 가계의 민간의료보험 보험료 지출은 공평성을 저해하는 방향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문제 역시 그 규모와 성격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재정 문제이니만큼 공식 계정이 이미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급여와 민간의료보험의 경우 별도의 자료 수집이 필요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다. 지금부터는 의료체계의 반응성, 환자중심성 영역을 생각해 보자. 입원 진료 중 의료진의 경 청, 환자에 대한 존중과 예의, 환자가 예측 가능한 회진 시간과 변경 시 정보 제공, 담당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 치료나 검사 전후 이해하기 쉬운 설명, 함께 하는 의사결정(shared decision making), 환자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한 노력 등의 측면에서 환자들의 경험은 어떠한가?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전체적인 수준은 물론, 어떤 유형의 의료기 관이나 어느 지역에서 문제가 더 심각한지, 시계열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추이인지 아닌지도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환자로서 입원 진료를 받은 사람들의 일화적 경험이나 질적 연구는 한국 의료의 환자중심성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하나의 예로, 2014년에 수행된, 퇴원 환자와 보호자 12인을 대상으로 한 초점집단토의 결 과를 일부 소개하기로 한다(도영경 등, 2015). 참가자들은 여러 긍정적 사례 역시 언급하였지만, 여기서는 문제점을 파악하려는 목적에 따라 부정적 경험 사례를 옮긴다. 먼저 아래는 의료진 중 의사에 관한 부정적 경험의 요약이다. •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물건 취급하듯 함 • 의료진의 실수, 오류 등을 은폐하려 함 • 전문성에 대한 아집과 고집이 있어 환자나 타 의료진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음 • 환자 상태, 치료 계획, 예후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음 • 환자/보호자 또는 동료 의료진(간호사, 주치의 등)을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태도 • 환자의 문의나 상담을 귀찮아 함 • 환자와의 접촉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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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간호사에 관한 부정적인 경험으로 제시된 내용이다. • 토한 중환자의 환자복/침대 시트 방치 • 통증 호소 환자 외면, 방치 • 입원실 운용, 검사 일정 등 문의사항에 대한 설명 부족 또는 관심 회피 • 환자/보호자가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상황 회피 • 특실 환자와 일반실 환자에 대한 차별대우(응대 신속성, 친절성) • 무뚝뚝하거나, 도움이 필요한데 본척만척 하는 상황 중환자실 입원 중인 소아 환자의 보호자가 말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아이가 균에 감염이 됐는데 무슨 균에 감염이 됐습니까 물어보면 알아서 뭐 할 건데 라고 말하더라고요.” “엄마, 그렇게 귀찮게 하면 내가 애를 보고 있는데 내가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해? 그럼 아무 얘기도 못 해요. 중환자실에서 이 주치의가 보는데 엄마 그렇게 귀찮게 하면 내 가 애를 어떻게 보냐고 하면 찍 소리도 못해요.” 다른 중환자실 환자 보호자가 말한 내용이다. “중환자실은 하루에 면회가 안 되잖아요. 면회를 들어갔는데 애가 꼼짝도 못 하고 있는데 토 해서 온 몸이 다 젖고 침대가 젖어 있어요. 말을 하려다 피해가 갈까 봐 아무 말도 안 하고 가운 을 갈아 입혔어요. 근데 이튿날 가니까 또 그래요.” 이 12인의 초점집단토의 참가자들은 예외 없이 입원 진료 중 여러 가지 부정적 경험을 언급 하였다. 여기에 옮기지 않은 긍정적 경험이 많다고 해서 이러한 부정적 경험이 중화될 수는 없 다. 물론 이들이 모든 환자와 보호자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한국 의료 에서 환자중심성은 의료서비스의 효과성이나 의료비 부담과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임 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발전시켜 온 대처 전략을 보는 것은 문제의 성격을 유추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 가지 흔한 대처 전략은 친인척이나 지인 가운데 작은 ‘연줄’이라도 찾 아 동원하는 것이다. 해당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을 통해 담당 의료진에게 연락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다. 글쓴이가 2016년에 약 60 명의 병원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던 중 간단한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타 인이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담당 의사 또는 의료기관에 연락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에 약 80%가 그렇다고 답하였다.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 전이었으므로 입원이나 수술 일정을 앞당기고자 하는 부탁도 있었겠지만, 해당 환자가 ‘아무 보통 환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떤 특별 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고자 하는 의도 역시 있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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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안 사람이라면 다반사로 겪는 일이다. 이런 현상은 최첨단 의료기술과 공존하는 한국 의료의 전근 대적 일면이다. 제도가 마땅히 보장해야만 하는, 입원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관심 수준이 보편 적으로 높지 않다고 환자들은 느끼고,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개인의 사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잘 봐 달라’고 부탁하는 대처 전략을 도입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자원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은 불공정하게 배제될 수밖에 없고 제도에 대한 불신이 싹트게 된다. 각자도생의 다른 흔한 전 략은 촌지이다. 퇴원하는 환자가 순수하게 감사의 뜻으로 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김영란법’ 시 행 이전에 입원 중인 환자의 보호자들이 의료진에게 음식을 전하는 것은 꽤 흔한 일이었다. 이 역시 공적 시스템의 미비를 개인의 경제적 자원을 통해 극복해야 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요컨 대, 입원 진료 시스템 안에서 보편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의료진의 관심 수준이 불충분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인맥이나 촌지와 같은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개인 수 준에서 해결하는 식으로 적응해 왔다. 한국 사회에서 공공성의 미비를 사적 자원으로 충당하는 또 하나의 예이다. 지금까지 WHO가 의료체계의 성과 평가에서 사용한 세 가지 영역별로 각각이 한국 의료에 서 중요한 문제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밝히지만, 여기서 환자중심성 영역을 상대적으로 강조하였다고 해서 다른 두 영역에 비해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 은 아니다. 다만 다른 두 영역에 비해 환자중심성 영역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는 점을 언 급할 필요가 있다. 첫째, 환자중심성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가치이다.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만 당장 환자중심성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라는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 다. 둘째, 관련된 문제점으로서 환자중심성은 관련 자료의 수집이 쉽지 않고 기존 행정 자료를 통해 축적되지 않는다. 의료기관 분포의 지역적 불평등이나 재난적 의료비 발생률과 같은 구체 적, 계량적 지표가 쉽게 산출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셋째, 그러다보니 문제의 규모나 성격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존재하는 단편적인 질적 연구나 일화적, 서술적 이야기 수준으로는 사회 문제를 정책 문제로 전환시키는 데 있어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넷째, 의료서비 스 제공과 의료비 부담은 각각 제공체계와 재정체계로 담당 정책 단위가 명확하게 존재하나 환 자중심성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의료 정책의 양대 축이 제공체계와 재정체계로 구성된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의료의 질에 관한 정책적 노력이 확대되면서, 제공체계와 재정체계 관 련 정책이 의료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주목되고 있으나 여전히 적정성평가는 기술적 질에 머물 러 있었다. 요컨대, 쉽게 측정되지 않는 무형의 가치인 환자중심성은 정책적 대변자가 없는 상 황에서 최근까지 한국 의료의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지 못하였다. 환자중심성이 한국 의료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것이라는 점은 여러 단서를 통해 전망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OECD가 회원국 간 보건의료의 질을 비교한 결과를 보 면, 한국은 급성기 질병의 치료 성과는 상대적으로 우수하지만 만성질환 관리의 질은 낮은 것으 로 나타났다(OECD, 2015). 즉,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질병 치료에 비해, 의료서비스의 지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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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과 연계, 환자의 참여와 자가관리가 중요한 만성질환(천식,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당뇨병)에서 는 의료의 질이 비교 국가들보다 낮은 것이다. 이 결과는 만성질환 관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서라도 환자중심성 향상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실제로 OECD는 한국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환 자들이 자신의 진료 경험을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것을 권고한 바 있다(OECD, 2012). 의료 인과 환자 간 관계의 주된 성격이 기존의 가부장적 지도-피지도 모형에서 협력적 모형으로 성 격이 바뀌었으나 현실은 지체 양상을 보인다. 특히 정보 공유와 확산이 가속화됨에 따라 의료서 비스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상승하고 있으나, 한국 의료의 현실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젊은 연령층의 의료서비스 불만족도가 현저히 높은 사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16년 통계청 사회조사의 종합병원 의료서비스 만족도 결과에서, 의료서비스에 불만족(‘약간 불만족’과 ‘매우 불 만족’)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60세 이상에서는 8%였으나 20~59세에서는 그 비율이 14~17%에 이르렀다(물론 고령에서 의료서비스에 상대적으로 만족한다고 보고하는 경향이 높다는 점을 감 안해야 한다)(통계청, 2017). 일반적으로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불만족 응답 비율 이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불만족 비율은 높은 수치로 봐야 한다.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이 연령층이 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가까운 미래에, 한국 의료는 흔히 우려하는 재정적 지속가능성 위기와는 또 다른 반응성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전문가들 역시 의료의 질 요소로 환자중심성의 중요성에 동의하고 있다. 2015년 국내 전문 가 21인을 대상으로 실시된 2회의 델파이조사에서 전문가들은 의료의 질 구성 요소 중 환자중 심성에 대응하는 요소인 대인적(interpersonal) 요소에 상당한 비중을 부여하였다(도영경, 2015). 입원 진료에 대한 의료의 질을 평가할 때 전체 100% 중 기술적 요소, 대인적 요소, 물리적 환경 의 상대적 비중을 답하라는 질문에, 대인적 요소의 비중은 평균 36.7%로 조사되었다(기술적 요 소 45.5%, 물리적 환경 17.8%). 이 범주는 의료의 질을 학문적으로 정립한 도나베디안이 제시한 것 이다. 학술적으로도 환자중심성은 비교적 탄탄한 토대가 갖추어져 있다[환자중심성과 환자경험 에 관한 최근의 포괄적인 종설로는 Cleary(2016) 참고]. 환자중심성은 2001년 미국의 Institute

