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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老山居詠 의 이본

六老山居詠 이 발견된 것은 2006년 강진의 다산기념관에서 개최된

‘제2회 다산 정약용선생특별유물전’에 전시된 葫菴回納 이란 한 통 의 편지에서였다.24) 이에 따르면 다산은 무정월(戊正月, 1818년 1월 5 일), 그의 먼 친척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석옥의 시 한 권을 얻어 차 운하며 홀로 소견하고 있노라고 밝혔다. 다산이 초당에 정착한 때가 1808년이니 1818년 정월이면, 유배한 당시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뒤 이고 해배를 얼마 앞둔 다산초당에서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 해 봄 3월 8일에 石屋詩卷 이란 석옥의 차운시를 다산·운담·대운·철경·초의 등이 엮었고, 같은 해 가을 7월 16일에 다산은 연파의 문도들과 함께 六老山居詠 을 엮었다.

六老山居詠 을 엮게 된 경위가 기록되어 있는 葫菴回納 과 石屋 詩卷 에 대한 차운의 배경은 앞서 기술한 바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六老山居詠 의 「石屋禪師律詩奉和序」를 통하여 다산과 연파의 문도들이 六老山居詠 을 엮게 된 배경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Ÿ … 하루는 다산을 뵙고 함께 그 시에 화운하기를 논하니 다산이 말하 기를 “나와 그대는 모두 산속에 사는 자네. 산에서 거처하는 즐거움은 산 에 사는 자만이 알 수 있네.”라고 하여 차운하여 책으로 만들었다. 곁에 서 배우고 있던 在菴도 따라서 화운하니 그 중에 가작만 선별하여 약간 기록해둔다. 무인(1818)년 가을 7월 16일 兒菴 문인 掣䲔 씀25)

24) 정민(1), 277면-308면.

위의 글은 石屋詩卷 의 서문을 대부분 인용하여 필사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고찰해야할 점은 六老山居詠 의 원본과 石屋詩 卷 의 수록작품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이들의 내용이 어떻게 다른가 하 는 것이다.

다산이 석옥의 시를 차운하였던 시기는 철경이 제안하기 전 1818년 1월이고, 石屋詩卷 은 3월이며 六老山居詠 이 엮어진 것은 1818년 7 월이다. 또 栢悅錄 은 한참 후대의 필사본이다. 그렇다면 六老山居詠 이 石屋詩卷 을 보고 필사한 시첩이라면, 石屋詩卷 은 그 이전 1월 에 다산이 차운한 시첩을 보고 필사한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시기를 감 안한다면 석옥과 다산의 차운시로만 엮어진 시첩이 있는가 하는 문제 와, 만약에 그러한 시첩이 있다면 그것이 원본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石屋詩卷 의 수록 작품은 무엇인가 하는 점과, 六老山居詠 과 栢悅錄 · 採香錄 의 수록 작품이 어떻게 다른지 원 본과 이본의 문제를 고찰해보는 것이다. 이것은 시첩이 엮어진 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하나씩 이러한 문제들을 점검해 보기로 한다.

첫째, 石屋詩卷 과 六老山居詠 이 엮어지기 전 다산은 석옥의 시 를 차운하며 소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때 다산이 쓴 차운시 는 어디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하는 점이다. 만약 그 때 쓴 차운시가 어딘가에 있다면 그것이 원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이 발견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것을 추정해 보자면, 다산이 1월에 지은 차운시를 石屋詩卷 과 六老山居詠 에 수록하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 보는 것이다. 필사본이란 원본을 보고 베껴 쓴 것이기 때문에 石屋詩 卷 과 六老山居詠 에 나누어 필사하거나, 아니면 1월에 차운했던 시를 그대로 필사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石屋詩卷 은 3월에 운담·대운·

철경·초의와 함께 엮었다. 이들은 서로 문파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 스

25) 「石屋禪師律詩奉和序」, 六老山居詠 ,‘一日謁茶山 議共和之 茶山曰 吾與若皆山居者也 山居之樂 居者知之 因次韻成帙 學人在菴者 從和之 選其佳者 又錄若干. 戊寅秋七月旣望 兒 菴門人掣䲔題’

스로 같이 시첩을 엮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산은 이들을 모두 아울러 시첩을 엮으면서 자신이 미리 써 놓은 차운시를 함께 실었 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철경이 와서 차운시 엮기를 권하자, 다산은 石屋詩卷 을 토대로 철경을 중심으로 한 연파의 문도 들과 六老山居詠 을 엮는데 뜻을 함께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서 문을 철경이 필사하여 그의 이름을 수록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石屋詩 卷 에 실린 철경의 차운시를 밝힐 수만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 다. 만약 철경의 차운시가 石屋詩卷 과 六老山居詠 에 같은 작품이 실려 있다면 다산의 경우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石屋詩卷 과 六老山居詠 이 엮어지기 전, 1월에 다 산이 차운한 시첩이 있을 것이고 이 차운시는 두 시첩에도 동시에 수록 되었을 것이다. 만약 六老山居詠 이 石屋詩卷 을 필사한 것이라면, 石屋詩卷 과 六老山居詠 에 실린 다산의 차운시는 같은 작품일 가능성 이 많다. 따라서 六老山居詠 에 수록된 다산의 차운시는 石屋詩卷 이전에 엮은 원본에 수록된 것과 같다고 추론할 수 있다.

