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남한산성과 행궁 입지의 역사와 풍수적 특 징을 각종 문헌자료 고찰과, 현장조사를 통해 살펴보 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중정남한지」 “남한”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때 당나라와의 전쟁 중에 쌓은 주장성이다.
반면에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신증동국여지승 람」, 「대동야승」, 「연려실기술」, 「여지도서」, 「대동 지지」 등 대부분의 조선 시대 지지 자료는 남한산성 이 백제의 고성임을 밝히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 을 둔 논거는 달리하고 있으나 천연의 요새에 입지하 여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도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47) [宋] 朱熹. 2006. pp530-531(必先論其主勢之彊弱, 風氣之聚散, 水土之淺深, 穴道之偏正, 力量之全否, 然後可以較, 其地之美 惡. 政使實有國音之說, 亦必先此五者以得形勝之地, 然後其術可得而推).
구분 입수룡 대오행 좌향 득수 파구 부합
포태 구성 길흉 포태 구성 길흉 여부
행궁 신(辛) 수(水) 신좌을향 경 생 탐랑 길 손 묘 파군 흉 ○
표 1 _ 남한산성 행궁의「지리신법」적용여부 검토 그림 19 _ 행궁의 좌향 분석
의미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특히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성 내부에서는 우뚝 솟은 청량산에 비견될 만한 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산과 안산 그리고 좌우청룡백호 로 구성된 보국이 완비된 곳이 현재의 행궁 입지와 같이 갖춰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중정남한지」
“궁실”에서 ‘왕이 거동할 때 머물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유수의 집무실로 지은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당초에는 유수의 집무실로 선정된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한산성과 행궁의 입지특성은 전형적인 장풍국의 형국을 하고 있다.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람으로부터 갈무리된 모습이다. 보국의 크기 로 양기풍수의 특징을 가늠해볼 수 있다고 할 때, 남 한산성과 행궁의 입지는 그에 합당한 넓은 보국을 확 보하지는 못했다. 단지 방어적 특성에 충실한 입지 조건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입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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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접수일: 2013. 6. 11
• 심사 시작일: 2013. 7. 3
• 심사 완료일: 2013. 7. 25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