of Medicine (IOM) 보고서에서 의료의 질 6개 영역 중의 하나로 포함되었다(IOM, 2001). 미국에

서는 환자만족 접근에 기반을 둔 학술적 탐색의 시기를 지나, 이제 환자경험 접근이 구체적 정

책으로 채택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Centers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 (CMS)는

급성기병원에 대한 가치기반구매(Hospital Value-Based Purchasing) 프로그램의 평가 영역 중 하

나로 환자경험을 2016년 시점에서 25% 비중으로 포함하고 있다. 가치기반의학(value-based

medicine)이 강조되는 것도 이러한 경향과 일맥상통한다. 근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

이 의료의 질에서 기술적 요소에 집중하였다면, 가치기반의학은 환자의 삶의 질은 물론이고 환 자의 선호와 자율성 등 대인적 요소와 환자중심성의 가치까지 고려되어야 할 필요를 강조한다. 환자경험의 개선이 환자안전 및 진료 결과의 향상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되었 다. 주목할 점은 도나베디안 이래 학자들이 환자중심성을 기술적 질을 향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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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안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환자중심성은 그 자체로 중요한, 본질적인 가치이지, 기술적 질 향 상에 복무하는 종속적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자율성 등의 가치를 포괄하는 환자중심성 을 유보될 수 없는 윤리적 가치, 인권의 문제로 보는 관점과도 연결된다. 환자중심성과 명시적인 관련성이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도입된 국내 정책 중 환자중심 성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환자안전과 완화의료에 관한 법이다. 우선 환자안전법은 진료 과 정에서 환자의 역할 강화가 환자안전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직접적 차원 이상으로 중요한 두 가 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법률 명칭에서 환자를 명시적으로 포함하고 있듯이, 환자가 의료 정책 담론의 중심에서 조명을 받았다는 상징적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광범위하고 큰 규모로 존재하 지만, 쉽게 측정되지 않고 분명한 형체를 갖추지 않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험(risk)을 문제로 인식하고 무형의 가치인 환자안전에 주목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환자안전과 환자중심성 은 닮아있다. 환자중심성 관점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정책으로는 완화의료에 관한 법이 있다.

