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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이론적 배경

6. 노화에 대한 태도와 죽음에 대한 태도

<明心寶鑑> <存心編>에는, “人無百歲人 枉作千年計”라는 말이 나온다. 백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이 허황되게도 천년을 계획한다는 말이다. 원래 사람의 본성적 마 음이 허왕되기 쉬움은 차치하고, 자고로 인간이 백세를 살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의 특별한 뜻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으나, 오늘날에 와서의 百歲는 거 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인지상정의 다반사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인간에게 百歲가 행복하기만 한 것일까? 오래 산다는 문제는 필연 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오래 잘 사는 것(well-aging)인가의 문제와, 또한, 어떻게 삶을 잘 마감하는 것(well-dying)이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으며 진정 오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것일까라는 문제를 우리들에게 제기하게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노년 의 건강을 포함하는 삶의 질(QOL, Quality of Life)의 문제와 좋은 죽음 (Well-Dying)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개인 차원에서 뿐아니라 사회적 및 국가적 차 원에서 모두 대단히 뜨겁게 고조되고 있으며, 사회 각 분야에서 노년학 (gerontology)과 죽음학(thanatology) 관련 교육프로그램과 연구프로젝트들이 앞다 투어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의 모습이다.

이하에서는 ‘노화에 대한 태도’와 관련하여 ‘Well-Aging’의 개념을 중심으 로, ‘죽음에 대한 태도’와 관련하여 ‘Well-Dying’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최 근의 연구를 이론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가. 노화에 대한 태도

노년의 ‘삶의 질’이라는 개념은 때로 ‘well-aging’의 개념과 혼용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노년기에 삶의 질이 높으면 ‘well-aging’으로 간주하는 것인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었다고 평가되고 있다(김봉환 등, 2014).

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죽음이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을 거쳐

별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중태에 빠지면 자기의사를 내세울 권리가 전혀 없는 사람처럼 다루어지는 것은 물론, 병원에 입원시킬 것인지 말 것 인지, 언제 그리고 어디에 입원시킬 것인지를 제삼자가 결정하는 것이 예사이다.

이렇게 죽어 가는 환자에게도 감정이 있고 소원과 의사가 있다는 것과 자기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 현실에서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 말기 임종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이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의료복지의 현 실은 우리가 느끼는 죽음을 더욱 더 차갑게 하고 있다. 말기 의료의 임상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종을 맞이하는 개인의 존엄과 가치에 촛점을 맞추어 모든 시술 과 복지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김향미와 손영수, 2013).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죽음의 모습은 이러 한 차거운 현실에서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즉, 자신의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자손들에 둘러 싸여 편안하고, 고통없이, 잠자는 듯이 피안의 세상으로 가고 싶어 한다. 근자에 유행하는 “9988124”라는 말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바람직한 죽음의 형태를 이와 같이 ‘팔팔하게 구십구세까지 살다가 하루 이틀 아프다가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