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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러 경제협력 거버넌스 평가

제5장

한국의 대러 경제협력

정책과 거버넌스 평가

1. 한국의 대러 경제협력 정책과 거버넌스

가. 박근혜 정부의 대러 경제협력 정책과 거버넌스

2013년 10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주최한 ‘유 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 기조연설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유라 시아 시대를 열기 위해 국제협력을 강화하자는 내용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198)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교통ㆍ에너지ㆍ통상 네트워크 확대를 통 한 ‘하나의 대륙’, 국제적 차원의 창조경제 추진 및 문화ㆍ인적 교류 확대를 통한

‘창조의 대륙’,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한 국제적 지 지에 기초한 ‘평화의 대륙’이라는 유라시아 역내 협력의 비전을 제시했다.199)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대러 경제협력과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후 다시 한 번 대러 경제협력을 국가적 어젠다로 격상시켰다. ‘유 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대러 경제협력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관심을 크게 제고 하면서 새로운 정책적 추동력을 제공했다. 둘째, 대러와 대북 경제협력을 상호 연계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러시아의 산업 다각화, 교통ㆍ물류 인프라 확대 등에 한국의 산업ㆍ기술 경쟁력을 활용하여 함께 새로운 시장 및 성장 동 력을 확보하고, 여기에 북한의 국제협력 참여를 유도해 남ㆍ북관계 안정과 북 한의 개혁ㆍ개방을 촉진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셋째, 러시아를 비롯 한 탈 소비에트 국가들을 협의(狹義)의 ‘유라시아’ 개념으로 묶으면서 한국의 유라시아 국제협력 주도 의지를 천명했다. 다시 말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이 소홀했던 탈 소비에트 국가들을 이른바 ‘유라시아’

198)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전문(全文)과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의 주요 내용은 대외경제 정책연구원(2013) 참고.

국가들로 규정하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한국의 협력 확대 의지를 구체화하고, 동시에 동북아의 중견국에서 유라시아 국제협력의 주도국으로 도약한다는 정 책적 지향을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발표 이후 정부는 대러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기반 조 성, 특히 경제협력 거버넌스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첫째, 구체적인 실행계 획을 수립하고 범정부적 추진체계를 구축했다. 정부는 2014년 12월 대외경제 관계장관회의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로드맵’을 확정하고, 2015년 2월 기 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범정부적 협의ㆍ조정기구인 유 라시아 경협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을 위한 통합 지 원체계를 출범시켰다.200) 둘째,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금융지원체계를 마련했 다. 2013년 11월 한러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총 30억 달러 규모의 투ㆍ융 자 플랫폼을 조성하는 데 합의하고, 당시 한국수출입은행과 러시아 대외경제은 행(VEB)(10억 달러), 한국투자공사(KIC)와 러시아직접투자펀드(5억 달러), 한 국수출입은행과 러시아 스베르방크(Sberbank)(기설정분 7억 달러 포함 15억 달러)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201) 이후 2015년 12월 양국 정부 및 금융기관 4 자 협의체 형식의 투ㆍ융자플랫폼 실무회의202)를 개최하고 2016년 3월 기획 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과 극동개발부 차관을 양국 수석대표로 하는 한러 투자 촉진실무그룹회의를 열어 투ㆍ융자 플랫폼을 활용한 투자 확대 방안을 모색했 다.203) 셋째,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법ㆍ제도적 기반 조성에 착수했다. 2013 년 11월 서울에서 60일간 양국 국민이 상대국에 무비자 체류가 가능한 한러 일 반여권 사증면제 협정이 체결되었고, 이듬해 1월 1일 발효되었다.204) 또한

200) 기획재정부(b), 온라인 자료(검색일:2019. 11. 3).

201) 이진(2015), pp. 81~85; 「한-러 30억달러 금융지원 협력, 어디다 쓰나」(2013. 11. 13), 온라인 기사 (검색일: 2019. 11. 5).

202) 「한-러 투자촉진실무그룹 내년 2월부터 운영」(2015. 12. 11), 온라인 기사(검색일: 2019. 11. 5).

203) 「정부, 러시아 정부정책 결정에 한국기업 참여 요청」(2016. 3. 4), 온라인 기사(검색일: 2019. 9. 3).