완화의료는 질병 진단 관점에서 던지는, 무엇이 문제인가(What is the matter?)라는 질문보다는,

당신에게 무엇이 중요한가(What matters to you?)라는 물음(Kebede, 2016)에 기초하여 제공되는

의료이다. 말기 환자에게 질병 치료적 관점에서 ‘더 이상 해 드릴 것이 없다’가 아니라 환자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체계를 구축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3. 환자중심성은 의료체계의 성과이자 구조적, 역사적 산물

한국 의료에서 환자중심성이 왜 미흡한가를 설명하는 흔한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의 료인의 인성 문제로 진단하는 것이다. 뒤따르는 해결책은 의료인 양성 학과의 입시 선발 개선과 인성교육 강화이다. 다른 하나는, 의료제도를 비난하는 경우이다. 흔히 의료인과 의료기관 경 영자들은 수가가 낮아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충분한 인력을 쓸 수 없다고 한다. 이어지는 대안은 건강보험 수가 인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자–구조(agent–structure), 행위자–체계

(actor–system), 인적 특성–환경(attribute–environment), 미시–거시(micro–macro)의 이항대립 프 레임은 문제를 극도로 형해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그 중 어느 하나의 항에만 있는 것

도 아니고, 그 두 개의 항만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WHO가 제시하였듯이 반응성(환자

중심성)은 의료체계의 성과(health system performance)이다(WHO, 2000). 의료체계는 제공체계,

재정체계, 인력 및 물적 자원 개발, 조정/관리와 같은 복합적 기능을 포함하며, 반응성은 이러

한 여러 기능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다(Kutzin, 2013). 또한 상호작용은 행위자-구조 사이

에서도 종적인 시간 축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따라서 구조적인 성격은 동시에 역사적인 성격 을 지닌다. 한국 의료에서 환자중심성 문제를 구조적, 역사적 산물로 진단하는 것이야말로 개선 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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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절에서 소개한 초점집단토의 결과에 나타난 입원 환자, 보호자들의 부정적인 경험을 이 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병원 간호 인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은 2012~2015년 OECD 국가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와 임상간호사(practising nurse, 간호조무사 포함, 보건복지부, 2015) 수, 그 비(ratio)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1.9로서 가장 낮은 덴마크의 9.5배이다. 국가 간 의료체 계의 차이와 병상가동률 등 요인을 고려해야 할 것이나, 간호사 1인에 해당하는 병상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부정적인 환자경험에 대한 하나 의 설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환자 1인당 평균 병원 재원일수는 16.5일로 OECD 회원국 평균 (8.3일)의 약 2배이다(보건복지부, 2015). 이는 특정 시점에서의 병원 재원 환자 수는 물론이고 병 상 수도 축소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외래 진료는 어떨까? 그림 2는 OECD 국가별 1인당 평균 연간 의사 외래진료 횟수,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 그 비를 보인다. 여기서도 한국은 가장 높은 비를 보이고 있다(6.6으로 가장 낮은 스웨덴의 9.4배). 이 비가 높다는 사실은 환자들이 외래 진료에서 흔히 부정적 경험으로 보고하는 긴 대기시간과 짧은 진료시간을 설명할 수 있다. 이 비에는 인구 당 의사 수보다는 외 래진료 횟수가 훨씬 더 규정적임을 볼 수 있다. 외래진료 횟수는 14.6회로 OECD 평균(6.8회)의 2.1배이며(보건복지부, 2015), 이 역시 줄어들 여지가 큼을 시사한다.

그림 1. OECD 국가별 인구 1,000명당 병상(A), 인구 1,000명당 임상간호사(B), 두 지표의 비(A/B) 자료: OECD, 2017a, 2017b, 2012~2015년 중 최근년도 가용 자료 DenmarkIcelandIrelandNor way Sweden United S tates Switz erland New Z ealandCanadaFinlandAustralia United King dom Luxembour g

SloveniaItalyPortug

al BelgiumSp ain Mexic o Franc e GermanyIsr ael Czech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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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PolandTurk ey Korea 20 18 16 14 12 10 8 6 4 2 0 2.5 2.0 1.5 1.0 0.5 0.0 0.2 0.2 0.2 0.2 0.2 0.3 0.3 0.3 0.3 0.3 0.3 0.30.4 0.5 0.5 0.5 0.6 0.60.6 0.6 0.6 0.6 0.80.9 0.9 1.01.1 1.2 1.21.3 1.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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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안

그림 2. OECD 국가별 1인당 평균 연간 의사 외래진료(A),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B), 두 지표의 비(A/B) 자료: OECD, 2017c, 2017d, 2012~2015년 중 최근년도 가용 자료 입원과 외래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은 인력에 비해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수량이 다 른 국가에 비해 예외적으로 높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서비스 단위당 쏟을 수 있는 시간은 낮 을 수밖에 없고, 그와 같은 의료인들의 행태는 오랜 시간을 걸쳐 하나의 의료 문화가 되어왔다. 그런 행위자들의 행태와 문화 위에서 정책은 조정되고, 그 정책은 다시 행태와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의료의 성장을 지탱해 온 골격은 크게 ‘무의촌 해소’에서 시작한 지리적 접근성의 확대 와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대표되는 경제적 접근성의 확대로 구성된 다. 확대일로의 성장기를 지배해 온 공식은 유형의(tangible), 수량화 가능한(quantifiable) 항목

