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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쿠닝이 1940년까지는 자코메디를 연상시키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다. 이후 그는 고르키 등을 통해 젊은 미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추상표현주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동참 하게 된다. 그는 1948년 흑백의 추상화를 전시하여 당시 유럽에 충격을 주면서 주목 을 받았다. 그의 작품의 추상 형태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함축 된 듯 했으며 예리하 면서도 날카로운 붓놀림으로 격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흐른 후 그는 여인 연작의 작품을 발표하게 되는데 여기서 쿠닝의 독창적인 회화 기법은 유감 없이 발휘된다. 쿠닝이 그린 여인 연작에는 현대사회의 상품화된 성적 강박관념을 강한 에너지와 힘의 발산 속에 드러내고 있는 듯 보였다.26) 쿠닝은 이러한 여인 연작 을 20년 이상 다루어 왔는데 처음 작품인 <여인1> 도판9) 을 완성하는데 오랜 기간을 보냈다고 한다. 쿠닝은 애초 추상표현주의에 합류하면서도 추상회화에 대한 열정은 없 었다. 쿠닝은 “추상적 형태라 하더라도 유사성은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27) 그는 여인 연작을 하면서 ‘여자’를 화면의 중앙에 위치시키는 고전적 회화 양식을 차용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으며 밝고 미묘한 색채감각은 ‘행위’적인 경향에 더 집중한 작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쿠닝의 그림은 무엇보다도 과정의 실체였다. 즉 체계적이든 형태를 암 시하는 흔적들, 공간을 암시하는 형태들, 그리고 형상과 동시에 정신적 상태를 표현 하는 기능만을 허용하는 것으로 간주 되었다.28) 쿠닝은 여인 연작을 통해 추상적인 형태 가운데서도 구체적인 형상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추상회화에 서 해결할 수 없었던 화면의 구성, 색채나 형태들의 상호 관계를 해결하는 방식에 몰두했다.

연인 연작에 나타난 기법을 보면 우선 페인트 붓으로 처리된 큰 터치들은 면을 형성

26) 김현화, <20세기 미술사> 한길아트, p.232

27) 로버트 린턴, 윤난지 옮김, <20세기 미술> 예경, p.234 28) 위의 책, p.234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 중간을 빠른 필치로 휘갈긴 듯한 격렬함을 내보여 마치 팔 의 제스처에 따라 단숨에 완성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추상의 휘갈김 속에서 미묘 한 형태의 구상적 요소를 찾아내는 듯한 그의 작품은 완성을 위해 오래 숙고했다고 한다. 쿠닝의 이러한 작업은 캔버스의 평면성과 물감의 물질성을 획득하기 위한 다양 한 표현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면의 붓 터치는 드로잉을 대신하는 것처럼 비치면서도 효과 면에서는 즉흥성을 더해주면서 선적인 형태들은 마치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에서 보여 지는 신체 행위의 궤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바로 이러한 특성 으로 인해 그림에 역동적인 힘을 부여하고, 거기에 정열적인 색채들과 어울리면서 여인의 고무된 성적 욕망을 자극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쿠닝의 작품이 갖는 특징에는 격렬한 붓놀림과 색채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형태가 공간이 되고 공간이 형태가 되는 추상성 속에 대상이 연상되는 모호한 구상적 측면에 있다고 하겠다.

제4장 인간과 삶에 대한 표현주의적 접근 방식

- 본인 작품을 중심으로

제1절 내면의 표현과 해석의 주관성

표현주의는 그 출발에서부터 양식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표현주의 화가들 각각에서도 표현에 대한 해석과 주관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다수 표현주의 화가들에게서 나타나는 지배적인 특징을 꼽자면 가시적인 세계에 대해 느끼는 주관성의 표현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전통적 표현주의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는 독일 표현주의에서도 조차 남부 독일 화가들과 드레스덴을 중심으로 한 북부 독일 표현주의 사이에 표현방식의 차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독일 표현주의를 대표 한다고 볼 수 있는 다리파의 경우 대개 인간과 그 주변 환경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표현하려했다. 그들은 인간 실존의 어두운 구석과 대도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중심 주제로 많이 담았다. 초창기 표현주의에 등장했던 목가적 풍경화를 통한

생의 기쁨을 표현하는 작품 또한 없지 않았지만 풍경에서도 대상에 대한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투사가 이뤄짐으로서 차츰 정신적 주관적인 풍경화로 이전해갔다. 이와 같이 20세기 초 예술운동의 하나였던 표현주의의 시작은 어쩌면 개인적인 사적 경험을 토대로 개인의 주관적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에서 시작 됐다고 할 수 있다. 표현주의에서는 세계에 대한 인간관계가 충격적으로 뒤흔들려 나타났으며, 그 결과 자아와 세계의 긴장관계가 유발됨에 따라 화가는 가시적인 것을 재현해내는 게 아니라 가시적이게끔 만들었던 것이다.29) 표현주의자들은 자아의 내부에 있는 감정 과 감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예술의 목적으로 삼았다.

