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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과 행궁의 풍수환경

문서에서 국토연구 (페이지 27-35)

목 차

IV. 남한산성과 행궁의 풍수환경

1. 풍수 주산으로서의 청량산

남한산성과 행궁의 주산인 청량산에 대해 「중정남한 지」 “형승”에는 “청량산은 옛날 일장산이라고도 하 였고, 또한 남한산이라고도 하였다. 광주의 가운데 땅 에 연이어 엎드려 웅거하고 있으며, 안은 넓고 밖은 막혀 있어 하늘이 만든 높은 성이다. 북으로 한수를 두르고 남으로는 여러 고을을 제어한다. 토지는 기름 지고 민물은 성하여 무릇 장자지근에 진양의 견고함 을 겸하였으니, 서울의 보장”23)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일장산은 남한산이라고 하며, 용인의 보개산으로부 터 왔다. 곧 광주부의 진산이며 산 위에 성이 있다. 조 선 중엽부터 돌연 청량산이라고 칭해서, 사람들이 청 나라 사람이 내침할 징조라고 하였다. 산에 기우단이 있다”24)고 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은 「정조실록」에도 정조의 질문으로 소개하고 있다. 주산인 청량산의 명 칭 변화와 아울러 청량산으로 불리면서 일어났던 일 화들을 소개하였다.25)

20) 宣祖實錄. 卷159. 36년 2월 18일(을사).

21) 행궁. 수원화성(http://hs.suwon.ne.kr). [2012.10.11].

22) 홍경모. 2005. p47(按上下闕卽 仁祖丙子臨御之行殿也 肅宗戊辰 英宗庚戌 正祖己亥幸 寧陵時道由山城經宿 于此而非車駕 所駐之時作 爲留守坐衙之所也).

23) 홍경모. 상게서. p25(淸凉山舊稱日長山 亦稱南漢山 遷蟠據于廣之中壤 內曠外截天作高城 北帶漢水南控列郡 土地膏 物綒富 盖以長子之近兼晋陽之固 爲保障於畿輔者也).

24) 홍경모. 상게서. p17(日長山 亦稱南漢山來 自龍仁之寶盖山卽府之鎭山 而城在山上 國朝中葉以來忽又稱淸凉山 人以爲淸人 來侵之徵 山有祈雨壇).

청량산은 남한산과 행궁의 주산이지만 곧 당시 광주부의 진산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중정남한지」

“형승”과 “산천”에서 소개된 내용에는 지명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형상의 특징에 대해서는

「중정남한지」 “형승”에서 ‘광주의 가운데 땅에 연이 어 엎드려 웅거’하고 있다고 하여 웅장한 모습만을 소 개한다. <그림 4, 5>와 같이 청량산은 웅장하며 아름 답기까지 한 모습이다.26) 여기에는 웅장한 모습을 강 조한 측면도 있지만, 딱히 다른 모습은 찾기 어렵다 는 측면도 아울러 가졌다고 할 것인데, 「중정남한지」

“유차산루기”에는 “서울 남쪽 40리에 산이 있으니, 일장산 또는 청량산이라고 한다. 그 산의 됨됨이가 속은 평평하고, 밖은 끊어져 성가퀴를 매달은 듯 높 게 솟은 가마솥 같은 듯하여 이른바 천험의 땅”27)이 라고 하였다. 이것은 푸근하고 아름다운 품을 내주어 성 안의 공간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반면에 성벽이 있는 곳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풍수에서 산의 모습 을 면배(面背)로 구분한 것을 잘 표현한 것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풍수에서 입지선정을 할 때 주산은 가 장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다. 웅장하여야 하고 빼어 난 모습도 아울러 갖춰야 하며,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배산(背山)으로서 역할에 충실하여야 한다. 이를 「동 계집」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일장산 산빛이 푸르게 우뚝 솟았나니 천지의 바른 기운 많이 모아 간직했네 남쪽 북쪽 어디 가든 동일한 의리이니

견고한 금석처럼 결코 닳은 적이 없네28)

이러한 청량산 정상에는 수어장대가 있는데,

「중정남한지」 “성지”에는 “광주부의 뒤 산기슭에 있 그림 4 _ 청량산과 행궁

그림 5 _ 남한산성도 중 행궁 부분

25) 正祖實錄. 卷8. 3년 8월 7일(무오).