(즉, 급여/비급여 항목별 의료서비스 제공량)에 대한 결과주의(consequentialism; Davis & McMaster, 2015) 기반 보상이었다. 낮은 건강보험 수가 환경은 이 공식에 과도한 선택 압력(selection pressure)을 부여하여, 요건에 들어맞지 않는 가치는 도태된다. 즉, 수량화가 어렵고 결과주의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무형의 관계적(relational; Gilson, 2003) 가치나 확률적 위험 예방은 쉽게 희생된다. 입원 환자에게 시행되는 검사는 많지만, 설명, 의사와 이야기할 기회, 회진 시간은 부족하다. 일차의료에서는 많은 환자를 빨리 보는 행태가 문화로 자리 잡으며, 신뢰에 기반을 둔 지속성, 포괄성, 조정 기능이 미약하다. 결과주의 기반 보상은 이익의 사유화는 보장하나 손실의 사회화를 막을 수 있는 확률적 위험 예방에는 취약하다. 예방 가능한 외상사망률, 환자안전, Sweden SwitzerlandNor way Mexic o Denmark New Z

ealandFinland AustriaIceland ItalyIreland LatviaFranc

e

Estonia Spain

Luxembour

g

AustraliaSlovenia

NetherlandsGermanyCanada

Czech R

epublic Poland

Slovak R

epublicHungaryTurkeyJapanKorea

16 14 12 10 8 6 4 2 0 7.0 6.0 5.0 4.0 3.0 2.0 1.0 0.0

Doctors' consultations in a given year per capita (A) Practising doctors per 1,000 inhabitants (B) A/B

0.7 0.9 1.0 1.2 1.2 1.2 1.2 1.3 1.6 1.6 1.8 1.8 1.9 1.9 2.0 2.0 2.1 2.4 2.4 2.4 2.9 3.0 3.1 3.3 3.6 4.7 5.4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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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메르스 유행에서 특히 부각된 격리병동은 공히 결과주의 보상의 강한 압력으로 인해 확 률적 위험 예방이 미흡한 예이다. 심지어는 갑상선 암 조기검진의 예처럼 위험을 증가시키는 경 우마저 있다. 한국 의료에서 환자중심성과 같은 무형의 관계적 가치를 강화하는 일은 확률적 위 험 예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환자중심성의 강화와 환자안전의 강화가 밀접하게 관련되 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컨대, 한국 의료에서 환자중심성이 미흡한 현상은, 유형의, 수량화 가능 한 항목에 대한 결과주의 기반 보상 공식의 강한 선택 압력 속에서 의료기관이 진화적 적응을 보이며 드러내는, 구조적, 역사적 산물이다. 환자중심성을 구조적, 역사적 산물로 이해하는 것은 환자중심성 향상을 위한 환자경험평가 에 중요한 현실감을 제공한다. 첫째, 환자중심성이 뚜렷하게 향상되기 위해서는 의료체계의 구 조적 개선이 필요하다. 의료체계의 구조적 개선은 거시, 중간, 미시 수준의 다수준적, 중층적 과제를 포함한다. 거시(macro) 수준의 정책 환경 변화는 환자중심성의 전반적 분포를 ‘잠재적으 로’ 옮길 수 있으나, 이러한 변화는 중간(meso) 및 미시(micro) 수준에서 의료기관과 환자와 직접 대인(interpersonal) 접촉을 하는 의료인의 노력과 병행되어야 한다. 한편, 거시 수준의 정책 개 선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중간 수준의 노력만 요구한다면 어느 수준에 이르러 거시 수준의 현재 조건에 제약당할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환자중심성이 향상되기 위해서는 미시 수준에서 의 료인들의 의사소통 능력, 태도, 행태가 개선되어야만 한다. 거시 및 중간 수준의 개선 노력이 잠재적 여지를 확대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되지만, 현장의 의료인들이 정책에 반응하고 새로운 관 계적 문화를 일상에서 체화해야만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개선이 가능하다. 둘째, 시행 예정인 환자경험평가가 환자중심성 향상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동시에 충분조건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환자중심성 향상을 위한 정책을 환자경 험평가 하나로 환원하는 것은 논리학적 오류이다. 이러한 비논리적이고 사이비 구체성에 근거 한 사고는 환자경험평가에 과도한 짐을 지울 뿐이다. 환자중심성 향상을 위해 다수준에서 이루 어져야 할 노력이 환자경험평가 결과의 대중적 공개와 결과에 기반을 둔 가감지급으로 환원되 고 마는 것이다. 물론 평가 결과의 대중적 공개와 그에 기초한 가감지급은 사용할 수 있는 잠재 적 정책수단이지만, 다수준의 구조적 개선 노력 없이 의례적 절차로서의 평가 결과 공개와 가감 지급만으로 환자중심성의 전반적, 지속적 향상을 기대할 수는 없다. 셋째, 미흡한 환자중심성이 역사적 성격을 지닌 문제인 이상 단기간에 현저하게 향상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환자경험평가에 포함된 문항은 규범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최 소 수준이며, Cleary는 환자경험 지표들은 (미국 환경에서) 병원의 상당한 추가 자원 투입 없이 도 달성할 수 있는 항목으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Cleary, 2016). 그러나 국내 의료 환경에서도 그와 같은 개선 여지가 충분할지는 의문이다. 환자경험평가의 시행은 의료기관(중간 수준) 경영자와 담당자의 주의 환기와 개선 노력을 촉발할 것이고 단기적으로는 실제로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환자경험평가의 중요한 정책 목표 중 하나임은 분명하나, 그런 단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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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안 효과에 주목하고 그치기보다는, 거시 수준의 제약이 완화되고 미시 수준의 행태 적응이 일어나 는 충분한 시기 동안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4. 왜‘환자경험’평가인가?