204) 「한-러 일반여권 사증면제협정 내년 1월 1일 발효」(2013. 12. 3), 온라인 자료(검색일:2019. 11. 3).

2015년 11월 한ㆍ러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한ㆍ유라시아 경제연합 (EAEU) FTA 공동연구 개시에 합의했다. 그 이후 세 차례의 세미나를 거쳐 2016년 8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러시아 대외무역아카데미가 민간 공동연 구 최종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는 ‘유라시아 이니셔티 브’ 실현을 위한 범정부적 추진체계 구축,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금융지원체계 마련 및 법ㆍ제도적 기반 조성 등 경제협력 거버넌스 개선에 상당한 노력을 기 울였다.

하지만 2013년 말부터 나타난 일련의 대외적 장애요인은 ‘유라시아 이니셔 티브’의 실현 전망을 어둡게 만들었다. 첫째, 미ㆍ러 갈등은 한국의 대러 경제 협력 확대는 물론, 대외정책의 자율성까지 제한했다. 미국의 대러 경제제재는 국제유가 하락과 맞물려 러시아의 경제상황을 악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대러 경제제재 참여국이 아님에도 한국정부와 민간이 2차 제재(secondary boycott)를 우려하여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확대에 부담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한국기업 및 금융기관들은 제재 대상이 아닌 러시아 기업 및 금융기관 과의 거래마저 꺼리게 되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대러 수출기업 지원 현황에 따르면, 2013년 2조 6,700억 원이었던 지원 규모가 2014년 2조 600억 원, 2015년 8,100억 원, 2016년 6,400억 원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했다.205) 또한 미ㆍ러 갈등으로 인한 러ㆍ중 관계의 강화는 북한의 입지를 제고하고 미 ㆍ일 동맹을 자극하면서 동북아의 지정학적 대립구도(북ㆍ중ㆍ러 대 한ㆍ미ㆍ 일)를 심화시켰다. 중국 뿐 아니라 러시아도 2016년 7월에 있었던 한국 내 사 드 배치 결정을 동북아에서 전략적 균형을 파괴하려는 미국의 글로벌 MD 구축 전략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크게 반발했다.206) 둘째, 2014년부터 미국을 비롯 한 서방이 대러 경제제재를 단행하고 같은 해 하반기에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205) 「정재호 의원 “한러 경제협력 금융지원 확대해야”」(2017. 7. 17), 온라인 기사(검색일: 2019. 11. 5).

206) “Заявление МИД России в связи с решением о размещении американской системы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석유, 가스 등 에너지 자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기존 성장모델의 한계로 인해 러시 아의 경제성장률은 연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에 더해 서방의 경 제제재와 중첩된 유가 하락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심화, 거시경제지표 악화, 루블화 가치 하락, 실질임금 감소에 따른 소득 감소, 소비 수요 하락 등을 초래 하면서 경제상황 악화를 가속시켰다.207) 러시아 정부가 투자환경 개선, 탈 소 비에트 지역 경제통합, 극동지역 개발, 경제현대화 정책 수행, 수입대체산업 육 성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내고 경제주체들이 경제제재와 저유가 상황에 적응 해가면서 점차 회복세에 접어드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이미 대러 경제협 력 확대에 대한 한국정부와 민간의 관심은 크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셋째, 북ㆍ 미 갈등과 남ㆍ북관계 경색이 고착화된 가운데, 대북제재 강화로 북한이 참여 하는 유라시아 국제협력의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 한반도의 분단과 북한의 지리적 위치로 인해 남ㆍ북관계 개선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전제이자 핵 심 목표 중 하나였다. 2013년 11월부터 5.24 조치를 우회하는 한국기업 컨소 시엄의 나진ㆍ하산 프로젝트 참여가 법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럼에도 북한의 거 듭된 핵ㆍ미사일 시험에 따른 UN 안보리의 대북 경제제재 강화,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한국의 독자적인 경제제재 단행 등은 나진ㆍ하산 프 로젝트 추진은 물론이고, 남ㆍ북ㆍ러 3자 경제협력 자체를 무산시켰다.208)

이러한 대외적 장애요인과 함께 대내적 장애요인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의 실현을 가로막았다.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국가적 어젠다임에도 일관 된 체계와 통합적 추진 전략 없이 정부 각 부처와 유관기관 주도의 다양한 조직 체계가 난립했고, 사업은 분산적으로 추진되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로드 맵’은 작성 시부터 거의 모든 제안을 상향식(bottom-up)으로 제한 없이 수용

207) 박정호, 성원용, 강부균(2016), pp. 97~98.