26) 남한산성 행궁의 주산인 청량산의 형상은 무곡 금성체임. 이러한 무곡 금성체는 탐랑 목성체, 거문 토성체와 함께 三吉星이라 함.

호순신의「地理新法」에는 “무곡은 주로 富를 주관하며 旺氣를 얻어 旺盛하다(武曲主富 以得旺氣而盛也)”고 하였음.「地理人 子須知」에도 “금의 체는 둥글고 뾰족하지 않으며, 금의 성품은 고요하며 동요하지 않는다(金之體回而不尖性靜而不動)”고 하면 서 “官星이니 文章, 顯達, 忠正, 貞然(官星 主文章顯達忠正貞烈)”이라고 하여, 호순신의「지리신법」과 같은 주장을 함.

27) 홍경모. 2005. pp326-327(京城南四十里有山曰日長亦淸凉 其爲山中夷而外截若懸堞若仰釜然盖所謂天險也).

28) 桐溪集續集. 卷3. “附錄”(御製詩: 日長山色碧嵯峨 鍾得乾坤正氣多 北去南來同一義 精金堅石不曾磨).

으니 지형이 높고 시원하며 앞이 트여 멀리 조망된 다.”29)고 하였다. 즉 청량산이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산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2. 한남정맥의 자락을 차지한 주룡

「산경표」에 따르면 남한산성의 주산인 청량산은 한 남정맥에 속한다. 속리산에서 출발하여 칠현산에 이 르는 금북한남정맥은 다시 행룡하여 한남정맥을 이 룬다. 즉, 칠현산-백운산-구봉산-대소곡둔현-성 륜산-수유산-부아산-보개산-석성산-선장산-문수산-추현-갈마현-이치를 거쳐 남한산성에 이 르는 한남정맥의 한 자락을 차지한다(윤해근. 2007:

18). 남한산성과 행궁의 주룡은 <그림 6>과 같이 청 량산의 중출맥(中出脈)이다. 남한산성의 진산인 청 량산 중심에서 개장천심(開帳穿心)하여 중출맥을 뻗어 내린다. 위이기복(逶迤起伏)하며 행룡한 용은 급하게 흘러내려 행궁의 뒤편 이위정(以威亭)에 이 르면서 급격히 부드럽고 순한 모습으로 순룡의 자세 를 잡는다(<그림 7> 참조).

「지리인자수지」에 따르면 “무릇 용의 진은 조종 이 회이하고 출신이 활동적이고 행도함에 있어서 혹 개장천심하고 성봉이 수려하고, 요도와 지각이 있고, 기복과 돈질이 있으며, 박환과 전변이 있고, 과협내 맥이 있으며, 파포유양이 있고, 굴곡분주가 있어, 가 애하는 세가 있으며, 입수에 이르러 혈정이 명백하 고, 하수가 유력하며, 명당이 평정하며, 전안이 특달 하며, 사수가 유정하며, 수성수구가 법도에 합한 것”

(서선계˙서선술. 1992: 238)이라고 한다.

주룡의 행룡과정에서 혈을 맺는 곳은 기부포전 (肌附飽氈)30)하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 이를 「의룡 경」에는 “진룡은 낮고도 평탄한 것을 가장 귀하게 여 긴다.”31)고 하였다. 이러한 혈처의 모습은 건축물이 입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으로 양택지에 있어서 평지를 조성하는 모습과 일치한다. 그리고 다시 전순 부위에 해당하는 곳은 경사지가 되는 것으로, 건축물 을 건축하기 위해서 이러한 전순부위에 축대 혹은 계 단 등을 배치하게 된다. 따라서 계단과 축대를 통해 혈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는 가능해진다. 행궁 그림 6 _ 행궁의 주룡 등고선(1/5,000)

그림 7 _ 주룡과 이위정

29) 홍경모. 2005. p31(在府後麓上地 形高快望闊遠).