환자경험평가를 앞두고 의료기관은 일반적인 서비스 업종과 다른 특성이 있는데, 환자의 ‘만족’까지 보장해야 하느냐는 항변이 있다. 이러한 항변은, 환자경험평가가 도입되고 그 결과 가 공개되거나 가감지급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의료기관들이 불필요한 호화 시설 도입이나 과잉 친절 경쟁에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진다. 또한, 환자의 ‘만족’과 같은 주관적 응답의 특성 상, 사람들마다 그 기준이 다르고 또한 질병 치료 결과나 병원의 시설, 환경 등에 크게 영 향을 받을 수 있는데,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가능한 일인가라 는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환자만족 향상 활동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고 실제로 다수 의료기관이 이미 자체 조사를 수행하고 있는데, 표준적인 평가를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비효율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논점 중 상당 부분은 환자만족과 환자경험에 관한 개념적 혼동과 관련이 있다. 환자중심성에 대한 접근에서 환자경 험과 환자만족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Cleary, 2016). 양자의 상대적 장단점을 비교하 며 그 차이를 살펴보자. 환자만족 접근법은 환자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둔다. 따라서 환자의 만족이 궁극적으로 추구 하는 지표이고 환자만족의 현재 수준을 측정하는 목적이라면 유용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개별 병원들이 환자만족도 조사를 수행하는 것은 서비스 마케팅 관점에서 환자만족을 궁극적 목적으로 추구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충분히 타당할 수 있다. 또한, 질문 문항의 개념적 구성의 포괄성 정도에서 융통성이 매우 크다. 예를 들어, 단 하나의 문항으로 해당 의료서비스 전체에 대한 만족도를 물어볼 수도 있고(예: 통계청 사회조사의 의료서비스 만족도), 진료, 수납, 주차 등 세 부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각각에 대한 만족도를 측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장점의 이면에, 환자만족 접근법은 국가 수준에서 환자중심성 평가와 향상에 사용되 기에는 네 가지 중요한 단점을 갖는다. 첫째, 일반적으로 환자만족은 대인적 요소에 직접 영향 을 받는 환자경험 외에도 치료 결과, 환경 요인 등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그림 3). 둘째, ‘만족’의 특성 상, 환자의 질병 중증도, 기대 수준, 응답 성향 등 개인 특성이 불가피하게 상당 정도 개입되며 그에 따라 응답의 주관성이 크다(그림 3). 따라서 시기별 환자 구성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개별 의료기관 수준의 시계열적 모니터링 목적에서는 유의미할 수 있겠으나, 국가 수준에서 의료기관 간 비교와 평가를 위한 목적에서는 심각한 결점을 갖는 다. 셋째, 문항의 개념적 구성의 포괄성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문제 영역을 구체적 으로 파악하고 그에 기반을 두어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actionable) 질 향상 전략을 수립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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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예를 들어, 의료서비스에 만족도가 낮다는 결과만으로는 구체적 문제 영역을 파악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상의 세 가지 단점은, 환자만족이 의료의 질 평가 지표 중 과정 (process) 지표보다는 결과(outcome) 지표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넷째, 현 단 계에서 보건의료체계의 목표로 환자의 ‘만족’을 설정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충 분히 있을 수 있으며, ‘만족’과 같은 목표를 설정하다 보면 높은 합의 수준을 기대하기도 어렵 다. 앞서 제시한 초점집단토의 참여자들은 의료 현장의 의료인들이 매우 바쁘기 때문에 환자의 기대를 최대한 충족하는 ‘만족’스러운 의료서비스 제공을 수행하기에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음 을 이해하고 있었다(도영경 등, 2015). 환자경험평가에 관한 언론 보도를 보면, 환자의 ‘만족’을 평 가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묘사하는 내용이 존재한다. 의료인 개개인 수준에서도 환자의 ‘만족’이 궁극적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 일 수 있다. 이 문제는 의료의 질을 평가할 때 종종 발생할 수 있는 소비자 관점과 전문가 관점 의 긴장을 반영한다. 여기서 핵심은 현 단계에서 ‘만족’이라는 소비자 관점의 최대 목표를 설정 하는 것은 의료인만이 아니라 환자에게조차도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으며, 합의의 수준 역시 높 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요컨대, 환자만족 접근법은 국가 수준 평가에 적용되기에는 측정, 활 용, 목표라는 차원에서 단점을 갖는다. 측정 면에서 진료 과정의 다른 요인과 개인 특성에 영향 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활용 면에서도 구체적인 진단과 실행 전략 수립에 제한적인 효과를 갖 는다. 국민 대중과 환자들 역시 환자만족의 향상을 현 단계 우선 목표로 인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환자만족 접근법은 현장 의료인의 진심어린 동의를 확보하는 데 있어서도 장애를 초래 할 수 있다. 그림 3. 의료의 질 평가에서 환자경험의 위치와 성격 의료서비스 요소

Component of care quality Patient-centered approach (quality measurement from pt perspecitive)환자중심적 접근(환자 관점 의료의 질 측정)

