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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부동산투자 배경과 추이

작하고 미 달러화의 평가절상은 미국 내수시장의 확대를 불러온 반면 미국 제조 업으로서는 수출에 곤란을 겪게 되어 재정수지 적자와 더불어 경상수지 적자도 확대되는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 처한다.

이를 위한 타개책으로서 레이건 행정부는 일본, 독일을 대상국으로 하는 프 라자 합의를 강요하게 되고, 프라자 합의의 주요 내용은 엔/달러 환율을 1달러당 300엔이었던 것을 70엔으로 조정하게 되지만 갑작스러운 환율 조정을 통해 일 본의 기업들은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는 엔고를 통한 해외투자라는 타개 책을 고려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③ 기업들의 수익구조의 다변화 요구

일본의 대기업 집단들은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통해서 여러 가지 산업에 동시 에 진입하는 형태를 취하기도 했는데 몇몇 사업분야에 있어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기업들이 진입하게 되어 수익구조가 악화되고 일본의 기업들은 수익구조 의 악화를 부동산 투자로 인한 수익으로 상쇄하고자 하였다.

④ 수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해외 거점 마련

기업의 해외 진출 방식으로는 새롭게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그린필드형 투자, 해당 국가에 동종 사업을 진행 중인 기업을 매수하는 M&A형 투자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메인뱅크를 중심으로 한 기업 내 순환 출자와 간접금융에 의한 자본 조달을 중심으로 산업이 성장한 탓에 많은 기업들이 M&A에 익숙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그린필드형 투자가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할 수 있지만 2000년 대에 들어서 일본 기업들도 해외 자본 혹은 국내 신흥 자본에 의한 적대적 M&A 에 대해 경험하게 되면서 M&A를 그린필드형 투자보다 리스크가 낮은 투자형태 의 하나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에 노무라연구소가 리먼 브라더스의 아시아 사업부를 인수합병하려는 움 직임과 한때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벤쳐기업 라이브도어가 거대 기업 후지TV 를 인수합병하려는 움직임에서도 일본 기업들의 M&A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 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일본의 해외부동산 투자추이

일본은 1969년 해외투자자유화가 시작된 이후 38년간 해외부동산투자가 이루 어져 일본 해외부동산투자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해외부 동산 투자 상황을 이해하고 향후의 전개방향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① 2차 대전 후부터 1960년대 말

2차 대전 후 1960년대 말까지는 일본이 패전으로 상실된 경제기반을 회복하는 시기여서 일본정부는 국제수지개선을 위해 1968년까지 외국환관리법을 통해 해 외투자를 엄격히 규제하였다.

② 1970년대

일본의 해외투자 자유화 조치가 시작된 것은 1969년부터이다. 국제수지의 흑 자기조가 정착됨에 따라 국제수지의 균형유지와 해외시장 및 자원 확보를 위해 해외투자를 장려하였고 이 후 3년 동안 4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해외투자규제 를 완화하여 1972년에는 해외부동산 취득이 실질적으로 완전 자유화되었다.

1972년부터 급증한 해외부동산 투자는 1973년까지 2년 동안 20~30억 달러에 이르렀으나, 1974년 석유파동이 발생하면서 주춤하였고 1974년부터 1977년 사이 의 해외투자는 소폭 증가하기는 하였지만, 높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 으로는 정체된 것임을 알 수 있다.

③ 1980년대 초반

1980년대까지 일본의 해외부동산 투자는 기업위주로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우리정부의 2006년 1월 15일 “기업의 대외진출촉진과 해외투자확대 방안”처럼 일본정부가 기업들의 해외투자를 적극 유도한 것에 기인한다.

석유파동이 마무리된 1978년부터 일본의 해외투자는 다시 급증하기 시작하여 1984년에는 해외부동산투자액이 100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는 다음의 이 유들 때문이다.

첫째, 1차 석유파동 이후 기업들의 경영합리화 추진에 따라 투자여력이 확대 되었고, 둘째, 임금과 지가가 상승하여 국내투자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셋 째,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기업들이 현지로 진출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

졌으며, 넷째, 석유파동으로 자원 확보를 위한 해외투자의 필요성이 재인식된 것 이다.

④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 : 일본 해외부동산투자의 전성기

1985년 플라자합의(G5 회담)에 의해 엔고가 추진되고 저금리가 실현되면서 전 성기를 맞게 된 일본의 해외부동산투자는 1987년 한해만도 300억 달러에 달하였 다.

일본은 1980년대 말부터 미국의 부동산을 집어삼키기 시작하였다. 1989년 일 본의 미쓰비시는 미국 뉴욕의 록펠러센터 매입을 발표했고, ‘미국의 혼이 팔렸 다’는 탄식과 함께 전 미국이 떠들썩했지만 미쓰비시는 1995년 록펠러센터 주식 포기를 선언하였다. 1990년 일본 부동산 업체 미노루이수타니 그룹은 세계 최고 골프장의 하나인 캘리포니아 페블비치 골프 코스를 사들였고, 가격은 8억4000만 달러로, 미국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미노루이수타니는 불과 2년 만에 3억 4000만 달러를 손해를 본 채 이를 되팔았는데 이것은 양자 모두 계속되는 적자와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일본의 해외부동산투자는 미국, 유럽국들이 경기회복과 부동산가격 상승에 따 라 1988년부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여 1990년대 초 현지의 부동산버블이 붕 괴되자 직격탄을 맞고 침체기에 진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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