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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이전의 차생활

다산의 차에 대한 해박한 식견은 유배 이전에 자라면서부터 익혀온 생활이었기에 가능하였다. 다산은 유배 전 20여 년 동안 꾸준한 음다 생활을 하며 여러 편의 다시를 남겼다. 그의 차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시는 茶山詩文集 에 잘 수록되어 있는데, 성균관에서 업무를 마치고 유생들과 함께 즐긴 차273), 부친의 부임지를 따라 화순에 갔을 때도 차 를 가까이 한 정황274) 등이 실려 있다. 275) 그 가운데 이주신의 산정에 서 죽란시사의 동인들이 모여 찻자리를 함께한 다시를 보기로 한다.

•살구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 고, 한여름에 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초가을 서늘할 때 西池에서 연꽃

273) 정약용, 茶山詩文集 2권. 「國子監同金道以 達淳 鄭文瞻 東觀 李周玉 相璜 洪穉成 秀 晩 諸學士考講 苦熱戲爲此篇」

274) 정약용, 茶山詩文集 1권. 「登聖住菴」

275) 박말다, 차인(茶人) 정약용 연구 , 목포대학교대학원 석사논문, 2009, 23면-52면.

다산 시문집 에 수록되어 있는 유배 이전의 다시 23편을 발굴하고 이의 전문을 실어 청년기와 중년기에 이루어진 다산의 차생활을 밝혔다.

구경을 위해 한 번 모이고, 국화가 피면 한 번 모이고, 겨울철 큰 눈이 내 리면 한 번 모이고, 세모에 盆梅가 피면 한 번 모이되, 모임 때마다 술ㆍ 안주ㆍ붓ㆍ벼루 등을 설비하여 술 마시며 시 읊는 데에 이바지한다. 모임 은 나이 적은 사람부터 먼저 모임을 마련하여 나이 많은 사람에 이르되, 한 차례 돌면 다시 그렇게 한다. 아들을 낳은 사람이 있으면 모임을 마련 하고, 수령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마련하고, 품계가 승진된 사람이 있 으면 마련하고, 자제 중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있으면 마련한다.” 이에 이름과 約條를 쓰고 제목을 竹欄詩社帖 이라고 썼으니, 그 모임이 흔히 우리 집에서 있었기 때문이다.276)

• 푸른 숲이 태양을 감췄는가 蒼林深白日 차 끓는 소리 또록또록 들리네 寂歷聽甁笙 개 닭에게는 시골구석이 좋은데 鷄犬安窮巷 전원 사람 서울에 와 숨었구나 田園隱上京 산새도 소리 바꾸기 시작하고 幽禽初變響 약초는 점점 줄기 뻗는다 藥草漸舒莖 세상 쉽게 보면 애탈 일 없고 經世人無悶 하늘 뜻 따르면 다툴 일도 없지 隨天物不爭 찌는 구름 꽤나 방해를 놓는데 炎雲頗作壅 공중에 뜬 것들 좀 없어졌으면 游氣共求平 어린싹은 물을 대줘야 하고 綠穉方須灌277)

위의 다시는 다산이 36세 때 이주신의 산정에서 동인들과 찻물 끓 는 소리를 들으며 죽란시사를 결성한 정경을 읊은 것이다. 모임 때마다 술, 안주, 붓, 벼루와 차도 빠뜨리지 않고 준비하였다. 당시 사대부들 사이에 일반화되었던 죽란시사에는 차를 즐기는 풍류문화가 조성되어 있었음을 것을 짐작케 한다. 이들은 차와 함께 사철 흐르는 자연의 섭 리를 터득하고 붓과 벼루를 들어 자신의 완상을 담론하고 기록하는 아 름다운 만남을 이어갔던 것이다. 혹한 추위를 견뎌내고 꽃을 피워내는 매화 앞에서 우주의 기운을 느끼고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자연의 철

276) 정약용, 茶山詩文集 13권, 「竹欄詩社帖序」.

277) 정약용, 茶山詩文集 3권, 「李周臣 山亭에서 비를 만나 여러 벗들과 함께 흥풀이로 삼 십 韻을 읊었는데, 拈韻法을 썼음. 바둑알 30개에다 각기 운 하나씩을 써서 병 속에다 넣어 두고 그것을 하나씩 나오는 대로 꺼내 이리저리 서로 이어서 말을 만들었다」.

리에서 생명의 영원성을 보는 죽란시사에는 언제나 차가 함꼐 하였던 것이다.

이 밖에도 다산의 시문집에는 혼자서 차를 즐기는 정경과278), 화순 에 있는 연담선사를 만나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시는 모습279), 유람 중 에도 차 마시기를 잊지 않는 풍류 등이 적잖이 표현되어 있다. 이 중 「 遊資孝寺」는 산사의 풍광과 시자승의 모습 등 절의 정경을 묘사하는 가 운데 선다를 마시고 자연을 감상하는 다산의 다풍을 읽을 수 있다.

쭉쭉 뻗은 향나무가 산 입구에 줄 서 있고 蒼栝矗矗當山門 말에 내려 절문에 드니 운하가 물결치네 下馬入門雲霞翻 뜰 아래 융규는 제멋대로 누워 있고 階下戎葵臥自放 다리 머리 하류가 울 노릇을 하고 있다 橋頭河柳借爲樊 하는 짓이 사랑스럽고 예쁘장한 상좌중은 僧雛丰麗多可愛 인사를 끝내고는 삼 담근 데로 가버리고 禮畢去向漚麻園 늙은 중은 고양이를 손에다 들고 앉아 老僧手執貍奴坐 손자처럼 털을 빗기고 이마를 쓰다듬네 調毛撫頂如兒孫 끓여온 차 마시자마자 서둘러 신발 신은 것은 茶湯纔進急穿屨 폭포 소리 요란 하여 빨리 가보고 싶어서였지 瀑泉聲動欣欲奔 흰 거품이 바람 타고 사람 얼굴에 불어와서 淸風素沫吹人面 단풍나무 밑에 앉아 술자리를 벌였다네 命酒列坐靑楓根 옛 분들이 무슨 뜻으로 폭포 구경한 줄 알지 古人觀瀑知何意 오장 속에 축적된 번열 씻지 못해서라네 蓄積未洩五內煩 해 지고 별 보며 산곡을 내려오니 日沒星生下山曲 길가 나무들 껌껌하고 군악 소리 시끌짝하네 官道樹暗鐃吹喧280)

이로 보아 다산은 유배 이전에 일생생활에서 차생활을 통해 다풍을 즐겼으며 제다, 품다에 대해서도 상당한 식견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산의 차에 대한 지식은 강진 유배 시 연파와 그 주변의 지인들 에게 전수되었고, 배운 대로 법제할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278) 정약용, 茶山詩文集 1권. 「尾泉歌」.

279) 정약용, 茶山詩文集 1권. 「贈有一上人」.

280) 정약용, 茶山詩文集 3권. 「遊資孝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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