기술적 요소

Technical component Patient-reported outcome환자 보고 결과

환자 만족 Patient satisfaction 환자 경험 Patient experience 대인적 요소 Interpersonal component 환경 Environment/Amenities 과정 Process 결과 Outcome 환자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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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안 환자경험 접근법은 환자만족 접근법에 비해, 단위 문항 당 개념적 구성이 갖는 포괄성을 축 소하되 의료의 질과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높고 환자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합의된 대인적 요 소의 구체적인 개별 항목을 포함한다(진료 환경에 관한 항목이 일부 포함되나, 청결과 안전과 같이 환자의 관점에서 의료적으로 중요한 항목에 집중하고 그마저 전체 평가 문항 중에서 작은 비중만을 차지한다. 그리고 환자경험 조사 도구라 할지라도 소수의 전반적 평가 문항을 포함할 수는 있다). 환자경험 접근법은 환자에게 중요한 대인적, 환경적 요소를 최적의 최저선(optimal minimum)에서 추출하고 그 요소의 실행 정도에 관한 환자의 경험이라는 과정(process)에 집중하 는 접근법이다. 즉, 만족보다는 실제로 일어났는지를 묻는다. 여기서 ‘최저선’을 채택하는 이유 에는, 조사 부담으로 인해 문항 수를 늘일 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과 함께, 필수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최소한의 규범적 표준을 포괄한다는 목적이 있다. 환자경험평가 도구는 마케팅 관점의 ‘만족’ 에 관련된 문항보다는 오히려 좁은 의미의 의료적 성격이 강한 문항(회진 시간 준수 및 정보 제 공, 의사와 이야기할 기회, 설명, 함께하는 의사결정 등)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환자경험평가가 호화 시설과 과잉 친절 경쟁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는 근거가 박약하다. 반면 환자경험 접근법 은 실제로 구체적 문제 영역을 진단하고 해결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례로, 서울 대학교병원은 최근 자체적으로 환자경험평가 시행 후 회진 예고제 등 병원 내 시스템의 개선을 추진해 왔다. 환자경험 접근법에서는 앞에서 기술한 환자만족 접근법의 상대적 단점이 각각 상대적 장점 으로 전화한다. 특히 이러한 장점들은 국가 수준에서 의료기관 간 비교와 평가를 수행하여 궁극 적으로 환자중심성 향상을 목적으로 설정할 때 두드러진다. 첫째, 구체적인 개별 항목의 수행에 집중함으로써, 측정 문항 외 다른 의료의 질적 요소가 개재될 가능성을 줄인다(그림 3). 예를 들 어, ‘의사와 이야기할 기회’에 대한 환자의 답변에서 치료 결과, 병원의 편의시설, 환자식의 질 에 대한 평가가 개재될 가능성은 환자만족 접근법에 비해 낮다. 둘째, 환자 특성의 교란가능성 역시 줄어든다. 환자의 자가보고에 기반을 둔 조사라는 성격 상 환자의 질병 중증도, 기대 수준, 응답 성향이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으나, 환자만족 접근법에 비해서는 그 정도가 작다(그림 3). 환자경험 접근법이 갖는 이 두 가지 장점은, 이질적인 환자 구성을 갖는 의료기관 간 평가 결과 비교에 수반하는 난점을 상당 정도 완화한다. 통계적 특성 면에서도 환자경험 조사 도구는 대체 로 높은 신뢰도와 타당도를 보인다(Cleary, 2016). 셋째, 문제 영역의 파악과 실행 전략 수립에 더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서울대학교병원의 회진 관련 시스템의 개선이 기관 수준의 구체적인 개선 예라면, 국가 수준에서도 문제의 규모, 변이, 경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줌으로 실질적인 개선책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세 가 지 장점은 환자경험이 과정 지표 성격이 강하다는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넷째, 환자경험 접 근법은 현 단계에서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추구하는 대인적 요소의 최소 수준 질 보장 목표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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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합하며, 그 결과 환자만족 접근법에 비해 합의의 수준도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초점집단 토의의 결과를 다시 인용하면(도영경 등, 2015), 환자와 보호자들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회진 시간 준수 및 변경 시 정보 제공 등과 같은, 환자에게 중요하고 필수 적인 측면에서 의료의 질 향상이 이루어져야 함을 개진하였다. 진료 현장의 의료인들 역시 환자 경험 항목에 대해서는 그 규범적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하였다(도영경, 2016). 이 장점은 환자경 험 접근법이 ‘환자의 눈’을 통해 의료의 질을 평가하면서도, 의료인들도 그 필요성에 충분히 동 의할 수 있는 대인적 요소의 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제한적 수준의 과정 지표에 집중한다는 점 에 기인한다(그림 3). 환자경험 접근법이 갖는 이상의 네 가지 장점은, 최소한 현 단계 건강보험 체계 내에서 환자만족 접근법보다는 환자경험 접근법이 방법론적인 면만이 아니라 질 향상 실 행 전략 수립 및 평가 수용성 면에서도 더 선호되는 접근법임을 시사한다. 환자경험 접근법에도 단점이 없지 않다. 개별 환자에게 중요한, 다른 대인적 요소의 질을 포 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하게 ‘환자의 눈’으로 의료의 질을 평가한다고 볼 수는 없 다. 임상적 의료서비스 제공 과정에 집중하여 전문가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비판 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은 채택가능한 대안의 존재 여부, 상대적 장점 등을 고려하여 균형 있게 보아야 한다.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환자경험 접근법이 현재 건강보험체계 에서 대인적 요소의 질 평가와 향상 목적에 더 적절하다는 근거는 충분하다.