208)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경제제재와 한국의 독자 제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남북교류지원협회, 전략물자 관리원(2018) 참고.

함으로써 매우 많고 다양한 과제들을 포괄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실상 과제 의 선택적 추진이 정부 각 부처와 유관기관의 결정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과 각 부처 국장급 인사로 구성된 유라시아 경 협조정위원회는 실질적 권한이 없었다. 이 핵심 기구는 단순히 사업계획을 공 유하고 결과를 취합하는 제한된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쳤다.

이는 첫째, 정부 내에 해당 어젠다를 온전히 전담하는 조직과 인원이 부재했 고, 둘째, 특정 부처 또는 일부 부처의 ‘사업’으로 인식되면서 정부부처간 긴밀 한 협조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셋째, 해당 어젠다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 은 사업까지 계획과 성과에 포함시키면서 실적 부풀리기가 가능했고, 넷째, 정 부 예산 및 민간 재원 확보가 실질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았으며, 다섯째, 대외적 장애요인으로 인해 단기간에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음에도 성과에 대한 압박 때문에 정부 각 부처와 유관기관은 실질적인 경제협력 과제 를 이행하기보다는 양해각서 체결, 일회성 행사 등을 남발했고, 여섯째, 국가적 어젠다로서 독자적 예산을 가지고 각 부처 및 유관기관의 관련 사업을 통합적 으로 기획ㆍ조정하는 권한을 갖는 별도의 조직체계, 이른바 컨트롤 타워를 구 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의 대내적 장애요인 은 경제협력 거버넌스의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나. 문재인 정부의 대러 경제협력 정책과 거버넌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발표된 지 불과 3년 반 만에 헌정 사 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자연스럽게 국가적 어젠다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 다. 하지만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신북방정책’ 추진을 천명하면서 대러 경제협력 확대의 새로운 불씨가 당겨졌다. 2017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에서 개최된 3차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ic Forum) 본회의 기조연설 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나 또한 극동지역을 포함한 북방지역과의 경제협력 의

지가 확고합니다. 임기 중에 러시아와 더 가깝게,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내 고 싶습니다. 그것을 한국은 신북방정책의 비전으로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언 급하면서, 신북방정책 추진을 공식화했다.209) 문재인 대통령은 신북방정책과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 만나는 지점인 극동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그동안 남ㆍ북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진척시키지 못했던 사업들을 포함하여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신북방정책’의 우선적 목표로 규 정했다. 또한 이를 위한 분야별 과제로서 러시아와 한국 사이에 이른바

‘9-Bridge’(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산업단지, 농업, 수산 분야) 를 놓아 동시다발적 협력을 이루어나갈 것을 제안했다.

당시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방경제협력 전담기구 설치, 북방협력 의 제도적 인프라 조성 등 신북방정책 추진을 위한 경제협력 거버넌스 개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첫째, 러시아의 극동개발부에 대응하는 북방경제협력 전 담기구로서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설치의 의미를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 방경제협력위원회가 러시아 및 다른 동북아 국가들의 관련 기관과 긴밀하게 협 력해 극동지역 개발을 중심으로 실질적 협력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질적 권한이 없었던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경협 조정위원회와는 달리, 북 방경제협력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의 상설기구로서 북방경제협력 전담기구 역 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게다가 2017년 8월 25일 「북방경제협력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210)이 대통령령에 의해 제정되고, 8월 28일 여당의 4선 중진 국회의원인 송영길 의원이 위원장에 임명되면서 북방경제협력 정책의 효 율적인 심의ㆍ조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둘째, 지방간 협력체계, FTA, 다자협력 등 제도적 인프라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양국 지방자치단체뿐만 아니라 지방 중ㆍ소상공인 사이의 실질협력과 인적교 류를 촉진하는 지방협력포럼을 2018년부터 개최하기로 합의했으며, 보다 견

209) 「문재인 대통령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 온라인 자료(검색일: 2019. 11. 8).

210) 「북방경제협력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온라인 자료(검색일: 2019.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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