모든 예술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본인의 내부 세계가 작품을 통해 표출된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시대 문화적 상황 속에서 심리적 사회적 일정한 영향 하에 놓이 게 된 것도 사실이다. 표현주의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이와 같이 예술가들이 작품에 반영하는 개인적 체험과 무의식적 내면의 심리적 상태를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점일 것이다. 초기 표현주의 역시 모더니즘 틀 속에서 자신들의 미술에 대한 철학적 관념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주의의 대표 적 특징 중의 하나인 근원으로부터의 추구라거나 내면의 무의식적 감정의 표현으로서 의 특징들은 단토가 예견한 모더니즘의 종말 이후에 벌어진 탈역사적 시대라고 할 지금에 와서도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양식상의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현대사회를 반영하고 이를 표현하는 하나의 양식적 정신사적 측면에서도 표현주의는 단지 지나간 미술사조로서의 낡은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말해준다. 현대사회가 가진 병폐와 상상하지 못 할 과학문명의 발달 속에서도 극복 할 수 없는 인간내면의 부조리한 정신 상태, 비이성적 감정에 기댄 표현을 통해 소통하려는 예술적 장치란 현시대에 어긋나기보다는 오히려 신선한 충격 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 본인의 회화 작업도 표현주 의 양식적 특질을 살려 당대의 사회 문화적 상황과 개인의 주관적 내면 풍경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출 할 수 있도록 이를 보다 창조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 또한 이 논문의 취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인의 작품에서는 주제를 표현하는데 있어 표현주의적 특징들을 적극적으로

29) 정미희, <독일 표현주의 미술> 일지사, p.86

공유하고 있다. 주제를 표현하는데 있어 객관적이고 보다 묘사적인 방법을 의식적으로 포기한 점 또한 그러한 맥락과 같다. 대상을 통해 주제에 접근하려는 방식에서 추상적인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구상적인 요소를 더 선호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대상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만을 그대로 취하려는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의 그것과는 거리감이 있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보다 밀도 있는 재현을 포기한 시각적 이미지 속에서 오히려 자신 의 내면에서 나오는 근원적인 감정의 투사는 보다 직접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본인은 소재의 선택에서부터 이 점을 고려한다. 소재의 선택 역시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일상에서 얻은 모티브를 재구성함으로서 연출을 통한 체계적인 구성으로도 작가의 주관적 내면의 심리를 표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대상과 작가 사의의 소통이란 보다 덜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경우가 많다고 본다.

고전주의 시대 화가들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묘사’라는 사물성에 중점을 두고 작 업에 임했다면, 이후 인상주의에 와서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관찰자가 ‘보는 그대로’의 묘사에 의미를 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상주의의 입장에 반기 를 들며 나타나기 시작한 미술사조가 표현주의라고 한다면, 표현주의에 와서는 묘사할 대상에 대해 ‘있는 그대로’도 아닌, 그렇다고 객관적 사실에 치중해 화가의 눈에 비친 빛의 현상에 몰두하며 작업하지도 않았다. 표현주의는 자연보다는 예술가의 감성을 더 선호하며 작업 했던 건 분명하다. 표현주의자들에게는 내면의 삶, 그리고 경험에 대한 그들의 느낌이 자원이 된다. 그들은 매체와 형식과 주제들을 그들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 관람자가 비슷한 정서와 감정의 느낌을 경험할 것인지, 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 할 수 있느냐에 있다. 그들에게는 표현의 강도 가 재현의 정확성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 것이다.30)

그러면 여기서 본인의 작품 <피로 사회>도판10)나 <끌려가는 사람>도판11)에 나타난 표현 방식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들 두 작품에 나타난 형상의 처리 방식은 매우 애매 모호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애초 어떤 동작이나 형태에 대한 재현에 목 적이 있음이 아니란 건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작품에 나타난 인물은 사람과 동물의 어떤 경계인 같은 생각마저 자아낸다. 이점은 작품이 인간 중심의 상징적 의미를 지녔

30) 데리 바렛, 이태호 옮김, <미술비평> 아트북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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