5. 환자경험평가의 의의

구조적, 역사적 성격을 지닌 환자중심성 문제를 개선하는 데 과연 환자경험평가가 어떤 의 의를 지닐 수 있을까? 환자경험평가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측정(measure)’ 그 자체에 있다. 의 료의 질에 관한 금언 중의 하나는 ‘측정 없이는 향상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측정은 모든 과학적 접근의 첫걸음이다. 측정은 비교를 가능케 하고,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경향을 포착 할 수 있게 해 주며, 실험(experiment)과 시연(demonstrate)을 거쳐 중재 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 록 해 준다. 현재의 도구가 완벽할 수 없기에 더 나은 측정 도구의 개발을 자극하고, 수집된 자 료는 문제의 심층 분석과 창의적 개선 시도가 꽃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 환자경험평가는 측정을 통해 환자중심성 문제에 대한 담론을 행위자-구조의 단선적 이항대립에서 구출하여 과 학적 접근의 장으로 끌어올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의의는 대상별로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분명한 자료를 산출한다는 점 이다. 현재 통계청 사회조사, 국민건강영양조사, 한국의료패널 조사에서는 의료서비스 만족도 문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인구집단에 기반을 둔, 포괄성이 매우 높은 의료서비스 만족도 자료는, 누가 관심과 책임성을 가져야 하는지, 개입 지점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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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안 이에 비해, 환자경험평가는 의료기관별로, 세부적 환자경험에 관한 자료를 산출할 수 있게 한다. 정책 담당자는 전체적인 환자경험 수준과 함께 지역별, 유형별 변이, 환자의 사회경제적 위치별 차이를 파악함으로써 환자중심성을 지속적인 정책문제로 유지, 상승시킬 수 있는 수단 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환자와 국민은 스스로의 평가가 의료의 질 평가에 반영될 수 있다는 사 실을 인식하며 개선에 필요한 과제를 묻게 될 것이다. 기관별 평가 결과의 공개 시, 기존 적정 성 평가 결과보다 대중에게 다가가기도 더 쉬울 것이다. 환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느끼는 문제 점들을 환자의 입으로 응답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의료기관 수준에서는 전국 및 지역 분포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며, 특히 어떤 영역이 환자의 눈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미흡한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환자경험평가 자료는 현장의 의료인들 에 기관 단위에서 자신들의 진료를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이 될 것이다.

6. 환자중심성 향상을 위한 과제

환자경험평가가 갖는 이러한 의의는 거시, 중간, 미시 각 수준에서 환자중심성 향상을 위해 수행되어야 할 과제로 연결된다. 먼저 거시 수준에서는 환자경험평가의 안정적 정착과 자료에 근거한 방법론적 개선이 중요하다. 최소 초기 2~3년은 환자경험평가 자료를 심층적으로 분석 하며 위에서 말한 ‘측정’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새로운 방식의 평 가이니만큼 측정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것 도 중요한 작업이다. 먼저 환자경험평가의 도입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조사 협조를 높일 수 있 는 효과적인 홍보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자료의 수집 후에는 기관별 환자군 차이, 무응답, 응 답 성향 등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분석 방법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국외 관련 평가 기관과의 연계도 도움이 될 것이다. 평가 결과의 활용 측면에서는, 종합점수에 그치지 않 고 영역별 결과를 포함한 풍부한 분석 결과를 의료기관에 피드백할 필요가 있다. 평가 결과의 대중적 공개와 가감지급과의 연계에 대한 구체적 사항 역시 논의해야 한다. 의료기관 수준에서 대상자 선별이나 긍정적 응답 권유 등의 편법적 사례가 있는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지, 기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시행 예정인 환자경험평가가 500병상 이상 의료 기관의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단계적인 확대의 로드맵을 수립하는 것도 필요 하다. 환자경험 개선의 성공 사례를 취합하고 확산하는 등의 지원 사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환자중심성이 의료체계의 성과이자 구조적, 역사적 산물이니만큼, 인력, 지불보상의 수준과 방식, 의료기관 허가 기준을 포함한 필요한 의료체계 개혁 과제를 도출하고 추진해야 한다. 그 림 1에서 보인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서 간호사의 입원 환자 응대에서 존중과 예의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력당 적정 환자 수, 진료 시간, 수가 수준에 관한 연구와 사회적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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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환자경험 향상은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체제로의 전 환에 중요한 근거와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의료의 질 지표보다도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 수준을 이루는 의료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환자경험평가의 일차적인 정책 대상 집단은 의료기관이다. 의료기관은 거시 정책 환경의 제약조건 하에서 인력 및 기타 자원을 조직 하며 진료 문화를 형성하는 실체이므로, 환자경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교육수련병원 의 경우 의료 인력에 대한 현장 훈련이 일어나는 곳이므로 미래 한국 의료의 환자중심성에 영향 을 미친다. 의료기관 수준에서 환자중심성 향상에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최고관리자가 환자 중심 문화를 이끌어 가며, 진료와 회진 시간에 필요한 자원을 배치하고 진료 과정을 개선해 가 야 한다는 점이다. 기존 환자안전과 질 향상 담당 부서와의 유기적 관계 속에 환자경험 담당 업 무 부서와 역할을 정의할 필요도 있다. 그러한 부서의 활동은 의료기관이 이미 시행하고 있던 자체 만족도조사를 환자경험평가와 어떤 상승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관계를 설정하는 것, 원내 질 향상활동에서 환자경험을 강조하는 것, 교육 훈련을 포함하는 것이다. 적절한 외부 기관에 의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내부의 ‘챔피언’을 발굴하고 환자경험에 관한 교육자로서 병원 수준의 인정을 부여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주요 진료 영역에서는 서비스 디자인 개념을 적용하여, 환자경험평가나 만족도 조사 등 표준적인 조사 도구가 포착하기 어려운, 의료기관에 특수한 문 제를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진료 결과의 전반적인 향상에도 긍정적으 로 기여할 것이다. 환자중심성 향상을 낳기 위한 시스템 접근법은 특정 진료 영역의 질 향상 노 력보다 더 포괄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Cleary, 2016). 새로운 평가의 도입이 의료기관에 업무 부담을 더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환자경험평가의 근거와 의의에 동의한다 면, 그 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거시 수준의 의료체계 개선 역시 필 요하지만 의료기관의 자체의 노력과 병행되어야 할 과제이지 선후의 문제는 아니다. 미시 수준에서 의료인은 궁극적으로 대인적 요소의 질을 완성하는 접점에 있다. 의료인 개 개인의 노력 외에도 지역별 의료인 단체, 학회의 역할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주요 진료 영역 에서 환자의 선호를 반영하여 함께하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의사결정 도구를 개 발하고 확산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학이 맡아야 할 역할도 있다. 과거와는 달리, 여러 의과대학