30) 퉁퉁하고 살찐 모습으로 풍만한 모습을 肌附라 하며 방석을 깔아놓은 것처럼 평지를 이룬 모습을 飽氈이라 함.

31) 양균송. 2009. p214(正龍低平最貴重).

입지에 있어서 상궐로 들어가는 내삼문 앞쪽의 계단 은 <그림 9>와 같이 급격한 경사를 이룬 모습이다. 이 는 주룡의 행룡이 멈추면서 전순을 이룬 곳에 계단을 조성한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한편, 주룡은 상궐 뒤편에 이르러 <그림 10>과 같 이 험한 바위를 노출시키고 있다. 이때 주룡을 따라온 원진수(元辰水)32)는 <그림 8>과 같이 행궁 뒤편에서 미세한 물길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물길은 주룡의 지 기를 갈무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3. 좌청룡에 치우친 행궁 혈처

풍수의 궁극적 목적은 혈을 찾는 것이다. 물론 이곳에 가장 중심이 되는 건축물을 입지시켜야 한다. 그런 차 원에서 남한산성에서 가장 풍수적 특징을 반영하여 조성한 곳은 행궁이 입지한 곳이다. 주산과 주룡 그 리고 주변 사격들이 어우러져 혈을 맺은 곳에 행궁이 입지한다. 그중에서도 왕의 숙소에 해당하는 상궐이 혈에 해당한다. 이는 풍수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인 혈처에 가장 핵심적인 공간을 배치한 것이다. 그러므 로 남한산성 행궁이 풍수적 관점에서 선정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궁이 입지 한 곳은 완벽한 길지의 조건을 구비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남한산성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라 할 수는 있겠으나, 길지조건에 부합하는 데는 부족한 모습이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균형과 조화라는 전제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다. 주산에서 중출로 출맥한 주룡이 보국의 중심에 서 행룡을 멈추고 혈을 맺어야 하나, 남한산성 행궁 이 입지한 혈처가 좌측의 청룡 쪽에 치우친 모습이다 (<그림 6> 참조).

그림 8 _ 행궁 뒤편의 물길

그림 9 _ 내삼문 앞쪽 계단

그림 10 _ 상궐 뒤편의 바위

32) 元辰水는 天心水라고도 하며 주룡을 보호하고 따라온 물을 말함. 上分하고 下合하는 원리를 통해 혈처의 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함.

둘째, 「의룡경」에는 “무릇 주산이 있으면 반드시 마주하여 안산이 있기 마련”33)이라 하였으나, 주산에 걸맞은 뚜렷한 안산이 없다.34)

셋째, 풍수에서 산을 정하여 음이라 하고 물은 동 하여 양이라 하는데, 음양의 조화를 위해서는 물이 혈처를 둥그렇게 환포하는 형상을 하여야 한다. 그러 나 음양의 조화를 주도하는 명당수가 환포하기보다 는 무정한 모습이다(<그림 11> 참조).

넷째, 전면의 명당이 경사져 있어, 평탄 원만해야 한다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행궁을 건설한 배경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 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남한산성 내부에서 우뚝 솟은 청량산에 비견할 만 한 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주산과 안산 그리고 좌우 청룡백호로 구성된 보국이 현재의 행궁 입지만큼 완 비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중정남한지」 “궁실”

에서 “왕이 거동할 때 머물기 위해 지은 것이 아니라,

유수의 집무실로 지은 것”35)이라고 밝힌 것처럼, 왕 이 머무는 행궁의 입지가 아닌 유수의 집무실로 선정

유수의 집무실로 지은 것”35)이라고 밝힌 것처럼, 왕 이 머무는 행궁의 입지가 아닌 유수의 집무실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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