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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와 윤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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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의 특징이란 잘 알려져 있듯이 대상에 대한 시각적 묘사에 있다기보다는 작가의 내면적 감정의 표현에서 비롯된 탓에 그 형식 또한 모방이나 묘사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표현주의에서는 대상에 직접 주목하기보다는 대상으로부터 감지된 감정을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수용자 내면의 무의식적 상태까지 끌고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정서를 주관적 입장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형태에 있어서 대상에 대한 기표와 기의를 완전히 해체하려는 경향의 추상을 적극적으로 취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대상을 표현해내는데 최적의 표현수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합리적인 지점을 찾아서 모색해 나가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상황에 닥친 감정에 의탁해 즉흥적인 형식에 이르는 양식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작품형식 또한 표현의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굳이 일정한 양식에 제한을 두지 않으나 그때그때 주관적 느낌과 직관에 따른 표현수 단으로서의 색과 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상에서의 감정 흐름이 어느 한 줄기로만 흐를 수 없듯이 구상과 추상 사이를 애매하게 오가며, 비체계적 작품 구성이 오히려 관람자와의 정서적 교감과 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형태의 왜곡과 변형이 오히려 표현성을 드러내는데 전략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믿음은 설득력이 있다. 자유롭게 중첩해 나타나는 형태의 외곽선과 더불어 시각적 대상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적 채색이 어우러져 비합리적인 공간을 구성하고, 정리되지 않은 듯한, 그러면서도 전체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통일된 비합리성은 오히려 부조리 한 현실과 상황을 표현하는 진실한 형태로서 작용한다고 본다.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애매한 지식인의 시선을 느낄 수도 있고, 점점 실제를 대신해 이미지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불확정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도 작용한다.

전통적 표현주의에서 흔히 사용되는 형태의 흐트러짐이나 왜곡이 전통에 있어서 전형적인 회화구조를 허물기 위한 전략과 함께 표현주의의 특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사용했다면, 본인의 회화에서는 이러한 특징에 더해 새롭게 변해가는 사회상의 반영으 로서의 애매성과 보다 덜 강화되고, 덜 확정적으로 보이는 중첩된 윤곽선들의 표현을 통해 현대인들의 심리를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차별을 두고자 했다.

한편 형태의 왜곡과 형태를 아우르는 윤곽선들의 불확정적인 구획을 통한 표현은 또 다른 의도로서 활용되고 있다. 이는 대상에 대해 비결정적인 단계로 비치길 유도하 기도 한다. 달리 말하자면 추상으로 더 나아가려는 의도로도 비치기도 하고, 보다 정돈된 구상을 찾아 가려는 의지를 나타내는 듯도 하다. 이러한 표현양식은 감지한 세계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구축해 나가려는 의지를 표현하는 듯도 하지만, 반대로 알 수 없는 어떤 본질에 대해 어쩔 수 없는 해석에만 머물러야 하는, 즉 본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과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따라서 때론 모호하면서도 감정적인 표현의

효과는 곧 현대인의 세계 인식 태도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여기서 본인의 작품 <지팡이가 있는 인물> <K부인> <앉아 있는 남자> 등의 작품을 살펴보자. 소재의 인물은 작가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형태 의 왜곡은 <깨진 가면을 든 자화상>이나 혹은 <피로사회>에서 보여주는 것에 비해 크 지는 않다고 보여 진다. 대신 인물을 표현하는 윤곽선의 특징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 다. 여기에서 시도된 윤곽선의 표현들은 얼핏 동양화법에서 흔히 거론되는 일필휘지 의 기운생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빠르게 흐르는 듯한 선들의 반복 사용과 때로는 두텁 고 때로는 가는 선들이 바탕배경과 표현 대상의 경계를 교란시키며 관람자의 시선을 방해하는 듯도 하다. 굵거나 가늘게, 그리고 빠르거나 느리게, 혹은 진하거나 희미하 게, 마치 드로잉의 한 과정처럼 흐르는 윤곽선의 강조를 통해서 작가는 현대인의 내면 에 잠재한 보다 복잡한 감정이나 세계인식을 표현해 내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작 가는 소재로 택한 주변 인물에 대한 사전 정보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미 대상으로 다가온 인물묘사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고 고백하는 것 처럼 보인다. 이는 인물의 사실적 표현에 신경 쓰기보다는 표현 대상으로 다가온 인물 들에 대한 보다 본질적 접근을 시도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어차피 스스로의 존재 양 태에 대한 인식에도 자신 할 수 없는 현대인의 심성을 이해했을 때, 우리는 아무리 현 실 속에서 친숙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이미 객관적 진실로서 그들을 이해하기란 애초 불가능하다는 심리를 잘 반영하려는 작가의 의도에서 표현주의적 형태의 윤곽선을 활 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인간 존재 인식의 깊이까지를 고민했을 때 드 러난 표현의 한계는 이성적 관찰과 합리적 사고의 결과로서 얻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즉 흥적이면서도 이성을 통해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원초적 감각과 느낌에 의존해가며 한 대상에 대한 순수감정과 옮길 수 없는 언어 외적 표현으로 이러한 접근 방식은 유효하 다고 믿는다.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표현주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한 윤곽선에 대한 영 향을 작가 나름의 해석을 통해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선들이 지시하는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역시 경계와 방향성이라 할 수 있다. 잭슨 폴록의 작품에서 선은 거대한 화면을 가로지르며 작가의 몸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곧 화면이동을 통해 행위의 궤적을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 그의 회화를 일컬어