에서는 ‘나쁜 소식 전하기(delivering bad news)’ 등 의사소통에 관한 교육을 마련하고 있다. 글쓴

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학생이 유방암 재발 소식을 전하자, 배우 경력이 있는 표준화 환자

(standardized patient)가 실제로 오열하며 부정, 분노, 회한의 감정을 드러내었다. 학생은 당황하 였지만 그 경험을 통해 공감능력과 필요한 의사소통 기술을 학습하였다. 의사국가시험의 실기 시험도 이런 내용을 다룬다. 함께하는 의사결정에 필수적인 통계적 이해와 위험소통 능력도 필 요하다(Gigerenzer et al, 2007). 또한, 진료 현장은 사회, 문화, 기술 변화를 역동적으로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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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현안 보완대체의학 이용이 상담의 고전적 주제였다면, 이른바 ‘자연주의’ 치료법이나 유전자 검사, 정밀의학과 같이 최근 새롭게 제기되는 주제들도 있다. 많은 의사들은 환자가 진료 중 상담 과 정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반면, 임상실습 의대생이 분만 과정을 참관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산모들도 있다. 새롭게 제기된 문제에는 새로운 규범을 마 련해 가며 적응해야 한다. 이런 경우 환자의 관점과 의료전문가의 관점 중 일방의 선택보다는 서로의 관점에서 바꿔 바라본 후 대화와 숙의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다수준에서 필요한 여러 과제를 나열하는 것은 환자중심성 향상이 불가능할 것 같은 비관적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제들은 동시충족을 요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서 로 상승적 작용을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현재의 거시적 제약 속에서도 환자중심성 분포의 높 은 쪽 꼬리를 이루고 있는 의료기관은 있고, 다시 각 의료기관의 분포에서 높은 쪽 꼬리에 해당 하는 의료인들은 있게 마련이다. 필요한 것은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기관 사이에서 그런 높은 쪽 꼬리가 예외가 아니라 평균적 표준이 될 수 있는 문화와 환경을 구축하는 노력이다. 환자경 험평가는 그 분포를 드러내고, 또한 한국 의료의 환자중심성 분포를 높은 쪽으로 이동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환자중심성 가치에 비관적 전망을 제시한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푸코는 현대사회의 감 시와 규율이라는 관점에서 병원을 군대나 감옥과 다르지 않은 공간으로 보았다. 환자복을 입으 면서 몇 호실 이러저러한 진단명 또는 수술명으로 불리게 되는 것은 군복이나 수의를 입는 순간 계급이나 수번으로 환원되어 인간으로서의 개별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 성격이다. 이 점에서 병원에서는 죄인이 된 듯하다고 말하는 환자는 단순한 은유 이상을 말한 것이다. 일리히는 의료 전문가의 지배로 인한 생명 현상에서 개인의 자율성 상실을 문제로 지적하였다. 생활의 의료화 가 진행될수록 의존성은 심화된다는 것이다. 환원론에 기반한 현대 의학을 비판하는 경향도 있 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가 카센터에서 수리되는 자동차처럼 취급된다는 비판이다. 환자경 험평가를 통한 의료체계의 환자중심성 강화는 그런 환원론에 기반한 현대 의학의 문제점을 완 화하고자 하는 시도이나, 푸코나 일리히가 제기한 초거시 수준(hyper–macro level)의 지식–권력 의 문제까지 가 닿지는 못한다. 그들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의료 지식–권력의 겁주기 (fear mongering)를 통한 의료수요 창출과 과도한 의료화가 낳는 문제 역시 다른 차원에서 직시 할 필요가 있다. 환자중심성(‘patient’–centeredness)이라는 개념에 머물지 않고 person–, population–, people–centeredness 등의 확장된 개념이 제출된 맥락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 전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글은 환자경험평가가 추구하는 가치인 환자중심성이 한국 의료에서 중요한 문제인지를 묻는 것으로 출발하였다. 실제로 환자중심성은 중요한 문제 이나 의료정책에서 간과되어 왔다. 환자중심성을 의료체계의 성과이자 구조적, 역사적 문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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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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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함으로써 문제 접근에서 과장된 기대를 경계하고 현실감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건 강보험체계 내에서 환자중심성 향상을 위해서는, 의료기관 간 비교가능성이 더 높고 의료의 질 중 대인적 요소에 집중하는 환자경험 접근법이 환자만족 접근법보다 더 적절하다. 환자경험평 가가 갖는 두 가지 의의로서, 측정을 통해 과학적 접근을 가능케 한다는 점과 대상자별 소구력 이 높은 자료를 산출한다는 점을 들었다. 환자중심성 향상을 위한 과제를 거시, 중간, 미시 수 준에서 제시하였다. 환자경험평가는 현재 한국 의료에서 환자중심성의 분포를 드러내고 그 분 포를 높은 쪽으로 옮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주장하였다.

수치

그림 1. OECD 국가별 인구 1,000명당 병상(A), 인구 1,000명당 임상간호사(B), 두 지표의 비(A/B)  자료: OECD, 2017a, 2017b, 2012~2015년 중 최근년도 가용 자료DenmarkIcelandIrelandNorwaySwedenUnited StatesSwitzerlandNew ZealandCanadaFinlandAustraliaUnited KingdomLuxembourg
그림 2. OECD 국가별 1인당 평균 연간 의사 외래진료(A),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B), 두 지표의 비(A/B)  자료: OECD, 2017c, 2017d, 2012~2015년 중 최근년도 가용 자료 입원과 외래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은 인력에 비해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수량이 다 른 국가에 비해 예외적으로 높다는 사실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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