둘째, 石屋詩卷 의 수록된 작품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石屋詩 卷 이 발굴될 당시의 傳言에 의하면 원래 필첩형태로 되어 있는 것을 액자로 개정하면서 일부를 잘라냈다는 것이다.26) 앞뒤 신헌의 대나무와 난초 그림이 있고 앞쪽에 다산의 친필이 실린 「題草衣衣洵所藏石屋詩帖

」이란 제목이 있는데 六老山居詠 편집 이후 초의가 다시 여기에 차운 하였고 이에 다산이 석옥과 자신, 초의의 차운작을 나란히 적어 준 것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石屋詩卷 은 원래 다산과 운담·대운·철경·

초의가 차운한 시첩인데, 六老山居詠 이후 다시 다산과 초의가 차운 시를 첨가하여 엮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표구를 하기 위해 나머지는 모두 잘라 버리고 「題草衣衣洵所藏石屋詩帖」의 부분만 남아 있어, 많은 시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나 잘려진 시들이 무엇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

26) 정민(1), 288면-289면.

어 아쉬움만 더한다.

셋째, 六老山居詠 과 栢悅錄 · 採香錄 의 수록 작품이 어떻게 다른지 구성을 파악해 보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六老山居詠 과 栢悅 錄 · 採香錄 외에 더 많은 필사본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 사하고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연파의 또 다른 문도들이나 대둔사의 승 려, 또는 유학자들이 필사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발 견된 것은 栢悅錄 과 採香錄 뿐이어서 그에 대한 진위를 파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27) 학계에 알려지기는 栢悅錄 이 먼저 발굴되어 소개되 었고 나중에 六老山居詠 이 공개되었으나, 六老山居詠 은 철경이 필 사한 시첩이고, 栢悅錄 은 금명보정(錦溟寶鼎, 1861-1930)이 필사한 시첩으로서 필사연도가 분명하게 차이가 있어 六老山居詠 이 먼저 엮 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六老山居詠 이 栢悅錄 에는 「山居雜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되어 있는데, 두 시첩을 살펴보면 차운시의 수록순서가 조금 다르게 구 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필사자의 작품 수록 의도를 확인 할 수도 있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구성의 측면에서 六老山居詠 과 栢悅錄 에서의 차이점이다. 六老山居詠 에 수록된 절구는 석옥과 다 산, 침교의 작품만 실려 있는데 반해 栢悅錄 에는 석옥과 다산의 절구 만 실려 있다. 또 六老山居詠 에는 수록되지 않은 범해의 율시가 栢 悅錄 에는 필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필사자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수록 한 것으로 보인다.

수록순서도 다르다. 六老山居詠 은 서문이 있고 석옥의 7언율시 12수에 다산과 수룡·철경·침교·철선이 각각 7언율시 12수를 차운하 였고 다시 철선은 12수를 더 수록하였다. 그 다음 석옥과 다산의 7언절 구가 나중에 실려 있다. 그리고 율시와 절구 사이에 작자의 이름이 없 는 「次韻贈草衣二首」와 「次韻贈荷衣」·「次海宗庵韻」·「送道圓之蓮社」·

27) 採香錄 은 栢悅錄 과 똑 같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栢悅錄 을 중심으로 살펴본 다.

六老山居詠

작자 및 순서 차운시

1. 序 石屋禪師律詩奉和序.

2. 석옥의 7律詩

吾家住在霅溪西, 柴門雖設未嘗關, 幽居自與世相分, 溪淺泉淸見白(石)29)沙, 破屋蕭蕭枕石臺, 優遊靜坐野僧家, 滿頭白髮瘦棱層, 自入山來萬慮澄, 競利奔名何足誇, 歷遍乾坤沒處尋, 細把浮生物裡(理)推, 法道寥寥不可模.

3. 다산의 7律詩

竹閣蕭蕭蓮寺西, 去住悠悠夢覺關, 一自菴居與世分, 雨歇山庭露白沙, 半生胸裡小池臺, 本來身在卽吾家, 數畦荏菽綠層層, 新秋玉宇曉耒澄, 妻子團圝爾莫誇, 僧房無事偶相尋, 勢途寒暑本相推, 杞籬芋坎盡規模.

4. 수룡의 7律詩

伯夷何事餓山西, 病居誰訪白雲關, 淄澠二水莫相分, 石臼舂麤飯有沙, 課兒負土作新臺, 山尖水湛是吾家, 一席方畦斸數層, 潦水新收玉露澄, 龍象成群莫謾誇, 龍眠魚走水波深, 黃金瓦礫自相推, 赤靑黑白四時模.

5. 철경의 7律詩

小屋新開水縣西, 自笑趙州無字關, 方外深知淨土分, 三韓海上舊金沙, 艸屋淸高枕月臺, 山居遙隔世間家, 石廩峯陰㙮數層, 一道煙霞萬慮澄, 半世幽懷不願誇, 竗歲幽期物外尋, 駸駸歲月細相推, 慧命如絲不可模.

6. 침교의 7律詩

睡覺高樓日已西, 山深霧重掩松關, 一樓香煙靜不分, 平生病眼困風沙, 時扶藜杖步西臺, 茅庵如斗是吾家, 參差石角穴多層, 老樹迎涼秋氣澄, 矗矗朱門莫漫誇, 舊遊陳跡夢中尋, 世途翻復理難推, 華嚴大講破規模.

「贈別鉏漁」·「次贈達湖」·「山居雜吟五首」·「金剛行留觀大駕西巡」이 있 다. 이 시들은 작자가 분명치 않으나 철선의 작품으로 보는 시각이 우 세하다.28) 이를 표로 정리하여 栢悅錄 과의 차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 표는 六老山居詠 의 차운시 수록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표. Ⅰ> 六老山居詠 차운시 수록 현황

28) 이에 대하여 정민은 철선의 시라고 하였고, 김상일은 작자를 알 수 없으나 앞뒤의 맥락으로 보아 철선의 차운시일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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