‘액션 페인팅’이라고 한 로젠버그의 명명은 보다 핵심을 잘 짚어낸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 또한 선의 사용을 통해 잭슨 폴록의 경우와는 다를 수 있지만 소위 이미지 트레 이닝을 하는 경험을 한다. 때로는 큰 동작과 작은 동작으로, 때로는 힘 있고 생동감 있는 동작을 통해 선을 긋는다. 따라서 이때의 선은 전통방식의 단순한 형태의 외곽 으로서의 역할만으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동양화법의 일필휘지 같은 내면의 힘의 표출이자 즉흥적이면서도 가공되지 않은 보다 원초적인 감정의 발로로서 작용하는 선의 성격 또한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 겠다. 윤곽선은 드러나는 화면의 배경과 주제 혹은 소재들과의 사이를 구획지음으로 서 표현하고 싶은 대상과 주제 등을 강조하려는 의도 또한 없지 않다.

본인의 회화에서 보여 지는 이러한 경계선으로서 윤곽선 역할은 형태의 경계를 밝 히는 일반적 성격을 지녔음에도, 때로는 오히려 주제의 부각을 방해하는 쪽으로도 읽 힌다. 앞서 이를 현대인이 가진 보편적 특징의 하나인 애매성의 표현으로도 설명 한 바 있지만, 또 하나는 즉흥적인 감정의 이미지 트레이닝으로서의 소위 작업 행위에 숨어 있는 표현자 몸에서 나오는 또 다른 감정의 전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표현주의 기법으로 자주 활용되는 즉흥성과도 연결이 된다. 따라서 작업을 통한 즉흥적인 감정의 표현은 자연스럽게 순간적인 몸의 에너지로 치환되면서 날것으 로서의 생생한 감각을 떠받들기도 하는데, 이는 바로 표현 이전의 상태, 곧 대상 자체 에 동화되고 몰입되는 묘한 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이는 바로 표현의 순간, 내면의 무의식은 물론 작가의 몸적 긴장의 상태가 선이라는 매개를 통해 표현되어지기도 한 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인간의 합리적 주체는 대상으로 여기는 세상을 인식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첨예하게 변해가는 디지털 혁명의 한복판 을 가로지르는 오늘날, 우리에게 세계는 과연 어떻게 다가와 있는가? 물질문명의 발달 과 과학의 성과는 손바닥보다도 작은 휴대용 아이티 기기를 통해 실시간 세계의 흐름 을 중계하고, 알고 싶은 거의 무한대의 정보를 주저 없이 검색할 수도 있다. 언뜻 인 터넷의 공간은 가장 민주적이며 평등한 가치를 실현하는 현대의 절대적 가치로서 받아 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생각처럼 간단치 않게 진행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교묘하게 통제되고 조정되어가는 시스템 속에 빈부의 차이는 더욱 심화되어가지만, 정 작 파악할 수 있는 구조의 흐름은 점점 베일 속에 가려져 지배이데올로기에 저항할 과

녁마저 흐리게 만드는 게 현실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대사회 속에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되어질 수 없는 현상들이며, 그 안에서 부조리한 상태로 넘실대는 개인의 욕망을 표현해 내는데 이러한 형태의 왜곡과 함께 이미지의 애매성을 더욱 강화하는 장치로서 불확정적인 윤곽선이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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